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700 VS. 1,200 (3)
“음, 그러자.”
아래쪽 좀비들의 움직임을 한 번 훑어본 후,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관도 어깨를 돌리며 몸 쓸 준비를 한다.
총 네 명이 나간다. 선봉에는 진우, 보안관. 태권소녀가 그 뒤를 따르고, 맨 뒤에 유빈이 탄창 가방들을 메고 따라갈 계획이다.
총알 배달팀에 포함되지 못한 제니는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외부로 나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그 순간이 되니 불안해져서 견디기가 힘들다.
“괜찮아, 제니야. 금방 나갔다가 휙 던지고 돌아올 테니까.”
보안관이 다가가 귀엣말을 하며 그녀를 달랬다.
“작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될 건지… 우리도 좀 들어볼 수 있을까? 동선이라든지, 이런 거 말이야.”
다들 무기와 짐을 챙기고 있을 때, 구 상병과 황 일병이 쭈뼛거리며 물었다. 유빈은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까 그거 농담이었어. 부담 가지지 마.”
구 상병이 고개를 저었다.
“부담 가지는 게 아니야. 뭐… 거창하게 말하자면 우리 중대의 명예라든가, 사내새끼로 태어나서 어쩌고 하는 이야기들을 떠들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런 게 아니야. 그냥 너희들이… 특히 진우가 무사히 총알을 배달하고 돌아와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아서 하는 말이야. 도울 수 있으면 도울게.”
“구 상병님 말씀이 맞습니… 맞아! 우리도 돕고 싶어. 너희 넷이 가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 둘쯤 따라간다고 해서 특별히 더 부담이 되거나 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혹시 우리가 짐이 돼?”
황 일병도 적극적으로 동참 의사를 밝혀왔다.
얘네들을 어쩐다…….
유빈은 진우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원래부터도 개중 나은 인원을 뽑아서 진우와 함께 열두 시간가량을 함께 사격 연습을 했으니, 사격 솜씨 자체는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화력이 보강된다는 건 물론 굉장히 좋은 일이다. 그런데…….
안전한 옥상에서 마음을 놓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좀비와 같은 바닥을 밟고 서서 사방에서 달려오는 놈들을 상대하는 건 완전히 다르다.
전자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험이라고 하면, 후자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압박감을 준다.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패닉을 일으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 쉘터의 병사들이 어떤 환경에서 전투를 치러왔는지 잘 모르는 진우와 유빈은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철책 없는 데에서 좀비들이랑 싸워본 적 있어?”
진우가 물었다. 두 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는 좀 더 자세하게 물었다.
“그래? 어떤 상황이었어?”
“외부 물자 징발해 올 때, 트럭 위에서… 길거리에 좀비들이 한 열 마리 정도 돌아다니는 걸 잡은 적 있어.”
트럭 위라… 그건 엄밀히 말하자면, 옥상 전투의 변형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 좀비들의 수도 매우 적었다.
진우는 두 용기 있는 병사에게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너희가 도와주면 우리에게도 큰 힘이 될 거야. 근데 내려가서 보면 알겠지만, 같은 높이에서 달려드는 좀비들을 마주하면 여기에서 내려다보는 것하고는 완전히 다르거든. 일단 거리 계산이 정확하게 안 되기 때문에 어떤 놈이 앞서 달려오는 건지, 어떤 놈이 뒤에 있는 건지 잘 분간이 안 돼. 그런 걸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
꿀꺽, 두 병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달라붙는 것 같은 기분이다. 진우는 둘의 표정을 살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사방에서 좀비들이 시끄럽게 우니까 자꾸 뒤를 돌아보고 싶어져. 다 알잖아, 괜히 목덜미가 서늘한 느낌. 그런데 그러면 오히려 앞쪽도 제대로 신경을 못 쓰니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기 눈을 믿어야 돼. 그리고… 사살한 좀비 시체들 사이를 비집고 뛰어다니는 게 은근히 힘들어. 비위도 상하지만, 사실 갑자기 팔을 확 뻗어올까 봐 무섭다고.”
구 상병과 황 일병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진다.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해 낼 수 있을까? 지금은 비도 이렇게 계속 내리고 바닥은 미끄러울 텐데… 괜히 객기 부리며 따라 나갔다가 이 세상 하직하는 거 아닌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고 싶어. 좀비들 시체는 익숙해. 이 앞에 죽여놓은 놈들 계속 치우다 보니까 그거는 어느 날부터 인이 박히는 것 같더라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구 상병이 먼저 대답했다. 황 일병도 곁에서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도 구 상병님과 같은 생각입니… 생각이야! 이 작전이 실패하면 어차피 다 죽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유빈은 난간 앞에서 그들이 가야 하는 루트를 설명했다.
“그럼 진우가 가운데 서고, 너희 둘이 양쪽에 서서 전진하자. 뒤에는 우리가 있으니까 뒤는 신경 쓰지 말고 가. 저기 저 커다란 시멘트 조각 보이지? 이 건물 나가서 저기까지 전진한 다음에 보안관이 탄창 가방을 던질 거야. 그러니까 시멘트 조각 앞에 도착하면 보안관이 던질 수 있도록 양쪽으로 벌려서 서. 두 개 다 던져 올리고 나면 곧바로 돌아오는 거야.”
두 병사는 열심히 눈을 빛내며 유빈의 말을 머릿속에 담았다. 복잡할 것도 없는 작전인데, 몇 번이나 눈으로 투척 지점을 재확인했다.
막상 나가기로 결정한 뒤 다시 보는 주차장은 그야말로 좀비들의 밭이다. 뭐 저렇게 많이도 몰려다니는지… 그렇게 많이 잡았는데도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자꾸 기어 나온다. 두 병사가 바짝 얼어 있는 것을 본 진우가 그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렇게 긴장하면 오히려 실수해. 빨리 겨누고 곧바로 당기는 그 리듬만 기억해. 그리고… 무리라고 판단되면 이 건물 나가기 전에 내가 다시 올려 보낼 거야. 그러니까 위험할 일은 없어.”
격려로 시작된 말이지만, 냉철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로 끝이 났다. 하지만 진우는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다.
“알았어. 배운 대로 해볼게.”
구 상병과 황 일병은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바 뒤로 식은땀이 주륵주륵 흘러내린다. 진우는 두 병사에게 탄창 다섯 개씩을 나눠줬다.
“3점사로 한 놈 머리를 확실히 때린 후에, 다음 목표를 겨눠. 마음이 급하다고 이리저리 흔들면 결국은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죽이니까.”
진우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필드 사격의 요령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사이 유빈은 강 소위에게 확성기 방송을 부탁했다.
삐이익―
강 소위는 확성기 스위치를 켜고 유빈의 말을 주변에 전했다.
“잠시 후, 14시 10분부터 특수 요원들과 우리 중대에서 선발된 두 명의 병사가 C동에 실탄을 전달하기 위해 접근할 계획이다. 모든 중대원들은 그들의 성공적인 작전 완수를 위해 최대한의 협조를 아끼지 않도록! 일단 그들이 본 수감자 숙소를 나서는 순간부터 모든 투척 행위는 별도의 허가가 있을 때까지 완전히 금지한다! C동에서는 투척되어 오는 실탄 가방을 언제라도 받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그의 목소리는 추적거리며 내리는 비를 뚫고, 쉘터 전체에 전달됐다. 강 소위가 계속 떠들어 대는 동안, 일행들은 옥상 문 앞에 모여 섰다.
쿵― 쿵―
옥상 문을 막아둔 에어컨 실외기는 계속해서 흔들려 대고 있었다. 좀비들이 온몸으로 부딪쳐 오고 있는 것이다. 그 앞을 막고 있던 병사와 민간인들은 총알 배달 팀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에 당황하고 있었다.
“이… 이걸 열면 곧바로 좀비들이 들이닥칠 텐데…….”
쉬지 않고 쿵쿵, 울려 대는 문을 보며 병사들이 겁먹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하긴 무섭기도 할 것이다. 문 너머에 있는 좀비의 수가 총 몇 마리나 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대처하겠습니다. 실외기만 치우고 물러나시면 됩니다.”
진우는 에이스답게 흔들림 없는 어조로 말했다. 병사들은 할 수 없이 문 앞의 장애물들을 옆으로 밀어내고 뒤로 물러났다. 긴장한 민간인들이 가급적 멀리에 몰려서서 내쉬는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온다.
확성기를 든 강 소위는 실탄을 지급 받으면 자신의 목숨처럼 아껴서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외치고 있는 중이다.
“연다. 준비해. 셋 세는 동시에 열게!”
다른 병사들이 총을 겨누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한 뒤에, 유빈은 문 앞에서 손잡이를 잡고 진우와 두 병사에게 말했다. 세 명의 사수는 조준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퉁―
또다시 문이 흔들린다. 튼튼한 철문에 비해 빈약하기 짝이 없는 잠금장치는 당장에라도 뜯겨 나갈 것 같다.
“하나! 둘! 셋!”
유빈은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확 잡아당겼다. 몸을 부딪치려던 좀비가 중심을 잃고 앞쪽으로 고꾸라지듯 뛰어든다.
투투둑― 투투둑―
구 상병과 황 일병의 총구가 거의 동시에 불을 뿜었다. 뛰어들던 좀비는 머리와 가슴이 엉망으로 박살 난 채 바닥을 뒹군다. 하지만 문가에서 어슬렁거리던 좀비들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그롸아아아―
제2, 제3의, 그리고 그 뒤에도 더 많은 수의 좀비들이 열린 문을 통해 뛰어 나온다.
꺄아악―
좀비들이 옥상으로 난입하는 것을 지켜보며 민간인들은 비명을 질러 댔다.
탕― 탕, 투투둑― 탕, 투투둑― 탕, 탕― 투두둑―
진우의 단발과 두 병사의 3점사가 교차하며 요란한 총소리가 옥상 가득 퍼졌다. 그와 함께 빗물이 고인 바닥에 쓰러지는 좀비들의 수도 늘어났다. 총 아홉 마리의 좀비를 쓰러뜨리고 나자 비로소 옥상 문 앞이 조용해졌다.
“저거 치워 드려! 아예 아래로 던져 버려!”
김 중사가 나서서 병사들에게 좀비들의 시체를 치울 것을 명령했다. 병사들은 좀비의 시체를 양쪽에서 잡고 난간 쪽으로 끌고 갔다. 터져 버린 좀비들의 뒤통수에서는 부서진 뇌 조각들이 툭툭, 떨어진다.
“가자! 계속 긴장 유지해!”
진우가 어둑한 건물 안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그의 레일 오른쪽에 달려 있는 플래시가 계단 내부를 환하게 밝혀준다.
“이것 좀 봐. 어지간히 극성맞게 덤벼들었네, 개새끼들.”
옥상 문 주변에 쌓아뒀던 장애물들이 모두 무너져서 아래로 굴러 떨어진 걸 보며 보안관이 진저리를 쳤다.
그들이 들어올 때 그렇게 많은 좀비들을 잡았었는데, 어느새 또 그보다 많은 놈들이 들어와 설쳐 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문 닫고 다시 막아두세요.”
맨 뒤에 선 유빈이 군인들에게 문단속을 시켰다. 병사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발밑 조심해.”
앞장선 진우가 2층으로 내려가지 않고, 3층 복도 쪽으로 돈다. 매 층의 좀비들을 모두 잡고 내려가야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구 상병과 황 일병도 묵묵히 그 옆을 지키며 보폭을 맞췄다.
끄롸아아아― 그아아아―
비가 내려 어둑한 복도에서 좀비들이 진우 일행을 발견하고 방향을 바꿔 달려온다. 진우는 플래시로 정면을 비추며 외쳤다.
“쏴!”
투투툭― 투투둑― 투두두―
두 병사가 열심히 총구를 돌려가며 3점사를 퍼붓는다. 진우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 기다렸다. 이런 압박 속에서 구 상병과 황 일병이 얼마나 침착하게 제 몫을 하는지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달려오는 좀비들의 수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스무 마리. 긴 복도의 길이를 감안하면 테스트하기에는 꽤나 좋은 환경이다. 게다가 좁은 각도만 살피면 되니까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다.
“왜? 왜?”
진우가 발포하지 않는 것을 깨달은 구 상병이 당황해하며 외마디 소리로 물었다. 그러면서도 녀석은 멈추지 않고 계속 3점사를 날린다.
이건 +1점. 그는 이 상황에서 진우의 총성을 신경 쓸 정도로 여유가 있다.
그롸아아악―
탁탁탁―
뒤쪽에서도 들려오는 좀비들의 포효와 발소리.
진우는 힐끔 고개를 돌렸다. 계단을 뛰어 쫓아 올라온 좀비가 네 마리. 보안관이 해머를 들고 때릴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 저쪽은 걱정 없다.
“여섯 시는 보안관한테 맡겨! 전방에 집중해!”
진우는 병사들에게 뒤돌아보지 말라고 소리쳤다. 도움 요청이 오기 전까지는 괜한 오지랖 부리지 말고 자신이 맡은 일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다. 구 상병과 황 일병은 진땀을 흘리면서 전방을 향해 총알을 날렸다.
투투툭― 투투투―
열심히 3점사를 퍼붓던 두 병사의 총성이 거의 동시에 멎었다. 당황한 얼굴의 구 상병과 황 일병은 탄창을 빼고, 전술 조끼를 더듬어 새 탄창을 꺼내 끼웠다. 그러나 그 간격이 너무 길다.
그롸아아아―
잠깐의 화력 공백기 동안 좀비들은 거리를 확 줄였다. 이대로라면 너무 아슬아슬해질 것 같아서 진우는 한 번만 개입하기로 했다.
탕― 탕, 탕, 탕, 탕―
근접해 있던 다섯 마리를 사살한 진우는 다시 방아쇠에서 손을 뗐다. 두 병사가 마침 탄창 교체를 마쳤기 때문이다.
둘이 탄창 교체 시기를 조절하지 못한 건, 그리고 그 작업의 시간이 좀 길게 걸린 건 -1점. 하지만 이런 식의 전투 경험이 적은 병사들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투투두― 투투둑― 투투둑― 투투둑―
복도에 남아 있던 모든 좀비들을 정리하고 나서 구 상병과 황 일병은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복도 양쪽의 흰 벽은 온통 좀비들의 체액과 뇌수로 뒤덮여 있다.
조금 삐걱거린 지점은 있지만, 진우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20마리 가량의 좀비들을 잡아냈다. 처음 근접전을 벌인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후방은… 하아, 하아~”
두 병사는 겨우 안정 상태로 돌아와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이 걸어온 방향에는 대가리가 박살 나고 목이 꺾인 좀비들의 시체가 벽에 처박혀 있다. 보안관의 해머에 당한 놈들이다.
“야, 너 아래층 내려가서도 계속 그런 식으로 개인 레슨 계속할 거야? 그렇게 시간 끌지 말고 그냥 후딱후딱 해치우고 돌아가자.”
해머에 달라붙은 뼛조각을 벽에 문대서 털어내고 있던 보안관이 진우를 보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보안관은 곧바로 두 병사에게 말했다.
“아니, 너희들한테 뭐라고 하는 거 아니야. 그냥 진우, 이 새끼가 조교 노릇에 너무 심취해 있는 것 같아서 그래.”
“2층에서 한 번만 더 연습하자. 그래야 아래로 내려가서 후회할 일이 없으니까.”
보안관의 타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우는 모두에게 동의를 구했다. 비록 한두 가지의 요령일 뿐이지만 자신이 가르쳤고, 두 병사는 충실히 따라왔다.
만약 그들이 실제 근접전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한다면, 이 쉘터 내의 좀비들을 모두 섬멸할 때까지 중요한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 잘 따라주고 있네.”
깨진 유리창 사이로 밖을 내다본 유빈이 말했다. 가장 먼 곳의 위험 환자 숙소와 그 바로 다음 건물에서는 좀비들을 자신들 쪽으로 유인하기 위해 계속해서 담배를 피워 대고 있었다.
떨어지는 빗줄기 사이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인다. 모든 협력을 아끼지 말라고 하며 강 소위가 당부했던 사항을 이행하는 것이다.
많은 인원이 동시에 피워 대는 연기는 꽤나 강력했고, 덕분에 담배에 끌린 좀비들은 쉘터의 남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주차장의 북쪽이 텅 비었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이 부근에 놈들의 수가 꽤나 줄어들어 있는 건 확실하다.
“저러다가 페인트 좀비들까지 끌어들이는 거 아닌지 몰라…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태권소녀도 창밖을 기웃거리면서 물었다. 유빈이 고개를 저었다.
“아까 규영이랑 무전으로 이야기했어. 그놈들, 낮 열두 시 되기 조금 전에 어제 그 불 질렀던 방향으로 돌아갔다고. 아무리 짧아도 열서너 시간은 걸려야 한 바퀴 돌아서 이리로 오니까, 아직 시간 여유 꽤 있어.”
“아, 그런가?”
태권소녀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에 보안관은 또 계단을 따라 뛰어 올라오는 좀비들을 둘이나 때려잡았다. 해머로 두개골을 쪼개는 박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병사들은 뭐라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대단하지? 저 무거운 걸 존나 빠르게 휘두른다니까? 나도 몇 번을 봤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가. 완전 괴물이야.”
두 병사에게 보안관 자랑을 한 진우는 2층으로 내려가기 전, 다시 전열을 재정비했다. 이번엔 구 상병에게 후방을 담당하도록 지시했다.
계단을 내려가 코너를 돌자마자 진우와 황 일병은 전방을 보며 전진하고 구 상병은 뒷걸음질로 아래층 계단에서 올라오는 좀비들을 제압하는 방식이다.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는데… 나 혼자서 후방을 다 감당한다니까 좀 불안하기도 하고.”
구 상병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솔로로 한 방향을 제압한다는 것이 꽤나 큰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진우는 그를 안심시켰다.
“조금 전 쏘는 거 보니까 충분히 할 수 있어. 그 불안함을 이기기만 하면 돼. 그리고 정 못하겠으면 ‘후방 지원!’이라고 외쳐. 내가 곧바로 지원할게.”
진우의 인정을 받은 것만으로도 구 상병의 얼굴에서는 한결 긴장한 빛이 걷혔다. 진우는 두 병사와 함께 총구를 돌릴 때의 방향이나 각도 따위를 맞춰본 뒤, 아래층으로 향했다.
“어으…….”
좀비 시체들로 가득 덮여 있는 2층 계단을 지나면서 태권소녀가 미간을 찌푸린다. 이렇게 물컹거리는 시체들을 밟고 움직인다는 건 영 익숙해지기 힘들다.
그에 비해 두 병사는 그다지 움츠러드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좀비 시체를 치우다 보니 적응이 된 것 같다는 게 헛말이 아닌 모양이다. 이만하면 간도 꽤 크다.
계단 중간까지 내려섰을 때, 복도와 아래층에서 동시에 좀비들이 덤벼들기 시작했다.
그롸아아아―
앞장 서 있던 좀비가 포효하며 몸을 날렸다. 놈의 머리통을 향해 황 일병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
투투둑―
턱 위쪽으로 세 발의 총알이 박힌 좀비는 뒤로 밀려 날아가며 다른 좀비들을 깔아뭉갠다. 다시 일어나려 버둥거리는 좀비들을 향해 진우와 황 일병이 계속해서 3점사를 날렸다.
“오른쪽!”
2층 복도에 들어선 진우가 방향을 틀며 외쳤다. 황 일병은 전방에서 달려오는 좀비들을, 구 상병은 후방에서 뛰어 올라오는 좀비들을 상대했다.
투투둑― 투투투― 투투둑―
복도와 계단을 타고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옥상에서 내려온 이래, 계속해서 격하게 떨리던 두 병사의 총구가 이제는 꽤나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진우는 그 둘과 함께 아래로 내려가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정도면 큰 힘이 되어줄 만하다.
“아래로 내려가서도 계속 이렇게 해줘. 당황하지만 않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양이야. 알겠지? 모든 좀비들을 다 잡으려고 하지 마. 너희 정면에서 30도 이내만 상대해. 그거면 충분하니까.”
2층의 좀비들을 다 잡고 나서 병사들에게 탄창을 교환하도록 한 진우는, 그들에게 한 번 더 당부를 했다.
특수 요원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것에 적잖이 흥분한 구 상병과 황 일병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열심히 끄덕였다.
“아, 그놈들… 진짜 어지간히 몰려오네. 좀 가만히 제자리에 있지. 그러면 저희들도 편하고, 나도 편할 텐데.”
잊을 만하면 한두 마리씩 탁탁거리며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좀비들의 머리통을 후려치며 보안관이 중얼거린다.
“잠시 대기!
유빈이 손을 들어 모두를 멈추게 한 후,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그러고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분유 깡통을 열었다. 그 안에는 라이터 기름을 끼얹어 둔 담배들이 가득 들어 있다.
비가 와서 효과가 제대로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사용해야 한다.
“후웁~ 콜록! 콜록!”
그중 한 개비에 불을 붙인 유빈은 억지로 두어 모금을 빨아 불똥을 키운 뒤, 그걸 분유 깡통 안에 던져 넣었다.
화르륵~!
기름이 묻어 있던 담배들은 금세 붉은 불꽃과 함께 매캐한 연기를 피워 올렸다. 유빈은 얼른 분유 깡통의 뚜껑을 덮고 보안관에게 넘겼다.
“던져!”
보안관은 장갑을 낀 손으로 뜨겁게 달궈진 분유 깡통을 꽉 잡고 깨진 창문 밖으로 힘차게 집어 던졌다. 진우가 미리 대검으로 뚫어둔 구멍 사이로 뿌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멀리까지 날아간 분유 깡통은 지나가던 좀비의 대가리에 맞고 아래로 데구루루 굴렀다. 그 주변으로 좀비들이 몰려드는 게 확연히 보인다.
“좋아! 나가자!”
일행은 계단을 뛰어내려 일층에 도착했다. 어제저녁 급하게 옥상으로 대피했던 이후, 열다섯 시간 만에 밟아보는 땅이다.
그롸아아아~!
싱싱한 인간이 한꺼번에 여섯이나 튀어나오자 근처의 좀비들은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었다.
“쏴!”
진우의 신호와 동시에 세 명의 사수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투투투― 탕, 투투둑― 투투둑― 탕, 탕―
그롸아아아― 그웨에에에―
뼛조각과 살점이 튀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물웅덩이로 나자빠지는 좀비들이 일으키는 물보라가 시야를 흐린다. 수감자 숙소의 입구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