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업그레이드(1)
연사 모드로 바꾼 진우의 K―2는 맹렬하게 5.56㎜ 탄을 쏟아냈다.
잠시 허공을 가르던 총알 궤도가 헬기 부근으로 고정되자, 티잉― 팅! 팅! 티잉! 검은 헬기의 랜딩 기어와 하체에서 작은 불꽃이 튄다.
쐐애애애앵―
헬기는 재빨리 자세와 각도를 바꾸며 진우의 시야 밖 상공으로 올라가 버렸다. 진우도 얼른 배낭을 집어 들고 다른 위치를 찾아 뛰었다.
저 정도의 위협을 받았으니 분명 놈들도 긴장을 했을 것이고, 당연히 좀 더 안전한 각도를 찾아 저격을 하려 들 것이다.
그런데 검은 헬기의 탑승자들은 진우가 짐작한 것보다 훨씬 더 놀랐고, 훨씬 더 겁이 많았다. 그들은 이런 식의 전투를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단순히 어린 새끼들이라고만 깔봤던 상대방 중에 순식간에 헬기를 맞출 만한 실력자가 있다는 걸 깨달은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무조건 철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건 일방적인 유린이지, 목숨을 건 결투가 아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료의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보복은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상공으로 물러난 뒤, 고가도로 앞에 세워져 있던 유빈 일행의 자동차를 향해 MP5를 쏴댔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탄창 두 개를 소진해 가며 총알을 쏟아붓자, 자동차에서는 금세 검은 연기와 함께 화염이 피어올랐다.
― 좀비들 상대로 실컷 싸우다 뒈져라, 개새끼들아!
검은 헬기는 확성기를 통해 마지막 저주의 말을 남기고는 북서쪽 하늘로 멀어져 갔다.
“다들 괜찮아? 아무도 다친 사람 없어?”
프로펠러 소리가 멀어진 것을 확인한 진우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응! 괜찮아! 너야말로 안 다쳤어? 너 엄청 가까이에서 싸웠잖아. 바로 총알이 막 날아오던데…….”
되는대로 엄폐물을 쌓아놓고 있던 유빈과 보안관이 일어서며 되물었다.
얼― 대장 개 삼식이도 무사하다는 걸 알리며 달려온다. 진우는 녀석의 목덜미를 쓸어주며 대답했다.
“나는 괜찮아. 근데 지금 저 새끼들 도망가기 전에 뭐라고 지껄였던 거야? 좀비…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쿨럭! 쿨럭! 어휴! 이 연기.”
깨진 창문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검은 연기 때문에 진우는 코를 가린 채 친구들 쪽으로 돌아왔다. 유빈도 콜록거리며 반대편 창밖을 내다봤다.
불타오르는 자동차는 기둥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가 본 것은 그저 계속해서 벽을 타고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뿐이었다.
“건물에 불이 났나 봐… 가스통 같은 게 있었나? 젠장, 빨리 여기에서 나가야 될 것 같아, 우리.”
그렇게 유빈이 착각을 하고 있을 때,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동쪽 선착장 쪽에서 좀비 특유의 악취가 바람에 실려 날아왔다. 진우의 팔에는 소름이 돋아 올랐다. 진우와 친구들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돌아보았다.
“왜 저렇게 많이…….”
멀리 공원의 잔디밭을 가득 메우고 걸어오는 좀비 무리들을 보며 삼식이가 중얼거렸다. 적어도 천 마리는 훌쩍 넘을 것 같다.
“젠장! 이 동네 도는 놈들인가 보네. 가자, 빨리! 신입이랑 다 데리고 와서 도망쳐야 돼!”
보안관이 짐을 챙겨 들고 외쳤다.
“잠깐만! 혹시 지하철로 들어가서 못 나올 경우도 대비해야지!”
매점의 카운터를 넘어가 비상용 플래시를 꺼내 온 유빈이 배터리의 종류를 확인하며 소리쳤다. 다행히 카메라용으로 같은 사이즈의 배터리를 판매하고 있다.
제니는 쇼 케이스를 열어 비닐봉지에 음료수를 담았다. 다들 꽤나 오랫동안 아무 수분도 섭취하지 못했다.
“아! 맞다! 우리 차! 이쪽에 세워놓지 않았어? 불이 옮겨붙으면 안 되는데!”
태권소녀와 보안관이 퉁탕거리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고, 나머지도 그 뒤를 따랐다. 근거리이긴 하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는 편이 더 빠르다. 그리고 그래야 길이 엇갈리거나 하는 불상사도 방지할 수 있다.
“야, 어떻게 해… 이 연기… 건물에 불이 난 게 아니었어. 우리 차가 타면서 나는 거야…….”
자욱한 연기를 훑으며 가장 앞서서 계단을 뛰어 내려간 태권소녀가 뒤를 돌아보며 힘없이 말했다. 보안관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뭐어? 진짜? 이 개새끼들이 뭘 하나 했더니, 우리 차를 쐈구나!”
콰아앙―!
그 순간, 폭발음과 함께 검붉은 화염이 치솟아 오른다. 윽, 보안관은 팔을 들어 열기를 막았다. 온몸을 흠뻑 적셨던 땀이 순식간에 증발할 만큼 뜨거운 불길이다.
“아니… 근데 이상해. 차가… 왜 하나뿐이야? 또 한 대 어디 갔어? 카니발…….”
자욱한 연기가 걷히고 불길이 좀 진정되었을 때, 보안관이 중얼거렸다.
응? 진우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의아한 표정으로 변했다. 분명히 두 대를 나란히 세워뒀는데, 지금 불타고 있는 코롤라 옆자리는 텅 비어 있다. 카니발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지? 하아~ 하아~ 차가 없으면 그냥 지하철로 상봉역까지 쭉 걸어가야 하나? 쟤 안 될 것 같은데?”
태권소녀가 비틀거리는 유빈을 가리키며 물었다. 유빈은 도리질을 하며 과장되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아니야, 나 멀쩡해. 지하철로 가자.”
다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유빈을 바라봤다. 한눈에도 허세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퉁퉁 부은 얼굴, 오금과 허벅지를 계속 두들겨 맞아 피멍이 든 두 다리는 계단도 잘 오르내리지 못한다. 보안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얘는 내가 업고 갈게. 진우가 앞장서면 되니까.”
그때였다.
빵― 빵―
고가도로 아래 주차장에서 라이트를 켠 자동차 한 대가 맹렬한 기세로 달려왔다. 그러고는 운전석 밖으로 못생긴 얼굴을 내민 신입이 큰 소리로 외쳤다.
“빨리 타! 이 새끼들아! 빨리! 좀비 온다고! 도망쳐야 돼!”
“신입!”
삼식이가 놀란 목소리로 부르자, 신입은 고개를 저으며 운전석 문을 탕탕, 두들겼다.
“알아! 나 대단한 거! 그러니까 빨리 타기부터 하라고! 칭찬 나중에 하고!”
드르륵―
뒷자리의 슬라이드 도어가 열리자 임수정과 규영의 얼굴이 보였다. 규영도 애타게 손짓을 한다.
“형아! 형아! 누나아~!”
“와! 너희 어디 있었어? 응? 이 차는 언제 빼놨고?”
“야! 됐어! 그딴 소리 지껄이지 말고 빨리 뒷자리로 옮겨! 다 탔어… 히에에에엑!”
보안관의 뒤쪽에 가려져 있던 대장 개 삼식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신입은 숨넘어가는 비명을 내지르며 아직 문도 닫지 않은 채로 출발하려 들었다. 옆자리에 탄 삼식이가 얼른 녀석을 만류했다.
“아냐! 아냐! 쟤는 괜찮아! 나쁜 개 아니야! 내 친구가 키우는 개야!”
“뭐? 네 친구? 네 친구라야 다 여기 있는 새끼들인데, 갑자기 뭔 개를 키운다는 거야…….”
친구들과 신입이 난리를 치는 동안 진우는 불길 사이를 뚫고 달려가 쉐도우 실드 놈들의 시체에서 무기를 회수했다. 정말로 다급할 때에는 총알 한 발에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기관단총이 몇 정이나 떨어져 있고 실탄도 수백 발이 널려 있는데, 그걸 회수하지 않았다가는 두고두고 후회를 하게 될 거다.
“받아!”
진우는 자동차 안으로 가방을 넘겨주고, 좁은 차 안에 몸을 밀어 넣었다.
“저, 저건 누구야? 총, 총을 들고 있잖아…….”
신입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삼식이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쟤가 진우야. 너도 들은 적 있지? 우리 친구 중에 군대 간 애 있다는 이야기.”
“몰라… 난 모르겠고, 어쨌든 간에 이제 출발하면 되는 거지? 다 탔지?”
아홉 명을 태운 카니발은 빠르게 속력을 올리며 공원의 자전거도로로 진입했다. 태권소녀가 규영을 꼭 안아주는 동안 신입은 룸미러를 통해 뒤를 힐끔거리며 외쳤다.
“봤냐? 규영이, 이 새끼야? 이래도 내가 배신자냐? 응? 이래도 나한테 지랄할 거야? 아니잖아! 나 때문에 살았잖아! 이 새끼야!”
“그건 또 뭔 소리야? 왜? 규영이가 뭐라고 했는데?”
삼식이가 묻자 신입은 그간의 억울함을 담아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아니… 지하철로 도망쳤다고 저 새끼가 내 등을 후려치면서 얼마나 지랄을 해 대는지. 의리도 없는 배신자라고… 응? 내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라고… 급할 때는 일단 카니발 열쇠부터 챙겨야 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서 그런 거지. 지금도 나 아니었으면 어떡할 뻔했냐? 응? 어떡할 뻔했냐고! 흐윽~ 이 개새끼들아… 히잉~ 나는 너희 다 뒈지는 줄 알고… 흐으윽! 씨발, 존나 무서웠는데, 흐윽… 살아 있어서, 살아 있어서 고마워… 흑! 이, 개새끼들.”
한참 기세 좋게 떠들어 대던 신입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진저리를 쳤다. 녀석이 그럴 때마다 차가 좌우로 요동을 친다. 규영도 눈물을 닦으며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설명해 준다.
“신입 형이 나를 업고 수정이 누나를 끌고 도망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뭐라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랬죠. 그랬더니 저 형이 하는 말이… 자기는 아무 도울 능력이 없다고, 그러니까 유빈이가 시킨 대로 눈치껏 차만 빼놓아도 엄청나게 돕는 거래요.”
“도움된 거 맞잖아! 내가 안 빼놨으면 이 차도 지금쯤 숯덩이가 됐을걸? 그럼 그냥 총 앞에 헤딩해야 그게 도와주는 거냐? 응?”
“알았어! 알았어! 진정해, 신입. 우쭈쭈, 장하다, 장해!”
삼식이가 신입을 다독거려 놓고 다시 물었다.
“근데 대체 언제 차를 뺀 거야? 응? 우리가 계속 그 근처에 있었는데, 너 못 봤는데? 시동 거는 소리도 못 들었어.”
“내가! 누나랑 저 새끼 역에 숨겨놓고 틈틈이 계속 나와서 봤다고! 물론 계속 쳐다보지는 못했어. 걸리면 큰일 나는 거니까. 근데 갑자기 총소리가 들리는 거야! 존나게 놀라서 내다봤더니, 그 개새끼들이 다 뒈져 있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거야. 때는 이때다 싶어서 차를 빼러 갔더니, 갑자기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래서 잽싸게 시동 걸어서 주차장 사이에 몰래 숨겨놓은 다음 기다렸지. 그게 얼마나 아슬아슬했는지 알아?”
겨우 울음이 좀 그친 신입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의 모험담을 늘어놓았다. 그걸 들으니 대충 상황이 정리된다.
녀석은 아마도 친구들이 사무실의 문을 열고 모두 다시 만나 감격적인 재회를 하고 있는 동안에 카니발에 다가갔을 것이다. 그리고 녀석이 시동 거는 소리는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에 묻혔을 것이고.
“저기… 잘했어, 신입. 정말 큰일 했으니까 이제 앞에 보고 운전 잘해. 네가 눈물 닦을 때마다 차가 휘청거리는 바람에 무서워 죽겠어. 좀비들 다 떼어놓았으니까 속도도 좀 줄이고.”
유빈이 깨진 뒤쪽 창을 통해 멀어진 좀비들을 확인하고 나서 말했다. 신입은 고개를 젓는다.
“아니, 집에 갈 때까지는 절대로 속도 안 줄여… 그 개새끼들 언제 또 만날지 몰라서 지금도 간이 콩알만 하다고. 이게 무섭냐? 차 좀 비틀거리는 게 뭐가 무서워? 씨발, 머리통에 총을 대고 있는 게 무서운 거지. 진짜…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너희는 상상도 못할 거다. 나는 이제 한강이라면 아주 이가 부득부득 갈려. 다시는 여기 안 와! 다시는 안 올 거고! 속도도 안 줄인다고!”
정말 죽다 살아난 놈처럼 신입은 거칠게 운전을 했다. 그들을 태운 자동차는 순식간에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서 아까 좀비들이 떨어져 내리던 좁은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좁은 길을 막고 멈춰 서 있는 오피러스를 쿵쿵, 부딪쳐 밀어낸 신입은 곧바로 속도를 올렸다.
찌지직― 끼이익―
난간에 차체가 긁히는 소리가 귀를 자극해도 멈칫하는 기색조차 없다.
“하아아~ 하아아~ 다 왔다. 다 왔어. 으흐흑~ 젠장, 존나게 무서웠어.”
10여 분 만에 10킬로미터를 내달린 카니발은 웅덩이를 앞두고 멈춰 섰다. 문을 열고 내린 신입은 긴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녀석의 두 팔은 아직도 달달 떨리고 있다.
“크으~ 차 꼴 좀 봐라.”
유리창은 박살 나고 지붕이 찌그러진데다 차체는 온통 흠집투성이가 되어버린 카니발을 보며 보안관이 혀를 찬다. 기세 좋게 출발했던 세 대의 차량 중에 겨우 한 대만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다.
“여기로 올라가야 하는데… 얘를 어떻게 하지?”
삼식이가 대장 개 삼식이의 목덜미를 만져 주며 선로에 설치해 두었던 줄사다리를 올려다보았다.
이런저런 수를 내봤지만 별로 마땅한 게 없어서, 결국 진우가 녀석을 업고 거기에 자신의 몸을 로프로 묶어 고정한 뒤, 힘들게 줄사다리를 기어 올라갔다.
“하아아~ 하아아~ 우와, 이거 빡세다.”
선로 위로 올라선 진우는 한숨을 내쉬며 줄을 풀어냈다. 대장 개 삼식이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여기는 또 어디야? 아… 너희 여기에서 살았던 거야?”
거지 움막처럼 허술하게 쳐둔 천막들과 쌓여 있는 박스들을 돌아보며 진우가 물었다. 보안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여기는 한 이틀 정도 잠시 머물렀던 데고, 요즘엔 이것보다 훨씬 좋은 데에서 살았어. 거기는 꽤 편해. 가자, 선로 따라서 좀 걸어가야 돼.”
진우는 ‘좋은 데’라는 말이 그저 뻥뻥거리기 좋아하는 보안관 녀석의 과장이라고만 생각하며 한 귀로 흘려들었다.
좀비 세상인 지금, 좋고, 편하고, 그럴듯한 데에서 지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이놈들은 총도 없이 살아남았다. 정말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쳐왔을 것이다.
“이런 젠장… 좀비들이 또 늘었네. 왜 자꾸 여기에 멈춰 서고 그러지? 한 번 행렬이 엉키니까 영 골치 아프네.”
코스트코 맞은편까지 선로를 따라 걸어온 뒤, 도로를 내다본 유빈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새벽에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깨끗이 정리되어 있던 도로에는 또 새로운 좀비들이 무더기로 모여서 몰려다니고 있다.
“어휴~ 50마리도 넘나 본데? 유빈아, 머리 돌아 가냐?”
손가락으로 좀비들을 헤아리던 삼식이가 물었다. 유빈은 퉁퉁 부은 눈을 내리깐 채 시퍼렇게 멍이 든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친구들의 얼굴을 돌아보던 진우는 혹시 자신이 모르는 어떤 제약이 더 있는가 싶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렇게 고민하고 있어? 그냥 저거 다 잡으면 되는 거 아냐? 큰 소리를 내거나 하면 안 되는 건가?”
“응? 큰 소리? 아니, 그런 거는 신경 안 써도 되는데… 하지만 50마리도 넘잖아. 아무도 안 다치고 저 많은 걸 다 잡으려면 유빈이가 머리를 한참 써야 하거든.”
삼식이의 대답을 들은 진우는 유빈의 얼굴을 보며 재차 확답을 받았다. 유빈도 고개를 끄덕인다. 진우는 크게 구멍을 뚫어놓은 차단벽 앞에 서서 덤덤하게 말했다.
“아, 그래? 그러면 잡고 가지, 뭐. 조금만 기다려.”
그런 후, 진우는 총구를 들어 올렸다. 조준경을 최소 배율로 조정하고 있을 때,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친구들이 입을 모아 걱정을 해준다.
“야, 괜찮겠어? 이렇게 먼데? 20미터도 넘게 떨어져 있구만. 총알을 아껴야 하고, 뭐 어쩌고 그러지 않았어?”
“무슨 20미터! 장난 치냐? 이 정도면 30미터는 되겠는데.”
친구 놈들의 대화가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진우는 총을 다시 내리고 잠시 헛웃음을 지었다.
“잡을게! 총소리 크니까 놀라지 마라. 귀 막아도 돼.”
겨우 웃음기를 거둔 진우는 친구들에게 경고를 해준 뒤, 다시 자세를 잡고 조준경을 눈에 갖다 댔다.
타앙―
첫 발이 날아가 좀비의 머리를 꿰뚫는 것과 동시에 차단벽 내부에는 커다란 총성의 메아리가 정신없이 울려 퍼졌다.
윽! 친구들이 일제히 귀를 막고 인상을 찌푸린다. 진우는 곧바로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빠르게 탄창 하나를 비우고, 새 탄창을 갈아 끼운 진우는 다시 좀비들의 머리에 총알 한 발씩을 박아 넣었다.
워낙 가까운데다가 공격 받을 염려도 없이 높은 곳에 서서 하는 사격이라 50여 마리는 금방 다 해치울 수 있었다.
“다 끝났어. 귀에서 손 떼도 돼.”
총 쉰여덟 마리의 좀비를 모두 바닥에 눕힌 진우가 친구들을 뒤돌아보며 말했다.
거기에는 감격한 여덟 명의 남녀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와~”
흥분한 규영이가 숨을 헐떡거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렇게 훌륭하신 형님이 계셨다니…….
유빈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지금 대좀비 전술 병기의 새로운 장을 막 접했다.
보안관의 압도적인 힘에 그의 꾀를 아무리 더해봐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던 문제들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진우 이 녀석과 함께라면 이제는 그따위쯤 스르륵 풀려버릴 것 같다.
“세상에… 50마리가 넘는데… 그걸 다… 지금 채 5분도 안 걸린 것 같지? 대단한데?”
“아니… 나는 그것보다도, 이 새끼 방아쇠 당길 때마다 좀비가 하나씩 뻗었다는 게 더 신기해. 허공에 대고 쏜 게 없어.”
유빈이 보안관과 중얼거리는 걸 들으며 진우는 마음 한구석이 찡하게 울렸다.
그리 많지도 않은 좀비들 때문에 이렇게 걱정을 해왔다니… 이 불쌍한 새끼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진우는 유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 저런 정도는 걱정하지 마. 내가 해결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