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68화 (368/449)

2장 1+700 VS. 1,200 (5)

타앙― 탕, 탕, 탕― 타앙―

C동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들으며 진우와 두 병사도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기를 쓰고 좀비들의 파도를 뚫어낸 보람이 있다.

“그렇게나 많았는데… 이제는 그래도 한눈에 줄어든 게 보이네.”

난간에 기댄 채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던 태권소녀가 말했다. 유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거의라고 하면 좀 구라일 것 같고, 한 2분의 1쯤은 잡은 모양이다. 애초에 저놈들 수가 우리가 눈대중으로 계산했던 것보다 더 많았나 보다.”

주차장 여기저기에는 돌에 찍히고, 총에 맞아 죽은 좀비들의 시체가 점점 늘어난다.

특히 조금 전 총알을 배달하기 위해 진우와 두 병사가 뚫고 지나갔던 지역 부근은 좀비 시체들이 부채꼴로 뚜렷한 라인을 형성한 채 쓰러져 있다.

탕, 타앙― 타아앙― 탕―

총성이 울릴 때마다 옥상 위의 민간인들은 큰 소리로 환호를 한다. 머리가 뚫려 자빠지는 좀비들의 수를 세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건물의 옥상에서는 기운을 찾은 사람들이 새로 부순 난간의 조각들을 집어 던져 댄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잔뜩 들떠 있다.

“우리도 동참할까?”

구 상병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점점 커지는 박수 소리, 환호 소리를 듣고 있자니 피가 끓어오른다.

“저도… 좀 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황 일병도 상기된 표정으로 몸을 들썩거렸다. 하지만 두 녀석 다 실탄이 없다. 진우의 허락을 받아야만 고 하사에게 가서 실탄을 지급 받아 올 수 있다.

“손부터 좀 치료해. 그거 그렇게 놔두면 곪아.”

그 말을 하며 구 상병의 손바닥을 가리키는 진우의 왼손 검지는 손톱이 1센티 정도밖에 없다. 손바닥과 팔뚝에도 온통 찢기고 긁혔던 흉터들이 가득하다. 구 상병은 가볍게 웃으며 자신의 상처를 툭툭, 두들겼다.

“너희처럼 우수한 엘리트는 아니지만, 나도 군인이야. 이 정도쯤 괜찮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걸로 감어. 군인은 안 아프냐?”

유빈이 배낭에서 거즈를 꺼내 주며 말했다. 구 상병은 비닐을 뜯고 거즈로 손바닥을 감싸며, 신기하다는 눈으로 유빈을 바라봤다. 이놈의 가방에서는 뭐든지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직 나서지 말고 쉬운 건 저 건물 애들한테 맡겨. 몰려 있는 좀비들 얼추 처리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듬성듬성 서 있거나 빨리 뛰어다니는 놈들만 남을 거고, 그러면 명중시키기가 더 어려워질 거야. 너희랑 진우는 그때 쏘기 시작해 줘. 그때까지는 쉬어야 돼. 인간의 집중력이라는 게 그렇게 무한하지가 않아.”

유빈이 말했다. 이 비가 그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앞으로 세 시간 정도 후면 사방이 다 어두컴컴해질 것이다. 그러니 그전에 주차장의 좀비들을 얼추 정리하고 이 건물과 정반대 편에 있는 보일러부터 꺼야 한다. 그러려면 그때까지 진우와 이 병사들을 쌩쌩한 상태로 보존해 둬야 할 필요가 있다.

“유빈이 말이 맞아. 억지로라도 좀 쉬어. 지금은 흥분해서 밤새도록이라도 싸울 수 있을 것 같겠지만, 금방 손이 떨려오기 시작할 거야. 피곤해지면 실수가 나오잖아, 그럼 총알 아깝고……. 그러니까 저렇게 몰려 있는 놈들 잡는 건 맞추기 쉬운 방향 쪽에 있는 저기 다른 애들한테 맡기고, 우리는 더 주목 받을 만한 일을 하자.”

영웅이 되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두 병사에게 진우가 말했다. 수감자 숙소의 나머지 병사들과 C동의 병사들이 지금 남아 있는 좀비들의 75% 정도를 잡고 나면 그때부터가 진짜 어려운 게임이다.

건물 틈에 숨은 놈들을 일일이 찾아내고 유인해서 모두 죽여야 끝나는 징그러운 게임. 그리고 지금의 C동 사격 페이스로 볼 때, 그 어려운 게임은 약 두 시간 뒤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 ☆ ☆

오후 세 시가 조금 지났을 때, 용산의 태양 그룹 본사에는 정말 반갑지 않은 손님이 들이닥쳤다. 두 대의 하얀 헬기. 그중 한 대는 이제 파멸의 마녀 전용기가 되어버린 아구스타 AW109였다.

“오 박사님! 지금 옥상에 황 사장님이!”

당황한 목소리의 직원이 인터폰을 통해 마녀의 방문을 알렸을 때, 오 박사는 귀찮다는 듯 되물었다.

“황 사장? 그게 누굴 말하는 거야? 어차피 황씨 집안 회사인데, 사장 자리에 있는 황씨가 한둘이야?”

“황나연 사장님 말씀입니다.”

헉―! 그제야 오 박사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번진다.

“뭐야? 오늘이 16일 아니었어? 맞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오 박사는 자신의 시계를 보며 날짜까지 확인했다. 자신이 착각한 것이 아니었다. 실험 대상체들을 넘겨주기로 한 날은 내일이다. 파멸의 마녀, 이 미친년이 약속했던 것보다 하루 빨리 온 것이다.

“제2회의실로 모셔! 아, 아니다! 귀빈 라운지! 거기가 낫겠다.”

“저… 그게, 곧장 오 박사님 사무실로 가시겠다고…….”

젠장! 오 박사는 성질을 이기지 못해 테이블을 내려치며 인터폰을 끊어버렸다.

“하여튼 이 꼴 보기 싫은 년! 사람들이 싫어할 짓만 골라서 한다니까!”

오 박사는 대충이라도 머리를 빗어 넘기고, 책상 위의 재떨이를 쓰레기통 안에 던져 버렸다.

연구에 진도가 나가지 않으니까, 그의 몰골 역시 점점 말이 아니게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기색을 보이면 마녀 년은 기가 살아서 더 난리를 쳐 댈 것이다.

“큰일 났구만, 아직 대가리 수를 다 못 채웠는데… 또 얼마나 잔소리를 지껄여 댈지…….”

오 박사는 메이저가 정리해서 넘긴 자료를 급하게 뒤적거렸다. 자신이 사용해야 하는 샘플들을 제외하면, 대략 30명 정도가 부족하다.

‘어쩌지? 내가 쓸 놈들까지 싹 다 넘겨? 아니… 그래봐야 어차피 숫자는 딱 맞추지 못해. 잔소리 듣는 건 매한가지인데…….’

그렇게 오 박사가 갈등하고 있을 때, 근육질의 보디가드가 문을 벌컥 밀고 들어온다. 노크 따위는 물론 하지도 않았다.

보디가드가 방 안을 빤히 훑어보고 나서 한쪽으로 비켜서자, 그제야 마녀는 하이힐 소리를 또깍또깍 울리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다. 오 박사는 얼른 자료들을 정리해 감췄다.

“익스큐즈 미! 후후후, 닥터 오! 굿 애프터눈!”

비가 이렇게 내리고 있는데도 마녀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걸치고 있다. 아마 그녀 혼자만의 망상 속에서는 오늘이 꽤 좋은 날씨인가 보다. 오 박사의 사무실은 그녀가 끌고 온 보디가드들로 가득 찼다.

“아, 예. 안녕하셨습니까. 연락이라도 미리 좀 주셨으면 제가 마중을 나가는데…….”

오 박사는 성질을 꾹 억누르면서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노노노노, 서프라이즈한 필링을 선물하고 싶었어. 어때요? 놀라웠어?”

마녀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자료와 데이터 출력물들을 아무렇게나 들춰 보면서 대답했다. 예절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보기 어려운 태도다.

“하, 하하… 그렇군요. 그래도 놀라움보다는 반가운 감정이 더 컸달까요?”

“닥터 오가 나를 그렇게 반길 스타일이 아닌데… 왜? 뭔가 익스펙트하고 있는 게 있나 봐?”

마녀가 의자에 다가서자, 보디가드가 얼른 의자를 뒤로 뺀다. 그녀는 의자에 깊이 기대앉으며 거만한 자세로 오 박사를 바라봤다.

“황 사장님처럼 기품 있고 아름다운 분이 방문해 주시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일 수밖에 없죠. 곁에서 모시고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겁니다. 아마 전에 같이 오셨던 그… 음, 미스터 배였나요? 그분에게 물어본다고 해도 같은 대답을 하지 않을까요?”

오 박사는 뱀 같은 눈을 번뜩이며 마녀가 데려왔던 면역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살아 있는 면역자… 그가 정말로 질투를 느꼈던 물건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녀와 함께 오지 않았다. 혹시라도 실험을 하다가 실수로 뒈져 버렸다거나 했다면 정말로 기쁠 텐데.

“후후후, 닥터 오, 마음을 숨기지를 못하겠나 봐? 에브리나잇 미스터 배를 드리밍했어? 후후후, 그 능력 어메이징하기는 하지. 닥터 오가 그리워하더라는 이야기는 미스터 배에게 전해 줄게요. 근데 미스터 배가 닥터 오를 기억이나 할까 모르겠네… 워낙 요즘 핫한 사람이라서 바쁘거든.”

“저 같은 거야 기억을 못하신다고 한들 뭐 어떻겠습니까. 그저 건강하기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남부 연구팀이 영 못 미더워서 말이죠. 뭐, 마실 거라도 좀 내오라고 할까요?”

오 박사는 인터폰을 누르면서 자신의 의자에 앉으려 했다. 그러자 마녀가 차갑게 말했다.

“누가 싯 다운 해도 좋다고 했지? 닥터 오, 그대로 서 있어.”

그녀의 말은 인터폰을 통해 직원들에게도 전달되고 있다. 오 박사는 모멸감을 느끼며 인터폰에서 손을 뗐다. 그러고는 반듯하게 섰다. 계속 억지로 미소를 유지하려다 보니 얼굴에서는 경련이 일어날 것 같다.

“예스, 그렇게 공손하게 서 있으니까 좋잖아? 컴퍼니라는 게 상하가 있어야지. 개나 소나 사장이랑 맞먹으려고 하면 안 되지. 두 유 해브 애니 프라블럼? 닥터 오?”

마녀는 성질을 긁기로 작정한 인간처럼 군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쓸데없는 반항을 해봐야 생기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오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서 있는 게 편합니다.”

“그래, 아랫것답게 굴라고. 나는 미스비헤이브하는 인간들은 도저히 못 봐주니까. 그건 그렇고… 사우스 에어리어로 샌드하기로 되어 있던 샘플들은 다 준비되었나? 응? 아 유 레디?”

“황 사장님, 유감스럽지만 저희 기록에는 샘플들을 인도해야 하는 예정일이 8월 17일로 되어 있습니다. 제 기억도 그게 맞는 걸 보면, 아마도 황 사장님의 비서진들이 뭔가 착오를 일으킨 건 아닐지 의심스럽군요.”

오 박사는 마녀를 빤히 바라보며 ‘너 약속보다 하루 일찍 왔어, 이 미친년아!’라는 말을 최대한 예의 바르게 전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당연히 부끄러워해야 할 상황이지만, 마녀는 그렇지 않았다. 정상적인 년이 아니니까.

“소 왓? 원 데이 차이가 난다고 해서 샘플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오! 컴온! 닥터 오! 당신은 글로벌 리더, 태양 그룹의 간부라고! 올웨이즈 프리페어!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지!”

“준비되어 있는 건 맞습니다. 다만, 항상 정시 출고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재고를 적체시켜 두지 않는 것뿐입니다. 샘플들을 먹이고 재우는 것 역시 전부 다 상당한 비용을 사측에 부담시켜야 하는 거니까요.”

오 박사는 여유를 잃지 않으며 대답했다. 이런 멍청한 년과의 말싸움에서 논리적으로 질 일은 없다.

“저스트 인 타임이라 이거지? 후후후, 아주 잘나셨네? 잠실 방어 부대와 마찰이 있어서 원 위크에 200명은 도저히 임파서블하다고 사정을 하던 인간이, 저렇게 모가지를 빳빳하게 세우면 내가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지? 응? 닥터 오, 그 잘난 척하는 태도의 하프만큼이라도 프로핏을 좀 내봐!”

과연… 오 박사의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마녀는 갑자기 지난 일들을 끄집어내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오 박사는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참았다. 이러다가 갑자기 이 마녀가 할당량을 늘려 버리기라도 하면 또 뒷감당이 힘들어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유능하지 않아! 스마트하기는 하지만, 낫 지니어스라고!”

마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 박사의 얼굴에 삿대질을 해가며 열변을 토했다. 깨끗했던 오 박사의 안경 렌즈에 그녀의 침방울들이 튄다.

“응? 뭐라고 앤서 좀 해봐? 닥터 오, 당신이 이 많은 맨 파워를 가지고 지난 한 달 동안 이뤄낸 리절트가 뭐가 있는지, 난 그걸 듣고 싶어. 마이 컴퍼니의 버짓이 대체 어디에 쓰였는지 말이야.”

“면역자의 항체가 있다는 걸 밝혔고…….”

“노노노노노, 그 이야기는 패스해야지. 당신은 그냥 그런 샘플이 있었다는 것만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실제 면역자를 갖고 있어. 얼라이브한 상태로!”

또 미스터 배인가…….

오 박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망할 년이 그놈의 면역자를 얻은 이후로 그룹 수뇌부가 이곳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점점 더 무례해지고, 지원이 줄어든다.

오 박사의 연구만이 백신을 만드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시절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황 사장님, 사실관계는 정확히 말씀하셔야지요…….”

오 박사는 안경의 렌즈를 닦아 다시 쓴 뒤, 이야기를 이었다.

“수많은 샘플들을 실험하면서 얻은 저희의 데이터는 그렇게 무시하실 만한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황 사장님께서 우연히 면역자를 손에 넣으신 행운은 진심으로 축하드리지만, 남부의 연구소에는 아직 백신을 만들어낼 만한 데이터도 없고, 그만한 능력을 가진 브레인도 없습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오 박사는 마녀의 반응을 살폈다. 마녀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건 곧 그의 말이 맞는다는 의미다. 손톱만 한 성과라도 하나 얻어냈다면, 저년은 대번에 ‘노노노노노’를 외치며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 신이 나서 떠들어 댔을 테니까.

“저는 머지않아 황 사장님이 그런 멍청이들을 버리시고 저희와 손을 잡는 결단을 내리실 거라고 믿습니다. 현명하신 분이니까요. 그리고… 대를 이으실 후계자께서 본사에 계셔야죠. 이곳이 곧 태양의 심장 아닙니까?”

조금 여유를 찾은 오 박사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마녀에게 유혹의 눈빛을 건넸다. 이 멍청한 년이 갑자기 변심을 해서 면역자를 데려오기만 하면, 연구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할 수 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단 하나. 살아 있는 면역자다. 그것만 있으면… 백신도 꿈이 아니다.

“후, 후후후후, 하하하하!”

잠시 오 박사의 눈을 마주 보고 있던 마녀는 미친 듯이 웃어 대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히스테릭한 웃음소리를 뱉어내던 마녀는 갑자기 정색을 하고 오 박사에게 물었다.

“설렜어?”

“네?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넘어갈 것 같은 페이스로 보고 있으니까 설렜냐고? 닥터 오, 나를 너무 우습게 보지 마요. 당신처럼 너드 같은 타입, 난 딱 질색인 사람이야. 하여간 대디도 참… 나이브하다니까. 뭣 때문에 이런 라이어에게 미련을 두는지 몰라. 글로벌 그룹의 리더는 냉정할 필요가 있는데 말이야.”

마녀가 지껄이는 말들 중 황 회장이 아직도 이 연구소에 미련이 남았다는 이야기만은 오 박사의 귀에 아주 선명하게 꽂혔다.

‘그래, 역시… 황 회장은 그래도 이곳을 믿고 있어. 다행이다…….’

오 박사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마녀는 곧바로 그의 심장을 얼려 버릴 이야기를 꺼냈다.

“닥터 오, 마이 대디한테 감사해. 그저 트러스트하기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처럼 무능한 리서처를 단번에 내치지 못하는 나이스 맨이니까 말이야. 투 위크스!”

그런 후, 마녀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마이 대디가 당신에게 주는 라스트 찬스예요. 앞으로 2주! 그동안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그래도 별다른 성과가 없으면, 여기는 끝이야. 디 엔드! 내 밑으로 들어와서 매일 마이 슈즈를 핥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든지, 그게 싫으면 좀비들에게 물려서 뒈져 버려! 2주 뒤에는 더 이상 지원이라는 게 없을 테니까! 유 갓 미? 이건 파이널 노티스야!”

‘이런 날벼락이… 이년,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하루 빨리 달려온 건가?’

오 박사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이년 앞에서 약한 모습을 내보이기 싫다. 그게 이 망할 년을 얼마나 기쁘게 만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2주… 지금까지 한 달이 넘도록 이뤄내지 못한 성과를 앞으로 보름 만에 만들어내야 한다. 게다가 면역자를 확보하고 있는 이 마녀 년과 경쟁을 해서 이길 만큼의 탁월한 성과여야 한다. 대단한 천운이 따르지 않는 한은 무리다.

“아하하하하! 닥터 오! 표정이 아주 배드해! 데스 센텐스 받은 사람 같다고! 근데 어쩌지? 나 그런 표정 좋아해! 하하하하! 괜찮잖아? 당신, 자칭 지니어스 아냐? 그러니 2주 만에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지!”

마녀는 신이 나서 웃어 댄다.

‘당황하지 마라… 비굴해질 필요 없어. 괜찮아. 아직 기회가 있는 거야.’

오 박사는 단 며칠이라도 기한을 연장해 달라고 사정하고 싶은 본능을 억지로 눌렀다. 이 마녀 년은 타인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지거나 할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되더라도 이쪽에는 작은 회장이라는 인질이 있다. 황 회장의 유일한 아들. 비록 좀비로 변해 버렸지만, 그 늙은이가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붙잡고 있는 혈육. 그놈이 여기에서 밥을 처먹고 있는 동안에는 황 회장은 이 본사를 포기할 수 없다.

띠리릭―

오 박사가 가까스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버티고 있을 때, 마녀의 보디가드가 가지고 있던 무전기가 울린다. 보디가드는 귀에 손가락을 대고 이어폰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음, 준비 끝났나?”

준비? 무슨 준비를 말하는 거지?

오 박사는 겁에 질린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면서 보디가드들의 눈치를 살폈다. 녀석의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무슨 소리들이 나오는지 전혀 알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음, 알았어. 나가지.”

보디가드는 무뚝뚝하게 무전을 끊었다. 그러고는 마녀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여서 귀엣말을 건넸다. 마녀는 잘난 척하는 특유의 꼴 보기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 ‘아하, 아하, 오케이’를 연발했다.

“닥터 오, 나갑시다. 쉘 위 고 나우?”

마녀는 벌떡 일어나서 오 박사에게 따라오라는 손가락질을 한 뒤, 앞서 걷기 시작했다. 보디가드가 문을 열고 잡아준다.

“지금…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걸음을 서둘러서 마녀를 따라잡은 오 박사가 물었다. 마녀는 그를 힐끔 돌아보고 나서 선글라스를 끌어 올리며 대답했다.

“마이 브라더를 데리러 가는 거지. 당연한 거 아니에요?”

“자, 작은 회장님을?”

“그래, 사우스 에어리어로 데려갈 거야. 대디도 그놈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고… 훗, 만나보면 대디도 알게 되겠지. 얼마나 디스거스트한 몬스터가 되어버렸는지.”

“하지만… 작은 회장님은 지금… 그렇게 장거리 여행을 하실 만한 상태가 아닌데요.”

오 박사는 애원하는 어조로 말하며 자신도 모르게 마녀의 팔목을 잡았다. 그만큼 다급했다.

“왓 더 퍽!”

신체 접촉이 일어나자 마녀는 입술을 앙다물고 욕설을 내뱉었다. 곧바로 보디가드들이 달려들어 오 박사의 손을 비틀고 그를 벽에 밀어붙인다. 주변에 서 있던 직원들이 두려움이 가득한 비명 소리를 낸다.

부하직원들 앞에서 이 무슨 쪽팔린 상황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보다 두려움이 몇 배나 더 크게 느껴졌다.

“아니… 아니… 실수입니다. 저도 모르게 놀라서 그런…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사과드리겠습니다.”

벽에 얼굴이 눌린 오 박사는 치욕스러움을 꾹 참고 마녀에게 빌었다. 지금은 체면이고 뭐고 따질 때가 아니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지만, 비 오듯 쏟아지는 식은땀으로 그의 등은 금세 흠뻑 젖었다.

작은 회장은… 자신의 생명줄이다. 이걸 그냥 줘버리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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