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44화 (344/449)

3장 판도라(6)

“젠장,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군.”

한차례 굵은 땀을 잔뜩 쏟아낸 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민구는 고개를 저었다. 잠시 진전을 보이는가 싶었는데, 그 지점에서 도무지 조금도 더 나아가지를 못한다.

왼손으로 칼을 휘두른다는 것만으로도 제 실력의 반이나 나올까 싶은데, 거기에 반대쪽 옆구리까지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니까 영 마뜩치가 않다.

“아무래도 너무 굼떠… 계속하다 보면 좀 나아지려나.”

민구는 얼굴의 땀을 훔쳐 내며 중얼거렸다. 지금 같아서는 기습 정도나 통할까, 날아오는 공격을 피한 뒤 되받아치기는 힘들 것이다. 그때, 젠킨스가 그를 불렀다.

“헬로우! 헬로우!”

“하, 이놈. 오늘따라 어지간히 귀찮게 하는군. 또 뭐냐?”

민구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데로 옮겨갈까도 싶은데, 이 부근만큼 한적한 곳이 또 없다. 젠킨스의 낯선 체취 덕에 이쪽 가까이로는 사람들이 잘 안 온다.

“유어 무브먼트!”

민구의 시선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 젠킨스는 손가락으로 민구를 가리키고 나서, 조금 전 그가 했던 행동의 흉내를 냈다.

골반 위에 올린 손으로 옷을 당겨서 옆구리를 굽히고, 다시 손바닥으로 골반을 밀며 굽혔던 옆구리를 펴고…….

“내가 움직이는 꼴도 남들 눈에 이렇게 우스워 보였으려나…….”

젠킨스가 비대한 몸을 뒤뚱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민구는 혀를 찼다. 어지간히 꼴불견이다.

헤엑, 헤엑, 두어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느라 벌써 지친 젠킨스가 숨을 몰아쉬고 나서 다시 한 번 천천히 민구의 흉내를 낸다.

“원 스텝!”

먼저 그는 오른손을 과장되게 쫙 펴면서 말했다. 그러고는 그 손을 골반에 붙이고 천천히 밀면서 또 말했다.

“투 스텝!”

그리고 원래의 자세로 돌아와 똑바로 섰다. 그 뒤에 다시 손으로 옷을 움켜쥐고 말했다.

“원 스텝!”

또 머리를 두드린 젠킨스는 바지를 당기는 힘으로 천천히 몸을 옆으로 숙이면서 왼손을 들어 올리고 손가락 두 개를 편다.

“투 스텝! 언더스탠드? 올 웨이즈 투 스텝! 원 앤드 투! 원 앤드 투! 씨? 슬로우.”

젠킨스는 천천히 옆구리를 접었다 폈다 하며 떠들어 댄다. 민구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는 원, 투밖에 못 알아듣겠지만, 녀석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이해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한 가지 동작을 하는 데 두 번에 걸쳐서 움직이고 있으니 느려진다는 거잖아. 흐음, 재미있군. 운동 같은 건 하나도 모르는 녀석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아서 민구는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자신의 행동을 되짚어봤다.

중심을 잡는 오른팔이 두 단계로 운동을 하는 것 때문에 확실히 다른 신체의 움직임에도 미묘한 지연을 주었던 것 같다.

“굿! 굿!”

민구가 이해했다는 것을 알아챈 젠킨스는 기쁜 얼굴로 한 걸음 다가와 대안 동작을 선보인다.

먼저 그는 박스를 길게 접어 넝마 같은 양복 웃옷의 깃에 끼워 넣었다. 그러고는 오른팔을 굽혀 어깨높이로 삐죽 튀어나온 박스 끝을 꽉 잡았다.

“씨? 원 스텝 업, 원 스텝 다운, 퀵.”

젠킨스는 박스 끝을 손잡이처럼 잡고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으로 몸의 중심을 잡는 시범을 보여준다.

확실히… 손을 폈다 오므렸다 하는 것보다는 효율이 높아 보인다.

‘허허, 별일이군. 이놈, 이상한 데에서 영민한데?’

민구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녀석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지금 놈의 것은 손잡이를 그저 걸쳐 둔 것뿐이라 움직일 때마다 덜렁거리지만, 어깨와 목에 고정시킬 수 있는 단단한 소재라면 시도해 볼 만한 것 같다.

“네 말이 맞아. 옆구리 잡고 뭘 해보겠다는 게 바보짓이었어.”

민구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젠킨스의 말을 긍정한다는 표시를 해 보였다. 자신의 충고가 먹혀들었다는 걸 안 젠킨스도 만족한 듯 웃어 보인다.

“그래… 이 충고는 얼마짜리냐? 자, 원하는 만큼 가져가.”

민구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열고 젠킨스를 향해 건넸다. 뭐든지 값을 매기는 인간이 이 정도 큰일을 했으니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은 비싸도 상관없다고도 생각했다. 그의 주머니 속에 든 싸구려 칼 한 자루를 위해 치른 값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젠킨스의 반응은 그의 예상 밖이었다.

“노우, 노우, 노우! 네버!”

젠킨스는 두 손을 내저으며 거래가 아님을 진지하고도 완강하게 표시한다. 민구는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에도 난데없이 과자를 준다고 하더니, 지금은 갑 채로 내민 담배까지도 마다한다. 이놈 인생의 기준에 무슨 대단한 변화라도 일어난 건가?

“프렌드! 프렌드!”

젠킨스는 가식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과 민구를 가리키고 친구라는 말을 반복했다.

훗, 민구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친구 같은 소리…….

하지만 젠킨스는 필사적이다.

“유, 테라, 굿 프렌드. 미, 테라? 굿 프렌드! 위? 굿 프렌드!”

영어랄 것도 없는 외마디 소리들이고, 손짓까지 더해져서 못 알아듣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가장 어려운 단어는 발음이 좀 다르게 들린 테라의 이름 정도였는데, 젠킨스는 친절하게 전광판 옆의 광고사진까지 가리켜 줬다.

민구는 젠킨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확실히 이 녀석이 테라와 함께 걸어 다니는 걸 몇 번이나 목격하기는 했다. 하지만 결코 친구처럼 다정한 관계로 보이지는 않았다.

“백번을 양보해서 네가 그 계집애 친구라는 건 인정한다고 치자. 그런데 내가 왜 걔 친구냐?”

젠킨스는 민구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민구도 자신의 의사를 영어로 표현하겠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 속에서 마주 보기만 했다.

“오케이!”

위 아더 월드 전략이 먹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젠킨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그럼 이젠 이 사내가 지금 가장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것, 그것을 자신이 줄 수 있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더 세지고 싶지? 그렇지?”

젠킨스는 흉터사내를 바라보며 두 팔의 이두근에 힘을 주는 포즈를 선보였다. 흉터사내는 여전히 무표정하다. 어쩌면 귀찮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젠킨스는 마음이 급해졌다. 겨우 호감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당신의 근육이 손상된 곳은 여기야. 이만큼이 날아갔지!”

그는 칫솔의 뒷면으로 회벽에 그림을 그리며 소리를 질렀다. 인체의 몸통을, 그리고 외사근이 떨어져 나간 것을 표시했다. 그런 후, 흉터사내의 눈치를 살폈다. 아직까지는 듣고 있다.

“이건 정상적으로 자라나지 않아! 너무 많이 한꺼번에 손상되었고, 그 표면조차 변형되었거든! 봉합을 하려는 시도조차가 없어서 그래!”

젠킨스는 칫솔로 옆구리 손상부위에 X표를 그렸다. 그러고는 자신을 가리켰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회복시킬 수 있어! 이런 식이야! 당신의 옆구리에 남아 있는 작은 근세포를 추출해서 그걸 배양하는 거야! 그리고 그걸 배양액에서 성장시켜! 그다음에 이식을 하는 거지! 부작용도 없고, 오래 걸리지도 않아!”

회벽에는 작은 살 조각을 떼어내는 그림, 비커에 들어 있는 커진 살 조각, 옆구리 근육을 다시 채우는 그림 등이 더해졌다. 그때까지도 흉터사내는 무표정하게 보고만 있다.

“그래, 마크! 당신도 이 마크 정도는 알잖아. 당신도 약을 사 먹어봤을 테니까.”

젠킨스는 JL이라고 쓰고 그 트레이드마크를 간략하게 그렸다. 그러고는 그 글자와 마크를 둘러싸도록 피라미드의 정점을 그린 뒤, 자신을 가리키며 어딘가로 날아가는 시늉을 했다.

“다 알아들었지? 알아들었다고 해줘! 이 정도면… 유치원생도 알 수 있는 수준이니까! 자, 이제 나에게 데려가 달라고 부탁해!”

언어와 표정, 몸짓, 그림을 총동원한 열정적인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나서 젠킨스는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그러고는 흉터사내의 눈치를 살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민구가 입을 열었다.

“…이놈 봐라? 그냥 먹보라고만 생각했더니, 위험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물론 민구도 젠킨스의 설명이랄까 주장을 대충은 알아들었다. 괴발개발 그려놓은 회사 마크도 알아봤고.

이 먹보는 외국 제약 회사의 높은 신분… 아마 사장인 것 같은데, 지금 자신을 낫게 해줄 수 있다고 유혹중이다.

그 모든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민구는 생각했다. 자신이 보기에는 이미 글러 먹은 옆구리지만, 요즘은 과학이라는 게 워낙 발달했으니까 뭐가 가능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이 녀석의 회사? 물론 세상이 망한 뒤에도 태양 그룹 같은 놈들이 신이 나서 설쳐 대는 걸 보니 이놈의 회사도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한데 이놈의 이야기에는… 이유가 없다. 왜? 대체 왜 나를 치료해주겠다는 건지에 대해 놈은 언급 자체를 안 했다. 붕대 한 번 감아주는 데도 담배 한 개비를 받아가던 녀석이 갑자기 그 복잡한 일들을 그냥 해주고 싶다고?

그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놈이 오늘 처음으로 테라를 들먹였던 것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뭔가 기분이 더 나빠진다.

“왜 그렇게 해주겠다는 거야? 응? 와이? 이놈아!”

민구는 영어까지 써가면서 젠킨스의 얼굴에 바짝 얼굴을 붙이고 위압적으로 물었다. 젠킨스는 뒤로 물러나며 미리 준비해 뒀던 변명을 했다.

“…보디가드.”

“뭐?”

“유, 마이 보디가드. 테이크 미 투 JL. JL 이즈 파 어웨이.”

젠킨스는 손짓과 함께 외마디 소리들을 늘어놓으며 민구를 바라보았다.

젠장, 영어만 통했어도 이런 야만적인 인간 하나 혼을 빼놓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텐데…….

“보디가드라고? 큭크크, 예전 같았으면 몰라도, 이렇게 똑바로 서지도 못하는 놈에게 네 뒤치다꺼리를 해달라고 하는 거냐?”

어처구니없는 답을 들은 민구는 쓰게 웃었다. 조금 전 놈의 손짓을 보니 이 녀석의 회사가 여기에서 꽤 떨어진 데 있고, 놈은 어떤 이유에선가 여기에 고립되어 있는 모양이다. 한참을 킥킥거리던 민구가 냉정한 표정으로 돌아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이니까 한 번 웃어줬다. 또 개소리 하면 두드려 맞을 줄 알아.”

언어는 전달되지 않았지만, 어조와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젠킨스는 자신의 제안이 거부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민구는 물러났다.

“테라…….”

민구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걸어가려 할 때, 뒤쪽에서 젠킨스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로서는 마지막 수를 던져 본 것이다. 민구는 눈살을 찌푸리며 놈을 돌아보았다.

“테라, 베리 앀. 블리딩 히어.”

민구와 눈이 마주치자 젠킨스는 발가락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놈의 말은 다 필요 없다. 테라의 발가락에 아직도 붕대가 감겨져 있다는 것은 민구도 아는 사실이다.

“서티 데이즈 블리딩, 블러드 노 스탑. 언유주얼.”

젠킨스는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는 것을 세 번이나 반복하고,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는 손짓을 한다.

‘뭐라는 거야… 30… 30일? 그렇게나 오래됐나?’

민구는 새삼 놀라 기억을 더듬어봤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발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걸 봤던 게… 아마도 3주 전이다.

화장실에서 트레이닝복 입은 각다귀 새끼들로부터 그녀를 구해내 왔던 날. 그런데 그전에는 어땠지?

“오빠, 테라 저년 있지, 발가락이 뭉텅 잘려 나갔다? 가까이에서 보면 얼마나 징그러운지 모르지?”

이 쉘터에서 처음 초희를 만났을 때, 그녀가 지껄이던 소리가 기억난다.

그럼 그때 다친 상처가 아직도 안 아물었다고? 그게 말이 되나? 민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일이라 그냥 지나쳤었는데…….

30일을 아물지 않는 상처라고? 그런 건 없다. 일부러 벌리고 후벼 파지 않는 한, 인간의 살이라는 건 결국 붙게 되어 있다. 그건 그 자신이 잘 안다.

칼도 여러 번 맞아봤고, 찔린 놈들도 수없이 봐왔으니까. 당장 자신의 옆구리만 해도 살점이 뭉텅이째 날아갔지만 벌써 예전에 어느 정도 아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피가 멎지 않는 특이 체질이라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민구의 주먹에 스쳐 살짝 터졌던 입술이 깨끗하게 회복되었다는 게 그 증거다.

그럼 대체 뭐지? 이 먹보의 말처럼 무슨 병이 있는 건가? 하긴 그렇게 말랐으니 무슨 병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쉬즈 다잉. 베리 앀. 온리 JL 캔 트리트 허.”

민구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젠킨스는 천천히 단어들을 나열했다. 물론 몸짓과 손짓도 같이…….

아픈 소녀가 죽어가다가 다시 살아나는 몸짓을 하던 젠킨스는 민구를 가리켰다.

“유 테이크 미 앤드 테라 투 JL. 보디가드.”

“…미친놈.”

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민구는 대답 대신에 낮게 욕설만 남기고 흡연 구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담배를 피우고 와서도 기분이 여전히 더러우면 놈을 몇 대 두드려 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젠장… 영어라고는 개뿔도 모르는데, 뭔가 듣기 싫은 소리는 다 알아들어 버린 기분이네.”

재떨이 옆에서 담배 연기를 뿜으며 민구는 고개를 저었다. 그 욕심쟁이 먹보 놈이 담배까지 마다하며 떠벌여 댔던 말들… 아무래도 온전히 믿기 어려울 만큼 구린 구석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라의 상처가 이상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저것도 양반은 못 되는군…….”

마침 내야석 부근을 지나는 테라가 시야에 들어오자 민구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다가오는 군인들을 향해 밝게 웃어주고 열심히 허리를 숙여 인사 중이다. 그러고는 두 손을 공손하게 내밀어 악수를 한다.

언제나처럼 온순하고, 친절하다. 주변의 공기마저 순하게 바꿀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저 계집애가… 죽어간다고?”

한동안 테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던 민구는 젠킨스가 했던 말을 곱씹어보면서 담배를 빨았다. 혀끝이 유달리 쓰다.

☆ ☆ ☆

코스트코의 보안관 일행은 주 거주 지역을 옥상에서 바로 아래층의 주차장으로 옮겼다. 햇살을 받고 풀에서 즐기는 것도 좋지만, 헬리콥터에 한 번 데이고 나니 적당히 몸을 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제 하도 난리를 치고 놀아댄 바람에 풀의 물도 재활용을 하기 어려울 만큼 더러워져 버렸다.

주차장은 여러 면에서 더 낫기도 했다. 애초에 개방되어 있는 구조여서 환기도 잘되고, 햇살도 적당히 들어온다. 그늘이 심하게 지는 곳마다 조명용 랜턴을 설치해 둬야 하지만, 그 정도를 유지할 배터리는 얼마든지 있다.

친구들은 그곳으로 옮긴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고, 사격 연습을 했다.

두 번째의 사격 훈련을 마친 뒤, 진우는 전술 조끼를 입고 자신의 배낭을 꺼내 어깨에 걸쳤다. 거울을 보며 얼굴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있던 유빈이 묻는다.

“뭐해? 갑자기 왜 짐을 챙기고 그래?”

“으응, 이 앞에 잠깐 돌아보고 오려고 하는데… 내가 있는 곳 주변을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적이 없어서 좀 불안하기도 하고. 또 그냥 가만히 쉬려니까 왠지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쟤도 어지간히 좀이 쑤시는 모양이고.”

진우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삼숙이를 가리켰다.

“아니… 너 우리 구해 가지고 여기로 온 지 이제 사흘째야. 통째로 푹 쉰 거는 어제 하루밖에 없어. 그전에 한 달이나 고생했다면서, 죄를 짓는 것 같다는 게 다 무슨 말이냐?”

“크크크, 나도 말하면서 좀 우습기는 해. 구르는 동안에 계속 그런 생각 했었거든. 며칠이고 좋으니 푹 좀 쉬어보고 싶다고… 그런데 막상 쉬고 있으니까 영 몸이 근질거려… 아마 몸을 혹사시키는 게 버릇이 됐나 봐. 걱정하지 마. 그냥 동네나 한 바퀴 돌고 올게.”

진우의 대답은 진심이었다. 가만히 엉덩이를 붙이고 노닥거린다는 게 너무 부자연스럽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안해 견딜 수가 없다.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다가 무슨 큰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종류의 불안이었다. 어쩌면 그간의 고생이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강박관념일 수도 있다.

“그래, 그러면 나랑 같이 나가자. 어차피 좀비들 지나간 지도 얼마 안 됐고, 이틈에 바람 좀 쐬고 오지, 뭐.”

보안관이 선뜻 같이 가겠다고 나선다. 보안관은 표준 장비 배낭을 메고 해머를 챙겨 들었다. 진우 녀석이 워낙 총을 잘 쏘니까 근접전을 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는 들어야 할 것 같다. 빈손으로 나간다는 것은 이제 상상이 잘 안 된다.

“진우, 너도 물 좀 챙겨가. 먹을 거랑… 그 배낭에는 뭐 들어 있어?”

유빈이 물었다. 진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몇 가지 도구들… 나머지는 거의 다 탄창이야.”

“그 많은 게 다 총알이라고? 그런데 왜 그걸 전부 다 짊어지고 다니냐? 이제 집이 있으니까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다녀도 되지 않아?”

하긴… 진우는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를 새삼 느꼈다. 유빈의 말을 듣고 보니 적당한 양 정도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다.

그렇지만 적당한 양이라는 게 도대체 얼마만큼인지, 그게 가늠이 안 된다.

“에… 이 정도면 되려나? 20개를 가져가면… 내 조끼에 여섯 개를 끼워놓았고, 총에도 또 장착이 되어 있으니까… 800발 정도인데… 아니야. 그래도 몇 개 더 가져가자. 불안한 것보다야 나으니까…….”

탄창을 손에 꼭 쥔 채 좀처럼 덜어내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진우를 보며, 친구들은 녀석이 그동안 얼마나 불안한 삶을 살아왔는지 절감했다.

매일 풀 파워로 대적하지 않으면 이기지 못할 상대들을 헤치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그게 아예 습성처럼 굳어버렸다.

“알았어, 그래. 그러면 나머지는 내 배낭에 넣어. 무게를 좀 나눠 지면 되잖아.”

보다 못한 보안관이 자신의 배낭을 열었다. 총알을 천 발이나 가지고 가야 마음이 놓일 만큼 불안해하면서도, 굳이 또 정찰을 나가겠다는 진우의 마음이 이해가 갈 듯 말 듯하다.

“조심해서 다녀와. 어디로 갈 건데?”

진우의 배낭에 무전기를 꽂아주면서 유빈이 물었다. 진우는 머리를 긁적인 뒤 대답했다.

“일단 다음 역까지만 갔다 올게. 별문제 없으면 거기에서 한 정거장 더 가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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