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700 VS. 1,200 (2)
“가능하면 그렇게 해야지. 너무 위험부담이 크지 않다는 게 확신이 들면. 그리고…….”
유빈은 고개를 들어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이 비가 좀 그쳐야 돼. 그래야 기껏 가져온 담배도 써먹을 수 있고. 에휴~ 불질러 놨던 것도 다 꺼졌을 텐데, 어쩐다?”
“아, 아니, 저기… 잠깐만…….”
구 상병이 다급한 목소리로 유빈과 진우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두 분… 아니, 너희들이 엄청 대단한 능력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 것 같은데… 저렇게 좀비들이 많은데 어떻게 그 사이를 뚫고 나가려고?”
황 일병도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미친 짓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음? 우리 능력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어차피 너희들이 가는 건데? 우리 팀은 지시만 해.”
유빈이 대답했다. 두 병사의 얼굴은 더욱 파랗게 질렸다. 구 상병과 황 일병 모두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하고 있는 걸 보며 유빈은 미소를 지었다.
“크큭, 농담이야, 농담! 우리가 가는 거 맞아. 근데 지금 가는 게 아니라, 저 사람들이 옥상에서 던질 수 있는 건 다 집어 던지고 난 뒤에 시작할 거야. 그때쯤 되면 좀비들도 꽤 줄어 있겠지. 그동안 너희도 많이 잡았잖아.”
유빈은 두 병사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하… 하하하.”
간이 똥구멍까지 떨어졌다가 겨우 다시 올라붙은 두 병사도 화를 꾹 참으며 억지로 웃는 척을 했다.
이 새끼… 이걸 지금 농담이라고 하는 건가…….
유빈이라는 요원의 얼굴이 왜 이렇게 멍투성이인지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분명히 저 덩치 큰 근육질에게 이따위 저질 농담을 던졌다가 한 번 호되게 두드려 맞았을 거다. 분명해…….
“저 건물 먼저 갈 거냐?”
오른쪽의 의심 환자 숙소 건물을 가리키며 진우가 물었다. 총알이 더 간절한 것은 체육관 옥상 쪽이겠지만, 거기는 병사가 네 명뿐이다. 지붕의 모양도 경사져 있기 때문에 실탄을 전달하기 어려움이 있다.
그에 비해서 의심 환자 숙소 건물은 수십여 명의 병사들이 있고, 옥상도 넓고 평평하다.
“음, 맞아.”
유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주목하게 될 작전이니만큼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을 때 한 번에 이뤄내고 싶다. 그래야 이렇게 어렵사리 끓어오른 분위기가 식지 않고 유지될 수 있을 테니까.
유빈은 주차장의 반대편에 있는 두 대의 발전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좀비들 어느 정도 정리되면 저것부터 얼른 꺼야 돼. 아까부터 저 주변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만 봐도 무서워. 페인트 좀비들 기껏 방향 바꿔놨는데, 저것 때문에 다시 올까 봐.”
아, 맞다. 발전기…….
진우는 자신의 이마를 가볍게 두드렸다. 저기에서 얼마나 열기가 나오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일단 위험 요소는 제거해 줘야 한다. 제거해야 하는 건 맞는데… 문제는 거리가 꽤나 멀다는 점이다.
“이야아아! 죽어!”
주변 건물의 옥상에서는 여전히 저주의 기합 소리가 들려온다. 파괴적인 쾌감에 깊이 몰입된 민간인들은 난간을 때려 부수고 돌조각을 집어 던져 좀비들을 맞추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젠장, 되게 안 죽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는 효율이 안 좋아.”
보안관이 두 손을 털며 다가왔다. 녀석의 머리카락과 상의는 시멘트 가루들이 잔뜩 묻어 있다. 유빈이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렸다.
“잘 왔다. 너도 앉아서 좀 쉬어라. 삼식이는?”
“아아, 꽃밭에 푹 파묻혔어. 저 새끼, 하여간 재주도 좋다니까.”
보안관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뒤쪽을 가리켰다. 삼식이는 태권소녀와 제니 옆에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녀석 주변의 여자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좀비들을 향해 시멘트 조각을 집어 던져 댄다. 그녀들의 얼굴만 보면 어디 야유회라도 나온 사람들인가 싶을 만큼 들뜬 분위기다. 삼식이의 ‘잘생김 파워’는 이렇게 극한 상황에서도 통하는 모양이다.
“혜주도 좀 쉬어야 할 텐데… 그래야 이따가 탄창 배달하러 갈 때 기운이 있지.”
열심히 시멘트 조각들을 집어 던지는 태권소녀를 보며 보안관이 중얼거렸다. 연약한 여자 코스프레를 하겠다고 했을 때의 마음은 다 어디로 가고, 그녀는 아주 에너지가 넘친다.
한 번씩 좀비들을 명중시킬 때마다 태권도 선수들이 득점했을 때처럼 오른 주먹을 하늘 위로 들어 올리며 괴성을 지른다.
“여자를 데리고 가는 건 아무래도 너무…….”
황 일병이 자기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보안관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돌아보며 웃었다.
“아니, 절대 위험하지 않아. 네 눈에는 쟤가 그냥 여자로 보이나 본데, 옆차기 한 대… 아니다. 그냥 손바닥으로 등짝 한 번만 맞아보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갈 거다. 쟤는 믿고 등을 맡겨도 되는 애야.”
그렇다고? 아무리 그래도 여자인데? 황 일병은 보안관의 말을 듣고 나서도 선뜻 믿기지가 않았다. 두 병사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유빈의 배낭에서 치익거리는 소리가 울려왔다. 무전기에서 나는 소리다.
“벌써 낮 열두 시인가?”
유빈은 구석으로 가서 배낭 지퍼를 열고 무전기를 꺼냈다. 그러고는 손바닥으로 비를 가린 채 무전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 치이익, 유빈이 형! 유빈이 형! 대답해요! 치이익.
규영이의 목소리였다.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 녀석에게 무전기를 주며 두 가지 부탁을 했었다. 만약 어제 불을 질러 방향을 바꿔놨던 페인트 좀비들이 혹시 이쪽으로 오면 알려 달라고.
그리고 별일이 없더라도 낮과 밤 열두 시가 될 때마다 한 번씩 무전을 보내 달라고. 그 무전이 오지 않으면 녀석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의미다.
“응, 나야! 별일 없지, 규영아?”
― 치이익, 네. 조금 전에 좀비들… 치익, 어제 형들이 불 질렀던 그 길 따라 돌아갔대요. 치이익, 형들은요? 누나들은요? 치익.
그건 좋은 소식이다. 유빈은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 잘 있어. 그… 좀비들은 누가 보고 온 건데? 신입?”
― 치익, 아뇨. 수정이 누나가 알려줬어요. 치이익, 그 누나가 한 번씩 옥상에 올라가서 보고와요. 근데 비가 오는 바람에… 치이익, 불이 다 꺼져서… 치익, 형이 필요하다고 하면 불도 지르고 오겠대요. 치이익.
“그건 너무 위험해서 안 돼. 거기에서 사거리가 꽤 멀어.”
유빈은 몇 번이나 건물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임수정의 용기는 고맙지만, 그녀에게는 좀비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걸 뿌리칠 만한 수단이 없다. 총을 한 자루 맡겨놓고 오긴 했어도 그녀의 사격 실력이라는 게 워낙 빤한 수준이다.
유빈은 뒤를 힐끔 돌아보고 근처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말을 이었다.
“대신에 시간 맞춰서 좀비들 다니는 길은 꼭 봐줘야 돼. 만약에 사거리에서 꺾지 않고 이쪽으로 온다 싶으면 그건 꼭 알려줘. 알았지?”
몇 백 미터 전에 좀비들이 온다는 걸 알 수 있다는 건 중요한 자산이다. 만약 오늘 밤에 그런 상황이 온다면… 여기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일단 친구들만 데리고 차로 도망칠 작정이다. 그런 뒤에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게 다 같이 옥상에 모여서 죽어가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까.
― 치이익, 네,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치익.
“사람들은 얌전히 말 잘 듣고 있어? 말썽 피우는 사람은 없고?”
― 치익, 아, 네… 다들 워낙 기가 죽어서… 조용해요. 치익, 신입 형이 그건 또 잘하더라고요. 치이익, 좀비들 다 죽였어요? 치이익.
“아직, 좀 시간이 걸려. 워낙에 많아서. 삼숙이랑 잘 놀고 있어. 조심하고, 밤에 또 연락하자.”
무전을 끊은 유빈은 무전기의 물기를 닦아 배낭 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빨랫줄을 꺼낸 뒤 매듭을 풀며,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뭐래? 잘 있대?”
보안관이 물었다. 유빈은 고개만 끄덕이고 페인트 좀비들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구 상병과 황 일병에게 말이 들어가면 다른 병사들도 알게 될 테고, 그러면 가까스로 끌어 올린 분위기가 걱정 때문에 또 가라앉게 될 거다. 그런 골치 아픈 일을 모든 사람들이 다 알 필요는 없다.
“그건 뭘 하려는 겁니… 뭐하려는 거야?”
풀어낸 빨랫줄의 길이를 재보고 있는 유빈을 보며, 구 상병이 물었다.
“저 건물로 총알 배달할 때 쓸 거야. 이걸 이렇게 해서…….”
유빈은 빨랫줄로 뭔가를 묶는 시늉을 하며 설명을 계속했다.
“이 끝을 잡고 돌리다가 던지려고. 그러면 그냥 어깨 힘만으로 던지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던질 수 있잖아.”
“실탄을… 던진다고?”
“음, 그래. 저 건물 옥상도 4층 높이니까 던져서 닿는 데에는 별문제 없지. 이쪽에는 어깨 힘이 장난 아닌 놈도 있고.”
유빈은 보안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보안관의 우람한 삼각근을 빤히 쳐다보던 두 병사가 다시 물었다.
“하긴, 저 어깨라면… 그러면 굳이 빨랫줄로 묶고 하는 과정이 필요 없는 거 아닌가?”
“이게 더 멀리 간다니까. 저 좀비들이 설치는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몇 십 미터를 덜 접근해도 되는데, 그러면 엄청난 차이지. 에… 십자 모양으로 묶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겠다.”
유빈은 접는 칼을 꺼내 길이를 맞춘 빨랫줄을 잘랐다. 유빈이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진우도 일어났다.
일행의 짐을 모아둔 곳으로 유빈과 함께 걸어간 진우는 자신이 강원도에서부터 짊어지고 온 탄창 가방을 집었다. 이 안에 그가 목숨처럼 아껴왔던 탄창들이 들어 있다. 총 이천 발가량 되는 실탄이다.
“으아,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도… 막상 이걸 열어서 나눈다고 생각하니까… 어후, 왜 이렇게 막 미치는 것 같냐. 내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고…….”
진우는 차마 지퍼를 열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이곳을 구하기 위한 싸움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그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박 소위가 가지고 나온 천 발만으로는 저 많은 좀비들을 다 잡지 못한다.
그러니 자신이 생명처럼 꼭 끌어안고 가져온 이 총알들 중에서 절반쯤은 뚝 떼어 내주어야 한다. 그러면 박 소위의 실탄과 합쳐서 약 이천 발. 아무리 돌팔매로 좀비들의 수를 줄인다고 해도 그쯤은 되어야 싸워볼 수 있을 테니까…….
“와, 진짜… 내가 이렇게 쪼잔하게 굴 줄 몰랐어, 유빈아.”
탄창 가방을 꼭 붙잡고 진우는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유빈은 그의 갈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안 그렇겠어. 네가 그 총알을 가지고 오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을 텐데. 나라도 그럴 거야.”
그 정도밖에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총알은 통조림이 아니라서, 아무 데나 슈퍼마켓을 턴다고 나오는 물건이 아니다. 그러니 진우로서는 더 아쉽고 아까울 수밖에 없을 게 당연하다.
바로 근처에서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동안에도 꼭 끌어안고 뛰었던 가방의 절반을… 지금 완전한 타인들을 위해 내놓으려는 것이다.
“후우~”
진우는 눈을 꾹 감고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이 총알을… 목숨 같은 총알을 내놓으려니 정말이지 미치는 것 같다. 그는 천 발의 실탄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봤다.
물론 할 수 있는 일이 무지하게 많다. 하루에 탄창 하나를 계속 소모하게 된다고 해도 한 달 이상을 쓸 수 있는 양이다.
‘그냥 이걸 나눠 주지 말고, 내가 박 소위의 실탄을 가지고 계속 쏠까? 그러면 몸은 힘들어도 총알은 굳는 건데…….’
바보 같은 생각도 고개를 든다. 하지만 진우는 도리질을 해서 얼른 그 유혹을 떨쳐 버렸다. 혼자서 천 마리 이상의 좀비를 잡는다는 건, 그것도 원 샷, 원 킬의 사격을 천 번 반복한다는 건 미친 짓이다.
시간도 오래 걸리겠지만 언제 총열에 이상이 올지도 모르고, 몸도 견디지 못할 거다. 모두가 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총알을 조금 낭비하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저 무서운 페인트 좀비들이 다시 이쪽으로 방향을 틀기 전에 일을 마무리 지어야만 한다.
“야, 유빈아. 나한테 무슨 좋은 말 좀 해줘봐라. 내가 이 총알들을 포기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 말이야.”
진우는 유빈을 바라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나는 그 총알 구하는 데 아무 힘도 못 보탰는데…….”
유빈이 머리를 긁적거리자, 진우는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듣기에 그럴듯한 말들 많이 있잖아! 만약 내 친구가 저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총알을 아끼느라 구해주지 않았다면 얼마나 그 사람이 원망스럽겠냐는 말이라든지… 총알은 또 구할 수 있지만, 사람의 목숨은 그렇게 못한다든지… 그런 거!”
허허, 유빈은 쓴웃음을 지으며 진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미 네가 다 알고 있구만 뭘 그래? 그냥… 네 말이 다 맞아. 맞는다는 걸 잘 알아도, 그걸 진짜 실행하기는 꽤 어려운 이야기지.”
“아으, 젠장!”
진우는 이를 꽉 깨물고 가방을 열었다. 낡은 K―2, 총번 927307의 하부 총몸과 하이바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진우는 그것들을 옆으로 밀어두고, 두 손으로 탄창을 집어 빈 가방 안에 차곡차곡 담았다.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30발들이 탄창 서른네 개를 빈 가방에 채웠다. 그만큼의 실탄이 빠져나간 그의 탄창 가방은 홀쭉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그의 마음도 덩달아 공허해진다.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가자!”
진우는 탄창을 채운 가방을 들고 강 소위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그에게 가방을 내밀었다. 내용물을 본 강 소위는 깜짝 놀랐다.
“이건? 박 소위의 탄창 가방은 고 하사가 메고 있는데…….”
“제 겁니다. 생색내고 싶지는 않지만, 저한테는 정말 소중한 거였습니다. 하지만 필요하니까 내놓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실탄 배달을 하기 전에 강 소위님이 꼭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껴 쓰라고… 한 발, 한 발 목숨처럼 생각하고 함부로 쏘지 말라고 말입니다. 만약에 이거 받고 그냥 생각 없이 연사로 갈기는 꼴을 보면, 제가 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우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쏴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역시 농담이 아니었다. 강 소위는 감격과 당혹이 뒤섞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친구의 사연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총알을… 엄연한 국방부 소유물을 두고 자기 거라고 주장하다니…….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자기 손으로 척 내놓는다는 건 또 대단한 일이다.
“아, 정말 고마워. 저기… 이 실탄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 꼭 갚도록 해볼 테니까…….”
자신도 모르게 입에 발린 소리를 하던 강 소위는, 진우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걸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말이 쉽지, 이렇게 보급이 끊긴 상황에서 일개 소위가 이 많은 총알을 빼돌려서 몰래 준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보급이 불안하지 않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총살감일 것이다.
“잠시 후에 이 중 절반을 저 건물의 옥상에 배달하고 오겠습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리지만, 아껴 쓰라고 해주셔야 합니다.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조준해서 쏘라고.”
진우는 강 소위에게 다시 한 번 부탁을 했다. 유빈도 그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다.
“저기… 군인들의 군복 웃옷이 필요해요. 저 조끼 같은 것도.”
“전술 조끼? 몇 벌이나?”
“그냥 여기 있는 사람들 장비만 빼놓고 다 벗어 주시면 좋겠어요. 탄창을 던져야 하는데, 충격 완화시켜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그걸로 가방 안을 감싸려고요.”
유빈이 말했다. 강 소위는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두말 않고 병사들에게 웃옷을 벗어서 주라고 명령했다. 이 친구가 필요하다면 필요한 거다.
“군복의 물기 좀 짜서 줘.”
친구들에게 돌아온 유빈은 받아 온 군복과 전술 조끼들을 내밀었다. 구 상병과 황 일병도 자신의 웃옷을 벗어서 물기를 짜고 유빈에게 줬다.
유빈은 배낭의 안쪽 전체를 군복으로 감싼 뒤, 중앙에 탄창을 끼운 전술 조끼를 채워 넣었다. 이러면 탄창에 가해지는 충격이 훨씬 줄어든다.
“자, 이 정도 무게야. 들어봐, 보안관.”
유빈은 가방을 빨랫줄로 묶은 뒤에 길게 늘어진 꼬리 부분을 보안관에게 넘겼다.
물기를 짰다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내리는 비에 옷들이 젖어 있어서 무게가 꽤 된다. 꼬리를 잡고 투포환 선수처럼 빙빙 돌려본 보안관이 물었다.
“별로 안 무거워. 이게 다야?”
“아니, 그게 배달할 양의 절반이야. 그거랑 거의 똑같은 무게로 하나 더 만들 거야.”
“뭐하러 그걸 반으로 나눠서 일을 두 번씩 해? 그냥 하나에 다 때려 넣어. 보니까 공간에 여유도 있구만.”
“안 돼. 두 개로 나눠서 던져야 혹시라도 한 개가 다른 데로 날아가서 떨어져도 싸울 수 있어. 한 개로 만들었는데, 그게 만약에 건물 너머까지 날아간다고 생각해 봐. 그럼 진짜 난감해진다고.”
유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이 녀석의 걱정은 대단하다. 하지만 그럴듯한 이야기라서 보안관은 더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보안관이 빨랫줄을 잡고 돌리다가 던지는 연습을 하는 동안, 유빈은 새 탄창 배달용 가방 하나를 더 만들었다.
“그건 뭐에요, 오빠?”
태권소녀와 함께 다가온 제니가 물었다. 후드와 수건으로 얼굴을 반 이상 가리고 있는데도 꽤나 피곤해 보인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둘은 그사이 수척해졌다.
“으응. 이거, 탄창 배달용 가방. 너무 무리했다, 너희. 좀 더 일찍 와서 쉬지.”
대답을 한 뒤 유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건물들의 옥상에서도 사람들이 슬슬 지쳐 가는 게 보인다. 한동안 뜨겁게 쉘터 내부를 달궜던 돌팔매질도 이제 조금 있으면 소강상태를 맞을 것 같다.
그때가 되면 다시 새로운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질러줘야 한다. 희망이 활활 타오르도록.
그로부터 또 한 시간 이상이 지났다. 그간 부쉈던 것들을 다 집어 던져 버린 사람들은 완전히 탈진해서 주저앉아 있었다. 밥도 못 먹고, 그렇게 열심히 몸을 움직였으니 당연한 결과다.
주차장 여기저기는 내던져진 시멘트 조각과 좀비들의 시체들로 어지럽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비는 멎지 않았다.
유빈은 목표로 삼은 건물과의 사이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 수감자 숙소와의 거리는 약 40미터. 그리 멀지는 않다. 게다가 중간에 멈춰 서서 보안관이 집어 던질 것을 감안하면, 실제 그들이 내달려야 하는 거리는 30미터 정도다.
좀비들이 가득한 30미터. 담배로 놈들을 현혹시키는 방법은 이 비 때문에 그리 큰 힘을 못 쓸 거다. 그렇다고 해서 비가 그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빨리빨리 총알을 배달해 주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이곳에 매여 있지 않고 잠실로 갈 수 있다.
“어때? 이제 나가볼까?”
유빈이 친구들을 돌아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