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73화 (373/449)

4장 더 킹 오브 건대 (2)

몇 초 지나지 않아 바깥쪽에서 잠겼던, 긴 쇠 빗장이 빠지는 소리가 끼리릭, 들렸다. 문이 살짝 열리며 그 틈으로 찬란한 빛이, 그리고 기쁨에 들뜬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쏟아져 들어온다.

“빨리 와!”

보안관과 태권소녀가 먼저 문을 밀고 나가며 진우에게 말했다. 한눈에도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보안관의 몸! 그걸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은 또 가벼운 탄성을 내질렀다.

저 근육 좀 봐… 키도 엄청 크네… 인상 쩐다…….

한마디씩 뭐라고 감탄하는 걸 듣는 게 싫지 않다.

타앙― 탕, 탕― 탕, 탕, 탕―

진우는 부근에 몰려 있던 좀비들을 모두 처리한 뒤, 여섯 명의 선발대 중 가장 마지막으로 옥상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콰앙―

진우가 빠져나오자마자 C동의 병사들은 문을 다시 닫고 쇠 빗장을 채웠다. 그러고는 앞에 무거운 걸 잔뜩 끌어와 받쳤다.

“휴우~”

겨우 한숨 돌릴 틈을 얻은 진우는 이마의 땀을 훔쳐 냈다. 그동안 옥상 위의 수백에 달하는 사람들은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진우와 보안관을 번갈아 보고 있다.

두근! 두근! 두근!

수많은 사람들의 심장이 기대로 가득 차 빠르게 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구조대입니다! 지금부터 저희의 지시에 침착하게 따라주시면 단 한 분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이 건물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진우가 앞으로 나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뒤에 선 두 병사는 믿어도 좋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아! 와아아아~!”

빼곡하게 모여 있던 사람들이 감격에 겨워 온몸을 떨며 함성을 질렀다. 탄약 배달을 받았을 때조차도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구조대로 뛰어 올라온 걸 보니 살았다는 것이 절절하게 실감되었다.

환호성은 주변의 다른 건물들에서도 우렁차게 울렸다.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구조대가 옮겨간 것이 처음인데다가, 이제 남아 있는 좀비들의 수가 얼마든지 퇴치 가능한 규모로 보였기에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뻐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모두가 다 구조될 수 있다는 믿음이 불길처럼 번졌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흐으윽~!”

앞줄에서 기뻐하며 펄쩍펄쩍 뛰던 사람들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흐느끼며 쓰러진다.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격해 무릎을 꿇은 채 우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진우 일행의 가슴도 뜨거워졌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쫄쫄 굶고 비를 고스란히 맞아가며 목숨을 건 싸움을 했었는지도 다시 한 번 확실히 알게 되었다.

사람들을 살렸다. 보안관, 유빈,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모른 척 외면하고 지나갔더라면 꼼짝없이 죽었을 사람들을… 그것도 700이나 되는 엄청나다면 엄청난 수를…….

“하아~ 하아~”

어젯밤 비에 놀라 과호흡을 했을 때와는 또 다른 식으로 가슴이 벅차올라서 진우는 몇 번이나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런 감정… 이런 식의 호응… 영웅 놀이…….

다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엄청나게 감동적이고 기뻤다. 가지고 있던 실탄의 절반을 쓴 것도 이제 더 이상 아깝지 않아졌다.

“정말 다행입니다. 크흑…….”

황 일병이 갑자기 울먹이며 눈물을 닦는다. 녀석의 감정은 진우의 것보다 몇 배나 더 예민하게 반응한 모양이다.

사람들이 내미는 손을 잡으며 구 상병도, 태권소녀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감동의 도가니에 찬물을 끼얹은 건 유빈이었다.

“저기…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우느라 체력을 다 빼앗기면 안 돼요. 일어나셔서 좀 진정하세요.”

쓰러져서 흐느끼던 사람들을 다독거려 일으킨 유빈은 수감자 숙소 쪽 난간으로 걸어갔다. 뭐든지 때려 부숴서 던지려 했던 곳답게 옥상의 여기저기에는 부서진 돌 조각과 파편들이 정신없이 널려 있다. 난간도 절반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심하게 파손된 상태다.

“아, 다행이다. 저 아저씨들 다시 건물 안으로 잘 들어갔구나.”

유빈은 수감자 숙소 옥상에서 강 소위와 나머지 병사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 소위는 확성기 든 손을 열심히 흔들며 자신이 살아남았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자, 계획대로 저쪽 군인들은 지원만 해주고 일단 빠졌어. 이제 여기 사람들이랑 나가보자고. 90퍼센트쯤 온 것 같기는 하지만, 그건 아직 10퍼센트 남았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다들 조금만 더 힘내자.”

친구들에게 돌아온 유빈은 세게 손뼉을 쫙, 친 다음 양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남아 있는 좀비가 100마리든 1마리든 간에 물리면 끝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선발대의 나머지 인원들도 겨우 격앙된 감정에서 빠져나와 원래대로의 눈빛으로 돌아왔다. 유빈은 가방에서 탄창을 꺼내 각자의 전술 조끼에 다시 채워 넣도록 했다.

건너편 건물의 강 소위는 확성기를 꽉 움켜쥐고 ‘진우 특수 요원’의 지시에 따르라는 명령을 열심히 떠들어 대는 중이다. 그런데 사실 그의 그런 명령이 없어도 여기 모든 병사들은 진우의 말에 죽는 시늉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다.

병사들은 존경에 가까운 눈빛으로 진우를 우러러보고 있다. 다들 그의 활약을 지켜봤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까 탄창을 우선 지급 받고 좀비들 저격하셨던 병사, 어떤 분들이십니까?”

진우가 물었다. 병사들은 쑥스러워하며 손을 들었다. 일단 그들부터 차출했다. 실탄의 수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덥석 탄창을 제공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빈은 차출된 여섯 명의 사수를 모아 남아 있는 실탄의 수를 확인하고, 각자에게 탄창 두 개가 돌아갈 수 있도록 분배했다. 한때는 묵직했던 박 소위의 탄창 가방도 이제는 거의 비어버렸다.

2,000발이 거의 다 소모되어 간다. 아직 진우의 개인 총알 천 발가량이 더 남아 있고, 태양 그룹 놈들에게서 빼앗은 9㎜ 총알도 있지만, 그건 아껴두고 싶다.

남아 있는 좀비들의 수는 이제 그리 많지 않다. 주차장에 남은 좀비들을 다 더해봐도 100마리 이하다. 그나마도 대부분 발전기에 단단히 홀려서 그 주변에 몰려 있는 놈들이니까 즉각적인 위협은 아니다.

하지만 건물 내부에 들어가 있는 놈들까지 다 찾아내서 사살해야 하니까, 실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이동 요령은 간단합니다. 진우와 저 두 친구, 그리고 아까 탄창 받은 여섯 명이 중앙 계단과 그 주변의 길을 트면서 내려갈 거예요. 한 층을 다 정리하고 나면 경비 삼아 두 명씩을 남겨두고 그 아래로 갑니다. 1층까지 다 정리하고 나면 소리로 알리면 되고요.”

모든 병력을 다 모이게 한 뒤, 유빈이 작전을 설명했다. 진우는 진우대로 여섯 명의 C동 사수에게 진압하러 내려갈 때의 진영과 각 병사가 담당해야 하는 임무를 일러줬다.

보안관과 태권소녀는 옥상의 반대쪽에서 민간인들을 모아놓고, 아래로 내려갈 때의 요령과 순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세 팀으로 나누어 10여 분에 걸쳐 작전 브리핑을 했고, 모두들 열심히 들었다. 각자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자, 그럼 내려갑니다! 준비됐습니까?”

작전에 대해 설명을 마친 진우가 병사들에게 물었다.

“네! 준비됐습니다!”

구 상병을 비롯해서 총 여덟 명의 병사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오후 내내 좀비들을 사살해 왔던 사람들만 모아놨기 때문에 파괴적인 본능이 그들의 몸 전체로 끓어오른다.

“여십쇼!”

장전된 것을 확인한 진우가 총구를 겨누며 외쳤다.

끼이익―

빗장이 빠지는 소리. 그리고 문이 열린다.

탕, 탕, 탕, 탕― 탕, 탕―

천둥 같은 총성이 울리고, 좀비들의 시체가 바닥에 나뒹군다. 진우를 앞세운 총 아홉 명의 병력이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투투둑― 투투둑― 탕, 탕―

3층 복도 전체를 뒤흔드는 요란한 총소리. 사람들은 몸을 움찔움찔할 만큼 놀라면서도, 기대와 희열이 가득한 얼굴로 열린 문틈을 주시했다.

그들이 그렇게 문을 열어놓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의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보안관의 넓은 등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그의 단단한 팔뚝과 거대한 해머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막연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구 상병! 황 일병! 여섯 시 엄호!”

진우는 두 병사에게 배후를 맡기고, 나머지 병사들과 함께 3층을 쓸었다. 계단이 세 개나 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워낙에 큰 건물이다. 하지만 진우는 여덟 명의 사수를 이끌고, 마치 물살이 휩쓸듯이 빠르고 매끄럽게 각 방을 훑었다.

병력 규모가 커지자 확실히 좀비 진압도 한결 쉬워졌다. 30여 분 만에 진우는 1층까지 모두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1층 클리어!”

1층 중앙 계단에 남겨진 두 명의 병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를 받아 2층과 3층의 병사들도 소리를 질렀다.

“2층 클리어!”

“3층 클리어!”

전 층의 좀비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것을 확인한 진우는 구 상병과 황 일병을 이끌고 주차장으로 나갔다. 이제 곧 민간인들이 건물 밖으로 탈출하기 시작할 테니까, 미리 이곳을 정리해 둬야 한다.

그롸아아아―

탕, 타앙―!

포효하며 달려드는 좀비 두 마리를 단 두 발로 처리한 진우는 발전기 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그 주변의 열기를 만끽하며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있는 좀비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타앙―

긴 메아리를 남기며 발사된 총알은 남아 있는 100여 마리 중 한 놈의 머리를 꿰뚫고 날아갔다. 왼쪽 관자놀이 주변이 박살 난 좀비가 힘없이 고꾸라진다. 그것을 시작으로 진우의 총구가 정신없이 돌아간다.

타앙― 탕, 탕, 탕―

남아 있는 놈들은 발작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빠른 움직임을 보였지만, 진우의 총알을 피할 수는 없었다.

두 대의 발전기 주변은 순식간에 좀비들의 무덤으로 변해 버렸고, 뇌수가 터져 나온 좀비들의 시체가 수북하게 쌓여갔다.

투투둑― 투투투― 투투투― 투투두―

진우의 좌우를 맡은 구 상병과 황 일병도 바쁘게 주변을 경계하며 이따금씩 나타나는 좀비들을 향해 3점사를 날렸다. 두 시경에 총알을 배달하러 나왔을 때의 그 숨 막히던 상황과 달리, 이제는 바닥에 누워 있는 좀비들의 숫자가 뛰어다니는 놈들의 열 배 이상 된다.

“치워! 다 오른쪽 구석으로 밀어서 쌓아!”

전 층이 클리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온 C동의 병사들은 일단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막아뒀던 장애물들부터 치웠다. 장애물들을 복도 한쪽에 차곡차곡 쌓아 벽으로 만든 병사들은 다시 좀비들을 밀어 길을 텄다.

계단과 복도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좀비들의 시체를 한쪽으로 쌓아 모으는 동안, 각 층에 두 명씩 배치된 경비 병력이 엄호를 해준다.

“어흐으~”

들어 옮기려던 좀비의 시체에서 팔이 끊어져 나가면서 바닥으로 떨어지자, 병사 하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좀비들과 얼굴을 맞대고 싸우는 것보다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안전한 작업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괴롭기는 하다.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악취는 둘째 치더라도, 그 모습과 촉감이 끔찍하다.

물려 뜯기고, 유리에 찢기고, 총에 맞아 구멍이 뻥 뚫린 시체들, 그리고 뚫린 부분들마다 흘러나오는 각종 체액과 장기들. 덕분에 바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미끄럽다.

“우우욱~!”

발을 헛디뎌 좀비들의 시체 사이에 엎어졌던 병사가 욕지기를 참지 못하고 텅 비어 있던 위를 게워낸다. 그래봐야 하루 이상을 꼬박 굶었던 터라 위액 정도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야, 이 새끼야! 구석으로 가서 토해! 길 어지럽히지 말고!”

“아, 아닙니다! 이제 진정됐습니다!”

구역질을 하던 병사는 군복 소매로 얼른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고 다시 좀비 시체 더미에 달려들었다. 겨우 다시 새 생명을 얻게 되었는데, 이까짓 시체들 쯤이야!

병사들은 땀을 뚝뚝 흘리면서 시체들을 옮겼다.

옥상 위에서는 보안관과 태권소녀가 문 앞에 딱 버티고 서서 아래의 작업을 지켜봤다. 수백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야 하므로, 중간에 멈춰 서서 기다리지 않도록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다음에 출발해야 한다. 사람들은 보안관의 등 뒤에 서서 어깨너머로 아래층을 기웃거렸다.

“괜찮을까요? 저 사람들…….”

몇 명의 여자들이 보안관의 등 근육을 짚으면서 걱정스러운 듯 물어본다. 보안관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럼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진우가 이미 다 잡아놓고 지나간 길이니까요. 그리고 설사 한두 마리쯤 나타난다고 해도 그까짓 건 문제없어요. 그보다는 좀비 시체들 보고 놀라서 멈추지만 마요, 뒤에서 떠밀리면 크게 다치니까.”

“네. 머리로는 이해하겠는데… 그래도 무섭네요. 좀비 시체를 그냥 지나칠 수 있을지…….”

여자들은 보안관의 셔츠나 팔을 꽉 붙들고 늘어졌다. 보안관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신뢰가 가득하다. 그녀들의 손과 얼굴을 보고 있는 태권소녀의 눈에서는 레이저가 쏘아져 나올 기세다.

“얘 움직이는 거 방해되면 안 되니까 손 짚지 말아요.”

태권소녀는 냉정을 가장하며 보안관에 대한 여자들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했다.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물론 계단 아래쪽에만 집중하고 있던 곰탱이 같은 보안관은 여자들 간의 미묘한 주도권 다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가요!”

보안관과 태권소녀가 앞장을 서서 계단을 걸어 내려가자, 미리 다섯 줄로 맞춰뒀던 민간인들이 그 뒤를 따라 우르르 걷는다. 맨 마지막에는 병사들 십여 명이 호위하듯 따랐다.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한꺼번에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동안, 각층에 배치시켜 뒀던 경비들은 혹시 나타날지 모르는 좀비에 대비하기 위해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타앙― 탕, 탕, 탕―

건물 바깥쪽에서 총소리가 울릴 때면, 민간인들의 긴 줄이 한 번씩 움찔하며 멈춰 선다. 미처 멈추지 못하고 앞서 달리던 사람에게 부딪치는 사람들도 있다.

“조심해요! 너무 서두르지 마! 넘어진다고!”

계단 아래로 떨어질 뻔한 사람들을 부축해 주며 보안관이 외쳤다. 두 팔을 뻗어 서너 명을 받아내는 그의 힘이 아니었다면, 자칫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을 상황. 태권소녀도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몇 명이나 받쳐 줬다.

“진정하고 한 걸음씩 떼요! 불안한 건 알겠는데, 빨리 나가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어!”

줄 뒤쪽을 향해 사자후를 내지른 보안관은 다시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제야 민간인들의 행렬도 조금 진정이 됐다.

“오른쪽! 오른쪽으로 가요! 저쪽으로!”

입구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유빈이 사람들을 수감자 숙소 쪽으로 몰았다. 그들보다 먼저 밖으로 나온 병사들은 아무렇게나 뻗어 있는 좀비 시체들을 치우며 최소한의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쪽으로!”

잠시 대피해 있던 강 소위 측 병력들도 민간인들과 함께 마중을 나왔다. 수감자 숙소 안에 보관되어 있던 공구들을 가지고 나온 그들은, C동의 병사들과 힘을 합쳐 쉘터 본관 주변에 새로 철책을 치기 시작했다.

비록 기존의 기둥에 레이저 와이어만 걸쳐 두는 허술한 철책이라고는 해도 민간인들에게는 최소한의 안전과 안정감을 부여해 줄 수 있다.

“저기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세요! 저쪽입니다!”

유빈은 손을 쭉쭉 뻗으며 열심히 안내를 했다. 그사이 진우와 두 병사는 벌써 주차장 전체 소탕을 끝내고, 쉘터 본관인 체육관 내부에 진입해 있었다.

그롸아아―

어두컴컴한 본관 내부를 배회하고 있던 좀비들은 진우 일행을 발견하자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달려들었다.

투투둑― 투투투― 투투투―

구 상병과 황 일병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3점사를 날렸다. 좀비들은 쇄골 위쪽이 엉망으로 박살 난 채 뒤쪽으로 나동그라졌다. 근거리의 좀비들을 둘에게 맡긴 진우는 멀리 위층 스탠드에서 뛰어다니고 있는 좀비들을 하나씩, 하나씩 잡았다.

탕― 탕― 탕, 탕―

머리가 뚫린 좀비들이 비틀거리다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쿠웅―

좀비의 시체가 마룻바닥을 때리자, 요란한 소리가 체육관 내부를 울린다. 체육관의 크기에 비해 남아 있는 좀비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세 명의 사수는 순조롭게 체육관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짐 대충 치우고 내려와요!”

4층으로 올라간 진우는 바리게이트가 쳐진 외부 계단을 두드리며 외쳤다. 이제나저제나 하는 심정으로 계단 주변을 지키던 네 명의 병사가 함성을 지르며 난간에 매달려 천천히 아래로 내려온다.

“어제… 그 좀비들 잡아주신 분이시죠! 맞죠?”

쉘터 옥상에서 마침내 탈출한 네 병사는 감격적인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진우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진짜 생명의 은인입니다! 감사합니다!”

동시에 남자 네 명에게서 격렬한 포옹을 당한 진우는 쑥스럽고 당황스러워하며 그들의 등을 두드려 줬다.

그들은 뭐라고 더 감사의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술을 꽉 깨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어제 석양이 질 무렵부터 아침까지… 그 긴 시간 동안 계단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좀비들을 모조리 잡아준 사람이다.

“정말 다행입니다. 이렇게 구조할 수 있어서. 그리고 새벽에는 이 친구들이 담당했었습니다.”

진우는 구 상병과 황 일병에게 공을 돌리고 모두를 진정시킨 뒤, 다시 체육관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그들이 체육관 정문 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순간!

크롸아아아―

좀비 한 마리가 3층의 중대장실 유리창을 깨고 몸을 던진다. 다른 병사들이 본능적으로 움츠릴 때, 진우는 얼른 총구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런데… 좀비는 번지 점프를 하듯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뭐야?”

하늘에 떠 있는 녀석의 미간에 일단 총알부터 한 방 먹여 넣은 뒤, 진우는 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 좀비의 발목에는 굵은 케이블이 얽혀 있었다.

지직―

좀비의 시체가 아래쪽으로 확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커다란 쇳덩이가 창문 밖으로 곤두박질쳤다.

콰앙―

좀비의 발목에 케이블로 얽혀 있던 대형 통신 장비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마룻바닥에 함께 떨어져 내리며 박살이 난다. 좀비의 시체도 덩달아 그 위로 떨어졌다.

“으앗!”

진우와 병사들은 깜짝 놀라 뒤로 몸을 던졌다. 산산조각 난 쇳조각들은 사방으로 튀었다.

땡그렁―

바로 근처까지 날아온 파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뒹군다. 마룻바닥을 뚫고 박힌 것들도 있다.

“하아~ 하아~ 괜찮아요?”

머리를 싸맨 채 납작 엎드려 있던 진우가 다른 병사들에게 물었다.

“아… 네… 하하하, 와, 놀라라.”

방금 구조 받은 네 명의 병사가 환하게 웃는다. 그 어려운 고비를 다 넘기고 하마터면 떨어지는 기계장치에 깔려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뻔했다. 구 상병과 황 일병도 어처구니없어 하며 미소를 지었다.

“어우~ 그 새끼, 혼자 뒈질 것이지… 뭘 저런 걸 다 달고 떨어져.”

척추가 접힌 좀비의 시체에게 한마디 해준 뒤, 진우와 병사들은 체육관 문을 열고 이미 승리의 분위기로 가득한 주차장을 향해 뛰어나갔다. 생환한 네 병사와 그들을 구한 영웅을 향해 뜨거운 환성이 쏟아졌다.

“하하하! 하하하!”

진우의 뒤를 따르는 여섯 명의 병사는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방금 전 추락해서 완전히 박살 난 물건이 이 쉘터에서 잠실과 교신할 수 있는 유일한 통신 장비였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제 건대는 잠실과의 모든 소통경로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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