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박 이병, 쉘터 구하기(3)
“뭐지? 갑자기 왜 안 쏴?”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강 소위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한동안 계속 고막을 자극하던 총소리가 끊겼다.
좀비들의 울부짖음 사이를 뚫고 아주 간간이 한두 발씩만이 울릴 때는 그 메아리가 어딘가 처량하게까지 느껴진다.
“무슨 준비를 하고 있나? 응? 어때? 무슨 특별한 작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나?”
강 소위는 진우에게 물었다. 진우는 조준경에서 눈을 떼고 강 소위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옥상에 배치된 병력들이 실탄이 없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보급이 이뤄지는 것 같지가 않고요. 뭔가 이상합니다. 건대 쉘터에 탄약이 부족했습니까?”
“도망 나와 있었던 동안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있었던 때에는 좀 부족하긴 했어… 중대장님이 잠실로 가시기 전에도 보급 문제 때문에 회의를 한 번 했었거든. 하지만 암만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실탄이 똑 떨어질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
강 소위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멍청한 박 소위라도 탄약 재고 관리를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럼 이게 원인일 수도 있겠습니다.”
진우는 자신의 곁에 놓아두었던 배낭을 들어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 열었다. 탁자가 가볍게 울릴 만큼 묵직하다. 안에는 탄창과 실탄이 잔뜩 들어 있다.
“이… 이게 어디에서 난 거야?”
“2층에, 민간인들이 갇혀 있던 사무실에서 회수해 왔습니다. 정황상으로는 아마 사살한 그 장교의 물건으로 보입니다.”
박 소위 물건이었다고?
강 소위는 배낭 안에 손을 넣어 뒤져 봤다. 적어도 천 발 이상의 실탄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이런 미친놈…….
강 소위는 자신이 겪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지면 중대원 전체에게 돌아가야 할 탄약을 모두 가지고 도망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자기 혼자 살아보겠다고 100명이 넘는 병사들의 목숨을 희생시키려 한다는 게 도대체…….
증오로 손을 부들거리며 탄창을 헤아리던 강 소위는 문득 이상한 걸 느꼈다. 진우라는 이 친구는… 왜 이런 중요한 문제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것일까?
“이걸… 왜 말해주지 않았나?”
강 소위는 진우를 보며 물었다. 혹시라도 그것이 타박이나 책임 추궁으로 느껴질까 봐 조심스러워서 그는 최대한 부드럽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문제가 없었다면 제가 가지려고 했었습니다. 군부대에 실탄이 부족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진우가 조금도 거리낌 없이 대답해서 강 소위는 그게 또 약간 놀라웠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해줬으니, 이 정도 전리품을 챙긴다고 해도 강 소위로서는 만류할 수 없는 문제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상황으로부터 많이 동떨어져 있다. 강 소위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그랬었군. 근데 지금은 이게 우리 애들의 유일한 생명줄이야. 이걸 어떻게 해서든 전달해 줘야 돼.”
“어떻게 말입니까?”
감정 없이 던지는 진우의 질문이 폐부를 찌르는 것 같아서 강 소위는 입을 다물었다.
저렇게 잔뜩 몰려 있는 좀비들을 뚫고 들어가 탄약을 전달해 준다? 말하기는 쉽지만, 사실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게… 나도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말이었던 거지.”
강 소위는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진우가 다시 물었다.
“저 안에 몇 명이나 있습니까?”
“민간인이 총… 550명 정도… 수감자 위탁 받은 게 40명, 거기에 우리 애들 100여 명… 대략 700명쯤 되는군. 젠장, 그 많은 사람들이 다…….”
700명…….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아서 듣고 있던 진우의 표정도 굳었다. 솔직히 말해서 더 이상 타인들의 일에 얽히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꼼짝 없이 좀비들에 갇혀 죽어가도록 내버려 둘 만큼 무신경한 인간은 또 못 된다.
후우~ 한숨을 내쉰 진우가 강 소위에게 말했다.
“유빈이와 이야기를 해봐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강 소위는 진우가 이름을 잘못 말했다고 생각했다.
유빈이? 그 멍든 얼굴? 설마… 중요한 상의를 한다면 저 덩치 큰 보안관이라는 친구 쪽이랑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잠깐만.”
진우가 손짓을 하며 친구들을 모았다. 유빈과 보안관, 태권소녀가 진우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인데?”
보안관이 물었다. 진우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들을 이야기해 줬다.
박 소위가 훔쳐서 도망 나온 실탄 가방을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런데 그 실탄들이 건대 쉘터의 마지막 총알이었다는 것, 좀비들에게 포위된 700명이 총알이 없어 죽게 될 거라는 이야기까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태권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어휴~ 어째 점점 더 골치 아픈 문제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네…….”
박 소위라는 놈만 잡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제 수천의 좀비를 뚫고 들어가 총알을 전달해 달라니……. 게다가 이건 그놈들을 다 죽여야 비로소 끝이 날 일이다. 처음부터 아예 모르고 지나가느니만 못해졌다.
“심각하구만…….”
보안관도 미간을 찌푸렸다. 어느 쪽을 선택한다고 해도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다. 수천의 좀비와 맞서는 일도, 수백의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외면해 버리는 일도…….
“거기 상황이 정확히 어때? 나는 못 봤으니까 대충이라도 좀 알려줘 봐. 좀비들 위치라든가,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생각에 잠겨 있던 유빈이 물었다. 진우는 손바닥 위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며 대답했다.
“지금 좀비들은 거의 다 벽 너머에 들어가 있지. 벽에서 게이트까지 한 200미터 이상 떨어져 있거든. 게이트 안에 또 한 겹 철책이 있고, 건물은 그 안쪽에 있어.”
“건물이 하나야? 그럼 좀비가 빙 에워싸게 되는 건가?”
“에… 옥상에 저격수들이 여러 건물에 나눠져 배치된 걸 보면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야. 가운데에 커다란 체육관이 있고, 그 주변에 작은 건물들 몇 개가 이렇게 흩어져 있어. 좀비들이 철책 안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건물들이 좀비를 둘러싸는 모양새랄까?”
“음, 그러면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 보이네. 좀비들이 아예 깊숙이 들어갈 때까지 말이야. 어차피 우리가 총알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두 번째 철책 안으로까지 들어가야 하는 거잖아. 저 안에 있는 사람들도 당장 총알이 없더라도 문 잠그고 버티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네 명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강 소위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아무것도 없으니 결정에 관여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유빈이라는 녀석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직 다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결국 총알만 전달해 주면 된다.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네. 준비해야 할 것도 있는데.”
유빈은 조금이나마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진우가 물었다.
“준비?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데?”
“페인트 묻은 좀비들. 그놈들이 나타나는 주기가 최근에는 열한 시간에서 열세 시간 사이였으니까, 오늘 저녁부터 밤사이에 한 번은 반드시 이 부근으로 올 거야. 그러니까 그전에 그놈들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바꿔둬야 해. 지금은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야.”
유빈이 대답했다. 그제야 모두들 얼굴을 마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좀비 떼들에 질려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들이 페인트로 칠해뒀던 무지개 좀비들 역시 이 부근으로 지나간다는 것을…….
벽이 무너져 있으니 놈들도 자연스럽게 쉘터를 향해 접근할 것이고, 만약 그렇게 되면 죽여야 하는 좀비들의 수가 배도 넘게 늘어나 버린다. 그때는 천 발 정도의 총알로는 어림도 없다.
“어떻게 방향을 바꿔? 계속 한 루트로 돌던 놈들인데.”
“역시… 불을 질러서 꼬셔봐야겠지? 좀 거리가 있고 돌아가야 하는 위치에.”
“그렇게 해서 놈들이 방향을 바꿔주면 다행이지만, 안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냐?”
태권소녀가 물었다. 유빈은 무감정한 어조로 말했다.
“그때는 우리 힘으로 구조가 어려운 거야. 그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잠실 쪽으로 가서 알려주는 게 차라리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해. 괜히 우리까지 저기에 휘말려 들어가 봐야 달라지는 게 별로 없어.”
유빈의 말에 모두 얼굴을 마주 봤다.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옳은 말이다. 친구들과 강 소위의 침묵을 동의라 받아들인 유빈이 한 가지 당부를 더 했다.
“저 많은 좀비들을 다 죽이는 건 한두 시간 만에 끝날 일이 아니야. 군인 아저씨들 예상대로 중대장을 태운 탱크가 오늘내일 중에 돌아와 주는 게 제일 좋은 경우고, 만약에 우리 힘만으로 끝내야 한다면 며칠 동안 꾸준하게 싸운다고 생각해야 돼. 그러니까 마음을 급하게 먹지 마. 빨리 구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우리 목숨을 걸지 말자고. 저 사람들도 그쯤은 참아내야 돼.”
계획이 생겼으니 이제 실행 준비를 위해 다들 바쁘게 움직였다. 보안관, 태권소녀, 유빈, 삼식이, 고 하사, 이렇게 다섯 명이 아래층의 슈퍼에서 인화물질을 잔뜩 카트에 담아 가지고 군자역 사거리로 가서 오른쪽에 불을 지르기로 했다.
꼬리를 물고 서 있는 자동차들에 불이 옮겨붙으면, 아마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거리 전체를 활활 태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도 같이 가야지.”
진우가 물었다.
“어… 진우, 너는 이 작전에서 훨씬 더 중요한 임무를 맡아줘야 돼. 불장난 정도는 명사수가 없어도 할 수 있는 거니까 괜찮아.”
“중요한 임무?”
“그래. 지금부터 너는 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
유빈은 열린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건대 쉘터 쪽을 지목했다. 야구 배트를 챙겨 바로 옆을 지나가던 태권소녀가 유빈의 등짝을 때린다.
“야! 멋지게 돌려 말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똑바로 일러줘! 대체 무슨 소리야, 희망을 주라니. 쟤가 무슨 요정이야?”
아야야! 인상을 찌푸리며 손에 잘 닿지도 않는 등을 쓸고 나서 유빈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조준경으로 보고 있으면서, 위험하다 싶은 상황이 있으면 좀비들을 죽여 달라고. 엄청 많으니까 다 죽이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 그냥 저 쉘터 안에 갇힌 사람들이 누군가 그들을 돕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면 돼. 그게 희망을 주는 거고,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알았지? 부탁한다!”
진우의 어깨를 두드린 유빈은 삼식이와 함께 계단 쪽으로 뛰어 내려갔다.
“갔다 올게!”
시야 밖으로 사라지기 전에 삼식이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다. 진우는 두어 번 숨을 몰아쉰 뒤에 창가로 가서 섰다.
‘희망을 주라고?’
진우는 모드를 단발로 놓고 총구를 천천히 돌리며 쉘터의 상황을 살폈다. 이미 두 개의 철책은 거의 다 무너졌고, 총알이 떨어진 옥상의 저격조들은 허망한 눈으로 끊겨 버린 퇴로를 바라보는 중이다.
유빈의 말이 맞다. 저 병사들에게는 버티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총알보다도 더 절실할는지 모른다.
진우는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넣고, 외곽 건물의 문에 달라붙어 포효하는 좀비의 머리를 겨눴다. 가장 극성맞고, 가장 위협적으로 보이는 놈이다.
“…주지.”
진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툭. 탄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400미터 이상 떨어진 표적의 관자놀이가 꿰뚫렸다. 좀비의 머리에서 터져 나온 뇌수가 석양이 깃들기 시작한 하늘에 흩뿌려진다.
예리해진 눈빛의 진우는 다시 총구를 옆으로 돌렸다. 이번 목표는 휘어진 철책을 밟고 올라가 2층을 노리는 좀비다.
☆ ☆ ☆
“어떻게 합니까? 저… 저 많은 놈들을…….”
수감자들 숙소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병사가 김 중사에게 물었다. 김 중사도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체중을 실어 철책을 무너뜨린 좀비들은 밀물처럼 쉘터 내부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너무 많아 그 수를 다 센다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절망적이다. 이젠 다 끝났다고 할 수밖에…….
그롸아아아― 끄와아아아―
아래에서 좀비들이 외쳐 대는 소리 때문에 귀가 윙윙 울린다.
타아앙―
그리고 좀비들의 소음 사이로 간간이 단발의 총성이 들려온다. 사방을 가득 채운 포효에 묻혀서 그런지, 총성은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아직 실탄이 남은 놈이 있었네… 나도 아까 그렇게 3점사 하지 말고 단발로 끊어 쏠걸…….”
한 병사가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른 병사가 헛웃음을 웃는다.
“훗, 그래봐야 몇 발이나 된다고… 그냥 마찬가지야. 달라지는 게 없어.”
한동안 퀭한 눈으로 아래의 좀비들을 내려다보던 병사들이 하나씩 둘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김 중사도 그들처럼 주저앉아 버리고 싶었지만,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면서 억지로 버티고 있다. 보급에 실패한 죄인의 마지막 책임감이다.
미친 짓을 저지른 건 박 소위지만, 그 역시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탄약고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더 신경 쓰고 조심했어야 한다.
놈이 게이트 밖으로 나가겠다고 했을 때, 실탄을 몇 발이나 꺼내 가는지 바로 옆에서 지켜봤어야 했다. 설마 이 좀비 세상에서까지 그런 배신을 할 리는 없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문제다.
“어우, 이게 무슨 난리야… 어휴! 이제 다 죽는 거구만.”
“으흐윽! 우우우…….”
쉘터 소독을 하다 말고 옥상으로 피난 온 민간인들 사이에서 한탄과 울음소리가 섞여서 들려온다. 갑자기 전염병 분류를 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대더니, 이제는 아예 좀비들이 쉘터 안으로 밀고 들어와 버렸다.
그런데 군인들은 빈총을 들고 눈만 껌뻑거리고 있을 뿐이다. 당연히 눈물과 원망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담배… 피울래?”
김 중사는 담배를 꺼내 물고, 옆의 병사들에게도 권했다. 몇몇이 그늘이 잔뜩 드리워진 얼굴로 담배를 받는다.
“후우우~ 기분 진짜 더럽네…….”
깊이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내뱉으며 김 중사는 멍한 눈으로 창공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주차장은 좀비들로 가득 차버렸고, 쉘터와 외곽 건물들을 분류하기 위해 쳐놓았던 허술한 철책들이 하나씩 둘씩 무너지고 있다.
그 불안한 경계마저 무너지면 이제 좀비들은 각 건물을 향해 돌진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옥상의 병사들을 좀비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건, 너무도 허술한 옥상 문이 전부다. 몇 마리만 체중을 실어 제대로 부딪치기만 해도 옥상문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저게 대체 얼마나 버텨줄까?’
문 쪽을 돌아보며 김 중사는 생각했다. 옥상 위로 대피하자마자 문을 잠갔고, 그 앞에 에어컨 실외기를 몇 겹으로 겹쳐 쌓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더 덧대놓을 만한 것이 없다.
‘젠장, 버텨서 뭐 어쩌겠다는 거야? 그래봐야 죽는 건 달라질 게 하나도 없는데…….’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 깨달은 김 중사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과 다섯 명의 병사를 포함해서, 지금 이 건물의 옥상으로 피신해 온 사람들은 모두 30여 명. 그런데 가지고 있는 물을 다 더해도 채 2리터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저 옥상의 문이 아무리 튼튼하게 보강되어 있더라도 결국은 목이 말라 죽게 될 것이다. 물론 먹을 것은 전혀 없다.
“젠장… 물 다 끓여놨는데…….”
김 중사는 이미 엎어져 버린 들통들을 내려다보았다. 열심히 불을 피웠던 자리는 좀비들에 의해 엎어지고 밟혀 이제 재만 남았다. 좀비들은 바닥을 흥건히 적신 물을 밟고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선택은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이 지독한 좀비들의 악취를 견뎌내면서 목마름과 배고픔을 꾹 참고, 저 옥상의 문이 결국 무너질 때까지 악으로 버텨낼 것인가, 아니면 이쯤에서 슬슬 정리를 해야 할 것인가…….
참으로 유쾌하지 않은 선택이다.
“야, 여기에서 떨어지면 즉사하겠냐?”
한 병사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후임에게 물었다. 후임은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젓는다.
“크윽, 잘… 모르겠습니다.”
4층이라는 건물의 높이는 애매했다. 머리부터 아래로 떨어져 보려고 해도 한 방에 깨끗하게 죽을 수 있을지 장담이 안 된다. 만약에 즉사하지 않고, 저 아래의 좀비들 한 가운데로 떨어진다면…….
그 공포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사방에서 좀비들이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들고 팔다리가 찢기는 상상만으로도 오줌을 지릴 것 같다.
“어! 어! 저기! 쟤들!”
건너편의 쉘터 본관 건물을 바라보고 있던 병사가 다급하게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손가락질을 한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네 명의 병사가 체육관 옥상으로 기어 올라와 구석을 향해 뛰어가고 있다.
“쟤들 뭐야? 왜 아직도 저기에 묶여 있었어?”
구경하는 병사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체육관에 배치되었던 K―3 사수와 부사수들인 모양인데, 동료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미처 퇴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아!”
외부 계단에 좀비들의 모습이 나타나자 주변의 다른 건물들에서도 일제히 탄식이 터져 나온다.
다들 고립된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가장 첫 번째 옥상의 희생자가 나타나게 될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쉘터 옥상의 병사들은 구석에 몰린 채 외부 계단과 아래쪽을 번갈아 보고 있다. 물론 달아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그러는 동안에도 좀비들은 계단을 올라온다.
“세 마리밖에 안 돼! 싸워!”
김 중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향해 외쳤다. 물론 그 싸움이 큰 승산이 없다는 건 그도 잘 안다. 좀비들은 사람보다 더 빠르고 강하다. 그저 저 녀석들이 산 채로 좀비에 물어뜯기는 걸 보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그와아아아―
야외 계단을 다 뛰어 올라온 좀비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구석의 병사들을 향해 달려간다.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다 이제 끔찍한 살육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타아앙―
또다시 들려오는 단발의 총성. 그리고 달려가던 좀비의 머리 주변에서 녹색 액체가 퍽, 터져 나왔다. 머리가 꿰뚫린 좀비는 중심을 잃고 체육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또 타아앙―
뒤따라 달려가던 두 번째 좀비의 뒤통수에서도 뇌수가 터졌다. 여러 개의 건물 옥상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누구야? 누가 이렇게 잘 쏴?”
그러는 사이, 세 번째 좀비가 계단을 올라왔다. 이번에는 총성이 더 빨리 울렸다.
타아앙―
머리만 삐죽 옥상 위로 내밀었던 좀비는 목이 뒤로 꺾인 채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
“우와아아아!”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진다. 수천의 좀비 중에서 겨우 세 마리를 잡았을 뿐이지만, 마치 대승을 거둔 것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우리… 우리 중대에 이런 특등사수가 있었습니까?”
“지금 어디에서 쏘는 거예요?”
조금 전까지 눈물을 훌쩍거리던 병사들과 민간인의 얼굴에도 조금이나마 생기가 돈다.
멍한 얼굴의 김 중사는 멀리 무너져 버린 장벽 쪽을 가리켰다.
“저 밖에서 쏘는 건데… 각도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