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32화 (332/449)

1장 업그레이드(3)

“미친! 말 같은 소리를 해! 삼식이가 암만 바보라도 개한테 이름을 빼앗기는 꼴은 못 봐줘!”

보안관이 곧바로 반대 의사를 표하며 언성을 높였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의견이 분분해졌다.

생명을 구해준 ‘은견’인 만큼 개의 이름 앞에는 ‘킹’을 붙여서 ‘킹 삼식이’라고 구분하자는 파와 그건 부르기에 너무 불편하다는 파가 나뉘어 바보 같은 격론을 벌이고 있을 때, 유빈이가 입을 열었다.

“근데… 얘가 정말 자기 이름을 정확히 알기는 해? 혹시 한 글자 정도 속여도 모르는 거 아니야?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개…잖아.”

어? 듣고 보니… 말이 되는 것 같은데… 모두의 시선이 유빈과 개에게 집중된다.

“사식아.”

유빈은 은근하게 녀석의 이름을 업그레이드해서 바꿔 불렀다. 하지만 개와 인간 삼식이, 둘이 합쳐 육식이는 함께 장난치고 노느라 유빈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안 되는 건가?”

사식이, 오식이를 시험해 보고 나서 유빈이 포기하려 할 때, 제니가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뒤의 글자를 바꿔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제가 한 번 시험해 볼게요.”

제니는 테이블의 건너편을 향해 팔을 벌리고 녀석을 불렀다.

“삼숙아! 삼숙아! 언니한테 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삼식이였던 녀석은 얼른 제니를 향해 달려가서 의자에 앉은 그녀의 흰 허벅지 위에 두 발을 턱, 얹고 헥헥거리며 아양을 떤다.

제니는 녀석의 얼굴을 양쪽으로 잡고 장난스럽게 위아래로 돌리면서 다독거렸다.

“잘했어, 잘했어… 이제 예전 이름은 저 오빠한테 주고, 넌 삼숙이 하자, 응?”

옆자리의 태권소녀도 웃으며 녀석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렇게 할 거냐, 삼숙아?”

얼―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호칭에 대답을 했다. 제니와 태권소녀의 사이를 오가는 녀석의 주둥이에서 침이 뚝뚝 떨어지자, 여자들은 가벼운 비명과 함께 간드러지게 웃는다.

분위기 참 좋구만. 이렇게 간단할 수가…….

진우는 허망해져서 개새끼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삼숙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녀석의 배 아래쪽, 커다란 고추에 자꾸 눈길이 간다.

인간 삼식이 못지않은 바람둥이 녀석인데 이렇게 성정체성에 변화를 줘버려도 되는 것일까? 진우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근데 걔 수컷인데…….”

“에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왜? 이름 때문에 다른 개들에게 놀림받을까 봐? 괜찮아.”

보안관이 전혀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입안의 피를 닦아내고 있던 유빈도 문제없다며 거든다.

괜찮은 건가…….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아서 진우도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그리하여 삼식이는 이름을 지켰고, 대장 개 삼식이는 삼숙이로 개명을 했다. 킹을 마다하고 삼숙이를 택하다니… 진우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이다.

“삼시… 삼숙아, 너 진짜 괜찮아, 그 이름?”

진우도 한 번 불러봤다. 삼숙이 새끼는 홱 한 번 돌아볼 뿐, 여전히 여자들의 품에 안겨 노느라 정신이 없다. 두 번을 불러도 마찬가지다. 가벼운 배신감이 진우를 감싼다.

개새끼… 마음대로 해라.

“저기… 근데요. 형님, 뭐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까 선로에서 좀비들을 사살했을 때부터 존경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우만 바라보고 있던 규영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응? 뭔데…요?”

“저… 총이요. 저도 형님한테 가르침을 받으면 형님처럼 잘 쏠 수 있을까요?”

규영은 진우가 세워둔 K―2를 가리키며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극존칭을 사용해 물었다. 얼마나 그 말을 물어보고 싶었던지 녀석은 밥도 거의 먹지 않은 채 말을 걸 기회만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나도 궁금했어요. 엄청나던데… 근데 총이라는 건 원래 그렇게 잘 맞는 건가?”

태권소녀도 관심을 보이며 끼어들었다. 삼식이와 보안관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 요즘 국산 무기 엄청 잘 나오나 봐. 그냥 당기면 당기는 대로 다 꽂히는 것 같던데? 혹시 저게 자동 유도장치 같은 거냐, 진우야? 저거에 딱 맞추면 그냥 명중하는?”

보안관이 조준경을 가리키며 자동 유도장치 운운하자, 삼식이도 맞장구를 친다.

“음, 뭔가 굉장히 비싸 보이기는 해. 저걸 자동 장치라고 하는구나. 엄청 잘 맞더라.”

“아니… 그거 자동도 아니고, 유도도 안 돼. 그냥 망원경 비슷한 거야. 너희… 내 편지 안 읽고 그냥 버렸냐? 내가… 썼잖아. 내가 우리 대대에서 제일 잘 쏴서 대대장에게 칭찬 받았다고. 사격 대회 나가게 될 거라고… 그런 말 기억 안 나?”

진우는 바보들의 이야기를 끊고 보안관부터 유빈까지를 비잉 둘러보며 물었다. 세 놈이 한목소리로 대답한다.

“읽기야 했는데, 안 믿었지. 그냥 뻥치는 거라고 생각했어. 아하~ 이 새끼, 우리가 군대 모른다고 아무 소리나 막 지껄이는구나… 뭐, 이런 심정?”

허허… 진우는 허탈하게 웃었다.

“하아~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한테 설명하려니까 엄청 막막하네. 그냥 나중에 몇 발씩 쏴보게 해줄게. 그때 너희가 몸으로 느끼게 될 거다. 아, 총이라는 게 의외로 잘 맞추기가 어렵구나 하는 걸.”

진우는 적당히 잘난 척을 하며 대답을 해줬다. 제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러니까, 오빠가 엄청나게 잘 쏘는 거네요? 대한민국 제일의 명사수?”

“아… 아니,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씀하시면… 좀…….”

막상 칭찬을 받자 그건 또 좀 부끄럽다. 쑥스러운 듯 웃던 진우는 아직도 자신을 주시하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규영의 시선을 깨달았다. 진우는 진지한 얼굴로 돌아가 생각을 해봤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데다가 몸이 작고 마른 이 아이가 K―2를 다룰 수 있을까?

“음… 이건 반동이 꽤 있어서 팔 힘도 필요하고, 몸무게도 어느 정도 나가야 돼. 어깨에 바짝 붙이고 쏘지 않으면 곧바로 튀어 올라서 얼굴을 때리거든.”

진우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규영은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는구나… 하는 좌절감이 그의 표정에서 느껴진다. 진우는 말을 계속 이었다.

“그런데… 오늘 빼앗아 온 총 중에서 MP5는 이것보다는 훨씬 다루기가 수월할 거야. 그건 더 작은 실탄을 사용하고, 무게도 약간 가볍고, 반동이 적어. 총기 자체의 길이도 짧으니까 네가 잡기에도 더 편할 거고.”

“그, 그럼 저도 배울 수 있어요, 형님?”

“배울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 말하고 진우는 친구들과 태권소녀, 제니, 그리고 신입과 임수정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미성년자인 녀석에게 총을 잡도록 해도 되는 건지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는 오늘 이 규영이라는 아이를 처음 봤다. 나쁜 아이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 성격이나 됨됨이가 어떤지는 잘 모른다.

“정말로 그 애도 배울 수 있어요? 그럼 나도 배울래!”

규영의 보호자인 태권소녀는 허락을 넘어서 적극적인 동참 의사를 밝혀왔다. 진우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애써 피해왔던 신입도 거기에 끼어보려 하고, 제니도 호기심을 보였다. 인기 폭발이다.

하긴 세상이 이렇게 되고 나니 사회적 약자라는 건 아무런 보호 장치도 되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미성년자도, 여자도 제 몸을 지킬 수 있는 편이 더 낫다. 진우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가르쳐 줄게요. 대신에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연습해 볼 수 있어요. 혹시라도 무심코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하면 내가 곧바로 제지할 수 있어야 하니까.”

“형님, 그러면 언제부터 시작하실 거예요? 식사 끝나고 나서요?”

흥분한 규영이가 욕망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태권소녀가 녀석을 제지한다.

“규영아, 이 형 오늘 엄청 피곤할 거야. 자꾸 보채면 안 돼.”

“네에~”

조금 기운이 빠져서 대답하던 규영이 다시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저기 근데요, 더 잘 배우기 위해서 미리 준비해야 하는 건 없을까요, 형님? 보시다시피 저는 불리한 점이 많거든요.”

규영은 자신의 휠체어를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글쎄… 진우는 생각을 해봤다. 휠체어의 바퀴를 목표와 직각이 되도록 하고 쏘면 반동 때문에 뒤로 밀리거나 흔들리는 걸 최소화할 수 있을 테고… 그밖에는… 사실 그 역시 잘 모른다.

자신이 왜 총을 잘 쏘느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말이 막막하니까. 그래도 역시 기본 체력은 필요할 것이다.

“아무래도 팔이나 허리에 힘이 있는 편이 좋을 거야. 총을 잡고 방아쇠를 당길 때, 얼마나 흔들림이 없는가가 명중률과 비례하니까.”

“넵! 그럼 계속 운동하고 있을게요! 밥도 잘 먹고요!”

만족한 규영이가 들떠서 즉석 밥과 햄을 입에 퍼 넣는다. 진우도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이미 한 번 억울하다고 징징거리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먹는 식사는 정말로 훌륭했다.

이 많은 종류의 즉석 식품들과 통조림, 음료수와 주류……. 신선한 육류나 야채는 없지만, 그에 필적하는 수준의 음식들이 넓은 테이블 가득 채워져 있다.

통조림 스프를 떠먹고, 통조림 소시지를 머스터드에 찍어먹고, 피클을 베어 먹고, 블루베리 잼을 바른 크래커를 씹으며 진우는 점점 이해할 수가 없어졌다.

“근데 왜 잠실까지 가려고 했던 거야? 이렇게 풍족하게 살면서 굳이 수용소까지 가보려고 했던 이유를 모르겠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안 나와. 잠실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거기도 군인들이 하는 데라고. 이런 고급 음식 같은 건 절대로 배급 안 나와. 꿈도 못 꿀걸?”

진우는 플라스틱 컵에 담긴 고가의 와인을 들어 보이며 유빈을 가리켰다.

“인간답게 대우해 주지도 않아. 얼마나 심하냐면, 나 있던 데에서는 얘처럼 다친 병사는 끌고 가서 죽였다니까? 좀비에 물렸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풉―! 죽인다는 말에 깜짝 놀라 유빈은 마시던 음료수를 뱉어냈다. 피가 잔뜩 섞인 음료수가 플라스틱 컵 안에 퍼져 간다.

“어머, 정말이요? 언니, 진짜 잠실에서 그래요?”

제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임수정은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잠실은 그 정도는 아니었어. 군인들이 상처를 보면 질색하는 건 나도 알긴 하는데… 아주 작은 상처라도 일단 피가 보이면 엄청 긴장을 하더라고. 근데 무작정 죽이지는 않았어. 그… 격리 시설이라고, 동물 우리처럼 만든 철창이 있어. 거기에서 꼬박 이틀을 보내야 돼.”

“아, 이 언니는 잠실이랑 건대 쉘터에 다 계셨었거든요.”

제니가 진우를 돌아보며 보충 설명을 해준다. 오, 진우도 호기심이 생겨서 새삼스럽게 임수정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 사람은 또 무슨 사연으로 친구들이랑 함께 살게 된 걸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더니 정말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 궁금한 것투성이다.

진우의 시선을 느낀 임수정은 가벼운 미소를 지어주고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었다.

“인간다운 대우라… 생각해 보면 잠실이나 건대는 저 친구가 있었던 곳보다는 확실히 더 나은 곳이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의료 지원 같은 건 크게 없었어. 다들 자기가 자기 몸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지. 음식도… 그냥 굶어 죽지 말라고 주는 수준이었고. 그런 것보다 더 힘든 건… 사람들의 수에 비해 모든 게 너무 부족했다는 거야. 누워 잘 곳도, 화장실도……. 물론 테라는 그런 상황에서도 늘 웃었지만.”

“테라요?”

진우의 눈이 빛난다. 혼자 있는 제니를 보며 당연히 테라는 죽었거나 생사 불명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제니가 고개를 푹 숙였다.

“네에… 테라가 거기에 있다고, 오빠들이랑 언니들이… 저를 거기까지 데려가 주려다가 아까 그 사달이 난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진짜 가지 말아요. 오늘 하마터면 다 죽을 뻔했잖아요. 저 혼자… 화장실에 숨어 있으면서 계속 후회했어요. 나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서요. 걔는 거기에서 사랑 받으면서 잘 있고, 저도 여기에서 행복하니까…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안 다치는 게 훨씬 더 중요해요.”

태권소녀가 제니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그게 아니잖아. 무슨… 네가 이기적으로 군 것처럼 말을 하냐? 테라에게 항체가 있으니까 구해 와서 우리도 더 안전해지려고 했던 건데. 물론 그게 걔를 위해서도 훨씬 나은 일이기도 하고.”

항체? 모르는 이야기들이 막 나온다. 무슨 항체지?

진우는 상황을 이해하고 싶어서 유빈을 돌아보았다. 진우가 입을 떼기도 전에 유빈이 설명을 시작했다.

“항체라는 게 뭐냐면… 테라는 좀비한테 한 번 물렸는데, 변하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대. 그러니까 걔 핏속에 아마도 좀비에 대한 항체가 있나 보다 하고 추측을 하는 거야.”

“그런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둔다고? 병원으로 끌고 가서 연구하는 게 아니라? 아니… 그보다 유빈이, 너 독심술 하냐? 내가 네 얼굴보자마자 항체에 대해 물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

“뭘 어떻게 알아? 네가 네 입으로 이야기해 놓고. 네가 그랬잖아, ‘항체? 모르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무슨 항체를 말하는 거지? 유빈이에게 물어봐야겠다’는 둥 그렇게 말했잖아, 방금. 그건 그렇고…….”

“내가 그 말을 소리 나게 했다고? 생각만 한 게 아니라?”

진우는 깜짝 놀라 다시 물었다. 계속 혼자 있으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려버릇 했더니,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랑 있으면서도 무심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게 된 모양이다.

으아, 곤란한데… 조심해야 되겠다. 뭔가 실수해서 뺨 맞기 딱 좋은 인간이 되어버렸어.

진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마의 땀을 훔쳐 냈다.

“에이, 그 정도로 네 뺨을 때리겠냐? 그건 그렇고, 테라가 물리고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건 아직 아무도 몰라. 테라 본인하고, 여기에 있는 우리가 아마 그 사실을 아는 전부일 거야. 그래서 우리가 잠실에 가려고 했지. 네 말처럼 위엣 놈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테라를 병원으로 끌고 가서 온갖 실험을 해 댈 테니까 그전에 빼 오려고. 그리고 그 애 혈청을 주사하면 우리도 면역이 될지도 모르잖아.”

유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마무리했다. 진우는 자신이 또다시 소리 내어 말했나 싶어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면역력을 얻는 것도 좋고, 최고의 미녀 아이돌 팀이 다시 뭉치는 것도 좋다.

다만 문제는 이 녀석들의 실력은 아직 그런 일을 할 수준이 안 된다는 데에 있다. 진우는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렇구나… 총을 쏠 수 있게 되면 맨손으로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하지만 시간은 좀 걸려. 단순히 쏘고 탄창을 갈아 끼우는 게 아니라, 조심하는 법이 몸에 배어야 하거든. 그러니까 배우자마자 당일부터 총을 들고 다닐 수는 없어. 그리고 총알의 수도 제한적이고.”

“에이, 어차피 며칠 내로는 안 가. 그 검은 헬기 놈들 잔뜩 독이 올라서 왔다 갔다 할 텐데, 공연히 불속에 뛰어들 필요는 없잖아. 유빈이도 저 상태로는 못 움직이고,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한 잔 더 받아.”

삼식이가 다가와 진우의 컵을 다시 채우며 말했다. 진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근데, 여기는 괜찮아? 이렇게 옥상에다가 잔뜩 어지럽혀 놓으면 안 보려고 해도 눈에 띌 텐데.”

“아… 여기는 그 개새끼들이 이미 한 번 훑고 갔거든. 그래서 막연히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네 말 듣고 보니 뭔가 위장막이라든가 좀 더 조심을 해야겠네. 아니면 옥상을 아예 비워두고 아래층 주차장에서 밥을 먹어도 되고.”

대답을 해준 유빈은 머뭇거리다가 빈 잔을 내민다.

“나도 한 잔 더 줘. 술이 막 땡기거나 하는 건 아닌데, 알코올 기운이 있으면 좀 덜 아파질까 해서. 아우, 턱이야.”

그때, 태권소녀가 끼어들어서 엄한 목소리로 잔소리를 한다.

“유빈이, 너는 술 그만 마셔. 지금 너 입안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혈관이 다 터졌는데, 술을 마시면 엄청 더디게 아문다고. 염증 생겨서 고생하고 싶어? 몸도 약하면서.”

“크… 알았어. 그만 마실게. 근데 나 언제쯤 이 멍든 거랑 부은 거 다 풀려?”

유빈이 자신의 퉁퉁 부은 눈과 코를 가리키며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태권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모르지. 나는 얼굴이 그 지경이 되도록 맞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냥 약 열심히 발라.”

크흐흐흐~ 유빈은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서 헛웃음을 웃었다. 보안관과 태권소녀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시원하게 두들겨 패줬고, 신입도 차를 몰래 탈취하는 쇼로 놈들에게 한 방을 먹였는데, 그 자신은 그저 줄기차게 두들겨 맞기만 했다. 단 한 대도 되받아치지 못했다.

“슬슬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다. 이제 신입, 너도 담배 그만 피워. 좀 참아.”

삼식이가 시계를 보며 말하자, 막 새 담배를 물려던 신입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내려놓는다. 당연히 진우도 그 악취를 느꼈다.

“삼식아… 이거 좀비 냄새인데? 아까 네가 보여준, 그 가둬놨다는 놈들 정도가 아니야. 꽤 많은 느낌이다.”

“으응, 맞아. 이 앞으로 좀비들이 잔뜩 지나갈 거거든.”

“잔뜩? 얼마나 되는데?”

“잘 모르겠네… 걔들을 다 더하면 한 몇 천 마리나 되려나? 하여간 많아. 곧 올 테니까 직접 봐. 아, 총 쏘거나 소리 지르면 안 돼.”

친구들은 진우를 데리고 도로와 마주 보는 난간 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크게 긴장하는 기색은 없다. 다들 목소리를 한 톤 다운시키기는 했지만, 평소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오네, 왔어.”

플라스틱 잔을 기울이던 삼식이가 싸구려 망원경을 진우에게 넘겨줬다. 진우는 뿌연 렌즈 너머로 보이는 좀비들의 수에 먼저 놀라고, 그놈들에게 묻어 있는 페인트에 또 한 번 놀랐다.

“왜 저렇게 큰 덩어리가… 그리고 저건 어디에서 묻혀 온 거야? 안 그래도 기분 나쁜 놈들인데, 훨씬 더 기분 나빠졌잖아.”

“아, 그거… 유빈이가 묻혀둔 거야. 원래 저 새끼들이 저렇게 큰 덩어리가 아니었는데, 하도 정신없이 돌아다니니까 하나로 모아서 통제하려고. 그래야 편하잖아.”

보안관이 대답해 줬지만, 진우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통제? 저 많은 놈들을 통제한다고? 그리고 어떻게 모을 수가 있어?”

보안관은 다시 좀비들의 이동 방식과 그들이 페인트를 사용한 이유, 그리고 하나로 놈들을 묶은 과정을 설명해 줬다. 바로 눈앞에서 결과물을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얼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진우는 자신의 곁에서 퉁퉁 부은 멍투성이 얼굴을 문지르며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유빈을 돌아보았다.

좀비들의 규모는 아무리 작게 잡아도 규모 넷 중반. 대대 병력이 상대하기에도 여간 버겁지 않은 수다. 그런데 그의 친구 놈들은 겁도 없이 맨손에 해머만 가지고 그런 일을 이뤄냈다.

그리고 그 모든 큰 그림의 뒤에 유빈이… 이 녀석이 있다. 정말 이놈, 머리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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