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43화 (343/449)

3장 판도라(5)

“14―1조 백인대장 앞으로!”

분대장이 겨우 눈물을 추스르고 있을 때, 유람선 소속의 부사관이 앞에서 손짓을 한다. 분대장은 대답을 하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생했고! 잘했다! 잠시 후면 한강철교에 도착할 텐데, 거기에서도 민간인들과 분대원들 잘 통솔해서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올라가길 바란다! 마음이 급하다고 정박하기 전에 미리 자리를 이탈하거나 하는 일 없이 잘 인솔하도록!”

부사관은 분대장의 어깨를 꽉 잡고 명령을 전달했다.

“그… 한강철교 구조는…….”

분대장이 물었다. 잠실 주변이야 근 한 달 동안 주둔하면서 지리를 어느 정도 익숙하게 알고 있었지만, 한강철교라는 곳은 아예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혹시라도 길을 잃고 어리바리하게 굴다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까 봐 두렵다.

“하선하자마자 커다란 화살표를 보게 될 거다! 그 화살표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 된다. 사실 도착하면 알겠지만, 헷갈릴 일이 없다. 현지 경계 병력이 안내를 해주기도 할 거고, 선착장 바로 좌측에 계단이 있으니까 그것만 올라가라. 알겠나?”

“잘 알겠습니다.”

“그래, 너희가 선봉인 만큼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잘해서 좋은 결과를 내보자. 딱 한 가지 충고하고 싶은 말은, 절대 멈춰 서지 말고 뛰라는 거다.”

부사관과 헤어진 분대장은 분대원들에게 돌아와 행동 요령을 전달하고, 민간인들에게도 숙지시켰다. 물론 훨씬 더 자신감 있는 어조로 이미 잘 알고 있는 사항들을 전달하듯 말했다.

출발할 때보다도 더 바짝 기합이 들어가 있던 민간인들은 눈을 빛내며 분대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미 그를 따라서 한 번의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어느 정도 신뢰가 싹 텄고, 그의 지시를 어기고 무작정 달려 나갔던 두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목전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쉘터 밖으로 벗어나 철책 하나 변변하게 없는 광야를 달려본 이후 그들은 자신들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이 젊은 군인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하선 준비! 문이 열리면 열을 갖춘 상태에서 신속하게 하선할 수 있도록!”

부사관이 선내 마이크를 통해 한강철교가 가까워졌음을 알린다.

꿀꺽―!

분대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 전부터 들려오는 요란한 포화소리가 그를 긴장하도록 만든다. 이곳은… 잠실보다 더 전쟁터 같다.

“…지금, 바깥이 너무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안전해질 때까지 잠시 기다리는 편이…….”

머뭇거리던 분대장은 결국 용기를 내서 부사관에게 말했다. 부사관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 그나마 한가한 시간대야. 좀비 새끼들 본격적으로 밀려들기 시작하면 이것보다 몇 배나 시끄러워.”

대답을 하는 부사관도, 어안이 벙벙해져서 듣고 있는 분대장도 왜 그리 많은 좀비들이 몰려 들어오는지는 알지 못했다.

지난 한 달 동안 그들은 줄곧 쉘터 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만 수행해 왔기 때문에, 좀비의 특성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불을 지피고 건물을 폭파시키고, 발전기를 가동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행위들이 모두 좀비들을 불러들이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상관들도 마찬가지다.

“발밑 조심해! 발밑!”

배가 멈춰 서고 문이 열렸다. 처음 줄을 섰던 대로 민간인들을 재배치한 채 대기시키고 있던, 분대장은 가장 앞에서 뛰어나갔다.

텅― 텅―

배와 선착장을 연결하기 위해 놓은 플라스틱 발판이 울린다.

“좌측으로 갑니다! 좌측!”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열심히 수신호를 보낸다. 넓은 둔치 전역에 무성하게 자라 있던 잡초들은 중장비를 동원한 제초 작업 덕에 꽤나 정리되어 있었지만, 철책과 같은 격리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50여 미터 전방에 설치된 철조망 너머에서는 전차들이 강을 등지고 산개한 채 한강을 포위하듯 세워진 아파트들을 향해 열심히 기관총을 발사하고 있었다.

콰아앙―

전차의 주포가 불을 뿜자 포탄이 음속을 돌파하는 파열음이 귀를 때린다. 그리고 곧바로 동쪽 이촌동 방향의 아파트 단지에서 연기와 화염이 솟아올랐다.

그 요란한 소리가 잠잠해지자마자 다시 기관총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운다. 전방은 흙먼지에 덮여 있고, 1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용산역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가 하늘 전체로 퍼지고 있었다.

“멈춰 서지 말고 달려! 쭉 가!”

예상치 못했던 전경에 놀라 분대장이 머뭇거리고 있자 철교 경비병들이 등을 두드리며 재촉한다. 분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휘젓고 앞으로 뛰었다.

30여 미터 앞에 한강철교와 둔치에서 철교로 올라갈 수 있는 철제 계단의 모습이 보인다. 빨간색 페인트로 칠해놓은 화살표를 따라 직선으로 뛰어가기만 하면 된다.

텅텅텅― 텅텅텅텅― 퍼버벙― 파바박―

철교 북단에 배치되어 있는 K―4 사수들이 쉬지 않고 고폭탄을 날려 댄다. 좀비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무시무시한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오금이 저리는 듯하다.

“올라와! 계단 조심해!”

철교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손짓을 하며 소리쳤다. 그 극심한 혼란에 인솔하고 있는 분대장도, 뒤따르는 민간인들도 혼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선로 위에 오르자 뻥 뚫린 두 줄의 철로가 그들을 맞는다. 저 멀리 남쪽에서 작업하고 있는 한 무리의 군인들이 보인다.

“수고 많았다! 출발 인원과 도착 인원 보고해!”

현장 책임자로 보이는 장교가 분대장에게 다가와 큰 소리로 물었다. 총소리와 폭발물이 터지는 소리들에 묻혀 악을 써야 겨우 뭐가 좀 들린다. 분대장은 퀭해진 눈을 껌뻑거리며 대답했다.

“14―1 백인대! 분대원 8명 포함, 출발 인원 104명, 도착 인원 102명, 민간인 사망 2명, 이상입니다!”

“두 명? 물렸나?”

들고 있던 파일에 숫자를 기입한 장교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 말했다.

“좋아! 잘했어! 이제 곧바로 남쪽을 향해 도보로 이동한다! 노량진역 주변까지 이동하면 주둔 병력들을 만날 테니까 거기에서 다음 지시를 듣고 따르도록! 아, 그리고 우측 선로 한 개만을 이용하여 이동한다. 좌측 선로는 전차가 이동하기 위한 선로이므로 항상 비워둬야 한다! 질문 있나?”

“…어디까지 갑니까?”

“지금 현재로서는 3일 이상 걸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만 대답해 줄 수 있다! 나도 모든 걸 알고 있지 못하다! 힘들겠지만, 통솔하고 있는 인원들을 잘 다독여서 이동에 차질이 없도록! 지시 사항 전달하고 지금 출발해! 우측 선로!”

장교는 분대장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 멀어졌다. 분대장은 멍한 얼굴로 선로 북쪽 차단 철책에 배치된 병력들과 장비, 야간용 라이트,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는 대형 발전기 따위를 바라보았다.

“3일 이상 걸어야 한다고…….”

귓가를 울리는 총성에 미간을 찌푸리면서 분대장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보이는 한계 내의 선로는 모두 자갈밭이다.

저기를 3일 이상… 보아하니 숙박 시설 같은 것도 없어 보이는데… 어디에서 뭘 깔고 자라는 거지…….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괴롭다고 해봐야 아무도 도와주지도, 위로해 주지도 않는다. 분대장은 철로 아래에 배치되어 있는 전차들을 쳐다보며 잠시 멈춰 있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기관총이 불을 뿜어 댔다. 그 바로 근처에서는 철조망을 설치하는 병사들이 바쁘게 뛰어다닌다.

“후우~ 젠장, 배부른 소리 그만 하자. 여기서 매일 저걸 하고 있는 놈들도 있는데…….”

자신의 뺨을 두들겨 기운을 차린 분대장은 자신만만한 얼굴을 가장하며 민간인들에게 돌아가 외쳤다.

“자! 여러분! 재정비하고 다음 목표지를 향해 이동하겠습니다! 이제 위험한 구간은 다 지났으니 기운 내십쇼! 일어나십쇼! 바로 출발합니다!”

분대장의 명령을 들은 민간인들은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며 바닥에서 엉덩이를 뗐다. 햇살에 달아올라 후끈하게 달궈진 선로 위의 공기가 강에서 피어오른 습기를 머금고 날아와 목덜미를 덮친다.

“우측에 붙어서 걸으세요! 좌측 선로는 전차들이 오가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분대장이 큰 소리로 외치며 뒷걸음질을 쳤다. 사람들은 우울한 얼굴을 푹 숙이고 곧게 뻗은 선로를 따라 자갈밭 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백인대 14―1조가 도보 이동을 시작했을 때, 잠실 쉘터 내부에서는 아직 이동 신청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서서 바깥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은 주차장을 메우고 이동 훈련을 하고 있는 민간인들. 구경꾼들은 과연 어떤 훈련을 하는지, 훈련의 강도는 어떤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관찰했다. 2, 30대의 대부분이 징집되어 버린 터라 잠실 쉘터의 민간인 수용자들은 일부의 중장년층을 제외하면 주로 노약자와 여성 인구가 많았다.

“어이구, 나는 요새 달리기 해본 지가 너무 오래돼서 저렇게 뛸 수 있을지 모르겠네. 숨이 차서 안 될 것 같은데…….”

중년 사내 하나가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린다. 그 옆의 일행이 대꾸했다.

“좀비들한테서 도망쳤을 때 뛰었을 거 아니야. 그거에 비하면 저 정도면 그렇게 무리하는 건 아닌데.”

“에이, 그때랑 같나… 그때는 좀비들이 쫓아오니까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죽어라 뛴 거고… 지금 이거랑은 다르지. 그나저나 애 있는 사람들은 어쩌냐, 저렇게 못 움직일 텐데…….”

최근까지도 학교 체육을 받고 있었던 십 대들에게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 미션일 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훈련 강도를 보면서 자신의 신체 능력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뒤늦게나마 체력을 기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건물 내에서 달리기 연습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훈련 과정뿐, 실제로 쉘터의 철책 밖으로 나가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쉘터를 관리하는 군에서 각조의 이동 성공 여부나 사망자의 수 등을 일절 밝히지 않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혼란을 막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젠킨스도 한쪽 구석에서 자리를 차지한 채 그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병사들이 뛰면 줄을 맞춰 선 사람들이 쫓아 달리고, 병사들이 멈추면 사람들도 멈춘다.

단순한 반복이지만 처음 보는 민간인들끼리 간격을 유지한 채 빠르게 달린다는 건 어지간히 어려워 보였다. 여지저기서 넘어지고 다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등에 짐까지 멘 채로 도대체 얼마나 달리도록 할 거지? 지독하게도 야만적이구만……. 정말로 저렇게 원시적인 방법을 써서 이동해야 한다고? 너무해, 너무 폭력적이야.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조금도 찾기 어렵군.”

전 인류에게 가장 가혹한 재앙을 몰고 온 당사자인 주제에 더 보고 있어봐야 지금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젠킨스는 돌아섰다.

그는 첫날 훈련 과정이나 이동 시에 대규모의 불상사가 일어나 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대책을 찾을 때까지 이 무모한 이동이 무기한 연기되고, 자신이 테라와 함께 떠날 수 있는 시간을 벌 테니까.

이동 방식은 너무 조악하고, 훈련도 속성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의 바람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100여 명씩 소단위로 끊어 관리하며 이동을 시키는 방식 때문이었다. 누군가 어지간히 잔머리를 쓰고 있다.

“젠장,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앞으로 6일이 남은 건가……. 그때까지는 테라 양의 발을 묶어둘 비책이 떠올라야 할 텐데……. 으음, 그렇게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또 배가 고파지다니…….”

젠킨스는 출렁이는 배를 꽉 부여잡고 사물함에 들러서 과자 세 봉지를 꺼냈다. 산책을 잘하는 날마다 테라가 상처럼 선물해 준 과자들이다.

“그러고 보니… 테라 양이 가지고 있는 과자를 다 어쩌려는 건지에 대해서도 걱정이 드는군. 혹시라도 미리부터 다른 인간들에게 나눠 주거나 하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음, 어쩌지? 미리 충고를 해줘야 하나?”

과자를 씹고 걸어가면서 젠킨스는 음식에 대해 걱정을 했다. 일주일이든 6일이든, 음식이 부족해지면 견디기 힘들다. 테라의 커다란 음식 보관함이 텅 비면, 그는 속수무책인 상태로 공복감과 싸워야 한다. 그건 곤란하다.

“후후후, 이 야만인, 하는 짓 좀 봐라? 후후후, 이젠 아주 별… 바보 흉내까지 내고 있는 건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젠킨스는 한쪽 구석에서 벽을 상대로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는 민구를 보며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자세가 너무 우습다. 오른손은 트레이닝복 바지 허리춤에 얹어놓고, 왼손으로 막대기를 휘젓는 모습은 마치… 처음 펜싱을 구경한 어린애가 그 모습을 따라 하는 꼴처럼 보인다. 어른이라면 남들이 보는 앞에서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행동이다.

“테라 양도 별종이야. 저런 놈이 대체 뭐가 좋다고… 눈물까지 그렁거리면서 말이지. 보아하니 이 녀석은 눈길 한 번 따뜻하게 건네지 않는 것 같던데, 대체 무슨 관계지?”

젠킨스는 자신의 자리에 벌렁 드러누워 과자를 집어 먹으면서 민구의 어설픈 댄스를 구경했다. 그가 보든 말든 흉터사내는 땀까지 뻘뻘 흘리며 열심히 막대를 휘두른다.

‘대체 뭐지?’

젠킨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이 남자… 이 흉터사내의 어떤 점이 그 도도한 아이돌 미소녀의 마음을 쓰이게 하는 걸까? 벗은 몸을 보면 꽤나 견고하게 단련되어 있는 육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전체적으로 십 대 소녀들이 반할 만한 곱상한 외모도 아니고…….

그런데도 테라는 계속 이 남자에게 신경을 쓴다. 더 이상 어린아이에게 과자 심부름을 시키지는 않는다고 해도, 몰래 먼발치서 훔쳐보는 모습을 그는 몇 번이나 목격했다. 그러면서도 신기하게도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저놈에게 무슨 대단한 신세라도 진 걸까?’

젠킨스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 쉘터 내 거의 모든 군인들로부터 공주처럼 사랑 받으며 살고 있는 그녀가 저 난폭한 사내에게 빚을 진다? 가진 것이 전혀 없는 저런 사내에게? 흠, 그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생각을 하고 있을수록 한 가지는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저 흉터사내는 지금 테라를 꾀기 위해 젠킨스가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미끼라는 것이다. 저 녀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테라가 JL로 함께 가주겠다고 할 확률이 크게 달라진다.

‘그렇다면 우선 이 녀석부터 홀려둬야겠군.’

결심을 한 젠킨스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웃는 낯을 가장하며 민구에게 말을 걸었다.

“헤이, 네이버.”

젠킨스를 힐끗 돌아본 민구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아아, 지금 붕대 안 가니까 귀찮게 하지 마라.”

물론 젠킨스는 그가 뭐라고 지껄이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호감을 얻기 위해 만국 공통으로 사용되는 행동이 뭔지는 알고 있다.

그것은 선물이라는 이름의 증여. 젠킨스는 아직 뜯지 않은 새 과자 봉지를 민구에게 내밀었다. 그러고는 공짜라는 의미를 담아서 계속 친절한 손동작을 해 보였다.

“음, 이놈… 먹을 걸 양보하는 일이 다 있네? 후후, 별일이기는 한데, 그것도 필요 없어.”

민구는 다시 손을 저었다. 그러고는 다시 벽을 향해 막대기를 휘둘러 댄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고 수군대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모습만 보자면 완전히 미친놈이라고 해도 된다.

“바보 자식, 선물을 주면 일단 받으란 말이야. 그깟 막대 춤이 그렇게 좋으냐?”

큰마음 먹고 주려던 선물이 거절을 당해 감정이 상한 젠킨스가 투덜대며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쿵, 커다란 엉덩이로 엉덩방아를 찧은 젠킨스는 바닥을 짚어가며 겨우 자세를 추스를 수 있었다. 무거운 몸 때문에 한 번에 제대로 앉기가 힘들어서 이렇게 여러 번의 보조 동작을 해야 한다.

“설마 저 바보 놈…….”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던 젠킨스는 뭔가 깨달음을 얻고, 아직도 막대 춤을 추는 흉터사내를 돌아보았다.

그는 근육이 날아가 버린 옆구리 바로 아래에 오른손을 꽉 붙인 채 정신없이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다.

“…외사근 대신에 팔로 중심을 잡아보겠다고?”

젠킨스는 어처구니없어 하며 중얼거렸다.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보니 확실히 흉터사내는 평소보다 더 몸의 중심을 크게 움직이면서 훈련을 하고 있다.

물론 한쪽 옆구리의 근육이 거의 손실되었으니 한 번 상체가 기울면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오른팔로 버티고 밀어 대면서 어떻게든 그 단점을 최소화해보려고 한다.

“어이, 그만둬. 미친 짓이야. 그런 게 될 리가 없잖아? 젠장, 누가 저 멍청이한테 내 말 좀 통역해 줬으면 좋겠군. 체성 반사운동을 조건반사로 대체하려 든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인지… 그건 뇌의 계산을 거치지 않고 이뤄지는 뉴런 반응이기 때문에 속도가 완전히 달라…….”

과자를 씹으며 투덜대던 젠킨스의 말이 멈췄다. 기분 탓일까, 흉터사내의 움직임이 조금은 민첩해졌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응? 말도 안 돼…….

젠킨스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눈에 빤히 보이는 현상을 부인할 방법은 없었다. 이 흉포한 자식은 어쩌면 진짜 괴물일지도 모르겠다. 될 때까지 땀을 흘리며 육체를 단련하는 괴물.

젠킨스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대체… 뭘 위해서 그렇게까지 강해지려고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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