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파멸의 그늘 (1)
“놔줘. 미스테이크라잖아.”
충분히 오 박사에게 굴욕을 안겨준 마녀는 인심 쓰듯 보디가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솥뚜껑 같은 보디가드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오 박사는 쿨럭거리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제야… 이 더러운 마녀 년이 왜 이렇게 하루 일찍 이곳에 찾아온 진짜 이유를 알겠다. 무력 충돌이 일어날 소지 자체를 없애려고… 교활한 년!
본사에는 지금 무장 병력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텅 비어 있다. 메이저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쉐도우 실드 대원들이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인간 사냥을 나가 있기 때문이다. 마감 전이 가장 바쁘리라는 걸 알고서 그 비어 있는 틈을 노린 게 분명하다.
‘젠장, 망했군… 이 돌대가리 년이 이런 깜찍한 짓을 할 줄이야……. 메이저가 있었으면 어떻게 한 번 저항이라도 해보는 건데…….’
오 박사는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 봤다.
이제 작은 회장을 넘겨주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럼… 대체 뭘 해야 이 마녀 년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걸까?
“제가… 제가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오 박사는 최대한 공손한 어조로 마녀에게 말했다. 마녀는 한쪽 입술을 찡그리며 웃었다.
“무슨 준비가 필요하지? 그저 마이 브라더 한 명만 데리고 가면 되는데? 그렇게 빅딜이 아니야.”
“아… 그게… 지금 기상 상태도 그리 양호하지 않고… 또, 혹시라도 비행 중에 작은 회장님이 그… 문제를 일으키실 수도 있으니, 고정 장치에 단단히 고정을 하신 뒤, 움직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계속 모시고 있었으니 작은 회장님 상태는 제가 제일 잘 압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황 사장님의 안전을 걱정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 박사는 일단 시간을 벌고 싶었다. 운이 좋으면 메이저가 오늘의 인간 사냥을 일찍 마치고 돌아올 수도 있다. 그렇게만 되면 이 우락부락한 보디가드 놈들도 지금처럼 함부로 설치기는 어려울 거다.
그리고 그마저도 정 안 되면… 작은 회장의 몸뚱이를 고정하는 틀의 나사를 몇 개 풀어둘 생각이다. 헬리콥터 안에서 발버둥을 치다가 풀려날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게……. 이 마녀 년이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곱게 돌아가는 꼴은 못 본다.
고정을 핑계로 작은 회장의 몸뚱이에 쇠로 된 굵직한 나사를 몇 개 박아서 보내면, 황 회장은 분명히 훼손된 자기 아들의 신체에 대해 분노할 것이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마녀에게 쏟아질 것이다.
“닥터 오, 실망이야. 너무 어글리하네.”
마녀는 고개를 저으며 경멸하는 눈으로 오 박사를 노려보았다. 그의 마음을 다 읽었다는 식이다.
“당신이 익스펙트하는 게 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좀비 인 더 헬리콥터? 그래서 우리가 엑시던트에 휘말리면 좋겠어? 훗,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이쪽은 당신들처럼 아마추어가 아니라고. 그리고 또… 고정을 해? 로열패밀리의 보디에 스크래치를 내겠다고? 미쳤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따라와.”
마녀는 잘난 척을 하며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식사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하자,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던 요원들이 그녀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한다.
그중에서도 오 박사의 시선을 끈 것은 두꺼운 보호복과 커다란 헬멧을 착용한 세 명의 요원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폭발물 제거반처럼 보인다. 그들의 옆에는 커다란 비닐 팩과 진공청소기처럼 생긴 기계가 있었다.
‘이놈들은 뭐지? 저건 또 뭐고…….’
오 박사는 폭발물 제거반 놈들의 복장과 놈들의 장비를 노려봤다. 헬멧에도, 방호복에도, 그리고 기계에도 모두 일관되게 ABHT라는 로고가 새겨져 있다.
마녀는 요즘 남부의 연구소와 손을 잡고 이상한 팀들을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열어!”
마녀의 명령이 떨어지자, 식사실의 문이 열렸다. 보디가드를 앞세운 마녀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서 유리 바닥 앞에 가서 섰다. 아래층에는 이미 작은 회장이 나와서 그르렁거리고 있다.
“하이, 몬스터! 네가 마이 브라더라니, 정말로 수치스럽구나. 그냥 깔끔하게 뒈져 버렸으면 모두가 해피했을 텐데.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니잖아. 얼라이브할 때 그토록 잘난 척을 하더니… 나우, 베리베리 디스거스트해. 네 인사이드가 그대로 드러나 버렸구나. 하하하!”
마녀는 작은 회장을 향해 증오가 가득 담긴 말들을 퍼부어 댄다. 그녀에게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측은지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반반한 그녀의 겉모습 안에는 지극히 이기적인 악마가 살고 있다. 하긴 그 반반함마저도 따지고 보면 돈으로 산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황 사장님, 어떻게 데려가실 생각이십니까? 지금 이렇게 저희가 이 방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저렇게 흥분하셨는데… 작은 회장님 몸에 상처가 나면 안 된다고 하시니, 그냥 여기서 편하게 지내시도록 하시는 게…….”
미친 듯 포효해 대는 작은 회장을 가리키며 오 박사는 또 한 번 설득을 시도했다. 좀비를 붙잡는 것도 어렵지만, 저걸 상처 없이 남부까지 데려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응, 돈 워리. 그건 유어 비즈니스가 아니지. 우리는 다 준비해 왔어. 그러니까 저스트 와치. 테크놀로지의 격차가 어떤 것인지 보여줄 테니까.”
마녀는 오지게 잘난 척을 해 대면서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녀와 보디가드들의 위용에 기가 질린 연구원이 스위치를 누르자, 발판이 열린다.
그롸아아악― 그롸아아아―
개폐된 공간을 통해 작은 회장의 포효가 들려왔다. 물론 놈의 지독한 악취도 동시에 전해진다.
“배드 스멜! 아우, 구역질 나!”
마녀는 자신의 코를 가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휘휘 돌려서 폭발물 제거반 장비를 갖춰 입은 ABHT팀 놈들에게 내려가라는 신호를 한다.
놈들은 서로의 헬멧과 보호 장갑이 단단히 고정되었는지 확인하고 크레인에 올랐다.
기이이이잉―
평소 식사용 인간을 묶어 내려주던 크레인에 두 명의 ABHT가 양쪽으로 매달린 채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그들의 다리가 보이기 시작하자, 작은 회장은 미친 듯이 달려들어 아가리를 쩍 벌리고 펄쩍펄쩍 뛰어 댔다.
콱―
ABHT의 두꺼운 방호복 위로 작은 회장의 이빨이 덮쳐진다. 하지만 2중으로 케블라 코팅이 된 섬유는 그의 이빨이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물건이다. 그리고 이 두툼한 방호복 안에는 엄청난 양의 완충재가 들어 있다.
두 명의 ABHT 놈은 작은 회장의 도발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바닥에 내려섰다. 잠시 작은 회장의 공격을 받고 비틀거렸지만, 중금속 소재로 된 신발 밑창의 무게 덕에 이내 중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쿠쿵―
두 발을 벌리고 우뚝 선 ABHT 놈들은 태클을 대비하는 레슬링 선수들처럼 자세를 낮춘 채 작은 회장을 상대했다.
작은 회장이 그중 한 놈에게 달려든다. 그래봐야 대단한 위협은 되지 않았다. 방호복 안에 들어 있는 놈들이 워낙 거구인데다 두꺼운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작은 회장은 마치 작은 아이처럼 왜소해 보였다.
‘쳇, 저게 뭐야. 어차피 저렇게 무거운 장비를 걸치고선 빨리 걷지도 못한다고. 게다가 체력도 엄청나게 빨리 소진될 거야. 마년 년, 쓸데없는 장난질에다가 돈만 쏟아부었군.’
오 박사는 ABHT 놈들의 장비가 가진 문제를 단번에 꿰뚫어 봤다. 한두 마리를 상대로라면 그럴듯해 보이겠지만, 여러 마리가 달려들어 힘으로 잡아 뜯기 시작하면 그걸로 끝이다. 신발이 무거워서 달아나지도 못한다.
게다가 보조 동력장치가 가동되는 것 같지도 않다. 한마디로 말해 질기고 두꺼운 솜옷을 입고 쇠 신발을 신어서 겨우 중심을 잡고 있는 놈들이다.
“기기 내려!”
ABHT 중 리더로 보이는 녀석은 아예 한쪽 팔을 미끼 삼아 작은 회장에게 내준 뒤, 놈이 열심히 물어뜯어 대고 있는 동안 크레인을 올려 보내며 지시를 했다.
그롸아아― 으으으― 갸으으으―
작은 회장은 리더 놈의 왼팔 위에 매달려 고개를 이리저리 채가며 짐승처럼 그릉거렸다. 놈은 좀비답게 이들을 상대로 아무리 깨물고 뜯어도 피가 터져 나오지 않는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올라왔던 크레인에 세 번째 ABHT 팀원이 올라타고 내리라는 신호를 보낸다. 연구원은 얼른 그의 지시를 따랐다.
기이이잉―
놈은 독특하게 생긴 기계를 등에 짊어지고, 옆구리에는 커다란 비닐 팩을 낀 채 유유히 아래로 내려갔다. 오 박사는 놈의 기계와 비닐 팩을 유심히 바라봤다.
“내려왔습니다. 한쪽으로 몰아주십쇼.”
세 번째 놈이 말했다. 녀석의 목소리는 헬멧 아래쪽에 뚫려 있는 작은 공기구멍들을 통해 다른 녀석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녀석은 가지고 내려온 비닐 팩을 두 번째 팀원에게 넘겼다.
“준비해! 저쪽 벽으로 밀겠다.”
리더는 팀원들의 위치를 살펴본 후, 아직도 왼팔에 매달려 있는 작은 회장을 잡고 벽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두꺼운 완충재로 덮여 있는 벽을 향해 작은 회장을 힘껏 밀어 쳤다.
그롸아아―
쿵!
손톱도, 이빨도 온전히 박아 넣지 못했던 작은 회장은 리더의 강력한 힘에 밀려 벽에 내동댕이쳐졌다. 하지만 곧바로 벌떡 일어나 다시 달려들었다.
휙―
두 번째 팀원이 비닐 팩을 허공에 대고 확 털어 편 뒤, 작은 회장의 앞을 막아선다. 여러 겹으로 접혀 있던 비닐 팩은 순식간에 텐트 보다 더 넓은 크기로 펴졌고, 작은 회장은 그 비닐과 두 번째 팀원을 동시에 덮쳤다.
엄청난 기세! 체구의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좀비와 인간의 차이를 극복할 만큼은 아니었다.
“으윽―!”
충돌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두 번째 팀원은 비닐로 작은 회장을 감싼 채 뒤로 넘어가 버렸다.
쿠웅―
그의 헬멧과 신발 뒤축이 바닥을 때리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그롸아아아아― 그롸아아아―
작은 회장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젓고 아가리를 벌려 댔다. 두꺼운 비닐에 그의 침이 잔뜩 묻어난다. 인간의 기운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그 신선한 살과 피를 맛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작은 회장의 움직임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그렇게 발버둥을 치는 동안 비닐은 벗겨지기는커녕 점점 더 작은 회장의 사지 주위를 휘감았다.
”서, 서둘러요! 이빨에 찢기겠습니다!”
몸 위에 올라타서 버둥거리는 작은 회장을 가리키며 두 번째 요원이 소리쳤다. 리더가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옆으로 다가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어.”
그리고 리더는 작은 회장의 왼쪽 편에 있는 비닐을 잡고 쭉 잡아당겼다. 반대편에서는 기계를 장착한 세 번째 팀원이 리더와 같은 동작을 했다.
두 ABHT 팀원은 서로가 잡은 비닐의 네 귀퉁이를 한데 모았다. 이제 작은 회장은 보따리 안에 싸인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으랏차!”
두 팀원이 동시에 힘을 주어 털자, 비닐 안에 든 작은 회장이 털썩거리며 튕긴다. 그 틈을 타서 바닥에 깔려 있던 놈도 가까스로 다시 일어났다.
그롸아아아― 그롸아아―
비닐 안에 갇혀 버린 작은 회장은 극렬하게 저항을 하며 비닐을 물어뜯고,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 발버둥을 쳐 댄다. 하지만 셋이나 되는 거구의 완력을 당해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은 고급 양복을 입은 좀비에게 없었다.
“붙여!”
작은 회장의 몸을 덮친 뒤, 무게로 누르면서 리더가 명령했다. 두 팀원은 비닐의 네 귀퉁이를 단단히 움켜쥔 뒤, 플라스틱 부품들에 표기되어 있는 숫자와 화살표 방향을 따라 잡아 당겼다.
플라스틱 부품들이 지나는 부위는 지퍼 백처럼 서로 맞물리며 공기를 가둔 채 닫힌다.
지이익― 지이익― 지이익―
세 번의 실링 작업이 끝나자, 작은 회장은 비닐 안에 든 샌드위치처럼 밀봉되어 버렸다.
끄드득― 끄드득―
작은 회장은 비닐을 찢어내 보려 손톱으로 열심히 할퀴어 댄다. 하지만 그래봐야 아주 작은 구멍만 뚫어낼 수 있을 뿐, 탈출할 수 있을 정도로 비닐을 찢지는 못한다.
그사이에 세 번째 팀원은 등에 메고 있던 기계의 스위치를 켜고, 연장식 호스를 뽑아내서 비닐 팩의 플라스틱 부품에 부착시켰다.
우우우우웅―
세 번째 팀원이 손잡이를 잡고 방아쇠처럼 생긴 레버를 당기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기계가 가동됐다.
후우우우욱―
그의 등 뒤쪽으로 팬이 공기를 뿜어낸다. 그와 반대로 비닐 팩 안의 공기는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잠깐! 멈춰! 멈춰! 기다려!”
리더의 명령에 세 번째 팀원은 곧바로 레버에서 손을 뗐다. 리더는 눈에 띄게 납작해진 비닐 팩 위로 손을 뻗어 손바닥으로 작은 회장의 눈 주변을 꾹 눌렀다.
이렇게 해야 눈알이 빠져 버리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준비를 마친 리더는 다시 당겨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후우우우욱― 후우우우욱―
다시 기계가 가동되고 팬이 돌아가자, 불과 몇 초 만에 커다란 비닐 팩 안의 공기는 거의 다 빠져나가 버렸다.
작은 회장의 몸 모양을 따라 우글거리며 남아 있던 적은 양의 공기마저 알뜰히 빼낸 뒤, 세 번째 팀원은 호스를 팩에서 떼어내고 플라스틱 부품의 마개를 닫아버렸다.
“뷰티풀! 정말 굿 잡이야!”
작업이 끝났다는 신호를 받은 마녀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작은 회장은 진공 팩에 들어 있는 고기 꼴이 되어 빳빳하게 굳어 있다.
이제 그는 벌려진 입을 다물 수도, 두 다리를 꼼짝거릴 수도 없다. 손가락 하나, 눈꺼풀조차도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네 귀퉁이에 무게 추를 달아 보강한 이후에는 마음대로 들썩거릴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움직임을 봉쇄당하고 나니, 작은 회장은 더 이상 위험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온전히 타인의 손에 운명을 내맡긴 고깃덩어리 수준이다.
“올려!”
진공 팩의 끝자락을 크레인의 고리에 건 리더가 엄지손가락을 위쪽으로 올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기이이잉―
크레인은 천천히 위로 올라온다. 거기에 매달려 있는 작은 회장도 좀비로 변한 지 한 달여 만에 처음으로 식사실의 위층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바로 앞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포효조차 하지 못할 만큼 작은 회장은 모든 운동능력을 상실했다. 마녀의 보디가드들조차 별로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비닐 팩 안에 든 작은 회장을 크레인으로부터 떼어내서 바닥에 눕혔다.
“이제야 네가 내 앞에서 그 내스티한 마우스를 닫고 있구나, 마이 브라더. 몬스터가 된 이후에도 계속 샤우팅해 대더니 말이야.”
비닐 팩을 통해 선명하게 비치는 작은 회장 좀비의 무력한 모습을 내려다보며 마녀는 기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 주변에 묻은 핏자국, 흰 막이 덮인 눈동자, 부패한 상처… 이 얼굴, 모든 것이 다 구역질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싫은 건 역시…….
“후후후, 콱 터뜨려 버릴까? 어차피 이 컨디션에서는 써먹지도 못할 거 아니야? 응? 설마 대디가 옷을 벗겨서 마이 브라더의 누드를 보고 싶어 하지는 않겠지? 후후후.”
마녀는 하이힐의 뾰족한 뒷굽을 작은 회장의 사타구니 위에 올려놓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살짝살짝 힐을 돌려가며 조금씩 압력을 가하는 동안 그녀의 흰 얼굴에는 광기가 가득했다.
“휴우~ 아니야. 잇츠 투 얼리. 마이 대디도 이 몬스터의 비주얼을 보고 나면, 정이 똑 떨어질 거야. 그러면 두 번 다시 그놈의 아들 타령은 하지 않게 될 테지. 그래, 그럴 거야. 브라더, 너는 조금만 기다려. 대디가 너를 버리는 그 타이밍에 나는 너를 정말로 예뻐해 줄 거야. 내가 그동안 마이 판타지 속에서 너에게 했던 그 모든 일들을 실제로 해줄게.”
깔깔대고 웃던 마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ABHT 팀원들은 작은 회장이 든 비닐 팩을 다시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옮겨 넣었다. 마녀는 홍조가 가득한 얼굴로 오 박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때? 닥터 오, 이제 테크놀로지의 격차를 알았어? 이 깨끗함, 노 블러드! 노 스크래치! 퍼펙트 컨디션!”
오 박사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요란한 쇼를 선보이기는 했지만, 대체 이게 무슨 실용성이 있단 말인가. 셋이 달려들어 그 긴 시간 동안 겨우 좀비 하나를 포장했을 뿐이다.
상처가 나지 않는다고? 어쩌라고, 좀비는 이미 죽었는데.
마녀가 한 이 모든 돈지랄은 그저 작은 회장을 남부 지역까지 깨끗하게 이동시키기 위한 바보짓이었을 뿐이다.
저 조그만 대갈통 속에는 장기적인 미래에 대한 계획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아버지인 황 회장으로부터 인정받겠다는 욕심, 그것뿐이다.
“약속했던 샘플들, 투모로우까지 수량 채워둬. 컨트랙트 그대로 지켜! 하나라도 모자라면 그땐 2주도 보장 못해줘. 알겠어, 닥터 오?”
헬기에 작은 회장을 싣고 본사를 떠나며 마녀는 오 박사의 안경에 삿대질을 하며 철저히 당부를 했다.
오 박사는 그렇게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생명줄을 잃은 그로서는 저항할 수단이 없다.
“끄으으으! 시팔! 이 개년!”
마녀 일행을 태운 두 대의 헬기가 남쪽 하늘로 날아가 버린 뒤, 오 박사는 벽을 걷어차며 욕설을 퍼부었다. 물론 그래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아~”
오 박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다 써야 한다. 직원들까지도 샘플로 쓰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