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가장 뜨거운 날 (4)
“기습한다고?”
태권소녀가 창백한 얼굴로 되물었다. 응! 보안관은 호기롭게 고개를 끄덕인다.
“2층 계단 옆에 숨어 있다가 올라오는 놈들 한 방씩 갈겨주면 되지. 세 번째 놈을 끼고 싸우면, 맨 뒤에 있는 놈은 자기편이 맞을까봐 총 쏘기 망설여질걸?”
안 돼, 말려…….
태권소녀의 머릿속에서 그런 명령이 스쳐 갔다. 그건 안 될 말이다.
총 든 놈 네 명을 빠루 하나만 들고 다 쓰러뜨리기도 어렵지만, 분명 한 놈쯤은 쓰러지기 전에 난사를 할 것이다. 그러면 보안관 이 녀석은 죽는다. 태권소녀는 유빈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얘 좀…….”
얘 좀 말려보라는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유빈이 보안관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도망칠 궁리나 해. 그렇게 막무가내로 싸워봐야 죽기 딱 좋아. 삼식아, 앞장 서! 지하철역 어떻게 가야 돼?”
“조금 전에… 그 좀비들 뛰어나오던 데… 그리로 가야 하는데.”
규영을 업고 있는 삼식이가 난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창을 통해 밖을 보니 검은 군복 놈들은 좀비들을 거의 다 정리하고 입구와 꽤나 가까워져 있다. 유빈은 바깥으로 난 철제 계단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뭐야? 저건 어디로 이어져?”
“아! 그거… 그거 3층까지도 이어지고, 아니면 다시 땅으로 내려갈 수도 있어.”
“그래? 그럼 나가자!”
유빈은 앞장서서 철제 계단을 향해 뛰었다. 기둥 위에 높이 떠서 말굽처럼 휘어져 있는 건물의 형태 때문에 검은 군복들이 서 있는 곳에서는 이쪽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쪽에서도 그들을 볼 수 없다.
“어디로 갈 건데?”
철제 계단에 발을 올리고 태권소녀가 물었다. 유빈은 자세를 낮춰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살폈다.
철컹, 철컹.
조금 전, 그들이 이 건물로 들어왔던 그 계단을 밟는 소리가 들린다.
‘근데… 헬리콥터는 어디에 있지? 왜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유빈은 주변 하늘을 돌아보았다. 없다. 그러고 보니 시끄럽게 귓가를 울리던 프로펠러 소리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이건 기회다.
“헬기가 없어. 잠깐 기다렸다가 저 계단 소리 그치면 곧바로 아래로 내려가자. 조용히 내려가고 무조건 카니발을 향해서 뛰어. 알았지?”
유빈이 소리 죽여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철컹.
그 발소리를 끝으로 입구 쪽에서 더 이상 계단 밟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유빈이 손짓을 하며 속삭였다.
“가자!”
통통통통.
발소리를 죽인다고는 했지만, 여덟 명이나 되는 인원이 일제히 철제 계단을 밟고 뛰는 만큼 꽤나 큰 울림이 만들어졌다.
소리가 날 때마다 두근대는 가슴이 터져 버릴 것만 같다. 게다가 계단은 왜 이리 많고 또 높은지… 겨우 한 층 내려가는 건데도 너무나 길다.
“빨리 와, 빨리…….”
먼저 내려간 유빈이 건너편 계단 쪽을 살피며 재촉했고, 삼식이를 필두로 일행 전체가 땅에 발을 디뎠다.
이제 자동차로 달려가 시동을 걸고, 헬기가 다시 나타나기 전에 최대한 빨리 도망치면 된다.
“으허어억! 개! 개!”
규영이를 업은 채 앞서 달리던 삼식이가 기겁을 하며 돌아선다. 그 바로 뒤쪽으로 두 마리의 커다란 셰퍼드가 이를 하얗게 드러낸 채 쫓아오고 있다.
으르르~ 컹! 컹! 컹!
“야이, 개새끼들! 뒈지려고 누구한테!”
보안관이 가로막고 서며 빠루를 휘둘렀다. 개들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둔 채 짖기 시작했다.
월! 월! 컹! 컹―!
“뭐야? 뭐?”
입구 계단 위에서 검은 군복이 몸을 내밀며 외쳤다. 놈의 손에 들려 있는 기관단총! 개새끼들을 혼내주려던 보안관은 얼른 몸을 피했다.
투투둑― 투두둑―
두 번의 잇단 총성, 그리고 코롤라의 유리창이 박살 난다.
“야! 이거 안 돼! 돌아가! 빨리!”
보안관이 머리를 감싸 쥐고 뒤돌아 달려온다. 나머지 일곱 명도 재빨리 다시 철제 계단으로 올라갔다. 반면, 검은 군복들은 다시 지면으로 내려와 섰다.
공중에 떠 있는 건물의 옆면을 사이에 두고 별로 유쾌하지 않은 술래잡기가 시작되어 버린 것이다.
“한 층 더 올라가!”
건물의 1층으로 들어가려는 제니에게 유빈이 소리쳤다. 1층은 좀비들도 있고, 검은 군복들이 양쪽으로 나누어 두 명씩 올라올 때 도망치기가 나쁘다.
더 높은 곳에서 눈치를 봐가며 방향을 결정하는 게 낫다. 여덟 명은 요란한 발소리를 내며 철제 계단을 뛰어올랐다.
월― 월― 컹― 컹―
셰퍼드들은 계단 앞에 멈춰 서서 위쪽을 노려보며 짖어 대고 있다. 그 밉살맞은 놈들을 노려보면서 보안관은 이를 빠득 갈았다.
“아오, 저 개새끼들! 아주 확…….”
“진정해, 보안관! 그보다 조금 전에 봤어? 저 새끼들…….”
유빈이 보안관을 건물 안으로 끌어당기며 물었다. 보안관은 도리질을 했다.
“저 새끼들이 뭐? 총 쐈다고? 응, 알아.”
“아니, 그 바로 다음에! 대장 같은 새끼가 총 쏜 놈의 어깨를 때렸어. 총 쏜 놈도 얼른 총을 바닥으로 향했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서 보안관의 눈동자가 멍해지자, 유빈이 다시 설명을 해준다.
“저 새끼들, 우리랑 마주쳐도 일단 총부터 갈기고 보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야.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기는 해. 잡아가서 좀비 밥으로 줘야 하는데 쏴 죽여 버리면 무슨 소용이야.”
“씨발, 존나게 희망적인 소식이네. 총에 안 맞고 좀비 밥이 될 수 있어서…….”
좌절 모드에 들어간 신입이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울먹인다. 하지만 보안관과 태권소녀는 유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태권소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러니까… 항복하는 척하고 있다가 저 새끼들이 방심해서 바짝 붙었을 때 까자는 거지?”
“응, 맞아. 하지만 보안관은 눈에 띄면 안 돼. 얘 덩치 보면 긴장 안 할 사람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무작정 덤벼드는 것도 안 되고. 위협이 된다고 느끼면 저 새끼들도 총을 들 테니까. 함정을 파자, 딱 빠져들 수밖에 없을 만한 걸로…….”
유빈은 전면 창을 통해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2층 내부를 돌아보며 말했다. 카페테리아처럼 파라솔이 달린 테이블들이 늘어서 있고, 옆에는 책이 잔뜩 꽂혀 있다.
숨을 만한 곳은 많았다. 그리고 이 계단. 그림이… 제법 그럴듯한 그림이 떠오른다.
“우리 총 인원이 몇인지 아마 알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반으로 쪼개진 것처럼 보여야 돼. 보안관에 대해서 쟤들이 신경을 안 쓰도록… 그리고 혜주, 너!”
유빈은 태권소녀에게 바짝 달라붙으며 말했다.
“저 새끼들은 네가 태권도 국대였다는 거 몰라. 그냥 날씬하게 키 큰 여자라고만 생각할 거라고. 그냥 보통 여자들처럼 약한…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가 연기를 잘해야 돼.”
태권소녀가 당황해하며 도리질을 했다.
“나… 약한 여자 그런 거 못하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내가 늘 짱이었어. 연기를 하려고 해도 뭐, 그런 경험이 있어야…….”
그, 그렇겠지?
유빈도 납득이 되는 말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유빈이 말했다.
“그냥… 네가 테라가 되었다고 생각해 봐. TV 예능에서 봤잖아. 걔 막 벌레에도 벌벌 떨고 그러는 거… 딱 그거처럼만 하면 돼.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도 푹 속이면서…….”
“이… 이렇게? 이럼 되나?”
태권소녀가 테라의 흉내를 낸답시고 몸을 굽힌다. 딱 파이터다. 치뜬 눈은 호랑이처럼 날카롭고, 오른손은 턱 주변에서 가드를 하고 있다.
하아~
어이구~
유빈과 보안관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터져 나왔다.
☆ ☆ ☆
진우는 호수의 끝자락에 이르러 있었다. 물길이라 잠시 방향을 잃고 헤매기는 했지만, 순조롭다. 앞쪽에는 그리 높지 않은 다리가 하나 호수 전체를 가로질러 놓여 있다.
“삼식아, 엉덩이로 그만 좀 밀어. 나도 힘들어. 봐봐, 너 때문에 이렇게 팔을 쭉 펴고 있어야 된다고!”
진우는 삼식이를 타박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고집을 부려 앞자리에 턱 걸터앉기는 했지만, 녀석도 그 자세가 어지간히 불편한지 자꾸만 엉덩이를 들썩이며 뒤로 뺀다.
덕분에 진우는 핸들에 겨우 팔이 닿은 채로 익숙하지도 않은 제트스키를 모는 중이다.
물론 앞도 잘 안 보인다. 엄밀히 말해서 엉뚱한 곳을 헤매고 다녔던 이유 중의 70퍼센트 이상은 이 개새끼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엉덩이라도 몇 대 때려주고 싶은데, 오른손으로는 가속 장치를 돌려야 하고, 왼손은 스톱 버튼에 연결된 고리를 낀 채라서 두 손이 다 자유롭지가 않다.
“야, 네가 뒤로 좀 가. 응? 이제 안심하고 양보할 수 있는 상황이잖아. 아까 놓고 간 건 실수라니까.”
얼―
삼식이는 그래도 앞자리를 포기하기 싫은지 딴청을 피우며 자세를 꼿꼿이 세운다.
하여간에 고집은…….
진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다리에 가까워지며 슬슬 물살이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이 녀석과 노닥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근데… 저 다리… 이상하게 생겼네. 뭔 기둥이 저렇게 많아…….”
진우는 앞에 가로놓인 다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기둥도 어지간히 굵다. 덕분에 물길이 좁아져서 이 주변의 유속이 급속하게 올라간다.
기둥에 부딪치지 않기 위해 진우는 속도를 더 줄이고 방향을 조정했다.
“어! 어! 이런…….”
다리와의 거리가 100미터 이내로 줄어들었을 때에야 진우는 그 기둥들이 왜 그리 많고, 또 두꺼운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리가 아니라 댐의 상단부였다. 우기와 태풍 때문에 물이 불어서 수문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이 잠겨 있었던 것이다.
“젠장… 그냥 가도 되는 건가?”
댐 너머의 강 풍경이 어딘가 위화감이 들어서 진우는 제트스키의 속도를 더 줄이고 방향을 옆으로 틀었다. 수문을 기점으로 뭔가… 단절되어 있다. 물이 평탄하게 흐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가 댐에 집중하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뒤쪽에 로프로 연결해서 끌고 오던 보트였다.
제트스키는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돌려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저 딸려오던 보트는 그렇지 못했다.
빠른 물살에 실려 떠내려오던 보트는 진우와 삼식이가 탄 제트스키의 후면을 치고, 댐 쪽으로 끌려갔다.
쿵―
그리 강한 충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충돌이었다. 제트스키에 타고 있던 진우와 삼식이는 동시에 중심을 잃었다.
“윽! 뭐야?”
진우는 핸들을 잡아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냥 앞발을 걸치고 있던 삼식이는 발톱으로 매끈한 제트스키의 표면을 긁으며 옆으로 미끄러졌다.
“삼식아!”
당황한 진우는 왼손을 뻗어 삼식이를 잡아보려 했다. 그 순간, 삼식이의 무게가 스톱 버튼에 연결된 줄을 확 당기며 줄이 빠져 버렸다.
푸슈슉―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엔진이 꺼진다. 삼식이는 겨우겨우 붙잡았지만, 그들을 태운 제트스키는 동력을 잃고 수문을 향해 빨려 들어간다.
“왜? 왜?”
진우는 왜 갑자기 제트스키의 엔진이 멎었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숨을 헐떡였다. 가슴이 콱 멎는 것 같다.
이대로라면 전부 다 저 수문에 패대기쳐지게 되는 건데… 뭐지? 뭐지?
잠깐 패닉에 빠져 있던 진우는 자신의 왼손에 끼워둔 고리 줄이 스톱 버튼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열쇠도 아닌, 이 이상한 고리가 왜 제트스키에 연결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깨달았다.
이 고리가 비상 브레이크인 것이다. 사람이 물이 빠졌을 때, 혹시라도 제트스키가 더 멀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의 비상브레이크.
“야이 씨! 끼워져라! 끼워져! 비켜봐! 이거 끼워야 돼!”
첫날의 시행착오 덕에 스톱 버튼을 당겨서 끼워야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삼식이 놈의 커다란 덩치가 시야를 가린다.
진우는 삼식이의 엉덩이를 밀어 옆으로 치우고 오른손으로 스톱버튼을 당겼다.
쿵―
물살에 흔들린 고무보트가 또 한 번 제트스키를 들이받는다. 진우는 휘청거리면서도 가까스로 왼손의 고리를 끼워 넣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푸르르륵―
시동이 걸리는 걸 확인하자마자 진우는 고개를 들고 스로틀을 당겼다.
부우우우웅―
가속장치가 가동되자 제트스키의 뒤쪽에서 물기둥이 솟고, 순식간에 고무보트를 앞질러 나간다. 그런데…….
수문까지는 불과 10여 미터밖에 남지 않았다. 진우는 선택을 해야 했다. 여기에서 제트스키를 돌려 기둥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뒤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수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의 속도에 제트스키의 가속력을 더해서 저 낙차가 있는 수문 너머로 빠르게 날아갈 것인지…….
진우는 후자를 택했다. 지금 무리하게 유턴을 시도했다가는 제트스키가 속력을 이기지 못하고 기둥을 들이받을 확률이 너무 높다.
“삼식아! 꽉 잡아!”
진우는 앞으로 바짝 붙어 자신의 가슴과 제트스키 사이에 삼식이의 몸을 끼워 넣었다. 그러고는 작은 폭포처럼 물을 아래로 쏟아내는 수문을 향해 전속력으로 제트스키를 몰았다.
부아아아아앙―
속력이 올라가자 제트스키의 앞쪽이 살짝 들린다. 그리고 퉁, 하고 부딪치는 충격이 아래쪽에서 느껴졌다.
아마도 물속에 살짝 잠겨 있던 수문의 끝부분이 제트스키 바닥을 스친 모양이다.
“으아아아!”
진우와 삼식이를 태운 제트스키는 수문 위로 떠올랐다. 순식간에 아래쪽과 앞쪽의 풍경이 진우의 눈을 어지럽힌다. 제트스키는 하늘에 떠 있고, 저 아래쪽에 수포를 일으키며 물이 쏟아져 내린다.
7미터는 족히 될 법한 낙차였다. 이렇게 높은 폭포인 줄 알았다면 절대 뛰어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풍덩―
제트스키의 뒤쪽 바닥이 수면을 때린다. 요란한 물보라가 튀고, 진우와 삼식이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물속으로 튕겨져 나갔다.
“읍! 으그르르르~ 우르륵~!”
물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동안 진우는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코와 입으로 물이 쭈욱 빨려 들어오고, 잠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멍해진다. 하지만 그가 착용하고 있는 구명조끼의 부력이 곧바로 그를 끌어 올렸다.
“푸아아~ 아흐흐~!”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진우는 자신의 왼쪽 팔목부터 확인했다.
있다! 제트스키의 비상브레이크 고리! 그렇다면, 삼식이는? 그리고 제트스키는?
진우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삼식이는 물살에 휘말려 앞쪽에서 떠내려가고 있었다. 제트스키는… 삼식이의 반대 방향에서 흘러가는 중이었다.
진우는 열심히 팔과 다리를 휘저어 제트스키에 기어올랐다. 그러고는 숨을 몰아쉬어 가며 시동을 걸었다.
“삼식아, 올라와!”
홀딱 젖은 삼식이를 앞질러 가서 끌어 올린 뒤, 진우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콰콰콰콰콰―
뒤쪽의 수문 근처에서는 지금도 계속 사나운 물줄기가 떨어져 내리며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마터면 저기 휩쓸려서 익사할 뻔했다.
“맞다! 내 총! 내…….”
자신과 삼식이의 생명이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자, 그다음으로 중요한 게 떠올랐다. 진우는 다급하게 고무보트를 돌아보았다. 고정시켜둔 짐은… 완전히 물을 뒤집어썼지만, 그대로 남아 있는 듯이 보였다.
“하아아~ 다행이다. 아이고, 내 총! 내 탄창!”
진우는 강가에 잠시 멈춰 서서 고무보트에 올라 짐들을 확인했다. 두꺼운 업소용 쓰레기봉투로 두 번이나 꽁꽁 싸매둔 덕에 총도, 탄창 가방도 모두 무사했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식량을 담아둔 봉지가 두 개 유실되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근데… 이 공기 방울 뭐냐…….”
고무보트 후면에서 계속 공기 방울이 올라와 표면에 맺히는 걸 보며 진우가 중얼거렸다. 어딘가 구멍이 났고, 거기에서 빠져나온 공기가 그런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고무보트는… 뭔가에 걸려 약간 찢어져 버렸다.
“아… 뭐, 그래. 망가지려면 제트스키가 망가지는 것보다 네가 망가지는 게 낫기는 하지.”
진우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켁, 켁.
삼식이는 물을 뱉어내기 위해 헛구역질을 하고 있다. 동행을 잘못 선택한 탓에 녀석도 참 별 고생을 다 한다.
“이제 어쩌지… 이거, 오래 못 버틸 것 같은데……. 아, 이 근처에 고무보트 같은 거 또 구할 데가 있으려나……. 시내로 나가봐야 하나?”
진우는 물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고무보트를 꾹꾹 눌러봤다. 빵빵하다고는 못해도 아직은 꽤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차라리 빨리 한강까지 가자. 거기가면 배를 구할 확률이 더 높아지겠지. 삼식아, 너 내 뒷자리에 앉아. 이번엔 엄청 밟을 거야. 아니다… 당긴다고 해야 하나?”
진우는 삼식이를 업은 채 핸들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가속장치를 최대한 잡아당겼다.
부아아아아아아앙―
요란한 엔진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잔잔한 물의 흐름에 부딪칠 때마다 제트스키는 가볍게 퉁퉁 튀어 오르며 날듯이 내달린다. 계기판의 속도계는 시속 65킬로미터를 넘어선 뒤에도 계속 올라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