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무쌍난무 (4)
철교를 향해 출발한 유람선 내부에는 후텁지근하고 답답한 악취가 가득했다. 아무리 짐이 없는 맨몸들이라지만 80명 정원의 조그만 배에 220명가량이 타고 있으니 당연히 공간이 부족하다. 이보다 더 큰 배는 아마추어 수준에서 조종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애초부터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서로 어깨를 바짝 맞댄 채 불편과 열기를 참아내야 했다. 화장실 이동도 안 되고, 단순히 줄을 바꾸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 목숨이 걸린 게 아니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겹다.
“끄으으응! 으으으으!”
영동대교를 통과할 때쯤부터 여기저기서 신음이 터져 나온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여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등이나 가슴에 파묻힌 채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괴로워하는 소리다. 얼굴의 방향을 돌리고, 꽉 눌린 몸을 빼내보려고 해도 힘이 모자란다.
“우에에엑―! 우웨에엑!”
누군가 구토하기 시작했다. 물론 워낙 빽빽하니까 바로 얼굴을 마주 보고 선 사람이 토사물을 게워낸다 하더라도 그걸 피할 수조차 없다.
으… 사람들은 그 상황을 상상하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생각만 해도 역겹고 구역질이 난다.
“우우욱! 우욱!”
구역질이 여기저기로 옮아가기 시작했다. 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가뜩이나 지독했던 객실 내의 공기는 더욱 끔찍해졌다.
“앞으로 몇 분만 참으세요! 금방입니다!”
조타석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스크럼을 짜며 버텨내고 있는 병사들이 민간인들을 독려했다.
사람들은 모두 눈을 질끈 감고, 숨을 몰아쉬며 어서 이 괴로운 항해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까짓 몇 분. 거꾸로 매달린 채로도 버틸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바로 잠시 뒤,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비극의 신호가 터져 나왔다.
“아악!”
객실 앞쪽에서 울린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누군가 지나치게 엄살을 부리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발을 밟혔거나, 민감한 부위에 접촉이 느껴진 것 때문에 놀라 호들갑을 떠는 것이라고…….
“아아악! 아! 야이, 개새끼야! 으아악!”
이번에는 반대 방향에서 비명과 욕설이 들려왔다. 그런데 한 명이 내지르는 것이 아니다. 여러 명이 동시에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비명을 질러 대고 있다.
“…뭐야? 왜 이래?”
“거기 뭐예요? 무슨 소리예요?”
물어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들 모두 알고 있다. 이런 종류의 비명이 들려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조금 전, 사살당했던 청바지 말고도 물린 사람이 더 있었던 거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달아날 수조차 없다.
그롸아아아아―
커다랗게 울리는 포효! 그와 동시에 객실 내부는 비명 소리로 가득 찼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은 어디에서 좀비가 울어 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무조건 뒤로 물러나려 했다.
“여기예요! 여기! 아저씨, 이 앞에! 여기 쏴버려요!”
키 큰 사내가 턱으로 앞쪽을 가리키며 군인들에게 외쳤다. 하지만 병사들이라고 해서 거기까지 접근하기가 용이할 리 없다. 오히려 조타실 쪽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그걸 버텨내는 것조차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비켜요! 길을… 길을 터요!”
병사들은 밀려오는 사람들을 옆으로 밀치며 악을 썼다. 그러는 동안에도 비명 소리는 더욱 커지고, 혼란은 가중됐다.
콰창―!
여기저기에서 창문이 깨진다. 미처 출입문까지 닿지 못한 사람들이 그 사이로라도 나가보려고 팔을 내밀었다. 물론 그래봐야 밀리고 베이며 상처만 입을 뿐이다.
“문 열어! 문! 으아아!”
겁에 질린 사람들은 문을 열라고 고함을 지르며 양쪽으로 두 개씩 뚫려 있는 출입구를 향해 몰렸다.
하지만 그들이 밀어 대는 바람에 문을 열려던 사람들은 손끝조차 옴짝할 수 없을 만큼 벽 쪽에 밀착되어 버렸다.
“젠장! 이럴까 봐 그 난리를 친 건데…….”
민구는 등 뒤의 미닫이 후문을 어떻게든 열어보려고 이를 악물었다.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들의 힘을 감당한다는 게 상상 이상으로 힘이 든다. 의자들로 막힌 공간에 의해 압력이 조금이라도 분산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윽!”
반쯤 열린 문 쪽으로 떠밀린 민구는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버텼다. 여기에서 그가 나가 버리고 테라만 남겨진다면, 그 말라깽이 계집애는 괴물에 물리기도 전에 깔려 죽고 말 것이다.
턱―
마세티가 든 가방을 빗장처럼 문틀 사이에 건 민구는 그것에 의지해서 간신히 튕겨 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
찌지직― 찌익―
마세티의 손잡이가 철문에 마찰되며 쇠 갈리는 소리를 낸다. 민구의 갈비뼈는 금방이라도 박살이 나버릴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을 선사해 주었다.
민구는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놈들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만일 등 뒤의 쿠크리를 꺼낼 여유가 있었다면, 몇 놈쯤 목을 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으으윽! 나와! 빨리!”
민구는 핏대가 선 얼굴을 테라 쪽으로 돌리고 외쳤다. 물론 그녀라고 해서 일부러 늑장을 부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밀고 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꺄악!”
샌들 차림의 발을 밟히고, 거칠게 벽 쪽으로 내밀리면서도 테라는 최선을 다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정도라도 가능했던 것은 8할 이상이 젠킨스의 공이었다.
“으아앗! 이이익! 컴온! 컴온!”
젠킨스는 테라의 곁에 바짝 붙어서 거대한 배와 두툼한 엉덩이로 사람들을 막아냈다. 그러고는 팔을 들어 테라가 깔리지 않도록 보호했다.
“너희들도 막아!”
문의 옆으로 밀려난 병사 둘에게 민구가 소리를 질렀다. 조금 전, 잠실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바로 그 병사들이다.
병사들은 끔찍한 압박 속에서 어떻게든 옆으로 몸을 옮겨보려고 이를 악물었다. 바로 서너 걸음만 옮겨가면 되는데… 그게 너무나 힘들다.
탕― 탕탕― 탕― 탕! 탕탕! 탕탕―!
앞쪽에서 울려오는 총성!
좀비에 물린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을 견디다 못한 승무원이 의자 위로 발돋움을 한 뒤, 그쪽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민간인인지 좀비인지 가릴 틈도 없었다. 그저 피를 뒤집어쓴 놈들은 무조건 쏴버렸다.
“꺄아아아!”
총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움찔하며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 눈 깜빡할 사이에 주어진 소중한 기회를 민구와 두 병사는 놓치지 않았다.
“이야아아!”
기합 소리와 함께 사람들을 밀친 세 사람은 자신들의 등 뒤로 아주 약간의 공간을 만들어냈고, 테라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얼른 허리를 숙여 마세티 가방 아래로 뒷문을 통과했다. 그러고는 방향을 틀어 통로의 오른쪽으로 돌았다.
“나가!”
테라가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민구는 군인들에게 악을 썼다. 이런 상황에서 총을 가진 놈이 없으면 죽은 목숨과 다를 바가 없다.
병사들은 테라가 그랬듯이 자세를 낮추고 마세티 가방 아래로 재빠르게 기어나갔다.
“윽!”
그러는 동안에도 민구는 계속 사람들에게 밀렸다. 빗장이 받는 압력은 그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비지땀으로 범벅이 된 민구는 미닫이문을 완전히 확 당겨서 열고, 그와 동시에 마세티 가방의 방향을 돌렸다.
콰악―
등 뒤에서 버텨주던 기둥이 사라지자 민구는 낙엽처럼 가볍게 뒤쪽으로 떠밀려 나왔다. 길이 5미터가량의 후방 데크가 있었지만, 그 정도에서 멈추기에는 그를 밀치며 한꺼번에 뛰어나오는 사람들의 힘이 너무 셌다.
“어흑!”
후방의 난간에 허리가 걸린 민구는 재빨리 난간을 움켜쥐며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옆으로 돌렸다. 데크 위를 구르고, 뛰어나온 사람들의 발에 차이는 동안에도 그는 마세티 가방을 놓치지 않았다.
풍덩―! 풍덩―!
떠밀려 달려 나오던 사람들 중 일부는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난간에 튕겨진 뒤, 강물 속으로 빠져 버렸다. 여기저기서 물기둥이 치솟아 오른다. 그밖에도 깔리고 넘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오우! 노우! 노우!”
젠킨스도 그렇게 밀려져 나온 사람들 중 하나였다. 넘어진 사람에게 발이 걸린 젠킨스의 몸이 튀어 올랐다. 그러고는 난간 위로 떨어졌다.
“윽!”
난간에 강타당한 젠킨스는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그 뒤에 찾아왔다. 커다란 키 때문에 난간은 그의 허벅지에 걸렸고, 무거운 상체는 유람선 너머 강물 쪽으로 확 기운다.
“으아아아!”
젠킨스는 두 팔을 허공에 휘두르며 어떻게든 중심을 잡아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몸무게에 비해 턱없이 작은 크기의 복근은 그의 몸을 다시 뒤로 당기지 못했고, 뒤꿈치마저 약간 들렸다.
손을 내려서 난간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거대한 배에 가려져 난간이 보이지도 않는다.
턱, 턱.
젠킨스의 통통한 손가락이 두 번 난간을 헛짚었다. 그사이 그의 몸은 앞으로 더 기울었다.
‘이렇게 끝난다고?’
검은 강물과 하얀 수포가 시야를 가득 채웠을 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세상에… 천하의 MJ가 이런 작은 나라의 강물에 수장되어 버린다니…….
“으아아아아!”
바로 옆에서도 한 남자가 비명 소리를 허공에 남겨둔 채 강물 속에 빠져 버렸다.
풍덩―!
치솟아 오른 물기둥이 젠킨스의 얼굴을 적신다.
턱―!
마지막이다 싶은 순간, 뒤쪽에서 저항이 느껴졌다. 누군가 그의 허리띠를 움켜쥐고 있다. 아주 조금 상체가 들린 젠킨스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보려 애를 썼다.
“으으으으! 이놈! 진짜 무겁네!”
젠킨스의 허리띠를 움켜쥔 민구는 몸을 뒤로 눕혀 버티며 미간을 찌푸렸다. 100킬로그램이 넘는 기동이를 간단히 들어 메치던 예전 그의 몸이 아니다.
“에잇!”
앙증맞은 소리와 함께 달려든 테라도 힘을 보태 당겼다.
“으라아아!”
민구는 아이라도 낳는 것처럼 커다란 기합 소리를 내지르며 젠킨스의 몸을 옆으로 돌렸다.
쿠웅!
데크 위에 나자빠진 젠킨스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민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땡큐! 땡큐! 하아~ 하아!”
“일어나! 도망가야 돼!”
다시 벌떡 몸을 일으킨 민구는 젠킨스의 목덜미를 잡아채서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젠킨스도 허둥대며 네 발로 기어 그의 뒤를 따랐다.
“이 위로 어떻게 올라가?”
테라를 끌고 군인들에게 다가간 민구는 유람선의 지붕을 가리키며 물었다. 뒷문으로 나가면 당연히 사다리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게 없다.
두 명의 병사가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앞뒤에서 달려 나오는 피투성이 민간인들에게 홀려 넋이 반쯤 나간 모양이다.
“정신 차려! 저 위로 어떻게 올라 가냐고! 사다리! 사다리 어디 있어?”
민구는 병사의 어깨를 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병사들은 그제야 정신을 되찾고 앞쪽을 가리켰다.
“맨 앞에… 조타실 유리창 옆에 붙어 있습니다.”
젠장, 민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렇다면 배의 외부 통로를 따라 반 바퀴를 빙 돌아가야만 한다.
“올라가 봐! 누가 좀 받쳐 줘!”
지붕 위로 달아나려던 사람들이 높은 벽을 기어오르지 못하고 미끄러져 떨어진다.
시야 확보를 위해 만들어진 유람선이어서 매끈한 아치형의 유리 지붕이 높게 설치되어 있다. 누가 위에서 잡아준다면 모를까, 보통의 체력으로는 저기를 올라간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타타타타― 타타타타―
으아아악!
객실 내부에서는 총소리와 비명이 계속 울려 댄다. 깨진 창문의 파편마다 피가 덮여 있고, 어느새 손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불어난 괴물들이 사람들을 덮치고 살을 물어뜯는 중이다. 승무원들은 사람들이 밀리고 치이면서도, 가까스로 버티며 방아쇠를 당겼다.
핑― 핑― 쨍그랑―
난사된 총알 중 일부는 유리창을 박살 내며 객실 밖 여기저기로 날아간다. 민구는 얼른 테라의 머리를 누르며 허리를 굽혔다. 젠킨스도 뒤통수를 감싸며 자세를 낮췄다. 오발에 맞고 쓰러져 신음하는 민간인들이 점점 늘어난다.
풍덩―! 풍덩―!
여기저기서 물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밤의 검은 강물에 뛰어든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계산해 볼 만한 여유 따위도 없었다.
그저 뒤를 쫓아오는 좀비들로부터 벗어나 보고 싶은 욕망이 그들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손에 닿는 대로 아무 물건이나 하나씩 붙잡은 채 난간을 밟고 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앞에는 좀비와 섞인 피투성이의 인파, 뒤에는 강물, 그리고 간간이 날아오는 오발탄. 뒤쪽 데크로 달아난 사람들은 아주 끔찍한 형태의 지옥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도무지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투투투― 투투투― 투투둑―
객실 안에서는 총성이 끊임없이 울린다. 오발 사고가 난다는 걸 알면서도 승무원들은 쏠 수밖에 없었다. 얼굴에 피 묻은 사람들이 달려오면 좀비인지 판정을 내리기 전에 곧바로 방아쇠를 당긴다.
이제 민간인과 좀비를 가려가며 조준 사격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이다. 총에 맞았을 때, 비명이 터져 나오면 사람이다.
그들은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죽여 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사정없이 3점사를 날렸다. 그렇게라도 버텨내지 못하면 조타실이 점령당하고, 조타실이 점령당하면 이 배는 끝이다.
“으아악!”
좀비에게 목덜미를 물린 승무원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그 위로 또 다른 좀비들이 덮쳐들었다. 가능한 한 많은 민간인을 태우기 위해 네 명만 배치되었던 승무원들이 하나씩 줄어든다.
“야이, 개새끼들아! 우리는 너희를 살리려고 목숨을 걸었는데! 으아아!”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승무원이 피를 토하듯 절규했다. 그저 군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이름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이 밤늦은 시간까지 이송 작업을 계속했는데…….
그런데 물렸다는 사실을 끝까지 숨긴 몇 놈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분하고 원통하다.
눈앞을 어지럽히며 뛰어다니는 사람들, 그 사이에 간간이 섞인 좀비들. 승무원은 그 모두를 원망하며 다 죽여 버리겠다는 심정으로 탄창을 갈아 끼웠다.
그롸아아아―
사각에서 몸을 날린 좀비가 그를 덮쳤다. 마지막 승무원의 얼굴은 공포와 분노로 일그러졌다.
와득―!
피부와 근육을 뚫고 이빨이 박혀 들어오는 소리가 울린다. 이제 고통까지 더해지면서 그의 표정은 더욱 더 처참해졌다.
콰득―! 우득!
서너 마리의 좀비가 동시에 그를 깔아뭉개며 살을 뜯어먹는다.
쿠웅― 쿠웅―!
다른 좀비들은 조타실로 이어진 얇은 문을 향해 힘차게 박치기를 해 대고 있다. 그들의 머리가 부딪쳐 올 때마다 허술한 잠금장치가 삐걱거리며 안으로 휜다.
“떨어지지 마.”
민구는 테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후면 데크에서 출발해 좁은 외부 통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가 가장 앞에 서고, 테라와 젠킨스, 그리고 한 무더기의 민간인들과 군인 둘이 뒤를 따랐다.
외부 통로의 너비는 겨우 1미터 남짓. 좁고 아슬아슬하다. 그는 최대한 서둘렀지만, 마주쳐 달려오는 수많은 인간들 때문에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단순히 사람들을 피하는 거라면 별게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괴물들도 일일이 상대해야 한다.
투투투― 투투둑―
뒤쪽을 맡으며 따라오는 군인들의 총구가 이따금씩 불을 뿜는다.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는 화력이 또 한 팀 있었다. 지붕 위에 배치된 K―3 사수와 부사수는 멀리서 달려오는 좀비들의 머리를 날렸다.
아래 두 명, 위에 두 명, 도합 네 명의 군인에게 배후를 맡긴 민구는 길을 트는 것에만 최대한 집중했다.
캄캄한 밤의 강물 위, 흐릿한 조명 속에서 민구가 괴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커다란 마세티를 왼손으로 꽉 잡은 채 그 날을 앞세워 걷는다.
달려오다가 번뜩이는 칼날을 보고 움찔하는 놈은 인간이고, 막무가내로 계속 뛰어오는 놈은 괴물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콰창!
유리창을 깨고 뻗어오는 머리! 이건 백 퍼센트 괴물이다. 민구는 몸을 옆으로 틀며 오른손의 쿠크리를 아래로 휘둘렀다.
서걱!
괴물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뒷목에 박히는 쿠크리의 칼날! 민구는 손잡이의 방향을 바꿔 잡고 당기며 그것을 지렛대 삼아 몸을 앞으로 내보냈다. 그사이에 맞은편에서는 또 너덧이 달려오고 있다.
“헉!”
맨 앞의 놈이 칼날을 발견하고 옆으로 몸을 튼다. 민구는 어깨로 녀석을 밀어 뒤로 보내고, 그 뒤의 놈에게도 마세티를 내밀었다.
찌익―
칼날 끝에 얼굴이 잘려 나가는 동안에도 놈은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민구는 손목을 비틀어 후리며 놈의 목을 내리찍었다.
칵―
목이 칼날이 박힌 괴물의 몸이 옆으로 기우뚱하며 난간에 걸린다. 민구는 전력을 다해 마세티를 밀었다.
풍덩―!
괴물을 물속에 밀어 처넣은 순간에도 또 사람이 하나 뛰어왔고, 그 뒤를 괴물 둘이 쫓아온다. 민구는 벌렸던 왼팔을 당겨 들이며 괴물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빠직―!
얇은 뼈들이 박살 난다. 충격을 받은 괴물은 유리창에 머리를 들이받으며 멈춰 섰다.
찌지직― 찌이익―
괴물은 유리 파편이 박혀 있는 목을 억지로 빼보려고 버둥거린다. 놈이 그렇게 스스로의 목을 잘라내고 있는 동안, 민구는 그 뒤의 놈 아가리에 쿠크리를 박아 넣었다.
와작―!
비록 제대로 힘이 실리지 못했지만, 그가 공들여 관리해 왔던 쿠크리의 칼날은 아주 예리하게 괴물의 턱과 턱 사이를 가르고 들어갔다.
놈의 입술과 턱 주변이 잘려 나가는 동안에 민구는 마세티를 휘둘러 녀석의 어깨와 목을 차례로 내리찍었다.
칵― 칵―!
마세티의 묵직한 날이 뒷목 전체를 베어내자 괴물의 움직임이 멈췄다. 민구는 그제야 유리창 사이에 박혀 있는 괴물의 목을 힘차게 내려쳤다.
썽둥―!
잘려 나간 목이 객실 안으로 구르고, 시체의 나머지 부분은 힘없이 미끄러진다. 민구는 놈의 다리 사이를 타 넘어 앞으로 뛰어나갔다.
테라가 따라오는 기척이 등 뒤에서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를 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으으아아!”
뒤따라오던 민간인 중 하나가 창문 사이로 뻗어 나온 팔에 붙잡혀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후방의 병사들이 재빨리 총구를 돌렸지만, 이미 물린 뒤였다.
“이리 와! 올라가!”
마침내 배의 앞쪽까지 길을 뚫어낸 민구가 테라를 잡아 사다리 쪽으로 끌었다. 테라가 사다리에 한 발을 막 올렸을 때, 반대편 통로에서도 괴물들이 달려왔다. 놈들은 테라와 사람들이 함께 몰려 있는 사다리를 향해 손을 뻗는다.
“안 되지!”
민구의 마세티가 바람을 가른다. 괴물의 팔이 날아가 조타실 유리에 부딪쳤다. 민구는 다시 한 번 마세티를 휘둘렀다.
허리가 반쯤 끊긴 괴물이 뒤로 밀려나다가 나자빠진다. 민구는 얼른 쫓아가서 무방비로 열려 있는 목을 향해 마세티를 내리찍었다.
콰득!
잘려 나온 괴물의 머리가 경사진 바닥을 구르다가 강물 속에 빠진다. 그리고 또 한 마리가 덤벼들었다.
민구는 쿠크리로 놈의 왼쪽 목을 사선으로 긋고, 마세티로 반대편 목을 잘랐다.
“올라오세요!”
위쪽에서 들려오는 테라의 목소리. 그녀는 자신이 무사히 지붕에 닿았음을 알렸다. 또 다른 괴물의 손아귀를 피한 뒤 뒤통수를 박살낸 민구는 조타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코끼리처럼 커다란 몸집으로 사다리를 기어 올라가는 젠킨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바로 아래 측면에 조타실이 있다.
괴물들에 의해 점령되어 버린 피투성이 조타실. 잠금장치가 뜯겨 나간 조타실의 문이 허망하게 앞뒤로 흔들린다.
“이런 젠장!”
민구는 욕설을 내뱉었다. 이 배는 지금 아무도 몰고 있지 않다. 앞쪽에서는 성수대교의 둥근 교각이 만들어낸 검은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