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가장 뜨거운 날 (5)
투투투투투둑― 투투투둑―
아래층의 기관단총 소리가 점점 계단과 가까워진다. 검은 군복 놈들이 좀비들을 해치우면서 전진하는 중이다. 좀비들의 포효도 이제 꽤나 줄어들었다.
“다 준비됐지?”
유빈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만든 작전이니까 어떻게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총이… 너무 무섭다. 가장 앞서서 놈들을 맞아야 하는 터라 더욱 그렇다.
나머지 일곱 명도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다섯 명은 2층에, 나머지 세 명은 3층에… 그렇게 분산을 해야 한다.
“아, 아니, 잠깐만.”
태권소녀가 손을 뻗어 제니를 붙잡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너 있지… 너는 화장실에 숨어.”
“네? 왜요, 언니?”
“네가 있으면 저 새끼들이 내 팔목을 잡을 리가 없어. 그리고 위로 누가 도망가든 말든 당장 너부터 어떻게 할 거야.”
태권소녀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다. 보안관이 운신하기에도 제니가 없는 편이 나을 것이다. 임수정이 제니의 자리를 대체하기로 하고, 제니는 화장실 내부에 숨겨졌다.
“오빠… 저 따로 떨어지는 건…….”
유빈이 화장실 문을 닫을 때, 제니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5분만. 그 뒤로는 계속 같이 있을 거야.”
허세 가득한 말을 하면서도 유빈의 입술은 바르르 떨렸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그녀를 보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저 미친놈들이 방아쇠를 당기면 그의 의지 같은 것은 아무 가치도 갖지 못한다. 제니는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온다.”
건물의 끝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유빈이 신호를 보내자, 외부로 이어진 철제 계단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보안관과 삼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관은 빠루를, 삼식이는 야구배트를 들고 있다.
나머지는 계단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기다렸다. 놈들이 따라잡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총을 쏘는 일이 없도록 가까운 곳에서 대기해야 한다.
“어이! 거기 서!”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올라온 검은 군복이 총을 겨누며 외쳤다. 규영이를 업은 유빈과 신입, 태권소녀, 그리고 임수정이 달아나려다가 얼어붙은 연기를 하며 멈춰 섰다.
가장 계단에 가까이 있던 유빈은 뛰다가 발이 꼬인 사람처럼 규영이와 함께 엎어졌다.
퉁탕― 퉁탕―
그와 동시에 외부 계단에서는 보안관과 삼식이가 일부러 더 큰 소리를 내며 위층으로 뛰어오른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이제 안 도망갈게요! 살려주세요!”
유빈은 잔뜩 움츠린 채 일어나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바로 옆에서 신입도 울먹이며 쏘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
태권소녀와 임수정은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중 신입의 애원 연기가 탁월하게 좋았다.
“아나, 이 개새끼들 때문에 땀 흘린 거 생각하면……. 쥐새끼처럼 존나게 도망만 다니고 말이야…….”
B조 조장이 3단봉을 빼 들고 다가오며 욕설을 퍼부었다. 녀석의 뒤쪽으로 세 명이 더 올라온다. 그럼 네 놈 다 온 거다. 유빈은 비는 척하면서 머리를 감쌌다. 이제 고통이 올 거다.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기에 무서워서 그래? 이 개새끼야! 응? 응?”
B조 조장은 3단봉을 사정없이 휘둘러 유빈의 무릎과 허벅지를 후려갈긴다.
아윽! 윽!
유빈은 적당히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잔뜩 움츠린 신입도 3단봉 세례를 피하지 못했다.
뻐억! 뻐억!
모질게 때리는 소리가 텅 빈 건물 내부에 메아리친다.
“야, 이 새끼들 묶어. 어라? 이건 또 뭐야? 다리병신도 하나 끼어 있네? 캬캬캬, 가지가지 하네. 개새끼들 진짜, 차를 타고 다니지를 않나.”
조장 놈이 규영을 비웃고, 여자들 쪽으로 다가간다. 그사이 2, 3호는 유빈과 신입의 팔목을 뒤로 돌려 플라스틱 끈으로 결박했다. 태권소녀는 제니에게 배운 애원 연기를 펼쳤다.
“아저씨… 저희는 한패 아니에요. 저희는 그저 끌려 다닌 거예요. 살려주세요. 제발… 때리지 마세요… 제발.”
그녀가 바짝 신경을 쓴 사항은 두 손을 가능한 한 숨기는 것이었다. 발달한 너클 파트와 굳은살을 절대 내보이지 말라고 유빈이 신신당부를 했었다.
“하하하, 그러시겠죠. 오우… 얘는 아까 위에서 봤을 때보다 더 낫다. 시원하게 쭉쭉 뻗었네. 야!”
낄낄대던 조장이 3단봉 끝으로 태권소녀의 가슴을 쿡쿡, 찌르며 물었다.
“여자 또 하나 있던 거 어디 갔어? 응? 골반 죽이는 애 있었잖아. 저딴 거 말고.”
쳇, 태권소녀는 속으로 혀를 찼다. 눈도 밝은 새끼들. 하는 행동이며 말하는 싸가지며, 딱 죽기 직전까지 패주고 싶은 인간이다.
하지만 이 개새끼들이 총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유빈의 작전대로 따라 움직이는 편이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위… 위로 도망갔어요.”
‘저딴 거’라 지목되었던 임수정이 외부 계단을 가리킨다. 조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커다란 두 놈이 저리로 도망가는 건 봤다. 그러니 그년도 함께 데리고 도망쳤을 것이다.
“흠, 이쪽인가?”
조장은 머리를 슬쩍 내밀어 먼저 계단 아래를 살폈다. 개들이 여전히 지키고 있어서 아무 기척도 없이 아래로 사라진다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면 이제 독안에 든 쥐나 다를 바가 없다.
어차피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그리 많지 않다. 양 방향에서 접근하면 끝이다.
“너희, 이것들도 마저 묶고 저쪽 계단으로 올라와. 우리가 이쪽에서 먼저 몰 테니까. 시간 끌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여.”
조장은 유빈과 신입을 두드려 패고 있던 2호와 3호에게 명령을 내리고, 그때까지 총을 겨눈 채 지키고 서 있던 4호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조장과 4호가 계단 쪽으로 나가 천천히 몇 걸음을 떼는 동안, 2호와 3호는 각각 태권소녀와 임수정의 앞에 다가섰다.
“아유~ 너 진짜 괜찮다. 나는 사실 아까 그 골반 다이너마이트보다 이런 쪽이 더 좋아. 자, 손 내밀어, 손.”
2호는 징그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3단봉으로 태권소녀의 허벅지 라인을 쓸었다. 임수정의 턱을 들어 올리고 있던 3호도 태권소녀를 돌아보며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네. 허벅지도 그렇고… 엉덩이도 쫙 올라붙었구나. 너 다리 예쁘다. 그런 소리 많이 들었지? 벗겨놓으면 볼만하겠어.”
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임수정에게로 향하면서 말했다.
“사실 이거도 수수하니 나쁘지는 않은데… 솔직히 아까 그 골반이랑 머리카락 날리는 걸 보고 나니까 그 생각밖에 안 난다. 빨리빨리 묶자.”
“그럼 얘는 내가 1등으로 하는 거 예약이다.”
2호는 태권소녀가 내민 팔목에 플라스틱 끈을 걸기 위해 다가왔다. 녀석은 긴장이나 경계 따위는 하지 않았다.
쉐도우 실드 대원이 누구나 그렇듯이 그 역시 무술 유단자다. 이까짓 계집애쯤 암만 앙탈을 부려봐야 상대도 안 된다.
태권소녀는 계단 쪽을 흘긋 돌아보았다. 조장과 4호의 발소리는 이미 계단 중간 정도까지 올라간 듯하다. 때가 왔다.
“무서워하지 마. 오빠는 그렇게 아프게 안 해.”
태권소녀의 팔목을 잡은 2호는 그녀의 귀에 대고 느물거리며 웃었다. 역겹다. 더 이상은 내숭에 엄살을 떨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다.
휙―!
태권소녀는 몸을 회전시켜 오른발을 턱 내디디면서 2호의 팔목을 역으로 틀어쥐고 당겼다. 그러고는 바짝 들어 올린 팔꿈치를 녀석의 명치에 찔러 넣었다.
“큭!”
검은 군복 2호는 별다른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릎이 꺾이며 앞으로 쓰러졌다. 전술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도 눈앞이 캄캄해지고 숨이 콱 막힌다.
“응?”
임수정을 희롱해 가며 묶으려던 3호는 바로 옆에서 뭔가 이상한 기미를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2호가 허물어지고, 다리 긴 계집년이 한 발을 내디딘다.
‘뭐지? 이년? 무슨 지랄을 한 거지?’
3호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대비를 했다. 무섭지는 않았다. 저년이 뭔 재주를 부렸는지는 몰라도 습격이 들킨 이상 이제는 안 통한다. 계집년이 몸을 뒤로 붕 띄워 돌리며 왼발로 돌려차기를 한다.
‘훗! 태권도 좀 배웠구나? 360도 회전 돌려차기? 그런 게 통한다고 생각해?’
3호는 왼발의 궤적에 대비하며 가드를 들어 올렸다. 아래쪽에서 옆구리를 차올리는 공격이다.
그런데… 그녀의 발차기는 허공을 가르고 지나간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그녀의 몸은 비스듬히 뜬 채 회전을 하고 있다.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진 3호의 얼굴이 의문이 가득 차올랐다.
‘왜 안 맞지? 가드에 맞아야 되는 각이었는데…….’
그의 뇌에서 계산이 끝나기도 전에 허공에 떠 있던 태권소녀의 오른발이 사선으로 내리꽂히며 3호의 뒤통수와 목을 함께 강타한다.
파악―
3호는 그 순간에 정신을 잃고 대리석 바닥에 처박히면서 호되게 얼굴을 짓찧었다. 킥을 마치고 착지한 태권소녀가 피 섞인 게거품을 문 녀석의 얼굴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예쁜 다리에 540도 맞으니까 어떠냐? 좋았어?”
그런 후, 그녀는 돌아섰다. 이제 숨을 쉬지 못해 명치를 움켜쥐고 켁켁거리는 2호를 처리할 차례다.
“흐으윽! 흐으윽~!”
쇳소리 가득한 숨소리를 내며 2호가 손을 들어 올린다. 그의 눈은 공포로 질려 있었다.
대체 뭐지? 이런 미친 상황이… 왜, 왜 이년이 국기원 시범단이나 보여줄 법한 발차기를…….
녀석이 덜덜 떨든 말든, 태권소녀는 오른발로 강력한 킥을 날렸다. 턱을 강타당한 2호의 목이 홱 돌아간다. 눈을 홉뜬 채 앞으로 고꾸라진 놈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일어나, 빨리.”
그사이 임수정은 3호의 대검을 빼서 유빈과 신입의 결박을 끊어냈다. 유빈은 기절한 2호의 몸을 뒤집어 녀석이 메고 있던 MP5를 빼냈다. 어떻게 쓰는 건지는 몰라도 일단 총을 빼앗아둬야 한다.
운이 좋으면 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입도 3호에게 달라붙어 무장을 해제시켰다.
“멋있었어. 기가 막혔어.”
유빈은 태권소녀의 어깨를 연신 두드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이 작전 성패의 9할 이상을 쥐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날씬한 여자가 그런 파괴력을 보일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테니까. 그녀의 주먹이 얼마나 매운지는 맞고 기절해 본 유빈이 아주 잘 안다.
“이제 보안관 차례네…….”
기절한 2호와 3호의 팔을 뒤로 돌려 묶으며 유빈이 중얼거렸다. 태권소녀도 걱정과 기대가 반반씩 섞인 표정으로 위층을 올려다보았다.
잘해라, 고릴라…….
“조심해라. 이 새끼들, 악에 받쳐서 확 덤빌지도 모르니까.”
3층으로 오르는 계단의 끝자락에서 B조 조장은 4호를 돌아보았다. 4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경고하는 조장도, 듣는 4호도 사실 별로 두려움은 없었다.
이쪽은 무장 집단, 그리고 싸움 실력을 기반으로 선발된 인원들이다. 반면, 저쪽은 그저 아마추어들이다. 무기라야 흉기나 둔기 정도일 건데, 그따위로는 조장이 들고 있는 폴리카보네이트 투명 방패를 뚫을 수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 4호는 샷건을 꼭 쥐고 엄호를 담당하고 있었다. 조장이 먼저 방패를 앞세워 3층으로 뛰어들었다.
“어디 갔냐, 이 쥐새끼들.”
둥근 지붕 아래 이런저런 전시물들이 잔뜩 늘어서 있는 3층의 내부를 둘러보면서 조장이 중얼거렸다.
풉―!
4호가 웃음을 삼키면서 왼쪽의 긴 안락의자 너머를 가리킨다. 갈색 머리카락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 제대로 숨지도 못한데다가 하필이면 햇살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서 아주 훤하게 보인다.
그 바로 앞에 다른 놈의 웃옷과 신발도 비친다. 빠루와 야구 배트는 소파 근처에 버려져 있다.
아마 반대편으로 도망가려다가 그 계단에서 2호와 3호가 올라오는 걸 보고 급한 대로 이런 데에 숨은 모양이다.
어지간히 다급했던 모양이군, 무기까지 다 던져 버리고…….
4호는 샷건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야, 이 개새끼들아, 나와! 거기 소파 뒤에! 다 보인다고!”
헉! 갈색 머리카락이 비명을 삼키며 더 깊이 고개를 숙인다. 웃옷도 소파 아래로 숨었다. 조장과 4호는 별로 다급하지 않았다. 어차피 달아날 구석은 없다.
“좋은 말로 할 때 나와! 이 개새끼야! 그만 성질 긁어! 쏴 죽여 버리기 전에 빨리 나오라고!”
조장이 3단봉을 휘두르며 소파 쪽으로 다가갔고, 4호는 웃음기를 띤 채 그 장면을 지켜봤다.
“지, 진짜 안 쏠 거예요?”
갈색 머리카락이 슬쩍 고개를 든다. 윽! 햇살을 가득 받은 그 얼굴을 보자마자 4호는 열등감이 폭발해서 하마터면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존나게 잘생긴 개새끼다. 저런 쌍판을 가지고 있으니 아래층의 그 사슴처럼 늘씬한 다리를 가진 년도, 여기로 도망 온 탱탱한 년도 홀려서 데리고 다니는 모양이다.
“쏘지… 쏘지 마세요. 야, 너도 일어나. 빨리 손들고.”
갈색 머리카락이 얼빠진 표정으로 웃옷을 쿡쿡, 찌른다. 그때, 4호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뒤쪽이다. 뒤쪽에서 커다란 그늘이 덮쳐 오는 것 같은…….
4호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게 무슨…….”
바보 같은 반응밖에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커다란 수조가 갑자기 눈앞을 가득 채우고 덮쳐오니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가 어려웠다.
‘왜… 왜 이런 게 소리도 없이 날아오는 거지? 아니, 그보다 어떻게 이 큰 게 하늘에 떠 있지?’
현실을 부정하는 생각과 샷건을 쏴야 한다는 생각이 충돌한다. 4호는 몸을 돌리며 총을 겨누려 했다. 하지만 수조가 그의 얼굴을 덮치는 쪽이 더 빨랐다.
빠르게 회전한 거대한 수조가 4호의 얼굴을 직격하며 박살이 났다.
와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유리 파편과 물, 죽은 물고기가 튀었고, 4호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뒤로 날아갔다.
퍼엉―
샷건은 허공을 향해 발사되었다.
“뭐야?”
잘생긴 녀석에게 3단봉 찜질을 해주려던 조장은 커다란 소리 때문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헉! 그의 입에서 놀라움의 신음이 터진다. 웃통을 벗은 커다란 덩치가 박살 난 수조의 조각을 내던지며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맨발이다.
어떻게 발소리도 없이 등 뒤에서 접근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소파 뒤의 신발이 왜 별 반응이 없었는지… 두 가지 의문이 한꺼번에 풀렸다. 그래봐야 아무 소용 없다.
“아오! 이 존만 한 새끼야!”
조장이 3단봉을 치켜드는 동안 보안관은 어느새 근접 거리로 돌진해 와서 욕설과 함께 옆차기를 날렸다. 피할 틈이 없었다. 방패를 들어 막자 둔중한 소리가 난다.
텅―
자, 공격을 차단했으니 이제 공격할 시간이다…라고 생각하던 조장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하하하! 잘생긴 놈이 웃옷을 씌운 쿠션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간다. 아직까지 한 번도 상대해 본 적 없는 종류의 파워다. 마치 큰 파도에 휘말려 버린 것 같은 기세다.
쿵― 벽에 등이 부딪치자 충격 때문에 내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앞으로 튕겨져 나왔다.
턱―!
벽에 맞고 튕겨져 나온 조장의 방패를 보안관이 두 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뒤쪽으로 확 잡아챘다.
“끄윽!”
조장은 비명을 내지르며 방패를 손에서 놓았다. 얼마나 난폭하게 힘이 가해졌는지, 새끼손가락이 부러져서 반대 방향으로 꺾여 버렸다. 방패를 뒤로 던져 버린 보안관이 정신없이 훅을 날린다.
휙― 휙―
철퇴처럼 커다란 주먹이 눈앞을 스쳐 간다. 조장은 첫 두 방을 간신히 피했다. 그러나 세 방째의 왼손 훅이 그의 옆구리를 때린다.
끄윽! 조장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풀쩍 뛰었다. 그다음부터는 거의 일방적이고 무차별적인 체벌이었다. 보안관은 모두를 불안에 빠뜨렸던 이 개새끼들을 도저히 용서해 줄 수 없었다.
오른손 훅, 왼손 훅, 다시 오른손 훅, 오른손 훅, 왼손 스트레이트…….
보안관이 펀치가 바람을 가르고 날아갈 때마다 조장의 얼굴은 부어오르고 코와 입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턱, 보안관은 비틀거리는 조장의 뒤통수를 두 손으로 잡고 확 당기면서 녀석의 얼굴에 정면으로 니킥을 날렸다.
와지끈!
B조 조장은 이빨과 코뼈를 사방에 흩뿌리며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정신을 잃기 전에 조장이 했던 마지막 생각은 ‘쏴버릴걸’이었다. 이렇게 무서운 놈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아까 놈들이 계단 주변에서 알짱거리고 있을 때 그냥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너무 늦었다.
“아냐, 아냐… 너 더 맞아야 돼. 이 개새끼야!”
보안관은 기절한 조장의 멱살을 잡고 정신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미 조장의 오른손은 바닥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보안관의 분은 다 안 풀렸다.
“아오~ 이 맷집도 없는 새끼가!”
피떡이 된 조장을 바닥에 집어 던진 보안관은 놈의 팔을 뒤로 꺾은 뒤, 허리띠를 잡아 빼서 묶었다. 4호를 묶으려 다가갔던 삼식이가 총만 가지고 돌아와 보안관에게 신발을 내민다.
“자… 이거. 신고 빨리 가자.”
“쟤 왜 안 묶어?”
신발 안에 발을 구겨 넣으며 보안관이 물었다. 삼식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안 묶어도 돼. 죽었어.”
“뭐? 진짜?”
보안관은 깜짝 놀라 4호를 돌아보았다. 얼굴과 목에 유리가 잔뜩 박힌 채 쓰러져 있는 녀석의 주변은 흘러나온 피로 흥건하다.
죽일 기세로 때리기는 했지만 설마 진짜로 죽을 줄은…….
보안관이 당황해하자, 삼식이가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죄지은 거 아니야. 잘한 거야. 좋은 일 한 거야.”
삼식이는 두 놈에게서 빼앗은 두 정의 총과 한 정의 권총을 들고 보안관을 잡아끌었다. 제니까지 포함해 2층에서 마중 나온 여섯 명이 감격한 표정으로 그들을 맞아준다.
“총소리 났었는데… 괜찮아?”
유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안관의 몸을 바라보았다. 보안관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허공에 대고 쏜 거야. 멀쩡해. 혜주는 잘했고?”
“응, 죽이더라. 하늘에서 몸을 이렇게…….”
유빈이 태권소녀의 540도 돌개차기를 설명하려 할 때, 강 건너 쪽에서부터 헬기 소리가 들려온다.
“피해! 피해! 안으로 들어가!”
보안관 일행은 일제히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 납작 엎드렸다. 혹시라도 창문 사이로 기웃거리는 모습이 눈에 띌까 봐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투투투투투투―
프로펠러 소리는 건물 주변을 잠시 맴돌다가 다시 멀어졌다. 숨죽이고 있던 삼식이가 고개를 들었다.
“휴우~ 갔나 봐.”
“응, 그런 것 같다.”
유빈이 머리를 살짝 들어 창밖을 살폈다. 헬리콥터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조금 전의 그 요란한 소리가 검은 헬기였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이 틈에 빨리 도망가야 돼.”
모두는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컹― 컹―
계단 아래에서는 여전히 개들이 짖어 댄다. 저놈들도 정리해야 무사히 차에 오를 수 있다.
“내가 개들 정리하면 내려와서 잽싸게 뛰어. 알았지?”
모두에게 말한 보안관이 빠루를 들고 가장 앞장을 섰고, 매점에서 가져온 쇼핑백 두 개에 총을 나눠 담은 삼식이가 그 뒤를 따랐다. 총무게가 등이 휘청할 만큼 묵직하다.
“보안관… 저기도 개가…….”
계단 아래로 내려선 보안관이 두 마리의 셰퍼드와 대치하고 있을 때, 뒤따라온 삼식이가 멍해져서 강 쪽을 가리켰다.
응? 보안관이 곁눈질로 돌아보니 정말로 똑같은 종의 개가 한 마리 더 눈에 띈다.
뭐지? 분명히 두 마리였는데?
턱―
그때, 기둥 뒤에서 튀어나온 녀석이 삼식이의 뒤통수에 총구를 대고 명령을 내렸다.
“움직이지 마. 곧바로 쏜다.”
A조 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