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판도라(4)
“집중! 집중!”
분대장은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아까운 시간을 한참 허비한 후에야 그는 겨우 민간인들의 시선을 되돌릴 수 있었다.
“외부로 나갔을 때, 총소리가 난다고 해서 절대로 멈추거나 뒤돌아 뛰지 마십쇼! 총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군이 좀비들을 저지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여러분이 멈춰 섰을 때 위험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리가 들리든 간에 제 손의 신호만 보고,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움직여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분대장은 핏대를 세워가며 이 작전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룰을 설명했다.
패닉을 일으키는 순간 대열은 무너지고, 생존 확률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어떤 위험에 처하더라도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줄기차게 뛰어야만 한다.
“자, 이제부터 실제 이동을 연습해 보겠습니다! 제가 일러드린 행동 요령을 항상 명심하시고 그대로 따르십쇼!”
몇 차례나 중요한 요령들을 숙지시킨 분대장은 민간인들에게 이동준비를 명했다.
“저기 보이는 저 주차장 표지판까지 뛰어갑니다. 제가 신호를 보내면 그 순간 출발하는 겁니다!”
잠시 대기하고 있던 분대장은 달리라는 손짓을 하고 앞서 뛰었다. 그리 속력을 내지는 않았다.
그를 교육시킨 장교들은 이동하는 내내 빠른 구보의 속도를 유지하라고 했지만, 민간인들을 실제로 대면하자마자 분대장은 그 정도의 빠르기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잠실 쉘터에 있는 민간인 생존자들 중에는 꽤나 많은 중년 남자들과 아이를 동반한 여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에게 젊은 군인들과 같은 속도로 달리라고 주문하는 건, 그냥 죽으라는 명령과 별반 다르지 않다.
“으윽! 아이쿠!”
채 20미터도 전진하지 못했을 때부터 뒤쪽에서 넘어지고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한 사람이 넘어지면, 뒷줄 사람들이 줄줄이 멈춰 서야 하고 대열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후우우~ 멈추라는 신호를 보낸 분대장은 짜증을 참기 위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넘어진 사람들 쪽으로 다가갔다.
다들 뭔가 바리바리 싸서 양손에 들고 있다. 이러니 제대로 달릴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애초부터 짐의 허용 기준을 작은 배낭 한 개 크기로 규정해 놓았는데, 도무지 듣는 것 같지가 않다.
‘젠장… 재수도 더럽게 없지. 하필이면 내가 첫 빠따로 걸릴 게 뭐람…….’
분대장은 마음속으로 푸념하면서 옆쪽의 다른 백인대를 돌아보았다. 거기도 여기 못지않게 개판이다. 다들 자빠지고 대열은 무너져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풋, 분대장의 입에서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터진다. 그 혼자만 불행을 짊어진 건 아닌 모양이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는 감정을 최대한 가라앉히고 민간인들을 향해 외쳤다.
“잘 달리고 잘 멈춰 서려면 양 손 모두 자유롭게 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등에 메고 뛸 수 있는 만큼으로 수하물의 양을 제한한 겁니다. 짐을 손에 들고 뛰는 행위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어어… 하지만 이게 다 먹을 건데…….”
“담요랑 돗자리 때문에 보따리 안에 자리가 없어요…….”
여기저기서 가벼운 원성이 터져 나온다. 분대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10분 드릴 테니, 짐을 다시 정리하세요. 그 이후부터는 손에 짐 들고 있는 걸 보면 제가 그냥 버릴 겁니다. 경고 더 하지 않습니다. 실시!”
민간인들에게 다시 짐을 꾸리게 한 뒤, 분대장은 분대원들과 동선을 다시 점검하고 속도를 조정했다.
민간인들을 대동하지 않은 채 어제부터 연습을 해봤었지만, 제식훈련도 받지 않은 사람들을 끼워 넣고 나니 영 느낌이 다르다.
“이렇게 해서 선착장까지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상병 이상의 병사들은 회의가 가득한 표정으로 민간인들을 돌아본다. 고문관급 인원이 적어도 수십 명이나 되는데… 앞으로 몇 시간 만에 그들을 사람 구실 하도록 바꿔놓아야 한다.
“하기 싫어도 하는 수밖에 없어. 위에서 시간이랑 순서까지 다 정해놨는데 우리 사정 봐줄 것 같아? 너희들도 정신 바짝 차리고 문제 수용자 발견하면 하나하나 꼼꼼하게 교육시켜. 15시에 출발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돌이키지 못한다고.”
분대장은 이를 꽉 깨물어가며 분대원들에게 주의를 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지랄 맞은 짓을 여러 번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도다. 시간을 확인한 분대장은 담배를 전투화 바닥에 비벼 끄고, 민간인들 쪽으로 걸어갔다.
“이동 중에 여러분은 서로 도와야 합니다. 넘어지려는 사람이 있으면 옆에서 잡아주면서 버티세요! 저희는 여러분 전체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사정을 봐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동 중에 혹시 병사들을 부르셔도 대답하지 않을 겁니다. 이동 수칙이 그렇게 정해져 있습니다! 자, 다시 해보겠습니다! 오와 열을 맞춰 서세요!”
민간인들의 줄을 정돈 하고 나서 분대장은 다시 한 번 신호를 주고 그들과 함께 내달렸다.
이번에는 좀 더 멀리까지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그래도 또 넘어지는 낙오자가 발생했다. 운동신경이 아주 둔하고 체력까지 약한 몇 명이 계속 발목을 잡는다.
“14―1조! 세 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분! 그리고 다섯 째 줄, 오른쪽 두 번째 분! 열에서 빠져나옵니다! 선생님들은 탈락입니다!”
여러 백인조 사이를 오가며 날카로운 눈으로 훈련을 살펴보고 있던 교관들이 가장 성적이 안 좋은 민간인들을 걸러낸다. 졸지에 탈락해 낙오자가 된 민간인들은 당혹감과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우리가 왜 탈락이야? 이제 어떡하겠다는 거야?”
“저기에 일행이 있어요. 같이 가야 돼요…….”
“물러나세요! 여러분이 어떤 백인대에 합류할 수 있을지는 추후에 논의가 끝나고 나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쉘터로 돌아가세요! 어이, 이 사람들 돌려보내!”
교관들은 냉정하고 강압적으로 말하며 탈락자들을 무리에서 분리시켰다.
한 시간 정도의 1차 이동 연습이 끝났을 때, 대부분의 백인대 구성 인원은 100명이 아니라 90명 이하로 줄어 있었다.
낙오자가 된 이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들 때문에 나머지 전체가 위험에 노출되도록 할 수는 없다.
신체적 능력이 부족해 달리기가 눈에 띄게 늦다거나 지구력이 부족한 사람들 뿐 아니라, 바로 옆 사람이 넘어지는데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사람들도 열외시켰다. 총소리가 날 때마다 기겁을 하고 얼어붙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는 인원들은 다 빼버렸다. 이동 첫날이니만큼 그렇게 해서라도 성공 확률을 높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경험이 쌓이면 차츰 더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이동해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거리를 더 늘려서 저 철책까지 쉬지 않고 한 번에 갑니다!”
분대장은 사람들이 겨우 숨을 돌릴 정도의 여유만 주고, 곧바로 다음 코스로 들어갔다.
이들을 데리고 안전장치가 확보되지 않은 800미터를 내달려야 하므로, 개개인들의 대략적인 특징이나 문제 정도는 미리 파악하고, 거기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도 생각해 둬야 한다.
그러니 자꾸 더 손발을 맞춰보는 수밖에 없다. 예기치 않았던 문제가 실전에서 발생하면… 그냥 죽음이다.
연습을 한 시간 더 진행했다. 이제는 제법 가랄 때 가고, 서랄 때 설 줄 알게 되었다. 불평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탈락자들을 보며 다들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점심 식사가 제공되었다. 첫 출발 시간인 3시까지… 이제 한 시간 반가량 남았다.
“젠장, 무슨 맛인지를 모르겠다… 체할까 봐 무섭네…….”
분대장도, 분대원들도 비슷한 불평을 늘어놓으며 수저를 꾸역꾸역 입으로 옮겼다.
혹시라도 일이 잘 못되면 이것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식사일 수도 있다. 당연히 맛을 느낄 만한 심리적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그저 계속해서 가슴만 두근대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숨이 가빠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어야 한다. 유람선을 타고 도하해서 선로 위로 오르면… 오늘 저녁까지 아무 음식도 제공되지 않을 것이므로.
“시간이… 더 안 갔으면 좋겠습니다.”
음식을 씹고 있던 일병 녀석이 울상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물론 행복해서 그런 소리가 나온 건 아니다. 그저 잠시 후에 마주해야 될 현실이 너무 두려운 것뿐이다.
“우리 다 살아남는다. 걱정하지 마라.”
일찌감치 식판을 옆으로 밀어놓은 채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던 분대장이 일병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해줬다. 아무 근거도 없는 장담이지만, 분대원들의 마음에 아주 작은 용기를 더 부여해 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의 옆자리에서는 14―2분대와 14―3분대가 역시나 똥 씹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 있다.
1초, 1초… 시간이 흐르고 오후 3시와 조금씩 더 가까워질 때마다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다.
14시 30분이 되자 확성기에서 안내 방송이 울리기 시작했다.
[14―1조, 14―2조, 제1주차장 북단에 집결 후 대기하라. 14―1조, 14―2조, 제1주차장 북단에 집결 후 대기하라.]
14―1조의 민간인들과 호위 분대 병력은 워밍업을 겸해서 제1주차장의 위쪽으로 이동했다. 모두를 무릎앉아 자세로 대기시킨 뒤, 분대장은 진심을 가득 담아 그들을 독려했다.
“여러분, 우리가 이동할 이 루트는 한강철교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병사들이 이미 수없이 왕복해 온 길입니다. 꽤나 안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연습하신 대로 저희들의 지시만 잘 따라주십쇼!”
“…네에.”
대답이 영 시원치 않다. 민간인들 역시 긴장감 때문에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철책 사이로 좀비 냄새가 실려 들어오는 것 같다.
저 밖의 풀숲이나 나무 뒤 어디에선가 갑자기 좀비가 툭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떨게 만든다.
하늘에는 근처의 좀비들이 어떤 지형을 따라 이동하고 있는지 살피기 위한 드론이 여러 대 떠 있다. 저것에서 정보를 수합하고 나면 본격적인 이동 시간이 전달될 것이다.
“14―1조, 게이트 앞으로!”
확성기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시간은 14시 51분. 아마 ‘Go’ 사인이 떨어진 모양이다. 분대장은 모두를 일으켜서 함께 게이트 쪽으로 걸었다.
“자, 지금부터 앞줄 분들은 제 손 주목하셔야 합니다. 뒤의 분들은 앞사람 등에 손을 대고, 언제라도 움직일 준비 하십쇼!”
분대장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그의 목소리도 조금씩 떨려온다. 민간인들은 공포에 질린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기기긱―
여러 명의 경비병이 힘을 합쳐서 묵직한 게이트를 당긴다. 그 옆에 2층 높이로 자리한 사대에는 K―3 사수들이 대기하고 있다.
“갑시다!”
분대장은 손을 앞으로 휘저으며 먼저 달려 나갔다. 그의 바로 뒤에서 세 명의 분대원이 따라 뛰고, 그다음에는 90여 명의 민간인들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미에 또 네 명의 병사가 따른다.
“뛰어요! 이 속도 유지합니다!”
시속 6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내달리면서 분대장은 몇 번이나 민간인들을 돌아보았다. 이 정도 빠르기만 유지하더라도 5분 내에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다.
탄천을 좌측으로 끼고 산책로를 달리다가 우회전을 해서 선착장에 도달하는 것이 그들의 루트다. 지금 잠실 쉘터에서는 그나마 그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다.
탄천동로를 따라 달린 행렬은 순식간에 자동차극장을 넘어섰다. 폭발의 흔적으로 도로가 심하게 파손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순조로웠다.
좀비들은 14―1조의 행렬이 청담교 부근을 지날 때부터 갈대밭 사이를 헤치고 하나씩, 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근원은 역시 올림픽대로 쪽이었다. 넓은 도로 위를 배회하는 좀비들은 매일 잡아 죽여도 또 매일 그만큼씩 어디에선가 몰려들었다.
철책이나 컨테이너로 암만 바리게이트를 쌓아봐야, 그 넓은 면적을 모두 차단하기란 불가능하다.
시야를 가릴 만큼 높이 자란 갈대들을 다 불태워 보려고도 했었지만, 불을 지른 후에 몰려드는 좀비들의 개체 수가 어째 더 늘어나 버렸다. 결국 그 지역은 방치되고 말았다.
“멈추지 말고 가요! 계속 이동합니다!”
분대장이 민간인 수용자들을 지휘하는 동안 선봉에 선 병사들이 우측가에 붙어서 K―2로 제압사격을 가했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둑― 투투투투둑―
저항에 직면한 좀비들이 갈대밭에 내장을 흩뿌리며 쓰러져 가는 동안 분대장은 열심히 팔을 내휘둘렀고, 90여 명의 민간인들은 코너를 돌았다.
“정지! 정지!”
우회전을 하고 난 뒤,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해 분대장이 손을 쫙 편 채 들어 올렸다. 여기에서 잠시 대기하면서 선착장 방어용 전차가 마중 와서 길을 터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 정지 동작은 연습 때에 거의 아무런 실수도 없이 수행되었던 기본 명령이었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바보짓을 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정지! 이런… 젠장!”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앞서 달려 나가는 두 명의 민간인을 보며 분대장은 혀를 찼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아무것도 안 들리는 놈들처럼, 쪽 뻗은 도로를 따라 그저 전속력으로 내달리고 있다. 아마 눈앞에 빤히 보이는 선착장의 유혹이 너무 컸는지도 모르겠다.
“쫓아가서 잡아옵니까?”
병사들이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분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러면 너희까지 위험해져! 그냥 둬!”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산책로보다 높이 올라 솟은 갈대밭에서는 언제 좀비들이 튀어나와 그들을 덮칠지 모른다. 그러니 저렇게 무작정 달려 나가서는 안 된다.
“끄아아아! 으으으!”
아니나 다를까, 채 30초도 지나지 않아 앞쪽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왔다. 달려든 좀비들이 오랜만에 만난 먹잇감을 물어뜯고, 사방에 피를 흩뿌린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두 명의 민간인은 좀비들을 몸에 잔뜩 붙인 채 한강으로 뛰어들어버렸다.
“으으으… 어떡해, 어떡해… 우리 다 죽게 될 거야! 이런 짓을 왜 시작해서…….”
일행의 죽음을 목도한 민간인들 사이에서 동요가 인다.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도로 위의 좀비들을 사살하고 난 분대장은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목청껏 외쳤다.
“괜찮습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이 부근에는 현재 대형 좀비 무리가 없습니다! 저분들이 돌아가신 건 지시를 어겨서 그런 겁니다! 이제 곧 전차가 마중을 올 테니 그 옆으로 나란히 붙어서 달리면 됩니다!”
크르르르릉―
잠시 뒤, 전차가 갈대숲을 깔아뭉개면서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접근해 왔다. 분대장은 전차가 크게 호를 그리며 방향 전환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손을 휘둘렀다.
“갑시다! 전차가 움직이는 속도를 따라 뜁니다! 무한궤도에 너무 가까이 달라붙으면 안 됩니다!”
와사삭, 와사삭―
전차는 갈대숲과 흙을 갈아 한 덩어리로 뭉개 버리면서 전진하고 있다. 그 옆으로 백인대 14―1조가 따라 뛰었다.
선착장까지는 약 300미터. 정말 별것 아닌 짧은 거리인데도 여전히 긴장되고 무섭다.
2분 후, 일행은 모두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들을 무사히 인솔해 온 전차는 다시 갈대숲을 바라보고 서서 언제라도 기관총을 발사할 준비를 갖췄다.
잠실 경비도 등한시할 수 없고, 새로 개척한 한강철교 부근도 경계해야 하기 때문에 정작 선착장을 지키는 전차는 겨우 한 대뿐이다.
“저 배! 저 배, 왜 빨리 여기에 안 붙여! 우리가 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저기서 빤히 보고만 있잖아! 미리부터 배를 대놓고 기다렸어야지! 그래야 우리가 잽싸게 옮겨 탈 거 아니야!”
강의 기슭에 떠 있는 유람선이 좀처럼 정박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민간인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롸아아― 갸아아아―
갈대숲 안쪽 어딘가로부터 계속 해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전해져 온다.
뒤쪽은 시퍼런 강물, 앞쪽은 언제 좀비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넓은 갈대밭. 사람들은 초조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총이라도 쏴서 알려요! 저 배 왜 저렇게 한가해?”
“야! 야, 이 새끼야! 빨리 배 대! 이러다가 우리 다 죽는다!”
민간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배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병사들의 팔을 잡고 늘어진다. 병사들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출발하기 전에 그렇게 단속을 시켰는데도, 마음이 급해지니까 그런 룰 따위는 금세 무너져 버렸다.
“진정하고 기다리세요! 그런 짓 할 시간에 어서 세 명씩 다시 줄을 서요! 그래야 더 빠르게 승선할 수 있습니다!”
분대장은 K―2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갈대숲을 노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배가 안 오는데 줄이 다 무슨 소용이에요? 왜 미리 대놓지 않았냐고요?”
“저 유람선은 우리가 준비를 마친 걸 확인하고 나서 선착장에 배를 댈 겁니다! 배를 미리 대고 있다가 혹시라도 좀비에게 그걸 빼앗기게 될까 봐 그러는 겁니다!”
가용할 수 있는 유람선이 단 두 척뿐인 지금, 유람선은 그저 단순한 배가 아니라 대규모 이동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니 몇 백 명의사람 목숨이 위협 받는다 하더라도 배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둘 수밖에 없다.
뿌우우웅―
유람선이 뱃고동을 길게 울리면서 천천히 다가와 선착장에 나란히 댄다. 그 속도라는 것이 마음 급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미치도록 한가하고 느리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야매 함장과 항해사들에게는 그 정도의 재주를 부리는 것도 꽤나 고난이도의 묘기였다.
“빨리 타세요! 서둘러요!”
선원들이 뛰어 내려와 발판을 내리며 대기하고 있던 민간인들을 배에 태운다.
파파파파파박― 파파파파박―
갑자기 터져 나온 전차의 기관총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 급하게 만든다. 갈대밭이 흔들리고 좀비들의 잘려 나간 신체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20분 뒤, 14―1조를 태운 유람선은 강의 흐름을 따라 10여 킬로미터 서쪽의 한강철교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유람선 좌석에 기대앉은 사람들은 멍하니 창밖의 풍경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30여 분이 대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저 너무도 무서웠다는 기억만이 그들의 감정을 지배하고 있다.
얼굴이 핼쑥해진 분대장도 그런 사람들 사이에 섞여 앉아 있었다.
하아아~ 분대장은 긴 한숨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대열을 무단이탈한 두 명 외에 더 이상의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독하게 무서웠음을 부정할 수 없다.
유람선이 정박할 때까지 꾹꾹 참으며 총을 들고 노려보았던 갈대밭은 마치 거대한 악마의 소굴처럼 음산하고 끔찍하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행선지도 알려주지 않은 긴 선로 여행. 그 거칠고 위험한 광야에서 도저히 버텨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에 분대장은 남몰래 눈물을 훔쳐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