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77화 (377/449)

5장 규모 여섯 접근 중! (1)

실탄을 갚아주겠다는 제안은 꽤나 의외였고, 솔깃했다. 유빈은 조금 놀라서 강 소위에게 물었다.

“그렇게 마음대로 총알을 주셔도 되는 거예요? 다른 분들이 알게 되면…….”

“부사관들과는 의견을 맞췄어. 생명의 은인한테 그 정도는 당연히 갚아야 한다고 다들 말해주셨고. 그래봐야 겨우 빌려 쓴 걸 돌려주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도리라고 할까. 아, 물론 실제로 지급된 양이 2천 발이나 3천 발 수준이라면, 이 약속은 못 지켜.”

강 소위가 말했다. 아마 그들끼리 꽤나 진지하게 논의를 했던 모양이다. 그렇게까지 말을 한다면 이쪽에서도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진우가 자신의 총알 절반을 뚝 떼어 내놓을 때,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유빈은 옆에서 지켜봤다. 진우에게는 총알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한 물건이다.

“네, 그러면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고맙습니다.”

유빈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강 소위는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맙긴, 그거야말로 이쪽에서 할 말이지.”

강 소위와 헤어진 유빈은 계단을 내려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체육관의 구석으로 향했다. 친구들은 작은 플래시를 중심으로 모여 앉아 제니의 생일과 오늘 그들이 겪었던 싸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래? 다른 데 가서 자도 된대?”

유빈이 가까이 다가가자 신입이 물었다. 진우는 조금 다른 걸 물었다.

“여기 구조는 어떻게 진행될 계획이라고 하셔?”

유빈은 진우의 옆에 끼어 앉았다. 삼숙이에게 녀석이 그토록 사랑하는 진우와 자신이 친하다는 걸 자주 보여줘야 그 서열인지 뭔지가 좀 올라갈 것 같아서 일부러 그 자리를 골랐다.

“음, 뭐, 나가서 자는 거는 굳이 안 될 건 없을 것 같던데. 그리고 구조는 아니고, 내일 점심때쯤이면 헬리콥터가 총알 가져다줄 거라고 그러시네. 총알만 넉넉히 있어도 사흘 뒤에 이동할 때까지 충분할 거야. 말이 사흘 뒤지, 실제로는 이틀 밤만 더 버티면 되는 거잖아. 이동을 밤에 하지는 않을 테니까.”

유빈의 대답을 들은 친구들은 잠시 어디에서 이 밤을 보낼 것인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규영이나 신입은 불편하고 좁은 체육관보다 한적한 건물로 가고 싶어 했고, 보안관과 진우는 이 밤 동안만이라도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은 눈치였다. 자신들이 구해낸 사람들이라는 묘한 유대감이 있는 것이다.

“그럼 각자 자기 자고 싶은 데서 자면 되지, 뭐. 자동차도 있겠다, 이동도 금방인데.”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서 유빈은 절충안을 내놓았다. 어차피 하룻밤인데다가 가장 위협이 되는 페인트 좀비들의 방향을 돌려놨으니, 그건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총알이 좀 여유 있게 오면, 강 소위님이 너한테 총알을 갚고 싶대.”

유빈은 진우에게 귀엣말을 해줬다. 진우도 반색을 한다.

“오, 그래? 잘됐다. 그럼 이왕 손 내미는 김에 K―2도 하나만 달라고 해볼까?”

“총은…….”

유빈이 좌우를 한 번 더 둘러보고 나서 속삭였다.

“벌써 챙겨서 네 총알이랑 같이 넣어놨어. 그, 박 소위라는 사람이 쓰던 거 있지? 그건 임자 없는 거니까.”

말을 마친 유빈은 공연히 쑥스러워 헛기침을 했다. 어차피 체육관 내부가 꽤나 시끄러워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들의 말이 들릴 일은 없었다.

체육관의 동쪽에서는 고단했던 어제의 몫까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코를 골아댔고, 서쪽에서는 아직도 흥분이 다 가라앉지 않은 사람들끼리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중이다.

“우리는 내일 오후에 여기에서 나갈 거야. 그러니까 떠날 준비를 미리 해두자고. 삼식이는 아직도 안 왔냐?”

유빈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뒤늦게 삼식이의 부재를 깨달았다. 만약 이렇게 안 보이는 게 다른 사람이었다면 꽤나 걱정스러웠겠지만, 삼식이는 다르다. 녀석이 뭘 하고 있는지 친구들이라면 다들 잘 알고 있다.

“아까 저쪽에 잠깐 있었어. 꺅― 꺅― 거리면서 여자들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또 금방 사라지더라.”

태권소녀가 지하로 난 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유빈, 진우, 보안관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생일을 맞은 건 제니인데 파티는 엉뚱한 새끼가 하고 있다.

“근데, 누나는…….”

유빈이 임수정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꺼냈다.

“이런 걸 물어보는 게 어떨지 모르겠는데요, 누나는 여기에도 일행이 있잖아요.”

“음, 그렇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네.”

뭘 물어보는 건지 알겠다는 듯 임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 하사와 함께 있으려면 내일 건대에 남아야 하고, 이 친구들을 따라가려면 떠나야 한다. 둘 중 한쪽과는 이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도 고민하고 있어. 근데 선택하기 전에 물어보고 싶은 건, 내가 너희들과 함께 있으면 짐이 되지 않는 걸까 하는 거야. 나는 너희들하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또 처음부터 일행도 아니었으니까 조금은 불편한 점이 있을 테고…….”

임수정은 늘 그렇듯이 차분하게 말했다. 제니와 태권소녀가 도리질을 했다.

“아니에요, 짐이라뇨. 그리고 불편할 게 어디 있어요. 언니처럼 조용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랑 같이 지내는데…….”

“훗, 그렇게 말해주니까 조금 안심이 되네. 고마워. 저기… 내일 떠나기 전까지 좀 더 생각을 해보고 결정할게. 그래도 되는 거지?”

임수정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테라를 찾아 나서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진우와 이렇게 함께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군자역 같은 곳에 굳이 올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고 하사를 구하는 것도, 건대 사람들을 돕는 것도… 다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다.

“하아암~”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의 입에서 결국 하품이 터져 나왔다. 장장 40시간 이상을 전혀 못 자고 계속 뛰어다녔으니 당연한 일이다.

“좀 자요. 우리 그냥 여기 있을게요.”

유빈이 억지로 눈을 비비고 있는 걸 보며 규영이 말했다. 임수정도 그렇게 하라고 권한다.

“그래… 그럼, 조금만 누워 있을게. 다시 돌아가고 싶으면 깨워.”

유빈은 못 이기는 척하고 쪼그려 누웠다. 진우도, 보안관도 그 곁에 웅크린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하아, 젠장.”

신입이 한숨을 쉰다. 이 냄새나고 좁은 건물이 정말 짜증나게 싫었지만, 그냥 꾹 참기로 했다. 저렇게 고단히 자는 녀석을 깨우기는 아무리 그라고 해도 쉽지 않다. 그리고 사실, 다른 건물에서 혼자 자게 될까 봐 그게 무섭기도 했다.

☆ ☆ ☆

같은 시각, 밤톨은 잠실 쉘터의 동남쪽 외곽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야, 저쪽 다시 비춰봐.”

밤톨은 종합운동장 사거리 방향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서치라이트를 담당하고 있는 병사들이 얼른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쪽으로 라이트를 돌린다.

밤톨은 눈을 가늘게 뜨고 환한 빛으로 덮인 도로와 가로수들을 노려보았다.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조 병장님?”

무전병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민구에게 오발 사고를 냈던 그 녀석이다. 밤톨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무가 흔들린 걸 보고 착각했었나 봐. 야, 라이트 다시 천천히 돌려.”

“네, 알겠습니다!”

라이트 담당 병사들은 다시 조명의 방향을 움직인다.

‘젠장.’

밤톨은 이마에 흘러나온 땀을 닦았다. 2중, 3중으로 쳐진 철책 내부에 초소가 있지만, 이렇게 칠흑 같은 밤에 불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도시를 노려보고 있는 것은 무지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바람에 깃발만 날려도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그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드는 존재가 또 하나 늘었다. 어디서 그렇게 덩어리를 크게 불려왔는지 모르겠지만, 끝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의 대규모 좀비들이 이따금씩 잠실 지구대 근처까지 접근해 온다.

아직 철책에 달라붙은 적은 없지만, 그래봐야 그 거리라는 게 불과 500미터 남짓이다. 500미터면 좀비들 뜀박질로 채 1분도 걸리지 않는다.

“조 병장님, 그거 걱정하시는 거 아닙니까? 엄청 많은 신흥 강자 좀비들. 걔들 요새 엄청 가까이 오던데 말입니다.”

고문관 끼가 다분한 김 이병이 옆에서 함부로 주둥이를 털어 댄다.

“야! 이 새끼야! 입에 담지도 말라고! 재수 없게시리!”

밤톨은 녀석의 얼굴을 노려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여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용한 놈이다. 장갑 트레일러가 뒤집혀서 좀비들과 싸웠을 때에도 이 새끼가 등 뒤에서 총을 쏘고 생 지랄을 하는 바람에 아주 간이 콩알만 해졌었다.

“근데 저희는 언제까지 여기에서 근무합니까, 조 병장님?”

무전병이 물었다.

“왜? 집에 가고 싶냐? 외박증 하나 끊어달라고 할까?”

밤톨은 싱거운 농담을 하면서 라이트가 비추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에이, 그런 말씀이 아니잖습니까. 다른 애들 다 철로 쪽으로 이동하는 분위기인데, 우리 중대만 계속 여기 잔류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지 말입니다. 벌써 여기만 해도 병력이 없지 않습니까?”

무전병은 등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밤톨 역시 알고 있다. 한때 북적거렸던 병력들이 지금은 다 빠져나가고 썰렁한 공터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매일 장갑 트레일러가 병력과 자재를 싣고 철로 쪽으로 이동한다. 덕분에 한 분대가 경계해야 하는 영역도 예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대이동인지 뭔지, 여단장의 변덕에 맞춰서 여단 전체가 아주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외곽 경비 담당인 그들에게는 아직도 이동 일정이 전달되지 않았다.

아마 맨 마지막 날까지 여기에서 이 모양으로 죽 때리다가 문을 닫고 가게 할 모양이다.

“아아, 몰라, 이 새끼야. 그냥 우리는 까라면 까고, 구르라면 구르면 돼. 설마 우리만으로 여기를 사수하라고까지야 하겠냐?”

밤톨은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여단장 휘하 높으신 분들이 철로 쪽으로 싹 다 빠져나가 버린 뒤라, 병사들의 불안감이 더 커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닙니다! 좀 더 빠르게 뛰어야 합니다!”

멀리 야구장과 주경기장 사이의 주차장에서는 이 늦은 시각까지도 이동 연습을 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아마도 내일 오전에 출발하는 100인조들인 듯하다.

조명으로 밝혀진 곳에서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보인다. 속도가 어지간히들 안 난다.

“아~ 심난하다. 저런 사람들 데리고 뛰라고 하면 속 터질 텐데… 나는 이 새끼 하나만 감당하기에도 돌아버릴 것 같은데 말이야.”

밤톨은 김 이병의 하이바를 톡톡 두들기며 중얼거렸다. 민간인들과 함께 이동한다는 게 얼마나 짜증스러운 일인지, 그는 이미 경험을 해봤다.

“그래도 그 칼잡이 아저씨 같은 사람이 많이 걸리면 좋지 않습니까?”

김 이병이 말했다. 민구를 지칭하는 거다. 밤톨은 녀석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야! 그런 사람이 몇이나 돼? 없어!”

심지어 민구 본인조차도 이제 예전 같은 움직임은 못 보인다. 다 그놈의 오발 사고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까, 그 아저씨는 벌써 이동했습니까? 어휴~ 이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 때문에 몸이 그 모양이 된 거라 신경이 쓰이는데 말입니다.”

무전병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밤톨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이동 안 했어. 그… 내가 개인 물품 보관소 애들한테 말해서 그 형님 이동하게 되면 맡겨놓은 칼을 한 자루라도 좀 돌려주라고 했거든. 근데 아직 그대로 있나 보더라고.”

밤톨은 어차피 민구가 더 이상 칼을 휘두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민구의 모습은 제대로 서 있기도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였다.

그렇게 밤톨과 병사들이 잡담을 늘어놓고 있을 때, 서치라이트 담당 병사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 병장님! 조 병장님!”

“왜 그래?”

“저, 저기!”

외마디 소리밖에 내뱉지 못할 만큼 병사들은 바짝 쫄아 있었다. 밤톨은 라이트가 고정된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씨발, 밤톨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온다.

좀비들, 엄청난 수의 좀비들이 올림픽로 방면에서 접근해 오고 있었다. 거리는 400미터 이내. 이미 이전까지의 근접 기록이었던 잠실 지구대를 넘어섰다.

“야, 라이트 좀 천천히 좌우로 훑어봐. 그 옆으로 오글거리는 건 다 뭐냐? 그림자야?”

지시를 받은 병사들은 라이트의 방향을 돌려가며 올림픽로 주변 전체를 천천히 비췄다.

하아~! 모든 병사들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탄식이 흘러나왔다.

올림픽로를 가득 메운 채 걸어오는 모습만으로도 기가 질리는데, 그 좌우 블록의 모든 골목들 마다에도 놈들이 꽉 들어차 있다. 아파트 건물 사이사이에 좀비들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저게 지금… 얼마나 되는 겁니까? 규모 여섯이라는 게 저 정도입니까?”

김 이병이 입을 제대로 다물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밤톨이 보기에도 최소 십만 단위는 되는 것 같다.

2미터 정도의 높이로 쌓아둔 사대에서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좀비의 행렬이 두 블록을 가득 채운 상태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하아, 젠장… 이제 그냥 돌아라, 좀. 더 붙지 말고.”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좀비들의 선두를 노려보며 밤톨이 애원했다. 외부 게이트 앞에서 전차가 지키고 있다고는 하지만, 저 정도 규모라면 전차 한두 대의 화력으로 저지해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병력의 주축이 철로 쪽으로 옮겨가 버린 지금, 잠실 쉘터에서 동원할 수 있는 최대 병력이라야 대대급 이하다. 상대가 될 리가 없다.

“조 병장님, 발포합니까? 이미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는데 말입니다.”

조준을 마친 채 계속 기다리고 있던 K―3 사수가 물었다. 녀석의 목소리가 덜덜 떨린다. 밤톨은 망설여졌다. 바로 100미터를 앞두고 돌아가 버릴 수도 있는데, 공연히 이쪽에서 먼저 자극을 했다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규모 여섯, 십만. 엄청난 숫자다. 놈들이 마음먹고 달려들면 크레모아 저지선이든 대인지뢰 구역이든 간에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전차는… 전차는 어디에 있어?”

밤톨은 전차가 배치되어 있는 아시아 공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엔진 소리는 들리는데 왜 아직까지 아무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

“반대 방향으로 순찰 중인 거 아닙니까? 소리가… 멀어지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무전병이 말했다. 밤톨의 귀에도 그렇게 들린다.

하아~ 하아~

분대원들의 숨소리가 점점 커지고 가빠졌다. 그사이에도 규모 여섯 짜리 좀비들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거리 300.”

라이트를 비추고 있던 병사가 보고했다. 외부 철책을 기준으로 그어놓은 야광 기준선 안으로 좀비들이 걸어 들어온 것이다. 모든 분대원들의 시선이 밤톨에게 쏠린다. 이제 그의 결정에 달렸다.

“하아~!”

크게 숨을 들이쉬어 목소리를 가다듬은 밤톨이 입을 열었다.

“동상 넘어오면 발포한다.”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250미터 지점 도로변 화단에 설치되어 있는, 오륜을 들고 있는 사람들 동상이 마지노선이다. 그것보다 더 접근할 때까지 발포하지 않으면 대응할 시간이 너무 짧아진다.

좀비들은 야속할 정도로 거침없이 접근해 왔다. 성큼성큼 걸음을 뗄 때마다 거리는 1미터씩 팍팍 줄어든다. 이를 앙다문 채 가늠자를 노려보고 있는 병사들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물론 그들이 이 자리에서 죽을 일은 없다. 만약 좀비들이 정말로 돌진해 온다고 해도 두 개의 폭발물 구간이 있고, 3중의 철책도 있으니까, 그사이에 퇴각하면 된다.

하지만… 퇴각한다고 해서 무슨 답이 있는 건지… 어차피 저 큰 규모가 단 한 점이라도 뚫고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보병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코브라 헬기라고 편대 단위로 떠준다면 모를까.

“후우~ 후우~”

가늠자 안에 들어온 좀비의 모습이 점점 커질수록 병사들의 긴장감은 올라갔다.

이제 260미터 정도나 남았을까? 동상이 바로 코앞이다.

투툭― 투투투투― 투투투투투―

한 박자 빠르게 울려 대기 시작한 K―3의 총성에 분대원들은 깜짝 놀라 덩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잠실 쉘터 외곽의 동남쪽 사대는 순식간에 요란한 총소리로 뒤덮였다.

투투투투― 투투둑― 투투두― 투투투투투투―

탄피가 정신없이 튀고, 화약 연기가 자욱해진다. 밤톨은 가늠자에서 눈을 떼고 좌우로 시선을 돌렸다.

동상까지 아직 10여 미터 남아있는 상황. 대가리가 터져 자빠진 좀비들의 시체도 그 부근에 널려있다. 저 멍청한 K―3 사수가 먼저 사격을 시작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사격 중지를 외칠 수도 없는 노릇. 밤톨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투투투― 투투툭― 투투두― 투투투투―

도로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빨간 불꽃들, 그리고 머리에 구멍이 뚫린 좀비들이 픽픽 쓰러진다. 특별히 조준을 섬세하게 할 필요도 없었다. 사방이 온통 다 좀비들로 덮여 있으니까.

높이만 맞춘다면 눈을 감고 당겨도 두 발 중에 한 발은 좀비에게 꽂힐 것 같은 상황이다.

‘젠장! 젠장! 이런 씨발!’

밤톨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좀비들이 워낙 많아서 아무리 쏴봐야 줄어드는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딱 크레모어가 터지는 순간까지만 이 자리를 지키리라 마음을 먹었다.

첫 번째 폭발음이 들리자마자 퇴각을 명할 거다. 어차피 몇 분 더 쏘고 있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250미터 지점을 통과한 좀비들은 크게 원을 그리며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자신이 조준하고 있던 좀비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걸 본 밤톨은 방아쇠울에서 손가락을 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야! 방아쇠에서 손 떼! 이 새끼들아!”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한 뒤에야 분대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사격을 잠시 멈췄다. 그들의 전방에서는 근접 직전에 진행 방향을 우로 튼 좀비들이 아주 길고 긴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동료 수십 마리가 사살 당했다는 것도 전혀 모르는 눈치다. 아니면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을 했든가…….

어쨌든, 좀비들은 아슬아슬하게 잠실 쉘터를 비껴가고 있었다.

“어허어~ 후우우~”

어찌나 많은지 시야 밖으로 다 빠져나가는 데만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동안 밤톨과 분대원들은 마음을 졸이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병사들의 한숨 소리가 크게 울린다. 오늘로 여기가 끝나는 줄만 알았다. 밤톨도 마찬가지다.

“이거… 위에다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김 이병이 울먹이며 물었다. 밤톨이 녀석에게 되물었다.

“뭐라고 보고를 해? 규모 여섯이 근접해 왔었는데 몇 방 갈겨주니까 그냥 가버렸다고? 그래봐야 눈이나 깜빡할 것 같아?”

“아니… 그래도… 점점 가까워지니까 말입니다…….”

“그래그래… 네 말이 맞다. 근무 교대할 때 구두로라도 보고는 해야겠네.”

밤톨은 눈에 들어간 식은땀을 짜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래봐야 위에서 뭔가 조처를 할 거라고는 기대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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