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51화 (351/449)

5장 건대 쉘터 함락(2)

진우의 경고를 들은 친구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전에도 한 번 강원도에서 탈영병 취급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녀석의 걱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빨리 가자. 저 사람 저러다가 애타서 좀비한테 물리기도 전에 죽겠다.”

보안관과 진우가 앞장을 서고, 그 바로 옆으로 삼숙이가 달린다. 물론 짐이 무거운 유빈이와 삼식이는 그만큼 빨리 달리지 못하니까 태권소녀가 보호를 하면서 속도를 맞춰 뛰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구해줄게요!”

“아! 아! 고맙습니다! 살려주세요!”

친구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고 하사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제 살았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막 내쉬던 바로 그 순간!

와장창―

아슬아슬해 보이던 유리문이 결국 박살 나버렸다. 고 하사는 간이 뚝 떨어지는 것 같은 공포를 느끼며 문 쪽을 돌아봤다.

콰창―

문을 박살 낸 좀비가 앞으로 고꾸라지고, 그 뒤의 놈은 쇼 케이스 위에 올려둔 박스를 타넘으려 하고 있다.

“으아! 야이!”

고 하사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의자를 집어 던졌다.

텅―

날아간 의자는 문 옆 기둥에 맞고 떨어졌다. 명중하지도 않았지만, 위력도 더럽게 약하다. 저 정도 충격에 죽을 놈들이 아니다.

그롸아아아―

문과 장애물을 타 넘은 두 마리의 좀비가 가게를 가로질러 뛰어온다. 고 하사는 앞뒤 가릴 새 없이 창틀 위로 올라섰다.

다른 곳으로는 도망갈 방법이 없다. 물론 뛰어내릴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대번에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세 마리 좀비의 먹이가 될 테니까.

“크흑! 끄으으!”

고 하사는 미친 사람처럼 눈을 굴리고 사방으로 손을 뻗어 잡을 만한 곳을 찾았다. 그동안 좀비들은 탁자를 엎으며 더 가까운 곳까지 와 있다.

이제 한 호흡만 지나면 저놈들의 갈퀴 같은 손이 그의 다리를 움켜쥘 상황이다.

“제발! 제발!”

창틀을 밟고 이동하던 고 하사가 겨우 붙잡은 건 3층 가게의 간판이었다. 그런데 별로 튼튼한 것 같지가 않다. 그가 체중을 반만 실어서 매달렸는데도 벌써 뿌드득거리며 어딘가 부러지고 나사가 빠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그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일단은 매달려서 좀비들을 피해야 한다.

“이이익!”

고 하사는 두 손으로 간판을 붙잡고 창틀에서 발을 떼었다.

끼이이잉―

불길하고 기분 나쁜, 얇은 쇠가 휘는 소리가 그의 머리 위에서 울린다.

그롸아아―

그를 쫓던 두 마리의 좀비 중 한 마리는 몸을 날려 창문 아래로 떨어져 버렸고, 또 한 마리는 유리창을 두 손으로 있는 힘껏 후려쳤다.

콰창―

깨진 유리창 조각이 떨어져 내리며 좀비의 팔목을 가른다. 놈은 살점이 잘려 나가 덜렁거리는 팔을 열심히 휘두르며 고 하사의 발목을 잡아보려 애썼다.

“야! 야! 이 개새끼가!”

고 하사는 두 다리를 바짝 오므려 놈의 손아귀를 피했다.

끼이이이잉―

그러는 사이에도 간판은 계속 휘고 있다. 아래쪽의 좀비들은 한층 더 흥분해서 날뛰고 있다. 조금 전 아래로 떨어진 놈도 어느새 일어나 거기에 합류했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부러진 갈비뼈가 가죽을 뚫고 나와서 놈이 활개를 칠 때마다 좌우로 움직인다.

“야, 저 사람! 저거! 쏴야겠는데?”

해머를 들고 뛰어가던 보안관이 진우를 향해 소리쳤다. 웬만하면 총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려 했는데, 이래서야 저 가게까지 닿기도 전에 저 사람이 물리는 꼴을 구경하게 될 것 같다.

“지금 쏜다!”

벌써 조준을 마치고 있던 진우는 보안관에게 경고를 하고 나서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탕― 탕, 탕!

네 발의 총성, 그리고 네 마리의 좀비 시체. 펄쩍펄쩍 뛰며 포효하던 좀비들이 거의 동시에 바닥에 쪽쪽 뻗었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하기만 한 재주였다.

‘내가 쏴 보니까 전혀 이렇지 않던데… 이 새끼, 진짜… 총을 쏘는 건지, 초능력을 쓰는 건지 모르겠네…….’

신기하다는 눈으로 진우를 힐끔 돌아본 보안관이 물었다.

“저기 가게 안쪽에도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저건 왜 안 쏴?”

“이 각도에서는 창문 밖으로 나온 팔밖에 안 보이니까 쏴도 무의미해. 그리고 저 아저씨가 저렇게 발버둥을 치고 있어서 오발 사고가능성도 높고.”

진우는 총구를 아래로 내리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고 하사를 향해 외쳤다.

“뛰십쇼! 밑에 좀비들 전부 사살했습니다! 클리어! 클리어!”

보안관은 또다시 진우를 돌아봤다. 자신이 군인이라는 걸 말하지 말라는 놈이… 말투며 어휘를 전부 군인처럼 사용하는 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였다.

“네? 네? 하아~ 하아~”

간판에 매달린 고 하사는 고개만 뒤로 돌려보려 애를 썼다. 총소리가 난 건 알겠는데, 아래쪽의 좀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확인이 안 된다. 두 마리의 시체는 보이는데, 나머지 두 마리는 그의 시야 밖이다.

다 죽었나? 아닌가?

뛰어오던 슈퍼 히어로들이 뭐라고 외쳐 대는 것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서 너덜너덜해진 팔을 휘두르며 포효하는 이 좀비 놈이 하도 혼을 빼놓고 있기 때문이다.

와장창―!

찌이익!

깨진 창문 사이로 내밀고 휘젓는 손이 가까워질 때마다 고 하사는 온 힘을 다해 다리를 당겨서 배에 붙였다.

끼기기깅―

우드드득―

간판의 위쪽이 뜯겨져 나가면서 아래로 기우뚱하게 기운다. 아래에 매달려 있던 고 하사의 몸은 자연스럽게 창문 쪽에 가까워진다. 이대로라면 잠시 후 저 좀비의 손아귀에 닿을 상황이다!

“뛰라고! 뛰어! 손 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소리!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이 천둥소리 같은 목소리는 해머를 든 덩치의 것이다.

“으아아!”

고 하사는 바보 같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놓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덩치의 말을 100퍼센트 신뢰해서가 아니다. 더 버텼다가는 좀비에게 붙잡혀 끌려 들어갈 것 같았기에 이판사판으로 내린 결정이다.

털썩―!

바닥에 떨어져 내린 고 하사는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옆으로 한 바퀴 크게 굴렀다.

턱―!

그의 두 다리가 뭔가 보도블록보다 물컹한 것을 때린다. 좀비다. 머리가 터져 나간 좀비의 시체가 그의 두 다리를 받쳐 준 것이다.

“흐으으으~!”

물론 그게 시체라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고 하사는 기겁을 하고 일어나 뒤돌아 뛰었다.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그를 구해준 덩치와 K―2 사수가 달려오고 있었다.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보는 그들의 얼굴이 얼마나 반갑고 듬직해 보이는지…….

“숙여!”

비틀거리며 네 발로 기다시피 달리고 있던 고 하사에게 진우가 소리를 지른다. 그러고는 고 하사가 반응하기도 전에 조준 자세를 취했다. 고 하사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엎어졌다.

왜 시키는 것인지는 몰라도, 총 든 사람이 명령하면 그대로 해야 한다. 이 친구처럼 명사수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빠른 속도 탓에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팔꿈치의 살갗이 벗겨졌다.

타앙―

머리 위로 공기를 꿰뚫으며 지나가는 총탄의 파열음. 그리고 그 지긋지긋하던 좀비의 포효가 뚝 끊겼다.

풀썩―

좀비의 시체가 바닥을 치는 소리. 고 하사는 겁에 질린 눈동자로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 2층에서 그를 붙잡아보려던 좀비가 이마에 구멍이 뚫린 채 보도 위에 쓰러져 있다.

날카로운 유리가 박힌 채 살점이 엉망으로 잘려 나가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놈의 두 팔이 드디어 얌전해졌다.

“하아~ 하아~ 이 새끼, 어느새… 뛰어내렸었지?”

고 하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땅을 짚고 일어났다. 하늘이 핑 돈다. 어지간히도 숨차고… 힘들고, 온몸에 기운이 다 쪽 빠졌다.

“괜찮으십니까?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진우가 얼른 부축을 하며 고 하사의 이름과 계급을 살펴봤다. 임수정이 말하던 그 일행 맞다. 휘청거리던 고 하사는 바짝 얼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살려주셔서…….”

가까이에서 본 K―2 사수의 나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 보여서 고 하사는 새삼 놀랐다. 해머 든 덩치도 마찬가지다.

이제 겨우 스물한두 살이나 되었을까… 건대 쉘터의 병사들과 비슷한 또래일 것 같다.

킁킁킁킁―

시꺼멓고 커다란 개가 그의 허벅지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 이놈은… 이놈대로 또 꽤나 무시무시하다.

고 하사는 개의 호감을 사기 위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뒤로 뺐다.

“너무 늦지 않게 만나서 다행입니다, 고 하사님. 강 소위님은 어디 계십니까?”

고 하사의 상처들을 살펴보던 진우가 물었다. 고 하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진우와 보안관을 번갈아 보았다. 자신의 이름은 명찰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해도 대체 강 소위는 어떻게…….

고 하사는 진우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저… 저희를 알아요?”

“수정이 누나로부터 말씀 들었습니다. 고 하사님이 총상을 입은 강 소위님을 부축하고 도주하셨다고… 윽!”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진우가 앞으로 휘청하며 말이 끊겼다. 때린 사람은 보안관이었다.

“야! 왜 때려!”

“시끄러, 이 바보 새끼야! 군인이란 말 하지 말라더니, 자기가 티를 팍팍 내고 앉았네!”

보안관은 인상을 쓰면서 목소리를 낮춰 진우를 윽박질렀다. 보자보자 하니까 무슨 군인이었던 티를 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놈처럼 군인 말투를 쓰고, 꼬박꼬박 계급 뒤에 존칭을 붙이는 게 하도 한심해서 저절로 손이 올라갔다.

이 추세대로라면 곧 자기 관등성명이랑 군번까지도 줄줄이 댈 기세다. 아마도 군복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저 말투가 세팅되는 모양이다.

“내가 언제?”

진우도 목소리를 죽여서 항변한다.

“네가 계속 그랬거든? 어쨌든 비켜봐. 내가 이야기할게.”

뒤늦게 합류한 유빈과 삼식이 쪽으로 진우를 밀어내 버린 후에 보안관은 고 하사의 앞에 섰다.

“쟤 이야기 듣고 대충 감 잡으셨겠지만, 수정이 누나 우리랑 같이 있어요. 아저씨 이야기도 다 들었고요. 누나가 걱정 많이 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어서 다행…….”

“수정이 누나? 임수정 씨 말하는 거예요? 그분 어디 계세요? 무사합니까?”

고 하사는 보안관의 말을 끊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이제 다시는 못 볼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좀비들이 설치는 지하철 선로 안에서 결국 살아남지 못했는가 보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감사한 일인지…….

“아, 수정이 누나는 안전한 데 잘 있으니까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고요… 어차피 이따가 다 만나게 될 거예요. 그나저나 다른 한 분은 어디 계세요? 후딱후딱 구하러 갑시다. 우리도 할 일 있는데.”

보안관이 장갑 낀 손으로 해머 자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 하사는 힘없이 손을 들어 극장 건물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극장에서 골목 안쪽으로 좀 들어가야 돼요.”

전체적인 분위기나 임수정을 보호하고 있다는 말로 미루어볼 때 나쁜 놈들은 아닌 것 같다. 강 소위도 이들의 보호를 받는 편이 지금보다 훨씬 안전해질 것 같았다.

물론 마음속에 아주 조금 부끄러운 감정은 느껴졌다. 군인이 민간인들의 보호를 받는다고? 그 반대여야 정상인데…….

은신처로 가는 동안 고 하사는 이 기묘한 그룹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덩치와 K―2 사수도 눈길을 끌지만, 지금이 좀비 세상이 아니라면 키가 훌쩍 크고 존나게 잘생긴 놈과 그 옆의 모델 같은 여자애가 시선을 집중시켰을 것이다.

둘 다 어지간히 늘씬하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땀을 흘리며 걷고 있는 유빈이라는 사람은 아마도 이 특출한 그룹의 짐꾼이나 심부름꾼쯤 되는 모양이다. 쥐어터진 얼굴을 보니 여차하면 손찌검도 하는 것 같다.

“여기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갑자기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띄면 놀랄 수도 있으니까, 제가 먼저 말을 해서 알릴게요.”

고 하사는 다섯 명과 개를 뒤쪽에서 기다리게 하고 건물 앞에 서서 강 소위를 불렀다. 그가 부르는 소리에 강 소위가 5층의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뭐야? 왜 안 들어오고 거기에서 불러? 그보다 조금 전에 총소리 들었지? 어제 그 흉악한 놈들 이 근처에 또 왔나 본데? 아, 젠장… 개가 냄새 맡고 이리로 오면 어쩌지?”

강 소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흉악한 놈들’이라는 건 물론 진우와 보안관이다.

어제 고 하사가 좀비를 벌레처럼 쉽게 죽이는 이상하고 흉악한 놈들을 봤다고 알려줬던 것이다. 고 하사는 얼른 강 소위의 말을 끊었다.

“아니, 아니… 저기 그 총소리는 어떤 분들이 저 구해준 거예요. 그분들이 임수정 씨도 보호하고 있답니다.”

“그래? 정말? 그럼 그분들은 어디 계셔? 임수정 씨는?”

“그분들 여기 계세요. 놀라실까 봐 제가 먼저 알려 드린 겁니다.”

그런 후, 고 하사는 유빈 일행을 향해 나와 달라는 손짓을 했다. 덩치 큰 해머, 이상하게 개조한 K―2 사수… 어제 고 하사가 말했던 그 흉악한 놈들이다. 그 뒤로 개와 세 사람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강 소위는 이게 지금 무슨 일인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고 하사가 자신까지 위험에 빠뜨릴 인물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말하지 않고 순순히 문을 열었다.

“총도 저리 치우세요. 어차피 잘 쏘지도 못하시잖아요.”

건물 안으로 들어온 고 하사가 강 소위에게 말했다. 절룩이는 다리로 버티고 서서 차마 총을 손에서 떼지 못하는 강 소위의 심정도 이해는 하지만, 그를 구해준 은인들과 공연히 마찰을 빚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진우라는 이 K―2 사수가 마음만 먹으면 강 소위가 무장을 하고 있든 아니든 상대도 안 된다.

“…안녕하세요.”

보안관 일행들이 고 하사를 따라 들어오며 살짝 고개를 숙인다. 모두를 앉게 하고 목을 축일 음료수를 나눠 준 뒤, 고 하사는 강 소위에게 이들을 만나게 된 과정을 설명해 줬다.

“근데… 아저씨는 왜 길 건너까지 가서 좀비들한테 쫓겼어요? 여기에 먹을 것도 이렇게 많은데?”

삼식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에… 그게… 매일 정찰을 하거든요. 건대 쉘터 쪽에 무슨 변화가 없나… 우리 지나온 극장 있죠? 그 옥상에 올라가서…….”

“극장이랑 아저씨 있던 데랑 거리가 꽤 되던데요? 그리고 도로도 건너야 하고…….”

태권소녀가 물었다. 고 하사는 조금 부끄러워하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거기는… 정찰 다 마치고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구하러 나갔었어요. 이 집에는 이상하게 불을 피울 만한 게 없더라고요. 먹을 건 꽤나 갖춰져 있었는데, 그래서 라면 하나도 마음대로 못 끓여 먹으니까…….”

“허! 이렇게 갇힌 구조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열기가 꽤 오래갈 텐데? 이 동네에는 좀비들 안 돌아다녀요?”

“다닙니다. 거의 수시로 돌아다닌다고 보면 될 거예요. 이 앞으로도 가끔 지나가고…….”

“그런데 불을 피우려 했다고요? 고작 라면 때문에… 그게 뭐야? 자살하고 싶은 사람도 아니고…….”

태권소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고 하사도, 강 소위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불을 피우면 안 됩니까? 왜 그게 문제가…….”

“아, 불을 피우면 그 열기에 좀비들이 끌립니다. 군에서는 그런 사항을 전달해 주지 않는데, 대낮에 개방된 공간에서가 아니면 웬만해서는 불을 피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창가에 기대서 있던 진우가 알려줬다. 고 하사와 강 소위가 거의 동시에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그거 지금 우리 놀리는 겁니까?”

“농담 아니에요. 그나저나 이 집에 가스레인지가 없어서 그래도 지금까지 무사하셨네요. 운이 좋았어요. 보니까 담배도 꽤 피우신 것 같은데…….”

소주병 안에 들어 있는 담배꽁초들을 가리키며 유빈이 말했다. 강 소위와 고 하사는 갑자기 자신들이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담배는 그래도 조심해서 피웠다. 민구가 밤톨에게, 밤톨이 또 고 하사에게 전해준 야매 지식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불은… 불과 열기가 좀비들을 불러들인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지금까지 군에서는 뭘 해왔던 건가 싶어진다.

“그런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여기 위치 알아놨으니까, 돌아가서 수정이 누나랑 다 데리고 올까? 엄청 반가워할 텐데. 여기 넓고, 음식도 좀 있고 괜찮네. 우리 짐도 무거운 건 아예 여기에다가 두고 가지 뭐.”

보안관이 건물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강 소위는 머뭇거리다가 아까부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물었다.

“저기… 초면에 이런 걸 물어봐서 미안합니다만, 어딘가 안전하게 지낼 만한 곳이 있는 모양인데, 왜 여기까지 온 겁니까? 그리고 저분… 저분은 태도며 말투가 딱 현역 병사 같은데… 물론 옷이랑 장비만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목당한 진우는 속이 뜨끔해서 고개를 홱 돌렸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알았지? 엄청나게 예리하구나. 유빈이 뺨치는 추리력인걸?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뛴다. 얼굴이 빨갛게 된 진우 대신에 태권소녀가 슥 나섰다.

“우리는 잠실로 갈 거예요. 아저씨들이 원하면 함께 가도 되고요. 수정이 언니 말이, 아저씨들은 억울한 누명을 덮어 썼다면서요? 그리고 거기에 가면 누명을 풀어줄 똑똑한 대장인지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러면 되잖아요. 다른 사소한 문제 때문에 신경 쓰이게 하지 마세요.”

예쁘장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무뚝뚝한 말투다. 트집을 잡자면 말투도 싸가지 없다. 하지만 현재의 권력 관계에서 그녀의 말을 거역하거나, 토를 달 수는 없는 상황이다. 강 소위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의 뜻을 표현했다.

“아! 맞다! 그 이야기 하는 걸 까먹고 있었네! 그놈의 좀비 때문에 혼이 나가서…….”

누명 이야기가 나오자 기억이 되살아난 고 하사가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외쳤다. 그러고는 강 소위에게 말했다.

“오늘, 전차가 사라졌습니다! 중대장님이 아마 곧 돌아오실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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