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61화 (361/449)

1장 박 이병, 쉘터 구하기(6)

“그 친구를… 그 정도로 믿나?”

강 소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바보 같은 질문을 들은 보안관과 진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강 소위도 이내 납득할 수 있었다. 보안관과 진우는 오직 유빈의 계획만 믿고 좀비들이 가득한 쉘터의 건물 안에 스스로 뛰어들어서 함께 갇히는 걸 선택했다. 이 녀석들에게는 목숨을 맡기고도 남을 만큼의 강한 신뢰가 있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아니고, 괴물처럼 강한 이 두 녀석이 믿을 정도라면…….

“알겠어! 나도 믿어보지!”

마음을 단단히 먹은 강 소위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서 확성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삐이익―

확성기에서 한차례 째지는 소리가 울리자, 주변 건물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강 소위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플래시 불빛을 받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강 소위입니다! 긴급 공수된 특수 요원들과 함께 여러분의 구조를 위해 왔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이 쉘터의 인솔자입니다!”

“우와아아아―!”

사방에서 박수와 함성이 쏟아진다. 대부분은 그가 누구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구조’라는 한마디에 그들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특수 요원’이라는 말도 어딘가 믿음직하다.

한편, 조금 전까지는 ‘특수 공작원’이었다가 갑자기 ‘특수 요원’이 된 진우와 보안관은 그 단어가 너무 민망해서 손발이 다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보안관은 얼굴을 감싸 쥐며 진우에게만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저 아저씨…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계속 실없는 허풍을 치네……. 어휴, 민망해.”

진우도 쑥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근데 문제는 그 실없는 허풍이 꽤 먹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였다. 그러니 섣불리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제아무리 고도로 훈련된 특수 요원들이라고 해도 모두를 안전하게 구조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민간인, 군인 예외가 없습니다. 작전의 성패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강 소위는 상기된 얼굴로 열심히 소리쳤다. 조금 전까지 떨리던 마음은 간데없고, 신 내림 받은 사람처럼 머릿속에 없던 소리들을 즉석에서 잘도 지어내고 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목숨이 걸린 이야깁니다! 우리는 반드시 여러분 모두를 구하겠습니다! 그게 제가 하고 드리는 첫 번째 약속입니다!”

“우와아아아!”

또다시 환호성이 쏟아진다. 그야말로 모두가 간절히 듣고 싶었던 이야기. 강 소위는 박수 소리가 잦아지길 기다린 뒤,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구조 작업이 오늘 하루 만에 끝나진 않을 겁니다! 워낙 거대한 작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옥상 문 주변에 장애물들을 보강하고 버텨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임무입니다!”

들떠 있던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실망한 사람들끼리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총알 한 발 없는 이 상태에서 밤을 새워야 한다는 이야기만으로도 기가 확 꺾인 것이다.

젠장, 이럴 줄 알기는 했지만…….

강 소위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에서 기 싸움에 밀리면 안 된다.

“무섭고 싫어도 버텨야 합니다! 저 요원들은 여러분을 구하기 위해 여기에 목숨을 걸고 뛰어들었는데, 그 정도 각오도 없습니까? 스스로 먼저 포기할 겁니까?”

강 소위가 핏대를 올려 영혼을 다 불사르며 연설을 하고 있는 동안, 진우는 총에 부착된 플래시를 쉘터 본관 쪽으로 비췄다. 아까부터 이 쉘터의 모든 건물들 중에서 가장 취약했던 옥상이 저곳이다.

거리가 있어서 어둑하게 보이지만, 쉘터 밖의 건물에서는 보이지 않던 각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이 외부로 나 있다. 당연히 잠글 만한 문도 없다.

‘아, 저래서 그렇게 자꾸 좀비들이 기어 올라올 수 있었구나.’

진우는 납득을 하면서 계단 주변에 돌아다니는 좀비가 더 없는지 살폈다.

현재는 아무거나 잔뜩 가져다가 쌓아두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슬아슬한 상태다. 두어 마리만 전력으로 달려들면 언제라도 뚫릴 수 있다.

타앙― 타앙―

진우는 두 발을 당겼다. 일단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놈들의 씨를 말려둬야 쉘터 본관 옥상의 병사들이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총소리가 들려오고, 진우의 플래시를 통해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좀비들의 모습이 보이자, 사람들의 흥분도는 다시 올라갔다.

반짝― 반짝―

어둠에 묻힌 옥상에서 새빨간 불빛이 반짝인다. 담배다.

아, 맞다. 이 사람들 담배도 모르고, 불도 모르지…….

진우는 강 소위에게 다가갔다.

“강 소위님.”

진우가 부르는 소리에 강 소위는 얼른 확성기를 끄고 소리 죽여 물었다.

“응, 왜?”

“지금 당장 담배 끄라고 해주십쇼. 불도 피우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저 플래시들… 한두 개씩만 켜고 나머지는 배터리를 아껴야 합니다. 갑자기 다 꺼져 버리기라도 하면 무서워서 난리가 날 겁니다.”

“…그래, 그렇지. 불…….”

강 소위는 다시 자신 있는 리더의 역할로 돌아가서 확성기를 켰다. 물론 곧이곧대로 좀비들이 담배 냄새에 끌린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설득하고 싶지는 않았다. 때로는 낯선 진실보다 그럴 듯한 거짓말이 더 효율적이다.

“잠시 후에! 특수 요원 후발대가 도착할 겁니다! 그때까지 해야 할 일이 세 가지입니다! 먼저 담배부터 다 끄세요! 특수 요원들이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심각한 지장을 줍니다! 모닥불도 안 됩니다…….”

☆ ☆ ☆

한편, 유빈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6층 건물로 돌아와서 태우고 갈 사람과 여기 머물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지시를 하는 중이었다.

태권소녀와 제니, 삼식이가 진우의 탄창과 고립된 사람들에게 줄 물과 식량 조달을 위해 함께 간다. 신입, 규영이, 임수정은 여기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다리기로 했다.

“너 잘해야 돼, 신입. 담배는 좀비들 안 보일 때에만 옥상에서 피우고… 저 사람들 통솔도 좀 부탁해. 그거… 되겠어?”

유빈은 신입에게 몇 번이나 부탁을 했다. 모두 다 데려가면 제일 좋겠지만, 그러려면 차로 세 번을 더 왕복해야만 할 뿐 아니라, 부상당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병사 두 명을 4층까지 업어서 올려야 한다. 그것도 좀비의 습격을 피해서 신속하게.

그건 옮기는 사람에게도, 옮겨지는 사람에게도 정말 못할 짓이다.

“하, 그 새끼 참… 걱정도 오지게 많아. 내가 누구냐? 내가 우리 기지 지켰던 게 한두 번이냐? 심지어는 혼자서도 잘 지켰구만.”

신입이 별것 아니라는 투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유빈은 여전히 불안했다. 삼숙이를 두고 간다고는 하지만, 불안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게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저기요… 우리,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살아남은 여섯 명의 민간인 여자 중 몇 명이 짐을 꾸리고 있던 삼식이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요. 며칠 내로 다시 데리러 올 거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말고요.”

삼식이는 별 계산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그게 이 여자들을 두려움에 빠뜨릴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아니… 왜 버리고 가려고 그러세요……. 그냥 우리도 아까 그 총 잘 쏘는 아저씨랑 같이 가게 해주세요……. 지금 여기에는 군인들도… 이 다친 사람들밖에 없는데…….”

여자들은 삼식이의 팔을 붙들고 애원을 해 댔다. 삼식이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같이 가는 게 몇 배나 더 위험해요.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는 줄 알고… 우리 지금 그 쉘터라는 데로 가는 거예요. 좀비들이랑 싸우러. 여기에서 큰 소리 내지 않고, 쟤랑 저 누나 말만 잘 듣고 있으면 절대로 안전해요. 아래층에 슈퍼 있겠다, 여기에 셔터도 달렸잖아요.”

“안전한 게 다 무슨 소리예요… 군인들이 지키는 쉘터도 뚫렸다면서… 여기는 그냥 보통 건물이잖아요?”

여자들은 눈물까지 쏟으며 애원을 해 댔다. 거절할 줄 모르는 삼식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녀들에게 휘둘렸다. 이러다가는 밤이 새더라도 계속 여기에 잡혀 있을 기세다.

“아, 등신 새끼! 갑질 존나 못하네!”

지켜보고 있던 신입이 답답하다는 듯 삼식이를 밀어내고 여자들 앞에 섰다. 그러고는 무지하게 싸가지 없는 말투로 여자들을 향해 외쳤다.

“뭐! 뭐! 왜 바쁜 애 귀찮게 하는데? 살려줬잖아! 그런데 무리한 요구도 아니고, 그 정도 말을 안 들으려고 해? 응? 말 안 들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까?”

그러고는 갑자기 유빈을 끌어당겨서 플래시로 그의 멍든 얼굴을 비췄다.

“이렇게 되고 싶어서 그래? 응? 이렇게 만들어줄까?”

여자들은 헉, 하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과장된 음영이 더해지자, 유빈의 얼굴은 실제보다 더 끔찍하게 보인다.

기세가 오른 신입은 유빈의 셔츠를 확 걷어 올렸다. 온몸에 골고루 퍼져 있던 보랏빛 멍 자국은 아직도 다 가라앉지 않았다.

“이렇게 해줘야 말을 들을 거냐고? 대답을 해봐! 사람이 말이야, 좋게 좋게 이야기해 주니까 아주 호구로 보이지?”

빽! 소리를 지른 신입은 플래시로 옆의 테이블을 내려쳤다. 여자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봤지? 믿고 갔다 와. 내 별명이 마왕이었다니까?”

한껏 업된 신입이 유빈에게 귀엣말을 하며 엄지손가락을 자랑스럽게 들어 보인다.

젠장…….

졸지에 매 맞는 놈 모델이 된 유빈은 어지간히 쪽팔렸지만, 그냥 더 말을 보태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지금 필요한 건 저 여자들이 순순히 물러나는 거고, 신입은 이걸로 자신이 며칠간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대기업 취직했으면 여럿 잡았을 놈이네…….”

임수정과 삼숙이에게 규영이를 부탁하고 있던 태권소녀는 그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어쨌든 신입의 숨겨진 재능 덕에 겨우 민간인들에게서 풀려난 유빈 일행은 재빨리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뒤쪽에서 셔터를 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친구들이 짐을 싣고 차에 오르는 동안, 유빈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그들이 불을 지르고 온 군자역 방향의 하늘은 아직도 벌겋다. 꽤나 한참 동안 활활 타고 있는 모양이다.

“아참, 담배는? 챙겨놨어?”

운전석에 앉은 유빈이 삼식이와 태권소녀에게 물었다. 삼식이가 커다란 천으로 된 장바구니를 들어 보인다. 유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시동을 걸었다. 친구들을 태운 자동차는 완전히 어두워진 밤거리를 빠르게 질주했다.

― 치이익, 야, 왜 이제야 출발해? 치이익, 무슨 일 있어?

장벽에 거의 다 다가갔을 때, 보안관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전해진다. 유빈이 대답했다.

“아무 일 없어. 그냥 준비하느라고 좀 늦었어. 우리 보이지?”

― 치익, 당연한 거 아니냐? 치이익, 지금 도로 전체에 불빛이라고는 그 차 한 대 뿐인데? 치익.

“그래, 금방 들어간다. 진우에게 좀비들 좀 잘 잡으라고 말해줘.”

말을 마친 유빈은 핸들을 꽉 쥐었다. 속도를 살짝 줄여 무너진 방벽 사이를 통과하자, 총소리가 들리고 저 멀리 일렁이는 그림자들이 보인다. 당연히 좀비들이다.

“너무 많은데…….”

조수석에 앉아 언제라도 배트를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던 태권소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유빈의 눈에도 아까 진우 일행이 올라갔을 때보다 게이트 주변이 북적거리는 것 같았다.

― 치이익, 멈춰! 진우가 밑에 정리하고 있어. 치익.

무전기에서 보안관의 말이 전달되는가 싶더니,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타앙― 탕, 탕, 탕, 탕― 탕, 탕!

아래쪽을 향해 불꽃들이 내리꽂히고, 좀비들이 픽픽 쓰러진다. 하지만 그래도 게이트 주변은 여전히 꽤 많은 좀비들로 덮여 있다. 저래서야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시체가 더 쌓이면 건물 입구로 들어가기도 어려울뿐더러 지금 진우의 각도에서는 저격할 수 없는 위치에 숨은 놈들도 꽤 된다.

“보안관, 담배라도 몇 갑 모아서 반대 방향으로 좀 던져 봐. 저놈들 좀 흩어뜨려야 될 것 같아.”

멈춰 선 채 헤드라이트만 비추고 있던 유빈이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 치이익, 알았어. 좀 기다려. 치이익.

보안관은 강 소위와 고 하사의 담배, 그리고 김 중사의 담배를 한 군데에 모았다.

“이걸 어디다가 다 집어넣고 던지지?”

담배를 넣을 만한 용기를 찾아 보안관이 좌우를 둘러보고 있자, 김 중사가 자신의 수통을 내밀었다. 뭘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이거면 될까?”

“물기가 있으면 담뱃불이 꺼질 텐데요…….”

보안관이 망설이자, 김 중사는 수통을 거꾸로 들고 털었다.

“바짝 말랐어. 이 더운 날, 이걸 몇 명이 나눠 마셨는데… 한 방울이라도 남았을 리가 없지.”

보안관은 고맙다고 하고 수통을 받아 들었다. 진우가 총을 쏴서 수통 아래쪽에 바람구멍을 하나 더 냈고, 수십 개비에 달하는 담배들에 불을 붙여 수통 안으로 집어넣는 일은 세 군인이 맡았다. 주변은 금세 담배 연기로 자욱해졌다.

“쿨럭! 쿨럭! 자, 한참 타고 있어!”

담배가 더 활활 타오르라고 주둥이에 몇 번이나 입김을 세게 불어넣은 뒤, 강 소위는 수통을 보안관에게 넘겼다. 주둥이와 총구멍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른다.

“야! 이 새끼들아! 너희 좋아하는 거다!”

보안관은 게이트 반대쪽을 향해 힘차게 수통을 집어 던졌다. 연기를 피우며 날아간 수통은 좀비의 머리를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내 그 주변으로 좀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효과 있다! 그런데도 남은 새끼들이 좀 보이네!”

보안관이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 치이익, 그럼 남은 놈들은 내가 낚시를 좀 해서… 치이익, 이끌어낼게. 진우에게 하나씩 잡아 달라고 해! 치익.

말을 마친 유빈은 가속페달을 밟고 철책 쪽으로 내달렸다. 하이 빔을 켜고 있는 자동차의 환한 빛과 요란한 엔진 소리, 그리고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대번에 철책 주변을 서성이던 좀비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롸아아아―

좀비들이 유빈의 자동차를 향해 울부짖으며 달려온다. 유빈은 놈들이 충분히 가까워질 때까지 마주 달리다가 곧바로 핸들을 확 돌렸다.

끼기기긱―

좀비들로부터 불과 10여 미터를 앞두고 자동차가 유턴을 하자, 좀비들은 더욱 신이 나서 속도를 높인다. 도로 위에서는 한 대의 자동차와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벌이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잡아!”

정신없이 핸들을 돌려 대던 유빈이 무전기를 잡고 외쳤다. 대답 대신 총소리가 들려온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진짜 깜깜해!”

뒤를 돌아보고 있던 삼식이가 당연한 사실을 목청 높여 외친다. 하지만 진우는 자동차 후미등의 붉은 조명에 의지해서 좀비들을 눈으로 쫓았다.

캄캄한 거리에서 오로지 진우가 비추는 플래시 불빛만이 바쁘게 움직였다. 플래시 불빛에 좀비가 걸리면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그러면 좀비는 쓰러지고, 진우는 다음 타깃을 찾아 총구를 돌렸다.

그리고 또 타앙―!

그런 식의 낚시를 세 번 반복하고 나니, 비로소 외부 게이트 주변이 조금 한산해졌다. 이 정도면 수감자 숙소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상황이다. 유빈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쓸며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들어갈게. 다들 내릴 준비해.”

유빈의 말을 듣고 모두들 헤드 랜턴의 스위치를 켰다. 이제 몸을 부딪쳐야 하는 시간이다. 속도를 높여 달리던 자동차는 수감자 숙소 부근에서 비스듬히 멈춰 섰다.

“내려!”

태권소녀가 기운차게 뛰어내리며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다. 바로 부근에 있던 좀비가 턱이 돌아가며 바닥으로 나뒹군다.

그리고 또 한 마리, 태권소녀는 놈의 다리를 후려쳐서 앞으로 쓰러뜨리고, 그 넘어지는 머리를 배팅 볼처럼 후려갈겼다.

따앙―

아주 날카로운 알루미늄 타격음이 철책 주변에 울린다.

탕― 탕, 탕, 탕―

진우는 그 나름대로 열심히 방아쇠를 당겼다. 내부 게이트 철책이 있던 자리가 그가 지정해 둔 경계다. 그 밖으로 나가려는 놈들이 보이면 어김없이 머리에 구멍을 뚫어 저지했다.

“으아! 무거워!”

진우의 탄약 가방을 어깨에 메고, 음식이 든 배낭까지 짊어지면서 유빈의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삼식이도 비슷한 무게를 책임졌다.

“올라가자!”

유빈이 태권소녀의 어깨를 툭 치며 계단을 가리켰다. 짐을 적게 든 그녀가 앞장을 서야 한다. 그녀가 물러난 자리는 지난 며칠 동안 진우의 사격 교실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던 우수 제자, 제니가 MP5를 들고 대체했다.

“후우~ 후우~”

입을 가린 수건을 통해 유빈의 땀 냄새가 섞인 공기를 들이마신 제니가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투― 투투둑―

제니는 한바탕 3점사를 퍼부어 주변의 좀비들을 한 박자 저지한 뒤,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떼고 유빈이 기다리고 있는 건물 입구 쪽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한 층 계단을 올라간 뒤, 아래쪽을 향해서 또 한 번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투투둑― 투투둑― 투투투―

이것이 제니에게는 총을 사용한 첫 실전이었다. 방아쇠에서 손을 떼고 난 뒤에도 가슴이 계속 콩닥거릴 만큼 흥분되면서도 무섭다.

하지만 정작 건물 안쪽으로 좀비들이 별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는 주원인은, 역시 진우의 저격이었다. 진우는 방향을 바꿔가며 집요하고도 침착하게 달려드는 좀비들을 쏴 죽였다.

탁탁탁탁―

태권소녀가 긴장한 채 앞장서서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을 때, 위층에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태권소녀는 배트를 휘두를 준비를 하며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곧바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에는 어느새 옥상에서 마중을 온 보안관이 있다.

“3층 올라오는 데 좀비 시체랑 발에 걸리는 거 무지 많아!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

보안관은 좀비들의 시체와 아까 자신이 집어 던졌던 집기들을 한쪽으로 대충이나마 밀고, 친구들의 손을 잡아 끌어 올렸다.

후발대 네 명이 다시 옥상에 합류하자, 주변 건물에서는 또다시 환호성이 일었다. 진우는 친구들의 등에서 짐을 내리는 걸 도와주고 나서 제니에게 다가가 후드를 뒤집어쓴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쓸어줬다.

“잘 쏘더라. 무섭지 않았어?”

“하하, 네. 오빠가 가르쳐 준 대로 하니까… 그냥 쉽던데요?”

제니는 당돌한 척 대답하고 억지로 한 번 가벼운 웃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목소리와 총을 꼭 쥔 손은 계속 부들부들 떨렸다.

진우는 그녀의 MP5의 모드가 안전으로 되어 있는 걸 보면서, 역시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물론 명중시켰다거나 정말로 잘 쏜 것은 아니지만, 처음 경험하는 긴장된 실전에서 사력을 다한 그녀의 용기를 진심으로 칭찬해 주고 싶었다. 조금만 더 연습을 하면 충분히 의지할 만한 전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이에요. 조금씩 드세요.”

유빈은 배낭에서 2리터 생수 두 병을 꺼내 강 소위에게 건넸다. 30여 명의 인원이 갈증을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지만, 그래도 아예 마시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고생 많았어… 내일이라도 중대장님이 전차 타고 돌아오시면 그래도 해볼 만할 거야.”

겨우 입술만 살짝 축이고 김 중사에게 물병을 넘긴 강 소위가 유빈에게 조용히 말했다. 확성기로 계속 떠들어 대느라 그의 목소리는 조금 갈라져 있다.

“중대장님이요?”

물을 마시려던 김 중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강 소위의 눈도 불안 때문에 덩달아 커졌다.

“네, 전차가 안 보이더라고요. 중대장님 모시러 간 거 아닙니까?”

“허~!”

김 중사는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전차는 미리 차출돼서 이동한 겁니다. 이제 안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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