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째깍째깍! (2)
“소영이랑 종민이에요.”
테라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민구는 속으로 꼬맹이들의 이름을 한 번 되뇐 뒤, 테라에게 말했다.
“한 발짝도 떼지 말고 여기 바짝 붙어 있어.”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도록 테라와 보따리 같은 꼬마들을 기둥 뒤에 밀어놓은 민구는, 성난 파도처럼 몰려다니는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와 함께 움직이고 싶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계속 서로 엇갈리며 숨바꼭질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소영이! 종민이! 소영이! 종민이!”
팔을 위로 올린 민구는 큰 소리로 두 꼬마의 이름을 외치며 빠르게 걸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혹시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지 찾았다.
아무리 사방이 소음으로 덮여 있다 하더라도, 아이를 잃은 여자라면 이름을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윽!”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옆구리를 부딪친 민구가 미간을 찌푸렸다. 총알에 맞아 날아간 부위에 불로 지진 것 같은 통증이 엄습해 온다.
이름에 반응하는 사람을 찾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마주 오는 사람들을 피하기가 어렵다. 민구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다시 아이들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소영이! 종민이!”
그렇게 사람들을 거슬러 가며 걷기를 10분여, 마침내 민구의 외침에 반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영이! 우리 소영이 어디에 있어요?”
울부짖는 여자의 목소리! 민구는 고개를 돌렸다. 정신이 반쯤 나간 것처럼 보이는 여자 하나가 인파에 휩쓸리며 소리치고 있다.
“누가 소영이 불렀어요? 제가 소영이 엄마예요!”
여자는 눈물범벅이 된 채로 다시 외쳤다. 민구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소영이 저쪽에 있어! 따라와!”
거기까지만 말하고 여자의 팔을 당기던 민구는 이 상황이 엄청 수상해 보일 거라는 걸 깨달았다.
험악한 얼굴의 사내가 다가와 갑자기 팔목을 잡고 따라오라고 하는 중이다. 게다가 자기 아이를 알 리가 없는 낯선 사람이.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테라가 데리고 있어! 종민이도 같이! 걔 엄마는 어디 있소?”
그제야 안심한 여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 뒤쪽을 돌아봤다.
“종민이 엄마는 반대쪽으로… 우리 자리 있던 곳으로 가본다고 했어요… 제가 이쪽을 찾기로 하고.”
돌아버리겠군, 가뜩이나 시간여유가 없는데…….
민구는 끓어오르는 화를 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앞장서! 당신들 자리라는 데로 갑시다.”
“이쪽이에요!”
여자는 눈물을 닦아내며 걸음을 뗐다. 워낙 혼잡하고 부딪쳐 오는 사람들도 많아서 길을 트는 건 민구의 몫이 되어버렸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손을 꽉 잡고 따라오는 동안 조금씩 제정신을 되찾은 여자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됐어, 그런 이야기는. 종민이 엄마라는 사람이나 찾으라고.”
감사 인사를 듣기 싫어서 민구는 차갑게 반응했다. 이 여자들이 여기에 갇히게 된 건 그가 지난 달 14일 새벽에 저지른 일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고맙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건 가당치도 않다.
“사물함에 가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애기 물건이 꼭 필요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언제 보급을 받게 될지를 모르니까…….”
여자는 죄인이나 된 것처럼 부끄러워하면서 자신들이 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사물함에 갔어야 했는지를 이야기했다. 민구는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이며 계속 소리를 질렀다.
“종민이! 종민이!”
그러는 사이에도 바깥에서는 각종 총소리들이 쉬지 않고 울려왔다.
타타타타타― 콰아앙― 텅텅텅텅―
그 엄청난 소음에 홀린 사람들은 연신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아! 저기에 있어요!”
여자가 반색을 하며 펄쩍펄쩍 뛴다. 그녀가 누굴 가리키는 건지, 민구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공포에 질려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상심이 크고 두려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사람. 그게 종민이 엄마였다.
“종민이 엄마! 종민이 엄마! 여기야! 우리 애들 찾았어!”
여자가 큰 소리로 부른다.
“정말? 정말이야?”
종민이 엄마는 눈을 크게 뜨고 달려왔다. 사람들의 등쌀에 밀려 휘청거리는 그녀를 민구가 잡았다. 메이저에게 함께 두들겨 맞았던 터라 두 사람은 서로 안면이 있다.
“종민이는요?”
민구와 소영이 엄마를 번갈아 보며 종민이 엄마가 물었다. 그녀의 불안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테라가 B 구역에서 보호하고 있소! 빨리 갑시다!”
민구는 두 여자를 이끌면서 사람들의 사이를 헤집고 뛰었다.
이런 짓을 하게 되다니…….
민구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치 한없이 선량한 인물이라도 된 양 아이를 잃어버린 여자들을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사람들에 부딪쳐 시큰거려 오는 갈비뼈와 옆구리의 통증까지 참아가면서…….
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그의 삶은 이런 종류의 일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뭐야, 이 미친 새끼들!”
B구역에 도착한 민구는 욕설을 내뱉으며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기둥 뒤에서 중년 사내 하나가 테라를 끌어안은 채 목덜미에 입을 맞추려 하고 있었다.
“이러지 마요!”
테라는 아이들을 꼭 감싸며 그를 밀어내 보지만, 힘에 부친다.
“아니, 나쁜 거 안 해! 우리 그런 사람들 아니야! 그냥 뽀뽀 한 번만! 응? 추억으로 뽀뽀 한 번씩만 하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사내는 흥분한 숨소리를 씩씩 내뿜으며 달려든다. 시선을 가리기 위해 일행으로 보이는 놈들 셋이 기둥 주변을 빙 둘러 서 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출구를 향해 내달릴 뿐이다.
“꺼져!”
민구는 기둥 주변에 서 있던 놈들의 뒷덜미를 잡아채서 넘어뜨리고 중년 사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아야야! 아아!”
머리채를 잡혀 목이 꺾인 중년 사내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민구는 녀석의 오금을 걷어차 무릎을 꿇렸다.
“아니! 저기! 나쁜 짓 하려던 게 아니에요! 그냥…….”
당황한 사내가 변명을 늘어놓는다. 민구는 녀석의 목젖을 세게 후려쳤다.
“켁―!”
끔찍한 고통에 녀석은 감전된 놈처럼 펄쩍 튀어 올랐다가 자빠졌다. 사내는 목을 움켜쥔 채 온몸을 버둥거린다.
“그냥 가요… 저 안 다쳤어요.”
몇 대 더 때려주려는 민구의 팔을 잡으며 테라가 말했다. 민구는 한 움큼 뽑혀 나온 사내의 머리카락을 바닥에 버리고,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큭!”
사내가 엉덩이를 움찔하며 비명을 지른다. 고통에 신음하는 사내를 내버려 두고 녀석의 일행들은 네 발로 기어 도망을 쳤다.
테라를 때리거나 하지 않은 걸로 보아, 그리 나쁜 놈들은 아니다. 그냥 보통의 흔한 인간이 이 분위기와 총소리에 휘말려 살짝 돌아버린 거다.
“종민아! 소영아!”
뒤늦게 쫓아온 아이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확인하고 오열했다. 테라도, 두 여자도 모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고마워! 고마워… 고맙습니다…….”
아이를 꼭 껴안은 엄마들은 테라와 민구에게 고개를 숙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테라도 민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연발한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이제야 겨우 지옥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갖춘 것뿐이다.
“인사는 나중에 해! 따라와! 빨리 나가야 돼!”
민구는 이제 다섯 명으로 늘어나버린 일행을 데리고 다시 앞장을 섰다.
그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렇게 모든 게 엉망이 되었을 때 막차를 타는 놈들은 생명을 부지하기 어렵다. 얼마나 빨리 줄에 서는가가 생존을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비켜! 길 막지 마!”
태양 그룹으로 가는 헬리콥터에 오르기 위해 몰려든 사람으로 통로는 꽉 막혀 있었다. 민구는 어깨와 팔로 그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소리를 질렀다.
옆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테라는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손아귀 안에 들어온 그녀의 손이 너무도 가늘고 또 작아서 민구는 새삼 놀랐다.
“어머! 종민이 엄마! 이리 와! 우리랑 같이 태양으로 가! 테라야! 너도 와! 뛰어서는 못 가!”
몇 명의 여자들이 테라와 두 아이 엄마를 발견하고 붙잡는다. 테라가 설득에 실패한 여자들이다. 민구는 그녀들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놔! 그렇게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다른 사람 끌어들이지 말고!”
놀라서 주춤거리는 여자들을 뒤로하고, 민구는 테라를 잡아당겼다. 테라는 입술을 꽉 다물고 아이 엄마들과 함께 구름처럼 모여 있는 인파의 사이를 뚫고 달렸다.
그들은 민구와 젠킨스가 누워 있던 자리를 지났다. 두 장의 돗자리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잔뜩 뒤집어쓴 채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젠킨스 씨!”
출구 부근에서 젠킨스를 발견한 테라가 소리를 질러 그를 불렀다. 뒤를 돌아본 젠킨스는 반가움과 두려움이 섞인 얼굴로 서 있다. 대피령이 내려진 이후 그는 계속 테라를 찾았었다.
언제 어떻게 되더라도 마지막까지 그녀와 함께해야 한다. 그래야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가져볼 수 있으니까… 그녀를 JL로 데려갈 수 있다면 자신의 다리 하나쯤은 내줄 수 있다고 했던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테라의 앞에 딱 버티고 서 있는 흉터사내를 보자 젠킨스의 몸은 얼어붙었다. 이 난폭한 사내는 그를 벌레처럼 취급하며 폭력을 휘두른다. 지금도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다.
“괜찮아요, 젠킨스 씨! 따라오세요!”
테라가 외쳤다. 그제야 젠킨스는 주춤거리며 그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민구가 발을 멈추고 녀석을 노려보았다.
“어딜 따라와, 이 새끼야!”
젠킨스는 다시 멈췄다. 한국어는 모르지만, 멈추라는 의미였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흉터사내의 눈빛은 무시무시하다. 어쩌다가 테라는 이렇게 폭력적인 인간과 인연을 가지게 된 걸까…….
“아저씨, 제발… 젠킨스 씨와 함께 가야 해요! 저 사람이 살아 있어야… 약을 만들 수 있어요!”
테라가 민구를 향해 간곡하게 부탁했다. 함께 있는 아이 엄마들 때문에 백신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못했지만, 약이라는 말만으로도 그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 사기꾼을 믿는다고? 그냥 다 거짓말이야! 저렇게 굼뜬 놈까지 끌고 갔다가는 우리도 위험해져!”
민구는 테라를 노려보며 고개를 저었다. 테라는 그의 사나운 눈빛을 피하지 않은 채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저씨 말씀처럼 거짓말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거짓말로라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저 사람뿐이에요. 저는 그 말이 믿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들은 이야기 중에는 정말로 잘 알지 못하면 도저히 지어낼 수 없는 것들도 있었어요.”
테라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민구는 생각했다. 도대체 왜 이 계집애와 얽히면 평소처럼 매정해지지를 못하는 걸까…….
저 뚱보 사기꾼을 데리고 가봤자 좋을 일 따위는 하나도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민구는 결국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뒤처지면 안 챙겨줘! 그냥 버릴 거야!”
“네, 알았어요. 젠킨스 씨! 와요! 같이 가재요!”
테라는 젠킨스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오케이! 오케이! 젠킨스는 뒤뚱거리며 일행을 따라 뛰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의 호흡은 가빠졌고,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잠깐 멈춰 쉬고 싶다. 하지만 저 흉터사내가 그의 사정 같은 걸 봐줄 인간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젠킨스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그 과자 상자를 버려요! 그것만 해도 훨씬 덜 힘이 들 거예요!”
보다 못한 테라가 말했다. 젠킨스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건빵 상자를 더 꼭 껴안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얼마나 더 굶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제 좌절한 상태에서 폭식을 했기 때문에 건빵 상자는 이미 절반가량 비워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젠킨스의 위에서는 벌써부터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용산 선로 이쪽! 이쪽입니다!”
안내하는 병사들이 쉬지 않고 악을 써 댄다. 하지만 이미 출구로 이어진 계단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미처 내려가지 못하고 몰려 서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안내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밀지 마요! 넘어진다고!”
계단에서는 빨리 가려는 사람들과, 앞에 막혀 더 내려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언성을 높이고 있다.
발도 제대로 딛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기 때문에 한 사람만 중심을 잃고 넘어져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투투투투―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기관총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대며 사람들의 조바심을 자극한다. 민구와 테라 일행은 계단 손잡이에 바짝 붙어 서서 한 칸씩, 한 칸씩 아래로 내려갔다.
투투투투투투― 후우웅―
쉘터의 북동쪽 공터에서는 태양 그룹의 검은 헬기가 사람들을 가득 실은 그물 베슬을 매달고 날아올랐다.
세 대의 헬리콥터가 쉼 없이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다시 돌아왔지만, 이송 희망자들 전부를 다 태양 그룹으로 이송하려면 앞으로도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할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 노약자! 이쪽! 부상자! 이쪽!”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무리의 병사들이 내려오는 사람들 중 이동이 어려워 보이는 이들을 선별해서 한쪽으로 줄을 세우고 있다. 당연히 소영이와 종민이도 그들의 지목을 받았다.
“거기, 아이와 보호자분들! 이쪽에 섭니다! 선로까지 장갑 트레일러로 이동시켜 드리겠습니다!”
두 엄마는 아이를 꼭 껴안은 채 머뭇거린다. 장갑 트레일러… 분명히 매력적이다. 편하고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찾아준 이 사람들을 놔두고 자신들만 거기에 탄다는 것이 영 불편하다. 소영이 엄마가 물었다.
“저기… 저분들은… 저 사람들도 같이 가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공간에 여유가 없습니다. 아이들과 두 분만 해당됩니다! 빨리 저 줄에 가서 서십쇼!”
병사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테라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눈빛만은 차갑지 못했다. 그녀까지는… 테라까지는 장갑 트레일러에 태워주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지켜보는 눈이 많고 사람들의 마음이 조급할 때에는 예외적인 사례를 만들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명령에 권위도 서지 않게 되고, 질서나 규칙 따위가 일시에 와르르 무너질 테니까.
“가세요, 언니! 아이들 데리고 뛰기는 힘들어요.”
망설이는 아이 엄마들에게 테라가 먼저 결론을 내려줬다.
“하지만…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해?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저는 괜찮아요! 저는… 이 아저씨가 지켜주실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세요. 나중에 선로에서 만나요.”
테라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그녀들의 부담을 덜어줬다. 아이 엄마들은 테라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인다.
“그래, 꼭 살아서 만나자. 조심해. 그리고… 정말 고마워. 아저씨, 고맙습니다.”
여자들의 인사가 다 끝나기도 전에 민구는 테라의 손을 잡고 제1주차장 쪽으로 뛰었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여자들의 눈물 바람을 봐주고 있을 시간이 없다.
테라는 민구에게 이끌려 뛰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헤엑~ 헤엑~ 왜 헤어진 거야?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거고?”
상황을 이해 못한 젠킨스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테라는 대답 대신 빨리 쫓아오라는 손짓을 했다.
야구장 외부는 내부보다도 사람이 더 많았다. 줄의 끝에 도착하자, 앞쪽에서 병사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열 명씩 섭니다! 열 명씩!”
민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돋움을 해서 앞쪽을 살폈다. 한 줄에 열 명씩 세워 길게 늘어진 행렬은 까마득히 먼 곳까지 뻗어 있다. 이래서야 오밤중까지도 탈출하기는 텄다.
“젠장… 막차 타고 싶지 않은데…….”
수많은 사람들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던 민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때, 그의 뇌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가 들어왔던 그 출구로 나가서 지하철 선로까지 내려가 버릴까 하는 생각이었다. 지하철 안에는 괴물들이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속도도 느리다.
“따라와! 다른 데로 도망칠 수 있는지 살펴보자!”
민구는 테라의 손을 잡고 행렬을 빠져나왔다. 젠킨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들의 뒤를 따른다.
“젠장!”
서남쪽 철책 앞에 다가선 민구는 이를 바득, 갈았다. 철책 너머 도로는 이미 꽤나 많은 수의 괴물들에게 완전히 함락된 상태였다. 그가 가진 작은 등산용 나이프만으로는 도저히 뚫어낼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규모다.
그렇게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우왕좌왕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째깍째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