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가장 뜨거운 날 (2)
유빈 일행이 성수대교를 노려보고 있을 때, 학동역 부근부터 도산 공원 사이의 상공에서는 검은 헬기가 유영하며 좀비들의 행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이미 두 번째 출격에 나선 태양 그룹 헬리콥터 3호기이다.
좀비 무리가 완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 검은 헬기는 선릉로와 인접한 4층 건물 옥상에 그물 베슬을 내렸다. 그물 베슬에 타고 있던 여덟 명의 쉐도우 실드 대원 중 네 명이 고리를 풀고 나왔다. 두 마리의 셰퍼드견도 그들을 따라 내렸다.
“열심히 해. 그래봐야 우리 B조 보다 못하겠지만.”
베슬 내부에 남은 네 명의 대원들이 건물에 내린 A조 네 명에게 농담을 던진다. A조 조장으로 보이는 놈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너희는 어디로 가볼 건데?”
“강 넘어가서 영동대교 쪽부터 청담대교까지 쭉 훑어보려고. 그쪽 아파트 주변 상가가 아무래도 쏠쏠하지 싶어.”
“그래. 뭐, 잘난 척해도 되니까 한 100명 꽉 채워라. 너희 덕에 우리도 좀 편히 쉬어보자.”
두 조장이 대화를 나누고 A조 대원들이 수용자용 베슬을 헬기의 로프와 분리하는 동안, 셰퍼드들은 코를 킁킁거리며 사납게 짖어 댔다.
으으르르~ 웡! 웡!
건물 아래로 내려와 도로에 섰을 때에도 녀석들은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다. 개 줄을 움켜쥔 첫 번째 쉐도우 실드 대원이 한쪽 입술을 찡그리며 웃는다.
“새끼들, 되게 짖네. 숨어 있는 놈들이 많은가?”
몇 번이나 구조해 주겠다는 방송을 하고 난 이후지만, 손을 내미는 사람은 없었다. 이 부근의 생존자들은 다들 무슨 이유에선가 도움을 거부하고 숨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찾아 나서야 한다.
개들을 쓰면서 수색의 성공 확률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비록 놈들이 좀비를 구분하지는 못해도 여전히 사람 찾는 데는 탁월한 재주를 보인다. 지금 당장은 그 정도면 밥값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가라!”
쉐도우 실드 1호는 꽉 잡고 있던 개 줄을 놓았다. 두 마리의 셰퍼드는 훈련 받은 대로 빠르게 내달렸다.
그사이, 나머지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자동차 지붕 위로 올라가 아직 근처에 남겨져 있던 소수의 좀비들을 정리했다.
투투둑― 투투둑―
퍼엉― 퍼엉―
투투투투둑―
MP5와 샷건을 겨냥해 몇 발씩을 갈기면 좀비들은 맥없이 쓰러진다. 엄청난 대규모 좀비들은 무섭지만, 이렇게 몇 마리 정도만 따로 떨어져 나온 것들은 별문제가 안 된다.
“이쪽은 정리 끝!”
쉐도우 실드 2호가 말했다. 곧이어 3, 4호도 자기가 맡았던 방향의 좀비들을 다 처리했다고 알려온다. 1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 그럼 우리 예쁜 개새끼들 있는 데로 가보자.”
말을 마친 1호는 왼팔 손등부터 팔꿈치 너머까지를 덮도록 만든 얇은 보호대의 끈을 꽉 조이고, 투명 폴리카보네이트 재질로 만든 방패를 쥐었다. 그러고는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방검복과 보호 장비를 갖춘 1호가 앞서 걷는 동안 2, 3, 4호는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주변을 경계했다.
월! 으르르르― 월! 월!
두 마리의 개는 길가의 한 건물 앞에 서서 요란하게 짖어 대며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층 패스트푸드점의 박살 난 유리창에는 핏자국이 요란하다.
“크, 이런 데 숨어 있는 게 그렇게 좋은가? 구해준다고 하는데도 버팅기고 안 나오는 놈들 보면 그게 참 신기해.”
건물을 올려다보며 2호가 중얼거린다. 샷건을 든 3호가 출입구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면서 대꾸한다.
“대부분 보면 뭔가 미친 지랄을 하고 있더구만. 뭐, 주로 강간, 살인 이런 것들이기는 하지만… 법을 존나게 많이 어겼기 때문에 이제 사회에서 용서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좀 더 오래 그 지랄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지 몰라도 이런 새끼들은 절대 제 발로 안 나와.”
“그러게. 저희들이 뭐 대단한 죄라도 지은 줄 알아. 존나 같잖게. 진짜 죄짓는 새끼들은 여기 따로 있는데. 크크크.”
제멋대로 지껄이던 2호와 3호 사이에 끼어들어 1호가 철제 쪽문을 가리켰다.
“여기다. 뚫어봐.”
명령을 받은 3호는 벨트에서 망치를 꺼내 쪽문에 걸려 있는 셔터 자물쇠를 후려갈겼다.
타앙― 땅― 땅― 땅―
요령 좋게 대여섯 번을 때리고 나니, 자물쇠는 찌그러지며 벌어졌다. 1호는 셔터를 들어 올리고 개들을 들여보냈다.
웡― 웡―
셰퍼드들은 요란하게 짖어 대며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뛰어올랐다.
“들어간다. 총 쏠지 모르니까 조심해.”
1호는 손도끼를 허리에 차고, 플래시가 달린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런 후, 보호 방패를 부착한 왼손을 앞세워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그의 뒤를 따라 나머지 셋도 진형을 갖춘 채 차분히 계단을 오른다.
“4층이네.”
계단 중간에 이르렀을 때, 개들의 짖는 소리를 들으며 2호가 중얼거린다. 나머지 요원들도 고개를 들고 위쪽을 쳐다봤다.
비록 중무장을 했지만, 이 인간 사냥이라는 것도 꽤나 못해먹을 짓이다. 상대가 얼마나 막장의 인간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어야 한다.
2, 4호의 엄호를 받으며 4층까지 오른 1호와 3호는, 흥분한 개들을 진정시키고 복도의 철창 앞에 섰다.
생존자들은 억지로 문을 부수고 남의 집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런 식으로 철창에 자물쇠를 채워 막아놓고 안전을 도모한다. 망치로 자물쇠를 부수기 전에 3호는 근엄한 목소리로 안쪽을 향해 외쳤다.
“민군 협동 구조반입니다! 생존자분들은 빨리 나오세요!”
대답이 없다. 그러나 개들은 여전히 열심히 짖어 대고 있다. 큭, 3호는 코웃음을 치며 자물쇠를 때려 부쉈다.
찰칵, 3호가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려 할 때, 1호가 뒤를 돌아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웬만하면 총으로 맞히지 마. 피 많이 흘려서 데려가면 싫어하니까.”
나머지 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어지간한 경우에는 3단봉 정도면 충분하다. 그들은 모두 무술 유단자들이고, 이렇게 떼를 이루어 하는 진압에도 익숙하다.
“열어.”
신호를 보낸 1호는 왼손의 보호 장비를 앞세워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챙―
날카로운 쇳소리! 1호는 움찔하며 자세를 낮췄다. 어디선가 던진 흉기가 벽에 맞고 튀어 바닥에 뒹굴고 있다. 그리고 곧바로 망치와 도끼를 든 녀석 둘이 확 뛰어든다.
“죽어! 죽어!”
망치와 도끼 공격이 방패 위로 쏟아진다.
콱! 콱!
방패는 그저 흠집이 나는 정도였지만, 들고 있는 팔이 충격 때문에 저릿저릿하다. 1호는 자세를 낮춘 채 공격을 받아내며 뒤로 물러났다.
때리고 있는 두 놈은 잔뜩 흥분해서 문밖까지 그를 쫓아 나오며 둔기와 흉기를 휘두른다.
“씨발! 죽어!”
망치를 든 놈이 방패를 발로 걷어차려 할 때,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2호가 몽둥이를 휘둘러 그의 어깨를 후려쳤다.
빠악!
망치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자빠진 그에게 발길질과 3단봉 찜질이 쏟아졌다.
“이익!”
포위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도끼 든 녀석은, 도끼를 앞뒤로 휘둘러가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애초에 전투 능력의 레벨이 다르다.
방패 든 1호를 앞세워 주변을 에워싼 세 명의 쉐도우 실드 대원이 도끼의 머리와 팔, 다리에 사정없이 매질을 해 댔다. 사방에서 은빛 몽둥이가 번뜩일 때마다 참기 어려운 고통이 뼈를 타고 전해진다.
“아으윽! 끄윽!”
결국 도끼를 놓치고 쓰러진 녀석의 얼굴을 1호가 전투화로 콱, 밟았다.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하는 두 녀석의 팔목을 뒤로 돌려 플라스틱 타이로 묶었다.
“아나, 이 새끼들… 귀찮게 하네.”
짜증스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던 1호가 다시 빼꼼 문 안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둑한 실내에는 아직도 사내놈 세 명이 남아 잔뜩 움츠린 채 무기를 들고 서 있다. 1호는 플래시가 달린 권총을 안쪽으로 겨누고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여러분은 공무 집행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무기를 버리고 얌전히 지시에 따르세요!”
“돌아가! 꺼지라고! 구조 필요 없으니까!”
사내놈들은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며 버텼다. 놈들이 던진 또 다른 뭔가가 쇠문을 두드리고 바닥에 뒹군다.
이렇게 시간 끌어봐야 별 이득이 없다는 걸 알기에 1호는 그들의 뒤쪽 유리창을 겨누고 위협사격을 했다.
타앙― 쨍그랑―
요란한 총성과 함께 유리창이 박살 나는 순간, 세 남자의 다리에 힘이 풀린다. 1호는 문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며 놈들의 얼굴에 플래시를 비췄다.
“무기 버려! 이제 경고 없이 그냥 사살할 거야!”
철컥― 3호가 산탄총을, 그리고 나머지 두 대원도 3단봉을 들고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사나운 맹견이 두 마리나 뛰어들자 세 사내는 저항할 의지를 완전히 잃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어어어! 물지 마! 가만히 있어!”
셰퍼드들이 세 생존자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자 2, 4호가 위협인지 만류인지 모를 말을 하며 다가온다. 두 대원은 3단봉을 휘둘러 생존자들의 오금과 어깨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이 새끼들,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뻗대고 있는 거야! 응? 말해! 대한민국의 법이 무너진 줄 알아?”
폭력에 굴복당한 생존자들이 엎드려서 덜덜 떨고 있는 동안, 먼저 달려들었던 두 놈을 마저 끌고 온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경찰 놀이를 하며 터지는 웃음을 꾹 참았다.
이런 짓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매일 위험에 노출되어야 하는 생활도 조금은 재미있게 느껴진다. 생존자들이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쉐도우 실드 대원들의 발길질은 더 매서워진다.
“너희가 전부가 아니지? 나머지 어디 있어?”
“아… 아니에요. 저희끼리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뭘 용서해 달라는 거야, 이 개새끼야! 무슨 죄를 지었는지 털어놓아야 용서를 해주든 처벌을 내리든 할 거 아니야!”
2, 4호가 포박한 다섯 남자를 엎어놓고 마음껏 가지고 노는 동안, 1호는 개들과 함께 넓은 건물 내부를 천천히 돌아봤다.
남자 셋이 재미라고는 없이 생존하고 있는데 구조를 마다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 열심히 냄새를 맡던 개들은 박스가 수북이 쌓여 있는 지점에 서서 벽을 긁어 댄다.
“응?”
개들을 진정시키고 벽에 귀를 대 본 1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뭔가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은… 그렇지만 확실하게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뭐지? 벽이 아닌가?”
1호는 박스들을 밀고 발로 차서 쓰러뜨려 버렸다. 와르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박스로 쌓은 벽이 무너져 내리자 문 하나가 나타난다.
“아냐! 안 돼! 열지 마!”
엎어져 있던 생존자 사내들이 일어나려 들며 비명처럼 소리를 질러 댔다. 그들의 등짝 위로는 곧바로 3단봉 찜질이 쏟아졌다.
“시끄러! 닥쳐, 이 새끼들!”
퍼억― 빠악―
둔중한 소리가 건물 내부에 메아리친다. 하지만 사내들은 고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외쳤다.
“으아악! 아, 안 돼! 아, 안에… 으윽! 좀비 가둬놨어요. 제발!”
“호오, 그래?”
1호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닫혀 있는 방문을 바라보았다.
쿵― 쿵―
조금 전, 박스에 가려져 있을 때보다 두드리는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그리고 박자도 빨라졌다. 그러나… 아무리 들어봐도 좀비는 아니다. 이렇게 얌전히 벽을 두드리는 좀비라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
“아닌 것 같은데? 개들은 좀비 못 찾아.”
1호는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생존자 사내들을 돌아보았다. 사내들은 뭐라고 더 변명을 해보려 했지만, 매섭게 쏟아지는 3단봉의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느라 제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엄호.”
이미 답은 대충 나왔지만, 1호는 3호에게 명령을 내렸다. 3호는 산탄총을 꽉 쥔 채 거리를 두고 문과 마주 섰다. 3호가 준비를 마쳤다는 걸 확인한 1호는 문을 확 열어젖혔다.
“읍읍읍읍! 읍읍!”
입이 꽉 막힌 채 필사적으로 내지르는 비명. 여자들이었다. 손발이 묶이고 입은 천으로 친친 감긴 여자들이 안간힘을 써가며 머리로 바닥을 찧고 있었다. 숫자도 여덟 명이나 된다.
1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생존자 사내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들, 대체 뭐냐? 이 추잡한 새끼들아!”
포박당한 채 엎드려 있던 사내들의 얼굴에 포기하는 기색이 스쳐간다. 1호는 서둘러 여자들의 손발을 끌러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흐윽!”
손이 자유로워지자마자 여자들은 입에 감겨 있던 천을 풀어내며 엎드려 절을 했다. 1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여자도 있었다. 1호는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그녀들의 어깨를 두들겨 줬다.
“자, 자, 이제 그만 우세요. 저 잡놈의 새끼들한테 고생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만 우시고, 진정하세요.”
“저 새끼들… 진짜… 흐윽… 처벌 좀 해주세요. 저… 나쁜 새끼들이…….”
“네, 저놈들 살아남기 어려울 겁니다. 그건 제가 보장해 드릴 수 있어요.”
1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생존자 사내들에게 또다시 모진 매질을 가했다.
종아리며 허벅지, 발목… 가리지 않고 후려 팬다. 사내들이 고통 어린 비명을 지르는 걸 보면서 여자들의 흥분과 분노는 더욱 커졌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진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1호는 자신을 향해 거푸 고개를 숙이는 여자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들이 좀 진정된 후에 쉐도우 실드 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얘로 정했다. 너희들도 골라.”
1호가 지목한 여자는 자신이 조금 전 들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나머지 여자들도 머리가 혼란스러운지 서로를 돌아보며 멍청하게 서 있다.
“근데, 조장님. 하라고 허락해 주시니까 요새 아주 좋기는 한데요, 괜찮습니까? 예전에는 안 되는 거였잖습니까? 팀장님이 허락하신 겁니까?”
2호가 여자들을 찬찬이 훑어보며 물었다. 1호는 조금 전 자신이 지목한 여자의 머리카락을 쓸며 대답했다.
“응, 요샌 어차피 구조됐다는 둥 구라 치지 않고 그냥 잡아 가두니까 얘들 기분 신경 쓸 거 없어. 그리고 메이저, 그 양반은 이런 거엔 별로 흥미가 없나 보더라고. 오로지 그냥 뒈질 때까지 두들겨 패는 거에만 재미가 붙어서. 그딴 거보다 빨리빨리 해라. 헬기 돌아올 때까지 얼마 안 남았다.”
“아하… 그런가요? 그럼 전, 얘로 하겠습니다.”
2호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한 여자의 옆에 서며 그녀의 엉덩이를 두들겼다. 지목당한 여자는 창백해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
“저기… 구조대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분명히 그렇게 들었는데…….”
“응? 구조해 줬잖아. 저 새끼들한테서. 그렇지? 나는 그냥 한 번 재미만 보자는 거야. 많은 것도 안 바라고. 왜? 싫어? 그러면 너만 저 새끼들이랑 같이 남겨두고 갈까? 뭐, 그래도 돼. 나도 그냥 대충 고른 거지, 네가 딱 내 천생연분이다, 한눈에 반했다, 이런 거 아니거든. 어떻게 할래?”
2호가 비아냥거리자 여자는 공포에 질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자 2호는 기분 좋게 웃으며 여자의 웃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것 봐. 나랑 한 번 하는 게 낫다니까. 자, 이왕 하는 거, 웃는 얼굴로 좀 하자. 너 있지, 우리한테 걸려서 다행인 줄 알아야 돼. B조 애들은 완전 변태라서 정말 별의별 짓을 다 해.”
2호가 웃는 낯으로 소름 끼치는 소리를 하고 있을 때, 1호의 무전기가 울렸다. B조 조장이었다. 헬기 소음이 커서 말소리를 알아듣기가 힘이 든다. 1호는 귀에 꽂은 이어폰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양반은 못 되는구만. 왜? 벌써 목표량만큼 다 잡았어? 우린 뭐 좀 하는 중인데.”
― 치이익, 큭큭큭, 아니야. 아직 상공이야. 치익― 아, 나 웃겨서! 너,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줄 아냐? 치익.
“글쎄? 땅에 내리지도 않았는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나? 잘 모르겠네.”
1호는 귀찮다는 듯 대꾸하며 자신이 고른 여자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빨리 일을 끝내줘야 3, 4호도 재미를 볼 수 있다. 무전기 저편의 B조 조장은 또 한참 낄낄거린 뒤에야 겨우 진정하고 말했다.
― 치익, 야! 여기… 치익, 지금 자동차 타고 다니는 새끼들이 있어. 큭큭큭. 치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