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손실률 5%(3)
잠실 쉘터의 대민 지원 센터는 순식간에 구름같이 몰려든 민간인 수용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모두들 단단히 화가 나 있고, 그런 만큼 목소리도 격앙되어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여기서 나가래? 응? 잘 있는 사람들 왜 괴롭히고 지랄이냐고!”
“아니, 이럴 거면 며칠 전에 태양 그룹에서 이송시켜 준다고 할 때 왜 막았어요, 왜! 거기가 아무리 후져도 세상에, 선로만 못할까?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가 편하게 살 권리를 방해하냐고! 난 못 가! 못 가니까, 다시 태양 그룹 오라고 해요!”
“인간적으로 최소한 어디로 간다는 말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야? 우리가 당신 노예들이냐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사람들이야? 대답 좀 해봐!”
성난 민간인 수용자들은 책상을 두드리거나 고성을 질러가며 항의를 했다. 군인들은 그들을 더 흥분시키지 않도록 애쓸 뿐, 맞서 싸우려들지는 않았다.
부드러운 대응으로 민간인들의 심리적 충격을 최대한 완화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오기도 한데다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일일이 소통한다는 게 불가능했다.
“진정하십쇼! 저희도 여러분과 똑같이 그곳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을 힘들게 하려는 게 아니라고요! 그러니 좀 진정하세요!”
군인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도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당연히 해명도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수준이어서 성난 군중들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웠다.
“아니, 이 중요한 결정을 자기들끼리 내리면 어떻게 하냐고?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헬리콥터 타고 편하게 갈 수 있었는데! 그걸 못 가게 했으면 여기에서라도 좀 맘 편히 살게 해줘야지!”
민구는 그렇게 항의해 대는 사람들과 군인들 사이에 난감한 표정으로 끼어 있었다. 그는 오늘치의 물과 건빵을 지급 받으러 왔다가, 갑자기 밀려든 사람들에 몰려 봉변을 치르는 중이다.
‘젠장, 하여간 뒈지려고 애쓰는 놈들은 인력으로 못 구한다니까…. 미친놈들아, 너희는 태양으로 가면 뒈지는 거야. 거기에 어떤 인간들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태양 그룹이 운영하는 시설로 보내 달라고 떼쓰는 사람들을 보며 민구는 속으로 혀를 찼다. 멍청한 놈들이 제 목에 올가미를 걸고서 당겨 달라고 조르는 형국이다.
그리고 일단… 너무 시끄럽다. 다들 뭐 그리도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지… 민구는 인상을 쓰며 귀를 막았다.
“그럼 저희는 차라리 건대로 갈게요! 전에 그쪽으로 사람들 많이 보냈잖아요! 어딘지도 모르는 데로 가느니 차라리 건대가 백배는 낫지. 네? 그리로 보내줘요!”
한 무리의 여자 수용자들이 한목소리로 애원을 하자, 군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됩니다! 어차피 건대나 한양대 같은 군소 위성 쉘터들도 조만간 이곳으로 합류하게 될 거예요! 다 이쪽으로 와서 다시 한강으로 간단 말입니다! 그렇게 될 건데 빈 체육관에서 여러분들끼리 뭐하시게요?”
건대? 건대 수용자들이 이리로 온다고?
순간, 민구는 귀가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흥분한 민구는 바로 직전까지 자신이 시끄럽다고 욕했던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어서 갑자기 그들보다 더 큰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어이! 군인 양반! 건대 사람들이 언제 합류한다고? 알려주쇼! 건대는 언제 합류한다는 거요? 언제 오냐고?”
그와 눈이 마주친 군인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민구를 바라본다.
“아니, 선생님은 그게 또 왜 궁금하신지…….”
“거기 일행이 있단 말이오. 날짜만 말해주면 돼. 더 귀찮게 안 할 테니까!”
민구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사람들이 밀어 치는 바람에 갈비뼈가 콱콱 울려 대지만, 그 정도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후우~ 짜증을 참기 위해 한숨을 내쉰 군인은 서류를 집어 들고 대답을 해주었다.
“에… 한양대가 이주 개시 5일 차에, 건대가 6일 차에 이동해서 합류합니다. 그러니까 날짜로는 일주일 뒤가 되겠네요. 됐습니까?”
“그러니까, 내일부터 이동하고, 그 6일 뒤에 건대 사람들이 온다고?”
“어휴~ 예, 예… 여기 그렇게 적혀 있네요.”
군인이 귀찮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대답하는 동안 민구의 뒤쪽에서는 또 성난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온다.
“이렇게는 못 움직여! 어디로 가는 건지! 왜 가는 건지! 설명이라도 하고, 동의를 구하라고!”
조금 전과 똑같이 거슬리는 소음이지만, 민구는 더 이상 불쾌해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일주일 뒤 다시 만나게 될 얼굴에게만 쏠려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소한 문제 따위는 신경 쓰고 싶지도 않다.
기동이 새끼… 잔뜩 빚을 지고 있는 놈이 자신이 있는 곳으로 찾아오게 된다. 앞으로 일주일 뒤에… 이런 호기가…….
민구의 흉터 진 얼굴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시는 못 만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복수의 기회가 이렇게 빨리 찾아오다니, 산다는 게 이래서 참 재미가 있다.
이동이 시작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히 잠실 쉘터는 혼돈의 장소가 되어갈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문신이 가득한 시체 한두 구쯤, 화장실 구석에 버려져 있다고 해도 누가 신경을 쓸 리가 없다.
민구의 머릿속에는 순식간에 설계도가 그려졌다. 기동이 놈의 살찐 목을 따고 나서 다른 조직원들의 눈에 띄기 전에 자신은 한발 먼저 선로 쪽으로 이동하면 된다. 그러면 육만배와 더 얽힐 일 없이 빚만 깔끔하게 갚는 거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꼼짝 말고 여기에서 버텨야겠군, 몸도 회복할 겸.’
민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몇 십 미터도 걷지 못해서 비지땀을 쏟아내던 그때와는 다르다. 며칠 전, 검은 군복 놈과의 그 승부도 처음부터 날붙이를 손에 쥔 채 죽일 마음을 먹고 달려들었다면,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칼부터 한 자루 구해야겠군.’
대민 지원 센터 주변의 인파가 어느 정도 걷힌 후에 민구는 자신의 사물함으로 가서 새 담배 한 갑을 꺼냈다. 그러고는 아직 한 번도 찾아본 적 없는 암시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놈의 검색에 걸릴까 봐 라그리프 나이프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이렇게 불편하다.
“아저씨, 뭐 찾아요? 말만 해요.”
상인들과 놈들을 돕는 계집애들이 민구에게 묻는다. 이동 소식의 여파 때문인지 암시장은 평소보다 조금 한가해진 상황이었다.
민구는 대꾸하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좌판에 늘어놓은 물건들을 눈으로 훑었다.
칼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그나마 보이는 몇 종류의 상품들도 날의 길이가 아주 짧은 놈들뿐이었다. 한동안 더 시간을 보낸 뒤에야 민구는 자신이 찾던 물건을 발견했다.
“이거.”
민구는 좌판 한구석에 놓여있는 과도를 가리켰다. 날 길이 6센티가량의 싸구려 물건이다. 어지간히 허름하고 볼품없지만, 맨손보다야 훨씬 요긴할 것이다. 사과 껍질도 깔 수 없을 만큼 무뎌져 있는 날이지만, 그건 갈면 된다.
“얼마요?”
민구는 고개를 들어 암시장 상인들을 쳐다봤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애송이들이다.
“음, 이 아저씨 뭘 좀 아네.”
애송이 상인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동이다 뭐다 심란한 이런 상황에서는 호신 용품이 갑이지. 내 몸 하나쯤은 내가 지켜야 하거든. 건빵 같은 거 아무리 많으면 뭐해, 지킬 힘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이 칼이 말이지, 인기가 좋은 물건이야. 도무지 가지고 들어오지를 못하게 하니까. 조금 전에도 어떤 사람이 와서 물어보더라고.”
녀석의 말이 길게 늘어진다. 아마 입으로 지껄이면서 얼마에 팔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모양이다. 민구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얼마라고.”
“비싼데… 아저씨는 가지고 있는 게 뭐유? 뭘로 사려고?”
“담배.”
민구는 짧게 대답했다. 주머니 속에는 몇 개비 피우지 않은 담배 한 갑과 조금 전에 꺼내 온 새 담배 한 갑이 들어 있다. 담배의 값어치가 워낙 높다고 하니, 그 정도면 이까짓 싸구려 과도 한 자루쯤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담배라… 어휴, 그런 걸로는 견적이 안 나오는데… 큭큭큭, 몇 갑이나 가지고 왔기에 그렇게 당당하시지? KT&G 이사님이라도 되나? 어이, 아저씨. 가지고 온 거 다 꺼내봐요.”
애송이 상인과 그 일행 놈들은 킬킬거리며 뭔가 장난을 치려든다. 훗, 민구도 코웃음을 쳤다.
“받고 싶은 값을 이야기해. 귀찮게 굴지 말고.”
으음… 잠시 더 고민을 하며 귀엣말을 주고받던 애송이 놈들은 이윽고 마음을 정했는지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인다.
“네 갑만 줘요. 원래 좀 더 싸게 줄 수도 있었는데, 아저씨 말투가 너무 싸가지 없어서 그렇게는 안 되겠네. 그리고 제발 깎자고 하지 마. 그런 말 꺼내려면 그냥 꺼져. 우리는 거지 새끼들이랑 거래 안 하니까.”
큭큭큭, 애송이 주변의 계집애들이 킬킬거린다. 민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물함에 있는 담배를 다 탈탈 털면 네 갑에서 몇 개비가 빠진다. 아마 그 정도면 거래는 될 것이다.
그런데 그걸 다 줬다가는 당장에 피울 것도 없고, 옆 자리의 외국인에게 붕대를 감아달라는 말도 못하게 된다.
“네 갑도 없나 보네. 큭큭큭, 뭐 저래? 설마 담배 몇 가치 가지고 와서 사려고 했던 건가? 미친… 큭큭.”
민구가 잠시 고민하자 애송이 녀석들이 신이 나서 웃어 댄다. 그런 놈들을 보며 민구는 생각했다.
‘그냥 빼앗을까? 인적이 없을 때쯤 다시 와서 이놈들을 때려주고… 아니지, 아니야. 공연히 시끄러워질 일은 하질 말자, 가뜩이나 이런 저런 일로 눈길깨나 끌었는데…….’
민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까짓 놈들 때문에 말썽이 났다가 정작 기동이 놈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세 갑에 사지.”
민구가 말했다. 그로서는 많이 양보한 셈이다. 하지만 애송이들은 단호했다.
“꺼지라고. 미친 새끼가 꼬나보면서 값을 깎고 자빠졌네. 그런 눈깔로 치켜뜨면 누가 무서워할 줄 아나? 우리도 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이런 거 하고 있는 거야. 왜? 애새끼들이 반말하니까 빡쳐? 확 그냥!”
애송이 중의 한 놈이 등 뒤로 손을 뻗었다가 칼을 빼 들고 내휘두른다. 민구는 녀석의 칼을 빤히 노려보았다.
날 길이만 10센티 이상의 캠핑용 나이프, 두께도 두툼하다. 새것이었을 때의 가격이 결코 이만 원을 넘지 않았을 물건이지만, 과도에 댈 바는 아니다. 그리고 접어서 휴대할 수가 있다.
“이게 좋구만.”
왼손으로 녀석의 팔목을 덥썩 움켜쥐고 당기며 민구가 말했다. 애송이 녀석은 당황해서 얼굴이 벌게졌다. 위협을 하기 위해 내두른 팔목을 그대로 잡혀 버릴 줄 몰랐다.
게다가 민구의 손아귀 힘, 바짝 말랐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뼈가 아플 만큼 강하게 잡고 놔줄 생각을 않는다.
“이, 이거 놔! 이 씨발!”
애송이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온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 쪽으로 향하는 걸 느끼면서 민구는 빙긋 웃었다.
“괜찮아, 이 새끼야. 해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마.”
그리고 그는 자신의 트레이닝 복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팔목을 틀어 검은색 베젤의 시계를 내보인 민구가 말했다.
“자, 이걸 주마.”
“…롤렉스네…….”
징징거리던 애송이들이 조용해졌다. 총에 맞았을 때, 구르고 자빠지며 조금 긁히기는 했어도 아직 멀쩡하다. 시계는 인기 품목이다.
암시장의 가장 큰 물주라고 할 수 있는 군인들이 워낙 좋아하는 물건이기도 하고, 값어치를 응축시켜서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만하면… 녀석들의 얼굴에서 욕심을 읽은 민구는 말을 계속했다.
“단, 나도 시계는 하나 있어야 돼. 이 칼에 아무거라도 시계 하나를 더 내놔.”
“그냥 돈 안 받고 줄 만한 건 싸구려밖에 없는데…….”
애송이들은 시계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민구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
“상관없어. 그냥 시간만 대충 맞으면 돼. 어차피 며칠만 쓸 거니까.”
일주일 뒤에 기동이 놈을 벌주고 나면, 녀석의 시계를 빼앗아 찰 심산이었다. 팔목을 잡힌 애송이 놈이 눈짓을 하자, 계집애들이 뒤쪽의 박스를 뒤적거린다.
“지금은 이거밖에 없어요. 아니면 이거랑요.”
그녀들이 내민 것은 전자시계와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시계, 두 개였다. 때마침 분이 새로 바뀌자, 미키 마우스의 긴 팔이 철컥, 한 칸 내려간다.
이… 이건 곤란해. 민구는 얼른 전자시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전자시계는 줄이 끊어진 채다.
“너희 지금 장난치냐? 이게 다라고?”
“싫으면 담배를 더 얹어 줘요. 그러면 이거보다는 좀 더 나은 게 있어요.”
애송이들도 여간 아니어서 완강히 버틴다. 이미 충분히 사람들의 시선을 끈 것 같아서 민구는 그냥 타협을 보기로 했다.
“뭐… 좋아. 그까짓 것, 어차피 며칠만 찰 건데. 그쪽 거, 줄 멀쩡한 놈으로 내놔.”
고개를 끄덕인 민구는 시계를 풀어 놈들 앞으로 내밀었다. 애송이도 시계와 캠핑 나이프를 민구에게 건넨다. 이걸로 거래는 성립됐다. 민구는 칼을 얻었고, 팔목에 매력을 더했다.
원래대로였다면 줄이 짧았을 시계지만, 살이 바짝 빠진 터라 앙상한 팔목에 겨우 고리가 채워진다.
캠핑 나이프의 날을 시험해 본 민구는 칼을 접어 호주머니에 넣고, 얼른 소매를 내려 빨강 반바지를 입은 쥐 그림을 가렸다.
찰칵, 미키 마우스의 팔이 또 한 칸 내려가며 1분이 지났음을 알린다.
☆ ☆ ☆
진우의 사격 교실은 늦은 아침 식사가 끝난 뒤에 시작되었다. 총의 각 부위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해주고, 탄창을 끼우는 요령과 모드, 방아쇠를 당기는 방법을 알려준 진우는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절대로! 절대로 이 총구, 사람을 향해서 겨누면 안 돼. 알았지? 항상 총구를 바닥으로… 야, 너희 듣고 있냐?”
듣고 있지 않았다. 다들 잔뜩 들떠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총에 대해 수다를 떠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이거 진짜 명심해야 하는 거야! 실수로 맞아도 죽는 건 마찬가지라고!”
진우는 친구들에게 다시 한 번 총의 위험성을 역설했다. 군에서 사격 훈련을 하기 전에 왜 그리 병사들을 굴리고 바짝 기합을 넣는지 알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이놈들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뺄 수 있는 걸까…….
“대장님, 질문 있습니다! 질문해도 됩니까?”
제니가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대장님…이라고? 풉―
신경이 곤두섰던 진우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어제 아침, 그의 주변에는 삼숙이와 시체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친구들과 하이바 속 사진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제니가 함께 있다. 당연히 좋다. 황홀할 만큼…….
큼, 큼, 억지로 목소리를 가다듬은 진우는 제니를 지목하며 말했다.
“질문해도 좋다.”
“그 총은 얼마나 멀리 있는 것까지 맞추는 건가요?”
물론 얼빠진 질문이지만, 진우는 그런 것도 용서할 수 있었다. 진우는 자신의 K-2 개머리판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이 총의 유효사거리는 600미터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250미터 내외의 적을 맞추기 위해 세팅을 해놓았어. 그보다 멀리 있는 목표를 맞추려면 영점 조절을 다시 하는 편이 효율적일 거야.”
“250미터래. 짱이다!”
제니와 태권소녀가 서로 마주 보고 손을 마주 부딪치며 환호한다. 자기들이 잘한 것도 아닌데 왜 저러나 싶다. 삼식이도 번쩍 손을 든다.
“친구님, 저도 질문해도 됩니까? 250미터 떨어진 것을 맞춘다는 게 뻥이라고 생각되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삼식이 놈은 허락을 구하는 척 하더니, 하고 싶은 말을 다 지껄이고 나서야 손을 내렸다. 녀석의 바보짓에 다른 일행들도 갑자기 동조하기 시작했다.
“진짜네. 그거는 너무 멀다. 뻥을 좀 심하게 쳤어.”
보안관과 유빈도 야유를 한다. 훗, 후후후, 이 바보 새끼들… 진우는 헛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어 놈들을 제지했다.
“아, 아, 조용. 250미터 정도는 아주 질릴 만큼 쐈어. 사단 사격 대회 나가서 1등 해야 한다고 우리 대대장이 연습을 죽도록 시켰거든. 그리고 그 거리가 너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멀지 않아. 예를 들어서 저기 보이는 저 건물… 저 툭 튀어나온 석조 건물 말이야. 그게 250미터쯤 떨어져 있어. 아니려나? 실제로는 한 270미터쯤 되겠다.”
진우의 말을 들은 모두의 표정이 ‘놀람’으로 바뀐다. 잠시의 침묵을 깨고 유빈이 물었다.
“…저 거리가 얼마나 되는 건지 그냥 눈으로 봐서 알 수 있다고?”
“응, 당연히. 딱 보면 알잖아. 저기 저 트럭은 여기서 45미터. 저 좀비는 70미터. 주유소 180미터… 아니, 그게 짐작이 안 돼?”
일행들은 다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저런 거 알 수 있어? 나는 전혀 모르는데?”
“모르는 게 당연한 거지. 무슨 인간 줄자도 아니고. 아니, 줄자라도 직접 재보기 전에 어떻게 알 수 있어?”
보안관과 삼식이도 괴물을 대하듯 진우를 보며 중얼거린다. 친구가 무사히 돌아온 줄 알았는데… 기계 인간으로 개조를 했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