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박 이병, 쉘터 구하기(8)
“아… 안 돼.”
진우는 신음하듯 앓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당황해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돌처럼 굳은 채 앉아 있었다.
이 공교로운 때에 갑자기 퍼붓기 시작한 비 때문에 삼척 원전에서의 그날 밤이 너무도 생생하게 되살아난 탓이다.
그때와 너무도 유사한 상황이다. 원래는 다른 길로 가려던 동료들. 하지만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싸움에 뛰어들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었다.
눈을 똑바로 뜰 수도 없을 만큼 쏟아지던 폭우, 그리고…….
포위, 발악, 희생, 죽음, 몰살…….
부정적인 단어들이 끝도 없이 떠오른다.
이래서… 이래서 모르는 사람들의 일에 얽히고 싶지 않았던 건데…….
심장은 빠르게 두근거리고 머리 저 안쪽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익숙한 목소리가 킬킬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큭큭큭큭… 큭큭큭…….]
기억난다… 이 목소리… 삼숙이를 만난 이후로 들려오지 않았던 또 다른 자아……. 그 얄미운 놈이 자신을 비웃고 있다.
“야! 진우야! 왜 그래? 어디 아파?”
탄창과 총이 든 가방들을 이중, 삼중의 비닐로 덮고, 그 위에 다시 다른 가방들을 덮어놓고 있던 유빈이 깜짝 놀라 뛰어왔다.
“아… 아니…….”
진우는 가쁜 호흡 때문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녀석의 얼굴을 보기가 미안해진다.
자신 때문에… 근처의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자신 때문에 공연히 친구들까지도 위험에 빠뜨리게 된 것 같아서 강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점점 숨이 차온다.
“정신 차려! 숨 좀 크게 들이쉬어 봐!”
유빈은 진우의 배낭을 벗기고, 녀석의 등짝을 두들겼다. 안색은 딱 목에 음식이 걸린 사람처럼 파랗게 질렸는데, 지난 몇 시간 동안 먹은 거라고는 물뿐이다.
“그 자세가 아니야! 눕혀! 과호흡이구만!”
태권소녀가 진우를 안아 천천히 바닥에 눕도록 했다. 그러고는 보안관에게 허리를 굽히고 머리맡에 앉으라고 해서 인간 우산의 역할을 시켰다.
“하아! 하아! 하아!”
진우는 친구들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면서 계속 빠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런데도 산소량이 부족하다! 이러다가는 질식할 것만 같다.
“아니야! 좀 천천히 쉬어! 너 지금 엄청 빨리 호흡하고 있어!”
머리맡에 앉은 태권소녀가 진우의 어깨를 다독거린다. 진우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숨이 막히는 것 같은데… 여기에서 더 천천히 숨을 들이쉬라고?
진우가 말을 듣지 않자, 태권소녀는 자신의 두 손을 둥글게 모아서 진우의 코와 입 주변을 마스크처럼 감쌌다.
“그러면… 죽을 것 같은데…….”
삼식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태권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니까 일단 얘 허리띠부터 풀어줘! 저 조끼도 좀 풀어버리고!”
유빈이 진우의 허리띠와 전술 조끼의 연결 고리를 풀어줬다.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헐떡이고 있는 진우를 향해 태권소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쉬어. 입 모양을 이렇게… 이렇게 오므려서 천천히 내쉬어. 해봐, 진우야. 할 수 있어. 후우~ 흐음, 후우~”
진우는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며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 흐음~ 코로 숨을 들이쉬자, 태권소녀의 체취와 온기가 느껴진다.
“옳지, 잘했어! 천천히… 이제 입을 오므리고 천천히 내쉬어. 입술을 이렇게!”
태권소녀는 아주 능숙하게 진우를 리드했다. 유빈은 그런 상황에서도 이 광경이 사람들의 주의를 끌까 봐 두려워서, 제니와 함께 시선을 가렸다.
다른 사람이 다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도 진우만은 안 된다. 지금 가뜩이나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영웅이 무너지는 걸 내보이면,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유빈은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이쪽을 향한 시선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 밤이니까 멀리에서 보면 그저 모두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 것도 같았다.
“잘하고 있어. 이제 그렇게 몇 번만 더 하자.”
태권소녀는 진우와 눈을 마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의 호흡도 그녀의 끄덕임에 맞춰 차츰 진정되어 갔다.
“하아~ 고마워… 이제 진정됐어.”
진우는 태권소녀의 손을 두드리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태권소녀는 진우의 두 볼을 가볍게 쓸어주고 손을 뗐다.
“후우~ 진짜 무서웠어요. 진우 오빠 어떻게 되는 줄 알고… 그리고 혜주 언니 정말 멋있어요.”
제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유빈도 남몰래 흘렸던 진땀이 한 바가지는 될 것 같다. 이 상황에서 진우가 덜컥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휴, 그건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근데 왜 이런 거야? 과로해서 그런가?”
넓은 등으로 진우의 얼굴에 쏟아질 비를 막아주고 있던 보안관이 태권소녀에게 물었다.
“몸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얘가 전에도 이랬어?”
“아니… 가진 거라고는 몸뚱이 하나밖에 없던 놈이 그래서야 어떻게 밥 벌어먹고 살았겠어. 이러는 거 처음 봐.”
“그럼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은데……. 매일 운동하는 애들도 큰 시합 나가기 전에 갑자기 이러는 거 가끔 보거든. 말하자면 머리가 너무 복잡해져서 호흡하는 요령을 까먹는 거야.”
“그런데 입은 왜 꽉 틀어막았어?”
이번엔 삼식이가 물었다. 태권소녀는 손바닥을 다시 모으고 들어보였다.
“이 손바닥 안에 공간 있어, 이 바보야! 자기가 뱉은 숨을 다시 들이쉬라고 그러는 거야. 자꾸 산소를 너무 많이 마시려고 그래서 생기는 문제거든.”
“그런 것도 다 있구나… 처음 들어본다… 하아~”
겨우 제정신을 찾은 진우는 일단 바지부터 제대로 갖춰 입었다. 세상에… 이 나이 먹고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허리띠를 풀고 지퍼를 내린 채 누워 있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다.
일어나 앉은 진우는 친구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가빴던 숨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들 왜 갑자기 진우가 쓰러진 건지 궁금해하는 눈빛이다.
“사격을 너무 많이 해서 스트레스가 과했나 보다. 하긴 우리가 무심했지. 한 방도 놓치면 안 되는 걸 계속 쏘게 내버려 뒀으니… 있지, 내일은 네가 좀 덜 쏘는 방향으로 갈게.”
유빈이 말했다.
아, 아니야, 그런 게… 너희를 위해서라면 하루 종일도 방아쇠를 당길 수 있어…….
진우는 천천히 손사래를 치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른 핑계를 둘러대 봐야 공연히 친구들을 더 불안하게만 만들 것 같아서였다.
“…내가 삼척 원자력발전소 무너진 날 도망쳤다고 했었잖아… 우리 대대에서 나 혼자만 살아남았다고…….”
“응, 들었지. 그런데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그때랑 지금이 너무 비슷해서 그게… 갑자기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어. 그때, 우리 분대끼리 달아나려면 얼마든지 달아날 수 있었거든. 실탄도 훔쳤고, 차량에, 개인화기에… 근데, 갑자기 한 사람을 만났어. 그 사람이 제발 도와달라고 하는 걸 뿌리칠 수가 없었지.”
아인슈타인…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그날만큼은 분대원 중 아무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도저히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 고 하사를 만났던 것처럼 말이다.
진우는 친구들에게 차분히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했다. 그날과 오늘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막 퍼붓기 시작한 이 비까지도… 완전히 복사해 놓은 것 같은 상황이라고…….
“그래서… 무서워진 거야. 운명이 나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까지는 좋은데… 나 때문에 너희들까지 죽게 만들까 봐서… 그게 무서웠어. 유빈이가 걱정하는 얼굴을 보자마자…….”
“하! 지랄!”
보안관이 허탈하게 웃으며 진우의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진우의 어깨를 주먹으로 팍 쳤다.
“아!”
진우는 어깨를 감싸 쥐며 가벼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태권소녀가 보안관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후려갈겼다.
“앗, 따가워! 이 계집애!”
보안관도 비명을 지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태권소녀는 그의 어깨를 한차례 더 주먹으로 때리며 타박을 했다.
“왜 조금 전까지 숨도 못 쉬던 애를 때려!”
“바보 같은 소릴 하니까 그러지! 운명?”
보안관은 진우의 어깨를 잡고 멀리 어둠 속의 좀비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야, 저거 봐. 저기 천 명도 넘는 좀비들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렇게 좀비가 되는 운명을 타고난 거냐? 응? 저것들이 저렇게 된 건 그냥 이빨이 박히기 전에 피하지를 못해서 그런 거야. 운명? 운명 좆 까라 그래! 그런 건 안 믿는다고! 제니랑 나랑 만난 거 말고는 세상에 운명 같은 건 없어! 그런 것 때문에 무서워하지 말라고!”
“그만 소리 질러! 사람들 구경거리가 되고 싶어?”
태권소녀가 옆구리를 한차례 가격하고 나서야 보안관의 열변은 끊어졌다.
“이 계집애가 아까부터 진짜!”
근접 타격전의 두 괴물이 서로 티격거리는 걸 보고 있노라니, 심란했던 진우조차도 헛웃음이 터졌다.
“그때랑 달라.”
유빈이 제니와 함께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그때는 우리랑 같이 있지 않았잖아. 이번에는 네가 이기는 거야.”
“그래요. 그때는 저도 없었잖아요. 미래의 미녀 명사수. 엄청난 차이라고요.”
제니가 수건을 내려 얼굴을 보이며 윙크를 해준다. 진우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속에 불안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다.
‘아니… 사실 너는 있었어, 제니야. 그것마저도 똑같아. 포스터 속에서 빨간 치어리더 복장을 하고 있었지… 우리 분대원들이 매일 키스를 날리고 작업하러 나갔었는데…….’
진우의 머릿속에 다시 불길한 기분들이 차오른다. 하지만 이건 부끄러워 차마 말할 수 없다.
“진정됐으면 좀 쉬고 있어.”
삼식이와 유빈이 진우의 어깨를 두드리고 가방 쪽으로 돌아간다. 두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도 잠시 진우와 마주 보고 앉아 있던 제니가 그의 손을 꼭 잡고 차분하게 말했다.
“…만약 이게 오빠가 말하는 그… 운명이라고 해도, 저는 이편이 더 좋아요. 그래서 고맙고요. 진우 오빠가 그날 한강에서 우리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제 인생은 훨씬 비참하게 끝났을 거예요.”
진우의 손을 한 번 꽉 쥐었다가 놓은 제니는 다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친구들의 곁으로 뛰어갔다. 가방이 젖지 않도록 애를 쓰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훈훈해지는 것 같았다.
‘이 자식들, 진짜… 존나 멋지단 말이지.’
진우는 빗물을 터는 척하며 고개를 저어 불길한 기분들을 털어버렸다. 보안관의 말이 맞다. 이빨을 피하고 총알을 먼저 박으면 이길 수 있다. 운명 같은 건 그냥 엿이나 먹으라고 하면 된다.
‘그건 그렇고, 아까 그 병사들은…….’
진우는 시선을 돌렸다. 구 상병과 황 일병은 퍼붓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쉘터 본관을 향해 플래시를 비추고 총구를 겨누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조금 전 익힌 요령을 잊게 될까 봐 두려운 사람들처럼 열심이다.
‘내일은 훨씬 나아지겠군.’
단발로 끊어 쏴보려는 그들의 시도를 보면서 진우는 조금 더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 그때랑은 달라질 수 있다. 이번엔 이긴다.
비는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고, 그래서 새벽은 더디게 왔다. 물론 아무도 편히 눈을 붙이지 못했다. 밤새도록 쏟아지는 비를 맞느라 옥상 위의 생존자들은 더욱 지친 채 아침을 맞았다.
그래도 한 가지, 비가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라고 하면 아무도 더 이상 갈증에 허덕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바짝 말라 있던 입술을 벌린 채 떨어지는 빗방울을 마셨고, 병사들은 수통과 하이바에 빗물을 받았다. 옥상에 물탱크가 있는 건물에서는 물탱크의 뚜껑을 열어두었다. 이걸로 적어도 하루이상의 시간은 번 셈이다.
“아우, 마시니까 시원하기는 한데… 좀 찝찝하다. 이거, 괜찮을까?”
삼식이는 두 손에 받은 빗물을 마시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안관과 유빈도 얼굴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혀로 핥아 먹어봤다.
“괜찮지 않을까? 먼지 냄새 같은 것도 거의 안 나고.”
유빈이 대답했다. 삼식이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우리 복지 센터 있을 때, 빗물 못 마시게 한 게 넌데? 더러운 게 잔뜩 섞여 있어서 배탈 날 거라고 하면서.”
“그때랑 지금이랑 또 다르지. 지금은 자동차도 안 움직이고, 공장도 안 돌아간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잖아. 그사이에 비도 무지하게 왔고. 어쨌든 일부러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 그보다, 이제 슬슬 시작할까? 훤해졌으니까?”
유빈이 말하자, 보안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글을 썼다. 해머를 머리 위로 치켜든 보안관은 힘차게 아래로 내리찍었다.
쿠웅―!
해머가 시멘트를 울리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첫 번째 타깃으로 점찍은 것은 버섯처럼 옥상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던 공조탑들이다.
보안관의 익숙한 해머질이 몇 번 반복되자, 공조탑들은 이내 시멘트 덩어리와 벽돌 조각, 쇳덩어리들로 해체되어 버렸다. 보안관은 위치를 바꿔서 두 번째 공조탑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뭐야? 무슨 소리야?”
쿵쿵거리는 소리가 반복되자, 주변 건물 옥상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좋은 신호다. 일단 시선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다른 건물 사람들이 흉내를 내려고 해도 이렇게 시멘트나 콘크리트를 때려 부술 수 없을 텐데… 해머가 없잖아.”
고 하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삼식이가 에어컨 실외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저걸로만 계속 내리찍어도 될걸요? 워낙 여러 명이니까 힘은 충분해요. 물론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에, 그리고 저런 쇠로 된 난간 있잖아요. 저런 것도 여러 명이 한꺼번에 몸무게를 실어서 당기면 빠져요. 저걸 빼서 휘둘러도 되죠.”
삼식이의 말을 들은 고 하사와 강 소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옥상 한쪽에 놓여 있는 고정식 긴 의자. 부숴서 쇠로 된 기둥만 떼어낸다면 정말로 연장으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옥상 정원을 꾸미기 위해 장식된 큰 돌들…….
그런 식으로 어느 건물이나 한두 개 정도는 연장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게 존재한다. 물론 때려 부술 난간도 존재한다.
“어디… 한 번 던져 볼까?”
해머를 내려놓은 보안관이 커다란 시멘트 덩어리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유빈이 얼른 만류한다.
“아니, 보안관. 그거 너무 크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네 흉내 내다가 돌이랑 같이 떨어질라. 그냥 좀 한 손으로 던질 수 있을 만한 거, 그런 거 찾아봐.”
“흠, 그런가?”
보안관은 시멘트 덩어리를 바닥에 또 내리꽂았다.
쿠웅―
조각조각 난 시멘트 덩어리들은 한 손으로 던질 수 있을 만큼 작아졌다. 어린애 머리통만 한 덩어리를 들고 가볍게 위로 던져 올렸다 받기를 반복하며 난간으로 다가간 보안관은 아래쪽의 좀비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
뻐억―
엄청난 기세였지만, 머리통을 맞추진 못했다. 시멘트 덩어리를 맞고 다른 놈들 쪽으로 밀려났던 좀비는 다시 일어났다. 쇄골이 박살 나버린 놈의 오른팔은 아래쪽으로 축 늘어져 있다.
“아이, 진짜…….”
보안관은 혀를 끌끌 차며 두 번째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던지기 좋은 모양의 것을 골라서 겨냥도 신중하게 했다. 그러고는 힘차게 어깨를 돌려 집어 던졌다.
빠악―
두 번째 시멘트 덩어리는 명중했다. 두개골이 뒤로 확 꺾이며 목이 부러져 버린 좀비는 한 발짝을 더 내딛다가 맥없이 고꾸라진다. 이 원시적인 싸움의 첫 번째 승전보다.
“좋아!”
“나도 간다!”
미리 입을 맞춰뒀던 대로 고 하사, 그리고 몇 명의 병사들은 큰 소리로 환호를 하면서 잇달아 시멘트 덩어리를 아래쪽으로 집어 던졌다.
휘이익― 퍼벅―
빗속을 가르고 날아간 시멘트 덩어리들은 대부분 좀비에 명중했다. 보안관처럼 일격에 좀비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쓰러지는 놈이 몇이나 나왔다.
“오오~!”
주변 건물 옥상에서 들려오는 감탄사에 무덤덤한 척하면서, 모두는 다시 한 번 힘차게 시멘트 덩어리를 집어 던졌다.
퍼버벅―
또 한차례 둔탁한 소리가 울리고, 어딘가가 박살 난 좀비들의 수가 늘어간다. 자빠져서 다른 놈들에게 밟히는 좀비들도 있다.
명중시키기 위해 특별히 빼어난 투구 감각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발아래 주차장은 이미 물 반, 고기 반의 상황. 좀비들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기 때문에 그냥 땅을 때리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다.
“으라앗차!”
보안관은 결국 큰 대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10킬로그램은 족히 넘을 커다란 덩어리를 들고 와서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가 두 손으로 힘껏 내던졌다.
퍼걱―!
서너 마리의 좀비 머리를 동시에 때린 시멘트 덩어리가 반으로 쪼개진다. 물론 놈들의 대가리라고 해서 그 충격을 받고 멀쩡할 리가 없다.
한 번에 여러 마리를 잡은 보안관이 과장되게 어퍼컷을 날리며 환호했다.
“봤지! 이 개새끼들아! 너희는 다 죽었어!”
그리고 또 병사들의 돌팔매가 이어졌다. 꼭 머리를 단방에 박살 내지 않아도 된다. 어딘가의 뼈 하나만, 특히 하체의 뼈라도 하나 부러뜨릴 수 있다면 그게 다 고스란히 이쪽의 득점으로 쌓이게 된다.
“저 사람들도 슬슬 달아오르는 것 같은데?”
진우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들 숨을 죽인 채 수감자 숙소의 옥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원시적인 폭력의 향연에 집중하고 있다. 잊고 살았던 폭력적인 본성에 불을 지피기 충분한 구경거리다.
쿵―! 쿵―!
보안관이 돌팔매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삼식이와 유빈이가 번갈아가며 해머를 휘둘러서 장식용 화강암들과 북쪽 방향의 난간을 쪼갰다.
“나도… 나도 도울게요! 가져다 나르는 건 할 수 있어요!”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민간인들이 나서서 유빈이와 삼식이가 부순 난간 조각들을 옥상 반대편으로 들어다 줬다. 처음에는 두어 명이, 이내 열 명 이상의 인원들이 운반 작업에 동참했다.
“고맙습니다!”
고 하사와 병사들은 난간 조각들을 집어 들며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유빈이 원하던 대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기쁘다.
“으라아앗차!”
병사들은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난간 조각들을 아래로 집어 던졌다. 하나씩하나씩, 쓰러지는 좀비들이 나올 때마다 주변의 환호성은 더 커진다.
“분위기 꽤 올라갔네. 그럼 우리가 더 뜨겁게 해줘볼까?”
진우는 구 상병과 황 일병을 돌아보며 말했다. 두 병사는 눈빛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밤 동안 초초일류로부터 개인 트레이닝을 받았다는 자신감이 온몸에서 뚝뚝 묻어 나온다.
철컥―
돌팔매질조로부터 떨어져서 나란히 선 세 명은, 탄창을 끼우고 같은 방향을 겨누며 기다렸다. 이윽고 두 번째 돌팔매가 시작되자, 셋은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뻐벅―
탕, 탕, 탕, 탕― 탕, 탕, 탕―
돌에 맞는 좀비들과 총에 맞은 좀비들이 동시에 쓰러지자, 시각적 효과는 몇 배나 커졌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환호가 우레처럼 크게 울린다.
“좋아! 잘하고 있어!”
진우는 상기된 얼굴의 두 병사를 칭찬해 주고,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그의 총알은 언제나처럼 빗나가는 법이 없이 좀비의 머리를 박살 냈다. 눈가로 흐르는 빗물을 닦아내며 진우는 웃었다.
운명을 엿 먹여야 끝이 나는 이 긴 싸움은 이제 막 본편이 시작된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