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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묵시록 82-08-381화 (381/449)

1장 째깍째깍! (1)

철책을 뚫고 들어온 좀비의 팔!

병사들은 사격을 잠시 멈출 만큼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허! 아… 안 돼!”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탄성이 터져 나온다. 철책에… 지난 한 달 동안 한 번도 침범당하지 않은 잠실 쉘터 동남쪽의 철책에 균열이 생겼다. 그것은 불길한 징조였다.

그롸아아아!

좀비는 철책 너머로 손을 뻗으며 미친 듯이 울부짖어 댔다. 그 바로 뒤를 이어 수많은 좀비들이 철책을 향해 몸을 날린다.

콰창! 콰창!

철책의 격자무늬 철망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요동쳤다.

좀비가 팔을 들이민 곳은 외부 철책이고, 병사들의 사대는 내부 철책 안쪽. 10여 미터의 거리는 아직 확보되어 있지만, 쫙 벌린 좀비들의 아가리를 보고 있노라면, 여유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투―

다급해진 병사들이 바쁘게 방아쇠를 당겼다. 매캐한 화약 연기가 주변을 가득 메우고, 고막은 터져 나갈 것만 같다.

“11시! 11시에 붙었어! 갈겨!”

사방에서 지원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정신없이 울리고, 병사들은 이리저리 총구를 돌리며 미친 듯이 3점사를 날렸다. 하지만 그들이 쓰러뜨리는 좀비의 수보다 새로 철책에 달라붙는 좀비들의 수가 몇 배나 더 많다.

지뢰밭을 통과하고, 총알을 맞아가며 뛰어오는 동안 엉망으로 훼손된 좀비들의 체액과 살점이 철망을 가득 메운다.

이젠 어떤 놈이 살아 있는 좀비인지, 어떤 놈이 이미 뒈져 버린 것인지조차 파악이 안 될 만큼 철책 주변은 좀비들로 완전히 덮여 버렸다.

애애애앵― 애애애앵―

쉘터 이곳저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에서는 비상사태를 알리는 날카로운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주차장과 경기장 사이에서 이동 연습을 하고 있던 100인대 민간인들은 깜짝 놀라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들을 인솔하고 있던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탁탁탁탁― 탁탁탁―

부우우웅―

5분대기조 병사들이 뛰어오는 전투화 소리, 병력을 실은 트럭의 엔진 소리가 더해져서 잠실 쉘터의 동쪽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동남쪽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쉬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비관적인 것은, 그렇게 열심히 쏴대는 데도 사태는 별로 진정되는 기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외부 철책 바로 앞부터 시야 끝의 저 먼 도로까지, 어디를 바라봐도 좀비들이 우글거린다.

끼이이이잉― 꾸우우웅―

수많은 좀비들의 체중이 한꺼번에 실리자, 철책의 기둥이 안쪽으로 휘며 섬뜩한 소리를 냈다. 콘크리트에 단단히 박아뒀던 볼트가 뜯겨 나가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병사들의 얼굴에서는 빠르게 핏기가 빠져나갔다.

“뒤쪽부터 막아! 더 오지 못하게 허리를 끊어!”

지휘관들이 소리쳤다.

텅텅텅텅텅― 텅텅텅텅텅―

학생 체육관 옥상에 설치되어 있던 사대에서 K―4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유탄들을 날렸다. 조준 목표는 철책에서 300미터 이상 떨어진 도로. 좀비들의 행진이 한창 진행 중인 곳이다.

고속으로 날아간 유탄들이 폭발할 때마다 목표 근처 반경 10미터 이내에 있던 좀비들의 신체가 이리저리 잘려 날아간다.

실로 어마어마한 위력이지만, 그것으로도 진정시킬 수 없을 만큼 좀비들의 파도는 도도하게 밀려 들어왔다.

대인 살상용 고폭탄이 터져 움푹 팬 자리는 이내 다른 좀비들에 의해 메워졌다. 십만 이상의 좀비들을 다 쏴 죽이려면 적어도 만 발 이상의 유탄을 명중시켜야 한다. 그것도 중복적인 살상이 없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투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 투투투투―

K―3 사수들도 300미터 지점을 긁어 댔다. 불꽃이 선을 그으며 날아간 자리에는 머리가 터지고, 팔다리가 찢긴 좀비들이 뒤로 날아가 떨어지지만, 그 역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좀비 행렬의 허리가 끊기기 전에 뜨거워진 총열이 먼저 망가질 상황이었다.

크르르르릉― 부르르르르―

남쪽 도로로 빠져나간 소수의 좀비들을 깔아뭉개며 두 대의 K―2 전차가 접근해 왔다. 100인대의 이동을 지원하기 위해 서문 탄천 방향에 배치되어 있던 전차들 중 두 대가 긴급히 투입된 것이다.

우우웅―

전차의 포탑이 회전하며 주포가 사거리 쪽을 겨냥한다. 그리고 콰앙― 122㎜ 주포가 불을 뿜는다.

음속을 돌파하여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던 포탄은 1킬로미터 뒤쪽의 거리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콰앙―

두 번째 전차의 주포도 곧바로 불을 내뿜었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포탑 위의 K―6 중기관총도 쉴 새 없이 12.7㎜ 총탄을 쏘아댔다. 빨간 불꽃들이 노을 지는 저녁 하늘을 가르며 도로의 먼 끝을 향해 날아간다.

“멍 때리고 있지 마! 빨리빨리 움직여!”

대대 지원화기와 K―3 기관총, 그리고 전차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내부 철책의 병사들은 철책을 보강하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보강이라고 해봐야 트럭과 승용차들을 몰고 와서 철책과 나란하게 세워두는 것밖에 없다. 이렇게 하면 철책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어느 정도 지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방지’가 아니라 ‘지연’이다. 이제 동남쪽의 철책 두 개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 피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아으, 씨발. 돌아버리겠네!”

꿀 같은 잠을 설치고 뛰어나온 밤톨도 다른 병사들과 함께 작업에 투입되어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제발 오지 말아달라고 어젯밤 잠들기 전에 그렇게 간절히 빌었는데, 이 개 같은 좀비 새끼들은 하루도 못 참고 결국 쳐들어와 버렸다.

“거기 비켜! 차 대야 돼!”

사대에 올라 방아쇠를 당기고 있던 병사들에게 트럭을 몰고 온 운전병이 소리를 지른다. 병사들이 피한 자리에는 트럭이 철책에 맞춰 평행 주차를 했다.

혹시라도 철책을 들이받아 넘어뜨리거나 하면 큰일이 나는 상황이라, 운전병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핸들을 돌렸다.

부우우웅― 우우웅―

수십 대의 차량들이 정신없이 교차한다. 주차를 마친 트럭과 내부철책 사이에는 레이저 와이어가 얼기설기 둘러졌다. 그래봐야 너무도 어설픈 저지선이다.

그러는 동안 외부 철책은 거의 다 무너져 내려 버렸고, 성미 급한 좀비들은 철망을 밟고 뛰어올라 내부 철책 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투투투― 투투두― 투투둑―

병사들은 차량의 지붕 위에 올라가 달려드는 좀비들을 향해 3점사를 날렸다.

퍼버벅― 퍽― 퍽―

갈비뼈가 터져 나가고, 턱이 날아가도 머리가 남아 있는 한 좀비들은 다시 벌떡 일어나 뛰어온다. 그 끔찍한 모습은 그야말로 지옥도. 병사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오금이 저리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크롸아악―!

내부 철책 안쪽의 병사들을 향해 두 팔을 내뻗는 좀비!

이제 정말로 놈들과 철책 하나를 사이에 둔 채 대치하게 되었다. 병사들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레이저 와이어에 긁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자신이 다쳤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오로지 시각과 청각만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철수! 뒤로 빠져! 2차 저지선으로 이동!”

철책 보강 작업을 마친 시점에 퇴각 명령이 내려졌다. 병사들은 분대 단위를 이루어 60여 미터 뒤에 설치된 2차 저지선 쪽으로 내달렸다. 학생 체육관과 제2수영장 사이를 버스나 트럭 같은 대형 차량들로 막아 벽을 세워둔 곳이다.

크르르르릉―

병사들이 모두 철수한 뒤, 통로로 사용되던 빈칸은 장갑차가 막아서며 메웠다. 이제 잠실 쉘터의 영토는 여기까지로 줄어들어 버렸다.

“하아~ 하아~”

피 말리는 전투 내내 호흡하는 것조차 잊고 있던 병사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졌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임무는 막 도착한 야간 경비조들에게 인계되었다.

투투투투― 투투투― 투투둑―

버스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은 병사들은 내부 철책 바깥쪽의 좀비들을 향해 계속 총알을 날렸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병사들 중 누구도 이렇게 해서 저 밀려오는 좀비들을 전부 처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냥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보려는 발악일 뿐이다.

퍼엉― 퍼엉―

두 대의 전차도 연신 포탄을 쏘아댔고, 그럴 때마다 까마득히 먼 도로의 끝에서 불길이 피어오른다. 그 광경이 병사들에게는 힘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시력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곳에도 좀비들이 가득한 것이다.

“자! 저쪽 그만 신경 써요! 지금 당장 무너지지 않을 거고, 우리는 어차피 몇 분 뒤에 나갈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연습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2차 저지선으로부터 150미터 정도 떨어진 주차장에서는 병사들이 100인대 민간인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쳐 대는 중이었다.

아직 호흡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상황이라 갈 길이 바쁜데도, 불안해진 민간인들은 자꾸 동남쪽 게이트 쪽을 돌아보며 멍하니 서 있다.

“빨리빨리 나가!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좀비들이 몰려오는 방향과 정반대에 있는 서쪽 게이트에서는 100인대 민간인들과 그들을 인솔하는 병사들을 5분 단위로 내몰고 있었다. 아직 준비가 다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기다려 줄 여유조차도 없다.

크르르르릉― 크르르릉―

민간인들이 탄천과 맞닿은 산책로 위로 뛰어나가면, 호위를 위해 전차가 풀숲 위를 내달린다. 그렇게 해도 여기저기 산재한 좀비 무리들을 모두 처리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얼마나 버틸 것 같아? 여단장님께 뭐라고 보고하냐고?”

종합운동장에 위치한 사령부에서는 남아 있던 하급 장교들이 무전기를 붙잡고 핏대를 세웠다. 들어오는 정보들이 너무 단편적이고 부정확해서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게 꽤나 힘이 든다.

“공중 지원 왜 안 와? 야! 너 교신한 거 맞아?”

“MD500 두 대 용산에서 떴답니다! 2분 내에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철책 근처에 쏘지 말고 허리 끊으라고 해! 허리! 도로를 날려도 돼!”

그들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어책을 다 동원해 보려 애를 썼지만, 애초에 가지고 있는 밑천이 너무 적었다.

현재 잠실에 남겨진 병력은 대대 규모 이하. 공중 지원을 오는 것도 겨우 두 대의 소형 헬기.

탑재할 수 있는 무기는 대당 로켓포 두 문씩, 7연발이니까 모두 합쳐 28발이다. 10만을 전멸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말 운이 좋아서 도로가 폭발하고 아래로 푹 꺼져 준다면, 좀비들이 몰려드는 속도를 잠시 멈출 수는 있을 것이다.

“18일 02시가 고비랍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겠냐는 질문에 뒤늦게 대답이 돌아왔다. 18일 02시면 내일 새벽이다. 무전기를 잡고 있던 장교가 인상을 쓰며 다시 물었다.

“고비라는 게 뭐야? 그 시각을 넘기면 안정세로 돌아설 거라는 소리야?”

“그 시각 이후로는 버틸 수단이 없답니다!”

동남쪽 저지선과 교신을 하고 있던 병사가 대답했다. 장교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빠듯해…….”

지금 시각이 19시 24분. 앞으로 여섯 시간 반 만에 잠실에 있는 모든 민간인들과 병력들이 퇴각을 마쳐야 한다. 그 수를 다 합치면 적어도 5천 명은 될 것이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진다. 그때부터는 한 시간에 500명 이동도 쉽지 않다.

암흑 속에서 좀비들에 방어선이 뚫리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장교의 목덜미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장교는 입술을 한 번 꽉 깨물어 기합을 넣고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장갑 트레일러 계속 운행하라고 해! 그리고 너! 태양 그룹에 연락해! 인원 수송 속도 올려 달라고! 통보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는지도 물어보고!”

“난리 났군.”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민구가 야구장 내부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오늘 오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질서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온 이후부터는 모든 것이 대혼돈에 휩싸여 버렸다.

총소리가 가까이에서 울려 댄 건 이전에도 여러 번 겪었지만, 이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군인들이 야구장을 돌며 빨리 밖으로 나가라는 소리를 외치고 있다. 정말로 막장까지 몰린 모양이다.

“다들 나가세요! 여기 비웁니다! 태양 그룹으로 가실 분들은 2―1 게이트로 나가시고! 용산 철로 가실 분들은 2―3 게이트로 가셔서 종합운동장을 향해 뛰어야 합니다! 거기! 나가세요! 실제 상황입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웅크리고 있는 민간인들을 향해 병사들은 악을 써 댔다. 같은 말을 계속 큰 소리로 외쳐 대느라 그들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고, 눈에는 핏발이 어렸다.

“군인 아저씨… 왜 그래요, 갑자기…….”

겁에 질린 사람들이 울먹이며 묻는다. 병사들은 그들이 잡는 손을 뿌리치며 그저 나가라는 소리만 반복했다. 일일이 대답해 주고 설명할 시간이 없다.

“비켜! 좀 비켜봐!”

사물함 주변에서는 자신의 물건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서로 밀치고 당기며, 대단한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남의 물건을 훔치려는 얼간이들까지 가세해서, 그 일대는 발 디딜 틈조차 없다.

“태양 그룹! 이쪽! 이쪽!”

“용산 철로 이쪽!”

길목마다 안내를 맡은 병사들이 큰 소리로 방향을 일러준다. 태양 그룹으로 보내 달라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길목이 꽉 막혔다.

민간인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뛰어다니고, 난리 통에 부모와 떨어진 꼬마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야구장 내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이게 뭐야…….”

야구장 건물 내부로 돌아온 민구는 호주머니 속에 든 칼을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계까지 내주고 기껏 이 싸구려 칼을 샀는데 기동이 놈이 오기도 전에 잠실 쉘터는 문을 닫게 생겼으니, 복수고 뭐고 다 텄다. 그 밉살스러운 놈의 목을 딸 생각에 설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젠장, 그 새끼 명줄 한 번 길구만…….”

민구는 분한 마음을 꾹 누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지금 담배 두어 갑을 꺼내기 위해 사물함에 가서 시간을 허비하는 건 바보짓이다.

“꺄아악!”

태양 그룹 이동 희망자 줄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비명. 거기에 호통 소리와 욕설이 더해진다. 새치기를 하려다가 붙잡힌 사람들이 집단으로 린치를 당한다. 인정이고 매너고 모두 실종되어 버렸다.

두들겨 맞는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듣자마자 민구의 얼굴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그 계집애는…….”

민구는 사람들을 헤집고 다니며 테라를 찾았다. 태양 그룹으로 가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 분명 용산 철로로 가는 줄에 서 있을 것이다. 아니면 예전처럼 모든 걸 포기한 놈들에 의해 화장실로 끌려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대체 어쩌자는 거냐… 응? 뭘 어쩌고 싶어서 이러는 거냐고.”

사방으로 눈을 돌리며 테라를 찾는 동안 민구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무리 예쁘장한 계집애라고 해도 어차피 남이다. 그런데 지금 그는 마치 잃어버린 첫사랑이라도 찾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그녀를 찾아 헤매고 있다.

민구 본인도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모르겠다. 사랑이나 동정 같은 한두 마디로 딱 떨어지게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다.

그저… 그 착하고 여리여리한 계집애가 누군가에게 짓밟히고 상처를 받는 일만은 보고 싶지 않았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다.

그것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민구는 필사적으로 테라를 찾았다.

“젠장, 어디야… 어디 있는 거냐?”

야구장 내부는 넓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인파를 누비며 그 조그만 계집애를 찾는다는 건 꽤나 힘이 드는 일이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군인들의 목소리가 쉬어갈수록 민구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더해졌다.

하늘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지금 출발해서 줄을 선다고 해도 밤이 오기 전에 야구장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말까다.

쾅―

화장실을 지날 때마다 민구는 자신도 모르게 문을 열어젖히고, 그 안에 테라의 모습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미친놈처럼 야구장 전체를 헤집고 다니던 끝에 민구는 겨우 테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 있었구나…….”

민구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테라는 두 명의 꼬마 아이를 품에 꼭 껴안은 채 겁먹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두 꼬마 중 하나는 민구에게 주스를 가져다주며 삿대질을 해 대던 놈이다.

“아저씨!”

민구를 알아본 테라가 반가워하며 불렀다. 민구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도망가지 않고 여기서 뭘 하고 있어? 이것들은 뭐야?”

“얘들… 엄마를 잃어버렸어요. 아까 사물함 주변에 사람들이 몰렸을 때 헤어졌나 봐요. 두 분 다 아마 이 부근에 계실 텐데…….”

테라가 말했다. 꼬마들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그녀에게 비벼 대고 있다. 민구는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군인들에게 맡기고 나가야 돼! 여기에서 이렇게 허비할 시간 없어!”

“아뇨… 아저씨 먼저 나가세요. 이 애들 아무도 챙겨주지 않을 거예요. 엄마랑 만나게 해줘야 해요.”

테라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버텼다. 엄마랑 만나게 해줘야 한다는 그녀의 말이 고아인 민구의 가슴을 송곳처럼 쑤신다.

“젠장!”

욕설을 내뱉은 민구가 테라에게 물었다.

“이것들 이름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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