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무쌍난무 (5)
“아저씨! 올라오세요!”
테라가 지붕에서 얼굴을 내밀며 외쳤다. 그러는 사이에도 뒤따라 온 민간인들은 앞 다투어 사다리를 기어 올라간다. 이 배가 키잡이를 잃은 채로 그저 무작정 돌진 중이란 걸 모르고들 있다.
“아무 거라도 잡아! 부딪친다!”
민구는 테라에게 외쳤다. 한 번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테라가 멍하니 그를 바라본다.
“선장이 죽었어! 조종할 사람이 없다고! 꽉 잡아!”
민구는 똑같은 말을 사람들에게도 다시 한 번 외쳤다. 그러는 동안에도 컴컴한 교각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사람들 중 절반 정도는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지붕 위로 올라갈 생각만 하고 있다. 좀비에 대한 공포 때문에 다들 이성과 감각이 마비된 모양이다.
“난간이라도 붙잡아요!”
뒤따라오던 병사들이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그런 후, 그들도 난간을 꽉 끌어안았다. 민구는 마세티를 칼집 안에 넣고 선수의 난간 사이에 팔을 교차시켰다.
쿠쿵!
곧바로 느껴지는 엄청난 충격!
유람선의 측면이 교각을 때린다. 배가 한쪽으로 휘청하고, 사다리를 오르려던 사람들은 아래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벽을 들이받은 사람들의 머리에서는 피가 솟아 흐르고 좀비들 사이로 떨어진 사람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민구의 몸도 잠시 떠올랐다가 바닥에 내리꽂혔다.
조타실의 유리창이 박살 나며 안에 들어 있던 좀비들이 밖으로 튕겨져 나온다. 사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부딪친 배는 둔탁한 굉음과 함께 다시 교각을 들이받고 방향이 틀어졌다.
쿵―
또 한 번의 충격! 민구는 난간을 잡고 필사적으로 버텼다. 충격을 줄이지 못한 사람들과 좀비들이 미끄러지고 튕기며 강물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끼기긱―
배의 측면에서 쇠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린다.
쿵―
조타실 벽에 부딪쳐 솟구친 좀비의 시체가 방향키 위로 툭, 떨어졌다. 좀비의 무게를 받은 키가 휘리릭 돌아간다. 몇 번이고 쿵쿵대며 교각을 짓찧는 동안, 유람선의 방향도 바뀌었다.
이번에도 또 한 번 급격한 회전이 이루어졌다. 기우뚱한 채 옆으로 도는 배 위에서 사람들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오로지 떨어지지 않는 데에만 집중해야 했다.
찌이이이익―
깨진 유리창의 파편들과 함께 두 마리의 괴물이 민구 쪽으로 밀려온다. 왼팔을 난간에 건 채 겨우 버티고 있던 민구는 오른팔을 다급하게 등 뒤로 돌렸다.
스릉―!
홀더를 벗어난, 쿠크리의 휘어 있는 칼날이 조명을 받아 번쩍였다. 하지만 그의 왼팔은 이 아름다운 곡선의 칼이 가진 힘을 온전히 끌어낼 수 없는 상태다.
“먹어라!”
민구는 자신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밀려드는 좀비의 얼굴에 수직으로 세운 쿠크리를 박아 넣었다.
카가각―
놈의 코와 앞니, 그리고 턱에 쿠크리의 날이 박혀 들어간다. 민구가 팔을 꺾어 올릴수록, 그리고 놈이 계속 윗니와 아랫니를 딱딱 부딪칠수록, 쿠크리는 놈의 코와 인중을 반으로 가르며 더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그롸아아아―
두 번째 괴물도 유리 조각과 함께 민구를 덮친다. 난간에서 팔을 뺄 수 없는 민구는 가방 안에 든 마세티의 손잡이를 틀어 가까스로 놈의 아가리를 막았다.
콰창―
난간에 하체를 부딪쳐 척추가 꺾이면서도 괴물은 여전히 민구의 살을 뜯어내려 든다. 배가 휘청거릴 때마다 괴물과 민구의 간격이 점점 줄어들었다.
카득! 카득!
괴물이 마세티의 손잡이를 이로 갉아낸다. 잇몸이 들리고 이빨이 빠져나와 덜렁거려도 오로지 눈앞의 먹이를 깨물겠다는 집념뿐이다.
민구는 놈이 아가리를 벌린 틈을 타서 경사진 쪽으로 걷어차 버렸다. 옆구리를 채인 괴물이 아래쪽으로 밀려났다.
텅―
난간 기둥에 두어 번 부딪친 괴물은 그 틈으로 빠져, 강물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쿠크리에 박힌 첫 번째 괴물은 갈퀴 같은 손을 휘저으며 민구를 할퀴어 댄다.
“윽! 이 새끼가!”
가슴의 살갗이 벗겨지는 것을 느끼며 민구는 쿠크리의 칼날을 옆으로 틀어 괴물의 얼굴에서 빼냈다. 그러고는 곧바로 놈의 목에 수평으로 박아 넣었다.
칵―!
괴물은 목에 칼날이 박힌 이후에도 어떻게든 민구와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난리를 쳐 댄다. 그때, 심하게 기울었던 배가 다시 수평으로 돌아왔다.
민구는 난간을 두르고 있던 오른팔을 빼서 마세티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러고는 쿠크리를 확 밀어 괴물의 몸이 뒤로 기울도록 했다.
팟―
옆으로 몸을 틀며 백핸드로 마세티를 뽑은 민구는 그 속도와 방향을 그대로 살려, 뒤로 넘어가는 괴물의 뒷목을 베었다.
툭― 데구르르르―
괴물의 목이 선수 데크 위로 구르고, 머리를 잃은 놈의 몸뚱이는 맥없이 허물어졌다. 민구는 얼른 일어나서 난간으로부터 벗어났다.
하지만 배가 수평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는 괴물들 역시 두 발로 바닥을 딛고 설 수 있게 되었고, 비틀거리는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운동 능력을 회복했다.
“빨리 올라가! 배가 똑바로 서 있을 때!”
민구는 통로 쪽에서 뛰어오는 괴물들의 머리통을 찍고, 어깨뼈를 박살 내며 시간을 벌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몇 차례 급격하게 배가 기우는 동안, 생존자들과 괴물들이 다 한데 뒤섞여 버렸다.
게다가 이 어둠! 충돌 때, 선수 쪽에 설치되어 있던 두 개의 대형 조명등이 모두 박살 나버리면서 시야가 확연히 좁아졌다.
뒤쪽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포효하고, 또 누군가는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총소리가 거기에 섞여 터져 나온다.
“젠장, 이 배…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선수를 등지고 서서 괴물들을 상대하게 된 민구는 계속 등 뒤를 힐끔거렸다. 잠실 쉘터의 불빛이 보인다. 그건 좋은 소식이 아니다. 조금 전 충돌 이후, 이 유람선이 180도 이상 선회해서 왔던 방향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있다는 의미이니까.
그나마 똑바로 직진을 하는 것도 아니다. 배는 지금 강의 남쪽 기슭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투투둑― 투투투―
지붕 위의 병사들이 3점사를 날리자 통로를 따라 달려오던 괴물들이 몸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린 채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꽤나 든든한 지원군이기는 한데, 그래봐야 군인이 넷뿐이니 상황을 완전히 지배할 수는 없다.
그롸아아아―
그가 잠시 배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동안에도 괴물들은 쉬지 않고 달려들었다. 민구는 놈들의 다리를 후려쳐서 중심을 흩고, 뒤통수를 때려 강물에 밀어 처넣었다. 목을 자르고 머리를 쪼개는 것보다 그쪽이 몇 배나 수월하다.
“방향을 틀어야 돼…….”
어지럽게 스텝을 밟으며 한바탕 거하게 칼춤을 춘 민구는 조타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날카롭게 깨진 유리창 파편 너머로 둥근 방향키의 손잡이가 보인다. 민구는 그쪽으로 뛰어가 유리창 안쪽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크롸악―
벽 뒤에서 갑자기 뛰어나온 괴물!
민구는 깜짝 놀라 황급히 팔을 뺐다. 민구를 노려보고 있던 괴물이 계기판 위로 뛰어오르며 울부짖어 댄다. 그러고는 깨진 유리창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어딜! 이 새끼야!”
민구는 대각선으로 마세티를 휘둘렀다.
칵―!
마세티의 칼날이 목에 박힌 괴물이 창틀에 밀려가 부딪친다. 민구는 놈의 목에 마세티를 박아 넣은 채로 다시 팔을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조타실 문 너머 객실 쪽에서도 그를 발견하고 뛰어오는 괴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휘리리릭―
길게 튀어나와 있는 방향키의 손잡이들을 잡고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돌리면서 민구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걱정은 배가 너무 많이 돌면 어쩌지 하는 것이었다.
배라는 건 한 번도 몰아본 적 없다. 애초에 이게 자동차 핸들처럼 돌리는 방향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인지조차도 잘 모르겠다.
“이게 왜…….”
급격한 회전에 대비하고 있던 민구가 중얼거렸다. 방향키를 두 바퀴 이상 돌린 것 같은데, 별 변화가 없다.
뭐야? 이걸로 조정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민구가 고민하고 있을 때, 지붕에서 지원사격을 하고 있던 군인들이 소리쳤다.
“이제 그만 올라오십쇼!”
민구는 주변을 돌아봤다. 이제 1층에 살아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나마도 대부분 괴물들에게 몰려 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린다.
“위험합니다!”
그와 함께 외부 통로를 헤치고 나왔던 두 명의 병사가 외쳤다. 위험하다는 건 민구 본인도 잘 안다. 괴물들로 그득한 배의 안쪽에 팔을 집어넣어서 방향키를 돌리고 있으니 당연히 위험천만하다.
하지만 아직 배가 돌아가지 않았는데… 이대로 직진하면 강둑에 정면충돌하게 된다. 그것도 강의 남쪽에…….
“좀 더 돌려볼까…….”
민구가 재빨리 다시 조타실 안으로 팔을 집어넣고 방향키를 잡았을 때, 그제야 유람선의 진행 방향이 천천히 바뀌기 시작했다. 정면에서 보이던 강둑이 아주 조금씩 옆으로 밀려난다.
“젠장… 애먹이는군. 배라는 건 원래 이렇게 방향 트는 게 느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민구는 주변으로 몰려드는 괴물들을 향해 마세티를 내리찍고, 쿠크리를 박아 넣었다. 옆구리 때문에 가끔씩 휘청거려서 진땀을 뽑아내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익숙한 칼을 쥐고 벌이는 싸움은 그에게 아드레날린을 솟아오르게 했다.
다만, 통로를 통과해서 오는 놈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둘을 죽이면 이미 넷이 달려드는 형국이다. 이대로 버틴다는 건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 배가 회전했다 싶어졌을 때, 민구는 다시 조타실 안쪽으로 팔을 집어넣고서 방향키를 역 방향으로 한 바퀴 돌렸다. 그 정도에 두면 얌전하게 직진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저씨! 뒤에요!”
애타는 테라의 외침. 민구는 유리 조각 사이로 팔을 빼내며 몸을 틀었다. 그러고는 마세티를 가볍게 휘둘러 달려들던 놈들의 진행 방향을 틀어버렸다. 두 마리의 괴물이 그를 덮치려다가 바닥에 곤두박질친다.
칵―! 칵―!
민구는 괴물들의 뒤통수에 마세티를 후려갈겼다. 한 방! 두 방! 세 방! 한 곳을 계속 두드리니 뼛조각이 튀고, 두개골이 움푹 팬다. 아직 딸리는 힘 때문에 단번에 죽이지 못하니, 이렇게 집요해질 수밖에 없다.
투투둑― 투투투―
반대쪽 통로를 향해 퍼부어지는 총알들, 그것이 민구가 포위되지 않도록 돕고 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민구는 사다리 쪽으로 뛰었다. 저렇게 시간을 벌어줄 때 몸을 피해야 한다.
“그만 놀 거라고, 이 새끼들아!”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괴물의 팔을 잘라 날려 버린 민구는, 놈을 걷어차고 사다리에 올랐다. 지붕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그의 팔목을 잡고 당겨준다.
그롸아아아― 가아아악―
뒤늦게 달려와 민구를 놓친 좀비들이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개중 한두 놈씩 사다리에 손을 걸치는 놈이 나올 때마다 지키고 있던 병사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그러면 정수리에 구멍이 뚫린 좀비는 맥없이 고꾸라진다. 불과 3.5미터 남짓의 높이여서 대단한 겨냥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
지칠 대로 지친 민구가 지붕 위에 올라와 비틀거리자 그때까지 맘 졸이며 지켜보고 있던 테라가 그를 부축했다.
“하아~ 하아~ 이게 단가?”
민구는 허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생난리를 치고 싸워서 길을 트고 시간을 벌었는데, 유람선의 지붕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의 수는 스무 명도 채 되지 않는다.
“아까 배가 다리에 부딪쳤을 때, 많이 떨어졌습니다. 미끄러져서요.”
경외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던 병사들이 대답했다.
젠장, 민구는 적잖이 낙담했다. 이만큼만 살아남았다는 건, 괴물로 변해 버린 놈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민구는 뒤쪽의 유리 지붕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객실 안에는 아직도 괴물들이 가득하다.
그롸아아악! 그와아아―
괴물들은 유리 천장 너머로 보이는 민구와 다른 민간인들을 향해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포효해 댔다. 보이는 놈들만 대충 더해도 최소한 70마리. 지치지 않는 기세도, 그 수효도, 민구 혼자서 상대하기엔 무리다.
어쨌든 잠시나마 칼을 손에서 놓을 수 있게 된 민구는 야트막한 난간에 등을 기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부상당한 이후 이만큼 격렬하게 뛰어다닌 적도 처음이고, 이렇게 오랫동안 칼을 휘둘러 뭔가를 베어낸 것도 처음이다.
당연히 온몸이 다 끊어지는 듯 아프고 쑤신다. 특히 오른쪽 옆구리의 통증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근데… 좀 전에 뭐하고 계셨던 겁니까?”
병사 중 하나가 물었다. 민구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배를 운전하던 사람이 다 죽었어. 키는 옆으로 돌아가 있었고… 그래서 직진이라도 시켜둔 거야. 강둑을 들이받게 생겨서.”
상황을 뒤늦게 파악한 병사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지금까지 지붕 위로 도망쳐서 살아남는다는 것에만 온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조타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런 젠장, 그러면 지금 이 배는…….
병사들은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지나쳤던 영동대교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워낙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속도도 꽤나 빠르다.
“이거… 부딪치는 거 아니야?”
수군대는 병사들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들 중 누구도 이 배를 몰아본 경험이 없으니, 배의 좌우 폭이 정확히 얼마인지 모른다. 진입하고 있는 각도로 보아서는 그야말로 아슬아슬하다.
“멍청한… 방향타를 돌릴 시간이 있었으면 속도부터 줄였어야지!”
민구가 뭘 하다 늦게 올라왔는지를 테라로부터 전해 들은 젠킨스는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민구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저 새끼, 지금 내 욕 했지?”
젠킨스의 시선에서 경멸을 읽은 민구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물었다. 아무래도 매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의 사나운 기세에 놀란 테라는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속도를 줄였어야 했다고 안타까워한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민구도 아… 하고 탄식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했던 일이지만, 방향키를 돌린 게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던 거다.
저놈 말처럼 속도를 줄였더라면 훨씬 더 안전했을 텐데… 하지만 사실 속도 조절 따위는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
후우우우욱―
그렇게 말다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유람선은 빠르게 영동대교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꽉 잡아요! 충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병사들이 외쳤다. 다들 난간에 팔을 걸고 긴장된 표정으로 잠시 후에 있을 충돌에 대비했다.
콰아악― 카가각!
유람선의 오른쪽 선수가 교각을 들이받고 움푹 찌그러진다. 배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란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롤러코스터가 급회전 구간을 지날 때보다도 더 큰 중력이 사람들의 몸을 띄웠다가 다시 내동댕이친다.
성수대교 교각과 충돌하고 회전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큰 충격이 유람선의 지붕 위를 흔들었지만, 다들 죽을힘을 다해 난간을 꽉 잡고 버텨냈다.
그러나 물건들은 그렇지 못했다. 부러지고 꺾인 조명등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가 뒤쪽의 유리 지붕을 뚫고 떨어지며 박살이 난다. 형광등이 다 터져 버린 객실 내부는 순식간에 암흑 속에 휩싸였다.
풍덩! 풍덩!
여기저기서 물기둥이 솟았다. 무방비로 돌아다니던 좀비들이 튕겨져 강물에 떨어진 것이다.
끼이이이익― 찌이이이익―
유람선은 쇠가 갈리는 소리를 남겨두고 가까스로 영동대교를 통과했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온다. 불과 몇 미터만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었더라도 정면충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난간에 부딪쳐 얼얼한 코를 문지르며 K―3 사수가 물었다. 병사들이 비추는 플래시가 유람선의 거의 유일한 조명이 되어버렸다.
“하아아~ 젠장, 이게 무슨 지랄이야.”
다른 병사들도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비틀대며 일어섰다. 이번에는 겨우 통과했지만, 그 뒤로 몇 개나 또 다른 다리들이 나타날 것이다. 게다가 잠실대교 아래에는 수중보도 있다. 배가 지나치지 못하는 곳이다. 그전에 결판을 내야 한다.
“빨리 좀비들 잡고, 조타실로 내려가서 배 돌리자.”
K―3 사수는 품에 꼭 끌어안고 있던 K―3를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좀비들과 뒤섞여 있다는 것 때문에 망설였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여유도 없다.
K―3로 아래쪽을 겨누고 몇 번 난사를 훑기만 하면 좀비들 5, 60마리쯤은 금방이다.
“예비 탄통이…….”
몇 발 남아 있지 않은 탄통을 교체하기 위해 K―3 사수는 플래시로 좌우를 비췄다. 그런데… 탄통이 없다. 분명히 예비 총열과 840발들이 하나를 더 실어뒀는데…….
‘설마…….’
겁에 질린 K―3 사수는 플래시를 더 먼 곳까지 비췄다. 여기저기 박살이 난 유리 지붕… 그리고 그 아래 객실의 의자 위에 그가 찾던 예비 탄통이 떨어져 있다.
국방색의 각진 철제 상자가 플래시의 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조금 전 충돌했을 때 튕겨져 나가 유리지붕을 깨고 저런 곳에 떨어져 버린 것이다.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아아, 씨발…….”
K―3 사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다른 병사들이 무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들 마지막 탄창에 그것도 몇 발 남지 않은 상황. 그가 가지고 있는 탄통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경황이 없어서 그걸 그만 깜빡하고 말았다.
그롸아아아―
탄통 옆을 지나던 좀비가 K―3 사수를 노려보며 울부짖는다. 그 주변에만 수십 마리가 몰려다니고 있다. 저 지옥 같은 곳으로 내려가서 탄통을 되찾아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촤아아아악―
지붕 위의 사람들이 다들 좌절하고 있는 동안에도 유람선은 유유히 물살을 가르며 한강을 거슬러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