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46화 (346/449)

4장 에너자이저(2)

보안관의 예상은 맞았다. 진우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캄캄한 지하철 터널이고 뭐고 무섭지가 않은 것처럼 군다. 삼숙이가 짖는지만을 가끔씩 살펴보면서 플래시로 전면을 비춰 성큼성큼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 겁이라는 건 삼척에 놔두고 온 녀석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저 멀리서 뭔가 검은 그림자가 휙― 지나가면 진우는 곧바로 기둥 위에 몸을 숨긴 채 플래시를 비추며 묻는다.

“어이! 누구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검은 그림자를 마주쳤지만, 그 질문에 대답을 하는 놈은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 그러면 진우는 곧바로 총구를 들어 겨냥을 한다.

휙―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진우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앙―

보통 한 발, 그림자가 어둠 속에 묻혀 있으면 두 발. 그러면 털썩, 그림자는 쓰러진다. 불필요한 행동도 없고, 머뭇거림도 없고, 빗나가는 일도 없다. 그야말로 기계다.

그림자가 커다란 뭉텅이여도 진우의 행동은 별로 다르지 않다. 세 발, 네 발 만에 포효하던 그림자들은 고꾸라지고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물론 가까이 가보면 이마에 구멍이 뚫린 좀비 떼들이 죽어 있다.

그런 일을 반복하며 순식간에 지하철역 세 개를 지났다. 이렇게 빨리 달려도 되나 싶어서 보안관은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며칠 전, 유빈, 임수정과 같이 지하철 내부를 지나갈 때, 얼마나 긴장하고 땀을 흘렸었는지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시간은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거리는 두 배를 넘게 와 있다. 게다가 이미 한 번 선로 위로 올라가 맑은 공기도 쐬고 오기도 했다.

물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보안관은 좀비를 단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왔을 만큼 편했다. 진우의 사격 솜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자면 좀비들의 수가 예전보다 조금 적었다.

이 선로 안의 좀비들도 그 느릿한 움직임으로 어디론가 돌아다니는 게 분명하다. 참… 쉬는 법이 없는, 부지런한 새끼들이다.

“지금 탄창 안에 몇 발 있지? 아까 여섯 발 더 쐈고 지금 네 발 쐈으니까… 열한 발 남은 건가…….”

진우는 가끔 소리 내서 자신의 생각을 웅얼거렸다.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중곡역… 그리고 다음 역은 군자역.”

중곡역에 도착했을 때, 선로에 그려진 안내표지를 보며 진우가 중얼거렸다. 삼숙이는 또 다리를 척 걸치고 오줌을 갈겨둔다.

한 놈은 좀비 죽이는 기계, 한 놈은 영역 표시하는 기계. 거침없이 질주하는 두 콤비 사이에서 걱정은 보안관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런데 사실 보안관 역시 걱정을 잘 하는 성격은 아니다.

“한 정거장 더 가보자.”

보안관이 진우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아직 가보지 않은 영역에 대한 호기심이 보안관의 모험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군자역에 뭐가 있는데?”

진우가 물었다.

“그 부근에 건대 쉘터가 있어. 수정이 누나한테서 들은 이야기로는, 군자까지 도망 왔는데도 계속 쫓아와서 자기 혼자 유인했다고 그랬거든. 그때, 우리가 그 일행들 찾아주겠다고 와봤었는데, 중간에 군인들이 있어서 군자역을 미처 못 살펴보고 돌아갔지. 그 생각이 나서.”

“가보는 건 가보는 거지만, 그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계속 그 자리에 있을까? 그때가 벌써 언젠데…….”

“뭐,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건대 근처 한 번 구경하고 가는 셈 치지, 뭐. 군인 새끼들이 뭔 짓을 해놨기에 갑자기 좀비 새끼들이 역류하고 생지랄을 쳐 댔던 건지도 궁금하니까.”

보안관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진우에게 병을 넘겼다. 정찰을 하며 친구와 물을 나눠 마시는 기분… 지금까지는 도통 느껴보지 못했던 그 기분이 각별해서 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보안관의 넓은 가슴을 또 탁 쳤다.

“삼숙아, 가자!”

진우는 삼숙이의 목덜미를 한 번 쓸어주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플래시를 비추고, 움직이는 검은 물체를 보면 한 번 경고를 하고, 답이 없으면 사격.

그렇게 전진의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나니, 금방 다음 역에 닿았다.

진우와 보안관은 승강장 위에 올라서서 노선도에 플래시를 비춰봤다. 다음 역이 어린이대공원. 거기서부터는 쉘터 부근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제부터는 웬만하면 총 쏘지 말아봐. 괜히 군인들이 쫓아오거나 하면 귀찮아질 테니까.”

보안관이 말했다.

응? 사격 허가를 박탈당한 진우가 놀라서 묻는다.

“총소리 안 내면 좀비는 어떻게 하려고…….”

“웬만하면 이걸로 내가 잡을게. 뭐, 한 너덧 마리 정도는 별문제 없으니까. 그보다 많으면 어쩔 수 없이 네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겠지만.”

보안관이 해머를 빙글 돌려 어깨에 얹으며 말했다.

괜찮을까? 위험할 것 같은데…….

진우는 마음속으로 걱정했다. 늘 총으로만 싸워왔던 그로서는 너덧 마리의 좀비들을 육박전으로 싸워 이긴다는 게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전에 산속에서 좀비와 맨몸으로 싸웠을 때에는 1:1인데도 꽤나 아슬아슬했었으니까.

“괜찮아,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너 오기 전까지는 이 해머가 제일 센 무기였어. 믿어봐. 그보다 네 그 감이라는 건 지금 어떠냐? 크흐흐, 이 위쪽에 귀기가 서려 있냐? 좀비 많이 돌아다니는 느낌이야?”

진우가 계속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자 보안관이 실없이 웃으며 물었다.

진우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돌아서서 냄새를 맡고 귀를 기울여 본다. 그다지 대규모의 좀비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괜찮을 것 같아. 가보자.”

두 사람과 한 마리의 개는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지하철역 내부는 거센 태풍이라도 휩쓸고 간 것처럼 어수선했고, 이따금씩 눈에 띄는 시체는 심하게 부패해 있었다.

바람이 한 번씩 불어올 때마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비닐이나 종이 포장지가 날리며 안 그래도 황량한 경치를 더욱 스산하게 만들었다.

“후우~ 이제야 좀 숨 쉬기가 편하구나. 그건 그렇고… 진짜 귀신 나오겠네.”

해머를 대리석 바닥에 질질 끌고 걸어가며 보안관이 말했다. 그가 찾고 있는 것은 핏자국이다.

임수정의 말에 의하면 두 군인 중 한 명이 총을 맞고 피를 심하게 흘렸었다고 했으니, 분명 흔적이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젠장, 핏자국이 너무 많잖아……. 여기도 피, 저기도 피. 어휴~ 온통 피투성이!”

보안관은 끌탕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비바람에 지워지지 않은 채 말라붙어 있던 피들이 너무 많아서 눈앞을 어지럽혔다. 아마도 대부분 한 달 전에 좀비 사태가 처음 일어나던 날 흐른 피들이겠지만, 그래도 혼란을 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는 뭐 또 이리 많은지… 한동안 바닥을 훑고 다니던 보안관은 결국 핏자국 추적을 포기해야 했다.

“나가보자.”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계단 아래 서서 흘끔 위쪽을 쳐다본 보안관이 말했다. 삼숙이가 가장 앞서고, 보안관, 진우의 순서로 계단을 올랐다. 진우는 혹시나 싶어서 무전을 보내봤다. 치이익― 하는 소리만 울릴 뿐, 터지지 않는다.

“후후, 유빈이 새끼 걱정하고 있겠다. 아까 지하철 내려간다고 하니까 잔소리 엄청 하던데.”

진우가 웃자 보안관이 뒤를 돌아본다.

“걔는 총 쏘는 놈이랑 같이 다녀본 적이 없으니까 걱정도 되겠지. 근데 이렇게 간단히 올 수 있을 줄 알았으면 아예 그냥 애들도 다 끌고 와버릴걸.”

“에이, 안 돼. 지금 나는 보안관 네 실력을 믿으니까 쭉쭉 가는 거야. 지킬 사람들이 있으면 이렇게 속도 못 내. 일단 오늘은 사전 답사 한다고 생각하자.”

진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구해 달라는 직원들까지도 끌고 나서야 했던 삼척에서의 마지막 순간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인원이 늘어날 때마다 그 위험성이 급격하게 커진다는 것을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온다! 보안관, 앞에!”

계단 끝에 이르렀을 때, 진우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길거리에서 세 마리의 좀비가 포효하며 뛰어오고 있다. 진우의 손가락이 자꾸 방아쇠울 주변에서 머문다. 반면에 보안관은 별 감정의 변화 없이 말했다.

“오케이.”

보안관은 오히려 앞으로 몇 발짝 뛰어나가며 해머를 크게 내휘둘렀다.

콰직―

첫 번째 좀비의 관자놀이와 턱이 박살 나면서 왼쪽으로 처박히는 동안, 보안관은 한 번 더 회전을 하며 두 번째 좀비의 갈비뼈를 후려쳐 뒤쪽으로 날려 보냈다. 그사이 세 번째 좀비가 아가리를 쫙 벌리고 날아든다.

“보안관! 괜찮아? 피해!”

진우의 입에서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커다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보안관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해머 끝으로 좀비를 밀쳐 놓고, 놈이 중심을 다시 잡고 일어나려는 순간, 정수리를 내려쳤다.

쩡―

으드득―

세 번째 좀비의 머리뼈와 목뼈 부러지는 소리가 동시에 지하철 계단을 타고 퍼지며 작은 메아리를 만든다. 맥없이 쓰러지려는 놈을 옆으로 차 밀어놓은 보안관은, 갈비뼈가 살을 뚫고 나온 두 번째 좀비에게 다가갔다.

콰직―!

비틀거리며 일어나려던 두 번째 좀비가 뒤통수를 가격당하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아무렇게나 휘저어 대던 녀석의 팔다리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뭐, 이런…….”

진우는 눈을 깜빡이며 침을 꿀떡 삼켰다. 어렴풋이 상상은 했지만, 보안관이 좀비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스피드와 스텝이다.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힘이 센 좀비들이 세 마리나 한꺼번에 몰려들었는데, 그걸 단 몇 초 만에… 그것도 저 무거운 해머를 막대풍선처럼 휘두르면서…….

계단 위였기에 여차하면 발을 내딛다가 쓰러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보안관 이놈은 대체…….

“아, 그놈 참. 갑자기 소리를 그렇게 빽 지르냐? 놀랐잖아.”

좀비들이 모두 죽은 것을 확인하고 난 보안관이 장갑 낀 손으로 귀를 만지면서 뒤를 돌아본다. 진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이 씨, 아끼니까 아슬아슬해 보여서 그렇지! 좀비 세 마리가 침을 뚝뚝 휘날리면서 몸을 날리는 건 안 놀라운데, 뒤에서 조심하라고 소리 지르는 게 그렇게 놀랍단 말이냐? 하여간에 간도 큰 놈…….

어쨌든 보안관은 순식간에 좀비 세 마리를 때려잡았고, 두 친구와 삼숙이는 거리로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 해머 안 무거워?”

진우가 물었다. 보안관은 해머를 휘둘러 보면서 대답했다.

“아아… 이거? 처음에는 꽤 헤맸어. 이걸로 말뚝이나 박고 벽이나 허물었지, 언제 한 번이라도 인정사정없이 움직이는 걸 후려 패봤어야지. 근데 몇 번 하다 보니까 요령이 붙더라고. 이게 좀 동작이 커서 빨리빨리 못 때리는 단점은 있는데, 그래도 한 방만 잘 들어가면 끝이 나니까.”

아니, 지금도 충분히 빨리 때리는 것 같은데……. 진우는 보안관의 팔뚝과 해머를 번갈아 보면서 생각했다.

얼―!

그때, 길게 쪽 뻗은 넓은 도로 너머를 향해 삼숙이가 낮게 짖었다. 진우와 보안관은 녀석이 짖어대는 방향을 노려봤다. 움직이는 건 없다.

“이쪽이 건대 쉘터 방향인가?”

진우가 묻자 보안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사이 삼숙이는 또 한 번 낮게 짖었다. 진우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녀석의 등을 쓸어주었다.

“응, 네 말이 맞아. 저기 멀리 가면 총 든 군인들 많이 있어. 잘 알아들었어.”

녀석과 눈을 마주치고 경고 잘 받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자, 삼숙이는 그제야 자세를 풀고 짖는 것을 멈췄다.

“근데 저놈, 진짜로 화약 냄새 맡고 짖는 거냐? 그러면 완전 영물이잖아. 건대 쉘터가 어린이대공원까지 확장해 놓았다고 해도 여기에서 몇 백 미터 이상 떨어져 있을 텐데…….”

신기하다는 눈으로 삼숙이를 쳐다보던 보안관이 코를 킁킁거려 본다. 물론 그렇게 해봐야 아무 것도 모르겠다. 사방에 온통 썩는 냄새만 넘쳐 날 뿐이다.

“에… 있지, 우리 좀 위험한 데 서 있는 것 같은데?”

보안관이 코를 벌름거리며 개 흉내를 내고 있는 동안 주변을 관찰하던 진우가 말했다. 보안관은 무슨 말인가 싶어 진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젠장… 그러네.”

보안관도 금방 동의를 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8차선 도로와 4차선 도로가 만나는 사거리의 한 귀퉁이. 이 근방에서는 가장 넓게 도로가 트인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거 봐.”

진우가 멈춰 서 있는 자동차의 보닛을 가리켰다. 먼지가 뽀얗게 덮여 있는 위에 손자국, 발자국이 몇 개나 찍혀 있다. 그 너머의 자동차도, 그 뒤에 서 있는 차량도 모두 마찬가지다.

“이리로 밟고 돌아다니나 봐.”

보안관도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보이는 모든 자동차들의 여기저기에 좀비가 지났던 흔적이 묻어 있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방향도 잘 모를 정도로 어지럽다.

“너, 그… 좀비 디텍터는 뭐래? 무슨 신호 잡았어? 팔 좀 확인해 봐, 소름 끼쳤나.”

보안관이 진우에게 물었다. 진우는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 근처에 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지. 근데 말이야, 소름은 좀 끼쳤어. 딱히 뭘 느껴서가 아니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주변이 좀비들로 덮여 있었다는 걸 생각하니까……. 저 손자국 보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진우가 가리킨 것은 누가 봐도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 판단할 만한 손자국이었다. 아직 그 위에 먼지가 앉지 않았을 만큼 새거다.

“방금 지나갔다 이거지? 이 부근에…….”

보안관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동차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고는 눈 위에 손으로 그늘을 만들고 먼 곳을 노려보았다.

안 보인다. 그저 뿌옇기만 하다. 그 옆으로 온 진우도 총을 겨누고 조준경을 통해 사방을 살핀다.

“어딘가 코너를 돌아갔나 봐. 여기에서는 안 보여.”

조준경에서 눈을 뗀 진우가 말했다. 거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어느 코너를 돌아서 어디로 가고 있느냐 하는 거였다.

“다시 이쪽으로 오려나?”

보안관이 물었다. 두렵기도 하지만, 호기심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어차피 잠실로 가려면 이 부근을 지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건대 쉘터 전에 맑은 공기를 쐬려면 이 역에서 바깥으로 한 번 나와야 한다.

그러니 이 지역에 좀비들이 언제 어디를 지나는지 알게 된다면 나중에 움직일 때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있을 때 오면 좆 되지. 엄청 규모가 큰 놈들인 것 같은데… 높은 데로 올라가 보자.”

진우가 제안을 했다. 두 사람은 여전히 대로의 남쪽을 노려보고 있던 삼숙이를 데리고 건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우측에 높다랗게 솟아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과 그 맞은편의 빌딩이 이 부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둘 중에 어디로 갈 건데?”

도로 중앙에서 내달리고 있는 보안관을 향해 진우가 물었다. 보안관은 극장 맞은편의 빌딩을 가리킨다.

“창문 많이 나 있는 데로 가자! 깜깜한 거 지긋지긋해!”

두 사람이 방향을 트는 걸 보고 삼숙이도 신이 나서 내달린다. 그때였다.

그롸아아아아―

골목 안쪽에서 들려오는 포효! 보안관과 진우는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코를 박고 멈춰 서 있는 자동차들을 뛰어넘으며 좀비들이 달려온다.

“와라!”

보안관이 해머를 치켜세우며 기합처럼 외쳤다. 달려드는 좀비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서 어느새 여섯 마리가 되어버렸다. 진우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이걸 다 때려죽인다고? 사방이 자동차들이라서 해머 움직임에도 지장이 있을 텐데…….

“여섯 마리야! 알아? 보안관?”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대면서 진우가 소리쳐 물었다. 보안관은 리듬이라도 타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미 스윙에 들어갔다.

콰작―

얼굴을 정통으로 강타당한 좀비가 자동차 앞 유리창에 처박혔다. 바로 뒤에 뛰어오던 놈의 관자놀이에 해머가 꽂혔다. 그런 후, 보안관은 붕 뛰어올라서 세 번째 놈의 머리를 부서져라 내리쳤다.

크엑―

무릎이 반대로 꺾인 좀비가 허물어지려 할 때, 뒤쪽에서 또 새로운 좀비들이 속속 튀어나온다. 또 네 마리. 아까의 여섯 마리에 이놈들을 더하면 총 열 마리나 된다. 진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옆쪽의 자동차 위로 뛰어 올라갔다.

“물러나! 보안관!”

“아니! 쏘지…….”

뭐라고 만류를 하려던 보안관은 뒷말을 삼켜 버리며 가까이 접근한 좀비를 해머로 밀어 쳤다. 그러고는 서너 발짝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탕―

해머에 맞아 밀려난 좀비의 옆머리에 진우의 총알이 꽂힌다. 반대편으로 뚫고 나간 총알은 놈의 뇌수와 뇌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좀비의 시체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진우는 곧바로 총구를 돌리며 연속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탕, 타앙―

자동차 사이로 뛰어오던 여섯 마리의 좀비가 순식간에 쓰러져 버렸다.

타아아아아아앙~ 주변의 건물들 사이로 커다란 메아리가 퍼지며 울린다.

“아이, 진짜! 이 새끼! 총소리 들리니까 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잖아!”

보안관이 한숨을 몰아쉬며 인상을 쓴다. 진우도 지지 않고 미간을 찌푸린 채 받아쳤다.

“너덧 마리까지는 네가 맡는다고 했지! 새끼야! 이게 지금 몇 마리인 줄이나 알고 그래? 열 마리야, 열 마리!”

“합치면 열 마리인 건 맞는데! 이미 내가 세 마리 죽이고 또 하나 죽이려던 참이었잖아! 그러면 남은 건 다시 여섯이지! 이 멍청아!”

“여섯인 시점에서 이미 너덧 마리는 넘어선 거야! 이 밥통아!”

그렇게 서로 애들처럼 투닥대며 핏대를 올리던 중에 보안관이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고는 길 건너편의 극장 건물을 노려보았다.

“왜 그래?”

진우도 덩달아 긴장하면서 물었다. 잠시 극장 건물을 노려보고 있던 보안관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 별건 아니고, 저기에서 뭔가 움직이는 기척이랄까, 시선 같은 게 느껴졌었는데… 아닌가 봐. 아무것도 없네.”

풋, 보안관의 말에 진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야, 너 저 멀리 떨어진 등 뒤의 건물에서 기척을 느꼈다고? 그런 새끼가 나한테 귀기를 느끼느니 뭐니 하고 놀렸어?”

“됐어.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고. 그런 것보다 총소리나 걱정해. 젠장, 건대까지 들렸으면 안 되는데…….”

보안관도 조금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두 친구가 그렇게 다시 웃고 있을 때, 극장 건물 7층의 창가에서는 벽에 모습을 숨긴 한 사람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저 새끼들… 대체 뭐지? 내가 여기서 엿보는 것도 들킨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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