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건대 쉘터 함락(5)
“끄으으~! 왜? 왜?”
죽음의 문턱을 넘기 직전까지도 두 병사는 자신들이 왜 공격당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슈퍼에서 물을 실어 오는 일일 뿐이었다. 무시무시한 전과자들도 아니고, 대부분이 교인인 수용자들이었는데… 이 미친놈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두섭아, 총 집어라!”
육만배가 명령했다. 두섭이와 또 한 놈의 조직원이 죽은 병사들의 총을 빼앗아 들고 탄창을 챙겼다. 총으로 무장을 끝낸 두 놈이 조수석 방향으로 돌아가는 동안 육만배는 어안이 벙벙해 있는 민간인들을 방패삼아 앞세우고 트럭에서 내렸다.
투투투― 투투둑―
야! 이 개새끼들아!
투투둑―
총소리와 사이드미러를 통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운전병이 짐칸 쪽을 향해 총알과 욕설을 함께 퍼부었다.
팅― 티팅―
짐칸에 맞고 튄 총알이 날카로운 쇳소리를 만들어낸다. 움찔하게 만드는 소리지만, 직접적인 위험은 없다. 어차피 짐칸 뒤는 운전석 쪽에서 사각이고, 거기에 문까지 양쪽으로 활짝 벌려져 있으니까.
육만배와 조직원들은 달아나려는 민간인들의 머리채를 잡아 세웠다. 그러고는 재빨리 눈을 돌려 박 소위 놈이 탄 승합차의 방향을 쫓았다. 승합차에 군인이 몇이나 타고 있는지, 그 부분에 대한 정보가 없다.
“회장님, 여기!”
기동이 놈이 다가와 두 자루의 대검 중 하나를 쥐어 준다. 물론 군인들의 시체에서 빼낸 것이다.
육만배는 자신이 방패로 삼은 민간인의 목덜미에 칼날을 딱 붙이고 뒤에 숨으며 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제님, 움직이지 마세요. 나는 두 번 말하지 않습니다.”
“유, 육, 육 장로님, 대체 왜… 이게 무슨…….”
인질로 잡힌 민간인은 덜덜 떨며 물었다. 육만배는 칼날로 놈의 피부를 꾹 눌렀다. 금세 얕은 상처가 나고 피가 맺힌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 않나. 주둥이도 털지 마.”
얼굴이 파랗게 질린 민간인 인질들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상상도 못했던 끔찍한 일에 휘말려 버렸다. 지금 이 상황은 좀비들이 서울에 퍼지던 그날의 기억만큼이나 무섭다.
투투둑― 투투투―
트럭 앞쪽에서는 운전병과 만배파 조직원들이 벌이는 총격전이 한창이었다. 서로 그리 대단한 명사수도 아니고, 몸을 사리며 쏴대는 것이라 쉽게 결판이 지어지지 않는다.
씨이이이이잉―
박 소위의 승합차는 트럭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밟아! 트럭 뒤에 비스듬히 대!”
박 소위는 미친놈처럼 고함을 질렀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운전병도, 뒷자리에 앉은 또 다른 병사도 뜻밖의 상황에 놀라 사색이 되어있다. 여자들의 비명은 말할 것도 없다.
꺄아악― 꺄아악―
총소리와 피를 보고 놀라서 다들 째지는 소리를 질러 댄다.
‘대체 어떻게 눈치를 채버린 거지? 뭘 보고 알았지?’
박 소위는 K―2 손잡이를 꽉 쥐며 이를 악물었다. 애써 짠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는 게 영 기분 좋지 않다. 하지만 좋게 생각하자면 저 놈들은 이제 군인을 죽인 살인범들이다. 증인도 무지하게 많다. 무조건 쏴 죽여 버려도 아무 탈이 없다.
트럭에서 사선으로 20여 미터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을 때, 박 소위는 승합차를 세우고 병사들과 함께 하차했다.
투투투― 투투둑―
트럭 앞쪽으로 위치를 옮긴 운전병이 응사하고 있는 게 보인다. 활짝 열린 짐칸과 인간 방패가 된 채 잡혀 있는 민간인들도, 그리고 그 옆에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 있는 병사들의 시체도 보인다.
트럭에 타고 있던 병사가 셋이었으니, 적에게 두 정의 총이 넘어간 거다.
“엄호해! 내가 잡는다!”
박 소위는 두 병사에게 외친 뒤, 주차되어 있는 차들 사이로 뛰어 들어갔다.
투투투― 투투투투―
병사들은 아무 망설임 없이 트럭의 짐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억지로 서 있는 민간인들이 인질일 거라는 생각도 할 수 없다. 눈앞에서 전우가 죽어 나갔으니 그들이 보기에는 그냥 한패고, 다 똑같은 미친 살인마들일 뿐이다.
“으윽!”
민간인 인질 중 한 명의 심장에서 피가 솟구치고, 또 한 명이 팔에 총을 맞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맞은 놈보다 육만배가 더 놀랐다. 설마… 인질까지 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박 소위, 저놈…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다.
“회장님! 이쪽으로 오십쇼! 이쪽!”
기동이 놈은 인질들과 육만배를 끌고 커다란 슈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애초에 식수를 징발하려던 가게다.
펑― 퍼벙―
입구에 세워져 있던 과자 박스며 두루마리 휴지가 정신없이 터져 나간다. 박 소위의 솜씨다.
“야! 이쪽으로 쏴! 앞에 새끼는 내버려 두고 박 소위랑 승합차 저 개새끼들을 쏘라고!”
기동이가 두섭이에게 소리를 질러 댔다. 두섭이 놈이 황급히 뒤쪽으로 뛰어온다. 그러고는 승합차를 향해 난사했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투―
승합차의 유리가 깨지고, 병사들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안에 있는 여자들은 비명을 질러 내고 울부짖는다. 주변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다.
“끄응~ 이거 어째… 영 안 좋은데?”
육만배가 머리 위로 쏟아진 과자부스러기들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이쪽도 총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앞에 하나, 뒤에 셋, 모두 네 명이나 된다. 그리고 요즘 계속 사격을 하던 놈들이다. 반면에 그의 편 사수들은 둘뿐이고, 그나마 한 놈은 엽총이나 쏴보던 놈이다.
“저놈이 지원 요청을 하거나 하면 끝이란 말이지…….”
자동차 사이에 숨은 박 소위를 힐끔 엿보며 육만배는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지금 승산을 높이려면 일단 박 소위 놈의 마음을 흔들고, 주위의 병사들이 놈을 의심하게 만들어야 한다.
방법을 궁리한 육만배는 썩은 야채들 곁에 떨어져 있던 확성기를 집어 들었다.
“박 소위! 이 개새끼야!”
확성기를 통해 증폭된 육만배의 목소리는 도로 전체를 쩌렁쩌렁 울릴 만큼 컸다. 육만배는 배에 힘을 꽉 주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이 원사 죽인 걸 덮어주고, 네가 시키는 대로 강 소위에게 누명까지 덮어씌워 줬더니! 나한테 보답이 이거냐? 응? 네가 이러고도 사람이야?”
“닥쳐! 이 개새끼야!”
얼굴이 새빨개진 박 소위가 거품을 물고 방아쇠를 당긴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투―
퍼부어진 총알들은 슈퍼 입구의 물건들을 박살 냈다. 육만배는 벽 뒤에 더 바짝 붙어서 계속 외쳤다.
“증인들을 다 없앨 생각이었냐? 우리만 죽여 버리면 완전범죄가 될 것 같았어? 하하하하, 그렇게는 안 될걸! 네가 그날 이 원사랑 강 소위 쏜 거 본 사람은 우리 말고도 더 있어!”
“닥치라고! 닥쳐!”
“하하하하! 바보 같은 군인 놈들아! 잘 들어! 저기 저 박 소위 놈이 진범이다! 너희 대장이 살인범이라고!”
육만배의 심리전은 효과가 있었다. 다른 군인들은 신경 써서 듣지 않고 있지만, 제 발이 저린 박 소위만은 다급해져서 이성을 잃었다. 박 소위는 다시 승합차 쪽으로 뛰어가 병사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저 말 믿지 마! 개소리야! 저 새끼 지금 다급해져서 거짓말하는 거다!”
예… 예……. 병사들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에도 육만배는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내가 강 소위 총을 숨겼어! 발전기 아래 빈 공간에 비닐로 꽁꽁 싸서 넣어뒀다고! 너희가 확인해 보면 알잖아! 박 소위 부탁을 받고 했단 말이야! 저 새끼가 범인이야!”
“닥치라고 했지! 난 그딴 총 알지도 못해!”
박 소위는 미친놈처럼 악을 써가며 트럭을 향해 3점사를 퍼부었다.
끄아악!
응사하려던 두섭이 놈이 손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녀석의 왼손 손가락 세 개가 한꺼번에 날아가 버렸다.
부하 놈이 피를 철철 흘리고 쓰러져 비명을 질러 대는 동안에도 육만배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계속 큰 소리로 지껄였다.
“너희 대장 조심해! 박 소위, 저 새끼는 수틀리면 너희들도 쏠 놈이야! 미친 개새끼라고! 이 원사 쏠 때도 그랬지! 가희, 저 더러운 년이랑 붙어먹다가 걸리니까 그걸 감추려고! 너희도 다 알잖아! 저 새끼가 그때 밤마다 떡치면서 신음 소리 내고 다녔다는 거…….”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려 하자 박 소위는 미친 듯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K―2를 난사했다.
“으아악!”
또 다른 민간인 인질이 총을 맞고 쓰러진다. 하지만 가게 안에 들어가 벽 뒤에 숨은 육만배에게는 닿지 않았다. 놈은 집요하게 확성기를 잡고 외쳤다.
“생각해 봐라! 박 소위, 저놈이랑 강 소위랑 둘 중에! 누가 성질이 나서 사람을 죽일 만한 인간인지! 박 소위 아니냐? 응? 누가 봐도 박 소위라고!”
“듣지 마! 듣지 마!”
박 소위는 미친놈처럼 악을 쓰며 승합차 조수석에서 자신의 배낭을 꺼냈다. 탄창을 잔뜩 채워 넣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묵직하다. 그러고는 승합차 뒤쪽으로 돌아가서 가희와 초희를 잡아끌었다.
“내려! 너희 둘 내려!”
“왜 이래요? 무서워요, 박 소위님!”
가희와 초희는 그가 시키는 대로 차에서 끌어내지면서도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 무슨 대단한 계획이라도 있는 양 우쭐대더니 어째 영 불안해. 멍청한 새끼…….
두 여자가 내리는 것을 본 승합차 안에 있던 다른 여자들은 앞뒤 사정도 모르면서 덩달아 뛰어내리려고 든다.
“박 소위님! 어디 가십니까?”
트럭을 향해 응사하고 있던 승합차 운전병이 물었다. 장교가 갑자기 여자 둘만 끌고 다급하게 뛰어가려 드니 이상해 보이는 게 당연하다. 박 소위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외쳤다.
“저 새끼 목적이 이 여자들이다! 보호해야 돼! 계속 엄호해!”
맥락도 닿지 않는 변명이었다. 두 병사의 눈빛이 흔들린다.
‘미쳤어… 어쩌면 저 확성기로 떠들어 대는 소리가 맞는 건지도 모르겠어.’
전투가 벌어졌는데, 아군 장교가 제일 무섭다. 이런 좆같은 상황이 또 있을까…….
“으아아악!”
트럭 쪽에서 또 비명이 울려 퍼진다. 트럭 운전병이 자신과 대치하고 있던 만배파 조직원을 명중시킨 것이다. 적 사수가 쓰러졌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트럭 운전병은 재빨리 트럭을 벗어나 승합차 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가지고 나온 탄창을 이제 거의 다 소모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더는 버틸 수 없다.
“엄호해 줘! 엄호!”
승합차 쪽으로 달려오며 트럭 운전병이 애타게 소리를 질렀다. 승합차 뒤에 몸을 숨긴 병사들은 열심히 트럭을 향해 총알을 날려 대며 트럭 운전병의 복귀를 도왔다.
“저 새끼 잡아야 돼! 쏴! 아무라도 좀 쏴!”
트럭 운전석에 키가 없다는 걸 확인한 기동이가 외쳤다. 그리고 그 역시도 떨어져 있는 총을 집어서 마구 갈겼다. 동남아 사격 연습장에서 쏴본 가닥이 있어서 방아쇠 정도야 당길 수 있다.
“으흐으으! 끄으으!”
손가락이 날아간 왼손을 감싸 쥐고 있던 두섭이 놈도 다시 총을 잡았다. 상처 부위가 총에 닿을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고통스럽지만, 이판사판에 뛰어들었으니 이를 악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투―
양쪽에서 쏴대는 총소리가 어지럽게 울린다.
“커헉!”
트럭 운전병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비명을 지른다. 그의 허벅지는 흘러나온 피로 금세 붉게 물들었다. 기동이와 두섭이, 두 놈이 쏴대던 여러 총알 중 한 발이 명중한 것이다.
“끄아아아! 아아악!”
트럭 운전병은 허벅지를 움켜쥐고 울부짖었다. 10여 미터만 더 달려갔으면 승합차까지 닿는 건데… 바로 코앞에 안전한 곳을 두고 여기에서…….
핑― 핑―
그의 주변으로 총알들이 튄다.
으하하하하! 기동이 놈의 웃음소리가 총소리 사이사이 마다 울려 퍼졌다.
죽어! 죽어, 이 개새끼야! 두섭이 놈도 고통을 잊을 만큼 흥분해서 계속 방아쇠를 당긴다.
“씨발! 저런 개새끼들이!”
승합차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응사했다. 전우가 바로 몇 미터 앞에 쓰러져 있고, 그 주변으로 적의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
애가 타고 속이 터지는 것같이 답답하다. 당장에라도 구하러 가고 싶지만, 그들 역시 목숨이 하나뿐이라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도 박 소위는 두 여자를 붙잡고 씨름하는 중이었다.
“박 소위님, 이러지 말아요… 이상해 보인다고요. 우리 그냥 다른 여자들이랑 같이 있도록 내버려 두고 육만배부터 잡아요. 네? 박 소위님.”
가희와 초희가 무릎을 꿇고 애원을 했다. 하지만 박 소위는 힐끔 승합차 쪽의 병사들을 돌아보고 나서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후우~ 지금 저 새끼들 눈빛을 보니까 벌써 의심하기 시작했어. 위험해… 육만배도 문제지만, 나는 저 새끼들도 못 믿어. 후우~ 가희야, 초희야, 나를 믿고 따라와. 내가… 지켜준다. 우리의… 낙원으로 가자.”
박 소위는 숨을 헐떡인다. 가희와 초희는 눈물이 그렁거리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망했다……. 이 새끼, 드디어 완전히 미쳐 버린 것 같다…….
“빨리 일어나! 내 눈 돌아가는 거 보고 싶어? 응? 시키는 대로 안 할 거야? 안 할 거냐고!”
박 소위의 눈은 핏발이 서 있고, 목소리는 갈라져서 쇳소리가 난다. 가희의 팔목을 잡기 위해 박 소위가 허리를 고개를 숙이자, 한쪽 어깨에 대충 걸쳐뒀던 그의 배낭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순간, 배낭 윗부분이 열리면서 탄창이 와르르 쏟아졌다.
병사들에겐 여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그동안 빠듯하게 지급해 주었는데…….
비밀을 들킨 박 소위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신다.
“박 소위님… 왜 탄창을 그렇게 많이…….”
승합차 운전병이 멍한 얼굴로 물었다. 박 소위는 녀석의 얼굴을 다짜고짜 개머리판으로 후려쳤다.
“의심하지 말라고 했지!”
바닥에 쓰러진 승합차 운전병의 코와 입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또 한 명의 병사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대체 왜 박 소위, 이놈은 아군을 조지는 걸까? 그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멈춰!”
박 소위는 목이 찢어져라 고함을 지르며 총을 들어 올렸다. 병사는 멈추지 않고 상가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가는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는 감이 왔다.
투투투― 투투둑―
아니나 다를까, 총알이 상가의 벽과 문을 박살 낸다. 병사는 가게 안으로 더 깊숙이 달아났다. 박 소위의 사격 실력은 익히 알고 있다. 도망가지 않으면 죽는다.
“으아악! 대체 왜 이래요?”
승합차 안에 타고 있던 여자들이 울부짖는다. 그들의 원망 가득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박 소위는 다시 배낭을 승합차 조수석에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시계를 보았다.
슬슬 대피해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조금 있으면 좀비들이 몰려올 거다. 애초에 그런 시간에 맞춰 여기로 나왔다. 혼란 속에서 두 여자와 함께 사라져 버리기 위해서…….
”어딜! 이 개새끼야!”
박 소위가 도로 쪽을 향해 3점사를 날린다.
투투둑― 투투둑―
그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트럭 운전병의 열쇠를 훔쳐 보려던 만배파 조직원이 움찔하며 트럭 뒤로 물러난다.
팅― 티팅―
총알은 그의 머리 근처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너희는 여기에서 다 죽었어! 감히 나를 우습게 봤어? 응? 이 깡패 새끼들아!”
박 소위는 계속 방아쇠를 당기며 소리를 질러 댔다. 탄창의 개수로 보아도, 사격 실력으로 보아도, 그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싸움이다.
“너를 우습게 봤다고? 하하하! 우스운 게 뭔지는 아나, 이 등신 새끼야!”
육만배가 또 확성기를 잡고 도발을 해 댔다.
“그년들이 뭐라고 너를 꼬드기더냐? 응? 그 걸레 같은 년들이 너를 정말로 좋아하는 줄 아나? 사랑해서 매일 그렇게 떡을 쳤다고 생각해?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는 천하에 멍청한 놈!”
“가희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죽여 버리겠어!”
“하하하하, 가희? 가희 좋지! 그년이 너랑 처음 떡치던 날 뭐라고 하며 너를 홀렸었는지, 내가 이야기해 줄까? 비가 오는 날이었지! 네놈이 죄수 새끼를 죽여서 질질 짜던 날이었어!”
가희와 초희, 박 소위의 얼굴에서 거의 동시에 핏기가 빠져나갔다. 박 소위의 침묵이 당황한 증거라는 걸 알아챈 육만배는 신이 나서 계속 떠들었다.
“가희 년이 너에게 뛰어가서 그랬겠지! 네가 나오는 꿈을 꿨다고! 그래서 와봤다고! 그러면서 너밖에 안 보인다고 했었지! 안 그래, 박 소위? 하하하!”
박 소위는 뻘게진 눈으로 가희를 돌아보았다. 가희는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거, 저거… 다 설명할 수 있어요… 그게…….”
박 소위가 숨을 헐떡인다. 그의 들썩거리는 어깨 너머에서는 육만배의 목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댔다.
“내가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아느냐고? 당연한 거잖아! 내가 가희 년한테 시킨 거니까! 그날 밤에 거기 가라고 한 것도 나고! 그런 말로 꼬시라고 한 것도 나다! 알겠어? 박 소위, 이 새끼야! 너희는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야! 그저 내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거지! 가희, 그년은 한 번도 널 사랑한 적 없어! 매일 밤마다 너랑 붙어먹고 와서 나에게 보고를 했어! 오늘도 존나게 아팠다고! 그 개새끼랑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느냐고!”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아니, 가희는… 박 소위님 사랑해요… 이것 보세요… 지금도 이렇게…….”
다급해진 가희는 박 소위의 품에 안기려고 다가갔다. 하지만 박 소위는 그녀를 사납게 밀어 쳤다.
쿵―
승합차 운전석에 호되게 머리를 부딪친 가희가 비틀거리자 초희가 그녀를 부축해 일으킨다.
“왜 이래요! 이러지 말고 제발 저 새끼를 죽이라고!”
가희를 안고 초희가 울부짖었다. 박 소위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 더러운 년들… 나를, 나를 가지고 놀았어… 나는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박 소위가 갑자기 대검을 뽑아 들었다. 번뜩이는 칼날을 본 초희와 가희의 눈이 더욱 커졌다. 승합차 안의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움츠러들었다.
“안 돼! 안 돼!”
두 여자의 비명이 하늘을 가른다. 박 소위는 사정없이 대검을 휘둘렀다.
“끄윽!”
가희의 쇳소리! 그녀의 가슴이 사선으로 붉게 물든다. 박 소위는 다시 칼을 그었다. 이번에는 초희가 팔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어젯밤 그와 체온을 나눴던 두 여자가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졌는데도 박 소위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사정없이 휘두르는 대검이 다시 가희의 목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아아악!”
가희는 울부짖으며 쓰러졌다. 박 소위가 귀신같은 얼굴로 중얼거린다.
“죽여 버릴 거야… 네년들, 조각조각내서 고통스럽게 죽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