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50화 (350/449)

5장 건대 쉘터 함락(1)

8월 15일, 아침이 밝았다.

잠실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아침 식사를 마친 백인대 15―1조부터 15―10조까지가 야구장 주차장으로 나와 이동 연습을 시작했다. 목숨이 걸린 일이니만큼 지시하는 쪽도, 지시 받는 쪽도 다들 기합이 바짝 올라 있다.

건대와 한양대를 비롯한 위성 쉘터들에서는 차출된 전차들이 출발준비를 마쳤다. 각 중대 병력에 할당되었던 최고의 화력이 사라지는 만큼 배웅하는 병사들의 얼굴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용산의 태양 그룹 본사에서는 쉐도우 실드 요원들을 태운 헬리콥터가 차례로 떠올랐다. 파멸의 마녀에게 모레까지 상납하기로 한 인원을 채워놓으려면 오늘도 바쁘게 인간 사냥을 해야 한다.

유빈과 보안관, 삼식이, 진우, 태권소녀는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지하철 선로를 통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전투 요원인 진우와 보안관, 태권소녀는 비교적 가벼운 짐을 멨고, 유빈과 삼식이는 묵직한 배낭을 짊어졌다.

그리고 도망자 콤비인 고 하사와 강 소위는 아직 잠이 완전히 달아나지 않은 눈을 비비며 아침 식사를 먹고 있었다.

“참 이상해. 밤에는 상처도 엄청 쑤시고 무서워서 빨리 아침이 되기만 바라거든. 근데 막상 아침이 되면 그렇게 눈뜨기가 싫어지네. 막 잠이 달게 느껴지고.”

강 소위가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저는 잠보다도 뜨끈한 국물 좀 먹으면서 해장하고 싶습니다. 어우, 배부른 소리 하다가 벌 받을까 봐 무섭지만, 목이 콱콱 메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고 하사가 입안에 든 음식물을 꿀꺽 삼키면서 중얼거렸다. 데우지 않은 즉석밥에 스팸, 참치… 처음에는 그저 감사하면서 먹었지만, 비슷한 식단이 며칠이나 반복되자 슬슬 물린다.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이 먹었을 장아찌 통조림 종류들이 하나같이 빈 통인 채로 굴러다니던 게 다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어디 가서 냄비하고 1회용 가스레인지 좀 찾아와봐. 그러면 저 라면들 뽀글이 해 먹을 수 있잖아.”

박스째 쌓여 있는 라면들을 보며 강 소위가 말했다. 이 집에는 이상하게도 취사도구 자체가 없다. 먹을 것을 이만큼 모아놓았으면서 그 흔한 버너조차 갖춰두지 않았다는 것이 참 별나다.

물론 생 라면을 오독오독 씹어 먹어도 그럭저럭 맛이 있지만 라면은 역시 국물이 주인공이니까. 밤에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며 소주 한 잔 기울일 때마다 얼큰한 국물 생각이 간절했다.

“에이그, 안 돼요. 가스레인지 찾으러 다니는 것도 일이지만, 물이 너무 귀해서… 저걸로 뽀글이를 해 먹을 순 없잖습니까.”

먼저 말을 꺼낸 당사자이면서도 고 하사가 고개를 저으며 가리킨 것은 각종 음료수들이다. 수분 섭취를 못해서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순수한 물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뽀글이 따위를 해먹으며 물을 낭비했다가는 나중에 콜라로 양치를 해야 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도망자 생활을 유지해야 할지 모르니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게 된다.

“다녀오겠습니다. 담배 눈치껏 피우시고, 문 잘 잠그고 계세요.”

밥을 다 먹고 난 뒤, 강 소위의 총상 부위를 소독해 준 고 하사가 나갈 준비를 한다.

강 소위로서는 참으로 면목 없는 순간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 건물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데, 고 하사는 좀비들이 돌아다니는 거리로 나가야만 하는 것이 여간 미안하지 않다.

“무리하지 마. 그리고 별거 없으면 그냥 일찍 들어오고. 이상한 놈들 만나지 않게 조심해.”

음료수와 싸구려 망원경을 가방에 챙기고 있는 고 하사에게 강 소위가 당부를 했다. 고 하사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며 문을 나섰다.

만날 쳐다보고 있어봐야 별다른 건 없지만, 그래도 건대 쉘터 쪽에 신경은 써야 한다. 그가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전차.

중대장은 전차를 타고 잠실로 갔었다. 올 때에도 전차를 타고 올 것이다. 그러니 전차가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 그것이 바로 중대장이 돌아왔다는 의미다.

“어디 보자…….”

거리로 나온 고 하사는 사방을 힐끔거렸다. 주변에는 좀비가 눈에 띄지 않는다. 고 하사는 전속력을 다해서 대로 쪽으로 뛰었다. 이렇게 한산할 때 눈치껏 빨리 이동을 해야 한다.

코너를 돈 고 하사는 멀티플렉스 극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무수히 많은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계단을 몇 층이나 더 오르내려야 하고 거리도 좀 떨어져 있지만, 은신처 가까이에 있는 10층짜리 건물보다 여기가 훨씬 더 정찰하기가 좋다.

“하아~ 하아~ 젠장, 이놈의 계단… 어째 무지하게 건강해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팽팽해진 허벅지를 두드리며 쉘터가 보이는 방향의 난간에 다가선 고 하사는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가스버너 하나 없는 집에 이런 건 또 비치되어 있었다는 게 우스웠는데, 실제로 그가 밖을 돌아다녀 보니 이만큼 요긴한 물건이 또 없다.

“에그, 너희들도 고생이 많다. 오늘도 뺑이 열심히 치는구나.”

건물 옥상에 배치되어 있는 병사들을 훑어보며 고 하사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망원경의 방향을 옮겨가면서 쉘터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배율이 낮아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맨눈으로 살피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한동안 정찰을 하던 고 하사의 얼굴이 점점 기대와 흥분으로 굳는다. 고 하사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워 물고, 다시 한 번 차근히 건대 쉘터를 눈으로 훑었다.

아무리 찾고, 또 찾아봐도 전차가 눈에 띄지 않는다.

“…드디어!”

고 하사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전차가 사라졌다. 중대장을 실어 오기 위해 잠실로 간 게 분명하다. 그럼 이제 이 길고 긴 도망자 생활도 끝이다. 이제 길어야 하루나 이틀만 지나면, 중대장이 돌아온다.

중대장이 돌아왔다는 걸 확인만 하면 돌아갈 수 있다. 현명한 문 대위라면 분명 이 더러운 누명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고, 억울하게 죽어간 이 원사의 한을 풀어줄 것이다. 그러면 자신 때문에 이런 일에 휘말려 버린 임수정의 희생도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리라.

“박 소위, 육만배… 이 개새끼들, 두고 보자. 너희들 이제 좆 됐어. 우리 목숨이 이렇게 질긴 줄 몰랐지?”

고 하사는 놈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부득 갈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동안 더 쉘터를 살피던 고 하사는 이윽고 짐을 챙겨 옥상에서 빠져나왔다. 강 소위에게도 한시바삐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다.

“음… 가스버너라…….”

극장 건물을 나선 고 하사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만 돌아가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식당들이 몇 개나 보인다. 찌개나 전골 종류를 파는 곳이라면, 당연히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구비해 놓고 장사를 했을 것이다. 물론 냄비와 식기도.

라면을 냄비에 팔팔 끓여 먹을 수 있다. 평소였다면 무슨 사치스런 소리냐고 하겠지만, 오늘은 꽤나 기분 좋게 특별한 날이다. 이제 며칠 지나지 않아서 건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축배를 들어도 괜찮다.

강 소위와 소주 한잔을 기울이면서 얼큰하게 끓인 라면 안주를 곁들이면… 그건 또 대단한 별미일 것이다. 어차피 길어야 사흘내로 쉘터에 복귀할 테니, 물이 아까워서 발발 떨지 않아도 된다.

“그래, 오늘 기분 좀 내자. 살아 있기 잘했다는 걸 자축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고 하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익숙하지 않은 지역이라 후달리기는 하지만, 얼른 가스레인지와 냄비만 챙겨서 빠져나오면 될 거라 생각했다.

“오오, 김치찌개 집! 저기라면 100퍼센트지!”

몇 군데인가 셔터에 자물쇠가 잠긴 건물을 지나쳐서 골목 안으로 들어간 고 하사는 금세 적당한 가게를 찾았다.

김치찌개…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얼큰한 국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입안에 침이 그득 고인다.

“기다려라. 나도 아주 기막히게 맛있는 라면을 끓여 먹을 거야!”

가게 안으로 들어간 고 하사는 테이블 위에 세팅되어 있던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점화시켜 봤다.

찰칵―! 화르륵~!

가스레인지에서는 금방 맹렬한 파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오, 좋아! 그래!”

고 하사는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고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살짝 열린 냉장고 문틈으로 썩은 김치와 돼지고기가 정말이지 끔찍한 냄새를 풍겨 댄다.

으읍, 고 하사는 코를 막고 냄비와 국자를 집었다.

“예비 가스도 하나 가져가야지?”

고 하사는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얹고 그 안에 예비 가스와 국자를 담아 두 손으로 소중하게 들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오늘 점심은 간만에 국물 있는 요리다! 그것도 아주 좋은 기분으로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들떠서 문을 나섰을 때, 골목 안으로 전혀 반갑지 않은 손님이 걸어 들어왔다.

두 마리의 좀비. 뿌옇게 흰 막이 씐 놈들의 눈동자가 고 하사 쪽을 돌아봤다. 그리고 곧바로 놈들의 포효가 골목 안으로 쩌렁쩌렁 울렸다.

그롸아아아!

“으아아아! 야이 씨!”

고 하사는 가스레인지와 냄비를 바닥에 내던지고 곧바로 뒤돌아 뛰었다.

쨍그렁!

냄비가 바닥에 튕기는 소리가 잠잠해지기도 전에 그롸아악― 좀비들의 울부짖음이 놈들의 발소리와 함께 점점 가까워진다.

“왜! 왜? 이런 쌍!”

고 하사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그때, 맞은편 골목에서 또 다른 좀비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세 마리나!

앞뒤가 모두 막힌 상황! 강제로 방향 전환을 할 수밖에 없어졌다. 고 하사는 마주 달려오는 좀비를 피해서 오른쪽으로 돌았다.

“아으으! 커헉!”

놈들보다 빨리 뛰려다 보니 순식간에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른다. 이대로는 몇 초 더 버틸 수 없다. 고 하사는 눈을 부릅뜨고 달아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대로와 인접한 모퉁이의 건물. 2층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게 보였다.

우당탕―

고 하사는 앞을 가로막는 입간판을 뒤쪽으로 밀어 던지고, 계단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계단 모서리에 부딪친 정강이에서 뼈끝까지 울리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런데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는 네 발로 기어서 계단을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2층의 주점 안으로 뛰어든 뒤, 묵직한 유리문을 확 밀쳐 닫았다.

쾅―

그가 유리문을 닫자마자 바로 뒤쪽에서 쫓아오던 좀비가 박치기를 한다.

“으악!”

고 하사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문을 잡고 있던 손을 놓을 뻔했다. 유리문이라서 돌진해 오는 좀비의 얼굴이 그냥 선명하게 보인다.

쿵― 쿵―

박치기 세 번 만에 녀석의 이마 피부가 벗겨지며 찐득하게 굳은 검은 피가 유리문에 묻어난다.

“야… 좀! 제발……!”

문을 꽉 밀고 있던 고 하사는 울상을 지으며 애원했다. 녀석이 전력으로 들이받을 때마다 몸 전체가 뒤로 밀릴 만큼 강력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이 유리문… 얼마나 튼튼한 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계속 박치기를 해오면 결국은 버티지 못하고 박살이 날 것이다.

“이런 씨발, 또 왔어?”

고 하사의 입에서 우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놈을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녀석의 뒤로 또 한 놈이 모습을 드러낸다.

쿵― 쿵―

두 마리가 번갈아 가며 들이받아 대니 잠시도 힘을 뺄 틈이 없다. 그나마 놈들이 머리가 나쁘기에 망정이지, 만약 이놈들이 타이밍을 맞춰 한 번에 밀쳐 댄다면…….

고 하사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계속 이렇게 좀비들과 힘 싸움을 해봐야 답이 안 나온다. 뭔가 수를 내서 여기를 고정시키고, 유리문이 박살 나기 전에 이 자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이익! 이이이… 좀… 닿아라!”

고 하사는 한쪽 옆구리에 체중을 실어 문을 버티면서 한쪽 발을 뻗어 뒤쪽의 의자를 끌어왔다.

몇 번이나 의자를 자빠뜨리고 다시 끌어오는 동안에도 좀비는 온몸으로 유리창에 달려들었다. 그 소리와 흔들림에 혼이 다 빠지는 것 같다.

“으윽! 으윽!”

유리문에 몇 번이나 어깨를 강타당하면서도 고 하사는 이를 악문 채 버텼고, 그러면서 길쭉한 고리처럼 생긴 문손잡이에 의자 다리 한쪽을 꽂아 넣는 데 성공했다.

까창―

좀비가 들이받는 힘에 금속제 의자 다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까창― 까창―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사선으로 끼워진 의자 다리가 점점 더 단단히 고정된다. 이제는 맥없이 떨어져 내릴 것 같지 않아서 고 하사는 살짝 손을 떼어봤다.

쿵―

좀비가 들이받는데도 의자다리에 의해 고정된 문은 열리지 않았다.

“됐어… 됐어!”

일단 급한 불을 끈 고 하사는 얼른 맥주 박스들을 끌어다가 유리문 아래에 받쳐 뒀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계산해 보기도 전에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하아~ 하아~”

고 하사는 숨을 몰아쉬며 창가로 달려가서 창문을 열었다. 2층이니까 뛰어내려서 다시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롸아아아아!

그러나 창문을 열자마자 또 다른 좀비 세 마리가 경고하듯 울부짖어 댄다. 놈들은 가게 아래쪽에서 배회하며 그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쿵―

뒤쪽에서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흔들리는 유리문, 아래쪽에는 아가리를 쫙 벌리고 먹잇감을 노려보고 있는 좀비들. 고 하사의 얼굴은 절망감으로 굳어 갔다.

“망했네…….”

아래로 도망갈 수 없을 바에야 문이라도 보강해야겠다 싶어진 고 하사는 유리문 앞으로 뛰어가 손에 닿는 대로 무조건 가져다 쌓았다.

쇼 케이스를 끌어와 넘어뜨리고, 그 위에 박스들을 쌓아 무게를 더하면서 고 하사는 끊임없이 후회했다. 미친… 그까짓 라면을 뭐 그렇게 먹고 싶다고… 이런 바보 같은 새끼가…….

“아주 벌을 제대로 받는구나… 음식 타박한 벌을 아주 제대로 받고 있어…….”

순간적인 바보짓 때문에 진퇴양난의 상황에 갇혀 버린 스스로를 탓하면서, 고 하사는 자신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이제… 도대체 어떻게 이 난관을 벗어날 수 있을지 상상이 안 간다. 지금은 좀비 다섯 마리지만, 이놈들이 계속 이렇게 울부짖어 대면 곧 점점 더 많은 놈들이 몰려올 것이다.

“여기서 안 보여… 젠장, 소리는 들릴까…….”

4차선 도로 건너편을 바라보던 고 하사가 고개를 저었다. 강 소위와 그가 숨은 은닉처는 극장 건물을 포함한 여러 겹의 건물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거리도 꽤나 돼서 도와달라고 소리를 쳐도 닿을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사실… 강 소위가 도와주러 온다고 해도 그가 가지고 있는 탄알 몇 발과 별로 정확하지 않은 사격 실력으로는 이 다섯 마리 쉽게 못 잡는다.

놈들이 쏴 죽여 달라고 가만히 서 있으면 모를까, 저렇게 흥분해서 길길이 날뛰고 있으면 다섯 발 중에 한 발도 꽂기 어려울 것이다.

“젠장, 꼼짝없이 갇힌 건가……. 지금까지 잘 버텼는데, 하필이면 중대장님 돌아올 때쯤 돼서… 후우~”

창밖을 살피던 고 하사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사실 갇힌다는 것도 그의 바람일 뿐이다. 당장에라도 저 유리문이 박살 나면 그는 창밖으로 나가서 건물 벽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낙담하고 있을 때, 저 멀리 지하철역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저 덩치는… 어제의…….”

급하게 망원경을 갖다 댄 고 하사가 중얼거렸다. 어제 좀비들을 때려잡던 덩치와 시꺼먼 개가 앞장을 서고, 그 뒤로 말도 안 되는 아크로배틱 사격을 선보였던 녀석이 따라온다. 한데 오늘은 몇 명이 더 있다.

‘도와달라고… 해야겠지?’

이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면 죽을 확률이 거의 100퍼센트. 저놈들이 나쁜 놈들이어서 고 하사를 해칠 확률은 반반, 50퍼센트다.

밑져야 본전이니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게 맞다. 일단 이 좀비들에게서 벗어나야 미래고 뭐고 있는 거니까.

“사… 살려줘! 살려줘요… 살려주세요!”

고 하사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큰 소리를 지르며 팔을 내휘둘렀다. 명색이 대한민국 군인이 민간인들에게 살려 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이 영 폼 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좀비 다섯 마리가 그에게는 태산처럼 높고 위험한 역경이니까.

“살려주세요! 여기! 저 좀 살려주세요!”

고 하사는 소리를 지르고 또 질렀다. 혹시라도 들리지 않을까 봐 가게 안에 있던 의자들까지 창밖으로 내던지며 난리를 피웠다. 저 덩치 일행이 중간에 다른 곳으로 가버리기라도 하면 말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

그때, 보안관 일행은 새로 아지트를 삼을 건물에 셔터가 부착되어 있는지, 없다면 어떤 방식으로 안전한 출입구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두 번째 와보는 길이니만큼 보안관과 진우는 별 긴장을 하지 않았고, 뒤쪽에서 따라오는 유빈과 삼식이, 태권소녀가 생각하기에도 그리 무서워할 만한 구석은 없어 보였다.

친구들이 이러구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멀리에서 외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다섯 명의 일행은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얼― 삼숙이가 그쪽을 보고 낮게 짖는다. 이미 지하철역 안에서부터 녀석은 한차례 그렇게 짖어 댄 적이 있다.

“너… 어제부터 건대 보고 짖은 게 아니구나.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구나…….”

진우는 새삼 감탄을 하면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른 친구들이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내기도 전에 매의 시력, 삼식이가 중얼거렸다.

“흐음, 옷 보니까 군인 아저씨 같은데? 근데 철모는 안 썼어.”

“군인? 어디? 어디에 있는데?”

“저기 보이잖아. 쭉 멀리 가서 길가에 2층 호프집 있는 데 까만색 유리창. 거기 보면 군인 아저씨가 살려 달라고 팔 흔들어. 어? 의자 집어 던진다. 아하… 골목 안쪽에 좀비들이 있나 보다. 여기에서 슬쩍 팔이 보였어.”

땡그렁― 삼식이의 말과 동시에 철제 의자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만들어내며 바닥을 구른다. 일행은 그가 일러준 건물 쪽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진짜네… 이 새끼, 사람 눈이 아니란 말이지… 여기에서 맨눈으로 저 소매 접은 것만 보고 군복이란 걸 알았다는 게 말이 되나?”

조준경으로 고 하사의 위치와 상황을 파악한 진우가 삼식이를 괴물 바라보듯 한다.

“군인… 혹시 그 사람 아냐? 수정이 누나 일행! 근데 왜 혼자지?”

보안관이 걸음을 서두르며 중얼거렸다. 유빈은 근심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군복을 입었다고 하고, 여기 위치가 군자역이니까 수정이 누나가 헤어진 일행일 가능성도 높긴 한데… 혹시 속임수나 뭐 그런 거면 어떡하지? 구하러 가까이 가면 숨어 있던 한패들이 확 달려들거나…….”

그럴듯하다고 생각해서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하다. 미친놈들이 은근히 많으니까. 삼식이가 싱거운 웃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하, 말도 안 돼. 하루에 한 명도 안 지나다니는 곳에서 뭐하러 저런 짓을 해? 우리가 여기에 올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

듣고 보니 이놈 말이 더 맞는 것 같아서 진우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매복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랬다면 삼식이든, 삼숙이든 인간을 초월하는 감각을 가진 두 짐승이 뭔가 낌새를 눈치챘을 것이다.

“야, 여기에서 계속 시간 보낼 거야? 이러다가 저 사람 죽는다.”

네 친구의 만담을 듣고 있던 태권소녀가 답답해한다. 진우는 K―2를 잡고 사격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그래, 얼른 가서 구해주자. 뭐… 설사 매복을 한 한패가 있더라도 사실 별 무서울 건 없고…….”

몇 걸음을 더 걷던 진우가 문득 멈춰 서서 친구들을 돌아봤다.

“야, 근데 너희… 나 군인이라는 거 말하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괜히 끌려가.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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