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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묵시록 82-08-333화 (333/449)

1장 업그레이드(4)

“으아~! 이제 정말 마음 편히 쉬어볼까? 좀비들도 다 지나갔으니까!”

좀비들의 행렬이 코너를 돌아 시야 밖으로 사라지자, 삼식이는 시간을 기록하고 난 뒤 기지개를 쭉 켰다. 누가 들으면 조금 전까지는 엄청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줄 알겠다.

유빈은 규영이와 함께 도로 위에 남겨진 좀비들의 수를 헤아리고 있었다.

“열다섯 마리네.”

유빈이 머리를 긁적인다. 조금 전에 진우가 거의 육십 마리를 죽였는데, 이번엔 그 반의반 정도만 남았다.

뭔가 원칙이 없이 혼란스럽다. 좀비 무리들도 갑작스러운 궤도 변화에 아직 적응이 안 된 모양이다.

“근데 저 좀비들… 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진우가 유빈에게 물었다.

“예전에는 건대 쉘터라는 데를 경유해서 어딘가로 갔었나 본데, 지금은 아니야. 그래서 영 정신이 없어. 지금 보니까 여기를 통과하는 주기도 조금 짧아졌네. 우리가 새벽에 나갔다가 돌아왔으니, 그 후에 이게 적어도 두 번째 방문이라는 말이거든. 정확한 답을 얻으려면 며칠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에헤이~ 진우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골치 아픈 건 그만 생각해! 그런 건 유빈이한테 맡기고, 우리는 진하게 한 잔 해야지~!”

삼식이가 진우를 번쩍 안아 올려서 튜브 풀장 쪽으로 데리고 간다. 옆에서는 오늘 개명을 한 삼숙이가 덩달아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녀석이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개인지 몰랐다.

“자, 수영복으로 갈아입어! 풀 속에 들어가서 맥주 마시고 있으면 극락이야! 특히 이렇게 더운 날에는 아주 죽여줘.”

삼식이가 카트를 뒤적거려 수영복 바지를 꺼내 준다. 진우는 다급히 도리질을 했다.

“야, 민망하게 왜 이래? 너는 다 친숙할지 모르지만, 나는 너희 빼고 다 초면이란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무슨 수영복이야? 됐어, 그냥 너나 들어가. 나는 그늘에서 의자에 앉아 마시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호강이라고.”

“하하하, 민망하기는 뭐가 민망해. 앞으로 계속 얼굴 보고 살아야 하는 사이인데, 그렇게 내외하면 안 돼! 남 간호사! 이 환자 저항이 심하네요! 붙잡아주세요! 바지를 벗겨야 합니다!”

잔뜩 들뜬 삼식이는 보안관의 도움까지 요청해 가며 진우의 허리춤을 잡고 늘어졌다. 물론 보안관도 그 놀이에 동참하려고 성큼성큼 다가온다.

이 두 바보 새끼의 장단에 놀아나면 안 돼……. 진우는 필사적으로 지퍼를 움켜쥐고 애원을 했다.

“그만해. 여자애들이 보잖아. 아우, 야… 삼식아! 삼식아, 그만!”

얼― 얼― 정작 삼식이는 들은 척도 않는데 삼숙이 새끼가 대신 대답한다.

이래서야 굳이 이름을 바꾼 의미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하여간 개판이다. 진우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쳐서 겨우 삼식이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저 바보… 엄청 신났네. 하긴 늘 웃고 있기는 했지만.”

태권소녀가 삼식이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녀의 얼굴에는 슬픔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제니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검은 헬기에 끌려가 버린 동료들…….

그녀 본인이 죽을 뻔했던 순간을 넘기고 나니,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고개를 들 것이다. 제니 역시 테라를 버려두고 달아난 뒤, 한동안 그런 종류의 죄책감 때문에 괴로웠었다.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언니. 어쩌면 오늘 원수를 갚은 건지도 모르잖아요.”

제니가 태권소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태권소녀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오늘 죽은 놈들 중에는 없었어. 경순이 언니 데려간 그 놈… 다른 건 몰라도 말투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거든. 말을 심하게 더듬었어. 그 목소리… 지금도 귓가에 생생해.”

먼 곳을 노려보는 태권소녀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였다. 다시 만나게 되면 복수를 하고 싶다. 자신을 속이고 아무 잘못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잔인하게 죽였을 그놈의 죄를 철저하게 묻고 싶다.

그러나 만약 그녀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그녀는 그 검은 헬기와 두 번 다시 얽히지 않는 쪽을 택할 것이다. 오늘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동료들의 위기를 지켜보면서 그녀는 새삼 깨달았다.

자신이 이들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이 아이들과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복수 같은 건 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응? 무슨 목소리가 생생한데? 뭐 이야기하는 중이었어?”

곁을 지나던 유빈이 그녀의 말을 한쪽 귀로 얻어듣고 돌아보며 물었다. 보랏빛으로 물든 양쪽 눈두덩과 부어오른 입술과 코를 보며, 태권소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 그 검은 군복 놈들과 1대 1로 싸워도 이길 수 없으면서, 네 명을 유인해 보겠다고 버티다니…….

“네 이야기 하고 있었다. 네가 문 닫으면서 한 말이 자꾸 기억난다고. 나를 이기게 해줘~, 나는 이기고 싶어~.”

눈물을 찍어내고 밝게 표정을 바꾼 태권소녀는 유빈의 말투를 흉내 내며 놀렸다. 제니는 입을 가리며 웃고, 유빈은 당황했다. 그의 얼굴 중에서 멍이 들지 않은 부위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야… 그, 그건 좀 치사하잖아! 나는 그때 엄청 절박했는데, 절박한 사람이 했던 말 가지고 놀리기 있어?”

“에이, 오빠. 놀리다니요, 멋있었다고 칭찬하는 거잖아요. 하여간에 오빠는 여자 마음을 1도 모른다니까? 얼마나 멋있어요, 이기게 해달라고 여자에게 부탁하는 남자. 후후훗.”

제니는 유빈의 머리를 엉클어뜨리며 웃었다. 과장되게 웃던 제니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이 사람을… 다시는 못 보게 될 뻔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감정을 들키기 싫어 제니는 얼른 고개를 돌려 눈물을 감추며 말했다.

“안 놀릴 테니까 이제 빨리 진우 오빠한테 가요. 하고 싶은 말 엄청 많았을 텐데.”

“으응, 그럴게. 안 그래도 쟤 데리고 풀에 들어가려던 길이었어.”

유빈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직도 삼식이와 씨름 중인 진우에게 걸어갔다. 절룩거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감정을 추스른 제니가 태권소녀에게 웃어 보인다.

“우리도 물놀이할까요?”

“그래, 수정이 언니도 같이하자. 살아 있을 때 즐겨야지.”

잠시 후, 래시 가드와 비키니 팬티로 갈아입고 나온 세 여자가 생수 풀 안에 몸을 담그고 샴페인을 나눠 마시기 시작했다.

물보라가 튀고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오자, 삼숙이 놈은 침을 사방으로 흩날리며 달려가 물속에 첨벙 뛰어들었다.

‘꺄아! 이 침 어떡해!’

여자들의 즐거운 비명 소리가 한층 더 높아진다.

“저것 봐! 진우야, 저 삼숙이 녀석을 좀 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잖아. 너는 지금 개만도 못한 거야. 그만 얌전 빼고 빨리 물에 들어가자! 너 물 구경 해본 지도 엄청 오래됐을 거 아니야.”

삼식이는 진우의 등을 두드리며 채근을 해 댄다. 그래그래, 유빈과 보안관도 팔을 잡아끈다.

“야, 이 미친놈들아. 물 구경을 못했을 거라는 게 대체 뭔 소리야? 어제부터 거의 열두 시간 이상을 물속, 물 위에서 보냈다니까… 제트스키 타고 오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는 말은 어디로 듣고… 아니, 너희는 왜 이렇게 고집이 세냐?”

진우는 맨발로 의자 깊숙이 기대앉은 채 완강하게 버텼다. 지금 눈앞의 저 광경은… 너무 심한 자극이어서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신체의 어떤 부위가 아주 흥분해 있다. 지금 일어났다가는 정말 엄청난 망신을 당하게 될 상황인데, 이놈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나는 너희랑 달라서 시간이 좀 걸려! 아직 말도 못 놓겠어. 그러니까 여유를 줘.”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구만!”

보안관은 진우의 웃옷을 확 잡아 벗겼다. 그러고는 그를 번쩍 안아 올려서 생수 풀로 걸어갔다.

“군인 하나 배달이요!”

힘찬 구령과 함께 보안관은 진우를 풀에 빠뜨려 버렸다.

촤아악―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넘친다. 여자 셋, 큰 개 한 마리, 그리고 진우가 한데 모여 있게 되니, 풀에는 여유 공간이 거의 없어졌다.

“생수 추가요!”

삼식이가 양손에 생수병을 들고 콸콸, 부어준다. 졸지에 흠뻑 젖은 진우는 여자들을 향해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엉덩이를 뒤로 뺐다. 고추가 커져 있다는 걸 들키면 그걸로 끝이다.

“자요! 한 모금 마시고 줘요! 영웅 오빠!”

태권소녀가 여자들끼리 돌려 마시던 샴페인 병을 척 내민다.

“하하하, 언니는~ 오빠 아니잖아요!”

제니는 화보에서보다 더 아름다운 웃음을 짓는다. 정말 예쁘다.

“나도 오빠라고 한 번 불러봤으면 좋겠어서 그랬지.”

태권소녀의 너스레에 임수정도 손뼉을 쳐 댄다. 뒤쪽에서는 풍덩 소리가 들려오고, 삼식이는 계속 물을 퍼다 나르고 있다. 삼숙이 개새끼는 핥아대지, 예쁜 여자들은 술을 권하며 치켜세우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 예, 고맙습니다.”

진우는 마지못해 받아 마셨다. 술인지 물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대체 이렇게 불편한 자리를 얼마나 더 오래 지속해야 하는 건지… 눈앞이 캄캄하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났다.

“이병 박진우! 원샷 들어갑니다!”

진우는 벌떡 일어나 맥주 캔을 들고 입안에 들이부었다.

콸콸콸―

맥주가 쉼 없이 목젖을 타고 넘어간다.

“캬아! 봤냐? 봤지?”

빈 맥주 캔을 머리 위에서 털어 보인 진우가 좌우로 엉덩이를 흔들며 임무 완수의 기쁨을 표현한다.

“그염, 이제 내 차예! 도저언!”

벌써 꽤나 혀가 꼬인 제니가 손을 들고 일어난다. 그러고는 고개를 홱 젖힌 후, 맥주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팽팽하게 내밀고 있는 그녀의 가슴이 자석처럼 진우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우와, 가슴 진짜 크다.’

진우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분명히 마음속으로…….

“풉!”

제니가 코와 입으로 맥주를 뱉어냈고, 모두의 시선이 진우에게 향했다. 바로 옆에서 꾸벅거리며 졸고 있던 신입도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진우를 돌아다본다. 진우는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야, 혹시… 내가 지금 소리 내서 말했냐?”

“응… 엄청 똑똑하게 들리던데.”

으아~ 진우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놈의 혼잣말… 결국 이렇게 개망신을 시키는구나…….

그가 사과를 하려고 하기도 전에 제니가 보안관을 불렀다.

“보안관 오빠아~! 진우 오빠가 나한테 야한 말 했어요!”

카우우우~ 커어어어~

하지만 보안관은 뭘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급한 성격답게 누구보다 빠르고 열심히 달린 덕에 벌써 아까부터 코를 골아대는 중이다.

“아우~ 진우는 역시 변태구나. 계속 야한 생각만 하나 봐. 하하하하.”

녹차 풀에 들어 있던 삼식이는 삼숙이를 끌어안고 웃다가 뒤로 넘어갔다.

“아… 아니, 제니야, 이건… 내 잘못이긴 한데… 네가 좀 이해를…….”

진우가 다급하게 변명을 하려는 순간, 뭔가 흰 게 눈앞으로 훅 날아온다. 태권소녀의 발이다.

“으이구! 으이구! 진짜! 생명의 은인이면 그딴 식으로 굴어도 되냐?”

태권소녀는 옆으로 비스듬히 기댄 채 긴 다리를 휘둘러 가며 기합 소리에 맞춰 발차기하는 시늉을 한다.

“야, 그런 거 아니라고! 나 원래 이런 말 지껄이는 인간 아니야. 너도 한 달 동안 혼자서 산속을 헤매고 다녀봐! 자기도 모르게 미친놈처럼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게 돼. 자기 입 밖으로 나오는지도 모른단 말이야.”

“누가 그런 것 때문에 그래? 응?”

태권소녀는 여전히 다리를 내리지 않은 채로 진우의 눈앞에서 흔들어 댔다. 그럴 때마다 물방울이 튄다. 진우는 난감해하며 물었다.

“그럼 뭔데?”

“왜 내 다리 예쁘다고는 혼잣말 안 하냐고오~!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했다는 거잖아! 너, 아까 예쁜 애들이라고 했던 거, 그거 뻥이었냐? 끄윽!”

얼굴이 벌개져서 딸꾹질을 해 대면서도 예쁘다는 소리는 들어야겠나 보다. 임수정도 웃고, 제니도 웃는데, 정작 진우와 태권소녀만 진지하다.

그런 꼬라지들이 맨 정신인 사람이 보기에 얼마나 가관인지, 유빈은 오늘 아주 생생히 목도하는 중이다.

“후우… 지랄들 한다. 젠장, 나도 술 마시고 싶다.”

풀 옆의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서 친구들이 노는 걸 지켜보고 있던 유빈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얼굴이 붓고 입안이 온통 다 찢어져 저 즐거운 유희 속에 낄 수 없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

끄으응~ 끄응~ 평소보다 격했던 모험에 지쳐 일찌감치 잠이 든 규영이 앓는 소리를 낸다. 유빈은 녀석의 어깨까지 비치 타월을 끌어 올려주고,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길고 뜨거웠던 하루가 다 저물고 이제 노을빛조차 어둠 속에 사라져 가고 있다. 정말 대단한 날이었다.

“내가 먼저 당번 설까?”

모두가 곯아떨어지는 것으로 환영 파티가 끝을 맺었을 때, 삼식이가 하품을 하며 유빈에게 물었다.

대체 이 괴물은 얼마나 퍼마셔야 뻗는 걸까……. 유빈은 새삼 감탄을 했다.

“아니야. 너도 술 마셨으니까 조금 자둬. 졸려지면 깨울게.”

“그럴까? 근데 사실 유빈이, 네가 제일 많이 쉬어야 할 것 같은데… 엄청 아프지?”

삼식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유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혜주 말이 이럴 때 누우면 더 붓기가 심해진대. 앉거나 서서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라고 하니까, 뭐.”

“그렇구나. 훗, 신기한 날이었어.”

그물 침대 위에 널브러져 정신없이 자고 있는 진우를 돌아보며 삼식이가 웃는다. 유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먼저 잔다. 피곤하면 곧바로 깨워.”

가볍게 손을 흔들고 자동차 운전석으로 들어간 삼식이도 이내 꿈나라로 떠났다. 이제 정말로 사방이 고요해지고, 적막과 달빛, 하늘의 별들과 친구들의 숨소리만 유빈의 주위를 감싼다. 유빈은 컴컴한 도로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산책로를 따라가는 계획은 완전 폐지다. 그 계획 속에는 몸을 숨길 만한 대피 장소가 거의 들어 있지 않았다. 하늘에서 헬리콥터가 쫓아온다는 변수를 전혀 감안하지 않은, 무모한 짓이었다.

거짓말 같은 진우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들 중 대부분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쫙 돋는다.

조금 더 불편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정면으로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 진우와 함께하는 만큼 더 많은 선택지를 염두에 둬도 된다.

그롸아아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거리를 배회하던 좀비 중 한 놈이 포효한다.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다.

“읏!”

진우가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가슴팍을 더듬거린다. 아마 총을 찾는 모양이다. 유빈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괜찮아, 진우야. 신경 쓰지 말고 더 자. 멀리 있는 좀비야.”

“아~ 아, 그래… 나… 너희들이랑 만났지.”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눕는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일어났다.

“얘는 왜 여기서 자냐?”

자동차 옆에 웅크리고 잠이 든 삼숙이를 가리키며 진우가 물었다.

“아, 그놈. 총 지키는 것 같더라. 내가 그 차에 네 총 넣어뒀거든. 엄청 무서워. 근처에 지나가기만 해도 이빨을 드러내면서 으르렁거려. 눈은 꾹 감고 있으면서.”

“그런 거구나. 짜식.”

진우는 삼숙이의 등을 몇 번 쓸어주고 나서 유빈의 옆자리에 앉았다. 유빈은 퉁퉁 부은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더 자라니까. 아직 새벽 한 시도 안 됐어.”

“그러려고 했는데, 한 번 깨고 나니까 두근거려서 잠이 안 와.”

친구들을 돌아본 진우는 미소를 지으면서 유빈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유빈은 녀석의 팔을 두드려줬다. 두 친구는 나란히 앉아서 한참 동안 말없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보고 싶었다.”

둘 중 하나가 말했다.

“…응, 그래.”

그리고 또 침묵이 이어졌다. 그걸로 충분했다.

☆ ☆ ☆

고 하사는 10층짜리 건물의 옥상에서 남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불이 환하게 밝혀진 건대 쉘터에서는 그다지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한참을 더 지켜보던 고 하사는 아래쪽 도로로 시선을 돌렸다. 부근에 좀비는 없다. 돌아가기에 좋은 타이밍이다.

고 하사는 재빨리 계단을 뛰어내려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러고는 좌우를 한 번 둘러본 후, 맞은편의 5층짜리 상가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아~ 하아~ 강 소위님, 저 다녀왔습니다.”

5층의 문 앞에 선 고 하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노크를 했다.

“응, 기다려. 잠깐만.”

안쪽에서 잠겨 있던 문이 달칵, 소리를 내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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