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86화 (386/449)

2장 무쌍난무 (1)

밤톨을 보낸 뒤, 민구는 젠킨스의 거대한 몸 뒤에 숨어 가방에서 쿠크리 나이프 홀더를 꺼냈다. 그러고는 주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며 트레이닝복 안에 착용했다.

얇은 트레이닝복 등판이 툭 튀어나온다. 밝은 곳에서라면 대번에 티가 났을 테지만, 워낙 주변이 어두워 별로 시선을 끌지는 않았다.

“본색이 나오는군… 테라 양, 이 남자 괜찮은 걸까…….”

민구가 등 뒤로 칼을 차는 것을 보며 젠킨스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의 경호원들과 달리 이 남자는 통제가 안 된다. 그러나 젠킨스에게는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민구는 오른손을 뒤로 해서 쿠크리의 손잡이를 잡아봤다. 비록 옆구리 근육이 날아갔어도 그 정도는 문제없을 것 같다. 이런 좆같은 상황에서도 사막에서 단비를 만난 것처럼 웃음이 난다.

민구는 입을 비틀어 오랜만에 웃었다. 민구는 마세티의 손잡이가 왼손에 닿을 수 있도록 가방을 비스듬히 멨다. 칼을 뽑아야 한다면 왼손의 마세티가 주력이 될 것이다.

“준비하십쇼! 지금 나갈 겁니다! 옆 사람과 간격 맞추십쇼!”

병사들이 목청껏 외친다. 민간인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달릴 준비를 했다. 플래시를 하이바에 부착한 두 병사가 100인대 대열의 앞에 와서 선다. 그 플래시 두 개가 앞으로 800미터를 내달리는 동안에는 그들의 거의 유일한 조명이다.

끼리리리릭―

게이트가 열렸다. 선봉의 두 병사는 앞서 뛰어가기 시작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출발!”

병사들이 달리고, 그들로부터 2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서 있던 첫째 줄이 그 뒤를 따른다. 민구와 테라, 젠킨스도 그 줄에 속해 있다.

탁탁탁탁탁―

시끄러운 발소리. 모두들 필사적으로 뛰었다. 좀비들의 습격이 무서워서이기도 하지만, 뒤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깔릴까 봐서도 주춤거릴 수가 없다. 선두의 플래시 불빛이 방향을 바꿔 산책로로 진입했다.

“으! 으흐으!”

달리던 민간인들의 사이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산책로 주변에는 끔찍하게 훼손된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바로 지난 저녁부터 밤사이 몇 시간 동안에 만들어진 시체들이다.

달려들던 좀비였을 수도 있고, 놈들에게 물렸기 때문에 사살된 민간인들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끔찍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플래시 불빛이 비추는 좁은 범위밖에 볼 수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일 정도다.

“어흐! 으윽!”

암흑 속에서 짓뭉개져 있는 살덩어리나 피 웅덩이를 밟게 되면, 사람들은 견디기 어렵다는 식으로 진저리를 쳤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저 멀리 코너 지점에서 대기하고 있는 전차의 불빛이 훤하게 내비치고 있다. 저기까지만 가도 생존 확률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하아아! 하아아~! 헥! 헥!”

가장 먼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비 오듯 땀을 흘린 것은 물론 젠킨스였다. 턱까지 차오른 숨 때문에 그의 시야는 좁아졌고, 귀는 먹먹하다. 심장은 터질 것만 같다.

하지만 젠킨스는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열심히 번갈아 뻗으며 달렸다. 이 황량한 암흑 속에 버려진다는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얼어붙는 것 같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댐 잇!”

젠킨스는 결국 건빵 박스를 옆으로 내던져 버렸다. 바로 등 뒤에서 총소리가 울려 대는 동안에도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던 건빵 박스지만, 정말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 이르자 그저 짐일 뿐이란 걸 절감하게 됐다. 그래봐야 이미 한계에 도달한 폐가 기운을 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기, 기다려! 나를… 나를 버리면 안 돼… 테라 양…….”

산소가 부족해서 얼굴이 파랗게 질린 젠킨스가 애원하며 손을 들어 올린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제대로 터져 나오지 않았고, 그러는 동안에도 테라와의 거리는 조금 더 멀어진다.

젠장, 등 뒤로 부딪쳐 오는 사람들을 느끼면서 젠킨스의 머릿속은 후회로 가득 찼다. 그녀가 친절하게 물을 먹이고 걷는 연습을 시켰을 때, 조금 더 열심히 훈련을 했어야 한다. 조금 더… 성실하게 체중 관리를 했어야 하는데…….

자신의 옆에서 묵직한 인기척이 사라진 걸 느낀 테라가 뒤를 돌아보았다. 젠킨스는 그녀의 눈빛이 반가웠지만, 따라잡을 만한 기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잠시라도…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숨을 돌릴 수 있는 휴식이 필요하다.

“으아앗!”

줄의 밖으로 밀려나 버린 젠킨스가 포기하기 직전에, 선봉에서 달리던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플래시의 불빛이 우뚝 멈춰 선다.

좀비들이다. 열댓 마리가 넘는 좀비들이 좌측 탄천의 검은 물밑에서 하나씩 하나씩 산책로 위로 기어오르고 있다.

“전방에 좀비! 좀비!”

선봉의 두 병사가 큰 소리로 외친 뒤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둑― 투투둑― 투투투―

예광탄의 불빛이 날아가고, 총알에 꿰뚫린 좀비의 머리통이 터져 나간다. 플래시가 비추는 방향이 탄천 쪽으로 바뀌었다.

으아아아! 아흐흐!

뒤따르던 민간인들이 두려움 가득한 신음 소리를 냈다. 탄천은 길거리에서 밀려난 시체들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시체로 만들어진 작은 댐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댐의 사이사이에서 불쑥불쑥 팔이나 머리가 솟아 올라왔다.

“비켜요! 비켜!”

뒷줄에서 달리던 나머지 두 명의 병사도 서둘러 달려와 선봉의 둘과 합류했다.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전방을 가로막고 있던 좀비들이 거의 다 정리되었을 무렵, 이번에는 어둠에 묻힌 뒤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악! 아악!”

단순히 무서워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듣자마자 알 수 있을 정도로 끔찍한 비명이었다. 저 캄캄한 뒷줄 어딘가를 좀비가 덮친 것이다.

“으아아아!”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무작정 앞쪽으로 달려갔다. 병사들도 탄천에서 기어 올라오는 좀비들 사살을 중단하고 갈대밭 쪽으로 붙어 뛰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이나 유지해 왔던 오와 열은 순식간에 개판이 됐다. 사람들은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계속 비명을 내지르며 달렸다.

“테라 양!”

잠깐 숨을 돌린 덕에 다시 뛸 수 있게 된 젠킨스가 테라의 곁에 합류했다. 민구는 테라의 팔목을 꽉 잡고 당기며 외쳤다.

“군인들 뒤에 바짝 붙어! 떨어지면 안 돼!”

민구가 군인들에게 의지하는 이유는 병사들의 사격 실력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플래시 때문이다. 조명이 없이는 이 어두운 강둑을 헤쳐 나갈 수가 없다.

세 사람은 안간힘을 써가며 병사들과 보조를 맞춰 달렸다. 등 뒤에서 조여오는 공포를 이기지 못한 채 갈대밭 속으로 도망쳤던 사람들이 속속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진다.

열심히 내달리는 사람들 모두가 절감하고 있었다. 이 이동로는 벌써 한참 전에 한계를 맞았고, 이제는 거의 지옥처럼 변해 있다는 것을……. 어둠 속에 숨겨져 있는 좀비들이 너무 많다.

“줄을 지켜요! 이탈하면 안 됩니다!”

선봉의 병사들이 애타게 외쳤다. 하지만 사실 가장 먼저 대열을 이탈한 것은 병사들 자신이었다. 만약 전방에 좀비들이 나타났을 때, 후방의 병사들이 자리를 비우지만 않았더라면 이 정도로 극심한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빨리 가요! 멈추지 말라며! 저 사람들은 포기해요!”

뒷줄에서 따라오던 사람들이 애타게 외쳤다. 병사들도 이내 상황을 직시하고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이미 모든 사람들을 다 안전하게 인솔하기는 텄다.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최대한 살려야 한다. 아니, 그보다 일단 자신들의 목숨도 지금 아슬아슬하다.

그롸아아아아―

갑자기 좌측에서 울려오는 커다란 울음소리!

그리고 시커먼 그림자가 시야를 가린다고 느낀 순간, 왼쪽 가장 앞에서 달리던 병사가 확 고꾸라졌다. 몸을 날린 좀비가 그를 덮친 것이다.

투투둑― 투투투― 투투둑―

다른 세 병사가 돌아서서 좀비를 향해 3점사를 날렸다. 병사를 깔고 앉아 살을 물어뜯으려던 좀비가 벌집처럼 꿰뚫린다. 그중 일부는 좀비의 몸을 관통해서 그 아래에 깔린 병사의 몸에 박혔다.

“크아악!”

짧은 단말마! 가슴과 복부에서 피가 솟아오른 병사는 눈을 홉뜬 채 숨을 거뒀다. 잠시 그 참혹한 모습을 바라보던 병사들은 죄책감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숨진 병사가 좀비에게 물렸었는지 확실하지가 않다. 하지만 고민해봐야 이미 늦은 일, 그들은 이를 악물고 뒤돌아 달렸다.

네 명의 호위 병사 중 세 명이 남았고, 100인의 민간인 중 삼분의 이가량이 그들을 따라 뛰고 있다.

“초… 총이다! 총을 잡아!”

숨진 병사의 곁에 떨어져 있는 K―2와 그의 하이바에 부착된 채 허공을 비추고 있는 플래시가 민간인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두어 명의 간 큰 중년 사내들이 뛰어갔다.

그중 한 명이 총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병사의 시체에서 탄창을 회수하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그때,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물속에서 기어 나온 세 마리의 좀비. 놈들은 땅에 발을 딛자마자 귀신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총을 집은 사내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 투투둑―

발사된 총알은 정면에서 달려오던 좀비의 가슴과 얼굴을 엉망으로 박살 내버렸다. 하지만 그사이에 나머지 두 마리가 사내를 향해 몸을 날렸다.

“끄아아악! 아악!”

두 마리 좀비에게 목덜미와 어깨를 물어뜯긴 사내가 목이 터져라 울부짖는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사내의 손가락은 방아쇠를 있는 힘껏 당겼고, 총구는 제멋대로 흔들리며 사방으로 총알을 날렸다.

“아윽! 억!”

여기저기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고, 총알에 맞은 사람들이 나동그라졌다.

그롸아악― 그롸악―

산책로 우측의 덤불 속에서, 또 좌측의 탄천에서, 혹은 후방의 산책로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울릴 때마다 도망치는 민간인들의 수가 하나씩, 둘씩 줄어든다.

물론 모두들 필사적으로 앞만 보며 내달리고 있기 때문에 목덜미를 물리는 당사자나 그 바로 옆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희생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투투투― 투투투― 투투둑―

앞서 뛰어가며 길을 트는 세 명의 병사는 희끗한 그림자만 보여도 곧바로 방아쇠부터 당겼다. 그것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이거나, 혹은 샛길로 앞질러 달려와 합류하려던 민간인이라도 상관없었다.

이제 그들의 정신은 완전히 공포에 잠식되어 있었고, 오로지 생존만이 유일한 목표로 남았다. 바짝 뒤따라오는 민간인들이 20여 명에 불과한데도 속도를 늦출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그들은 다급했다.

“잠깐! 멈춰! 오른쪽! 오른쪽!”

코너에 이르기 직전, 민구가 군인들을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군인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내달렸다.

총성에 묻혀 그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쫓아가서 붙잡아주고 싶었지만, 지금 그의 몸 상태로는 그만한 속도가 나오지 않는다.

젠장! 민구는 테라의 팔을 붙잡았다. 테라가 깜짝 놀라 물었다.

“왜요? 하아! 하아! 군인들을 쫓아가야…….”

“아니, 안 돼…….”

민구는 그녀를 자신의 등 뒤에 숨기고 양손을 칼의 손잡이에 댔다. 무성한 덤불 속에서 바람이 만든 것이 아닌, 격한 흔들림을 보았다. 꽤나 많다. 그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군인들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헤에~ 헤에~ 컥! 컥!”

덩달아 멈춰 선 젠킨스는 민구에게 기대서 구역질까지 해 대며 숨을 몰아쉰다. 민구는 녀석을 뿌리치고 깜깜한 풀숲을 노려보았다.

크롸아아악― 카아악―

덤불을 흔들던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푸른 달빛을 덮어쓴 갈대들이 흔들리고, 야생동물처럼 뛰어오른 좀비들이 병사들을 덮쳤다.

“으아아아!”

병사들은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플래시 불빛 사이로 아가리를 쫙 벌린 좀비들이 휙휙 떨어지고, 또 뛰어오른다.

“끄윽! 아으윽!”

손을 물린 병사가 비명을 질렀다. 좀비의 입안으로 잘려 들어간 손가락! 잘린 부위에서는 핏줄기가 솟아올랐다.

급하게 총구를 돌리려 할 때, 또 다른 좀비들이 그의 어깨를, 또 무릎을, 가슴과 목덜미를 덮쳤다. 극도로 감각이 예민해진 신체 이곳저곳에서 좀비의 이빨이 살을 잘라내는 통증이 전해졌다.

“큭! 으아아아!”

좀비들에게 깔린 병사의 입에서 인간의 것처럼 들리지 않는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좀비들은 그의 살점을 자르고 뜯어냈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두― 투투투―

아직 숨이 붙은 두 병사는 황급하게 3점사를 날리고 왔던 길을 뒤돌아 달렸다. 하지만 그중 하나는 좀비를 뿌리치지 못했다. 간발의 차이로 뒤처져 있던 병사의 어깨에 갈퀴 같은 좀비의 손이 걸렸다.

“헉!”

뒤로 당겨지는 강력한 힘을 느낀 순간, 병사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거짓말처럼 왈칵 뜨거운 눈물이 솟는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콱!

하이바를 때리는 둔탁한 충격! 병사는 이내 그것이 어떤 상황인지를 깨달았다. 그를 끌어당긴 좀비가 하이바에 이빨을 박아 넣으려고 했던 것이다.

“으아아아!”

천우신조로 살아남은 병사는 좀비의 팔을 뿌리치고 몸을 홱 돌려 녀석을 향해 총알을 날렸다.

투투투―

근거리에서 3점사를 가슴에 맞은 좀비가 뒤로 날아간다. 녀석의 갈비뼈 조각과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투투둑― 투투투― 투투두―

병사는 그 바로 뒤에서 달려오는 좀비들을 향해 탄창이 빌 때까지 총알을 날려 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에게는 탄창을 갈아 끼울 수 있을 만한 시간 여유가 없었다.

“죽어라! 죽어!”

총알이 바닥난 병사는 K―2의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마지막까지 저항을 해봤다.

빠각―

한 놈의 턱을 부수는 데까지는 성공을 했지만, 그사이 다른 놈들이 그의 얼굴과 팔다리를 물어뜯고 늘어진다.

까드득!

자신의 얼굴에서 살점이 뜯겨 나가는 소리!

그리고 또 와드득! 우드득!

여기저기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발버둥을 쳐 대던 병사의 몸에서 마침내 힘이 쭉 빠져나간다. 그 후로는 이렇다 할 저항도 없었다. 좀비들이 쩝쩝거리며 살을 뜯어먹고 있는 동안, 병사의 사지가 이따금씩 경련할 뿐이다.

“으아아아!”

마지막 살아남은 병사는 탄창을 갈아 끼우며 울부짖었다. 네 명의 호위 병력이 차례차례 목숨을 잃고, 이제 그 혼자만 남았다. 탄창도 어느새 마지막. 반면에 좀비들은 아직 열 마리도 더 남았다.

콰드득, 콰드득!

놈들이 동료 병사의 시체를 뜯어 먹는 소리가 고막을 파고든다. 저 식사가 끝이 나면… 이제 놈들은 자신을 향해 달려들 것이다. 실탄에 여유가 없는 걸 알기에 병사는 신중하게 조준하며 숨을 골랐다.

그롸아아아―

측면에서 들려오는 포효에 병사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무성하게 자라나 있는 풀숲 사이에서 덮쳐 오는 좀비!

총구를 돌린다 해도 이미 늦었다. 전방에만 온 신경을 다 집중하고 있던 게 패착이다.

칵―

병사가 마지막을 각오하고 눈을 질끈 감으려던 순간, 둔탁한 절단음이 들리고 그를 향해 달려들던 좀비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확 꺾였다. 끝부분만 간신히 붙어 덜렁거리는 대갈통에 민구의 발길질이 날아가 꽂혔다.

우득!

뜯겨진 머리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한강의 수면에 물보라를 일으켰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목이 잘린 채 고꾸라진 좀비의 시체.

병사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초승달처럼 휜 커다란 칼을 들고 서 있었다. 칼의 긴 날이 플래시 불빛을 받아 번쩍인다. 그가 좀비의 목을 자르고 걷어찬 것이다.

“아! 고, 고맙습니다!”

사내가 그렇게 큰 칼을 어디에서 구했는지 같은 건 궁금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한 가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총알 남았나?”

민구는 병사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그것부터 확인했다. 병사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쪽으로 쏘지 마. 그리고 모자 좀 빌리자.”

민구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손을 뻗어 병사의 하이바를 벗겼다. 그러고는 그걸 자신의 머리에 뒤집어쓴 뒤 끈을 조였다.

“이제 뭐가 좀 보이는군.”

하이바에 부착된 플래시가 고개를 돌리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걸 확인한 민구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세 번째 병사를 뜯어먹고 있던 좀비들의 식사가 끝이 났다.

그르르르르―

병사의 시체에서 피 묻은 주둥이를 뗀 좀비들이 그릉거리며 새로운 희생자를 찾는다. 고개를 쳐드는 놈들의 모습이 플래시의 불빛을 받아 환히 눈에 들어온다.

한 마리, 두 마리… 점점 더 많은 좀비들이 일어나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스릉―

민구는 왼손으로 마세티를 뽑았다. 간만에 손아귀에 전달되는 묵직함. 싸구려 등산용 나이프를 손에 들고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신감이 끓어오른 민구는 또 한 번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롸아아아아―

달려드는 좀비들. 모두 합쳐 열 마리나 되는 놈들이 좁은 산책로를 가득 메우고 빠르게 거리를 좁혀온다. 민구는 양손의 쿠크리와 마세티를 가볍게 한 바퀴 돌리며 놈들을 반겼다.

“크, 이 새끼들…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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