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60화 (360/449)

1장 박 이병, 쉘터 구하기(5)

“올라가고 있어! 끄으응!”

강 소위는 이를 악물고 걸음을 서둘렀다. 보다 못한 보안관이 그를 덥석 들쳐 메고 가서 3층 복도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뭐야, 젠장!”

위층, 그러니까 옥상으로 이어진 계단 주변이 온통 집기들로 어지럽혀져 있는 것을 보고 보안관이 짜증을 부렸다. 의자, 탁자, 침대까지… 뭐가 엄청나게 다양하고 많기도 하다. 발도 제대로 디딜 수 없다.

하지만 1초도 지나지 않아서 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옥상으로 도망친 사람들이 어떻게든 방어를 강화해 보려고 짐을 쌓아서나마 계단을 막아본 것이다. 그런데 그게 역으로 구조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치우려면 시간 좀 걸리겠는데…….”

난간을 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강 소위가 중얼거렸다.

탁탁탁탁― 탁탁―

아래층 계단에서 울려오는 좀비들의 발소리, 그리고 3층 복도 저 안쪽에서도 포효가 울려 퍼지고 있다. 진우가 보안관에게 물었다.

“어느 쪽을 맡을래?”

“더 적은 쪽.”

“그럼 복도.”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보안관을 지나쳐서 계단 끝자락에 섰다. 보안관이 장갑의 벨크로를 꽉 조이고 해머를 잡으며 복도 쪽으로 돌아 나간다.

그롸아아아아―

긴 복도의 이 방, 저 방에서 좀비들이 하나둘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얼핏 봐도 대여섯 마리는 훨씬 넘는다. 게다가 조명이라고는 머리에 달린 헤드 랜턴 불빛뿐.

천하의 보안관이지만 마른침이 꿀꺽 넘어간다. 보안관은 해머를 높이 치켜들면서 소리쳤다.

“…야, 이쪽이 더 적은 거 확실하냐?”

“무슨 말 했어? 안 들려!”

이미 열심히 방아쇠를 당기고 있던 진우가 큰 소리로 물었다.

투투둑― 투투둑― 툭― 투투― 투투둑.

총소리와 좀비들의 울부짖음, 그리고 총에 맞은 좀비들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까지, 진우가 마주한 계단은 이미 아수라장이다.

힐끔 뒤를 돌아보던 보안관은 얼른 앞으로 고개를 돌리며 다시 중얼거렸다.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그런 후, 보안관은 앞으로 뛰어나가며 좀비들을 향해 힘껏 해머를 휘둘렀다.

뻐걱―!

갈비뼈가 부서지며 날아간 좀비가 유리창을 박살 내며 3층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그 뒤의 놈이 아가리를 벌린다. 보안관은 해머를 반대 방향으로 후려쳐서 놈의 머리를 박살 냈다.

쿵―!

벽에 부딪친 좀비가 맥없이 고꾸라지는 동안에도 보안관은 쉬지 않고 해머를 돌리고 그 운동에너지를 따라 스텝을 밟았다.

그롸아아아―

세 번째 좀비, 네 번째, 다섯 번째 좀비가 거의 동시에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든다. 보안관은 옆으로 물러서며 한꺼번에 두 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팔 전체에 묵직한 임팩트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사이 달려드는 다섯 번째 좀비의 옆구리로 보안관의 묵직한 킥이 날아가 꽂혔다.

콰득!

잔뜩 말라붙어 있던 놈의 피부가 찢기고, 갈비뼈가 부서진다. 발차기로 거리를 확보한 보안관은 해머를 높이 치켜 올렸다가 놈의 정수리에 내리꽂았다.

지끈!

두개골이 움푹해질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좀비는 목이 아래로 꺾인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사이 다시 일어난 세 번째 좀비의 관자놀이를 향해 보안관은 힘차게 해머 풀스윙을 날렸다.

“우리도 도울게!”

강 소위와 고 하사는 혼자서 계단 전체를 상대하고 있는 진우의 옆에 서서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투―

정신없이 날아간 총알들이 계단 이곳저곳에 맞고 튄다. 명중되는 비율은… 극히 낮다. 특히 부상당한 트럭 운전병의 K―2를 가지고 와서 쏘는 고 하사의 사격 솜씨는 형편없었다.

피잉―

어딘가를 빗맞고 튄 도탄이 다시 고 하사의 머리 주위를 스치고 지나간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고 하사는 방아쇠에서 손을 떼며 헉, 하고 거친 숨소리를 내뱉었다.

“여기는 저에게 맡기고, 복도의 보안관을 도와주십쇼!”

진우가 탄창을 갈아 끼우며 두 군인에게 외쳤다. 사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던 강 소위가 진지한 얼굴로 되묻는다.

“정말이야? 괜찮겠어?”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다시 계단 아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둑― 투투투―

그롸아아아―

거리를 줄여보려던 좀비들은 머리가 박살 난 채 굴러 떨어져서 동료들의 시체 더미 옆에 처박혔다. 진우의 솜씨를 재차 확인한 강 소위와 고 하사는 복도 쪽으로 걸어 나가서 보안관에게 외쳤다.

“물러나! 우리가 쏠게!”

“아직! 아직! 이 새끼들 잡고요!”

보안관은 이미 근접해 있던 두 마리의 좀비를 해머로 쳐서 밀치고, 한 놈씩 대갈통을 박살 냈다. 주변에는 그가 쓰러뜨린 좀비들의 시체가 줄줄이 엎어져 있다.

“자! 쏴요!”

급한 불을 끈 보안관이 강 소위와 고 하사의 사이로 빠지면서 소리쳤다. 두 군인은 모드를 연사로 두고 K―2의 방아쇠를 힘차게 당겼다.

투투투투― 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쨍강― 와장창― 쨍강―

눈에 보이는 창문이란 창문은 다 깨지고, 심지어 천장에 달려 있던 형광등까지도 박살 나며 터졌다. 벌집이 된 복도 내부에서 달려오고 있던 좀비들도 온몸이 처참하게 꿰뚫린 채 바닥을 뒹군다.

“하아~ 젠장, 그래도 안 죽었어. 지독한 새끼들…….”

강 소위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탄창을 교환했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내장이 다 튀어나온 뒤에도, 머리가 뚫리지 않은 좀비들이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서고 있다.

보안관도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이 둘이 마구 쏴재끼는 걸 보니 왜 이곳 쉘터에 총알이 부족했었는지 대충 알 것 같다. 좁은 복도 안에서 둘이 합쳐 몇 십 발을 쐈는데, 다섯 마리도 못 죽였다. 그나마 그중 두 마리는 일어나서 내장을 쏟으며 다가오는 중이다.

“나머지도 맡길게요! 부탁합니다.”

보안관이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며 계단 쪽으로 이동했다. 어차피 두 마리만 남았고, 그것도 다 사지가 어지간히 훼손되어 있는 상태라서 위험하다거나 하지는 않다.

보안관은 진우에게 다가갔다. 녀석의 방아쇠 당기는 속도도 이제는 꽤나 줄어 있다.

“거의 다 잡았냐?”

보안관이 물었다. 시체들 사이를 비집으며 뛰어 올라오던 마지막 놈의 머리통을 뚫어주고 나서 진우가 보안관을 돌아본다.

“대충… 그런 것 같은데? 이제 올라오는 게 확실히 뜸해. 복도는?”

“저기도 다 끝났어. 두 마리 남기는 했는데, 좀비들 상태가 워낙 안 좋아서…….”

투투둑― 투투둑― 투투투―

보안관이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 복도 쪽에서는 다시 강 소위와 고 하사가 사격을 시작했다. 3점사가 끝도 없이 이어지자 진우가 깜짝 놀란다.

“두 마리라며?”

“그래, 맞아. 저 아저씨들… 총 잘 못 쏜다고 했던 게 그냥 겸손이 아니더라.”

말을 마친 보안관은 옥상으로 향해 난 계단으로 올라가 막혀 있던 집기들을 아래쪽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야전 침대며 책상 따위의 부피가 큰 물건들을 치우고 한쪽으로 좁은 길이나마 만들어냈을 때, 비로소 강 소위의 총소리가 끝이 났다.

“다 죽은 거 맞아요?”

철제 사물함들을 아래로 집어 던지며 보안관이 물었다. 강 소위는 진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거… 내가 말이지, 하아~ 원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지금 다리가 영 불편해서…….”

“아우, 강 소위님! 그런 건 됐으니까, 빨리 문이나 열라고 해봐요!”

뭔가 변명을 해보려고 하는 강 소위의 어깨를 부축하며 계단을 오르던 고 하사가 외쳤다. 강 소위가 계단 끝까지 다 올라오기를 기다려 보안관은 옥상 문을 발로 두들겼다. 대체 뭘 얼마나 잔뜩 쌓아놨는지, 아무리 밀어 봐도 도무지 열릴 기미가 없다.

“나다! 강 소위야! 문 열어! 구조하러 왔다!”

강 소위는 살짝 벌어진 문틈에 대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안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강 소위면… 이 원사님 죽인 그 장교잖아? 구조한다고?”

“죽지 않았어? 도망 나갔다가?”

“야, 지금 그딴 게 뭐가 중요해, 구조한다잖아. 아래에서 계속 총소리 나더구만.”

뭔가 쓸데없는 이야기들만 잔뜩 늘어놓으면서 손이 놀고 있다는 느낌.

탕― 타앙―

아직도 진우는 계단 아래를 향해 사격을 하고 있다. 간간이 올라온다고는 하지만, 어둠 속에서 뛰어오르는 좀비들이라는 건 역시 꽤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드는 놈들이다. 문은 아직도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들이 장난하나. 답답해진 강 소위는 다시 빽! 소리를 질렀다.

“문 앞에 막아놓은 거 치워, 이 새끼들아! 5초 준다! 하나!”

쿵― 쿵―

문 너머가 분주해지고, 묵직한 쇠로 만든 물체를 움직이는 소리가 울린다. 강 소위가 넷을 세었을 때, 비로소 문 앞을 막아뒀던 에어컨 실외기들이 모두 치워졌다.

보안관은 얼른 문을 밀었고, 강 소위와 고 하사가 옥상으로 뛰어들었다.

“우와아아아! 와아아!”

수감자 숙소의 옥상 문이 열리고 강 소위 일행이 뛰어나오자, 근처 건물의 옥상에서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이제 곧 자신들도 구조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희망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얼굴을 알아본 수감자 숙소 피난자들의 반응은 그들과 좀 달랐다.

“…강 소위님!”

옥상에 고립되어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하지만 반가움보다는 실망이 더 크게 느껴지는 듯하다.

방벽 밖에서 날아온 기적 같은 저격 때문에 잔뜩 기대가 부풀어 있었고, 자동차를 타고 달려와 좀비들을 갈기는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렸었는데……. 정작 나타난 게 강 소위라니… 그것도 다리를 다쳐서 부축을 받아야만 할 정도로 쇠약해진 강 소위라니…….

모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강 소위 본인도 분명하게 일 수 있는 분위기였다. 이들이 가졌던 기대를 충족시키려면 뭔가 과장이 필요할 듯했다.

탕― 탕― 탕, 탕―

아래층의 좀비들을 마저 잡고 가장 마지막으로 옥상에 올라선 진우가 병사들에게 말했다.

“일단 문 다시 닫아야 합니다!”

그런 후, 진우는 보안관과 함께 실외기를 들어 옥상 문 앞을 막았다. 병사들의 시선이 두 명의 낯선 이방인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명령 들어! 이분들은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이던 특수 공작원들이다! 특별히 너희를 구하기 위해서 잠시 개입하셨다! 나랑 고 하사도 이분들에게 구조됐다.”

꿀꺽, 침을 삼킨 강 소위는 보안관과 진우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째 영 아닌 것 같은 뻥이기는 했지만, 진우의 사격 솜씨를 보면 누구라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을 거다.

“에?”

어처구니없어서 잠시 강 소위를 돌아본 보안관과 진우는 곧 유빈의 차가 서 있는 방향 난간으로 달려갔다. 유빈은 여전히 하이 빔을 켠 채 후진해서 달리는 중이었다. 앞쪽에는 그의 차를 쫓는 좀비들이 빠른 속도로 뛰고 있다.

“우리 올라왔어! 다 무사해!”

보안관이 무전기를 입에 대고 외쳤다. 곧바로 답이 돌아온다.

― 치이익, 잘했어! 치이익, 나도 애들, 마저 데려올게! 치이익.

“유빈이한테 빨리 빼라고 해줘. 걔 쫓아가는 좀비들은 내가 잡는다고.”

이미 조준을 마친 진우가 보안관에게 말했다. 보안관은 녀석이 시키는 대로 유빈에게 다시 무전을 보냈다.

― 치익, 알았어! 지금 속도 낸다! 치이익.

무전으로 답을 하자마자 유빈은 전속력으로 후진을 하며 크게 원을 그렸다. 좀비들과 유빈의 거리가 벌어지고 각도가 틀어지는 순간, 진우는 빠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탕, 탕―

유빈을 쫒던 좀비들은 뒤통수가 구멍이 난 채로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에 나뒹군다.

유빈의 자동차가 한 번 방향을 틀었다가 180도 턴을 해서 방벽 밖으로 나가 버리자 헤드라이트 덕에 잠시 환하게 밝혀졌던 쉘터는 진우가 해치운 좀비들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내보여 주곤 곧장 어둠이 확 내려앉았다.

“저 사람들이었구나…….”

가까이에서 진우의 사격 솜씨를 확인한 군인과 민간인들은 그제야 감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바로 옆에 해머를 들고 서 있는 남자는 무슨 이유에선지 개인화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저 압도적인 근육만 보아도 충분히 ‘특수’해 보이긴 한다.

하지만 김 중사는 이게 무슨 도깨비장난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격 솜씨가 귀신같다는 건 잘 알겠는데, 도저히 특수 공작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딱 봐도 여기 애들이랑 비슷한 또래인데, 공작원은 무슨 개뿔.

거기까지 생각하던 김 중사는 얼른 머리를 저어 쓸데없는 생각들을 털어버렸다. 어쨌든 저 이상한 K―2를 들고 있는 사람이 이 쉘터에 가져다준 긍정적인 효과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강 소위의 장단에 맞춰주는 게 나을 것 같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보안관과 진우는 쉘터 주차장이 보이는 방향으로 걸어가 플래시를 비췄다.

주차장은 좀비들로 가득 차 있고, 그중에서도 동쪽 벽 주변에는 비정상적일 만큼 많은 좀비들이 몰려 있다.

“저기 저건 뭡니까? 뭔데 저렇게 좀비들이 저 주변에만…….”

보안관이 고 하사에게 물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어둠 속을 바라보던 고 하사가 대답했다.

“발전기야… 저기에 두 대가 있거든.”

“발전기? 그러면 기름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고 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관과 진우는 자동차를 향해 달려들던 좀비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이유가 납득되었다. 놈들은 발전기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열기에 아주 깊이 심취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주차장의 좀비들을 살피고 있는 동안 김 중사는 강 소위에게 다가가 경례를 붙였다.

“강 소위님… 고생 많으셨죠? 그… 박 소위랑 같이 현장에 있던 애에게서 대충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이 원사님을 죽인 게 실은 박 소위였다고…….”

“아, 박 소위, 그놈… 애들 듣는 데서 그런 이야기도 했답니까? 그렇구나… 예, 그거 사실입니다.”

“돌아오신 건 다행이지만, 지금 상황이 안 좋습니다. 박 소위, 그 원수 같은 인간이 남아 있던 실탄을 싹 다 챙겨서 도망가 버린 바람에…….”

“박 소위는 사살했습니다.”

강 소위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살이요? 박 소위 사격 실력이…….”

김 중사가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 강 소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난간 쪽에 서 있는 진우를 가리켰다.

“네, 박 소위 사격 실력 좋았죠. 제가 상대하기에는 어림도 없고요. 저 요원이 한 방에 처리했습니다. 괜히 특수 공작원이 아니더군요.”

하아~ 강 소위의 뻥을 듣고 김 중사는 바짝 다가와 귀엣말을 건넸다.

“강 소위님, 저기… 저 장난감 티가 풀풀 나는 무전기부터 어떻게 좀 가리라고 하시면서 특수 공작원이니 뭐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 지금 깜깜해서 잘 안 보이니까 망정이지, 가까이에서 밝을 때 보면… 그냥 완전히 애들 완구라는 걸 다 알게 될 텐데요.”

오오~ 강 소위는 그걸 생각 못했다는 듯, 자신의 이마를 두드렸다. 하지만 허풍을 들키고 나서도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김 중사에게 속삭였다.

“그래도 그냥 총 잘 쏘는 민간인들이라고 하는 것보다 그렇게 말하는 편이 우리 애들 기를 살리는 데에는 더 유리하잖습니까. 뭔가 계획도 있을 것 같고, 그러니 바람 좀 잘 잡아주십쇼.”

김 중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 소위는 고 하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고 하사는 메고 있던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강 소위는 배낭을 열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박 소위, 그놈이 가지고 도망쳤던 탄약은 모두 회수해 왔습니다.”

딴딴딴따안―!

배낭 안에 꽉 찬 총알들을 바라보는 동안 김 중사의 머릿속에서는 베토벤의 운명이 배경음으로 깔렸다.

이런! 이게… 이런 기적이…….

김 중사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탄창 하나를 집어 눈 가까이로 들어 올렸다. 보석보다 더 아름답다. 마치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그는 몇 번이나 탄창을 꽉 쥐고 쓸었다. 이건… 환상이 아니다.

“싸울 수 있다! 우리 살았어! 이것 봐! 이게 다 실탄이야! 이 새끼들아! 으흐흑~!”

김 중사는 병사들 쪽으로 돌아서서 실탄을 들어 보였다. 다섯 명의 병사는 물론, 계속 훌쩍거리고 있던 민간인들까지도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김 중사는 보안관과 진우를 잇달아 껴안으며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때였다.

“구해줘요!”

“여기도 살려줘요!”

멀리 ‘위험’ 분류 환자들이 갇혀 있던 건물부터,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쉘터 본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건물들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들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조명을 수감자 숙소 쪽으로 비추며 자신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노력했다.

“어떻게 할까요? 계획이 있습니까?”

김 중사가 강 소위에게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저 애타는 구조 요청에 부응하고 싶다. 이제 이쪽에는 총알도 갖춰졌으니까.

하지만 전투 가능한 인원이 열 명도 채 안 된다. 반면, 좀비들은 천 단위. 말 그대로 일당백의 전투에서 승리해야만 모두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강 소위가 난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특수 공작원들에게 물어봅시다. 쟤들은 생각 없이 움직이는 애들은 아니더라고요.”

강 소위와 김 중사는 보안관과 진우의 옆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이제 계획이 뭔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나가서 싸워?”

“예? 아, 내 정신 좀 봐. 좀비 새끼들 구경하느라고 유빈이가 하라고 말해줬던 걸 까먹었네.”

보안관은 허벅지를 탁, 치고 나서 강 소위에게 말했다.

“합창을 하든 뭘 하든, 저 사람들에게 알려주세요. 문을 잘 잠그고 참아내면 모두 구해주겠다고.”

“확성기가 있어! 그걸 가져올게!”

김 중사는 얼른 뛰어가 확성기를 가져와서 강 소위의 손에 쥐어 줬다. 그러는 동안에도 플래시 불빛은 계속 반짝거리고, 살려 달라는 아우성은 밤하늘을 채웠다.

강 소위는 연설을 하기 전에 잠시 머뭇거렸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살려달라는 외침을 마주하고 있으니, 예상 속에 없던 두려움에 압도된 것이다.

“정말… 다 구할 수 있을까? 헛된 희망만 주는 걸까 봐 무섭기도 해… 저 많은 좀비들을 대체 어떻게 다 죽인다는 건지 모르겠어.”

강 소위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까지 계속 좀비들을 노려보고 있던 진우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 방법은 유빈이가 와서 찾아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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