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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묵시록 82-08-331화 (331/449)

1장 업그레이드(2)

그토록 애틋하게 친구들을 생각하던 진우의 우정과 사랑에 뭔가 균열이 생기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이게…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코스트코의 옥상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진우의 입에서는 힘없는 혼잣말이 터져 나왔다. 파라솔이 달린 대형 식탁에 비치 의자, 흔들의자에 그물 침대, 넘쳐 나는 술과 음식, 그리고… 액체가 가득 찬 세 개의 대형 튜브 풀.

“어때, 진우야~ 우리 사는 데가 여기야. 마음에 들어?”

삼식이가 진우의 엉덩이를 툭, 치며 물었다. 유빈과 보안관도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간다.

“아무 데나 편한 데 앉아. 딱히 정해진 자리 없어. 아… 그리고 저기 저 카트에 든 게 술이고, 이쪽 카트가 음료수야. 먹을 건 여기.”

진우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음에 드나 안 드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

나는 너희들이 이보다 훨씬 더 비참한 상황을 참고 견디며 생존해 왔던 거라고만 생각했다고! 내가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건…….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니까, 같이 이야기들 하고 있어. 약은 우리가 가져올게. 어차피 이 언니도 멍든 데가 많아서 치료해야 돼. 난 좀 씻기도 해야겠다. 아, 젠장… 너무 울어서 머리가 어떻게 되는 것 같아. 가뜩이나 날씨도 뜨거운데.”

마시고 남은 물을 머리에 부은 태권소녀가 유빈에게 말했다. 진우가 보기에 임수정이라는 누나도 어지간히 지쳐 있다.

신입이 정찰을 하고 차에 접근하는 동안 그녀가 계속 규영이를 업고 뛰어다녔었다고 한다.

“금방 올게요, 오빠.”

인사를 남긴 제니와 태권소녀, 임수정이 생수병과 비치 타월,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내려간다.

짤깍, 짤깍.

그녀들이 갈아 신은 슬리퍼 끌리는 소리가 아득한 환상 속의 배경음처럼 느껴졌다.

“에어컨! 에어컨!”

나름 엄청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하는 신입은 옥상에 올려둔 미니밴으로 들어가서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켰다. 그러고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샴페인을 병째 홀짝거린다.

“저기… 삼식아… 이거, 내가 생각하는 그 용도 맞아?”

물이 찰랑거리는 튜브 풀을 가리키며 진우가 멍청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장 개 삼식이에게 물을 부어주던 인간 삼식이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되묻는다.

“하하하, 네가 뭐라고 생각했는지 알아야 내가 맞는지 틀리는지 대답을 해주지.”

“뭐겠어… 수영장이지.”

“음, 잘 알고 있네! 딩동댕~ 아, 그거 노란색 풀은 맥주야. 들어가고 싶으면 너도 씻고 와. 여자애들은 그냥 맹물을 더 좋아하더라.”

저 풀 속에 제니랑 같이 들어가기도 하고 그랬다고?

컬처 쇼크를 받은 진우는 비틀거리며 대형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온갖 사치스러운 술들의 빈 병이 잔뜩 늘어져 있다. 진우는 1/4쯤 남은 양주병을 들어 라벨을 살펴보았다.

“죠니 워커… 블루?”

진우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린 체리를 우물거리며 술이 담긴 카트를 뒤적거리던 삼식이가 그 소리를 듣고 대꾸한다.

“아! 그거! 먹을 만하더라! 향이 꽤 좋아서 코에 은은하게 남는 게… 에, 내가 그걸 어디에 넣어놨지…….”

이런 미친……. 진우는 울컥해서 삼식이를 돌아보았다.

야! 네가 언제부터 양주를 먹어봤다고 먹을 만하다는 둥 향이 어쨌다는 둥 그딴 소리를 떠들어? 게다가 이렇게 비싼 걸…….

진우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담배를 피워 문 삼식이가 다가와 커다란 플라스틱 컵에 새로 딴 와인을 부어 준다.

“마셔봐. 이거 한 병에 이백만 원 넘는다고 하더라고. 진우야… 이렇게 다시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잘 왔어.”

삼식이가 진우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흔들의자에 앉아서 이마에 물수건을 덮고 있던 보안관이 끼어들었다.

“아, 나는 그거 별로더라. 존나 떫기만 하고 영… 진우야, 포도주 마시고 싶으면 차라리 저기 까만 병에 든 거 마셔. 그게 더 나아. 달달하고 약간 탄산도 느껴지고, 이름이 뭐더라… 돔 페리뇽이었나?”

유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건 그냥 얕은 맛이지. 진우는 술 좋아하니까 저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음… 아니면 위스키가 더 입에 맞으려나? 삼식아, 너 그 위스키 다 마셨어? 40년인가 된 거 있다며? 스코틀랜드 제.”

“하하, 아니, 그걸 어떻게 다 마셔. 근데 일단 도수가 약한 것부터! 밤은 길고 기니까!”

삼식이가 여유롭게 웃으며 테이블 위에 와인 병을 내려놓았다. 진우는 자신의 손안에 든 와인 컵과 친구 새끼들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너희 대체 왜 이래… 단체로 로또 맞은 새끼들처럼…….

“건배하자! 진우야! 돌아온 친구를 위하여!”

친구들은 일제히 잔을 들고 진우를 향해 외쳤다.

꿀꺽!

위화감이 들든 어쨌든, 목은 마르고 눈앞에 술이 보인다. 진우는 와인을 들이켰다.

“허!”

한 모금 만에 눈이 동그래진 진우가 와인 병을 다시 보았다.

보안관 바보 새끼! 이게 맛이 별로라고? 죽이잖아! 뭔가 엄청 복잡하고 미묘하고…….

소주 마시고 손가락으로 입술을 닦을 때에는 못 느껴봤던 맛이다. 진우는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삼식이에게 물었다.

“이… 이런 걸 매일 마셨다고?”

“하하하, 이것만 어떻게 매일 마셔… 먹고 싶을 때만 마시는 거지. 아, 혹시 돈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치, 나도 그런 걱정은 했어. 이렇게 먹고 놀고 있을 때, 갑자기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가면 이 물건 값을 다 못 갚을 텐데… 하는 걱정 말이야. 그래서 난 웬만하면 내가 물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쓰려고 했는데, 제니가 그런 거 걱정 말고 다 쓰래. 자기가 전부 물어줄 수 있다고.”

삼식이의 입에서 제니의 이름이 나왔다. 진우는 목소리를 낮춰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야… 근데 제니는 왜 같이 있는 거야? 대체 언제부터 같이 있었어? 아까 보니까 꽤나 친밀한 것 같던데.”

“아아, 제니?”

삼식이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

“친밀한 거야 당연하지, 뭐. 벌써… 거의 한 달 된 것 같은데? 좀비 때문에 난리 나고 며칠 안 돼서부터 같이 살았으니까. 그 시간 동안 같은 데서 자고 먹고 똥 싸고…….”

“그러니까… 거의 처음부터 쟤랑 같이 살았다고?”

“응.”

삼식이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녀에, 고급술에, 옥상 풀장이라니… 누가 들으면 재벌 3세의 삶인 줄 알겠네…….

공연히 억울해진 진우는 다시 와인을 들이켰다. 와인은 여전히… 아니, 조금 전에 마셨을 때보다 오히려 더 훌륭해졌다.

진우는 다시 병을 들고 라벨에 적힌 글자를 떠듬떠듬 읽었다. 대체 자신이 뭘 마시고 감탄했던 건지 정도는 알고 싶다.

“그랜드 빈… 이게 뭐라고 쓴 거냐? 채테…아우 라…투어.”

“샤또 라투르…요.”

등 뒤에서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와 진우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허리를 숙여서 끼어들었던 제니가 미소를 짓고 물러나며 유빈의 옆에 앉는다.

진우의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숨결이 남기고 간 향기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는 것 같다. 하이바 안쪽에 늘 붙어 있던 사진 속의 주인공이 지금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빠, 어우, 어떡해요. 얼굴이… 세상에… 가만히 있어요. 따가울 거예요.”

제니는 약상자를 열고 알코올 솜으로 유빈의 퉁퉁 부은 얼굴을 닦아준다.

으으! 으으! 유빈이 따갑다며 난리를 치자, 제니는 얼른 후우~ 후우~ 입김을 불어주었다.

차마 눈뜨고는 못 봐줄 풍경이다. 유빈의 상처투성이 얼굴도 더 이상 불쌍해 보이지 않아졌다. 진우는 생각했다.

나도 좀 다칠걸…….

“생명의 은인을 대접하는 건데, 먹을 게 영 보잘것없어요. 그래도 좀 드세요.”

간략하게 씻고 돌아온 태권소녀가 테이블 위에 음식 봉지를 내려놓았다. 햄, 즉석 밥, 과일 통조림, 김치 참치, 연어 통조림, 말린 망고와 체리, 병에 든 커피… 전혀 보잘것없지 않다.

“나는… 쫄쫄 굶다가 날감자 흙 털어 먹으면서도 맛있다고 히죽거렸는데… 너희는 이, 이런 걸 먹었다고?”

진우가 멍한 얼굴로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린다.

“나는, 나는… 흙 웅덩이 물을 떠먹고 있을 때, 너희는 샤또 뭐시기를 마셨다고? 그리고… 내가 혼자서 강원도 산골을 다 헤매고 다니는 동안, 너희는 이렇게 예쁜 여자애들이랑… 풀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했단 말이야? 누구는 개새끼 끌어안고 풀밭에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어떤 새끼들은 제니랑 같은 공간에서 잤다고? 그것도 푹신한 침대 위에서? 이게… 이게 말이 돼? 너무 불공평하잖아.”

말을 하다 보니 정말로 눈물이 맺혀서 진우는 몇 번이나 눈을 훔쳐야 했다. 진짜 너무 억울하다.

“아냐, 우리도 고생 엄청 했어! 여기 들어오려고 며칠 동안 죽인 좀비가 한… 백 마리는 될걸?”

보안관이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했다. 그래봐야 진우의 분노를 꺾을 수는 없다.

“백 마리? 난 매일 그 정도 죽였어! 난리 나고 삼척으로 가서 처음 며칠 동안은 하루에 그 다섯 배씩 죽였다고! 이, 씨… 그러고 보니까 내가 훈련소 들어가던 날도 이 개새끼들 미팅한다고 약 올렸었지… 아, 안 되겠어. 이 새끼들, 진짜 용서가 안 된다. 너희 세 명, 다 일렬로 쭉 서. 한 방에 다 죽여줄 테니까.”

진우는 총을 잡는 시늉을 하며 삼식이의 어깨를 밀었다. 삼식이는 얼른 자리를 옮겨가서 보안관의 옆자리에 나란히 선다.

“쭉 서? 이렇게?”

“아니잖아! 이 새끼야! 한 방에 죽인다고 했으니까 네가 나랑 보안관 사이에 서야지! 일렬 종대로! 어후~ 이 바보야!”

진우가 답답해서 가슴을 두드리자, 보안관과 유빈이 배를 잡고 웃었다.

얼― 얼―

대장 개 삼식이도 신이 나서 짖어 댄다.

“하하하, 이렇게 만났으니까 됐잖아. 이제부터 너도 여기 있는 거 다 먹고, 우리랑 재미있게 지내고, 저 풀에 들어가서 땀 식혀. 내가 특별히 너는 물속에서 오줌 싸도 뭐라고 잔소리하지 않을게.”

삼식이는 다시 옆자리로 돌아와 진우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젠장, 불쌍한 녀석들을 구해줬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제일 불쌍한 새끼였어……. 진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닦았다.

“그래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그런 의미에서… 자, 건배! 그리고 예쁜 여자애‘들’이라고 해줘서 고마워요.”

태권소녀가 샴페인을 건네며 말했다. 진우는 또 볼이 빨개져서 변명을 했다.

“아, 아니,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저는… 하소연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냥 툭 나온 말이라서… 성희롱이나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태권소녀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화가 난 건지, 아닌지도 잘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무뚝뚝한 말투다. 진우가 멍해져 있는 동안 태권소녀는 대장 개 삼식이를 돌아보았다.

“얘 이런 거 먹으려나? 비싼 개 같던데, 입이 까다로우면 어쩌지?”

태권소녀는 바닥에 종이 접시를 놓고 그 위에 닭 가슴살 통조림을 몇 개나 까놓았다. 그러고는 손뼉을 쳤다.

“이리 와, 멍멍아! 밥 먹자!”

대장 개 삼식이는 신나게 달려와서 미친 듯이 입에 욱여 넣는다. 보고 있는 진우가 괜히 민망해질 지경이다.

잘 먹네, 태권소녀는 기분 좋게 웃으며 녀석의 등을 쓸어준다. 보안관이 음식을 우물거리며 대장 개 삼식이를 가리켰다.

“근데 얘는 뭐야? 군견이야?”

“…나도 몰라. 그냥 여행 도중에 만나서 같이 온 친구야. 되게 똑똑해. 너희들 거기에 있는 것도 얘가 알려줘서 알았거든.”

“우와! 그럼 얘도 생명의 은인이네요.”

제니가 반응을 보이자, 대장 개 삼식이는 얼른 그녀의 자리로 가서 아양을 부린다. 제니는 녀석의 얼굴과 머리를 쓸어주며 웃었다.

“엄청 순하네요. 애교도 많고.”

“응, 이렇게 큰 애들이 의외로 순하더라.”

태권소녀도 녀석에게 호감을 보인다. 여자 둘의 품에 안겨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한 녀석이, 진우를 힐끔 돌아보며 비웃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지조도 없는 새끼…….

헥헥거리는 그 얼굴이 꼴 보기 싫어서 진우는 자신의 목덜미를 가리키며 솔직하게 경고를 해줬다. 치사하다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걔… 바로 어제 사람 하나 물어 죽였는데… 여기를 이렇게 잡아 뜯어서.”

“에에이! 농담도!”

여자들은 까르륵 웃으며 또 삼식이를 쓰다듬는다. 경고는 안 통했다. 개새끼는 신이 나서 구르고, 일어나고, 손도 내주고, 온갖 재주를 부려 댔다.

“진우야, 그 조끼도 벗고 총도 내려놔. 안 불편해?”

유빈이 말했다.

응?

그제야 진우는 자신이 전술 조끼를 착용하고 총을 멘 채 식탁에 앉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몸의 일부인 것처럼 절대 따로 떼어놓지 않았는데, 이제 그렇게까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지 않아도 된다.

“참, 그러고 보니…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우리는 너희 부대가 이 근처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전에 하는 말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나 보네? 강원도를 다 헤매고 다녔다는 둥, 혼자 감자를 캐 먹었다는 둥. 너 이렇게 우리랑 같이 있어도 되는 상황이야? 너 없어졌다고 누가 찾아다니면 어떡해?”

보안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진우는 조끼를 벗고 총을 식탁에 기대놓으며 대답했다.

“나 전역했어. 그다음에 여기로 온 거야. 삼척에서부터 여기까지… 그러니까 나 찾을 사람 아무도 없어. 봐, 옷도 민간인 옷이잖아.”

“허~ 이런 상황에서 전역도 시켜줘? 총이랑 총알도 주고? 그건 좀 의왼데?”

“그럴 리가 있냐? 그냥… 나 혼자 전역하기로 한 거지. 이만하면 나라를 위해 충분히 봉사한 것 같아서.”

“그렇구나. 알았어. 자식, 고생했다! 정말 장해! 고맙다, 새끼야.”

보안관은 진우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친구의 전역을 축하해 주었다. 역시나 엄청난 힘. 손이 닿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 그래도 이 기분이 싫지 않아서 진우는 웃었다.

가족들, 그리고 오래 함께 일했던 작업반장, 황씨 아저씨, 오씨 아저씨의 안부도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이 녀석들이 좋은 소식을 알고 있었다면 벌써 이야기해 줬을 것이기 때문이다.

“멍멍아! 멍멍아! 이거 줄게! 나한테도 와봐!”

건너편에서 밥을 먹고 있던 삼식이가 햄 조각을 흔들며 대장 개 삼식이를 유혹했다. 녀석은 지조도 없이 얼른 뛰어가 삼식이의 손에서 햄을 받아 삼킨다.

“옳지! 잘했어! 하하하. 진우야, 얘는 이름이 뭐야?”

삼식이가 대장 개 삼식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물었다. 아… 진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걔도 삼식이…….”

“어? 진짜? 이런 우연이 있다니! 그렇게 흔한 이름도 아닌데! 하하하, 엄청 신기하네! 그렇지, 삼식아?”

삼식이는 개의 눈을 마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얼― 대장 개 삼식이는 자신의 이름에 분명하게 반응한다. 유빈이 말했다.

“우연이 아닐걸? 여행 중에 만났다고 했으니 진우가 아무 이름이나 새로 붙인 거겠지. 삼식이 네가 젤 보고 싶었나 보다, 야.”

“아하! 그런 거였구나아~ 그래도 이왕이면 더 예쁜 걸로 지어주지. 더 멋있는 이름도 많을 텐데.”

삼식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우는 음식을 삼키고 나서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도 새로 이름을 지어서 주려고 했지. 좀 멋지고 강해보이는 이름. 그런데 암만 여러 이름을 불러봐도 저놈이 아무 반응을 안 하는 거야. 그러던 놈이 어느 날 우연히 삼식이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대답을 하더라고. 뭐, 그렇게 하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더라.”

“그래? 원래 네가 붙여주려고 했던 이름은 뭐였는데?”

“킹!”

“어? 그러게. 내 생각에도 삼식이보다 킹이 훨씬 더 멋진 것 같은데… 멍멍아, 너 킹이라고 하자. 킹!”

삼식이는 대장 개의 얼굴을 잡고 킹이라는 이름을 주입하려 애를 썼다. 녀석이 반응하지 않자 삼식이는 다시 한 번 권했다.

“잘 봐, 멍멍아. 우리 둘 다 삼식이면 헷갈려서 곤란해.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그래봐야 대장 개 삼식이는 꿈쩍도 않는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신입이 삼식이에게 제안을 했다.

“골 아파할 게 뭐가 있냐? 이제부터 너는 삼식이 말고 본명으로 불러. 삼식이라는 이름은 개한테 주고.”

“… 삼식이가 본명인데?”

삼식이와 세 친구가 동시에 대답을 했다.

그게 본명이라고? 진짜?

신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삼식이에게 말했다.

“그럼 그냥 네가 킹 하면 되겠네. 너는 그 이름이 더 멋있다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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