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74화 (374/449)

4장 더 킹 오브 건대 (3)

건대 쉘터 구하기 작전은 그 이후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쉘터 본관 주변에서 작업조가 새로 철책을 치고 체육관 내의 시체들을 정리하는 동안, 진우는 여덟 명의 병사를 이끌고 D동과 E동을 차례로 훑었다.

입구 부근에 담배 깡통을 던져 놓고 그 연기로 좀비들을 유인한 뒤, 차분히 저격 하면서 진입을 시도했다.

그 후로는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었다. 신속하면서도 침착하게 각층의 좀비들을 제압하고 옥상까지 올라가 사람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는다.

“구조대입니다!”

진우가 이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감격해 있던 사람들은 오열하거나 환호성을 내지른다. 그 뜨거운 분위기는 마치 꽃미남 아이돌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그들을 진정시켜 아래로 내려온다. 군인들은 진우가 이끌고, 구조된 민간인들은 보안관과 태권소녀가 인솔했다. 돌덩어리와 좀비 시체로 가득한 주차장의 끔찍한 풍경 때문에 잠시 발이 얼어붙는 민간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큰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보안관의 지시에 따라주었다.

“저 사람이 진우 요원 맞지?”

진우의 뒷모습을 보며 민간인들도, 군인들도 한목소리로 수군거린다. 강 소위가 어찌나 열심히 ‘진우 요원의 지시를 따르라’고 외쳐 댔는지, 쉘터 내에는 ‘진우’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어버렸다.

탕, 탕, 타앙―

쉘터의 지하실에서 울린 세 발의 총성을 마지막으로 건대 쉘터에 난입했던 좀비들은 모두 처리가 끝났다.

“하아아~!”

전 구역의 수색을 마친 진우는 주차장으로 걸어 나와 긴 한숨과 함께 피로가 쌓인 눈 주변을 꾹 눌렀다. 이렇게 혹사를 하는데도 아직 멀쩡하게 버텨주는 눈에게, 또 손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새 저녁 여덟 시가 가까워졌다. 어제저녁부터 거의 꼬박 24시간, 간간이 비를 맞아가며 눈을 붙이거나 휴식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잠이 들었던 건 다 합쳐서 한 시간 정도도 안 된다.

그 24시간 동안 쉘터 구석구석을 누비며 적어도 600마리는 넘을 좀비들을 죽였고, 7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살렸다.

“고생 많았어.”

진우는 구 상병과 황 일병, 그리고 C동에서 합류시킨 병사들을 치하했다. 그들의 협력이 없었다면, 이렇게 단시간 내에 쉘터 전체를 다 구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진우 요원님이야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병사들을 정렬시킨 뒤, 구 상병이 경례를 붙인다. 마주 경례를 하면서도 진우는 엄청 멋쩍었다. 이병이라는 걸 감추고 팔자에도 없는 요원 노릇을 하고 있자니, 어째 영 불편하다.

“정말 대단하구만, 단 하루 만에… 겨우 다섯 명이…….”

진우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강 소위가 유빈에게 말했다. 유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하루밖에 안 걸릴 거라고는 생각 안 했었어요. 진우, 저놈이 그냥 괴물인 거예요. 저놈은 제가 최고치로 잡고 있던 목표보다 두 배 정도는 해준 것 같아요. 물론 돌을 깨고 집어 던져 준 사람들도 다 고맙지만요.”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주차장에서는 시체들을 한쪽으로 모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는 중이었다. 말이 쉽지, 천 마리에 달하는 좀비 시체들을 들어 나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큰일이다.

당연히 민간인들도 돕고 나섰다. 훼손된 시체들을 보고 구역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들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뭔가 한 사람의 몫을 하려고 애를 썼다.

그들은 더 이상 군인들에게 모든 걸 미루려 들지 않았다. 난간을 깨서 던지며 좀비들에게 맞섰던 경험 이후, 이 쉘터의 민간인들에게 일어난 변화다.

땅― 땅―

체육관 내부에서는 외부에서 떼어 온 철책들로 창문과 출입문을 보강하고 있다. 도로 북쪽에서의 진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쉘터 건물 자체만이라도 좀비들을 버텨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직 쉘터의 남쪽에는 여러 겹의 철책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을 받을 만한 사실이었다.

“손전등, 양초 다 모아왔습니다.”

일군의 병사들이 박스 가득 조명을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가져와 내보인다.

“작업하는 장소에 비치하고 일몰 이후에 즉각 사용한다.”

명령을 내린 뒤 강 소위는 유빈과 함께 아직도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돌아가고 있는 두 대의 발전기 앞으로 걸어갔다.

김 중사에게서 받은 키를 꽂고 스위치를 내리자, 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가동이 멈췄다. 이 발전기에 홀려 몰려들 좀비 걱정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불 켜달라고 난리가 날 텐데… 워낙 무서운 경험을 했지 않나.”

전원 램프가 꺼진 발전기들을 보며 강 소위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유빈은 냉정하게 말했다.

“플래시 주변에 모여서 참으라고 하세요. 그냥 막연히 불안한 게 위험한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훗, 그야 맞는 말이긴 하지… 그런 것보다… 있지, 너무 고마움이 크니까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도, 유빈 군 일행이 해준 일의 만분의 일도 못 갚을 테니까 말이야.”

강 소위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기분이 들 지경이다. 하지만 유빈은 손사래를 치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저한테는 그런 말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야 뭐… 사실 별로 한 것도 없어요. 그냥 짐 들고 왔다 갔다 한 정도… 그런데, 진우나 보안관, 혜주한테는 지금 저한테 해주신 말씀 따로 이야기해 주세요. 쟤들도 기뻐할 거예요. 아… 맞다! 저는 무전 좀 보낼게요. 수정이 누나랑 친구들이 엄청 걱정하고 있을 테니까.”

허… 한 게 없다고?

유빈의 뒷모습을 보며 강 소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빼어난 능력의 친구들이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도록 이 모든 그림을 그려놓고서도 저렇게 말을 하다니… 강 소위는 좀비들의 악취가 가득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면서 가슴을 쭉 폈다.

어제는 핏빛으로 보였던 석양이, 오늘은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다.

다시 한 시간여가 지났다. 민간인들과 군인들은 청소를 마친 체육관 입구 주변에 모였다. 이미 해는 저버린 뒤였지만, 플래시를 여러 개 켜놓은 덕에 그다지 어둡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체육관 내에서는 음식물들을 정리해서 배급하고 있었다. 불을 피우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요리는 기대할 수 없었지만, 24시간 이상을 굶은 사람들의 위는 그런 것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김 중사도, 강 소위도 통신 수단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쉘터에 철책을 두르고, 먹을 것을 찾는 것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긴급 구조 요청 따위가 먹힐 리 없으니, 자구책 마련이 더 시급했던 것이다.

“진우 요원을 위하여!”

생명수처럼 달콤한 물을 받아 들고 마시던 민간인들 사이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곧바로 여기저기에서 물병을 들어 올리는 손들이 쑥쑥 튀어나왔다.

“진우 요원을 위하여!”

“특수 요원을 위하여!”

건배사를 외치는 유행은 빠르게 번져 갔고, 잠시 뒤에는 민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특수 요원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목청껏 외쳐 댔다.

“어우, 어째 분위기가… 민망해지는데?”

생 라면을 깨물어 먹고 있던 진우가 쑥스러워 고개를 숙인다. 바로 그 순간, 수많은 손이 뻗어와 진우를 들어 올렸다.

“어! 어어!”

진우는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기마전의 기수처럼 그를 어깨에 올리고 으쌰으쌰, 신나게 소리를 질러 내는 것은 김 중사와 몇 명의 병사들이었다.

당연히 진우의 주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해준 사격의 신을 들어 올리고, 쓸고, 어루만졌다.

“진우! 진우! 진우!”

엄청난 환성과 함께 진우를 태운 기마는 쉘터 주변을 빙 돌았고,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도 그 곁을 따라 돌며 환호한다. 술 한 잔도 마시지 않았는데, 다들 완전히 취한 사람들처럼 신이 났다.

물론 진우만 인기를 독차지 한 것은 아니었다. 보안관의 주위에도, 태권소녀의 주변에도, 심지어 별로 큰 활약을 하지도 않은 삼식이의 곁에도 들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경계 근무에 배정된 병사들 정도뿐이었다.

“어쩜 그렇게 잘 싸워요?”

“무슨 운동 하셨는데, 몸이 이렇게 좋아요?”

“해머가 무기예요? 왜 총은 안 쏴요? 계급이 뭐예요?”

보안관의 주변에는 그의 근육과 압도적인 무력에 매료된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정신없이 팔과 가슴을 쓸어 댄다. 여자들만 그렇게 해주면 그나마 좀 낫겠는데, 중년의 아저씨들도 한 번씩 가슴을 눌러보고, 복근을 확인한다.

태권소녀는 걸 크러시의 대상이 되었고, 동시에 수많은 군인들의 뜨거운 눈빛을 받았다. 그녀가 길게 쪽 뻗은 다리로 좀비들을 걷어차고, 배트로 대가리를 날린 게 어지간히 강렬한 인상을 줬던 모양이다.

삼식이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여자, 여자, 여자들이 온통 그를 에워싸고 있다. 아저씨들이 주로 다가와서 악수를 청하는 유빈의 주변과 너무도 비교되는 광경이다.

후드 티와 수건으로 얼굴을 감추고 있던 제니는 복장에 걸맞게 닌자처럼 숨어 있었다.

“유빈아! 좀 어떻게 해줘 봐! 나 어지러워!”

여전히 사람들의 어깨 위에 실려 근처를 지나던 진우가 엄살을 부린다. 유빈과 제니는 크게 웃었다. 유빈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이며 소리쳤다.

“즐겨! 그것도 영웅의 역할이야!”

“안 즐거워! 무섭단 말야!”

진우는 간절하게 소리쳤지만, 흥분한 사람들은 그를 내려줄 생각이 없다. 퍼레이드는 계속 이어졌다.

다들 살아남았다는 것을 만끽하는 중이었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해준 친구들에게 뭐든지 해주고 싶어 했다. 적어도 오늘 밤만은 그들이 건대의 영웅이고, 왕이다.

“아… 어쩐지 좀 장난 치고 싶어지는 분위기네요. 확 후드도 벗고 수건도 벗어버릴까요?”

유빈의 곁에 바짝 붙어 서 있던 제니가 귓속말로 악마 같은 장난기를 드러냈다. 유빈은 애원하듯 두 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제발 참아줘라. 이렇게 사람들 흥분해 있는데 네 정체까지 드러나면 나는 도저히 감당 못한다.”

“후후후, 농담이에요. 저도 그냥 조용히 있고 싶어요.”

제니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유빈은 시계를 확인했다. 아홉 시 반, 이제 슬슬 군자역 우회로로 가서 페인트 좀비들의 방향을 바꿀 불을 질러줘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그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을 데리고 오면 된다.

그다음에는… 좀 자고 싶다. 어제 새벽에 일어난 이후, 꼬박 하루하고도 절반을 뛰어다녔더니 정말이지, 죽을 것 같다.

“보안관, 불 지르고 올게!”

유빈은 보안관에게 다가가서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보안관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혼자 가게? 좀 있다가 나랑 같이 가!”

“아니, 아니… 차 가지고 갈 건데, 위험할 것도 없고… 어차피 사람들 실어 오려면 나 혼자 가는 게 나아! 그냥 알려만 준 거야! 걱정할까 봐!”

뭐라고 할 말이 더 남은 것 같은 표정의 보안관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손짓을 해주고, 유빈은 돌아섰다. 그가 가방들을 챙기고 있자, 제니가 쫓아와서 물었다.

“어디 가요, 오빠?”

“응? 차 타고 가서 불 지를 건데. 수정이 누나 쪽 사람들도 몇 번에 나눠서 태우고 오려고.”

유빈은 묵직한 탄창 가방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사실 페인트 좀비들이 몰려오기까지는 아직도 꽤 한참의 시간 여유가 있다. 그가 서두르는 진짜 이유는 진우가 가진 탄창의 절반을 군자역 쪽에 숨겨두기 위해서다.

강 소위나 고 하사는 좋은 사람 같지만, 지금 여기에는 총알 없는 총을 가진 군인들이 잔뜩 있다. 그리고 철책 바깥에서는 언제 좀비들이 몰려올지 모른다. 그러니 당연히 총알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쉽다.

그걸 빤히 알면서 총알을 들고 다니는 건 서로에게 못할 짓이다. 그래서 유빈은 절반을 뚝 떼어 숨겨두려 했다. 배고픈 사람 앞에 음식을 흔들면서 침 흘리지 말라고 해봐야 좋은 소리 못 들으니까.

“잘됐다! 나도 같이 데려가요!”

제니는 반가운 목소리를 내며 자동차 쪽으로 걸어간다. 유빈은 그녀의 손을 잡아 세웠다.

“아니, 그냥 여기 진우랑 보안관이랑 같이 있으면 좋겠는데. 딱히 위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나들이 갈 만한 데도 못 되잖아.”

“오빠.”

제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나, 지금 이 복장… 이 긴팔 후드 티 푹 뒤집어쓴 채로 하루 종일 지냈어요. 오빠는 반팔 티 입고도 땀났죠? 내 등이랑 목이 어떨 것 같아요? 비 맞아서 축축한데, 이제는 푹푹 찌기까지 해요. 아마 땀띠가 장난 아닐걸요? 그리고… 이 수건.”

제니는 자신의 코와 입을 가리고 있는 수건을 펄럭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오빠가 얼굴 가리라고 해서 군말 않고 계속 마스크처럼 쓰고 있었어요. 비 맞을 때는 수건이 물에 흠뻑 젖어서 물고문당하는 줄 알았어요. 쉰내는 또 얼마나 나는지 알아요? 그래도 그냥 이렇게 여기에 있으라고 할 거예요? 잠깐이라도 코 내놓고 숨 쉬고 싶다고요. 후드 티도 벗고요!”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제니의 공격에 유빈은 눈만 멀뚱멀뚱하며 아무 대답도 못했다. 평소답지 않은 사나운 말투여서 놀랐고, 다 맞는 말이어서 뭐라 받아칠 수도 없다.

확실히… 여기로 온 이후 제니에게 거의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수건에 관해서는 좀 억울하다. 자기가 쉰내 좋다고 가져가 놓고 갑자기 왜 또…….

유빈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네. 같이 가자. 차 안에서라도 좀 쉬어.”

“진작 그럴 것이지!”

제니는 매서운 눈초리로 유빈을 쏘아보고 나서 얼른 문이 없는 조수석에 올랐다. 유빈은 탄창 가방과 검은 군복에게서 빼앗은 총 가방을 뒷좌석에 넣고, 시동을 걸었다. 라이트를 켜고 후진을 하는 동안에도 제니는 안전벨트를 맨 채 아무 말 없이 앞만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후아! 후아!”

유턴을 한 자동차가 게이트가 있던 자리를 통과하자, 제니는 그제야 후드를 벗고, 수건을 목 아래로 내렸다. 그러고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참, 덥다고 했지? 에어컨 틀어줄게. 이제 그만 화 풀어.”

유빈은 에어컨 스위치를 조절해 줬다.

후우웅―

차가운 바람이 약간의 곰팡내와 함께 뿜어져 나온다. 제니는 곧바로 도리질을 했다.

“화요? 나 화 안 났는데?”

“아니… 조금 전에 엄청 뭐라고 했잖아. 땀띠 나서 미칠 것 같다고…….”

“에이, 그거야 차에 안 태워줄까 봐 연기한 거죠. 대표 오빠랑 처음 도망 나와서 그 속옷 가게 2층에 숨었을 때에는 후드 티 뒤집어쓰고, 모자에 마스크까지 하고서 며칠을 버텼는데, 이까짓 하루쯤 뭐가 힘들어요. 후훗!”

제니는 뻔뻔한 얼굴로 대답하며 히죽 웃어 보였다. 유빈은 여우에 홀린 사람처럼 멍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으아, 그래도 덥기는 하네요. 엄청 축축하고…….”

제니는 후드 티를 펄럭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땀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어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만 봐도 지난 하루 동안 그녀가 얼마나 더위와 싸웠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유빈은 브레이크를 밟아 잠시 자동차를 멈췄다.

“안에 셔츠 입고 있지? 후드 티 잠깐이라도 벗고 바람 좀 쐐.”

“알았어요. 잠시만!”

제니는 얼른 벨트를 풀고, 후드 티를 벗었다. 받쳐 입은 티셔츠도 땀에 흠뻑 젖어 있다. 잠시 황홀한 표정을 짓던 제니는 다시 벨트를 잠그며 말했다.

“출바알! 아참, 근데 오늘 며칠이에요?”

“오늘?”

유빈은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며 시계를 봤다. 전자시계에 표시된 날짜는 8월 16일이었다.

“8월 16일… 이제 다 저물어가네… 아!”

대답하던 유빈은 그제야 제니가 왜 날짜 같은 걸 물어봤는지 깨달았다. 사자자리 제니의 생일, 8월 16일. 제니가 혀를 날름 내밀며 웃었다.

“헤헤헤― 맞습니다!”

“그래… 생일이었구나. 전혀 생각도 못했네. 좀비 죽이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하하, 고마워요. 모르는 게 당연한 거예요. 사람들이 죽을 뻔했는데 생일이 다 뭐람? 이렇게 잘 끝났으니까 그냥 이야기한 거예요. 그럼 축하할 게 두 가지니까 더 좋잖아요.”

제니는 조금 부끄러워하며 괜히 유빈의 팔을 찰싹 때린다.

“생일 축하해. 보안관이 알면 엄청 속상해하겠는걸. 뭐라도 선물을 해주고 싶었을 텐데…….”

유빈은 천천히 속도를 올리며 말했다. 제니는 좌석 깊숙이 기대며 대답했다.

“보안관 오빠는 벌써 선물 줬어요. 기억나요? 그 노란 꽃. 지금도 가끔 생각나요. 복지 센터에 두고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를 생각하니 유빈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처음 제니를 만나서 함께 생활했던 때를 생각하니 아주 아득한 옛날인 것만 같다. 유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아, 그랬지. 그런데 너무 아쉬워하지 마. 보안관은 네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또 그런 화분을 만들어줄 거야.”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제니가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조수석이 아예 없는 차라 속도를 조금만 높여도 바람 소리가 엄청나다. 유빈은 속도를 줄이며 대답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보안관은 언제라도 또 그렇게 꽃을 선물해 줄 거라고.”

유빈의 말을 들은 제니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조금 더 바짝 붙어 앉았다. 여전히 그녀의 목에 부적처럼 걸려 있는 수건의 쉰내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유빈의 코를 찌른다. 유빈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야… 그 수건 좀 뒷자리로 던져라. 냄새가…….”

“그럼 오빠는요?”

“응?”

유빈이 되물었다. 말이 겹쳐져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게 아니었다. 그냥 당혹스러운 질문에 대한 바보 같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제니는 그가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 번 좀 더 큰 목소리로, 조금 더 천천히 물었다.

“오빠도 내가 원하면 언제라도 꽃을 선물해 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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