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무쌍난무 (3)
민구는 의자에 피를 닦으며 일어났다. 앞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40여 명의 사람들. 저 중에 누군가는 이렇게 피를 쏟아낼 만큼 심한 부상을 입었다. 그건 바로… 단순 상처가 아니라, 좀비에게 물린 놈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누구일까…….
민구는 희미한 조명 아래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민간인들의 등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피를 뒤집어쓴 놈들은 많다. 함께 달리던 옆 사람이 괴물에게 물려 경동맥이라도 뜯기면 피가 사방으로 튀니까.
당장 민구 자신만 하더라도 트레이닝복 여기저기에 피범벅을 해놓은 상태다. 시체에서 하이바를 벗겨내 썼기 때문에 머리카락도 피로 젖어 있다. 그러니 단순하게 피 묻은 놈을 골라낸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좁고 움직이기도 불편한 곳에 물린 놈과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수십 명이 아수라장으로 얽혀 달려들기 시작하면, 다치기 전의 실력이라고 해도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다.
민구는 젠킨스를 돌아보았다.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황에서도 녀석은 테라에게 뭐라고 계속 귀엣말을 건네고 있다. 살아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어지간히 고무된 것처럼 보인다.
저놈이 전문가라고 했었지…….
민구는 젠킨스의 퉁퉁한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그 많은 시체들을 지나면서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았던 점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민구는 전문가라는 놈의 말을 믿는 척해보기로 했다.
“물린 사람이 괴물로 변할 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저놈에게 물어봐.”
민구는 테라에게 몸을 숙이며 작게 말했다. 그가 경험한 바로는 적어도 20분 이상이 걸렸던 것 같지만, 좀 더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젠킨스와 대화를 나눈 테라가 민구에게 대답을 해준다.
“젠킨스 씨가 알고 있던 때보다 지금이 훨씬 빨라졌기 때문에 얼마라고 단정할 수가 없대요. 그리고 이렇게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서는 숙주를 구하기가 쉬워서 변하기까지의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질 거라고. 그런데 그건 왜…….”
그렇다면 얼마나 금방 변할는지 모른다는 건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군. 그런데 이 군인들은 왜 이렇게 대처가 허술하지? 별로 두려운 기색도 없고…….
고민하던 민구는 그제야 깨달았다. 계속 한강을 왕복했던 이 군인들 역시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운영되는 이동은 처음인 것이다. 게다가 미친 듯이 다급한 상황. 당연히 허술한 점 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민구는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뒤쪽의 문과 가까운 곳으로 테라와 젠킨스의 자리를 옮기게 했다.
“저놈들 보고 있다가 시끄러워진다 싶으면 곧바로 이 문 밖으로 나가. 머뭇거리면 안 돼.”
테라에게 당부를 한 뒤, 민구는 중앙의 통로를 따라 앞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조금 전까지 그와 함께 싸웠던 병사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동료들의 죽음이 이제야 실감되는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창밖만 노려보고 있다.
“이봐.”
민구는 병사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병사는 민구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아, 예. 좀 전에는 고생 많으셨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의자에서 묻었어. 물린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민구는 손바닥에 아직도 찐득하게 묻어 있는 핏자국을 보여주며 말을 꺼냈다. 병사의 눈에 두려움이 어린다.
“다른 군인들에게 이야기해서 누가 물렸는지 확인을 해야 돼. 지금 이 안에서 괴물로 변해 버리면 난리가 날 거야.”
“아… 네, 네! 말해보겠습니다.”
병사는 벌떡 일어나서 앞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유람선 승무원들과 모여 서서 귓속말로 회의를 시작했다. 승무원 군인들이 이따금씩 고개를 돌려 민구와 다른 생존자들을 힐끔거린다.
그리고 잠시 후, 짧은 회의가 끝이 났다. 그사이에도 민구는 등 뒤의 쿠크리 나이프 손잡이를 꼭 쥔 채 앞쪽에 몰려 있는 민간인 무리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직접 한 사람, 한 사람 확인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군인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런 걸 허락해 줄 리가 없다.
“여기 주목합니다! 주목!”
민구와 이야기를 나눴던 병사가 뒤쪽으로 돌아와 버티고 선 뒤, 승무원이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는데, 물린 사람이 섞여 있으면 큰일 납니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시고 피 흘린 사람이 있으면 알려주십쇼! 그것과 별도로 지금부터 저희도 검색을 진행하겠습니다! 다들 일어섭니다!”
검색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술렁인다. 혹시 오해를 사서 억울하게 배제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다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들 지시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고, 40여 명에 대한 검색이 시작되었다. 민구의 옆에 선 병사는 혹시 뒤쪽으로 빠져나오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길목을 지키고 있다.
“이 피 뭡니까? 상처 보여주셔야 합니다!”
승무원 둘이 한 조를 이뤄서 플래시를 비춰가며 민간인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훑었다. 그러다가 옷에 피가 묻어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옷을 걷어 상처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살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조금씩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바지를 벗으란 말이야? 허벅지라고! 넘어져서 긁혔다니까!”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으라고요? 왜 이래요! 다친 게 아니라 그냥 피가 묻은 거라고요!”
민감한 곳에 피가 묻은 사람들이 얼굴을 붉혀가며 맞선다. 민간인들도 두 편으로 갈라졌다. 빨리 보여주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과 화장실로 가서 같은 성별끼리 확인시키자는 사람들이 맞서며 소란은 더 커진다.
그래도 군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수색을 계속했다. 민망하고 부끄러울지 모르지만, 목숨이 걸린 일이다.
“벗어요! 안 그러면 강제로 배에서 내리게 할 겁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수색이 진행되었을 때, 갑자기 한 남자가 과장되게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옅은 색의 청바지가 온통 피로 물들어 있는 남자였다.
“야! 이 개새끼들아! 이까짓 배 안 타고 말아! 안 탄다고! 내가 걸어가면 되는 거지?”
청바지는 사람들을 밀치고 뒤쪽으로 빠져나오려 했다. 민구의 옆에 선 병사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총의 손잡이를 꽉 쥔다.
만약 저 사람이 달려들어 난동을 피우면 어쩌지? 주먹을 휘두른다거나, 총을 탈취하려고 들면?
병사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 뒤쪽에 아군과 민간인이 저렇게 몰려 있는 상황이라서 함부로 총구를 겨눌 수도 없다.
“거기 섭니다! 도망가지 않습니다!”
수색을 하던 승무원이 청바지를 향해 경고를 하며 그의 뒤를 따른다. 청바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통로를 따라 걸어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됐어, 이 개새끼들아! 너희들 말 안 들어! 내가 씨발, 군대에서 얼마나 뺑이를 치고, 세금을 얼마를 냈는데! 이 씨발 새끼들! 새파랗게 어린 후배 새끼들이! 어유, 더럽다, 더러워! 하여간 다 썩었어!”
민구는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청바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실 객실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배에서 내리거나 할 수는 없다. 이미 유람선은 선착장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까지 물러나서 기다리는 중이기 때문에 사방은 오직 강물뿐이다.
청바지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텐데 저렇게 허세를 부리는 건 한 가지 이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놈은 물렸다.
“미친 새끼들이 어디에서 여자들 옷을 훌렁훌렁 벗기려고 그래? 더러워서 못 봐주겠네. 아무리 욕구불만이라… 큭!”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군인들에게 욕설을 날리던 청바지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푹 쓰러진다. 시선이 가려진 틈을 타서 민구가 배에 한 방을 먹인 것이다.
“잘했어!”
쫓아오던 승무원들은 민구 옆에 엉거주춤 서 있는 병사에게 칭찬을 했다. 아마 그가 제지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 진짜 왜 이렇게 힘들게 합니까? 한 번만 더 이러면 경고 없이 강제 하선 조처 할 겁니다!”
승무원들은 청바지를 타박하고 나서 그의 겨드랑이를 붙잡았다. 다른 병사가 피투성이가 된 그의 바지를 강제로 벗겨냈다. 민구의 펀치를 맞아 숨을 헐떡거리던 청바지는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으!”
단추를 풀고 바지를 끌어내리던 병사가 안타까운 신음을 내뱉으며 사내에게서 떨어져 나온다. 사내의 골반 바로 위쪽에 피투성이 상처가 있다.
거칠게 뜯겨 나간 살점, 독이 올라 붉게 부어오른 상처 주변, 그리고 이빨 자국… 물린 상처다.
“아, 아니야! 이건! 이건… 나무에 넘어져서 찔린 거야! 산책로에서 나무가… 뾰족하게 부러진 데가 있어서…….”
청바지는 바쁘게 손을 내저으며 상황을 부인하기 위해 애를 썼다. 병사들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정말 난감하고 싫은 순간이 왔다.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불편한 감정.
좀비에게 물린 사람을…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로 간주하고 격리해야 한다. 그리고 변하는 즉시 사살해야 한다.
문제는 이곳에 격리할 만한 시설이 없다는 점이다. 유람선 내에 철창 같은 건 가져다 놓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사살이다.
그런데 그게 꽤 어렵다. 그것에 비하면, 100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좀비들과 뒤엉킨 민간인들에게 방아쇠를 당기는 게 차라리 쉬운 일이다. 그때는 눈을 마주 보지 않아도 되니까.
병사들은 마음이 약해지지 않기 위해 이를 꽉 물었다.
“그,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는 안 변해요! 봐요! 아까 다쳤는데, 아직도 멀쩡하잖아!”
다급해진 청바지는 존댓말을 섞어 써가며 자신이 안전하다고 소리를 질러 댔다. 하지만 상처가 들킨 이상, 이 배에 그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없다.
“뭐해? 빨리 끌어내서 강물에 던져요! 좀비로 변하기를 기다려요?”
몰려서 있는 사람들은 병균을 대하듯 하며 빨리 청바지를 처단하라고 소리를 질러 댔다. 병사들도 결심을 하고 매정하게 명령했다.
“일어나십쇼! 일단 객실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청바지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하면 모든 게 끝나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가 버티자 보다 못한 병사들이 양쪽에서 겨드랑이를 잡았다.
“놔! 놓으라고! 물어버릴 거야! 너희도 옮고 싶냐? 나는 안 나가!”
청바지는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 그러고는 머리를 흔들며 입을 크게 벌리고 정말로 이를 딱딱, 맞부딪치는 시늉을 한다. 깜짝 놀란 병사들은 기겁을 하며 그를 의자 사이로 내팽개쳤다.
“진짜 이럴 겁니까? 쏩니다!”
병사들이 사격 자세를 취하며 소리를 질렀다. 청바지도 악에 받쳐서 악을 써 댄다.
“쏴! 죄 없는 사람 죽이고 네가 무사할 것 같아? 사람들이 다 보고 있어!”
“일어나라고! 나가!”
“으아아아아―!”
궁지에 궁지까지 몰린 청바지가 목이 찢어져라 울부짖었다. 그리고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켜 의자 너머로 뛰어 달아나려 했다.
투투둑―
객실 안을 울린 세 발의 총성!
소란스럽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벽 쪽으로 물러났고, 긴 메아리만이 남아 귓가를 흔든다. 방아쇠를 당긴 승무원 본인도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가볍게 떨고 있다.
청바지는 눈을 홉뜬 채 의자 등받이에 비스듬히 드러누워 있다. 심장을 관통당한 그의 몸에서는 붉은 피가 왈칵왈칵 솟아오른다. 총알이 뚫고 나간 측면의 유리창에도 온통 그의 피로 점철되었다.
“어쩔 수 없었어! 치워!”
앞에서 달려온 부사관이 명령했다. 병사들은 시체를 끌고 나가 강물에 던져 버렸다.
풍덩―!
물이 튀는 소리. 아주 미약한 죄책감이 한차례 휩쓸고 간 뒤, 이제야 골치 아픈 일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객실 전체에 번진다. 병사들도, 민간인들도… 다들 다행스러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닥을 잔뜩 적신 붉은 피만이 방금 전 이곳에서 누군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물린 사람 찾았으면 자기 위치로 복귀! 다음 100인대 접근하고 있다! 맞을 준비해!”
강변 쪽을 살피던 부사관이 명령했다. 산책로에서 플래시의 불빛이 어른거린다. 승무원들은 민간인들을 좌석에 앉히고, 지원사격을 위한 준비를 했다. 민구도 테라의 옆 자리로 돌아왔다.
“불쌍해요. 여기까지 와서…….”
테라는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가만뒀다간 여기 사람들 다 죽었을걸?”
“그건 알지만, 아직 변하지 않았는데…….”
그 말을 듣자, 민구도 테라가 왜 그렇게 그 물린 남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 역시 물렸던 사람. 비록 면역자라서 용케 살아남기는 했지만, 만약 그녀도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면 지금 저 청바지와 같은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너처럼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흔한 건 아니야. 내가 봤던 놈들도 다 변했어. 그건 그렇고…….”
민구는 테라 옆자리의 젠킨스를 보며 물었다.
“저놈은 아까부터 뭔 말이 그렇게 많아? 계속 뭐라고 지껄이고 있는 거야?”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시지만, 그냥 한마디로 정리하면, JL로 가자는 거예요. 우리처럼 약한 사람들은 이런 야만적인 환경에서 오래 못 버틴다고.”
테라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대답했다.
“JL? 거기 못 간다고 하지 않았나?”
민구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신호가 올 줄 알았는데 안 왔다고, 엊그제 아주 지랄발광을 해 대던 모습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지만, 하여간 놈의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게… 용산에 도착한 뒤에 선로를 따라 북쪽으로 500미터 정도만 걸어가면 신호를 보낼 수 있대요. 그러면 하루나 한나절 만에 JL의 헬리콥터가 마중을 나올 거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제깟 놈이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신호인지 뭔지, 그냥 글자 몇 개더구만.”
민구는 코웃음을 쳤다. 젠킨스는 그사이를 못 참고 또 테라에게 뭐라고 속닥거린다. 테라는 그에게 들은 이야기를 차분히 옮겼다.
“아저씨도 같이 모시고 갔으면 좋겠대요. 칼 솜씨에 반해서 부상당한 옆구리도 고쳐 드리겠다고, 꼭 전해 달래요.”
“혼자 많이 가라고 해.”
민구는 퉁명스럽게 대답해 준 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투투투― 탕탕탕―
산책로 쪽에서 간간이 총소리가 들려온다. 유람선은 선착장을 향해 접근하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착했는지는 아직 잘 보이지 않았다.
“저 검투사가 뭐라고 했나, 테라 양? 별로 긍정적인 반응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데?”
젠킨스가 테라에게 물어온다. 테라는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가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이제 그만 제안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해할 수가 없군. 저 사내의 실력이라면 프로 중의 프로야. 그것도 부상당한 상황에서 저만큼이란 말이지. 예전부터 어딘가에 속해서 자신의 칼 솜씨를 팔아왔을 거야. 그런데 왜 나에게 고용되는 건 싫다는 거지?”
“고용하고 싶다는 말은 제가 전하지도 않았어요.”
엉? 왜?
젠킨스가 물었다. 테라는 측은하다는 시선으로 그를 보며 대답했다.
“그랬다가는 또 젠킨스 씨가 맞을 게 분명하니까요. 전 그런 모습 보고 싶지 않거든요.”
뿌우우웅―
요란한 뱃고동 소리가 울려와서 두 사람의 대화는 끊겼다. 유람선은 속도를 조절해 가며 선착장으로 접근했다.
쿵― 쿠쿵―
유람선의 측면에 부착되어 있는 타이어가 선착장에 부딪칠 때마다 배가 가볍게 흔들린다. 난폭한 운전이었지만, 전문 함장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참아줄 만하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유람선 지붕에 배치된 K―3에서 지원사격이 시작되었다. 새 100인대의 뒤를 쫓아 달려오던 좀비들이 픽픽 나가떨어진다. 불이 밝혀진 선착장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민구가 속한 조가 달려왔을 때보다는 다행히 좀비들의 공격이 적었던 모양이다.
“빨리 승선하세요! 빨리!”
배가 멈춰 서자마자 승무원들은 이동용 발판을 내리고 승선을 독려했다. 물론 민간인들도 최대한 빠르게 유람선 위로 뛰어올랐다. 열려 있는 객실 문을 통해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온다. 그런데 100명을 훌쩍 넘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많아? 몇 명이나 되는 거야?”
승무원들이 물었다. 호위해서 달려온 병사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100인대 둘을 한꺼번에 묶어서 내보냈습니다!”
“그럼 200명이라고?”
승무원들이 깜짝 놀란다. 이 배의 정원을 훨씬 초과하게 된다. 하지만 다 죽어가게 생겼다는데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170명 이상이 승선을 마치는 데만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에도 지붕의 K―3는 쉬지 않고 총알을 퍼부으며 좀비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자리를 좀 더 좁혀 앉으세요! 조금씩만 양보하면 됩니다! 금방 도착하니까 불편하시더라도 참아요!”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유람선의 앞쪽에서는 병사들이 계속 질서유지를 위해 소리를 질렀다. 민구와 테라, 젠킨스도 사람들에게 밀려 더욱 뒤로 물러났다.
“으아, 씨발.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와, 철조망 무너지기 직전까지 거기에 잡혀 있느라…….”
민구의 곁에 선 병사가 자신의 동료를 향해 투덜댄다. 뒷문 너머의 유리창을 돌아보고 있던 민구가 그 말에 놀라 물었다.
“철조망이 무너졌다고? 그럼 거기에 있던 군인들은?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소?”
“에?”
난데없이 끼어든 민간인을 위아래로 훑던 병사는 귀찮아하며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아마 주경기장 안으로 대피했을걸요? 거기에서 장갑 트레일러 기다리든지 하겠죠.”
퉁― 투웅―
또다시 측면의 타이어가 몇 번 부딪치고 배가 흔들린다. 드디어 철교를 향해 출발하는 모양이다. 민구는 잠실 쉘터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시선을 떼지 못하며 밤톨이 무사히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빌었다.
☆ ☆ ☆
태양 그룹의 1층 주차장에는 세 대의 헬리콥터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각 기체의 옆에는 무장을 마친 쉐도우 실드 대원들이 늘어서서 대기 중이다.
“찾아야 할 사람이 둘이야! 하나는 테라! 이건 다들 잘 안다고 하니까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젠킨스라는 백인! 중년에 뚱뚱하고 몸집이 크다! 이 둘이 우리 타깃이다! 이 둘만 확보하면 다른 건 더 필요하지 않다! 확보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이쪽으로 귀환해! 알겠지?”
오 박사가 큰 소리로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혹시나 하고 기다렸던 세 헬리콥터의 베슬 속에는 두 사람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한다.
“타깃 확보에 방해가 되는 모든 문제는 즉각 제거해!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 둘만 확보하면 돼!”
“그런데 군인들이 개입되면 어떻게 합니까?”
“군인?”
쉐도우 실드의 질문을 받은 오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들에게 확실히 일러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군인의 수가 제압 가능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방아쇠를 당겨! 어차피 지금 군인 한두 사람 생사 같은 건 아무도 신경 안 써. 만약에… 군인들이 너무 많다 싶으면, 일단 현장을 떠난 뒤에 헬리콥터로 쫓는다. 명심해. 이 일에 우리 목숨이 달렸어. 자! 출발해!”
명령을 내린 오 박사는 1호기에 올라탔다. 세 대의 헬리콥터 중에 오로지 이 기체에만 대형 서치라이트가 달려 있다.
‘테라… 어디에 있든 반드시 데리고 와주지.’
오 박사는 독사 같은 눈을 번뜩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