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79화 (379/449)

5장 규모 여섯 접근 중! (3)

“엉? 어떻게 알았어? 응, 맞아… 왜?”

강 소위가 고개를 끄덕인다. 바짝 긴장한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그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하아~ 이거 어쩌지?”

유빈은 난감하다는 듯 얼굴을 쓸어내렸다. 친구들은 모두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 있다.

“티 내지 말고 가만히 기다리다가, 헬기가 내리면 싹 다 죽여 버리자. 그게 제일 확실해.”

진우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투로 끔찍한 이야기를 했다. 강 소위와 김 중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 뭐? 싹 다 어떻게 한다고? 죽여? 안 돼!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하는 거야?”

진우의 표정이며 분위기가 정말로 그렇게 할 기세여서 더욱 당혹스러웠다. 이 친구의 솜씨라면 말릴 틈도 없이 끝나 버릴 것이다.

“쟤들이 어떤 애들인지 모르시죠? 저놈들은 사람 잡아다가 좀비 밥으로 준다고요.”

태권소녀가 말했다. 강 소위와 김 중사는 갑자기 이 친구들이 왜 이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저기,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저 사람들 태양 그룹 직원들이야. 정식으로 군이랑 협력하고 있는 업체라고. 우리도 그동안 저 헬리콥터를 통해서 계속 물자 보급도 받았고…….”

강 소위가 고개를 저었다. 유빈이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말을 믿으셔야 돼요. 강 소위님이 말씀하시는 그 태양 그룹이 바로 그놈들입니다. 사람 사냥해서 좀비 밥으로 주는 개새끼들이라고요. 제 이 얼굴… 왜 이렇게 멍투성이가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저놈들이 한 짓이에요.”

강 소위와 김 중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이 친구들이 갑자기 단체로 미쳤을 리는 없으니, 허튼 소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황당한 이야기를 온전히 믿는다는 것도 무리다.

“증거도 있어요. 휴대폰 화면으로 찍은 건데… 야, 그것 좀 꺼내봐.”

태권소녀가 유빈에게 손을 내민다. 유빈은 도리질을 했다.

“안 가지고 왔어. 누굴 보여주려고 그걸 갖고 다녀? 괜히 망가지기나 하지. 하여간 강 소위님, 저 새끼들은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이에요. 내리자마자 전부 체포해 버리세요.”

유빈이 강 소위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혼란스러워진 강 소위는 눈만 껌뻑거렸다.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얼마나 믿어야 하는 걸까?

이 어린 친구들에게 목숨을 빚진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친구들이 죽이자고 하는 놈들을 다 죽일 수는 없다.

군의 최우선 협력 업체 직원들을, 그것도 지원을 요청받아 출동한 사람들을 사살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투투투투투투―

그렇게 강 소위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 두 대의 헬리콥터는 주차장에 내려앉았다. 강 소위는 화들짝 놀라 진우부터 찾았다. 조금 전 말처럼 갑자기 달려들어서 다짜고짜 승무원들을 다 쏴 죽여 버릴까 봐 무서웠던 것이다.

“지, 진우 군은?”

하지만 진우는 이미 바람처럼 어디론가 모습을 감춘 뒤였다. 하늘이 노랗게 되어버린 강 소위는 유빈의 어깨를 꽉 잡고 말했다.

“진우 좀 말려! 자네들이 하는 말을 다 믿는다고 해도 여기서 죽이는 건 안 돼! 태양 그룹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나 하나 총살당하는 걸로 감당이 안 되는 큰일이라고! 저기에서 보급을 받는 다른 쉘터까지, 수만의 사람들 목숨이 달려 있어! 알겠나!”

“위험하지 않으면 먼저 죽이지는 않을게요.”

그 정도라도 유빈의 약속을 얻어낸 강 소위와 김 중사는 그제야 억지로 얼굴을 펴고 헬리콥터 쪽으로 걸어갔다. 헬리콥터 주변에 몰려든 민간인들은 구조 받을 것이란 기대에 차서 펄쩍펄쩍 뛰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병사들에게 유빈 일행을 감시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병사들이 그 명령을 따를지조차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유빈 일행이 진심으로 나서면, 병사들 몇 명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강 소위님? 저 친구들 말, 어디까지 믿어야 합니까?”

걷는 동안 김 중사가 정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강 소위도 옆을 돌아보지 않으며 조용히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허튼소리 할 녀석들은 아니지만… 일단 탄약만 받고 조용히 보내죠. 자세한 건 그다음에 이야기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거기까지 이야기를 했을 때, 태양 그룹 직원들이 웃는 낯으로 악수를 청해왔다.

“아이구,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하,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보니까 아주 난리도 저런 난리가 없었을 것 같던 데요. 우와, 철책이 다 무너졌네요.”

양복을 입은 직원이 말했다. 강 소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자주 보던 얼굴들이고, 자주 보던 검은 군복들인데, 유빈의 말을 듣고 나니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모두 다섯 사람이 내렸다. 양복을 입은 사람 하나, 나머지는 사설 경비 병력들.

“저… 우리가 요청한 건 잠실에 연락을 좀 해달라는 거였는데, 왜 이렇게 직접…….”

강 소위는 양복쟁이에게 물었다. 양복쟁이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잠실이 요즘 정신없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철로 쪽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다들 거기에 집중하는 분위기고요. 연락을 드렸는데, 오히려 저희한테 부탁을 하시더라고요. 다만, 한 이천 발 정도라도 전달해 주면 안 되겠냐고요. 번거롭지만 이왕 돕는 일이니까, 저희 시설로 옮겨가기 원하시는 분들 계시면 모시고 갈 겸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이천 발이요? 요청한 건 만 발이었는데…….”

강 소위가 말했다. 실탄의 양이 너무 차이가 나서 민간인을 옮기겠다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양복쟁이는 허허, 하고 웃으며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천 발도 저희로서는 엄청 신경 쓴 겁니다. 요즘 사방에서 실탄을 요구하는 통에 남부의 저희 공장이 거의 24시간 돌아가고 있는데도 물량을 못 맞춰요. 그런데 사실… 이천 발이면 어느 정도 방어는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그리고 정 힘드시면 민간인분들은 저희가 모셔 가겠습니다. 아, 물론 가시고 싶다는 희망자만 받습니다.”

강 소위는 녀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유빈의 말을 듣고 나서 그런지, 녀석이 하는 말들이 모두 다 사기처럼만 느껴진다.

혹시… 잠실로 무전을 하지 않은 건 아닐까? 일부러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고, 민간인들을 데려가서 정말 유빈의 말처럼 좀비 밥으로 주려고…….

근데, 대체 좀비 밥이라는 게 뭐야? 그런 짓을 해서 뭐를 얻을 수 있지?

강 소위는 흐르는 땀을 닦았다. 머릿속이 너무도 혼란스러워서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도 분간이 안 간다. 옆에 서 있던 김 중사가 얼굴이 벌개져서 입을 열었다.

“전에도 우리가 보호하고 있던 수감자들을 데려가셨던데… 그거 곤란합니다. 민간 기업이 그렇게 임의로…….”

“임의요? 하하하, 그렇게 할 수가 있나요? 저희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거 아닙니다. 에이, 그렇게 말할 게 아니라 아예 통화를 해보시죠. 잠실에서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시면 알 겁니다.”

양복쟁이는 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강 소위와 김 중사에게 헬기 쪽으로 가자는 손짓을 했다. 두 군인은 잔뜩 긴장한 채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세 사람이 헬기를 향해 멀어졌을 때, 남아 있던 네 명의 검은 군복 중 한 놈이 입을 열고 나직이 지껄였다.

“잡아갈 놈들 많네요. 어제까지만 해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음!”

메이저는 입을 삐쭉거리고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 싶은 지난 24시간이었다. 특히 잠실로부터 정식으로 수용 요청을 받았을 때에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다.

어젯밤만 하더라도 그와 오 박사는 직원들 중 어떤 놈들을 어떻게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실험체로 삼아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주 풍년이 났다. 잠실에, 건대에… 앞으로 한동안 실험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저, 저년들을 다 끄, 끄, 끌고 가야 하는데…….”

한쪽에 몰려 서 있는 민간인 여자들을 보며 메이저는 군침을 삼켰다. 파멸의 마녀, 그 쌍년 때문에 샘플들을 다 빼앗겨서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었는데, 오늘 밤에는 아주 화끈하게 놀아도 될 것 같다.

“어, 저년 저거… 저것도 꽤 새끈합니다. 근데 저년이 왜 저렇게 빤히 쳐다봐?”

주변을 둘러보던 쉐도우 실드 대원이 체육관 쪽에 시선을 둔 채 중얼거렸다. 팔다리가 길쭉길쭉하고 쪽 뻗은 계집애 하나가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하아아~”

태권소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헬리콥터에서 내려 강 소위와 이야기를 나누는 무리 중에 그놈이 있었다. 예전 동료들을 모두 데려간 그 개자식이… 꿈에서도 잊지 못했던 그 새까만 얼굴의 범인이 지금, 자신과 같은 공간에 와 있다.

태권소녀는 천천히 녀석을 향해 걸어갔다. 다른 검은 군복 놈들이 자신을 빤히 노려보는 것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한 사람, 메이저에게만 고정되어 있다.

“혜주야, 왜 그래?”

유빈이 만류하는 손을 뿌리친 태권소녀는 메이저의 앞에 가서 섰다.

“야!”

태권소녀가 메이저를 불렀다. 메이저는 그녀를 한 번 힐끔 보더니, 이내 몸을 틀어 시선을 피했다. 태권소녀는 다시 불렀다.

“야! 너! 안 들리냐?”

안 들릴 리가 없다. 하지만 메이저는 애써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절대 말썽 피우지 말아달라고 오 박사가 신신당부를 했던 걸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이미 김 준장에게 호되게 한 번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어서 민간인들과 부딪쳐 큰 소리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잠실에는 더 이상 얼씬거릴 수 없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마저 사건을 일으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친년인가? 바, 바, 반말을 찌, 찌, 찌, 찍찍 하네?”

그렇게 받아친 메이저는 자리를 피하기 위해 걸음을 뗐다. 태권소녀는 그의 앞을 다시 막아섰다.

“나 기억하지?”

“모, 모, 몰라, 미친년아. 너, 너 같은 년.”

“기억 못한다는 게 더 열 받네. 어차피 죽여 버릴 만큼 열 받아 있지만. 야, 자세 잡아라. 나중에 비겁하니 뭐니 하지 말고.”

태권소녀는 메이저를 노려보며 말했다. 메이저는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한 번 치고 옆으로 비켜선다.

“분명히 경고했다.”

말을 마친 태권소녀는 벼락같은 뒤돌려 차기를 날렸다.

휘이익, 매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린다. 하지만 메이저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재빠르게 몸을 틀어 아슬아슬하게 태권소녀의 발차기를 피했다.

“아, 지, 진짜 이런 씨발년이… 조, 조용히 사, 살아보려고 하는데…….”

메이저는 침을 탁, 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대신에 세 명의 쉐도우실드 대원이 나섰다.

“아니, 이 아가씨가 왜 이래! 난동 피우지 마요!”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큰 소리를 질러 주의를 끈 뒤, 메이저와 태권소녀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그래, 어차피 너희도 다 같은 놈들이지.”

태권소녀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발차기로 첫 번째 쉐도우 실드 대원의 턱을 돌렸다. 그러고는 연속 동작으로 두 번째 놈의 복부를 걷어찼다.

180도 몸을 회전시켜 세 번째 킥을 하려는 순간에 메이저가 치고 나왔다.

파악―

메이저의 로우킥이 태권소녀의 정강이를 노리고 들어온다. 물론 그 정도에 당할 만큼 태권소녀는 무르지 않다. 그녀는 얼른 허벅지를 들어 올렸다.

그때, 세 번째 쉐도우 실드 대원이 그녀의 측면에서 태클을 시도했다.

“윽!”

태권소녀의 중심이 흔들렸다. 태권소녀는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세 번째 놈의 등을 때리면서,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때, 완전히 다운되지 않았던 두 번째 놈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태권소녀의 발을 걸어 당겼다.

“으윽!”

중심을 잃고 쓰러진 태권소녀의 입에서 안타까운 신음이 터진다. 허벅지 위에 올라탄 세 번째 놈을 뿌리치려 하는 동안에 두 번째 놈이 그녀의 오른팔을 잡는다.

“이익! 익!”

태권소녀는 어떻게든 놈의 얼굴을 후려쳐 보려고 왼손을 열심히 휘둘렀다. 하지만 등이 땅바닥에 닿은 상태에서는 위력 있는 펀치를 뻗기 어렵다. 두 번째 놈은 팔로 얼굴을 가드하면서 태권소녀의 오른팔을 오금에 끼고 당겼다.

사람들의 시선이 금세 그들을 향해 집중된다. 휴식하던 민간인들도, 작업을 하던 병사들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헬리콥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강 소위와 김 중사도 화들짝 놀라 뛰기 시작했다. 몇몇 병사들이 그들을 태권소녀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달려온다.

“혜주야!”

유빈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린다. 메이저는 누워 있는 태권소녀를 깔보며 거만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지, 진짜 미친년일세. 좆도 아닌 년이.”

저 낯짝을 아주 박살을 냈어야 하는데!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 태권소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너무 흥분해서 앞뒤 가리지 않았던 게 잘못이다. 거리를 벌려가며 싸웠어야 했는데…….

메이저는 징그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으며 씨익 웃었다.

“너, 너는 우, 운 조, 좋은 줄 알아, 이 개년아. 구, 구, 구경하는 사, 사, 사람들만 어, 없었으면… 커흐흑!”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던 메이저의 말이 끊기고, 그의 몸이 공중으로 부웅 떠올랐다. 빙글거리며 밉살맞게 웃고 있던 얼굴은 순식간에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보안관이다.

보안관의 오른손 어퍼컷이 메이저의 왼쪽 옆구리를 송곳처럼 파고들어서 깊숙하게 찔러 올리고 있었다.

으드득, 거짓말처럼 강한 힘에 의해 허공에 들려진 메이저의 갈비뼈 부근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왔다.

“꺼어억―!”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 메이저의 몸이 다시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보안관의 팔꿈치가 홱 돌며 녀석의 얼굴을 때렸다.

피싯, 날카로운 팔꿈치에 찢긴 눈꺼풀이 벌어지며 빨간 피가 솟고,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코뼈는 그대로 부러져 버렸다.

쿵―

메이저는 낙법조차 쓰지 못하고 뻗어버렸다. 녀석의 등이 땅에 닿기도 전에 보안관은 태권소녀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고 있던 세 번째 놈의 복부를 향해 엄청난 기세의 사커 킥을 날렸다.

뻐억―!

단 일격! 그걸로 충분했다. 녀석의 몸은 동그랗게 말린 채 옆으로 날아갔다. 보안관은 발차기를 한 그 기세대로 몸을 날려 두 번째 놈의 얼굴에 무릎차기를 꽂아 넣었다.

“으아앗!”

두 번째 놈은 뒤늦게나마 태권소녀의 팔을 놓고 방어를 해보려 했지만, 팔과 무릎은 뼈의 크기와 가해지는 힘 자체가 다르다.

“크허헉!”

허무하게 가드가 뚫린 두 번째 놈은 얼굴이 피투성이로 변한 채 뒤로 나가떨어졌다.

“…보안관!”

태권소녀가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보안관은 그녀의 앞을 떡 막아서며 사자후를 내질렀다.

“뭐야, 이 개새끼들아! 누가 연약한 여자한테 깝치래!”

헬리콥터에 타고 있던 쉐도우 실드 대원들도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승무원이 잠실로 다시 연락하기 위해 무전기에 손가락을 뻗을 때, 그의 코앞에 검은 총구가 겨눠졌다.

“아냐, 아냐. 그대로! 두 손 머리! 너도!”

진우는 승무원들과 헬기에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에게 총을 겨눈 채 말했다.

“저, 저거 뭐야? 저 새끼!”

두 번째 헬기의 승무원들이 깜짝 놀라 총에 손을 뻗으려 할 때, 네 개의 총구가 그들 앞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움직이지 마. 군대가 우습냐?”

진우가 옥상에서 구조했던 네 명의 병사였다. 두 대의 헬리콥터는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이제 보안관이 마음대로 놀게 해주면 된다.

“일어나, 이 새끼야!”

보안관은 배에 발차기를 맞고 구역질을 하고 있는 세 번째 놈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가 봤던 광경에서는 혜주의 허벅지를 짓누르고 있던 이놈이 제일 나쁜 놈이었다. 보안관은 곧바로 녀석의 얼굴에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었다.

빠악―!

언제 봐도 아찔한 그의 펀치!

세 번째 놈은 눈의 흰자를 내보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응? 뭐냐고! 오줌 누러 간 그 짧은 사이에!”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지른 보안관은 바지 지퍼를 올리며 메이저를 향해 다가갔다. 밖이 시끄러워지는 바람에 지퍼를 올릴 틈도 없이 내달려 왔던 것이다.

“크흑! 으으~!”

메이저는 당혹스러워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살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싸움을 해봤지만, 이렇게 아픈 펀치는 처음 맞아봤다. 단 한 방이었는데 갈비뼈에 금이 가고, 옆구리 근육이 다 파열된 것 같다.

게다가 저놈…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다가오는 기척을 눈치 채기도 전에 이미 공격을 마칠 만큼 빠르다.

“보안관! 놔둬! 그 새끼는 내 거야!”

태권소녀가 외쳤다.

“응?”

일단 몇 대 두들겨 주고 나서 대화를 하려던 보안관은 그녀를 돌아보며 손을 멈췄다. 태권소녀는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저놈이 바로 그 새끼야. 우리 애들 다 데려갔던 새끼.”

그 말을 듣자마자 보안관은 화를 이기지 못하고 곧바로 백핸드를 휘둘러 메이저의 얼굴을 후려쳤다. 하지만 메이저는 얼른 가드를 올려 그의 공격을 팔로 막아냈다.

“어쭈? 막아?”

보안관은 입을 앙다물고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이런 개새끼는 따귀를 때려서 죽여도 시원치 않다.

“그만해! 제발 그만!”

뒤늦게 뛰어온 강 소위와 김 중사가 그들 사이에 끼어든다. 양복쟁이도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항의를 한다.

“아니! 이거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저희는 잠실에서 요청을 받고 구조를 해드리러 왔는데, 이게 무슨 짓입니까? 민간인 통제를 이렇게 하셔도 되는 거냐고요?”

“구라 치지 마. 어차피 잠실에 이야기하지도 않았잖아.”

유빈이 말했다. 양복쟁이가 고개를 젓는다.

“뭐라고요?”

“거짓말하지 말라고! 무슨 속임수를 써서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려고…….”

“유빈 군! 제발!”

강 소위가 애원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유빈의 말을 끊었다. 그는 얼굴에 흘러내린 식은땀을 닦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거짓말은 아니야. 조금 전에 잠실 쉘터 통제실과 무전 통화했어. 태양 그룹으로 이동을 원하는 민간인이 있으면 보내주라고, 오늘 여단장님이 허락하셨다더군. 이분들 말이 맞아.”

“왜… 왜 그런 바보짓을… 이 새끼들이 어떤 놈들인지…….”

유빈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놈들에게 공식적으로 허락을 해줬다고?

그건 말이 안 된다. 강 소위는 유빈이 더 말을 잇지 못하도록 그의 두 손을 꼭 잡고 간곡하게 말했다.

“이게… 우리 쉘터만의 문제가 아니라니까. 잠실에서 태양 그룹 쪽으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앞으로의 보급도 그렇고… 나는 이 사람들에게 협조를 해야 하는 처지야.”

유빈의 말문이 막혔다. 김 중사는 병사들과 함께 쓰러져 있던 쉐도우 실드 대원들을 부축해 일으킨 후,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유빈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이런 불합리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하지만… 명령이 내려왔다는 데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친구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보안관이 나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군인들이 이 새끼들이랑 뭔 거래를 했는지 난 그런 건 몰라! 내가 아는 건, 이 개새끼들 네 명이 내 여자 친구를 성추행했다는 거야! 당신들도 다 봤잖아! 남자 새끼들 넷이 달려들어서 얘 하나를 눕히고 낄낄거리는 거!”

민간인들도, 군인들도, 메이저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여, 여자 친구였구나……. 아무리 그래도… 더 때려야 속이 풀리겠나, 광훈 군? 중재를 좀 하고 싶어.”

강 소위가 진땀을 흘리며 물었다. 생명의 은인들에게 배은망덕하게 굴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협조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은 또 커다란 문제가 된다.

고개를 저은 보안관은 메이저를 지목하며 말했다.

“중재 같은 건 안 받아. 가해자인 이 새끼랑 피해자인 혜주랑 결판을 지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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