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에너자이저(1)
진우와 보안관, 그리고 삼숙이가 코스트코 밖으로 나서자마자 주변을 배회하던 좀비들이 고개를 홱 돌리고 포효하기 시작했다. 몇 번을 들어도 언제나 짜증스럽고 소름 끼치는 소리다.
“총 쏜다. 소리 듣고 놀라지 마.”
위에 있는 친구들이 놀랄까 봐 무전기에 대고 알린 진우는, 보안관의 앞으로 나서며 K―2를 들었다.
탕― 탕, 탕탕, 탕― 탕, 타앙―
맹렬한 기세로 뛰어오던 좀비들은 모두 머리가 박살 난 채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진우는 쉬지 않고 총구를 돌려가며 방아쇠를 당겼다.
놈들을 쓰러뜨리면서 그는 자신이 왜 지난 이틀 동안 그리도 불편했는지 조금은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발밑의 도로에 이런 놈들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걸 가만히 방치한 채 밥을 먹고 웃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영 낯설었던 것이다.
“으아, 장난 아니네. 하하하, 네가 오고 난 다음부터 갑자기 내가 엄청 약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도합 스무 마리가 넘는 놈들이 순식간에 전멸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안관이 혀를 내둘렀다.
길거리 여기저기에 퍼진 채 뛰어오던 좀비들이 눈으로 쫓기도 빠를 만큼의 속도로 픽픽 자빠지는 것은 신기한 광경이었다. 해머를 꽉 쥐고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던 게 바보처럼 느껴진다.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 맨손으로 좀비 때려잡고 살아남은 괴물 놈이. 나는 저놈들이랑 근접전은 거의 안 해봤어. 또 하고 싶지도 않고……. 저 새끼들 이빨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면 정말 똥꼬를 넘어서 내장 속까지 다 움찔움찔해지더라고. 사실… 총은, 총알 떨어지면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진우는 보안관의 두텁고 단단한 가슴을 툭 쳤다. 보안관이 해머를 들어 보인다.
“맨손은 아니었어. 주로 이걸로 때려죽였지.”
“그래, 그러니까 대단하다는 거야.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걸 몇 번 휘두르다가 제 풀에 지쳐서 쓰러질걸? 어이, 삼식아… 아니, 삼숙아, 너무 앞서가지 마. 너 여기 길 잘 모르잖아.”
신이 나서 뛰어가는 삼숙이는 진우의 부름에도 멈추지 않고 고개만 홱 돌렸다가 다시 달린다. 여기저기에 오줌을 묻히고 싶어서 매우 흥분해 있다.
하긴… 계속 기운차게 돌아다니던 녀석이 건물 옥상 위에서만 머물렀으니 어지간히 답답하기도 했을 거다.
진우는 보안관과 함께 도로를 따라 걷는 동안 눈에 띄는 좀비들마다 머리를 쏘아 쓰러뜨려 가며 이동했다. 한참을 더 걸어가 삼거리를 만났을 때, 보안관이 중얼거렸다.
“저런 코너 가까워지면 영 찜찜해. 며칠 전에 한 번 죽을 뻔한 적 있어서.”
“죽을 뻔했다고? 무슨 일이었기에…….”
“어후~ 젠장, 갑자기 수십 마리가 휙 튀어나오니까 어떻게 할 도리가 없더라고. 코너에 몰렸지. 조금 전 지나온 그 주유소 기억나? 거기 근처였는데…….”
보안관은 뒤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상한 빨간 주사약이 있었거든. 몸에 대고 찌르면 10분인가 동안 심장이 멎는, 뭐 그런 거였는데… 급해서 그걸 찔렀어. 그러면 좀비들이 건드리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왜, 이 새끼들은 죽은 사람 시체는 거들떠도 안 보잖아.”
“그런 주사가 있어? 아니… 심장이 그렇게 오래 멈춰 있어도 다시 살아나? 죽지 않나?”
진우가 놀라서 묻자 보안관이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안 죽더라고. 뭐… 물론 실제로는 아파서 뒈지는 줄 알기는 했는데… 그것도 제니가 구해주지 않았으면 결국 죽었을지도 모르겠네. 하여간 그런 주사가 있어. 태양 그룹 보안 업체 애들이 쓰는 거라고 하던데… 아, 맞다! 그저께 한강에서 만났던 그 검은 군복 입은 새끼들도 어쩌면 그거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주머니나 한 번 뒤져 볼걸. 끄응~ 아쉬워해야 하는 건가?”
보안관은 생각의 흐름을 따라 계속 중얼거렸다.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쓰지 말고 살아남으면 되지. 아파서 죽을 뻔했다면서?”
“음, 물론 나한테도 그거 또 한 번 맞을래, 물어보면 제발 용서해 달라고 빌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좀비가 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린다는 듯 보안관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 바로 직후에 제니와 엄청난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다.
“진우야, 이런 말 하는 건 좀 웃긴데… 너 괜찮아?”
코너를 돌아 다음 면목역 쪽으로 걸어가던 중에 장갑 낀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보안관이 물었다.
“응? 뭐가?”
“그냥… 태양 그룹 놈들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너 그날 쏴 죽인 게 일곱 명이었잖아. 그거 생각하면 기분이 어떠냐? 나는 그날 한 명을 죽였는데도 혼자 가만히 있을 때 그때 기억이 나면, 영 마음이 복잡하달까… 그렇더라고.”
보안관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머뭇거리며 말했다. 진우는 녀석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너 사람 죽인 거 그날이 처음이었어?”
“…음, 그래.”
보안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에게는 오히려 그게 더 놀라웠다. 미친놈들이 사방에서 판을 치는 세상에서 지금껏 아무도 죽이지 않은 채 생존할 수 있었다니……. 게다가 지금까지 친구들끼리만 격리되어 왔던 것도 아니고, 꽤나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과 한 무리를 이루기까지 했는데.
“좀비들 때문에 난리 나고 며칠 안 지났을 때, 유빈이가 두 명을 죽였다고 했었거든.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어. 왜냐면 그전에 이미 좀비들을 꽤나 많이 죽였었으니까… 어차피 생긴 건 좀비나 사람이나 별 차이 없잖아. 그런데 막상 내가… 내 손으로 살아 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고 나니까 알겠더라고. 이거는 뭔가, 좀비를 죽이는 것하고는 다른 일이구나 하는 걸…….”
보안관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진우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우리들 중에 제일 먼저 사람을 죽여야 했던 건 유빈이구나… 그것도 두 명이나… 어휴, 그놈 용케 이기고 살아남았네. 그래, 보안관. 너는 기분이 어떤데?”
“그게… 젠장… 막 떨리거나 무섭거나 하지가 않아……. 내 손으로 휘두른 수조 유리 조각이 그놈의 목에 박혀서 죽었는데… 그 후려칠 때의 감촉이 고스란히 기억이 나는데도… 엄청나게 충격적이거나 하지도 않고, 나는 악몽조차도 안 꾸는 거야.”
잠시 말을 멈춘 보안관은 크게 한숨을 쉬고 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후우~ 그래서 그게 기분이 이상해. 솔직히 좀 무섭기도 하고. 사람을 죽였는데… 이렇게 아무런 감정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도 되는 걸까 하는 것 때문에 말이야. 내가 원래 좀 성질이 더럽잖아. 그래서 실은 내 천성이 사이코 킬러였는데,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던 걸까 싶은 걱정도 되고…….”
보안관은 납득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슨 말인지 진우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 역시 처음 살인을 했을 때, 그리 괴롭지 않았었다.
엄청나게 큰 죄의식이 밀려올 것을 각오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달았다. 그 당시에 자신을 지배하던 감정은 하 중위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 이미 죽은 놈들에 대한 분노였지, 죄책감이 아니었다.
“보안관, 너는 직접 손에 그 감촉이 남아 있다니까 이야기가 좀 다를 수 있겠지만… 나도 너랑 크게 다르지 않았어. 그래서 좀 무섭기도 했고. 내가 좀비를 너무 많이 죽이는 동안 정상인으로서의 감정을 다 잃은 건 아닌가 싶어서…….”
진우가 입을 열었다. 보안관이 도중에 말을 끊으며 물었다.
“너도? 너도 그랬다고? 너는 몇 명이나…….”
“몇 명? 그런 게 알고 싶어?”
반문을 한 진우는 손가락을 꼽아보기 시작했다. 하 중위를 죽인 일당 네 놈, 그리고 또 억지로 끌려가 참여한 전투에서 일단 그 저격수와…….
그의 손가락이 헤아리는 숫자가 열다섯을 넘어서도 계속 증가하자, 보안관이 얼른 그 손을 덮어버렸다.
“아니다, 됐다. 그만 세라. 그거 알아서 뭐한다고… 내가 바보 같은 소리 했네. 미안하다.”
그런 후, 보안관은 한 손으로 진우의 머리를 꽉 안았다. 녀석이 대체 얼마나 지옥 같은 여행을 해왔던 것인지, 그 가장 은밀한 치부를 엿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예전에는 단짝 친구 넷 중에서 제일 비위도 약한 녀석이었는데…….
“크, 이 새끼… 너 지금 나 불쌍해하는 거지? 아니야, 괜찮아. 나 괜찮다고.”
진우는 보안관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보안관의 파워 허그에서 겨우 풀려난 진우는 평온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었다.
“미친놈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면서 혼자 착한 놈 흉내 내는 건 그만두기로 했어. 조금만 더 일찍 그런 각오를 했으면 한 사람 더 살 수 있었는데. 뭐, 물론 내가 미친놈이 돼서 아무나 다 죽이고 다니겠다는 말은 아니고.”
두 사람은 인적이 사라진 도로 위를 걸어서 면목역까지 도착했다. 임수정을 만났던 날 지나면서 보았던 풍경과 그리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 죽은 자들의 도시답게 거리는 조용했고, 어디를 가더라도 늘 부패한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온다.
창고 안의 음식들, 사람들의 시체, 막혀 있는 하수구… 무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 한 달을 보내며 전부 다 썩었다.
“유빈이는 이쯤이나 다음 역쯤에 새로운 임시 기지를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던데… 괜찮아 보이는 데가 어디 있으려나.”
사거리에 선 진우와 보안관은 주변을 돌아보며 후보지를 물색했다. 총인원이 아홉이나 되는데다, 삼숙이까지 합쳐 식구가 많다 보니 임시 기지의 요건도 꽤나 까다로워졌다. 일단 너무 좁은 건물은 안 된다.
남녀를 나눠 동성끼리 한데 모여 잔다고 해도 큰 방이 두 개는 있어야 하고, 화장실에, 음식과 필요한 물품을 쌓아둘 공간도 마련되어야 한다.
길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좀비들이 낌새를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어느 정도는 거리가 확보된 곳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퇴로의 확보다. 임시 기지니까 오래 살 수 없는 곳이고, 그러니 당연히 빠져나올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 모든 조건들을 갖춘 채 보안이 유지될 수 있는 구조의 건물은…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낯선 방문자를 반기며 달려드는 좀비들 때문에 도무지 집중이 안 됐다. 고민을 좀 할라치면 한두 마리씩 울부짖으면서 뛰어오는 놈들이 있고, 그놈들의 이마에 총구멍을 뚫어주고 나면 처음부터 계산을 새로 해야 했다.
“으아…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네. 여기는 이거 때문에 안 되고, 저기는 그것 때문에 걸리고… 이런 거 정하는 일은 역시 유빈이가 와야 하는가 보다.”
한참 길거리를 노려보고 있던 진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보안관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녀석을 돌아본다.
“야, 넌 강원도에서 여기까지 혼자 왔다면서… 그쯤 되면 서바이벌 전문가잖아? 딱 보면 ‘음, 여기가 안전하군’ 하고 답이 나올 거 같은데.”
“아니… 나는 그… 굳이 그런 명칭을 붙이자면 산악지형 생존 전문가랄지… 주로 산속으로 헤매고 다녔었거든. 능선을 끼고 어느 방향에서 잠을 자야 하는지, 어떤 나무 위에 기어 올라가면 편하고 안전하게 몇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그런 거만 빠삭해. 이런 건물들이랑은 안 친해. 그리고 나는 내 몸뚱이 하나만 챙겼었잖아. 열 명 정도가 무더기로 움직이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지.”
진우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그의 다리 옆에 바짝 붙어 선 삼숙이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열심히 낯선 동네의 냄새를 맡고 있다.
녀석이 낮게 짖지 않는 것을 보면 적어도 이 부근에 화약 냄새 나는 인간은 없는 모양이다.
“이쪽이 코스트코 방향이지? 그럼 이 반대쪽은 뭐가 있나… 여기로 한 번 가볼까? 전에도 이리로 가려다가 수정이 누나를 만나는 바람에 그냥 돌아갔었는데…….”
동일로 방향이라고 적힌 도로 표지판을 보며 보안관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경치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3층이나 4층짜리 나지막한 건물들이 양쪽으로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도로를 100여 미터 정도 걸어왔을 때, 진우가 보안관의 어깨를 잡았다.
“그만 가자.”
“응? 왜?”
“저 너머는 느낌이 안 좋다. 어째 슬슬 소름도 돋고, 냄새도 영…….”
진우는 그들의 위치에서 120여 미터 더 떨어져 있는 아파트 단지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더 가지 말자고 하면서 녀석이 나열하는 이유들이 영 우스워서 보안관은 맥없이 웃었다.
“그게… 뭐야? 군인식 농담이냐? 느낌이 안 좋고, 소름이 돋고, 냄새가 난다고? 흐으음~ 냄새는… 음, 뭐, 구리기는 한데, 어딜 가나 이 정도 썩은 내는 나잖아.”
“그렇게 물으면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나는 좀비 새끼들이랑 가까워지면 이렇게 소름이 돋더라고. 보여?”
진우는 자신의 팔뚝을 내보이며 말했다.
호오~!
보안관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후텁지근한 날씨에 뙤약볕 아래에 서 있으면서 소름이라니… 갑자기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새끼… 너 이상한 재주가 있었네? 막 귀기가 느껴지고 그러냐?”
보안관은 농담 반, 진담 반의 태도로 진우와, 녀석이 위험하다고 말한 전방의 아파트 단지들을 번갈아 보았다.
“미친놈… 귀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크흐.”
쑥스러워하며 웃은 진우는 멈춰 서 있는 자동차 지붕 위로 올라가서 조준경으로 전방을 살폈다. 배율을 조정하고 총구를 좌우로 훑던 진우가 보안관을 향해 올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봐. 저기 지나가고 있다.”
정말? 보안관은 진우가 건네주는 총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잡고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댔다. 사차선 도로 위를 빼곡하게 메운 좀비들이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꽤나 많은 규모여서 처음에는 코스트코 앞을 지나는 놈들이 그쪽으로 경유한 건가 싶었지만, 금세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좀비 떼 중에는 페인트칠 된 놈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도, 단 한 놈도 색깔을 덮어쓴 놈을 찾지 못했다. 그들이 몰랐던 다른 좀비 무리다.
“야, 줄자맨.”
조준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보안관이 진우를 불렀다.
“저게 지금 여기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 거냐?”
“음, 210미터 정도?”
진우는 고민도 안 하고 곧바로 대답했다. 이놈이 보여준 실력만 아니라면 허언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재주다.
“뭐지… 별로 안 좋네. 우리가 있는 데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저렇게 많은 놈들이 떼로 몰려다니고 있었다니…….”
진우에게 총을 넘겨주면서 보안관은 턱을 쓸었다. 저놈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으니 놈들이 어떤 경로로 이동하고 있는지 몰라 그게 불안한 것이다.
“그래, 사방에 좀비들 천지구만. 이걸로 테라를 빨리 구해 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은 건가? 너나 나나 그 항체인지 뭔지가 있으면 그래도 한결 덜 불안하겠지.”
진우는 보안관의 말에 동의하면서 차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유빈이 챙겨 준 지도에 볼펜으로 놈들이 돌아다니는 구역과 시간을 표시해 뒀다.
당분간 오른쪽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걸로 해야겠다. 그리고 면목역도 임시 기지 후보에서 일단 제외다.
“한 정거장 더 가볼까?”
진우가 보안관에게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보안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 정거장 정도야 별문제 없기는 한데, 어째 오늘 너랑 계속 돌아다닐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에이, 설마! 나도 그건 별로일세. 근처에 좀비 떼들 몰려다니고 있어서 위험하니까 이번에는 지하로 가보자. 보안관, 너 플래시 챙겨 왔지?”
자신의 전술 조끼에서 플래시를 꺼내 드는 진우의 표정은 꽤나 상기되어 있다. 위험하니까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자…가 아니고, 위험하니까 조금 덜 위험한 경로로 계속 가자…라는 논리다.
녀석이 어딘가 조금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보안관은 그걸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진우, 이 녀석은 그간 엄청난 일들을 겪어오면서… 간이 커졌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위험과 안전을 구분하는 기준선이 일반인보다 훨씬 더 위험 쪽에 치우쳐 버렸다고 해야 할지…….
하여간 아슬아슬한 데까지 가보는 걸 주저하지 않는 성격으로 변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위험을 판단하는 능력도, 그걸 회피하는 기술도 꽤나 발달했다.
그 정도의 모험이 녀석에게는 당연한 일이 되었을지 몰라도,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간이 떨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늘 여기까지 도보로 오는 것만 해도 유빈이 그 걱정 많은 녀석이었다면 분명 빠른 이동 수단, 달아날 때의 경로 따위를 꼼꼼하게 따지고 또 따졌을 것이다.
“내가 예전에 눈에 거슬리는 새끼들마다 싸움 걸고 다닐 때, 너희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진우와 함께 컴컴한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서 보안관이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서움의 기준이 남다른 친구 놈과 함께 다닌다는 게 꽤나 힘들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됐다.
하지만 그는 오늘 기꺼이 이 위험 버전의 진우와 함께 모험을 해주고 싶었다. 믿을 만한 동료와 함께 낯선 길을 걷는 걸 녀석이 얼마나 그리워했을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삼숙아, 화약 냄새 나면 곧바로 알려줘야 해.”
승강장 아래로 내려가기 전, 진우는 삼숙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부탁을 했다.
얼― 삼숙이는 다 알아들었다는 듯 짧게 대꾸했다. 사실 보안관은 이 개를 신뢰해도 되는 건지에 대해 아직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믿어도 되나? 제 이름이 삼식이에서 삼숙이로 변경되었다는 것도 잘 모르는 녀석인데…….
“내가 앞장설게. 이 조끼 안에 방탄 패드가 들어 있으니까.”
자신의 검은색 전술 조끼를 통통 두드리며 진우가 말했다. 총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걸 이야기하면서도 녀석의 표정에는 별로 두려움이 없다. 그 정도의 위험은 당연한 일일 만큼 숫한 아수라장을 헤쳐 온 때문인가 보다.
“어휴… 숨쉬기가 어렵다는 게 정말이네. 공기 진짜 답답하다.”
삼숙이를 앞세워 선로로 내려선 진우가 가볍게 기침을 하며 말했다. 좌우로 플래시를 흔들자, 불빛이 닿는 곳마다 검은 먼지가 자욱하게 흩날린다.
“쿨럭! 산소마스크 같은 걸 머릿수만큼 구해야겠어. 소방서에 가면 구할 수 있을까? 지하철역에도 그런 게 비치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미 걷기 시작한 진우가 보안관을 돌아보며 말했다. 보안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고 어두운 터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보안관보다 더 담이 세진 그의 친구는 그 끝까지 내달릴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