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박 이병, 쉘터 구하기(7)
디잉―
뒤통수를 세게 후려 맞은 것 같은 충격! 강 소위도, 고 하사도 제대로 말을 못할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전차가… 다시 복귀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중대장님도 돌아오는 게 아니라고?
“아니… 왜… 그러면 전차는…….”
강 소위는 눈을 껌뻑거리면서 말을 더듬었다. 김 중사는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나마 전해줬다. 잠실로의 강제 이동 명령. 그에 앞서 전차부터 미리 차출한 것까지…….
“잠실이랑 무전 연락은 주고받았다는 이야기군요. 그럼 무전이 끊기면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구조대를 보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강 소위의 질문에 김 중사는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멀쩡하게 지키고 있던 전차까지 미리 끌어갔습니다. 그 말인즉슨, 잠실도 지금 어지간히 다급하다는 걸 겁니다. 여기에서 곡소리가 날지도 모른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전차 한 대가 아쉬운 상황이다, 이거죠. 그런데… 새삼스럽게 구조대 같은 걸 보내겠습니까? 허허, 꿈같은 이야깁니다.”
김 중사의 말을 듣고 난 강 소위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면… 외부 병력이 여기에 오는 건, 결국 닷새가 지난 뒤의 일이라는 말이군요. 후우~ 그… 장갑 트레일러가 이송을 위해 도착하는 날 말입니다.”
“네, 그전까지 여기는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을 겁니다.”
김 중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 소위의 목덜미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닷새 동안 물 한 모금 제대로 못 마시고 좀비들에게 시달린다면… 장갑 트레일러가 도착할 때쯤은 현 인원의 절반도, 아니, 1/3도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천 발 이상의 실탄을 가지고 왔지만, 명중률 100퍼센트로 쏜다고 해도 좀비들의 수가 더 많다.
“후우우~!”
강 소위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담배부터 한 대 빨아야 할 것 같은데, 그마저도 안 된다고 하니… 바로 옆에 있는 유빈이라는 어린 친구의 얼굴을 돌아볼 용기가 안 난다.
유빈과 친구들에게 전차가 돌아올 거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었던 게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젠장, 내가 아까운 사람들 목숨까지 여기에 끌어들여 죽이게 생겼군…….’
강 소위는 자책을 하고 나서 힘겹게 유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빈은 강 소위와 김 중사가 대화하는 동안 한마디도 보태지 않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
“아… 저기… 들었지? 미안하게 됐어. 전차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네. 후우우~ 내 말만 믿고 여기까지 뛰어들었을 텐데… 참, 뭐라고 할 말이 없어.”
강 소위는 유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말했다. 당장 멱살잡이를 당하고 좀비들에게 던져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유빈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전차는 아무 상관 없어요.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은 애초에 계산에 넣지 않았으니까요.”
그 어조가 너무도 당당해서 그게 오히려 더 위화감이 들었다. 강 소위는 고개를 들어 유빈의 얼굴을 마주 봤다.
대체… 이 녀석은 뭘 믿고 이렇게…….
“꼭… 이 상황이 무섭지 않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정말로 그런가? 안 무서워?”
강 소위가 물었다. 유빈은 듣자마자 손사래를 친다.
“어휴, 당연히 무섭죠. 저는 보안관이나 진우랑은 달라요. 좀비 한 마리도 겨우 상대를 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놈인데요. 그런데 저렇게 많은 좀비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무서운 게 당연하죠.”
유빈이 솔직하게 말했다. 강 소위가 보기에도 그래 보인다. 덩치도 보통이고, 총을 잘 쏠 줄 아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도 아직 녀석에게는 여유가 있다. 주변 옥상에서 반짝이는 플래시 불빛들을 한 번 빙 둘러본 유빈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무서운 것과 별개로, 승산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아주 높이요.”
이건 또 무슨…….
강 소위는 유빈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진지하다. 허풍인 것 같지 않았다. 강 소위는 다시 물었다.
“어째서 그렇지? 무슨 방법으로 이긴다는 건지 모르겠어. 여기에 실탄을 장착하고 싸울 수 있는 인원은 열 명 정도뿐이고, 나머지 저기 다른 건물에 있는 병사들은 빈총이야. 그리고 실탄의 수도 좀비 머릿수보다도 적어.”
“민간인까지 합치면 총인원이 700명 이상이라고 하셨잖아요. 좀비들은 천 마리가 넘고. 한 사람이 한 마리만 죽인다는 각오를 하면 돼요. 총알은 그다음 문제고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진우가 있어요. 보안관이랑 혜주도 있죠.”
유빈은 뒤쪽 난간에 서서 쉘터 본관의 외부 계단을 비추고 있는 진우 일행을 가리켰다. 태권소녀와 보안관이 플래시로 좀비의 움직임을 찾아내면, 진우가 그 방향으로 총구를 돌려서 저격하는 중이다.
타앙―
보란 듯이 한 발에 한 마리씩. 그것은 진우의 의도가 담겨 있는 사격 방식이었다. 이 정확도가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라도 지원해 줄 화력이 있다는 안도감을 줄 것이다.
“한 사람이 한 마리만이라고 하면 듣기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저 사람들은 자네들처럼 강하지 않아. 좀비들과 마주했다가는 대번에 전멸하게 될 거라고.”
징징대고 싶지는 않지만, 강 소위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곳을 책임질 거라고 말해놓은 상황인데, 내일 당장 내려가서 맞서 싸우라는 명령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명령을 해봐야 아무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민간인들은…….
“마주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는 최소한 좀비들보다는 머리가 좋으니까요. 싸울 수 있는 방식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이 건물에 있는 우리가 먼저 시작해서 살아남고 싶다는 의지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돼요.”
유빈은 여전히 자신 있다는 말투다. 강 소위로서는 감이 잘 오지 않는 이야기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말을 믿고 싶었다. 자신이 믿지 않으면, 다른 민간인들에게도 그 불안감이 고스란히 전달될 테니까.
“부탁드리고 싶은 게 두 가지예요. 먼저, 지금 이 옥상에 있는 군인들 중에서 제일 사격 솜씨가 좋은 사람, 두 분만 저희 쪽으로 보내주세요.”
유빈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말했다. 강 소위는 뒤쪽의 병사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고개를 저었다.
“병사가 겨우 다섯 명인데 그중 제일 잘 쏘는 애라고 해봐야 그냥 그래. 우리 중대… 아니, 여단 전체를 다 통틀어도 진우 같은 솜씨는 없어. 비슷하지도 않을걸?”
“엄청 잘 쏠 필요는 없어요. 지원군이 있어야 진우 혼자 밤을 새지 않아도 되니까요.”
유빈은 침착하게 말했다. 강 소위는 알겠다고 했다. 어차피 싸우려면 방아쇠를 당겨야 하고, 그 명령을 누구에게서 듣는가 하는 건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유빈은 두 번째 부탁을 말했다.
“일단 교대로 돌아가면서 쪽잠이라도 자야 해요.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몸까지 피곤하면 아무것도 못할 겁니다. 두 명 보내주시고 강 소위님이랑 고 하사님도 좀 쉬세요. 내일 해가 뜨고 나면, 그때부터는 전쟁 시작입니다.”
말을 마친 유빈은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강 소위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자신보다 몇 살이나 어린 민간인이 저렇게 버티는데, 자신은 명색이 장교로서 아직 싸워보기도 전에 패배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그래,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지… 이건 항복한다고 해서 포로로 받아주는, 그런 전쟁이 아니야.’
새삼 깨달은 강 소위는 고 하사의 부축을 받아 김 중사와 병사들의 앞에 가서 섰다.
“이 중에서 누구 사격 실력이 제일 낫습니까? 내가 알기론 황 일병이랑 저기… 구 상병 아닌가?”
강 소위가 물었다. 질문을 들은 김 중사와 병사들은 잠시 가벼운 토론을 했다. 결국 강 소위가 처음에 지목했던 두 명이 뽑혔다.
어차피 도토리 키 재기인 상황에서 졸지에 명사수로 지목된 두 병사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혹시 무슨 결사대로 우리를 내보내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너희 둘은 지금부터 저기 계시는 특수 요원분들에게 가서 그분들 지시를 받으면 된다. 움직여.”
“저기…….”
구 상병이 두려움 때문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머뭇거리며 말을 꺼낸다.
“뭔가?”
“저분들 호칭을 뭐라고 해야 합니까? 계급도 모르고 있는데…….”
아아……. 강 소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누군가에게 뻥을 치려면 좀 주도면밀하게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그저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다보니 이렇게 설정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
“저분들 직위나 소속 자체가 극비다.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요원님이라고 부르면 된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심정으로 강 소위는 또 구라를 보탰다. 두 병사가 자신의 개인화기를 챙겨 이동하고 나서, 강 소위는 나머지 병사들에게 유빈이 그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밝아진 다음부터 열심히 싸워야 하니까 불침번 세우고 일단 좀 자두자. 우리가 지금 총 여섯 명이니까 두 명씩 한 시간 반만 깨어 있으면 동이 틀 거다. 민간인들에게도 비슷한 방식으로 쉬라고 말해두고.”
그의 말을 들은 병사들은 말없이 서로를 돌아보다가 다시 강 소위를 빤히 쳐다본다. 이런 상황에서 잠이 올 리가 없잖아…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들이다.
지금도 이따금씩 옥상 문은 쿵! 하고 울리는 소리를 내며 들썩이곤 한다. 바로 발아래에 좀비들이 돌아다니다가 문을 들이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잠을…….
“괜찮아. 어차피 지난 몇 시간 동안도 저 문은 열리지 않았다. 우리가 쌓아둔 장애물을 믿어라.”
강 소위는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고 옥상의 한쪽으로 이동해서 자는 척하며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물론 눈은 말똥말똥하다.
옆자리에 누운 고 하사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군자역의 은신처에 숨어 있을 때에도 소주 한 병은 마시고 나서야 겨우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었으니까.
그롸아아아― 그와아아아―
주차장을 돌아다니는 좀비들은 잠시도 쉼 없이 포효해 댄다. 이 지독한 악취와 저 끔찍한 소리. 신경이 온통 갉아 먹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참… 저 녀석들 대단하죠? 어휴~ 아까 저 진우라는 애 총 쏘는 거 보셨습니까? 으아… 저는 창문 너머로 보기만 해도 오줌이 나올 것 같았거든요. 사방에서 두서없이 막 달려드는데, 그거를…….”
고 하사는 빈손으로 총 쏘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강 소위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엄청나더라. 저기 저 덩치 큰 친구가 해머 한 자루 가지고 좀비들 다 때려죽이는 것도 그렇고… 뭐… 난놈들이네.”
그 말을 하면서 강 소위는 진우가 있는 방향을 힐끔 돌아보았다. 그가 보낸 두 명의 병사가 바짝 긴장한 상태로 진우 일행과 함께 서 있다.
‘잘 가르치겠지, 뭐. 모진 소리 할 친구들도 아니고…….’
강 소위는 억지로 눈을 꾹 감으며 잠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대범한 척 모범을 보여야 다른 병사들과 민간인들도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하려 할 것이다.
고 하사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을 청했다. 그렇게 그리워했었는데 만나자마자 다시 이별하게 된 임수정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그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들로부터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졸지에 명사수로 차출되어 버린 두 명의 병사가 진우에게 신고를 하는 중이었다.
“충~성! 구 상병 외 일 명, 요원님의 지휘를 받으라는 명령을 받았기에 이에…….”
“아니, 아니… 그러지 마십쇼. 그런 절차 같은 거 필요 없습니다. 구 상병님… 황 일병님, 저는 박진우 이벼… 에…….”
하마터면 ‘박진우 이병’이라는 말이 버릇처럼 나올 뻔해서 진우는 황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이놈의 군인병… 잘 낫지를 않는다. 진우는 말을 더듬었던 척하고 다시 인사를 했다.
“저는 박진우입니다. 이번 전투, 두 분이 도와주시는 게 큰 힘이 될 겁니다.”
진우가 내민 손을 잡으면서도 두 병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 귀신같은 사격 솜씨를 가진 사람이 자신들의 도움 같은 걸 바랄 것 같지가 않아서다. 게다가… 강 소위가 꼬박꼬박 존칭을 쓸 만큼 높은 계급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존댓말을 써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먼저 사격하시는 걸 좀 보겠습니다. 아까 김 중사님이 나눠 주시는 탄창 하나씩 받으셨죠?”
진우의 말에 두 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는 구 상병을 먼저 지목하고, 난간 너머를 가리켰다. 어둠 속에 깊이 잠긴 주차장, 유빈이 플래시를 비추고 있는 지점만이 희미하게 밝다.
“구 상병님, 저 좀비 보이십니까? 머리 가죽이 절반 정도 벗겨진 녀석. 검은 티셔츠 말입니다.”
구 상병은 좀 더 잘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밝혀진 범위 내에 보이는 수십 마리의 좀비들, 그 중에 머리 가죽이 벗겨지고 검은 티셔츠를 입은 놈이 있기는 있다.
녀석은 쉬지 않고 다른 좀비들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중이다. 유빈의 플래시도 녀석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함께 돈다.
“네, 보입니다.”
“그놈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모드는 3점사나 단발 중에서 편한 쪽에 두시고 쏘시면 됩니다.”
진우의 명령을 받은 구 상병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표적과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대략 25미터 안쪽. 가늠자, 가늠쇠울에 맞춰서 당기기만 하면 되는, 그 정도의 난이도다.
그런데… 초초일류의 능력자 앞에서 시험을 받는다는 기분이 어쩐지 너무 불편하고 쑥스럽다. 처음 사격 훈련장에 들어섰을 때보다 더 떨린다.
‘못 맞추면 어쩌지? 예의 바른 사람에서 갑자기 개싸가지로 돌변해 가지고 막 쌍욕을 날리는, 그런 캐릭터면…….’
구 상병은 견착을 하고 나서도 좀처럼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물론 1초, 1초가 흐를수록 부담감은 더 커진다. 다들 자신만 바라보는 것 같다. 게다가 저 염병할 놈의 좀비는 왜 또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건지…….
투투둑― 투투둑―
진땀을 흘리던 구 상병은 결국 시간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세 발씩 날아간 그의 총알들은 좀비의 머리를 꿰뚫었다. 표적이 아니라 그 옆의 놈을…….
머리 가죽이 벗겨진 문제의 좀비는 유유히 플래시 광원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격 실패!
“후우~”
자신에게 쏟아질 진우의 질책을 상상하면서 구 상병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이후, 극한에 몰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와중에도 이렇게 창피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니… 스스로도 놀라울 지경이다.
“위치는 맞았습니다. 그냥 방아쇠 당기는 게 조금 늦어서 도망간 것뿐입니다. 잘 쏘셨어요.”
에?
예상과 너무 다른 진우의 평가!
머쓱해하고 있는 구 상병에게 진우가 다시 한 번 쏴보라고 권한다.
“일부러 난이도가 있는 놈을 지목한 겁니다. 놓치셔도 괜찮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쏘시면 됩니다. 어쨌든 지금 한 마리 잡으셨잖습니까.”
진우가 말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보안관이 답답해하며 끼어들었다.
“어휴, 야! 어차피 다 또래인 것 같은데 뭘 그렇게 예의를 갖추다 못해서 넘쳐? 존댓말을 그렇게 하고 앉아 있는데 참 마음이 편하기도 하겠다. 그냥, 서로 말 놓고 편하게 이야기해! 너는 구 상병! 그리고 너는 진우야! 이렇게 불러! 나중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때도 존칭 쓸래? ‘구 상병님! 여기 좀 쏴 주시겠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럴 거냐고? 참 효율적이기도 하겠다. 안 그러냐? 너도 그게 편하겠지?”
보안관은 구 상병에게 물었다.
이 커다란 덩치를 보라. 온몸의 근육이 티셔츠를 뚫고 나올 것 같은 압도적인 피지컬. 안 그렇다고 대답하면 곧바로 팔을 꺾을 것 같은 이 기세!
구 상병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러면서도 도무지 이해는 안 됐다. 대체 무슨 요원이기에 존댓말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다 있는 걸까…….
보안관은 마음에 든다는 듯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구 상병에게 말했다.
“진우, 저 새끼 솜씨에 쫄 거 없어. 어차피 저놈이 아무리 잘 쏴 봐야 혼자서는 이 좀비들 다 못 죽여. 그러니까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쏘라고. 시험 받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도와준다고? 내가? 이 구리고 구린 실력으로?
구 상병은 진우와 보안관을 번갈아 보았다. 진우도 그 말에 동의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아니, 응. 도와주는 거 맞아.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다시 쏴봐. 좀비들은 계속 움직이지만 방향을 급하게 바꾸지는 않으니까 조준이 끝나자마자 바로 당기거나, 아니면 진행 방향으로 아주 약간 치우쳐서 쏜다고 생각하면 좀 더 잘 맞을 거야.”
“알겠습니… 알았어.”
구 상병은 입을 꾹 다물고 다시 총구를 들었다. 유빈은 플래시를 움직이며 다시 그 머리가죽 좀비를 찾았다. 놈은 쉘터 본관을 향해 이동 중이었다.
어둑한 플래시 광원 안에 놈의 모습이 잡히자, 구 상병은 놈의 속도에 맞춰 총구를 돌렸다. 그러고는 가늠자에 놈이 들어오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둑―
세 발 중 한 발이 놈의 뒤통수에 꽂혔다. 빠른 속도로 걸어가던 머리가죽 좀비는 목이 꺾인 채 앞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다른 좀비들은 무심하게 놈의 시체를 밟고 걸어 다닌다.
“잡았어!”
구 상병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가까운 거리의 좀비를 아홉 발이나 쏴서 겨우 쓰러뜨린 것뿐이지만, 진우의 기대와 칭찬에 부응했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뭔가 대단한 사격의 달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실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 같은 느낌도 조금 있다.
“좋아! 좋아! 잘했어! 그 느낌이야! 제대로 겨냥했는지 망설이는 단계 거치지 말고, 곧바로 한 박자 빠르게 당기는 거! 다시 한 번 가자!”
“알았어!”
진우와 구 상병은 또래의 젊은이들답게 웃으며 함께 다음 목표를 정했다. 몇 차례의 비슷한 연습을 반복하고 나서 진우는 황 일병을 불렀다.
그 역시 처음에는 긴장감 때문에 조금 삐걱거렸지만, 추천 받은 병사답게 점차 표적을 맞춰 나갔다.
“잘했어! 그런 식으로 하면 돼!”
진우는 두 병사를 계속 격려해 줬다. 원거리 핀 포인트 저격은 아직 무리겠지만, 어차피 전장은 이 쉘터 내부로 한정되어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전력으로 삼을 수 있다. 구 상병과 황 일병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자,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할 일은 이거야! 저기 저 외부 계단 보이지? 여기에서 거리는 55미터 정도야.”
진우는 자신의 K―2에 부착된 플래시로 쉘터 본관 옥상의 외부 계단을 비췄다. 주변 건물에서 다 보이는 위치에 있기에 아까부터 계속 그가 신경을 써온 곳이다.
그런 후, 진우는 계단을 따라 플래시를 아래로 내렸다. 때마침 근처를 지나는 좀비가 몇 마리나 있다.
“저기는 문이 없으니까 좀비들을 못 막아. 그러니까 저 건물로 실탄을 전달해 주기 전까지는 우리가 지켜줘야 돼. 서로 교대해서 플래시를 비춰주고, 계단을 오르기 전에 미리 잡아줘. 교전 수칙이라고까지 할 건 없지만, 세 발 이하를 사용해서 한 마리를 잡는 걸 목표로.”
진우는 유빈이 들고 있던 플래시와 총 네 개의 예비 탄창을 황 일병에게 넘겨줬다. 구 상병이 물었다.
“쏘라고? 지금?”
“음, 그래. 아무 때나 쏴도 돼. 따로 보고할 필요 없어.”
진우의 말을 들은 두 병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격할 지점을 찾아 이동했다. 진우는 그제야 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박 소위를 사살할 때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혹사해 온 어깨와 손가락, 그리고 눈이 어지간히 피곤하다. 그런 사실을 잘 알기에 친구들은 굳이 진우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았다.
탕― 탕― 투투둑―
두 병사는 서로 플래시를 비춰가며 사격을 시작했다. 그들의 총소리를 들으며 진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다른 병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는 게, 그리고 서로에게 의지하게 될 거라는 게 진우로서는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자연스럽게 이 병장과 김 상병이 떠올랐다. 가슴이 아리다.
툭― 툭―
아주 얕게 깜빡 잠이 들었던 진우가 눈을 뜬 건, 얼굴에 떨어진 차가운 빗방울 때문이었다.
툭― 툭― 투두둑―
쏴아아아―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점점 더 거센 기세로 퍼붓기 시작했다. 진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왜?
왜 모두 몰살당했던 그때와 이렇게 똑같아지는 거지? 심지어 날씨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