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째깍째깍! (4)
“후우우~!”
오 박사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막 마취에서 깨어나 병실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 있는 메이저의 꼴을 보고 있자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
안와 골절에 광대뼈 골절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까딱했으면 안구가 함몰될 뻔했다. 찢긴 눈두덩의 상처는 열두 바늘을 꿰맬 만큼 크고 깊었다.
부러진 이에 찔려 엉망으로 찢어진 메이저의 입술은 보랏빛으로 퉁퉁 부어올라 있다. 고막도 나갔고, 턱뼈에도 금이 쭉쭉 가 있다. 부러진 코뼈를 원래대로 돌려놓기는 했지만, 짓뭉개진 모양새는 참담하다.
그리고 갈비뼈가 또 두 대. 옆구리 근육 염좌, 그밖에 자잘한 손상은 다 헤아릴 수도 없다.
“도대체… 자네, 왜 이래? 무슨, 마가 낀 것도 아니고… 멀쩡하던 사람이 쉘터라는 데에만 갔다 하면 이렇게 부상을 입고 돌아오냐고.”
오 박사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실력이 없는 놈들도 아니고, 태양 그룹 사설 경비 업체 대장을 맡을 정도의 인물이 이 꼴이 된 걸 보니 속이 터진다.
게다가 동행했던 직원이 보고한 바로는, 메이저를 이 꼴로 만들어 놓은 게 여자란다. 이 소문이 퍼지면 회사 내의 기강이 심하게 흔들릴 것이다.
여자한테 맞아 초주검이 된 대장. 그건 진짜 난감한 일이다. 메이저의 무력은 오 박사가 이 본사를 장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짜, 짜, 짜증나니까, 그따위 소, 소리 하려면 나가.”
팔에 수액 주삿바늘을 꽂은 채 양주병을 기울이고 있던 메이저가 짜증을 부린다. 급하게 의료팀으로부터 수술을 받은 터라 그의 얼굴은 온통 꿰맨 자국투성이다. 메이저가 다시 양주병을 입에 대려 하자 오 박사가 그의 팔을 잡았다.
“술은 그만 마셔. 마취 풀린 지 얼마나 됐다고. 몸이나 좀 회복시킨 후에…….”
“모, 모, 몸? 몸은 아, 아픈 것도 아니야! 내, 내, 내 이 속! 이 가, 가슴속이 지금 어, 어떤지 알아?”
메이저는 오 박사의 손을 밀쳐 내고 양주를 들이켰다. 계집년에게 맞아 이 꼴이 되었다는 것도 쪽팔린 일이지만, 그를 정말로 괴롭히는 것은 근육덩치 놈에게서 느꼈던 공포다.
단 두 방… 옆구리에 꽂힌 훅과 팔꿈치 돌려치기. 그것만으로 그는 전의를 잃었었다. 그래서 놈이 가지고 노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그 계집년도 나름 셌지만, 이미 싸움을 하기도 전에 승부가 기운 상황이었다. 그년이 마운트 자세로 올라와서 무릎으로 옆구리를 죄는 순간, 숨이 막히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힘 한 번 제대로 못 써보고 이 꼴로 겨우 살아 돌아온 것이다.
“씨발… 내 새, 새, 새끼들이 보, 보고 있었는데…….”
메이저는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물었다. 찢어진 그의 입술 사이로 양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말려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오 박사는 더 입을 떼지 않았다.
“열 받는 거 이해해. 이해하는데… 그냥 덮어버리자고. 아마 자네 요즘 너무 무리했나 봐. 피곤해서 몸이 무거웠던 거지. 그래도 오늘 잠실 덕에 좋은 일 있었으니까, 그거 생각하면서 참아.”
후우우~ 길게 연기를 뿜어낸 메이저가 오 박사에게 물었다.
“자, 자, 잠실? 거, 거기에서 며, 몇 명이나 데려왔는데, 조, 조, 좋은 일이라는 말까지 나와?”
애초에 수용 요청이 들어왔던 인원의 수가 500명 정도라는 걸 메이저도 알고 있다. 꽤 많아 보이지만, 파멸의 마녀 쌍년에게 조공을 몇 번 바치고 나면 그걸로 또 끝이다.
그런데 오 박사는 빙글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이다.
“아, 웃어서 미안해. 자네가 몸이 이렇게 됐는데… 그냥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야. 자네 마취되어 있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면, 잠실이… 풋! 잠실이 지금 거의 궤멸 직전이야. 완전히 무너졌어.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도 헬리콥터 네 대가 쉬지 않고 돌아. 베슬에 태워 달라고 하는 놈들 수천 명이 주차장에 줄을 쫙 서 있거든.”
메이저는 멍한 얼굴로 오 박사를 바라보았다.
이게 지금 무슨… 수천 명이라고? 그것도 여기 오고 싶어 난리가 났다고?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다.
“그, 그, 그래서 데, 데려온 새끼들은 어, 어디다가 놔뒀어? 그, 그렇게 마, 마, 많은 놈들 가둘 자, 장소가 없을 텐데…….”
“지하 주차장에 처박아놨어. 여자들은 지하 2층, 남자들은 지하 3층. 셔터로 딱 나눠놨지, 발상의 전환을 하니까 가둬놓기에는 거기만 한 데가 또 없더라고.”
“씨발, 그, 그럴 줄 알았으면 거, 건대 같은, 조, 조, 좆같은 데를 가, 가는 게 아닌데.”
메이저는 입술을 찡그리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그러게, 이런 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나…….”
오 박사도 고개를 끄덕인다. 양주를 한 모금 더 들이켜던 메이저가 불현듯 뭔가를 깨달았다.
“그, 그, 그러면 거, 건대 새끼들 누, 누, 눈치 볼 일도 어, 없다는 말이잖아!”
응? 무슨 소리인가 싶어 되물으려던 오 박사도 메이저의 말뜻을 알아듣고 생각에 잠겼다. 건대는 지금 무전이 끊겨 있는데, 잠실은 무너졌다.
다시 말해 건대 놈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동 수단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거, 건대 새끼들을 싸, 싹 다 주, 죽여 버려도 아, 아무도 신경 아, 아, 안 쓸 것 아니야? 마, 맞지?”
“…정말 그렇게 됐구만. 상황은 그렇게 되기는 했는데… 그 많은 병력을 어떻게 죽이려고? 총알도 다 빼앗기고 왔으니, 그쪽에서도 반격을 할 텐데?”
“자, 자, 자네, 이, 이상한 거 마, 많잖아. 벼, 벼, 병균이나 도, 독가스 같은 거.”
메이저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도 오 박사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무식하니까 용감할 수 있는 거다. 오 박사는 자신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그 무지하고 가학적인 용맹이 필요했다.
그리고 필드에서의 인간을 상대로 한 가스 실험 같은 건, 그에게도 흥미가 동하는 이야기였다.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그런 짓을 해 볼 수 있겠는가.
“그래…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헬리콥터에서 유탄 발사기로 쏘면 될 거고. 거리가 얼마나 되지? 건대에서 여기까지가?”
“대, 대충 시, 시, 십 킬로미터 정도.”
메이저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매일 헬리콥터로 인간 사냥을 다니는 동안 서울의 지리와 대강의 거리가 머릿속에 새겨져 버렸다.
“꽤 되는군. 그러면 가스 정도는 양 조절을 해가면서 써도 될 것 같은데… 어떤 걸 원해? 그냥 다 가스로 죽일 거야?”
오 박사가 물었다. 안경 렌즈 너머 그의 눈은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낸 악마처럼 빛났다.
“그, 그래. 저, 저, 전부 다 주, 죽여 버… 아니다. 자, 자, 잠깐만.”
증오에 가득 차서 중얼거리던 메이저가 말을 멈추고 고민했다. 그 계집년과 근육덩치를 그런 식으로 손쉽게 죽여 버린다는 건 너무 아깝다.
손맛을 보고 싶다. 그 건방진 계집애가 온몸에 피멍이 든 채 묶여서 살려 달라고 빌고, 그러다가 또 저주의 욕설을 퍼붓는 꼴을 보고 싶다.
근육덩치는… 그건 일단 잡아온 뒤에 어떻게 천천히 고통을 줘가며 죽일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이다.
자신의 몸이 다 나을 때까지 매일 놈을 조금씩 고문하고 약해지게 만든 후에, 쉐도우 실드 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검 승부를 벌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새, 새, 새, 생각이 바뀌었어. 그, 그 가스 중에 기, 기, 기절만 하는 걸로 해줘.”
“음, 실레인도 있지만, 불산 가스를 권장하고 싶군. 좋은 게 뭐냐면, 접촉된 피부를 괴사시키거든. 호흡은 막히고, 살은 녹아 들어가고… 생지옥일 거야.”
오 박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메이저가 고개를 젓는다.
“아, 아니… 그, 그, 그렇게 다치게 하면 안 돼. 그건 내, 내가 처, 처, 천천히 할 테니까 기, 기절만 시키는 거.”
“음, 뭐 그렇다면 메톡시플루렌이나 할로테인, 펜타닐 변형 화합물… 이런 걸 써야겠군. 재미는 확 줄어들겠지만.”
“지, 지금 가, 갈까?”
기분이 좋아진 메이저는 아직 반 이상이 남은 수액의 주삿바늘을 뽑고 벌떡 일어났다. 빙글~ 땅에 발을 딛자마자 눈앞이 핑 돈다. 마취제에 진통제, 그리고 술까지 들어갔으니 어지럽고 정신이 몽롱할 수밖에 없다. 오 박사는 그를 부축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봐, 지금 대목이라니까. 잠실에서 샘플들은 싣고 와야 할 것 아니야.”
아~! 메이저는 잊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 그래. 내, 내일 가자, 내일.”
그렇게 말한 메이저는 병실 문 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 나갔다. 오 박사가 그의 뒤를 쫓으며 물었다.
“어디 가려고 그래? 누워 있어!”
“아, 아, 아니야! 계, 계집년들 세, 세, 세 명 정도만 데려올게. 소, 손이 근질거려서… 내일까지 시, 심심풀이는 있어야지.”
“그 손으로?”
오 박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메이저는 왼손의 손가락이 두 개나 부러져서 기브스를 하고 있다.
“나, 나는 오, 오른손잡이니까.”
메이저는 왼손을 들어 보이며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막무가내다.
“젠장…….”
오 박사는 욕설을 내뱉으면서 그의 뒤를 따라갔다. 마음 같아서는 억지로라도 병실에 눕혀두고 싶은데, 오늘 하루 메이저가 워낙 더러운 일진을 겪었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냥 내버려 뒀다.
저렇게 해서라도 기를 좀 살려야 한다. 기가 죽은 사냥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저 상태의 인간을 샘플들 틈으로 혼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이, 너희, 나 좀 따라와.”
오 박사는 복도를 지키고 서 있던 쉐도우 실드 요원 둘에게 수행을 명령했다.
메이저는 엘리베이터 단추를 제대로 누르지 못해서 계속 바로 옆의 벽을 눌러 대며 해롱거리고 있다. 진통제와 술이 그의 몸 안에서 아주 적극적인 시너지를 일으키는 모양이다.
“너희 대장 지금 많이 취했으니까 너희가 챙겨야 돼. 여자들 골라서 올라간 다음에 수갑에 묶는 것도 너희가 마무리하고 내려와.”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 박사는 쉐도우 실드 대원들에게 당부를 했다. 메이저는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어 댄다.
“뭐, 뭔 소리야… 왜 그, 그 그렇게까지 한다는 거야? 내, 내, 내가 그, 그 정도도 통제 못할 것 같아?”
메이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앞장서서 복도로 뛰어나갔다. 오늘 오후에 잠실에서 데려온 민간인들을 가둬둔 곳이다.
지금이야 진통제 효과 때문에 저렇게 펄쩍거리고 뛰어다니지만, 내일 아침 약기운이 떨어져 갈 때쯤에는 아마도 죽는다고 비명을 지를 것이다. 얼굴의 뼈들이 워낙 많이 다쳤다.
“어이! 기다려! 무리하지 말라니까!”
복도 중간의 방문 앞에 서서 번호 키를 누르고 있는 메이저를 향해 오 박사가 외쳤다. 하지만 메이저는 미친놈처럼 열심히 번호 키를 눌러 댄다.
띠리릭―
잠겨 있던 문이 열리는 소리.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커다란 엘리베이터 단추도 제대로 누르지 못하던 주제에 비밀번호는 또 어떻게 잘 맞춰 눌렀다니… 오 박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 이, 이, 이 방이 아니네?”
방 안으로 들어선 메이저는 불쾌하다는 듯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서 튀어나온 타액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고 턱 끝에 걸려 주르륵 흐른다.
방 안에는 발가벗겨 놓은 채 두 손이 뒤로 묶인 남자들이 잔뜩 몰려 서 있다. 여자 방이 아니라 남자들을 가둬둔 방으로 잘못 들어온 것이다.
“제, 제, 젠장, 여, 여, 옆방인가?”
메이저는 머리를 꾹 눌러 두통을 참아내고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그가 그렇게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 사이에 민간인 남자들 몇 명인가가 그에게 다가와 애원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희 좀! 저희 좀 살려주십쇼! 저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취급을 하십니까? 저희 그냥 선량한 이송 희망자입니다.”
“어어? 이, 이것들이 더, 더럽게…….”
자신에게 달라붙는 민간인 남자들을 노려보며 메이저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뒤늦게 쫓아 들어온 쉐도우 실드 대원들이 진압봉을 휘두르며 남자들을 뒤로 밀어낸다.
“꺼져, 이 새끼야! 달라붙지 말라고!”
“어윽! 으윽! 살려주세요!”
팔에 피멍이 들고 귀가 찢겨 나가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민간인 남자들은 애원을 멈추지 않았다.
태양 그룹이 운영하는 난민용 쉘터가 있다고 해서 따라 왔더니, 이런 곳에 옷을 다 벗겨서 처박아뒀다. 그런 후 한 번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 사정해 볼 사람이 찾아왔는데, 그냥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우릴 어떻게 하고 싶어서 이래요?”
머리를 두들겨 맞아 피를 흘리고 쓰러진 남자가 메이저를 노려보며 울부짖었다. 두 팔이 뒤로 묶여 있는 터라 저항조차도 해볼 수 없다는 게 너무 분하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태양 그룹 같은 데로 오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하고 싶냐고? 그걸 정말로 알고 싶어? 아닐 텐데?”
오 박사가 천천히 걸어와 남자의 얼굴을 발로 밟으며 물었다. 남자가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 애를 쓰지만, 오 박사는 집요하게 그의 볼을 짓이기며 빙글빙글 웃었다.
“여기에서는 너처럼 말이 많은 놈을 좀비 밥으로 주지.”
“왜? 왜 그런 짓을 해? 흐! 흐으으!”
신음하는 남자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분하고, 아프고, 무섭다. 오 박사의 한마디를 들은 민간인들은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일단 말이 많은 놈으로 찍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저, 저… 선생님!”
겨우 좀 사태가 진정되었는가 싶었을 때, 뒤쪽에서 한 남자가 필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테라와 젠킨스의 대화를 엿들은 야구모자다.
“이 새끼… 먼저 뒈지고 싶어서 아주 지랄이 났네.”
앞으로 뛰어나오다가 결국은 발이 걸려 넘어진 야구모자를 보며 오 박사는 혀를 끌끌 찼다.
어째, 이번에 잡아온 놈들은 나사가 좀 빠졌는지 유난히 징징대는 놈들이 많은 것 같다. 이쯤에서 하나 정도 본보기를 보여줘야 할 모양이다. 지금 시끄럽게 군 이 놈으로.
“야, 저 새끼 이 앞으로 끌고 와. 일단 세 번 기절할 때까지 좀 패자.”
오 박사가 명령했다. 쉐도우 실드 직원이 야구모자의 머리채를 꽉 움켜쥐고 질질 끌었다.
“아아악! 으으!”
야구모자는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이 가진 궁극의 비밀 무기를 내던졌다.
“제가 엄청난 걸 알아요! 좀비에 물리고도 안 죽은 사람을 압니다! 제발! 때리지 마세요! 으아!”
“잠깐! 잠깐 멈춰봐!”
오 박사가 급하게 소리를 쳤다. 야구모자를 후려갈기기 위해 곤봉을 치켜올린 쉐도우 실드 대원이 손을 멈춘다. 진통제에 취해 있던 메이저조차도 순간적으로 제정신을 찾고 똑바로 서 있다. 오 박사는 야구모자에게 몸을 숙여 물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봐.”
“흐으으~! 흐으으! 제가… 좀비에 물리고도 살아남은 사람을 압니다! 잠실에! 잠실 쉘터에 있어요!”
야구모자는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것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아직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야구모자는 믿었다.
“그게 누군데?”
오 박사가 차가운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야구모자는 도리질을 했다.
“이, 일단 이 방에서 내보내 주세요! 그리고 저는 살려주신다고 약속해 주세요! 그러면… 그러면 이름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거짓말하면 재미없어. 나는 농담 같은 거 키우는 사람 아니야.”
“압니다! 네! 맹세할 수 있어요!”
흐음~ 오 박사는 야구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저 이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 이런 종류의 거짓말을 할 확률은 극히 낮다. 그런 게 목적이라면 주로 자신의 혈연이나 학연, 아니면 신분 따위를 들먹일 테니까.
만약 이 말이 진짜라면… 그래서 살아 있는 면역자를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머지않아 파멸의 마녀, 그 개 같은 년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오 박사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진다.
오 박사는 쉐도우 실드 직원들에게 손짓을 했다.
“어이, 저분 일으켜 드려.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오 박사는 야구모자를 데리고 나와 바로 위층의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놈의 손을 풀어준 쉐도우 실드 대원들이 뒤에서 감시하고 있는 동안, 오 박사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줬다. 그 정도 대접은 해줘야 이놈이 안심하고 입을 열 것 같아서다.
“이, 이, 이제 마, 마, 말해… 우, 우리도 바빠!”
맥주를 급하게 벌컥대는 야구모자에게 메이저가 말했다. 어찌나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인지, 여자 생각마저 깨끗이 지워졌다.
면역자가 아직 잠실에 있을 때 가서 데려와야 편하다. 물론 이미 철로로 이동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데려올 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긴 선로는 쉘터처럼 화력이 집중되어 있지 않다. 마음만 먹는다면 군을 상대로라도 기습을 할 수 있다.
“그래, 정보가 맞기만 하다면 우리도 그냥 입 싹 닦고 있지는 않아. 당연히 그에 맞는 보상도 해줘야지. 음, 전에도 이런 제보 했던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 양반은 지금 남부에서 이사까지 올라가 있어.”
오 박사도 특유의 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이미 이전에도 면역자가 있었다는 말에 조금 놀란 야구모자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그러면 저도 이사까지는 가능한 건가요?”
이미 한 번 속아놓고서 또 속고 싶은 거냐?
오 박사는 놈을 비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가 맞는다면 그렇지. 말해봐. 누구야, 그 물렸다는 사람. 아직 잠실에 있어?”
“네. 제가 아까 여기로 오기 전에 한 번 확인하고 헬리콥터에 탔습니다. 있었어요. 찾기도 엄청 쉬워요. 다들 아시는 사람이니까요.”
야구모자는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면역자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직접 본 거야?”
“그… JL이라는 회사 아시죠? 거기 최고위 연구 책임자가 타일러…….”
“그래, 알아! 타일러 젠킨스. 사이코패스 천재. 그게 뭐? 잠실 이야기 하는데 그 사람이 왜 나와?”
야구모자의 말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난 오 박사가 놈의 말을 자르며 다그쳤다. 야구모자는 주눅이 들어 몸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그 사람이 한 말을 들었습니다. 아, 지금 그 사람도 잠실에 있거든요.”
“젠킨스가? 잠실에?”
“네. 그 사람이 테라하고 늘 붙어 다니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하루는 막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네가 물렸다는 걸 말했냐고! 그리고… 테라의 물렸던 발가락에서는 무한… 뭐라더라 아, 기억났어요. 증식과 파괴가 반복되고 있다는 말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