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700 VS. 1,200 (1)
첫 몇 차례의 돌팔매 이후, 강 소위는 확성기를 들었다.
“전 분대원에 알린다! 현재 본 건물에는 충분한 실탄이 있다! 기회가 생기면 그것을 각 건물에 반드시 전달해 줄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 몇 가지 사전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 후, 강 소위는 각 건물의 옥상에 피신해 있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옥상에 연장이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사용하고, 연장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주변의 물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건물의 난간이나, 기타 파괴 가능한 부분을 부수라는 명령이었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말도 덧붙였다.
“좀비들의 수를 줄여서 실탄을 전달할 수 있게만 되면 이 싸움은 머지않아 우리의 승리로 끝이 난다! 공성전은 원래 지키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단단한 성은 열 배 규모의 적도 패퇴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우리는 지금 현대 건축물이라는 단단한 성의 위에 굳건하게 버티고 섰다! 하물며 저 좀비들에게는 전략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질 수 없는 싸움이다!”
강 소위의 말을 들은 병사들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다. 속수무책으로 도망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걸 공성전으로 표현해 주니 뭔가 훨씬 유리해진 기분이 든 것이다.
확실히 좀비들은 발밑에 모여 있고, 그들은 높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는 하다. 조금이기는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해보자는 의욕과 용기가 생겼다.
“허, 강 소위님… 진짜입니까?”
확성기를 내려놓은 강 소위에게 고 하사가 물었다. 강 소위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냐니? 뭐가?”
“농성을 하면 10대 1도 이긴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몰랐습니다. 그 정도로 유리합니까?”
“아, 그거… 나도 말하면서 좀 아리까리하더라. 10대 1이었던 것도 같고, 3대 1이었던 것도 같고… 세부적인 숫자는 정확하지 않은데, 하여간 그런 말은 있기는 해. 뭐, 이왕이면 10대 1이라고 하는 편이 듣기에 더 낫잖아. 지금 우리 상황도 민간인 빼면, 좀비 대 병사들 비율이 대충 그 정도인 것 같고.”
강 소위는 다시 달변의 혓바닥으로 돌아와 뻔뻔한 얼굴로 대꾸했다.
이미 시작된 싸움이니까 최대한 병사들의 기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구라를 쳐서 될 수 있는 거라면, 100번이라도 쳐줄 용의가 있다.
“단단한 물건? 뭐가 있지? 야, 찾아봐.”
명령을 받은 주변 건물의 병사들은 곧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병사들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다가 좀 무겁고 단단하다 싶은 물건들을 찾아내서 연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옥상 창고에서 운 좋게 곡괭이 자루라도 하나 발견한 쪽에서는 그걸로 비에 젖은 난간을 후려쳤고, 그나마도 없으면 여럿이 체중을 실어서 물탱크 탑을 보호하는 철책과 사다리를 잡아 뜯었다.
“거기 같이 잡아! 셋에 내려친다! 하나! 둘! 셋!”
커피 자판기를 양쪽에서 잡은 병사들이 화단 벽을 두들겨 부수고, 다른 건물에서는 뜯어낸 쇠파이프로 난간을 때렸다.
쿠웅― 쿵― 쿵―
주변 건물들에서 둔탁한 소리들이 점점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바닥과 옥상 문을 제외한 모든 것이 파괴의 대상이 되었다. 창고도 부수고, 화단도 부수고, 공조 장치도 박살 낸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체육관 옥상으로 도망가 있던 네 명의 병사였다. 좀비 밥이 되기 직전, 진우의 도움으로 또 한 번의 삶을 부여 받은 기쁨은 의지와 용기로 분출되었다.
그들은 그늘막의 뼈대를 이루는 철제 파이프를 지렛대 삼아 지붕 패널을 뜯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철제 패널 하나의 크기가 상당하기 때문에, 던져서 살상 무기로 써먹기에 충분하다.
타앙― 탕, 타앙―
그들이 패널을 뜯어내는 동안 외부 계단에 근접해 오는 좀비들은 진우가 처리했다. 체육관 외부 계단 아래에 좀비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깔려 있지만, 저놈들은 도무지 포기라는 걸 모른다.
쿠웅― 쿵!
타앙, 탕, 탕―
건대 쉘터 전체에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합 소리와 함께 활기도 조금씩 차오른다. 하지만… 그 정도 노력과 힘만으로는 단단한 건물 난간을 부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민간인들은 아직도 딱히 동참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조금 뒤로 물러난 채 군인들이 진땀을 흘리는 걸 바라보고만 있는 중이다.
“잠깐만 있어봐, 유빈아. 잠깐 해머 내려놔 봐.”
보안관과 태권소녀가 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응? 왜?”
비에 흠뻑 젖은 채 난간을 부수고 있던 유빈이 얼굴의 물기를 닦으며 물었다. 포클레인도 없이 생으로 철거 작업을 하려니, 정말 힘들기는 어지간히 힘들다. 조금 전까지 해머를 휘두르던 삼식이도 지쳐서 손바닥을 주무르고 있다.
“아니… 저 사람들 말이야, 여기 말고 다른 건물에 있는 민간인들.”
보안관은 눈짓으로 다른 건물들을 가리키며 귀엣말을 건넸다.
“저 사람들… 전혀 움직이는 기미가 없어. 유빈이 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저 사람들도 아무거라도 집어 던지기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난간도 막 때려 부수고? 우리가 좀비들을 돌로 죽이기 시작하면 따라 할 거라며?”
유빈은 오른쪽의 의심 환자들 숙소부터 그 너머의 위험 환자들 숙소까지, 여러 건물 옥상 위에 늘어서 있는 민간인들을 살펴봤다.
보안관의 말처럼 그저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다. 바로 옆에서 군인들이 낑낑거리고 있는데도 돕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니 건물 부수는 일의 진도도 기대보다 느리다. 20명이 힘을 합치는 것과 200명이 합심하는 건 완전히 다르다. 막연히 예상하고는 있던 일이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참 정나미가 떨어지기는 한다.
“그게… 아직 너무 막연해 보여서 그래. 자기도 나서보겠다는 생각까지는 안 드는 거야. ‘저런 식으로 해서 언제 천 마리 넘는 걸 다 죽이겠어? 저걸로는 답이 안 돼’… 뭐, 그러고 있는 거지. 워낙에 여기에서 계속 군인들 보호만 받던 사람들이니까 자기 힘으로 싸운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 아닐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럼 어쩌라는 거야?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그건 답이 되고? 강 소위 아저씨한테 확성기로 방송이라도 하라고 말해볼까? ‘민간인 새끼들아, 너희들도 일해!’ 이렇게 말하라고?”
보안관이 물었다. 유빈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억지로 시켜봐야 조금 해보다가 힘들어지면 안 된다고 다 손 놓을 거야. 자기들이 끓어올라서 해야 돼.”
“젠장, 발밑에 좀비들이 저렇게 치받치고 있는데도 안 끓어오르면, 그게 대체 언제 끓어오르냐고! 어휴, 답답해.”
보안관이 성질을 못 이겨서 가슴을 두드린다. 하긴 언제나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 녀석의 시각에서 보자면 분명 속 터지는 반응이기는 할 거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보안관 같을 수는 없다. 같아서도 안 된다.
“그냥 못 본 체하고, 좀만 더 힘 좀 써봐. 좀비들 시체가 눈에 띄게 늘어나면 그때는 저 사람들도 ‘이거, 뭔가 되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될 거고, 그러면 굳이 이쪽에서 시키지 않아도 자기 손으로 뭐라도 해보려고 들겠지. 그것보다도 성적은 어때? 좀비들 잘 죽어?”
유빈은 보안관의 어깨를 두드려 격려해 주며 물었다. 보안관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잘… 죽는다고는 못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죽인 좀비들… 거의 다 진우랑 저 군인 애들 둘이 총으로 쏜 거지, 돌팔매로 잡은 건 정말 손에 꼽을 만큼밖에 안 돼. 그게… 머리통을 맞춘다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그보다도 크기랑 무게가 중요해. 한… 이 정도 크기는 돼야 한 방에 죽더라. 이것보다 작으면 그냥 대가리 가죽만 찢어놓는 거야.”
보안관은 허공에 두 손으로 백과사전만 한 크기의 네모를 그려 보였다. 하긴 해머 풀스윙과 비슷한 충격을 줘야 하는 것이니까, 아무리 4층 높이에서 던지는 거라고 해도 작은 벽돌 따위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긴 하다.
“알았어. 너무 잘게 부수지 않도록 할게. 너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안전도 신경 써가며 던져. 길게 가야 하니까. 지금은 저 사람들이 흥미를 보인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거야.”
유빈이 말했다. 진심이었다. 이렇게 극한 상황이 왔을 때, 서로 힘을 합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손바닥이 찢어져 피가 흐르는 걸 감수해 가면서 기꺼이 돌로 난간을 부숴보겠다고 마음먹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이쪽에서 먼저 희망을 충분히 보여줘야 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길 수 있다는 걸 절감하게 해줘야 사람들은 땀을 흘릴 것이다.
“일단 내가 제니랑 같이 열심히 돕는 척을 해볼게. 그러면 저 인간들도 뭔가 느끼는 게 있겠지. 연약한 여자도 저렇게까지 하는데… 뭐, 이런 생각 말이야.”
태권소녀가 의견을 냈다. 보안관은 제니가 거친 돌을 만져야 한다는 걸 영 마뜩치 않아 하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가 없다. 유빈은 태권소녀에게 자신의 가방을 가리켰다.
“그래줄래? 그럼 내 가방에 목장갑 있으니까, 그거 꼭 끼고 해. 제니한테도 그렇게 하라고 하고. 아, 저기… 그리고 힘들면 참지 말고 티를 팍팍 내는 것도 괜찮겠다.”
“나는 그건 좀 자신 없지만, 제니한테 계속 비명 지르라고 그럴게.”
“기다려! 내가 이걸 뜯어줄 테니까, 이 쇠다리 가지고 가.”
보안관은 유빈에게서 해머를 빼앗아 들고는 옥상에 고정되어 있던 긴 의자를 두들겨 부수더니 잡아 뜯었다. 그러고는 긴 의자에 붙어 있던 쇠기둥을 태권소녀에게 넘겨주었다.
“천으로 두껍게 감싼 다음에 쥐어. 그래야 손 안 다친다.”
“알았어. 보란 듯이 저쪽 난간을 때려 부수겠어.”
태권소녀는 보안관에게서 기둥을 받아 들고 제니 쪽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부터 제니와 태권소녀는 번갈아 가면서 쇠기둥을 휘둘러 난간을 때렸다. 물론, 그녀들의 힘 정도로 대번에 깨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녀들이 이를 악물고 비명을 질러가며 노력하는 모습만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확실하게 보였다. 일부러 주변에서 잘 보이는 위치를 골라서 일을 시작했으니까.
“아악! 이씨!”
제니는 이따금씩 연장을 바닥에 집어 던지면서 비명을 질러 댔다. 손을 붙잡고 온몸으로 고통스러움을 표현한다. 그러면서도 악바리같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들었다.
“젠장, 이름도 모르는 새끼들을 위해서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정작 저놈들은 구경만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제니랑 혜주는 데려오지 말걸 그랬어. 에휴, 마음에 안 들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해머질로 풀고 있던 보안관이 이를 꽉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유빈이 그런 그를 달랬다.
“말은 그렇게 해도 네 성격에 도와주러 안 오고는 못 견뎠을 거야. 좀만 더 참고 봐줘.”
“몰라, 젠장! 계속 이런 식이면 진우랑 다 데리고 우리끼리만 도망가 버릴 거야. 의지하는 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으라압!”
보안관은 성질을 삭이지 못해서 얼굴을 붉힌 채로 다시 해머를 들어 올렸다.
콰아앙―
그의 난폭한 해머를 두들겨 맞은 난간이 날카로운 조각들로 부서져 나간다.
다른 옥상들의 민간인들이 동참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가량이 더 흐른 뒤부터였다. 제니와 태권소녀, 그리고 삼식이가 손을 잡고 데려온 몇 명의 민간인 여자들이 보잘것없는 연장으로 마침내 난간을 깨는 데 성공을 하자, 구경하던 사람들의 눈빛도 바뀐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계속 때리면 결국 깨져요!”
태권소녀가 깨져 나온 시멘트 조각을 높이 들어 올리면서 외쳤다. 젖은 목장갑을 끼고 계속 난간을 두드리느라 그녀의 손은 물집이 잡히고 피가 맺힌 상태였다.
보란 듯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 태권소녀는 시멘트 조각을 힘차게 내던졌다.
빠악―
거칠고 날카로운 단면이 좀비의 얼굴을 때리고 지나가자, 시멘트 조각을 맞은 좀비의 코와 입술이 떨어져 나간다. 곧바로 제니가 던진 돌도 다른 녀석의 얼굴을 맞췄다. 그리고 또 다른 여자들이 던진 돌도 주변을 어지럽게 난다.
퍼걱― 퍽! 뻐걱―!
결국 커다란 시멘트 조각 하나가 좀비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목이 꺾여 쓰러지는 좀비를 보면서 태권소녀, 제니, 그리고 함께 작업했던 여자들은 환호하며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특히 민간인 여자들이 기뻐했다. 비록 이제 겨우 한 마리를 죽인 것이지만, 두렵기만 하던 좀비를 그들만의 힘으로 죽였다는 건 대단히 놀랍고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주변 건물, 다른 민간인들의 가슴속에도 뜨거운 불을 지피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여자들 몇 명이 하는 일을… 자신들이라고 못할 것 같지가 않았다.
“도와줄게요! 좀 쉬어요!”
구경하고 있던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혹은 분위기를 타서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열심히 난간을 깨고, 벽돌을 잡아 던지고 있는 군인들의 자리를 대체했다.
그 옆의 건물에서도, 그리고 그 옆의 건물에서도… 한 번 번지기 시작한 분위기는 쉘터 전체로 확산되었다.
와드득―!
군인들이 다져 놓은 기틀 위에 수십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힘을 보태자, 금방 효과가 나타난다. 도무지 뜯어지지 않을 것 같던 쇠파이프들도 떨어져 나왔고, 금조차 가지 않을 것 같던 시멘트 난간도 박살이 난다.
쿠우웅―!
커다란 난간 조각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서 좀비들의 머리를 덮쳤다. 예상치 않았던 1승!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그 환호와 더불어서 열기도 더 높아진다.
“참… 발동도 더럽게 늦게 걸리는 놈들이구만.”
한참 애를 먹인 뒤에야 겨우 동참하는 다른 건물 민간인들을 보며, 보안관은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어쨌든 이제는 내버려 두고 도망가야겠다는 생각까지는 안 든다.
“으랏차아!”
보안관은 커다란 시멘트 덩어리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가 힘껏 내던졌다. 보통 사람들이 던지는 돌팔매보다 두 배가량 빠르게 날아간 시멘트 덩어리는 붙어 있던 좀비들을 두 마리나 동시에 끝장내 버렸다.
“이야아! 으와아아!”
주변의 건물 여기저기에서도 사람들이 돌과 쇠파이프 따위를 계속 집어 던진다. 대형 강철 패널이 대각선으로 날아가 좀비의 정수리를 찍었다.
수감자 숙소 한 군데에서만 투석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돌 조각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니고, 그에 비례해서 대가리가 터진 채 쓰러지는 좀비들의 수도 늘어간다.
“후후후, 이거 예상보다 더 좋은데? 한 사람이 한 마리씩은 못 죽인다고 해도 다섯 사람이 하나는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몇 시간 더 하다 보면 정말로 1인 1킬 시대가 올는지도…….”
어지럽게 쏟아지는 돌 조각을 보고 사람들의 함성을 들으면서 강 소위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뭐… 그러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큰 성과는 내지 못하더라도 저렇게 이를 악물고 싸우기 시작한 건 좋은 거예요. 항상 싸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게 될 테니까요.”
해머를 삼식이에게 넘기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유빈이 말했다. 수감자 숙소는 다른 건물에 비해 사람들의 수가 유난히 적기 때문에 그만큼 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의 양도 많다. 강 소위가 유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맞는 말이야. 어쨌든 간에 사람들 마음에 이만큼 불을 질러놓았으니, 자네들은 이제 뒤로 빠져서 잠시 쉬어. 어제부터 지금까지 계속 몸을 혹사했잖아.”
“특히 저 진우라는 친구 좀 쉬라고 해. 저러다가 덜컥 쓰러질까 봐 무섭구만.”
김 중사도 강 소위의 의견에 동의하며 존경이 가득 담긴 시선을 진우 쪽으로 돌렸다. 진우는 아직도 두 병사와 함께 죽어라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중이다.
그가 한 번 총구를 겨냥했다가 멈추는 순간, 한 마리씩의 좀비가 죽어 나간다. 어제부터 계속 함께 연습한 두 병사도 이제 꽤나 실력이 나아졌다.
“으아아아! 죽어라! 이 개새끼들아!”
어느 건물인가에서 돌을 내던지며 저주가 가득한 기합을 내지른다. 그리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시멘트 조각.
명중되는 비율은 높지 않지만, 그래도 한차례 돌무더기의 비가 쏟아지면 결국 몇 마리씩은 죽어 자빠지는 좀비들이 나온다.
그롸아아아―
물론, 좀비들이라고 해서 멍청하게 어슬렁거리다가 쉽게 죽어주지만은 않는다. 놈들은 계단을 타고 뛰어 올라가 바리게이트를 뛰어넘고, 옥상 문에 온몸으로 부딪쳐 가며 포효를 해 댔다.
“막아! 막아야 돼! 여기 좀 버텨줘!”
병사들은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애물들로 옥상 문을 보강한 뒤, 체중을 실어 버텼다. 민간인들도 모두 나서서 장애물들이 흔들리고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으켜 세운다.
700여 명이 1,200마리의 좀비들과 맞서는 모습을 바라보며 김 중사의 마음속에는 감동 비슷한 감정이 가득 밀려왔다.
어제저녁, 총알 한 발 없이 옥상으로 도망쳐서 덜덜 떨 때만 해도 이런 저항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이지, 쉘터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믿기지가 않는군. 한 사람이 700명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다니…….’
김 중사는 진우의 옆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변화는 장벽 밖에서부터 날아온 그의 총알 몇 방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진우야, 저 사람들 싸우고 있을 때 좀 쉬어. 어차피 24시간 계속은 못 쏴. 너희도 마찬가지고.”
유빈이 진우와 두 병사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아, 그럴까?”
진우도 힘겨운 숨을 내뱉으며 총구를 바닥으로 내렸다. 구 상병과 황 일병도 눈을 비비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몇 시간째 계속 조준을 하고 방아쇠를 당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겨냥했던 지역 부근에는 좀비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다. 그간 많이도 죽였다. 유빈은 그들에게 물병을 넘겨주며 말했다.
“고생 많았어. 한 두세 시간 정도 쉰다고 생각해. 보아하니까 저 체육관 옥상 군인들도 계단을 대충 막아놓은 모양이네.”
“후우~ 두세 시간? 그건 무슨 기준이야?”
얼굴에 쉬지 않고 흐르는 빗물을 닦아내며 진우가 물었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저 사람들도 어지간히 지쳐서 더 이상 저렇게 돌팔매질을 못할 거야. 뭐, 그때쯤이면 웬만한 건 아마 다 깨부숴서 던진 다음이기도 할 거고.”
유빈이 대답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주변 건물들을 돌아보았다. 빈총을 어깨에 멘 채 돌을 던지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 그들을 볼 때마다 한시라도 더 빨리 실탄을 전달해 주고 싶어진다.
주차장에 몰려 있는 놈들은 세 명이서 계속 열심히 쏴대면 된다지만, 그 방식만으로는 각 건물 내부나 뒤쪽에 몰려 있는 좀비들을 다 잡는 건 불가능하다. 역시 더 많은 사수가 필요하다.
“그럼, 다음 단계는 역시 실탄 배달하러 가는 건가?”
진우가 유빈을 돌아보며 물었다. 밖으로 나간다는 말에 곁에 있던 구 상병과 황 일병의 눈은 공포로 질렸다.
배달을 나간다고? 저렇게 좀비들이 득시글거리는 주차장을 뚫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