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29화 (329/449)

4장 가장 뜨거운 날 (8)

진우가 미친놈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친구들은 멍해져서 그를 돌아보았다. 그 잠깐의 얼어붙은 시간이 진우에게는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래, 맞아… 이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어…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처음 보게 된 얼굴이 이 녀석들이라니…….

정말로 리얼한 꿈에 속은 게 분명하다. 하긴, 꿈은 언제나 꾸고 있는 동안에는 꼭 진짜인 것 같기는 하지만…….

고개를 끄덕인 진우는 친구들을 돌아보며 다시 중얼거렸다.

“꿈이어도 좋았어. 이 새끼들아… 살아서 조금만 더 기다려. 내가 꼭 구해줄게.”

“풋.”

보안관이 가장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삼식이도, 얼굴이 엉망이 된 유빈도 피투성이 입을 벌려 보이며 낄낄대기 시작했다. 보안관은 자기가 다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쓸며 말했다.

“큭큭큭, 얘 꿈에 제니가 나오고 그러나 본데? 큭큭큭.”

“하하하! 진우야, 야한 꿈?”

친구들은 한마디씩 지껄이며 꿈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주려는 듯 진우의 얼굴을 대신 꼬집는다. 그리고 보안관은 힘없이 서 있는 유빈을 대신해 사무실의 문을 탕탕, 두들겼다.

“제니야! 혜주야! 우리 다 살았어! 가자! 나와!”

딸깍, 사무실 문이 안쪽에서 열리고 야구 배트를 꼭 쥔 태권소녀가 미심쩍다는 눈초리로 발을 내디딘다.

열려 있는 사무실 창문틀에는 전원 케이블과 인터넷 케이블이 얽힌 채 걸려 있다. 그걸 잡고라도 빠져나가 보려 했던 모양이다. 보안관이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인사해! 우리 친구야. 쟤가 구해줬어. 제니야, 너 기억하지? 진우… 군대 갔던 놈 이야기했었잖아. 그 진우야.”

“따란~”

진우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삼식이가 얼른 옆으로 비켜서서 마술사를 소개하듯 한 손을 휘저으며 진우를 가리켰다.

잠깐 멈칫하던 태권소녀는 이내 허리를 90도로 숙여 체육인답게 인사를 하고, 제니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온다.

“진우 오빠…….”

“예? 오, 오빠요? 아, 네… 처, 처음 뵙겠습니… 아니, 저기, 이렇게 만나서 영광…….”

제니의 입술을 통해 나온 ‘오빠’라는 단어 때문에 쑥스러워진 진우의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동안, 제니는 두 손으로 진우의 왼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흑! 우리 오빠들 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에? 우리 오빠…는 또 무슨……. 아, 아니… 그, 저 새끼들은… 오빠이기 이전에… 제 친구들이라서… 제니 씨가 그렇게 고마워하실 일이 아닌데…….”

진우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거리고 있자, 삼식이가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진우 말 더듬는 거 봐! 쟤 군대 갔다 오더니 나보다 더 바보가 된 것 같아! 제니 씨래! 제니 씨!”

진우는 그저 눈만 껌뻑거렸다.

아… 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진짜 제니잖아……. 이 비현실적인 상황… 대체 왜? 대체 왜 제니가 이 녀석들과 함께 있는 거지?

물어보고 싶은 게 천만 가지는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정말로 꿈처럼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친구들이 다 살아남아서 웃고 있으니 좋고, 제니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보드라운 그녀의 아기 같은 손을 꼭 잡고 있으니 또 좋다.

얼―

진우의 곁을 지키고 있던 대장 개 삼식이가 제니를 보고 가볍게 짖는다. ‘나도 여기 있으니 목덜미를 쓸어주시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흑! 나는 이제 너희 다시 못 보는 줄… 흐윽! 다행이다… 다행이야… 흑!”

갑자기 눈물을 터뜨린 태권소녀가 보안관의 목을 얼싸안고, 등을 두드려 준다. 삼식이도 그 둘을 껴안았다.

“…유빈 오빠는요?”

진우의 손을 놓은 제니가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열린 문에 가려진 채 복도에 기대앉아 있던 유빈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 나, 여기 있어. 나도 멀쩡해.”

“아닌데? 하나도 안 멀쩡하잖아! 세상에… 이 약골에게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유빈의 몰골을 보고 태권소녀가 비명을 삼켰다. 눈두덩이 찢긴 두 눈은 퉁퉁 부어올랐고, 코가 주먹만 하다. 입술도 다 찢어져서 피딱지가 잔뜩 앉았다. 제니는 황급하게 뛰어가 유빈의 얼굴을 감싸 쥐고 울음을 터뜨렸다.

“어우~ 어떡해! 오빠, 이 얼굴 어떻게 해요… 어우, 이 피… 눈, 눈 보여요? 저 보여요? 흑!”

제니는 유빈의 눈꺼풀을 들어 올려보며 눈물을 흘리다가, 그의 얼굴을 품에 안고 흐느꼈다. 유빈이 고개를 젓는다.

“괜찮다니까… 그 새끼들 열심히 때리긴 했는데, 펀치는 별거 아니더라고……. 으윽! 아야야! 목… 목은 그렇게 당기지 마. 가뜩이나 삐끗해서 아픈데… 후우, 제니야, 울지 마.”

유빈이 시꺼멓게 피멍이 든 팔을 들어 제니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진우는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손만 잡아주고… 유빈이는 안아주는 건가……. 이거, 뭔가 굉장히 불공평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같고…….

진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빈이 제니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진우야… 그렇게 혼자 떨어져 있지 마. 얘들도 우리 친구들이야. 제니는 뭐, 잘 아는 사람이고, 얘는 혜주.”

유빈은 제니와 태권소녀의 손을 한쪽씩 잡아 진우의 양손과 맞잡게 했다. 거기에 보안관과 삼식이도 가세했다.

낯선 사람이 이렇게 주변에 가득한데 대장 개 삼식이는 신기하게도 짖어 대거나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진우의 기쁜 감정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 녀석 역시 몹시 들떠서 뭉뚝한 꼬리를 씰룩거리며 친구들의 냄새를 맡고 다니느라 바쁘다.

“우리… 이렇게 여유 가지고 있어도 돼? 그 검은 군복 입은 놈들은?”

태권소녀가 묻자, 보안관이 대답했다.

“다 죽었어.”

“정말? 일곱 명이나 됐잖아? 다 총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데 어떻게…….”

“아, 글쎄… 그러니까 그게…….”

보안관이 설명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논리적으로는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어쨌든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총소리가 나더라고. 세 방. 탕탕탕― 그리고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건 우리도 들었어. 엄청 긴장했었지, 누군가 죽는 건 아닌가 싶어서…….”

태권소녀와 제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빈이 손을 들으며 말했다.

“그게 2층이었어. 나를 신나게 때리던 새끼들 셋이 갑자기 동시에 쓰러져 버리더라고. 머리가 퍽 터져 가지고 죽었지. 피가…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유빈이 고개를 젓는 동안, 보안관이 말을 이어받았다.

“그 소리를 듣고 삼식이 옆에 있던 두 새끼가 앞쪽을 돌아보는데, 그놈들 머리도 펑펑 터졌어. 그리고 나를 패던 새끼는 가슴이 뚫려서 쓰러지고. 에, 또… 그다음에 또 한 발인가, 두 발이 더 울렸는데, 그건 모르겠어. 그래서 삼식이랑 나랑 바짝 쫄아 있는데, 진우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리고 이놈이 짠― 나타났지.”

보안관의 설명을 듣고 난 태권소녀와 제니가 놀란 눈으로 진우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걸려 있는 K―2를 바라본다.

존경의 눈빛이다. 감격한 표정의 제니가 열정적으로 손뼉을 치자, 다른 사람들도 잠시 함께 박수를 보냈다.

쑥스러움 때문에 진우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런데 이런 칭찬해 주는 분위기, 싫지 않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어? 신입, 규영이, 그리고 수정이 누나는?”

박수가 끝나고 보안관이 물었다. 유빈은 지하철역과 이어진 통로를 가리켰다.

“저리로 도망갔어, 개들이 길목을 막아서기 전에. 뭐…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 그중에 아무도 플래시 가진 사람이 없었잖아. 그러니까 찾아 나서면 금방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흐음… 그랬구만. 뭐, 규영이랑 수정이 누나 대피시킨 것만으로도 신입이 할 일은 다 한 것 같기도 하고.”

보안관은 팔짱을 끼고 입술을 씰룩거렸다. 이름이 자꾸 나온다. 진우는 눈을 껌뻑거리며 물었다.

“야… 일행이 대체 몇 명이나 되는 거야?”

“응? 지금 네가 와서 총 아홉 명이 됐어. 그럼 신입을 찾으러 가 볼까?”

“아니, 잠깐. 총부터 챙겨야 돼. 탄창이랑. 그건 금방 할 수 있으니까, 가방 하나 찾아. 커다란 걸로.”

친구들을 만난 흥분이 조금 가라앉자, 진우는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 철부지 녀석들은 개인화기의 중요성과 무서움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이 부근에 굴러다니는 개인화기의 양만으로도 엄청난 일들을 해낼 수 있다. 반대로 엄청난 위협을 당할 수도 있고.

“이거면 될까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매점으로 뛰어가 쇼핑백을 잔뜩 가져온 제니가 진우에게 물었다. 진우는 고개를 꾸벅하고 쇼핑백을 받은 뒤, 자신의 탄창 가방을 보안관에게 짊어지게 했다.

“좀 가지고 있어줘. 내가 삼식이랑 2층으로 가서 총이랑 탄창 가져올게.”

“우와, 묵직하네. 이게 다 뭐야?”

가방을 비스듬히 멘 보안관이 그 무게에 놀라며 물었다.

“그것도 다 총알이야.”

진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유빈이 절뚝거리며 아래층을 가리킨다.

“그럼, 밑에 있는 총이랑 총알은 내가 챙겨 올게.”

“아냐! 유빈아 그냥 둬. 그것도 내가 챙길게.”

진우는 완강히 유빈을 만류했다. 유빈은 멍투성이 얼굴로 중얼거렸다.

“왜? 나 잘 걸을 수 있어. 몇 대 걷어차여서 좀 멍이 든 것뿐이야.”

“그런 게 아니야. 너 총 잘 모르잖아. 아직 만지지 마. 나한테 설명 듣고 그다음에 잡아. 좀 전에 너도 봤겠지만, 이거 애초부터 사람 죽이려고 만든 무기야. 실수 한 번으로 그냥 죽을 수도 있으니까.”

가슴에 멘 총을 톡톡, 두드리며 진우가 말했다. 삼척 원전에서도 오발 사고로 꽤 많은 병사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었다. 하물며 아직 한 번도 사격 훈련을 받지 않은 이 친구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유빈이 알아들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진우는 계단을 올라갔다.

“이건 다 9㎜네. 그리고 산탄총도 있고. 음… 너희들이 쓰기에는 이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 어차피 멀리 있는 놈들 쏠 게 아니니까. 근데… 이놈들은 대체 뭐야? 지금 보니 군인은 아닌 모양인데, 왜 너희를 그렇게 때리고 있었던 거야?”

총을 탄창과 분리해서 쇼핑백에 담고, 쉐도우 실드 대원의 전술 조끼에서 여분의 탄창을 빼내며 진우가 물었다.

예비 탄창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지 모른다. 삼식이는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후우~ 말하자면 긴데… 간단하게 말해서 살아남은 사람들 잡으러 다니는 나쁜 놈들이라고 보면 돼. 이 새끼들한테 잡혀가면 좀비 밥이 돼.”

“좀비 밥? 그런 걸 일부러 주는 놈들도 있어? 미친 거 아냐? 아, 그것보다도… 너희들은 왜 여기에서 살았어? 바로 저 강 건너 잠실에 수용소가 있다고 하던데.”

삼식이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사는 데는 여기 아니고, 상봉역 있는 데야. 여기는 오늘 처음 왔어. 그 쉘터인지 수용소인지가 어떤지 알아보려고.”

“그래? 여기에서 꽤 먼 데잖아? 총도 없이 그 많은 사람이 걸어왔다고? 어휴, 어지간히 힘들었을 텐데. 여기는 서울이니까 좀비들도 엄청 많을 거 아니야?”

총기를 다 회수하고 일어서며 진우가 물었다. 삼식이는 서쪽 창가를 가리켰다.

“응, 걸어서는 못 오지. 유빈이가 꾀를 내서 자동차 타고 왔어. 도로는 꽉 막혀 있지만 강변의 산책로는 차가 다닐 수 있었거든. 저기 입구에 서 있던 두 대 기억나? 그게 우리가 타고 온 차야. 그걸 타고 잘 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놈들을 태운 헬리콥터가 나타나서…….”

한참 설명을 하던 삼식이가 멍해져서 입을 벌린다. 아까부터 뭔가 영 찜찜했었는데, 이제야 왜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건지 깨달았다. 삼식이는 창가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되돌아보며 중얼거렸다.

“헬리콥터! 저놈들을 내려놓고 갔던 헬리콥터가 분명히 다시 돌아올 거야!”

“뭐? 헬리콥터? 야, 그런 걸 지금 말해주면 어떡해!”

깜짝 놀란 진우는 곧바로 창가로 달려가서 피를 잔뜩 흘리고 있는 시체의 다리를 잡아 뒤쪽으로 끌었다.

혹시라도 놈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이 건물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단번에 알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지이익, 시체가 회전하며 뒤로 끌리자,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길게 그려졌다.

“어디로 옮겨?”

삼식이도 시체 하나를 잡고 끌어오며 물었다. 진우와 삼식이는 커다란 테이블의 그늘 아래에 시체들을 숨기고 책장을 엎어서 가렸다.

이 정도면 어지간히 꼼꼼히 찾아보기 전에는 외부에서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시체 은닉을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온 진우는 보안관을 불렀다.

“보안관! 너도 가방 놓고 와! 아래에 있는 시체들 치워야 돼!”

“시체? 왜?”

“이놈들 타고 온 헬리콥터 또 올지도 모른다며!”

아, 맞다!

그제야 일행 모두는 그들이 안도감에 취해 까맣게 잊고 있던 헬리콥터의 존재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검은 군복 놈들만 다 죽인다고 해서 끝이 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태권소녀와 보안관이 진우를 따라 계단 쪽으로 뛴다. 그때, 대장 개 삼식이가 귀를 쫑긋거렸다. 그리고 진우를 향해 짖었다.

얼―! 얼―!

발을 멈춘 진우는 손을 들어 친구들을 멈춰 세웠다. 녀석이 뭔가 들었나 보다. 이럴 때 밖에 나가는 건 위험하다.

잠시 후, 모두의 귀에도 아주 작게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투투투두투투투두―

서쪽에서 날아온 헬기 소리가 건물 주변을 빙빙 돈다. 진우는 이를 꽉 문 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창문 바깥쪽을 내다보았다.

검은 헬기는 30여 미터 상공에서 유영 중이었다. 그리고 검은 헬기와 건물의 사이에는 세 구의 쉐도우 실드 대원 시체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젠장, 벌써 봤네…….”

진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긴… 이렇게 들키지 않았더라도 무전에 답이 없으면, 당연히 수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진우는 친구들 쪽으로 돌아와 큰 소리로 말했다.

“창가에서 멀어져! 그리고! 총을 쏴도 안 맞을 각도를 찾아서 피해! 저 새끼들 가진 총이 뭔지 모르지만, 일단 아무 거로라도 몸을 가려! 두껍고 단단한 게 좋아! 의자나! 테이블!”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동안, 건물 주변을 기웃거리던 검은 헬기는 고도를 낮춰서 한강 쪽으로 이동했다. 커다란 전면 창이 나 있는 방향이다.

검은 헬기와 진우 일행은 두 층 높이의 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되었다. 검은 헬기는 제자리에서 천천히 옆으로 돌기 시작했다.

“피해!”

진우는 모두를 향해 외친 후, 전면 창에 이어진 벽 쪽을 향해 뛰었다.

얼―!

대장 개 삼식이가 진우를 따라오려 한다. 진우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삼식이, 거기에 있어! 너도 오지 마!”

투투투투투― 타타타타타― 투투투투―

검은 헬기 옆문을 열고 대기하고 있던 쉐도우 실드 대원이 MP5를 난사했다.

쨍강! 쨍강! 와장창!

커다란 전면 창이 박살 나며 무너져 내렸다. 사방으로 유리 조각이 튄다.

“익!”

벽에 달라붙어 난사되는 총알 세례를 피한 진우는 무거운 배낭을 벗으며 기회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헬기나 상대방의 화기에 대한 데이터가 전혀 없다.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공격하는지, 얼마나 정확한지… 아무것도 모른다.

타타타타타― 투투투둑― 투투투투투투―

한 번 더 총알 세례가 지나가고 잠시 총성이 멎었을 때, 진우는 살짝 몸을 내밀고 K―2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 탕탕탕― 탕탕― 탕, 탕탕―!

3점사로 맞춰둔 K―2가 열심히 총알을 날리는 동안, 진우는 눈으로 적의 방향을 쫓았다. 검은 헬기는 조금 전 총격을 가하던 때보다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서 대기 중이었다.

타깃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날렸던 진우의 제압사격은 당연히 빗나갔다. 그리고… 그사이 탄창을 교체한 검은 헬기의 쉐도우 실드 대원이 아래쪽을 향해 재차 난사를 시작했다.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 투투둑―

티잉― 티잉―

대리석 바닥이 긁히고, 쇠기둥에 튄 총알들이 요란한 소리를 낸다. 진우는 고개를 더 바짝 숙였다.

쐐애애앵―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가 난다. 헬기가 또 위치를 바꾸는 모양이다. 물론 그동안에도 적의 사수는 계속 MP5를 쏴대고 있다.

적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만, 진우는 적 헬기의 위치가 언제 어떻게 바뀌는지 그저 짐작만 할 수 있다. 이건 불리한 싸움이다.

하지만 진우에게는 수없이 많은 아수라장을 헤쳐 오며 누적된 전투경험과 배짱이 있다.

딱히 계산하지 않았지만, 진우는 적 헬기가 자신을 노릴 수 있는 방향을 찾아 회전하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쪽을 염두에 둔 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투투투투투둑― 투투투― 투투투투―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 측면에서 날아오는 총알들. 헬기에서 퍼부어진 총알들은 중앙의 유리창을 지나 건물의 왼쪽에 있는 대형 창들을 박살 낸다.

탄창을 교환한 진우는 눈먼 총알에 맞지 않기 위해 배낭 뒤에 다리를 숨긴 채 기회를 기다렸다.

“다 쐈냐?”

외부에서 울리는 총성이 멎고 2초 정도가 흘렀을 때, 진우는 홱 몸을 돌리며 K―2를 난사했다.

투둑― 투투투투두―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

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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