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47화 (347/449)

4장 에너자이저(3)

그날, 고 하사가 목격했던 건 말 그대로 어메이징했다.

건대 쪽의 동향을 살펴보려고 계단을 오르던 그는 창문을 통해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두 명의 남자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도로 위를 달려오는 것이다. 게다가 커다란 개까지 한 마리 데리고…….

“…뭐지, 저 새끼들? 뒈지려고 환장했나?”

고 하사는 멍한 얼굴로 창문에 붙어 서서 도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앞서 달리는 놈은 해머를 들고 있는데, 덩치가 무슨… 미국 프로레슬링 선수를 보는 것 같다.

그 뒤에는 보통 신체 사이즈의 남자가 따라오는데, 녀석이 들고 있는 소총이 굉장히 특이하다. 신형 K―2인 것 같기는 한데, 가만히 보니 엄청나게 큰 조준경이 달려 있다. 군 생활 하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합이다. 게다가 탄창이 주렁주렁 달린 검은 전술조끼…….

뒤죽박죽인 장비만 보면 어디 이라크나 남미의 전장에서 막 워프를 해온 놈 같다.

두 녀석은 빠르게 고 하사가 숨어 있는 건물의 주변까지 달려온다. 주변에 수많은 골목길이 있고 상점들이 있는데, 별로 경계를 하는 눈치도 없다. 혹시 뒤쪽에 한패거리가 더 많이 있는가 싶어서 지하철 쪽을 돌아봤지만,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저렇게 부주의한 새끼들이 용케 지금까지 살아남았네……. 어디에서 도망친 놈들인가?”

고 하사는 숨을 죽인 채 두 녀석을 지켜봤다. 그런데 그때, 그의 시선 위쪽에 또 하나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좀비들이다! 골목 안에서 내달려오는 10여 마리의 좀비들…….

두 녀석은 모르고 있다.

“야! 너희, 거기…….”

고 하사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려 했다. 하지만 그의 경고보다 더 빠르게 좀비들은 두 녀석을 덮쳤다. 총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으아! 못 보겠다!”

고 하사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좀비들이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물어뜯고 해체하는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만 생각했다.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믿기지 않는 일의 연속이었다. 맨 처음 그를 놀라게 한 건 두 놈의 침착함이었다. 좀비들이… 잔뜩 몰려들었는데 두 놈은 별로 두려워하지도, 달아나려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커다란 덩치의 녀석이 해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저! 저거… 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고 하사의 입에서는 계속 외마디 신음만 터져 나왔다. 덩치 녀석이 뭘 했는지도 정확하게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덩치가 뛰어드는 좀비들을 피하며 크게 한 번씩 몸을 돌렸고, 그때마다 좀비들이 픽픽 나가떨어졌다는 사실이다. 마치 놈의 주위에서만 시간이 절반 정도의 속도로 흐르는 것 같았다.

“허!”

고 하사는 감탄하며 창문에 더 바짝 붙어 섰다. 믿어지지 않는다. 좀비들을 피해가면서 일격으로 때려죽인다고?

하지만 아직 놀라기에는 일렀다. 더 황당한 상황이 그의 눈앞에 연이어 펼쳐졌다. 이번엔 이상한 개조 K―2를 들고 있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빠르게 총을 겨누며 자동차 지붕 위로 뛰어 올라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덩치 큰 녀석이 해머로 좀비를 밀어 친다. 그리고…, 탕― 탕탕탕탕탕―

황당할 정도의 속사였다. 고 하사에게 단발로 세팅된 K―2를 쥐어 주고 그냥 아무렇게나 빨리 쏘기만 하라고 해도 저 정도의 속도로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할 것이다. K―2라는 총기가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성능까지 끌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놈은 그저 단순히 빨리만 쏘는 게 아니었다. 순식간에 대여섯 마리의 좀비가 풀썩풀썩 쓰러져 버렸다. 그중 단 한 마리도 다시 일어서는 놈이 없다.

“뭐야… 저 새끼들, 대체… 진짜…….”

고 하사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바보 같은 말들만 중얼거렸다. 두 놈이… 10초도 안 되어서 좀비 열 마리를 잡았다. 그것도… 바로 지근거리에서 일어난 습격을……. 게다가 한 놈은 무기가 해머다.

인류가… 진화하기라도 한 것일까?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변종 슈퍼 키드들일까?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본, 저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욱 황당한 것은 좀비를 다 잡고 난 뒤에 두 녀석이 서로 성질을 부리며 말싸움을 해 대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왜 싸우지? 살아남았으면 서로 끌어안고 기뻐해도 시원치 않을 텐데…….

그렇게 멍해져서 창문에 매달려 있던 고 하사는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뺐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해머 든 덩치 큰 놈이 갑자기 홱 고개를 돌려 자신이 숨은 곳을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착각이 아니다. 시선의 각도가 거의 정확하다.

“아니, 아니…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저기서 여기가 거리가 얼만데… 그리고 역광이라 창문 안쪽이 들여다보일 일도 없는데…….”

고 하사는 가슴을 꽉 누르고 소리 죽여 숨을 내쉬었다. 녀석들이 뭘 하고 있는지 내다봐야 하는데, 도무지 그럴 용기가 나지를 않는다.

괴물 같은 놈들…….

대체 뭐하는 놈들인지, 어떤 인성을 가졌는지 전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적으로 돌렸을 때 무시무시할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소리를 지르거나 해서 말을 걸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착한 사람이라면 물론 좋겠지만…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다짜고짜 패 죽이려고 한다거나, 부하로 삼으려고 한다거나 하면… 나는 저항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거네…….’

고 하사는 입을 꾹 다물고 일단 숨어 있기로 했다. 이미 생존에 필요한 집도, 음식도 있으니 녀석들에게 바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반면에 놈들이 악당일 경우에는 감당이 안 된다. 그때, 또 총소리가 들려왔다.

투투투투투두― 투투투―

이번에는 아주 작고 희미한 총소리였다. 고 하사에게는 어느새 익숙해진 건대 쉘터의 총소리다.

“아까 이 앞으로 지나간 좀비들이 건대에 닿았나 보군…….”

고 하사는 이마의 식은땀을 훔쳐 내고 아주 살짝 고개만 내밀어 창밖을 살폈다. 두 명의 슈퍼 전사는 자신들의 개를 데리고 건너편의 고층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보안관과 진우도 건대에서 울려 퍼진 총소리를 들었다.

“어때? 이 정도면 사실 거리 가늠이 잘 안 되는 정도 아닌가? 우리야 바로 저 쪽에 군인들이 잔뜩 있다는 걸 아니까 방향이나 이런 걸 짐작하는 거지만, 쟤네는 아니잖아.”

작게 울리는 총성에 귀를 기울이던 보안관이 물었다. 진우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음, 그럴 거 같아. 그리고 생각해 보면 총소리가 나는 게 그렇게 이상할 일도 아니야. 그 까만 군복 입은 새끼들도 막 돌아다니고, 군인이라고 해서 주변에 어떤 작전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알지는 못할 테니까. 그러니까 의외로 신경 안 쓸 수도 있어.”

“그딴 식으로 네가 총 쏜 거 정당화하려고 하지 마, 이 새끼야. 나는 아까 우리 위치 들통날까 봐 간이 코딱지만 해졌다고.”

“지랄, 나는 너 좀비에 물리는 줄 알고 심장이 쪼그라드는 줄 알았다.”

티격태격 말싸움을 하면서도 두 친구는 삼숙이를 앞세워 계속 계단을 뛰어올랐다. 빨리 옥상 위로 올라가서 주변의 상황도, 왜 총소리가 난 건지도 살펴보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이 건물, 굽이굽이 계단이 도무지 끝이 나지 않을 만큼 높다.

“으아, 젠장! 뭐야! 왜 이렇게 높아!”

일부러 높은 건물을 골라서 뛰어올랐으면서도 10층이 넘어가자 저절로 욕설이 나온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젖혔을 때는 보안관도, 진우도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14층이나 올라왔어. 어이구, 다리야.”

보안관이 팽팽해진 허벅지를 두드리며 앓는 소리를 한다.

투투투투―

아직도 총소리는 끊이지 않고 울려 대고 있다. 진우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면서 허무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야… 그런데 우리 왜 이렇게 죽자 사자 전속력으로 뛰어 올라온 거냐? 그냥 걷다가 중간에 좀 쉬었어도 되잖아…….”

그 말에 보안관도 꽤나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자기 딴에는 진우와 둘이서 낯선 길을 꽤나 잘 개척하는 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냥 아드레날린이 넘쳐 나는 두 말썽쟁이가 신이 나서 아무렇게나 설쳐 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너… 그 대가리로 여태까지 잘도 생존해서 여기까지 왔네. 젠장, 나는 원래 이렇게 생각 없이 움직이는 사람 아닌데… 네 옆에 있으니까 덩달아 바보가 되는 것 같다, 야.”

건대 방향 난간에 기대앉으면서 보안관이 투덜거렸다. 물론 진우도 받아쳤다.

“너는 진짜 앞으로 삼식이한테 바보라고 하지 마라. 내가 보니까 진짜 바보는 너다. 나는 네가 도시에서 살아남으면서 뭔가 조금이라도 요령이 생겼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구만, 크흐흐.”

삼식이가 거론되자 삼숙이는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얼― 하며 대답한다. 진우는 녀석을 진정시키며 총구를 건대 쪽으로 겨냥했다. 조준경의 배율을 조절하자 뿌옇던 경치가 조금씩 선명해진다.

“크아~ 시원하다. 뭐가 좀 보이냐?”

옆에 기대앉아서 물을 마시고 있던 보안관이 물었다. 진우는 여전히 조준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자신이 보는 걸 설명해 줬다.

“그… 예전에 좀비들이 갑자기 돌아왔었다고 했잖아. 그게 왜 그랬었는지 그 답은 찾은 것 같다.”

“진짜? 뭔데?”

“이다음 역 사거리에 존나게 큰 벽이 있어. 딱 봐도 만든 지 며칠 안 된 것 같은 벽이야. 어휴~ 이 길 전체랑 그 양옆의 블록까지 다 막았는데… 높이도 꽤 되고, 그 앞에 도로를 다 폭파시켜 버렸나 봐. 길이 푹 파였고, 아주 엉망이야. 우와~ 저걸 쌓고 부수고 했으려면… 진짜 불쌍한 군인 애들 다 죽어났겠다.”

진우는 총구를 아주 천천히 사방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보안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좀비들 역류하던 날이 그 벽이 완성되던 날이었나 보네……. 근데 총소리는 또 뭐야?”

“총소리는… 좀비들이 벽 가까이 오기만 하면 근처 건물 옥상에서 아주 정신없이 쏴대느라 나는 거야. 지금 저 앞에 엄청 많이 몰려 있거든. 근데 이놈들은 페인트 안 묻은 좀비들이야.”

“벽을 쌓아놨다면서 총을 왜 그렇게 열심히 쏴?”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아마… 벽이 무너지거나 망가질까 봐 무서워하는 것 같아.”

크크큭, 진우는 진솔하게 답변했지만, 그 말이 너무 웃겨서 보안관은 실소를 터뜨렸다.

“아니, 진짜 저것들… 바보 새끼들 아니야? 벽이 망가질까 봐 무서워서 쏴댈 것 같았으면 아예 안 세우는 거랑 뭐가 달라. 크크킄.”

“큭, 그러네. 하여간 눈에 보이는 건 그래. 너도 볼래?”

진우가 조준경에서 눈을 떼고 총 멜빵을 벗으려 했다. 커다란 손바닥에 물을 받아서 삼숙이에게 주고 있던 보안관은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니, 네가 보고 알려주니까 그걸로 됐어. 나는 그거 영 잘 안 맞더라. 동전만 한 데다가 눈을 붙이고 사방을 훑고 있으면 자꾸 멀미가 나는 것 같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경치가 휙휙 바뀌잖아. 어휴~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모양이야. 야, 물 좀 마시고 나서 봐. 너만 안 마셨어.”

진우는 보안관이 넘겨준 물병을 기울였다. 건대 쉘터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도 알아냈고, 조금 전 사거리를 지난 좀비들이 어디로 몰려갔는지도 파악한 터라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잠시 숨을 좀 돌리고 친구들이 기다리는 코스트코로 돌아가면 된다.

“야, 근데 생각해 보니까… 이 건물, 중간 기지로 어떨까? 길가에 있어서 전망 빵빵하겠다. 지하철역에서 가깝겠다. 먹을 것 채우고 필요한 거 다 가져다 놔도 자리 널널하게 남을 것 같고… 여기를 베이스캠프 삼아서 하루 이틀 보낸 다음에 잠실로 왔다 갔다 하면 거리도 몇 정거장 안 되잖아.”

불어오는 바람으로 땀을 식히던 진우가 팔꿈치로 난간을 두들기면서 입을 열었다.

“음, 다 좋은데… 총소리 나면 곤란하지 않을까? 만약에 좀비들이 엄청 많이 몰려와서 포위하면, 그때는 총을 써야 할 텐데… 우리 지금 여기 올라온 것도 좀비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려고…….”

중얼중얼 이야기를 하던 보안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멈춘다. 진우도 녀석이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뭔가 잊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좀비들!”

두 친구는 얼른 몸을 돌려 건대 방향의 도로를 내려다보았다.

젠장, 좀비들이 그곳으로 몰려갔었으니, 다시 되돌아 물러 나오기도 할 텐데, 그 생각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으아, 이런 젠장… 바로 이 근처까지 다 와 있잖아.”

이미 육안으로 선두가 보이는 좀비 무리들을 보며 보안관이 중얼거렸다. 진우도 난감한 표정으로 놈들과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거리는 불과 250도 안 된다. 놈들의 이동 속도를 감안해 보면, 맨 앞줄의 놈들이 이곳까지 도달하는데 채 1분이나 걸릴까 말까다.

반면, 그들이 앉아 있는 옥상부터 1층까지는 총 14층, 뛰어 내려가야 할 계단이… 어마무시하다. 4초에 한 층씩을 내려가더라도 지하철역까지 도달하기 전에 좀비들에게 발각될 것이다.

“앉아! 보안관, 움직이지 마. 저것들 지나간 다음에 나가야 돼.”

진우는 팔을 뻗어 보안관의 어깨를 누르며 속삭였다.

“그건 알아! 근데… 야이 씨! 네 소름 어떻게 된 거야? 좀비들이 저렇게 바글바글하는데 왜 안 끼치는데?”

보안관도 목소리를 죽여 아우성을 친다.

“아니, 내가 무슨 삼숙이인 줄 알아? 300미터 전부터 좀비 기척을 느낄 수 있게? 그리고 바람이 반대 방향에서 불어왔잖아. 좀비 냄새가 완전히 묻혔다고!”

진우도 목소리를 죽인 채 이유를 설명했다. 보안관이 안타까워하며한숨을 내쉰다.

높이가 있으니 갑자기 총을 난사해 대거나 불을 지르는 미친 짓만 하지 않으면, 좀비들이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이 건물 안으로 몰려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놈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게 속 터진다.

규모도 어지간히 커서 놈들이 시야 밖으로 빠져나가려면 적어도 앞으로 꼬박 한 시간은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유빈이 진짜 지랄 엄청 하겠다. 지금 돌아가도 이미 별로 빨리 가는 게 아닌데. 젠장, 근데 너랑 둘이 나와서 돌아다니다 보니까 유빈이 그 걱정쟁이 새끼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새삼 느낀다.”

보안관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진우도 그 의견에 100퍼센트 동감하는 바였다.

“나 있지, 서울까지 오는 동안 하루도 편하게 지낸 날이 없었거든. 젠장, 나는 그게 내가 힘든 경로를 통과하느라 어쩔 수 없이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까 계속해서 너무 무모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런 거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진우는 자책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녀석의 자아비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보안관이 부끄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아… 실은 나도 겁 없이 깝치다가 삼식이 새끼랑 이런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적 있었어. 젠장, 그래도 이건 양반이지. 그때는 좀비들이 딱 건물을 에워싸고 움직일 생각을 안 해서 아주 죽는 줄 알았다.”

“근데 어떻게 도망쳤어?”

“도망친 게 아니라 유빈이가 제니랑 같이 구하러 왔더라고. 근데 웃기다고 해야 하나? 민망했던 게 뭐냐면, 그날 삼식이랑 내가 나왔던 게 유빈이 그놈이 심하게 다쳐서 약을 구해주려다가 그런 거였거든.”

큭큭큭, 미친놈들. 진짜 치료 끝내주게 잘해줬네……. 진우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웃는다. 보안관도 웃었다.

두 사람은 결국 거의 한 시간 후에야 문제의 14층짜리 건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저리로 가는구나…….”

좀비들이 사라진 방향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보안관이 말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어쨌든 이 주변에 페인트 좀비들 말고도 꽤나 많은 수의 좀비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걸 확인한 게 중요했다.

두 사람은 다시 코스트코로 돌아가기 위해 빠르게 지하철 계단을 내려갔다.

보안관과 진우가 역 안으로 사라진 후에도 꽤나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고 하사는 주춤거리며 극장에서 빠져나왔다.

“완전히 가버렸나? 설마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지하철 역 입구를 노려보며 고 하사가 중얼거렸다. 만약 한 번만 더 놈들이 이 근처에서 기웃거린다면, 그때는 힘들더라도 강 소위와 함께 도피처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인간이 있다지만, 그가 오늘 본 것 같은 종류의 인간들이 또 있을까 싶다. 그만큼이나 그들이 보여준 압도적인 힘의 차이는 무시무시한 수준의 것이었다.

“젠장, 어지간히 쫄았었네. 하여간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종류의 놈들이었어.”

고 하사는 목덜미를 한 번 쓸어서 땀을 닦아내고, 강 소위가 숨어있는 골목 안쪽의 건물을 향해 뛰었다.

강 소위에게 오늘 그가 보았던 걸 이야기해 주고 싶기는 한데, 도저히 믿어줄 것 같지는 않다.

좀비들을 힘으로 압도하는 콤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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