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91화 (391/449)

3장 좀비 세계의 최강자 (1)

그 시각, 오 박사를 태운 헬리콥터는 한강철교 상공에서 선로와 선착장 사이를 배회하며 서치라이트로 아래쪽을 비춰 대고 있었다.

선착장 주변에는 잠실에서 무더기로 몰려온 사람들이 오와 열을 맞춰 선로로 올라가기 전의 마지막 심사를 받는 중이다.

외상이 발견된 사람은 선로 위로 올려 보내지 않고, 선착장 우측에 설치된 컨테이너에 따로 수용했다.

“잘 찾아봐! 검은 미니 원피스를 입고 있다고 했어! 까만색 긴 생머리! 그리고 남자는 거구의 뚱뚱한 백인!”

오 박사는 손가락만 하게 보이는 발아래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쉐도우 실드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눈을 부릅뜨고 망원경까지 동원해 수천의 사람들을 훑었다.

거리가 꽤 되지만 둘 다 워낙 특징이 있는 인물이어서 이 자리에 있기만 하다면 찾아내는 데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처음 헬리콥터를 이곳으로 몰고 왔을 때, 오 박사는 내심 조금은 걱정을 했다. 바쁘고 다급한 군인들이 불청객 민간 헬리콥터를 몰아내려 들면 어떤 핑계를 대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걱정이었다.

하지만 군인들은 정말로 바빠서, 머리 위에 떠 있는 헬리콥터가 어디 소속인지 따위의 소소한 문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 상황이었다.

배 안에 좀비가 있다는 무전을 마지막으로 교신이 끊긴 유람선 2번 배를 구조하러 나갈 엄두도 못내는 판국에,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리 같은 건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방금 선착장에 도착한 유람선 1번 배 승무원들에 의하면, 2번 배는 조명도 다 꺼진 채 유령선처럼 한강 상류 쪽으로 오히려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쯤 됐으면 다 죽었다고 보는 게 맞다.

프로펠러 소리가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헬리콥터가 비추는 서치라이트의 불빛이 주변을 밝혀주는 것도 외상자 색출 작업에 꽤 도움이 됐다. 그러니 딱히 항의를 하려고 드는 군인은 아직 없다. 덕분에 오 박사는 선착장 주변을 마음껏 활개치고 나는 중이다.

― 치이이익, 1호기 나와라. 여기는 2호기. 치이익.

3호기와 함께 잠실로 간 2호기에서 무전이 날아왔다. 오 박사는 헤드폰을 꽉 눌러서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고 반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응, 나야! 혹시 찾았어?”

2호기와 3호기는 잠실 주경기장으로 날아가 태양 그룹 이동 희망자들 중에 두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 치이익, 아직 재확인 중입니다만, 일단 현재까지는 여기에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치이익.

끄응~ 오 박사는 아쉬운 신음 소리를 냈다. 이곳 한강철교의 선착장이든, 아니면 잠실 주경기장이든 둘 중에 한 군데에만 있어주면 모든 게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는데…….

“거기 있는 게 전부 다야? 민간인들 더 없어?”

― 치이익,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 중 일부는… 치익, 지금 막 군 병력과 함께 장갑 트레일러로 쉘터를 빠져나갔습니다. 치이익.

“일부는? 그럼 나머지가 더 있다는 말이야? 이제 거기 좀비로 다 덮였다며?”

― 치익, 맞습니다! 치이익, 미처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이 야구장으로 다시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치익.

장갑 트레일러와 야구장이라… 긁을 수 있는 복권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초조해진 오 박사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2호기는 야구장으로 가서 수색을 진행하고, 생존자를 발견하면 구조해서 테라의 행방을 물어봐! 유명인이니까 누군가 알고 있을 거야! 3호기는 장갑 트레일러 뒤를 쫓아가서 내리는 사람들을 확인해 보고! 장갑 트레일러는 화력이 이쪽을 압도할 테니까 시비를 붙거나 하지 말고, 일단 테라가 있는지만 확인하라고 해!”

― 치이익, 그러면 여기에는 뭐라고… 치익.

2호기 승무원이 난감해하며 물어온다. 태양 그룹 헬리콥터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민간인들이 잔뜩 있으니, 물론 뿌리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 박사는 냉정하게 내뱉었다.

“그런 건 대충 둘러대! 테라하고 젠킨스 찾기 전에는 다른 짓 할 생각 말라고!”

2호기 승무원은 알겠다고 말하며 교신을 끊었다. 그들이 무전으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두 명의 쉐도우 실드 대원은 면역자와 미친 과학자를 찾기 위해 계속해서 아래쪽을 살피고 있었다.

“없는 것 같습니다! 선로를 따라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 볼까요?”

쉐도우 실드 대원이 망원경을 떼며 말했다. 선로 위에서는 외상자 검색을 마친 민간인들이 터덜터덜 남쪽을 향해 걸어 내려가고 있다. 장장 300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장정의 시작이다.

“확실한 거야? 다시 한 번 확인해 봐!”

“지금 두 번째 살핀 겁니다!”

젠장, 오 박사는 초조하게 눈을 굴렸다. 잠실에도 없고 여기에도 없다면, 경우의 수는 세 가지로 줄어든다.

이미 선로로 들어와서 안전하게 이동 중이든가, 아니면 아직 이곳으로 오는 중이든가, 그것도 아니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지만, 어딘가에서 시체가 되어 누워있거나……

“아니! 아니! 안 돼! 그렇지 않다고!”

테라가 죽었을지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오 박사는 진저리를 치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신 차장, 그 개새끼 때문에 이미 한 번 면역자를 죽였는데, 이렇게 또 보물을 놓쳐 버릴 수는 없다. 그쯤 되면 손에 쥐어준 복을 차버리는 천하의 똥멍청이라고 평가 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잠실 선착장부터 가보자! 그쪽에 아직 사람이 있다고 했지! 거기로 가서 이동 경로를 차분히 역으로 훑어!”

빠르게 머리를 굴린 오 박사가 명령을 내렸다. 만약 테라와 젠킨스가 이미 선로 위에서 걷고 있다면, 급사할 위험은 없다는 의미다. 그러니 그쪽 수색은 다른 위험한 곳을 다 찾아보고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투투투투투― 훙훙훙―

오 박사를 태운 1호기 헬리콥터는 크게 선회해서 잠실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잠실 쉘터에서는 자잘한 폭발과 함께 화염이 피어오르고 있다.

쉘터로부터 2.5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잠실대교 북단에서는 유람선 2번 배가 빙글빙글 표류 중이었지만, 조명이 모두 꺼져 버린 채 어둠 속에 묻혀 있는 터라 오 박사의 주의를 끌지는 않았다.

☆ ☆ ☆

쿵―

수중보에 부딪친 유람선이 또다시 방향을 바꾸며 빙글 돈다. 지붕 위의 사람들은 난간을 꽉 움켜쥔 채 비통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잠실대교에서 그들의 키잡이 없는 항해는 여전히 계속되는 중이다.

다행인 점을 고르라면 조금 전의 두 번째 충돌 때, 머리통 없는 좀비의 시체가 또 방향키 위에 엎어지면서 물속에 잠겨 있는 러더를 최대치인 35도까지 돌려놓았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배는 좀처럼 빠른 속도를 내지 못하고 그저 크게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만 있다.

불행스러운 점을 고르라면… 젠장, 너무 많다.

첫째, 이 배에는 아직도 60마리 이상의 좀비들이 남아 있다.

둘째, 실탄이 떨어져 가는데 K―3용 예비 탄통은 좀비들로 가득한 객실 의자에 떨어져 있다.

셋째, 구조하러 올 것 같지가 않다. 조명은 꺼졌지만 아직 모든 전자 기기는 작동하는데, 위치를 묻는 무전조차 이제는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의 측면에서 침수가 시작되고 있다. 쉼 없이 뽀글대며 올라오는 기포가 배의 어딘가에서 산소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유심히 보면 아주 약간이기는 하지만, 배도 우측으로 기운 것 같다.

“이거… 얼마나 걸려요? 가라앉기까지?”

민간인 생존자 중 하나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병사들도 민간인들도 모두 고개를 저을 뿐이다.

공학자도 아니고, 선원도 아닌데, 그런 걸 알고 있을 리가 없다. 배가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저 좀비들을 다 해치우고, 빨리 한강철교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총알 몇 발이나 남았나, 다들?”

민구는 병사들에게 물었다. 병사들은 잠시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여섯 발, 세 발, 열한 발,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사다리에 손을 걸치는 좀비들마다 사살하던 병사는 현재 총알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면 스무 발… 괴물이 한 60 마리 되니까…….”

계산을 해보던 민구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스무 발로 한 발에 한 마리씩 괴물들을 잡는다고 해도, 마흔 마리가 넘게 남는다. 민구 혼자서 그 많은 놈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다.

아니, 무리가 아니라 미친 짓이다. 안정적인 땅에서 멀쩡한 몸 상태로 싸운다고 해도 못 이길 상황인데, 하물며 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는…….

“우리 차라리 배가 강변 쪽에 가까이 갔을 때, 물로 다이빙을 할래요? 백 미터 정도만 헤엄치면 될 것 같은데…….”

누군가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깜깜하고 빠르게 흐르는 물속에서 100미터를 헤엄쳐간다고?

다들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좀비들도 뒤쫓아서 물속으로 뛰어들 텐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정말 운이 좋아서 저 기슭에 닿는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다음에 한강 철교까지 어떻게 이동을 합니까? 육로로 20킬로미터는 될 겁니다.”

병사 중 하나가 그 계획의 맹점을 일러준다. 무장 병력의 호위를 받으며 선착장까지 겨우 800미터를 뛰어가는 동안에도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데, 무기도 없이 20킬로미터라면 보나마나 몰살이다.

지붕 위에는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플래시만 비추면 보이는 지근거리에 실탄이 떨어져 있는데, 내려갈 수가 없다. 지독한 희망 고문이다.

“방법이 없네! 여기까진가 봐!”

좌절한 민간인들이 한숨을 푹푹 내쉰다. 그러는 동안에도 유람선은 또 한 바퀴를 돌아서 수중보를 들이받고 흔들렸다.

“으음…….”

테라로부터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전해 듣던 젠킨스는 턱을 훑으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상황은 다 이해됐다. 다들 답이 없다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까지도……. 확실히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는 하다.

사실 젠킨스는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위험해지는 사람도 전혀 없는 확실한 해결책. 아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도 입 열기를 망설이는 건, 그 해결책이 젠킨스 본인의 이익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

젠킨스는 지금 몇 분째 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있다. 총알을 회수해 오는 것이든, 배의 키를 돌리는 것이든, 다 할 수 있다.

아래층에 좀비들이 60마리가 아니라 그 두 배라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널 키드, 테라가 내려가서 총알 박스를 들고 오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그 미션에서 가장 어려운 점을 굳이 고르라고 하면, 테라의 가느다란 팔로 10킬로그램 가까이 되는 탄약 박스를 여기까지 들고 와야 한다는 것 정도다. 그 외에는 없다.

좀비들은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도 않을 거고, 이동하는 걸 방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가 칼을 들고 내려가서 남아 있는 모든 좀비들의 머리를 차례차례 잘라낸다고 해도 아무 저항이 없을 것이다.

좀비들은 그녀를 인지하지 못한다. 널 키드인 테라는 좀비 세상에서 무적의 투명 인간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킨스가 아직까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건, 테라의 특별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테라 본인에게도 아직은 비밀을 유지하고 싶다.

만약 테라가 좀비 면역자이고, 좀비들의 파도 속에서도 아주 안전하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목격한다면, 젠킨스가 그녀를 JL로 데려갈 수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할 수밖에 없다.

군인들과 저 흉터사내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이라도 바치려 들 것이다. 거기에 추가해서 테라로부터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도 각오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널 키드라는 걸 알리면 안 되는데…….’

이를 악물고 머리를 쥐어짜던 젠킨스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일단 여기에서 살아나는 게 우선이다. 지금 살아남아야 다음 순간도 도모할 수 있다.

“후우~ 테라 양…….”

결심을 한 젠킨스는 테라에게 머리를 기울이며 귀엣말을 시작했다.

“내가 해줬던 이야기 기억나나? 면역자에 세 가지 종류가 있다는 거 말이야.”

테라는 젠킨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 시점에 왜 갑자기 이런 소리를 꺼내는 건지 모르겠다. 젠킨스는 그녀의 눈치를 살펴가며 이야기를 이었다.

“그중에 널 키드의 특성,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믿네. 귀하는 영리한 아가씨니까.”

“네, 기억해요. 영리한 아가씨인 것 같지는 않지만요.”

테라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민구를 끌어들였던 게 너무 미안하다. 아이 엄마들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지만 않았어도 그는 지금 선로 위에서 안전하게 이동하는 중이었을 텐데.

“그… 내가 귀하에게 했던 말 중에 아주 살짝 장난을 쳤던 게 있어, 테라 양.”

테라는 무슨 말인가 싶어 미간을 찌푸렸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다고 느껴 고해성사라도 할 참인가…….

음, 적절한 표현을 고르던 젠킨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보다는 이렇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군. 테라 양, 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고 싶지 않나?”

“당연히 돕고 싶어요. 하지만 저는 그만한 능력이…….”

“아니, 능력은 충분해. 필요한 건 믿음과 용기뿐이라네.”

젠킨스가 말했다. 그를 바라보는 테라의 눈이 가늘어진다. 무슨 말을 듣게 될지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갔다.

만약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젠킨스가 왜 그리 집요하게 함께 JL로 가자고 졸라댔던 건지도 한 방에 설명이 된다. 젠킨스는 간절한 표정으로 테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눈치챈 것 같군, 테라 양. 그래, 맞아. 귀하는 널 키드야. 내가 그걸 속였어.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아나필락시스 진이라고 거짓말을 했었지.”

“…정말이요? 제가… 제가 널 키드라고요? 아니잖아요!”

테라는 젠킨스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내면서 물었다. 젠킨스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널 키드. 에… 당황스럽겠지, 그 모든 우정을 쌓아오면서 내가 귀하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 때문에… 하지만 그건 결코 내 이익만을 위한 게 아니었어. 다른 미숙한 놈들이 테라 양의 완벽한 아름다움에 흠집을 내게 될까 봐 두려웠어. 테라 양, 믿어줘. 나는 귀하를 JL로 데려가서 안전하게 보호하고 싶었어. 그렇게 하면서 함께 인류를 구원할 백신을 만들고 싶었던 거야. 이건 내 영혼, 내 어머니의 영혼, 내 아이들의 영혼까지 다 걸고 맹세할 수 있어.”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남의 영혼을 함부로 걸지 마세요.”

테라는 그녀답지 않게 매몰차게 잘라 말하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혼란스럽다. 1억분의 1의 확률. 타인에게 항체를 줄 수 있는 유일한 면역자 타입.

결코 평범하게 행복을 추구하며 살 수 없는 운명이 지금 갑자기 그녀에게 찾아와 버렸다.

“…젠킨스 씨가 널 키드의 특징에 대해 말했던 것도 다 사실인가요?”

“음, 그건 모두 사실이야. 이론적인 진실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없지. 딱 한 가지… 귀하의 발가락과 같이 아물지 않는 상처가 널 키드의 특징이라는 점만 빼고는 전부 다 사실이었어.”

테라의 호의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느라 젠킨스는 땀을 뻘뻘 흘렸다.

“그럼… 저 좀비들이 저를 볼 수 없다는 건가요? 공격하지도 않고요?”

테라가 다시 물었다. 젠킨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그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할 거야. 그러면서도 귀하의 영역을 침범하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까 오직 테라 양만이 저 탄약 박스를 가지고 돌아올 수 있어.”

저 아래로 내려간다고? 나 혼자서…….

테라는 고개를 숙여 유리 지붕 아래쪽을 바라봤다. 끔찍한 외모의 수많은 좀비들이 객실에서 서성거린다. 저들 사이로 걸어 다닌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얼어붙는 것 같다.

“근데… 젠킨스 씨가 착각한 것 같아요. 저는… 널 키드일 수가 없어요. 물렸던 이후에도 몇 번이나 좀비들이 덤벼들었던 적이 있거든요.”

“그럴 리가 없어.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봐. 좀비들이 달려들 때, 테라 양은 혼자 있었나? 아닐걸? 좀비들은 귀하의 옆에 있던 누군가를 노렸던 건데 귀하가 착각을 한 거지.”

젠킨스의 설명을 들은 테라는 격리실에서의 경험을 되새겨 봤다. 확실히… 그때 그녀는 임수정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좀비 사태 첫날 빌라로 돌아갔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튀어나온 좀비들도… 그녀가 아니라 뒤에 서 있던 사내들을 덮쳤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데 그렇게 심각해? 저놈이 괴롭히나?”

테라의 안색이 변한 걸 깨달은 민구가 물었다. 젠킨스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 앉았다. 테라는 그에게 귀엣말로 대답을 했다.

“제가… 단발성 면역자가 아니래요.”

“응? 그게 아니면 뭐라는 거야?”

“좀… 다른 종류의 면역자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좀비들이 저를 공격하지 않는대요. 제가 안 보이는 거나 다름없다고.”

거기까지 들은 민구는 테라로부터 떨어져 젠킨스를 노려보았다. 젠킨스는 그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새끼…….”

민구는 젠킨스의 앞으로 걸어가서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젠킨스는 쿨럭거리며 놓아달라고 사정을 한다.

“무슨 개수작을 하고 싶어서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거야? 괴물들 눈에 안 보인다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민구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이런 사기꾼 새끼는 애초부터 동행으로 삼는 게 아니었다.

“왜 이래? 흥분한 걸 보니,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나 본데! 아니야! 그렇지 않다고! 간단하게 증명할 수가 있어! 이걸 봐! 이걸! 테라 양, 통역 좀 해줘! 제발!”

젠킨스는 피가 몰려 벌게진 얼굴을 흔들면서 다급하게 외쳐 댔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을 지붕 바깥쪽으로 내밀었다.

그롸아아아아― 갸아아악―

난데없이 뻗어 나온 사람의 손을 보고 근처의 좀비들이 흥분해 소리를 질러 댄다. 그의 손 주변에는 좀비들이 더 많이 모여들었다.

“그건 당연한 거잖아. 저놈들은 사람 고기라면 환장하니까!”

테라로부터 젠킨스의 말을 전해 들은 민구는 고개를 저었다. 젠킨스는 테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내가 한 것처럼 해보라고 시켜봐!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올걸? 그리고! 이 난폭한 사내가 저렇게 큰 칼을 가지고 있는 걸 아는데! 내가 왜 쓸데없이 거짓말을 하겠어? 참수당하고 싶어서?”

그 말을 들은 테라는 따로 민구에게 통역을 해주지 않고, 난간 밖으로 팔을 내밀었다.

조금 전, 젠킨스가 손을 조금 내민 것만으로도 그렇게나 날뛰던 좀비들이건만, 그녀에게는 완전히 무관심했다.

테라도, 민구도 적잖이 놀랐다. 그들뿐 아니라, 이상한 세 명의 조합이 소란스러워진 것을 지켜보던 유람선 지붕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그녀의 행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좀비가… 반응을 하지 않네요?”

누군가 믿을 수 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테라는 조심스럽게 사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사다리 가장 위 칸에 발을 딛고 섰다.

좀비들과의 거리는 불과 3.5미터.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를 돌아보는 좀비는 없다. 젠킨스의 말이 점점 더 신빙성을 얻어가고 있다.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겁이 많은 내가…….”

발아래 가득한 좀비들을 바라보며 테라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용기를 내보려 해도 떨림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저 끔찍한 시체들 사이를 걸어가는 동안, 혹시 한 마리라도 자신을 알아보면… 그때는 그냥 죽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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