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41화 (341/449)

3장 판도라(3)

꿀꺽…….

박 소위는 마른침을 삼키고 가희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아직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얼마나 깊이 잠이 든 걸까… 지금 이 상황에서 깨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만약에 가희가 이 꼴을 본다면…….

“준비됐어요, 1번? 명령 내릴 거예요.”

허벅지 위에 올라탄 초희는 두 팔로 박 소위의 목을 끌어안은 채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얼굴로 쏟아지는 초희의 숨결을 느끼면서 박 소위는 갈등했다.

가희에게 들키게 될까 봐 무섭다. 아까 초희가 술을 따르는 것조차 장난을 빙자해서 싫은 내색을 할 만큼 가희는 질투가 많은 여자다.

가희가 이런 걸 알면 어쩌지……. 박 소위는 자신이 가진 도덕적 무결성과 성실한 연인으로서의 이미지가 깨질까 봐 두려워졌다. 가희가 퍼부을 비난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 상황이 너무도 매혹적이고, 야릇하고, 재미있다. 그래서 자신의 앞에 안겨 있는 초희를 뿌리칠 수가 없다. 술에 취해 잠든 애인 앞에서 그녀의 친구로부터 유혹을 받고 있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신기한 경험이다. 게다가 이 쉘터의 넘버 원, 투 미녀가 동시에 자신을 흠모하고 있었다니…….

박 소위는 두려움과 흥분 사이에서 계속 갈등했다. 초희의 잘록한 허리에 어정쩡하게 얹혀 있는 그의 두 손이 그의 현재 심리를 대변하고 있었다.

아예 적극적으로 쾌락을 탐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쿨하게 거절하고 싶지도 않다.

“어디를 보는 거예요? 왕은 지금 박 소위님 무릎 위에 있는데… 가희? 쟤는 술 취하면 누가 업어가도 몰라요. 걱정하지 마세요.”

가희를 힐끗 돌아본 초희가 박 소위의 시선을 가린다. 그리고 박 소위의 손을 잡아 자신의 브래지어 위에 올려놓았다.

“1번… 2번에게 가희한테 하던 걸 해봐요.”

명령을 내리는 초희의 목소리도 흥분으로 갈라져 있다. 박 소위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초희는 손끝으로 그의 얼굴을 쓸면서 속삭였다.

“심각해하지 마요. 그냥 재미있자고 하는 게임이잖아요… 장난이니까 괜찮아요… 자, 이제부터 나는 가희예요.”

초희는 촉촉하게 젖은 입술로 박 소위의 입술을 덮치고 혀를 밀어 넣었다. 전혀… 장난이 아니다. 이 느낌도, 이 상황도… 감전된 것 같은 아찔한 자극이 박 소위의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가 폭발한다.

“우… 우…….”

박 소위의 입에서 쾌락에 취한 신음이 터져 나온다. 어정쩡하게 초희의 브래지어에 얹혀 있던 박 소위의 손이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 느낌!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흥분!

“흐응!”

박 소위의 손아귀에 힘이 콱 들어가자 초희는 가볍게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흘린다. 그러면서도 입술을 바르르 떨고 박 소위를 흥분시킬 만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아아… 그렇게… 가희한테 그렇게 했어요? 아… 조금만 더 꽉 잡아봐요…….”

초희가 몸을 비틀었다. 박 소위는 허술하게 걸려 있던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모두 풀어 젖히고, 브래지어를 벗겼다. 그러고는 더욱 더 본격적으로 초희를 탐하기 시작했다.

박 소위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가희를 상대할 때와는 또 다른… 아주 자극적인 즐거움이 있다. 온몸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 같고, 동시에 목덜미는 얼음처럼 서늘하다.

“아아… 좋아요… 정말로…….”

초희는 박 소위의 어깨에 고개를 얹은 채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두 손으로 박 소위의 허리띠를 푼다.

박 소위의 손이 그녀의 엉덩이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자신의 얼굴을 덮고 있던 초희의 머리카락을 떼어내기 위해 입김을 불던 박 소위의 몸이 일순 경직되었다.

“허억!”

박 소위는 묵직한 비명과 함께 몸을 들썩였다. 언제서부터 보고 있었던 것일까? 가희가… 가희가 눈을 뜨고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뭐…해? 지금?”

가희는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며 박 소위와 초희를 향해 물었다. 박 소위는 황급하게 고개부터 저어 댔다.

“아, 아니야! 이, 이거는… 이건 그냥…….”

박 소위는 아무 거짓말이라도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도저히 변명의 여지가 없다. 반라의 초희는 자신의 허벅지 위에 다리를 벌린 채 앉아 있고, 자신의 손은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초희는 그의 허리띠를 풀어내서 손에 들고 있다.

이 상황은… 누가 보더라도 한 가지로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서… 설마. 가희를 내버려 두고… 둘이 몰래…….”

가희가 입을 감싸 쥐고 벌떡 일어난다. 초희는 한 번 한숨을 내쉰 뒤, 팔을 뻗어 그녀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한다.

“왕 게임하고 있었잖아. 네가 잠들어서… 박 소위님이 너 대신 벌 받는 중이었어.”

“이건 지금… 장난치고 그런 거 아니잖아…….”

“아니, 장난 맞아. 가희야, 이리 와서 네가 직접 확인해 봐.”

초희는 몸을 기울여 가희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어차피 좁은 방 안이어서 세 사람 사이의 간격은 1미터도 안 된다.

가희는 박 소위의 오른쪽 허벅지에 모로 걸터앉은 채 소리 죽여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봐봐… 내가 아무리 장난쳐도 박 소위님은 네 생각밖에 안 하셔. 너 잠든 동안에 우리 둘이 계속 네 이야기 했는걸?”

초희는 가쁜 숨을 진정시켜가며 뻔뻔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도 드러낸 가슴을 감추려 들지도 않고, 여전히 박 소위의 허벅지에서 내려오지도 않았다.

“정말? 흐윽… 하지만 네가 박 소위님에게 키스하는 거 다 봤단 말이야… 가희는 기분이 이상해… 가희는… 이런 거…….”

가희는 숨을 죽여 흐느낀다. 그녀의 반응이 분노가 아니라서 박 소위는 꽤 놀랐다. 평소 대가 센 성격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외도의 현장을 들켰는데 이렇게 소리 죽여 우는 정도라고?

그 순종적인 모습이 또 은근히 좋아서 박 소위의 가슴은 두근대었다. 물론 이 난감한 상황부터 수습해야겠지만,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할지 전혀 계산이 되지 않는 게 문제이다.

애인은 자신의 오른쪽 다리에 걸터앉아 눈물짓고 있고, 애인의 친구는 자신의 왼쪽 다리에 반라로 올라탄 채 우는 애인을 달래고 있다. 솔로몬이 와도 없던 일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가희야, 그만 울어. 내가 잘못했어…….”

박 소위보다 먼저 초희가 가희의 어깨를 끌어안고 사과를 했다. 초희는 눈물로 젖은 가희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면서 속삭였다.

“그냥 나도 한 번… 너처럼 되어보고 싶어서 그랬어. 하도 부러워서… 박 소위님 사랑을 받으면 어떤 기분일까… 나도 평생에 한 번은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랑 사랑을 해보고 싶어서 그랬어… 이제 여기에서 나가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잖아. 미안해, 내가 나쁜 년이야. 너는 나한테 잘해줬는데…….”

초희는 가희의 머리를 끌어안고 훌쩍였다. 가희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평생에 한 번이라고?”

“응… 그냥 딱 하루만 내가 너인 척하고 싶었어. 네가 돼보고 싶었어.”

후우~ 한숨을 내쉰 가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결심을 한 듯, 박 소위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박 소위님, 오늘 하루만 초희를 가희라고 생각하면서 사랑해 줘요. 얘는 정말 외롭고 불쌍한 애예요. 미안해요. 이렇게 곤란한 부탁 해서… 하지만 박 소위님은 가희를 사랑하니까 이런 부탁도 들어주실 거죠?”

부탁을 들어달라고?

박 소위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 재미도 제대로 못보고 그저 곤란해졌다고만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인가. 용서해 주는 게 아니라, 아예 그 짓을 하라고 등을 떠민다는 말인가?

“안 되겠나 봐… 하긴, 박 소위님이 사랑하시는 건 가희 너지, 내가 아니니까…….”

박 소위가 금방 대답을 하지 못하자, 초희가 멋쩍어하며 일어나려 한다. 이번에는 가희가 그녀의 팔목을 잡아 다시 앉혔다.

“아니야, 초희야. 앉아봐. 우리 박 소위님, 그렇게 속 좁은 분 아니야.”

그리고 가희는 다시 박 소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죠, 박 소위님? 초희의 상처를 달래주실 거죠? 저한테 해주는 것처럼 예뻐하고 사랑해 주실 거죠?”

아무리 술에 취하고 약에 취한 박 소위였지만, 지금 상황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두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부탁을 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납득했는가가 아니라, 가희와 초희가 이 일그러진 관계를 용납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는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아니, 죄의식은커녕 오히려 감사 인사까지 받으면서 새로운 여자를 품어볼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밤 내내 뜨겁게 달궈지기만 하고 아직 분출되지 못한 그의 욕망이 다시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 그럴게. 그게 가희가 원하는 거라면…….”

박 소위는 멍해진 얼굴을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도 모든 게 불명확하다.

가희는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나가겠다는 건가? 아니면 여기에서 지켜보겠다는 말이었나? 그… 그러면 너무 불편해지는데…….

“고마워요! 고마워요! 역시 박 소위님은…….”

가희는 박 소위를 와락 안고 목에 키스를 퍼붓는다. 박 소위가 쭈뼛거리며 초희 쪽을 돌아보자, 그녀도 섹시한 미소를 지으며 그 품에 안겼다.

“허락의 의미로 주인이 열어줘.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박 소위의 바지 지퍼를 만지작거리던 초희가 가희에게 말했다.

“허락할게. 오늘 하루… 초희는 가희야.”

가희가 손을 뻗어 박 소위의 바지 단추를 풀고 천천히 지퍼를 내렸다. 그러자 반대쪽에서 초희의 손이 지퍼 안으로 쑤욱 파고들어 온다.

“으으……!”

박 소위는 두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신음 소리를 냈다. 가희마저 블라우스를 벗자, 그의 눈앞에서는 네 개의 탄력 있는 가슴이 흔들렸다. 눈알이 뱅글뱅글 도는 것 같다.

‘이… 이래도 되는 건가? 멋진 남자들에게는… 이런 게… 용납되는 일인가?’

두 여자의 몸을 번갈아 탐하면서, 박 소위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던 그의 행동은 점점 더 과감해졌다. 그가 무엇을 하든 가희와 초희는 ‘노’라고 하는 법이 없었다.

“아!”

여자들의 신음이 울릴 때마다 왕이라도 된 것 같은 우월감이 그의 온 몸을 감싼다. 박 소위는 오늘 새로운 열락의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대번에 이 새로운 즐거움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그 세계 안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졌다.

‘내가 왜 이런 생활을 버리고 잠실 같은 데를 가야 하지?’

초희의 엉덩이를 잡고 가희의 가슴에 입을 맞출 때, 박 소위의 머릿속에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 갔다.

☆ ☆ ☆

8월 14일, 잠실 쉘터에서 한강 철교로 민간인들이 이동하는 첫 번째 날이 밝았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잠실 쉘터의 외부 주차 공간에서는 이동 지원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자! 거기, 줄 맞추십니다! 가로 열 줄! 세로 열 줄! 거기 선생님! 뒤로 한 칸 빠지십쇼! 옆 사람과의 간격도 맞춥니다! 아… 진짜 왜들 이러십니까? 다들 학교 다니실 때 체육도 안 해보셨습니까? 맨 앞의 긴 머리 여자분, 기준!”

병사들의 호령이 여기저기에서 쩌렁쩌렁 울린다. 그러나 그다지 효율적으로 오와 열이 맞춰지지는 않았다. 다들 어렴풋이 기억하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줄을 맞춰 서본 것이 너무도 오래전의 일이어서 영 낯설기만 하다.

서로 겹치고, 기준으로 지목된 사람이 움직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서 100명씩으로 나눈 소규모 인원이 정사각형 형태로 맞춰 서는 것만도 한참이 걸려야 했다.

점심 먹을 때가 다가올 때쯤에는 그래도 조금 진전이 있어서, 잠실의 외부 주차장에는 100명씩으로 구성된 열 개의 조가 거리를 두고 모여 서게 되었다.

가장 좌측에 모여 서 있던 14―1조의 민간인 수용자 100명 앞에, 여덟 명의 병사가 다가와 나란히 선다.

“백인대 14―1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을 선로로 모시고 갈 백인대 14―1조 대장입니다!”

분대장으로 보이는 병장이 민간인들을 마주 보고 서서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그의 뒤에는 일곱 명의 병사가 무장을 한 채 도열해 있다.

“…안녕하세요.”

민간인들이 우물거리며 답례 인사를 하자, 분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더 크고 자신감 있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우물거리면 저 밖에 나갔을 때 절대로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자, 다시 말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분대장의 우렁찬 목소리를 따라서 민간인들도 큰 소리를 질렀다.

좋습니다! 분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계속했다.

“자! 여기 좌측의 맨 앞 여자분부터, 저기 우측의 맨 뒤 남자분까지, 이렇게 100분은 백인대 14―1 소속이십니다! 14일 출발한 첫 번째 조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이 앞의 병사들, 저를 포함한 군인들의 얼굴을 잘 보고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연습을 하고 출발해서 선로 위로 이동하는 동안까지 내내 계속 함께 움직이며 여러분을 보호할 것입니다!”

와―

가벼운 환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인다. 계속 보호해 주겠다는 말에 반응한 것이다. 분대장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한강철교에 닿기까지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 거리는 총 800여 미터에 불과합니다. 누구나 쉽게 돌파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다만,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기 위해서 몇 가지 원칙을 머릿속에 새겨두고, 미리 연습을 해둘 필요는 있습니다! 제가 지시하는 대로만 따르신다면 여기 계신 100분 모두 안전하게 이동을 완료하실 수 있습니다!”

분대장은 자신만만한 말투로 말했다. 엄청난 실전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실은 그 역시 어제 처음으로 이 작전에 대해 배웠고, 그림으로 행동요령을 익혔다. 그리고 엄청나게 두렵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이 자신감 있는 태도를 끝까지 유지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분대원들과 민간인들을 통솔할 때, 큰 어려움이 있게 될 거라고 반복적으로 교육을 받았다. 그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한다.

한 번에 이동하는 민간인들을 100명 단위로 끊어 백인대를 만들고, 그들이 잠실 쉘터를 떠날 때부터 선로 위를 걸어 이동하는 내내 하나의 분대가 통솔하도록 한 것은 문 대위의 아이디어였다.

원래 사령부에서 계획하고 있던 방식은, 특정 전투 소대가 경로를 끊임없이 왕복해 가며 민간인들을 호위하는 것이었다. 이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전투 소대원들이 매우 심하게 육체적, 감정적으로 소모된다는 점이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좀비들과 싸우고 살아남았는데도 또 임무가 남았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 그들을 지탱해 주는 이성과 인내의 끈이 무너질 게 빤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한 번에 한 분대씩을 함께 이동시켜서 그들을 운명 공동체로 만드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이 앞자리의 열 분! 여러분은 항상 제 손을 보셔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든, 어디에 있든 간에 여러분의 눈은 제 손을 주목하십쇼. 제가 이렇게 손을 쫙 펴서 들면 멈추라는 표시입니다. 이걸 보자마자 여러분은 제자리에 섭니다.”

분대장은 뒤돌아서서 손바닥을 펴 보이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다시 돌아서서 이번에는 팔목을 앞으로 휘둘렀다.

“이 신호가 보이면 다시 가라는 겁니다. 계속 가라는 뜻도 되고요. 그러니까 제가 손을 펴서 들면 멈추셨다가, 이렇게 저으면 계속 가는 겁니다. 아셨습니까?”

맨 앞자리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수신호를 따라해 본다. 그래봐야 두 개니까 사실 외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분대장은 이번에는 그 뒤의 줄 사람들을 지목했다.

“둘째 줄 분들부터는 신호를 보실 필요 없습니다. 대신에 앞사람의 뒤통수에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앞사람이 서면 여러분도 서고, 앞사람이 가면 여러분도 갑니다. 그리고 항상 앞사람의 등에 손을 짚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뒷줄에 계신 분들 알겠습니까?”

분대장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을 때, 멀리 종합운동장 사거리 쪽에서 갑자기 분대 지원화기가 난사하는 소리와 좀비들의 포효가 동시에 울려 대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 타타타타― 투투투― 투투투투투투둑―

그롸아아아― 끄아아아―

느닷없는 총소리에 백인대 14―1조의 민간인들은 바짝 얼어붙어서 비명을 지른다. 300미터 이상 떨어진 철책 외부의 싸움인데도 그들에게는 그저 두려울 뿐이다.

“진정하십쇼! 이쪽으로 오는 게 아닙니다!”

분대장이 아무리 열심히 소리를 질러도 민간인들은 쉽사리 공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그쪽을 흘끔거렸다.

‘젠장…….’

분대장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직 쉘터의 울타리를 빠져나가기도 전부터 이렇게들 무서워하고 통제가 안 된다니… 한강 철교까지 무사하게 간다는 건 정말 요원하기만 한 일인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바로 몇 시간 뒤에 출발해야만 하는 가장 첫 팀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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