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57화 (357/449)

1장 박 이병, 쉘터 구하기(2)

진우의 말을 들은 강 소위는 잠시 멍해져 있다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처… 철책이 없다고? 그, 그럴 리가… 다른 데를 잘못 본 거 아니야? 이 도로에서 곧바로 남쪽이야.”

“그 위치 맞습니다. 철책 세워져 있었던 흔적도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다 뜯겨 나가 버렸습니다. 아마도…….”

진우는 총구를 약간 위쪽으로 올리며 말을 이었다.

“…저 트럭이 부수면서 올라간 모양입니다.”

“트럭? 트럭이 쉘터 쪽으로 돌아갔어? 그럼 지금은 누가 타고 있지?”

“트럭은 벽을 들이받고 전복된 상태입니다. 그 주변에 병사들이 나와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진우는 조준경이 달린 K―2를 강 소위에게 넘겼다. 강 소위는 서둘러 쉘터 방향을 찾았다. 철책이 있던 위치를 확인한 강 소위는 마른침을 삼켰다. 진우의 말이 맞다.

철책은 다 뜯겨 나가 있고, 장벽이… 그가 쉘터로부터 도망 나와 있던 기간 동안 완성된 장벽의 일부가 박살 난 상태다. 거대한 트럭이 그 위에 쓰러져 있어서 빠른 시간 내에 보수한다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좀비들은 그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중이고, 새로 벽을 쌓기 위해 나와 있던 병사들은 사이렌 소리에 놀라 퇴각하고 있다. 양쪽 간의 거리는 채 100미터도 안 된다.

건대는 지금 철책도, 장벽도 없이 저 좀비들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퇴각하는 병사들이 급하게 쳐놓고 간 레이저 와이어 바리게이트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어쩐지 애처로워 보인다.

강 소위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진우에게 총을 넘겼다.

“후우~ 좋지 않은데… 안 좋아… 전차도 없는 상태에서 저 많은 놈들을 다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자던 애들까지 싹 다 긁어모아서 닥치는 대로 쏟아부으면… 내부 게이트 앞에서 어찌어찌 막아지려나?”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창가 뒤쪽에서는 보안관이 민간인 여자들을 조용히 시키고 있었다. 만약 큰 소리를 지르거나 담배를 피워 대거나 하면 이 정도 높이라고 해도 좀비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숨만 쉬면서 쥐 죽은 듯 조용히 좀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태권소녀는 가방에서 물병 두 개를 꺼내 그녀들에게 나눠 줬다.

“박 소위에게 두들겨 맞은 애는 턱뼈가 아마 금이 간 모양입니다. 코도 다 뭉개졌고. 걔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에요… 총 맞은 병사는… 너무 오래 피를 계속 흘리도록 방치돼서 아슬아슬해 보입니다. 지금이라도 쉘터 의무대를 이용할 수 있으면 좀 나을 텐데요.”

부상당한 병사들에 대한 치료를 마친 고 하사가 보고를 한다. 이미 도로 위에서 두 구의 아군 시체를 본 마당에 더 이상 무고한 희생이 일어나도록 하고 싶지 않은데, 지금 이곳에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고 하사의 손에 들린 붕대와 소독약을 보고 강 소위가 물었다.

“갑자기 그런 건 다 어디에서 났어?”

“저기 저 친구가 가방에서 꺼내 주더라고요. 만약에 대비해서 가지고 다닌다면서… 덕분에 진통제도 받아 먹였습니다.”

고 하사가 유빈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백발백중에, 슈퍼 파워에, 유비무환에… 겪으면 겪을수록 놀랄 일이 많아지는 녀석들이다.

강 소위가 경외에 찬 눈빛으로 유빈 일행을 돌아보도록 내버려 두고, 고 하사는 초희에게 다가갔다.

“좀 진정됐어요?”

지칠 대로 지친 초희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괜찮아요… 소리도 안 지를 거고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래요, 잘하고 있어요. 자, 이제 상처 좀 볼게요.”

고 하사는 초희의 소매를 찢어버리고 칼에 베인 상처를 살폈다.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일단 소독을 해주고 붕대를 감았다. 고 하사의 지시에 순순히 따르며 치료를 받던 초희가 물었다.

“…군인 의사 오빠도 이제 내가 개년인 거 다 알았잖아요. 근데도 왜 이렇게 잘해줘요?”

“잘해주는 거 아니에요, 그냥 제가 맡은 일 하는 겁니다. 전장에서 다친 사람 치료하는 게 제 일이니까. 그리고… 자기를 그렇게 나쁜 말로 부르지 마요.”

붕대를 단단히 묶은 고 하사가 일어나려 할 때였다.

타타타타― 타타타― 타타타타―

쉘터 쪽에서 총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했다. 밀려드는 좀비들을 향해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콰아앙― 콰아앙―

설치해 둔 크레모아가 폭발하는 소리도 거기에 더해졌다. 밖을 내다보기 위해 조금 열어뒀던 창문이 가볍게 흔들린다.

민간인 여자들을 더욱 움츠러들어서 구석에 바짝 달라붙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괜찮아요!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됩니다. 좀비들을 쏘는 총소리예요! 우리랑 무관합니다!”

패닉이 일어나기 전에 강 소위가 나서서 여자들을 진정시켰다. 이들의 심리가 이해 안 가는 바도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그녀들은 미친 박 소위 때문에 죽음의 위기를 겪고 있었으니까.

울음소리가 좀 잦아졌을 때, 강 소위는 진우의 곁으로 돌아와 물었다.

“어때? 잘 막고 있나?”

조준경을 통해 건대 쪽을 바라보고 있던 진우가 고개를 저었다. 별로 효율적이지 않았다. 명중률이 형편없는 것은 뭐 그러려니 하고 지나갈 수 있다. 애초에 모든 병사가 명사수인 것은 아니고, 지금은 꽤나 당혹스러운 상황이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쏴대는 방향도 다 제각각이고, 폭발물이 오히려 악영향을 미쳐서 장벽을 더 크게 망가트린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차라리 좀비들이 더 밀고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밀집한 대열의 허리를 끊었어야 했다.

“제대로 된 지휘가 이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진우의 말을 들은 강 소위는 한숨을 내쉬었다. 뼈아픈 지적이다. 지휘할 사람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이제 건대 방어 중대 안에는 단 한 명의 장교도 없으니, 부사관들에게만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다.

“어쩌겠어… 잘 막기를 비는 수밖에…….”

진우의 옆에 주저앉은 강 소위는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폭발물이 터진 이후 더욱 속도를 높인 좀비 무리들은 맹렬한 파도처럼 건대 쉘터를 향해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그 꼬리 부분이 강 소위 일행이 숨은 건물 앞을 막 지나가려는 참이다.

☆ ☆ ☆

박 소위와 만배파 사이에 총격전이 일어나기 직전, 건대 쉘터의 김 중사는 졸린 눈을 비비면서 주차장에 커다란 들통들을 꺼내놓고 물을 끓이고 있었다.

박 소위가 물을 징발해 오겠다고 나갔지만, 슈퍼 한두 개를 털어서 나오는 생수의 양으로는 이 많은 사람들이 며칠을 버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다.

이요섭이 죽던 순간의 총소리가 울릴 때까지만 해도 그다지 큰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제 물품을 징발하러 나갔다가 소수의 좀비들을 만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쉼 없이 이어지는 3점사 소리가 점점 그의 불안을 키워갈 때 즈음, 옥상에 배치되어 있던 저격조가 달려와 보고를 했다.

“김 중사님! 박 소위 님이 지금 민간인들과 총격전을 벌이며 대치중입니다!”

“뭐어?”

김 중사는 자신이 보고 받은 내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민간인이 총기를 입수한단 말인가. 아니, 그런 것보다도 우선 왜, 도대체 왜 민간이 총기를 가지고 군인들에게 도전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병사들이 아무 근거도 없이 허튼소리를 늘어놓을 리는 없었다.

주차장의 병사들에게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장작을 계속 넣으라고 지시를 한 뒤, 그는 직접 쉘터 옥상으로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장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야! 너, 너, 그리고 너희 둘, 따라와!”

총격전 현장을 눈으로 확인한 김 중사는 저격조 병력들을 차출했다. 지원팀을 꾸리기 위해서였다. 영문은 모르지만, 군에게 도전하는 일은 용납되어선 안 된다.

쉘터에 남아 있는 마지막 차량인 SUV를 타고 서문으로 출발하면 조금 돌아가기는 해도 3분 안에 도착해서 현장을 정리할 수 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김 중사가 물었다.

“너희, 지금 예비 탄약 몇 발 휴대하고 있어?”

“장착하고 있는 걸 제외하면 예비 탄창은 하나뿐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 중사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탄약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벽을 쌓은 이후부터는 공급량을 제한했었다.

“그것 가지고 안 돼. 탄약고부터 들러야겠군!”

김 중사는 병사들을 이끌고 지하의 탄약고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물쇠에 열쇠를 꽂았다.

“허! 이, 이게… 왜?”

탄약고 문을 연 김 중사의 입에서 힘없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탄약들이… 깨끗이 비워져 있다. 물론 원래 남아 있던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천 발 이상은 재고가 있었다. 불과 한나절 만에 그 천 발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이런… 이런 씨발…….”

김 중사는 아찔해져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탄약고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이제 단 두 명뿐, 주간에는 박 소위가, 야간에는 자신이 관리를 한다. 그러니 이런 짓을 한 범인이 누구인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박 소위, 그 정신병자 새끼… 아무리 전염병이 무서워졌어도 그렇지… 여기를 통째로 버리고 달아나려 했단 말인가…….

“젠장!”

벽을 후려친 김 중사는 이를 악물고 계단을 올라가 눈에 보이는 대로 병사들의 예비 탄창을 빼서 저격조에게 넘겼다. 이제는 대치 중인 병사들을 구하러 가는 게 아니라 박 소위, 이 개새끼를 잡으러 가야 한다.

“무장한 놈들 다 적이라 간주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박 소위가 제1타깃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 무조건 당겨! 경고고 뭐고 다 필요 없다! 무조건 쏘라고! 알겠나?”

자동차 시동을 걸면서 김 중사는 몇 번이나 같은 명령을 내렸다. 상식밖의 명령을 받으면서도 병사들은 감히 되물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만큼 김 중사의 표정이 심각하고, 말투가 다급했다.

그때였다.

와지지직― 끼이이익― 쿠우웅―

불안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한 굉음!

김 중사와 병사들은 깜짝 놀라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외부 게이트 너머, 장벽 쪽이었다.

“뭐야? 무슨 소리야? B동 저격조, 보고해!”

자동차에서 내린 김 중사는 외부 수감자 숙소 옥상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트럭이 들이받으면서 벽이 무너졌습니다!”

“뭐라고? 얼마나? 많이 무너졌어?”

“길이가 3미터 이상 됩니다!”

핑― 김 중사는 머릿속 신경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돌아버릴 만한 일들이 너무도 연속으로, 급박하게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점점 더 심각해진다.

이제 박 소위를 잡는 일보다 더 심각하고 위급한 일이 생겨 버렸다. 좀비들이 몰려들기 전에 장벽을 보수해야 한다.

“너희들 따라와! 레이저 와이어 챙겨서 와! 야, 게이트 열어! 외부 게이트도 열라고! 아… 아니다! 비상부터 걸어!”

게이트 경비병에게 명령을 내린 김 중사는 부사관들을 불러오라는 말을 남긴 뒤, 근처의 병사들을 모두 이끌고 장벽을 향해 달려갔다. 평소처럼 뒤에서 말로 명령만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무너진 장벽의 균열은… 심각했다. 무엇보다도 골치 아픈 게 트럭의 처리다. 벽을 무너뜨린 뒤 쓰러져 버린 트럭을 치울 방법이 없었다. 너무 크고 무겁다.

‘좀비들이 이리로 밀려오면 막을 수 있을까… 실탄도 몇 발 남지 않았는데…….’

김 중사는 불안한 시선으로 뚫려있는 장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줄곧 야간 근무만 해왔기 때문에 그는 주간의 좀비들이 어떤 시간대에 접근해 오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놈들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난리 났네, 난리 났어…….”

옆으로 누운 채 문이 열려 있는 트럭 운전석을 바라보며 김 중사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대체 이걸 몰고 온 새끼들은 무슨 생각으로 장벽을 다 작살내고 도망쳐 버린 걸까… 중대장님이 계셨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였다면 뭔가 가장 효율적인 정답을 내놨을 텐데…….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묘수는 떠오르지 않는다.

“여기에 레이저 와이어라도 걸어! 이쪽으로 통과하지 못하도록!”

김 중사는 병사들에게 트럭과 무너진 장벽 사이에 2중, 3중으로 철조망을 치도록 명령했다. 그렇게 하고도 불안이 가시지 않아 50여 미터 후방에 크레모아를 설치했다. 도로의 양쪽 가장자리 가로수 흙에 서로 마주 보듯이.

그렇게 해두면 장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좀비들을 꽤 많이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많이 물러난 위치에 설치했다가는 아군의 게이트마저 날려 버릴 상황이어서, 뭔가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다른 위치를 고를 수 없었다.

“쏘지 마! 도와줘!”

레이저 와이어를 한창 걸치고 있을 때, 도로 북쪽에서 병사 하나가 달려오며 간절하게 외친다. 김 중사는 녀석을 장벽 안으로 끌어올려주게 하고 물었다.

“너 뭐야? 어디에 있다가…….”

“승, 승합차를 타고 바, 박 소위님 따라 나갔다가… 하아~ 도망쳐 왔습니다! 민간인들이랑 총격전이 벌어졌는데… 박 소위님이 갑자기 동료 병사를 후려치고, 제게도 총을 겨눠서…….”

“다른 애들은 놔두고 너만 도망쳤다고? 혼자서?”

화가 난 김 중사가 다그치자, 녀석은 비어 있는 탄창 주머니를 두드렸다.

“실탄이 없습니다! 이렇게라도 알려야… 아! 그리고… 이 원사님을 쏜 게 실은 박 소위님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여자들 때문이라는 말도…….”

구조된 병사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잔뜩 늘어놓았다. 김 중사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그걸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때였다.

애애애애앵― 애애애앵―

장벽 보수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사이렌이 울려 댄다. 망원경으로 전방을 살피는 저격조의 시야에 좀비 무리들이 들어왔다는 의미다.

“다 빠져! 전원 퇴각해!”

김 중사는 구조된 병사의 등을 밀며 외쳤다. 레이저 와이어 설치를 마친 병사들이 게이트 쪽으로 되돌아 달려간다. 김 중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폭발물 설치를 마치고 크레모아 격발용 전선을 풀며 뒤로 물러났다. 그 역시도 이걸 실제로 설치하고 터뜨려 보는 건 처음이다.

“짧네…….”

김 중사는 이미 길이가 다한 전선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상태대로라면 게이트 내부로 들어가 격발기를 누를 수 없다. 애초부터 너무 먼 곳에 크레모어를 설치해 둔 탓이다.

“엄폐물… 엄폐물…….”

김 중사는 자신이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한 곳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쇠구슬은 전면으로만 퍼져서 날아가지만, 내부의 폭약이 폭발하는 것은 방향을 가리지 않는다. 개활지에서 격발시켰다가는 그 역시 좀비들과 함께 날아가 버릴 것이다.

“김 중사님! 퇴각하셔야 합니다!”

두 명의 병사가 달려와 그를 붙잡는다. 김 중사는 녀석들에게 격발기를 보여줬다.

“여기에서 눌러야 돼! 전선이 짧다!”

병사들의 얼굴이 굳는다. ‘그냥 모른 척하고 갈걸’ 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미 알아버렸으니 완전히 외면만 할 수는 없다.

병사들은 김 중사와 함께 길가의 상가로 들어가 벽에 기댔다. 크레모아를 터뜨린 후 퇴각할 때, 그를 호위하기 위해서다.

탕― 탕탕― 타타타타― 타타타타―

외부 게이트 쪽에서 발포를 개시했다. 김 중사는 눈을 부릅뜨고 장벽 쪽을 노려봤다. 레이저 와이어 바리게이트가 너무도 부실해 보일 만큼 압도적인 수의 좀비들이, 벽이 무너진 사이로 몰려들고 있다.

그롸아아아― 그롸아아아―

좀비들은 미친 듯이 포효하며 온 몸을 내던져 레이저 와이어를 밀어낸다. 팽팽하게 당겨진 레이저 와이어의 칼날이 좀비의 얼굴과 몸통에 박혀 들어가고 난 뒤에도, 뒤의 놈들이 계속 밀려 들어온다.

투투투― 투투투― 투투둑―

다급해진 게이트의 병사들은 미친 듯이 3점사를 쏟아부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거리는 빗발치는 총알들과 예광탄 때문에 불꽃놀이라도 펼쳐지는 것처럼 보였다.

“젠장! 총알을 좀 아끼라고! 이 새끼들아!”

김 중사는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을 쳤다. 보수 공사를 하러 나오기 전에 병사들에게 탄약이 바닥났다는 걸 알리지 않은 게 실수였다. 지금 휴대하고 있는 예비 탄창까지 모두 소비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빈총을 꼭 붙잡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롸아아아아―

레이저 와이어 바리게이트는 이미 너덜너덜해진 좀비 시체들로 거의 무력화되어 있었다. 그 위를 타고 넘어온 뒤쪽의 좀비들은 도로로 내려서자마자 내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마리는 옥상의 저격조들에 의해 저지되었지만, 점차 그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걷잡을 수 없어졌다.

“김 중사님! 이제는 정말 가야 합니다! 눌러야 합니다!”

수십 미터 앞까지 다가온 좀비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서 두 명의 병사가 울부짖었다. 김 중사 역시 심장이 쿵쾅거려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웠다.

철책과 장벽도 없이 저렇게 많은 좀비들과 지근거리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정말이지 상상했던 그 이상이었다. 막연하게 두려워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섭고 끔찍하다.

“엄폐해! 뒤로 빠져! 누른다!”

김 중사는 두 병사를 건물의 벽 뒤로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힘차게 격발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콰아앙― 퍼버엉―

양쪽에서 발사된 수천 개의 쇠구슬과 후폭풍이 도로를 뒤흔든다. 달려오던 좀비들은 쇠구슬에 온 몸이 꿰뚫린 채 사지가 끊겨 벽에 처박혔다.

열기와 흙먼지가 한차례 주변을 휩쓸고 지나간 뒤, 김 중사는 병사들과 함께 건물을 빠져나왔다.

“야! 이쪽이야! 어디로 가?”

제대로 귀를 막지 않아 방향감각을 잃은 병사를 게이트 쪽으로 잡아당기면서 김 중사도 뒤를 돌아보았다. 처참하게 날아가 버린 좀비들 사이로 또 새로운 대열이 달려오고 있다. 게다가… 장벽의 균열은 더욱 심해졌다. 점점 상황이 악화되어 간다.

“뛰어! 뛰어!”

김 중사는 두 명의 병사와 함께 이미 경비병들이 철수한 외부 게이트를 향해 달렸다. 돌아서서 응사를 할 만한 여유조차 없다. 사실 그래봐야 무의미할 정도로 이미 도로 위는 좀비들로 뒤덮였다.

“하아~ 하아~”

게이트 안으로 피신한 김 중사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그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절망적인 외침이 여기저기에서 울려왔다.

“탄창! 탄창!”

게이트 경비병들도, 여러 건물에 분산되어 있는 저격조들도… 모두 실탄이 떨어졌다는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이 쉘터에는 이미 예비 탄약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조준해서 쏴! 연사하지 말라고! 실탄 아껴!”

김 중사는 확성기를 꽉 붙잡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없던 실탄이 솟아나지는 않는다.

그롸아아아악! 크롸아아아!

어느새 코앞까지 거리를 좁힌 좀비들이 외부 게이트 철책에 매달리며 포효해 댄다.

으드드득― 꽈드드득―

수많은 좀비들이 한꺼번에 게이트에 체중을 싣자, 철책이 휘고 뜯겨 나가는 소리가 났다. 김 중사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이제 이 쉘터에는 두 가지가 없다.

…탄약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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