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가장 뜨거운 날 (1)
“에이, 설마… 내가 그렇게 겁 없이 군 적이 있나… 그리고 어제 너도 계획 다 들었잖아.”
유빈은 쓴웃음을 지으며 카니발에 짐을 실었다. 신입이 멍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자 태권소녀가 손바닥을 펴서 그의 등짝을 한 대 쫙, 치고 지나갔다.
말이 손바닥 한 대지, 어지간히도 매워서 이건 등에 불이 붙은 것 같다. 여간해서는 손이 잘 닿지도 않는 등짝 한가운데를…….
“아! 아야! 이런 씨바…….”
욕을 하려던 신입이 급하게 입을 다문다. 태권소녀가 매서운 눈초리로 휙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남이 말할 때 잘 좀 들으라고. 담배 피운다 어쩐다 그러면서 딴짓하지 말고. 네가 멍청하게 굴다가 그것 때문에 우리 다 곤란해지면 어쩔 건데?”
“내, 내가 언제 누구를 곤란하게 했다고 지랄이야! 이씨… 어차피 오늘은 서 있는 차들 중에서 배터리만 갈아서 산책로까지 내려놓는다고 했잖아. 멍청한 게 손은 존나 매워 가지고…….”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쳐서 보안관과 삼식이 뒤에 숨은 신입이 성질을 부렸다. 태권소녀는 그런 신입의 얼굴을 빤히 노려보았다.
“그래! 그다음에 이 차들로 가능한 한 멀리까지 가본다는 말도 했었지. 이 앞 산책로가 얼마나 뚫려 있는지 확실히 모르니까. 빗물 호수에 막힌 데가 있으면 두 대는 거길 넘어가서 세워둔다는 말도 했고! 다 네가 툴툴거리면서 딴청 피울 때 했던 이야기들이잖아!”
카니발에 규영이를 태운 태권소녀가 문을 쾅! 닫는다.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을 확인한 신입은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투덜거렸다.
“미친년… 빠짝 쫄아 가지고… 자기가 무서우니까 공연히 나한테 성질을 부리고 자빠졌네.”
보안관이 제니, 임수정과 함께 코롤라에 탔고, 흡연차인 오피러스에는 신입과 삼식이가 탑승했다. 자동차의 문을 닫고 둘만 남았을 때, 삼식이가 신입을 돌아보며 말했다.
“야, 근데 신입. 너도 밖에 나올 때는 좀 긴장감을 가져라. 나서서 작전을 짜라는 것도 아니고, 잘 들어두라는 거잖아. 그 정도는 해야지. 너 만약에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글쎄? 몰라? 자동차에 타고 도망간다?”
“이것 봐. 이러면 안 돼. 만약에 카니발이 비어 있으면 무조건 거기에 타는 거야. 그래야 그거 한 대로 다른 사람들도 다 태울 수가 있지. 그리고 차 열쇠는 무조건 운전석 선바이저에 끼워두기로 했어. 물론 너는 그것도 안 들었겠지만.”
삼식이가 말했다. 다들 자신한테만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아 불만스러워진 신입이 머리를 긁적이며 투덜댔다.
“아, 몰라! 애초부터 별로 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끌고 나오더니 이제는 별걸로 다 잔소리를 하네, 개새끼들. 위기 상황에 처할 게 무서우면 애초에 안전한 데서 기어 나오지를 말았어야지! 씨발, 그리고 위기 상황이라는 게 뭔데? 멀쩡히 차 타고 갔다가 돌아오는 건데, 어떻게 하면 그런 상황에 처하냐?”
“음… 나도 그건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뭔가 다급하니까 위기 상황인 거겠지.”
한껏 진지한 목소리로 충고해 주던 삼식이가 바보 모드로 돌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두 바보가 위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무전기에서 유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치익, 내 목소리 들려, 보안관? 치익, 삼식아?
“응, 잘 들리는데? 일반 도로에서보다 깨끗하게 들려.”
― 나도 잘 들린다. 치익.
― 치익, 그러면… 치익, 일단 출발할게. 거리를 좀 두고 따라와 봐. 치이익.
그 무전을 남기고 유빈과 태권소녀, 규영을 태운 카니발은 천천히 출발했다. 그 뒤를 따라 보안관이 모는 코롤라가, 마지막으로 삼식이의 오피러스가 따라갔다. 길가에 세워둔 네 번째 자동차, 소형 SUV를 보며 신입이 물었다.
“야, 저건 왜 여기에 내려놓기만 하고 안 타고 가는 거야?”
“으응, 저 차도 보험이야. 이 차들 다 언제 퍼질지 모르니까 한 대 정도는 여유분을 가지고 있자는 거지. 뭐, 딱히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만 일해두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날씨 좋다… 좀 덥기는 하지만.”
삼식이는 뜨거운 태양이 높이 솟아 있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계속 달궈져 있던 차 내부라서 에어컨을 팽팽 돌려도 아직 시원하지 않다.
무심코 담배를 물던 신입은 이번 주행 내내 금연하기로 했던 걸 기억해 내고 담배를 다시 갑에 넣었다.
“우와… 이런 경치를 또 보게 될 줄은 진짜…….”
1호차 카니발에서는 규영이 황홀한 표정으로 차창 밖에 팔을 내민 채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지난 7월 14일 이후 계속 상봉동 코스트코 주변의 좁은 영역 안에서만, 그것도 대부분 자신의 방 안에서만 살아왔던 그에게 이번 외출은 정말로 각별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달릴 만하네. 이러다가 정말 오늘 잠실까지 가는 거 아니야?”
출발하기 전까지 야구 배트를 꽉 움켜쥐고 있던 태권소녀도 조금 상기된 얼굴로 중얼거린다. 그녀에게도 드라이브는 좀비 사태 이후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좁고 장애물이 많이 떨어져 있는 산책로지만, 차를 타고 달린다는 속도감은 정말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움푹 떨어져 나간 구멍을 피해 달리면서 유빈이 고개를 저었다.
“운이 좋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 길을 막은 호수 같은 게 또 생겨있지만 않으면. 그런데 여기 산책로를 달리는 것 하고, 강을 건너서 잠실까지 가는 것하고는 다른 이야기야. 난이도가 확 뛰어. 산책로만 따라 달려서는 다리를 건널 수가 없거든.”
“아, 맞다. 너 임시 거처 찾아보는 것만 이야기하고, 강 건너는 방법은 말 안 하더라? 그냥 무작정 가는 거야?”
“강 건너가는 거는… 애초에 오늘내일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었어. 거기 상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작정 방법을 정할 수가 있나. 그냥 오늘은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올 수만 있어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
유빈은 산책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몇 번의 큰 비 이후 계속 방치되어 왔던 산책로는 흘러내린 돌들과 부러진 나무 따위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비록 시속 30킬로미터 정도의 느린 속도로 달리는 것이라고 해도 꽤나 신경이 쓰인다.
“형, 한강… 그 주변에 가면 좀비들이 많을까? 아무래도 그쪽은 사람도 많이 모여 살았던 데고… 임시 거처 찾아보는 것도 쉬운 건 아닐 것 같은데요.”
규영이 말했다. 유빈이 짜놓은 작전에서 강변의 임시 거처는 중요한 필수 조건이다. 한강과 그 너머의 상황을 주시해 가며 안정적으로 지내려면, 육안으로 한강이 보이는 위치에 숙소를 구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런 목적에 적합한 장소가 어디쯤인지, 그곳을 차지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직접 가보기 전에는 모른다. 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위험해. 그러니까 모험이지.”
5분 정도 더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자 산책로는 점점 더 좁아졌고, 길 양쪽으로 난간이 설치된 구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머리 위로는 몇 개의 다리가 교차하며 지난다.
느낌이 안 좋다. 유빈은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발에 힘을 주었다.
“꽉 잡아. 흔들릴 거야.”
“왜 이렇게 빨리 달려? 길도 좁아졌는데?”
유빈이 속력을 높이자, 태권소녀가 놀라 묻는다.
“다리가 무서워서!”
유빈은 핸들을 꽉 쥐며 대답했다. 움푹 팬 구멍 위를 지날 때마다 차가 들썩였다. 하지만 어차피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라서 피해 나갈 수는 없다.
찌직, 차량이 옆으로 흔들리자, 난간에 갈린 펜더에서 듣기 싫은 쇳소리가 울린다.
위이잉―
보안관과 삼식이의 차도 속도를 맞춰 따라온다. 그렇게 세 개의 다리 중 두 개를 지났을 때였다.
쿵! 카니발의 뒤쪽 지붕이 움푹 우그러지며 차체가 흔들 한다.
콰장창! 충격을 받은 뒤쪽 유리창들이 박살 나며 파편을 날린다.
“뭐! 뭐야? 규영아, 괜찮아?”
태권소녀가 비명을 지르고 뒤를 돌아봤다. 규영은 놀라 눈이 커다래져 있었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그저 규영이 뒷자리의 지붕이 꽤나 우그러져 있을 뿐이다. 유빈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
“좀비들이야! 다리에서 뛰어내렸어!”
그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깨진 후면 유리창 사이로 또 다른 좀비가 떨어져 내리는 게 보인다.
바닥에 직격한 좀비가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날 때쯤, 보안관이 모는 코롤라가 녀석을 들이받았다.
콰작― 좀비가 넘어지며 바닥에 깔렸고, 녀석의 팔에 걸린 코롤라의 범퍼 커버가 떨어져 나간다. 좀비의 시체를 밟고 지나는 동안, 자동차는 크게 두 번 기우뚱거렸다.
찌지직, 옆으로 기운 코롤라의 차체가 난간에 긁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이드미러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또 와요, 오빠!”
제니가 앞쪽을 가리키며 비명을 지른다. 보안관도 알고 있다. 그는 가속페달을 깊이 밟았다.
쌔에에엥―
작은 엔진이 급가속을 하는 소리에 이어 콰앙! 묵직한 충격이 핸들을 통해 전달된다. 코롤라에 받힌 좀비는 크게 튀어 전면 유리창에 부딪쳤다.
콰작―
충격을 받은 전면 유리창에 위쪽에 실금이 쫙 퍼졌다. 녀석의 시체는 난간 너머로 튕겨져 높이 자라난 갈대숲 사이로 날아가 처박혔다.
“뒤는 어때요? 삼식이네 차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좀비 시체를 잇달아 들이받으면서 보안관이 외쳤다. 유리창이 깨지면서 룸미러 각도가 바뀌어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래도 이제는 다리 밑을 다 관통했다. 임수정이 뒤를 돌아보며 대답한다.
“보닛이 다 찌그러졌어! 어떡해! 별로 안 좋아 보여!”
“젠장! 따라오고 있기는 해요?”
보안관의 질문을 들은 임수정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닌 것… 같은데? 점점 거리가 벌어져.”
“에?”
보안관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뒤를 돌아보았다. 삼식이의 오피러스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잔뜩 찌그러진 보닛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아마도 떨어진 좀비가 엔진을 강타하면서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아으! 젠장! 삼식아! 너 괜찮아?”
보안관은 무전기를 잡고 외치면서 곧바로 후진을 했다. 무전을 통해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걸 깨달은 유빈의 카니발도 후진 표시등에 불이 들어왔다.
― 치익, 응, 괜찮은데… 좀비가… 치익― 야이 개새끼야! 지금… 치이익― 무전기 잡고 있을 때야? 어어어어! 치익.
삼식이와 신입의 목소리가 반반씩 섞여 들려온다. 거리가 줄어들자, 보안관도 그들이 왜 그렇게 다급해했는지 알 수 있었다.
뼈가 부러져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좀비 두 마리가 오피러스의 조수석 문에 달라붙어서 기어오르려는 중이다.
“아으, 이 징그러운 새끼들! 야! 내가 갈게! 문 열지 말고 있어!”
무전기를 내려놓은 보안관은 차문을 열고 내리며 문에 기대뒀던 빠루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시체들 사이를 타 넘으며 오피러스 쪽으로 뛰어갔다.
그롸아아아―
유리창을 들이받고 있던 좀비 중 한 마리가 보안관을 돌아보고 멈칫한다. 바로 유리창 너머에서 겁에 질려 소리를 질러 대는 신입과,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는 보안관 중 어떤 걸 먼저 잡아먹을까 고민이 되는 모양이다.
“뭘 그렇게 쳐다봐! 이 새끼야!”
보안관은 빠루를 있는 힘껏 휘둘러 녀석의 옆머리를 박살 냈다. 비틀거리는 첫 번째 좀비의 턱을 후려갈겨 난간 너머로 넘겨 버리는 동안, 두 번째 좀비는 박치기를 계속해서 결국 조수석 유리창을 깨뜨려 버렸다.
“으아아아!”
좀비의 머리가 차 내부로 쑥 들어오자, 신입은 삼식이의 무릎 위로 기어 올라가며 비명을 질렀다. 녀석이 하도 난리를 쳐서 삼식이도 저항다운 저항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적당히 해라, 응?”
보안관은 팔을 쭉 뻗어 좀비의 뒤통수와 목뼈 중간 지점을 후려쳤다.
빠각―
이상한 소리와 함께 목이 뒤로 꺾였는데도 좀비는 어떻게든 팔을 넣고 신입을 움켜쥐어 보려고 버둥거린다. 보안관은 다시 한 번 세게, 또 한 번 더 세게, 사정없이 후려쳤다.
빠직! 뻑!
결국 세 대 만에 좀비는 목이 뒤로 90도 이상 꺾인 채 천천히 미끄러져 내렸다. 터져 버린 녀석의 뒤통수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나는 뇌수가 찐득한 피와 함께 흘러내린다.
신입은 그동안에도 계속 고성을 질러 대고 있다. 하긴 좀비의 눈알과 뼛조각이 바로 눈앞에서 튀어나오는데, 비명이 터질 만도 하다.
“아으, 시끄러워. 야, 다 죽였잖아. 그만 소리 질러.”
보안관은 미간을 찌푸리며 금이 쫙쫙 간 앞 유리창을 두드렸다. 운전석 문을 열고 나온 삼식이가 한숨을 내쉰다.
“으아, 진짜 놀랐어. 갑자기 하늘에서 뭐가 팍 떨어지니까… 가뜩이나 정신없는데, 신입은 계속 안겨오지…….”
“차 안 움직여?”
“으응, 그러네. 시동이 꺼지더니, 그다음부터는 먹통이야. 뭐가 다 뽀개졌나 봐. 열어봐야 하나?”
보닛에 손을 대보려던 삼식이는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오자 흠칫하며 물러났다. 그런 녀석의 어깨를 보안관이 탁, 때렸다.
“열어보면 뭐, 아는 거 있어? 그냥 아하… 이게 엔진이구나, 하는 정도지. 이 정도 김이 뿜어져 나오는 거 보면 뭐가 단단히 잘못된 건데, 그냥 버려. 버리고 짐이나 챙기자. 신입, 너도 빨리 나와서 짐 챙겨. 좀비 새끼들 또 다리 위로 지나가지 말라는 법 없으니까! 도망갈 수 있을 때 도망쳐야 돼!”
삼식이와 보안관, 그리고 신입은 트렁크를 열고 짐들을 카니발에 옮겨 실었다. 이틀분의 식량과 물, 그리고 몇 개의 무기 겸 공구, 여분의 자동차 배터리와 연료통.
커다란 트렁크에 차 있던 물건을 옮기는 동안, 모두들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다리 위쪽을 힐끔거리게 된다. 뭐가 언제 떨어질지 불안하기만 하다.
“이건 어쩌지? 돌아올 때 생각하면 차가 완전히 길을 막은 꼴인데… 치워두고 가야 되지 않아?”
마지막으로 배낭을 빼내면서 삼식이가 오피러스의 지붕을 두드린다. 그동안 고맙게 잘 타고 다녔는데, 엔진 룸이 박살 나버린 지금은 그냥 길을 막고 선 고철일 뿐이다. 카니발의 트렁크에 짐을 싣고 있던 유빈이 대답했다.
“그냥 기어만 중립으로 해놔. 이따가 차로 천천히 밀어버리면서 전진하게. 어차피 그때는 속력 못 내. 시체들이 이렇게 잔뜩 길을 막고 쓰러져 있으니까.”
삼식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어를 바꾼 뒤 차문을 닫았다. 길을 떠난 지 10여 분도 되지 않아, 세 대로 출발한 차는 이내 두 대로 줄어버렸다.
두 사람을 더 태운 카니발은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자동차 내부에 가득했던 약간의 들뜬 분위기는 깨끗이 사라졌고, 대신에 긴장감이 확 커져서 다들 말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역시 멀리 간다는 건 장난이 아니다.
“한강이다.”
좀비들이 뚝뚝 떨어져 내리던 구간에서부터 출발해 다시 5분여. 완만한 곡선 차로를 따라 천천히 차를 몰고 가던 유빈이 말했다.
이미 꽤나 폭이 넓어져 있던 중랑천보다도 더 넓고 큰 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진짜? 한강이라고? 잠실은? 잠실은 어딘데?”
뒷자리에 앉아 있던 신입이 호들갑을 떤다. 규영이 지도를 펴며 한 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우리가 있는 데는 여기예요. 이 톡 튀어나온 코너 같은 데요. 여기 T자로 중랑천이랑 한강이랑 만나잖아요. 바로 거기, 잠실은 여기에서 동쪽으로 한 3킬로미터 이상 더 가야 돼요.”
“에? 여기에서 더 가야 된다고? 어휴~ 저기 다리 또 존나 많은데? 야, 저 다리는 뭐야? 무슨 다리야?”
신입은 두려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300여 미터 앞의 다리를 바라본다. 한 번 뛰어내리는 좀비들에게 곤욕을 치르고 나니, 다리만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게 됐다.
다들 말은 않고 있었지만 카니발에 타고 있는 나머지 네 명도, 뒤따르는 코롤라의 세 명도 신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 다리는 성수대교네요. 여기 지도 보니까. 그다음에 한 2킬로미터 더 가면 영동대교, 청담대교, 그리고 잠실대교. 잠실야구장은 청담대교랑 잠실대교 사이에 있다고 보면 되고요. 아, 물론 강을 건너서요.”
‘서울 숲’이라는 표지판을 지나쳐 유빈은 천천히 속도를 줄이다 멈춰 섰다. 성수대교 부근에 닿기 전에 미리 다음 작전을 세우고 이동하고 싶어서다.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들 근처로 가면 좀비들에 둘러싸이게 될 위험성이 이런 녹지 공원보다 몇 배나 높아진다.
“배는 안 보이네. 하다못해 오리 보트라도.”
유리가 박살 난 유람선 선착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권소녀가 한숨을 섞어 푸념했다. 한강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해결된 문제는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 막 한강 건너편의 청담동 방향에서 새로운, 아주 골 아픈 문제가 하나 그들을 향해 다가오려고 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