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21화 (321/449)

3장 Jet (7)

지독한 싸움이었다. 손가락이 잘려 나갈 것 같은 위기도 여러 번 겪었다. 하지만 결국 승리했다.

악마 같은 새끼들을 모두 잡아 죽인 뒤에 감옥의 문을 열었을 때, 거기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두 여자가 있었다. 테라, 그리고 제니.

“나와도 돼. 이제 안전해.”

진우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핑크 펀치 두 명은 홀린 듯 그를 바라본다.

“…정말이요?”

둘이 동시에 묻는다. 언제나 듣던 그 목소리, 그 느낌. 테라는 수줍어했고, 제니는 도발적이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고맙습니다, 오빠!”

제니와 테라가 진우의 목을 얼싸안고 팔짝팔짝 뛴다. 그녀들의 머리카락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온 몸에 전류가 지릿지릿 흐르는 것 같다.

으으응~ 너무나 황홀해져서 진우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쁜 놈들 엄청 많았는데, 어떻게 이기신 거예요?”

“아, 그야 뭐…….”

진우는 가슴에 달려 있는 특등사수 휘장을 내보이며 말했다.

“내가 제일 잘 쏘니까.”

꺄아― 그녀들은 가벼운 비명을 지르며 환하게 웃는다. 테라가 볼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멋있어요.”

“응? 응? 진짜? 내가 멋있다고?”

진우는 당황해하면서 제니를 돌아봤다. 제니도 고개를 끄덕인다.

“네, 저도 반한걸요. 후후후… 그럼 이제 결정할 시간이네요…….”

바라보기만 해도 녹아버릴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제니가 진우의 볼을 쓸어준다.

응? 결정? 무슨 소리야?

진우는 얼빠진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누구를 선택할 건지요.”

테라가 쑥스러워하면서 고개를 모로 튼다.

정말? 정말 내가 고르면 되는 거라고? 진우는 바짝 말라오는 입술을 핥았다.

이럴 수가! 나는 그냥 순수하게 구해준 것뿐인데… 너희들, 나에게 완전히 홀딱 반해 버렸구나!

“누구를 택해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제니가 고혹적으로 웃었다. 테라도 부끄러워하며 덧붙였다.

“응, 너무 멋지니까.”

하… 하하하……. 벅차오르는 기쁨에 진우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렇지! 이런 게 정의고, 이런 게 사는 거지! 이렇게 되려고 그동안 그렇게 고생을 했었구나! 그래, 그 모든 일들이, 지금도 온몸이 뻐근한 이 고통이 다 이 순간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납득할 수 있다.

“대답… 안 해줄 거예요? 누굴 선택할 건지.”

테라가 물었다. 그 말을 하는 것이 어지간히도 부끄러운지 그녀는 두 손으로 치맛자락을 꼭 쥐고 있다. 제니는 굵게 웨이브 진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찡긋 윙크를 한다. 진우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좋아하던 고참이 가르쳐 준 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진리라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난 이 시점에 너희들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어.”

“뭔데요?”

제니와 테라가 바짝 다가오며 물었다. 긴장한 둘의 숨결이 진우의 목덜미에 닿는다. 그녀들의 온기를 느끼면서 진우는 씩 웃었다.

“둘 다 선택할 수 있는데, 하나만 고르는 건 바보 새끼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어머~ 몰라요! 이상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둘은 진우의 가슴을 꼬옥 끌어안는다. 진우도 양손으로 그녀들의 머리를 쓸었다.

품 안에 들어온 테라와 제니! 아아… 이 쾌감, 이 성취감! 진우의 가슴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정말 우리 둘, 다 감당할 수 있어요?”

제니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진우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날름 그의 목덜미를 핥았다. 그녀의 과감한 혀가 턱 선을 타고 올라와 입술에 이르렀다.

테라도 진우의 코에 입을 맞춘다. 진우는 그녀들의 머리카락을 더 바짝 틀어쥐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숱이 많고 억센 머릿결이었다. 꼭… 개털 같았다.

“으! 으!”

진우의 입에서 터지는 신음. 너무 좋다. 좋기는 진짜 좋은데…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코와 입을 바쁘게 핥아대니, 수… 숨을 못 쉬겠다.

“자… 잠깐만! 나 숨 좀…….”

견디다 못한 진우가 그녀들을 밀쳐 내보려 했다. 하지만 제니는 그 다이너마이트 같은 몸으로 진우를 꽉 옥죈다. 진우는 안간힘을 써 보지만 꿈쩍도 않는다. 얘가 이렇게 무거웠던가…….

“안 돼요. 이제 막 달아오르는 참인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니는 다시 진우의 볼과 입을 핥아댔다.

으아… 침이… 침이 어지간히 많은 애다. 게다가… 입 냄새가… 얘네들, 도대체 며칠이나 이를 못 닦고 갇혀 있었던 거지?

“…만, 그…만! 그만! 제발 그만!”

비명을 질러 대다가 진우는 잠에서 깼다. 바로 눈앞에 삼식이의 커다란 얼굴이 기다리고 있다. 진우의 위에 올라탄 채 계속 핥아대던 삼식이는 마침내 진우가 눈을 뜨자 반가운 목소리로 얼― 하고 짖었다. 녀석의 입술 한구석에서 끈적한 침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 이게 뭐지? 테라랑 제니는… 어디로 가고…….’

잠시 멍해져 있던 진우는 그 달콤한 순간이 꿈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꿈이라도 좋다. 그런 상황에 놓여서 기뻐할 수만 있다면 하루에 열 시간이라도 자고 싶다. 그런데… 이, 이놈이 깨워 버렸다.

“아으~ 이 새끼야! 좀 이따가 핥을 것이지! 완전 기분 좋은 꿈이었는데… 너 때문에 깼잖아! 진짜… 그런 꿈을 꾸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아으, 이 침… 이거 다 어쩔 거야?”

진우는 녀석의 볼따구니를 잡고 좌우로 흔들면서 투덜댔다. 그래봐야 기죽을 삼식이가 아니다.

녀석은 진우가 잔소리를 늘어놓는 바로 그 순간에도 또 널름 볼을 핥는다. 진우는 울상을 지으며 침대 시트를 당겨 얼굴을 닦았다.

“으, 몇 시까지 잔 거냐, 나.”

진우는 시계를 확인하고 고개를 저었다. 늦은 새벽까지 보초를 서다가 선잠이 드는 바람에 해가 중천에 오를 때까지 퍼져서 잤다.

뿌옇게 흐려져 있던 머릿속이 차차 개면서 어제 했던 일들과 오늘 해야 할 일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맞다! 혹시 그놈들 패거리 왔나?”

손가락 목걸이를 한 놈들을 쏴 죽였던 일이 떠오른 진우는 창문에 기대 바깥쪽을 엿봤다. 밖은 고요했다.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바람에 따라 이따금씩 흔들리는 나뭇가지 정도뿐이다.

하긴 근처에 사람이 와 있으면 삼식이가 이렇게 태평할 리가 없다.

“그래, 제트스키 타야지.”

선착장으로 나와 삼식이와 아침을 먹으면서 진우는 넓고도 끝없이 뻗어 있는 남한강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햄과 건빵을 우물거리는 자리에서 10여 미터 뒤에는 좀비와 사람들의 시체가 잔뜩 널브러져 있고,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피는 아직도 다 마르지 않았다.

붉게 물든 시멘트 바닥을 바라보면서도 진우는 통조림 속에 남은 햄을 남김없이 싹싹 다 긁어 먹었다.

“어디… 계획을 한 번 세워보자.”

진우는 비닐봉지로 방수 처리한 짐들을 고무보트에 싣고, 로프로 묶어 고정시켰다.

탄창이 든 가방, 배낭, 전술 조끼, 식량 보따리, 그리고 삼식이를 여기에 태워 제트스키로 끌고 갈 것이다. 제트스키 앞쪽에 물품 보관 공간이 있긴 하지만, 그리 크지 않아서 하루치 식량과 예비 연료 약간을 채워 넣으면 꽉 차기 때문이다.

“됐나?”

짐들을 고정시킨 뒤, 진우는 보트를 좌우로 흔들어보면서 중심을 점검해 봤다. 무게 배분은 대충 맞은 것 같고, 연결 상태도 튼튼하다. 이제 가운데에 삼식이만 앉으면 된다.

“삼식아, 이리 와. 여기 앉아.”

진우가 고무보트 바닥을 통통, 두들기자, 선착장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삼식이는 경쾌하게 보트 위로 뛰어올라 가방 옆에 턱 선다. 진우는 선착장과 연결된 로프를 풀어냈다.

“중심 잘 잡고 있어. 연습 한 번 해볼게.”

제트스키 핸들을 잡은 진우는 삼식이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줬다. 그러고는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부드드드드등―

엔진 소리와 함께 뒤쪽에서 물기둥이 약하게 뿜어져 나온다. 진우는 허리를 돌린 채 앉아 그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신기한 물건이다. 어제 보니 뒤쪽에 스크루 같은 것도 눈에 띄지 않던데, 대체 어떤 원리로 이게 물 위에서 달리는 걸까?

“좋아, 간다!”

진우는 가볍게 핸들을 틀고 팔목을 비틀어 액셀러레이터를 돌렸다.

부드드드등―

엔진 소리가 더욱 요란해지는가 싶더니, 제트스키가 출발한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쉽다.

핑―

보트와 연결해 뒀던 로프가 팽팽하게 당겨지는가 싶더니, 제트스키가 빠르게 앞쪽으로 질주했다. 진우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더욱 속도를 올렸다.

“와하하하하! 이거 봐! 별거 아니네! 자전거보다 더 쉬워!”

부아아아앙― 파악― 파악―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를 때마다 제트스키는 가볍게 위쪽으로 튄다. 물보라에 얼굴이 흠뻑 젖은 진우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삼식아! 너도 재미있지? 꽉 잡아야 돼! 떨어지지 않…….”

하지만 보트는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제트스키의 꼬리에는 로프만 길게 끌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저 멀리 혼자 남겨진 고무보트 위에서는 삼식이가 멍한 눈으로 진우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 첨벙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녀석이 허우적거리며 개헤엄을 치는 걸 보며 진우는 다급하게 핸들을 틀었다.

제트스키는 수면 위에 크게 원을 그리며 다시 선착장으로 되돌아갔다. 제트스키가 근처로 와서 멈춰 서자, 삼식이는 미친 듯이 다리를 움직여 대며 수영 속도를 높였다. 그런 후, 진우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제트스키 위로 기어올랐다.

“하하하하! 놀랐어? 미안, 미안. 아니, 이게 왜…….”

진우는 삼식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고무보트와 연결했던 로프를 살펴봤다. 끊어진 게 아니었다. 단지 그가 매듭을 잘못 묶었던 것뿐이다.

“이번에는 두 번 겹쳐서 묶어둬야지. 혹시라도 가는 도중에 또 풀리면 안 되니까……. 야, 삼식아. 머리 좀 치워봐. 안 보이잖아. 옆으로 가 있어.”

매듭을 다시 단단히 묶던 진우는 바짝 달라붙은 삼식이를 밀어내며 말했다. 하지만 이놈,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계속 앞발을 대고 머리를 기웃거려서 진우의 일손을 늦춘다.

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다. 진우가 보트로 가면 놈도 보트로 오고, 진우가 제트스키로 옮겨 타면 녀석도 훌쩍 좌석 위로 뛰어오른다.

가뜩이나 좁고 중심을 잡기 어려운 데서 덩치가 커다란 놈이 그렇게 쫓아다니니, 이만저만 귀찮은 게 아니다.

“어후! 정신없어! 한자리 진득하게 좀 있어, 삼식아.”

녀석에게 밀려 물에 빠질 뻔한 진우가 짜증을 부렸다.

후우~ 진우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제트스키 핸들을 잡았다. 그랬더니 그 구박에도 아랑곳 않고 삼식이 놈은 앞자리로 파고들어 커다란 등짝으로 시선을 다 가린다.

“야, 삼식아. 안 보여. 저기 보트에 가 있어.”

아무리 부탁을 해봐도 녀석은 요지부동이다. 진우가 자리를 알려주기 위해 직접 보트 위로 걸어가 자, 그제야 따라온다.

“그래, 그렇게 앉으라고. 잘할 수 있잖아.”

진우가 이마에 솟아난 식은땀을 훔치고 다시 제트스키의 좌석에 앉자, 삼식이 놈은 또 따라왔다.

어휴~ 이건 대체 무슨 장난이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나는 마음이 급해 죽겠는데…….

진우는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일어서는 삼식이를 손바닥으로 막으며 화를 냈다.

“야! 장난 그만 쳐! 왜 그래? 너, 왜 갑자기 바보 흉내 내냐? 영리한 놈이 그렇게 하니까 더 답답하잖아!”

끄응, 삼식이는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하면서도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 순간, 조금 전 남겨진 보트 위에 뻥 뚫린 듯한 눈으로 앉아 있던 녀석의 모습이 거기에 겹쳐 보이자, 갑자기 가슴이 뭉클하다. 진우는 비로소 녀석이 이런 기행을 보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 혹시… 버리고 갈까 봐 그래? 아니야. 내가 왜 그러겠어. 그거는 그냥 실수였어. 줄이 잘 묶여있는 줄 알았다고. 저기 보트에 내 탄창도 있었잖아. 너, 알지? 내가 그걸 버리고 가겠어? …에이, 알았다. 그래, 여기 타라.”

녀석의 마음을 읽은 것 같아 진우는 더 이상 내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이 양보하기로 했다.

허락을 받은 삼식이는 신이 나서 진우와 핸들 사이로 파고든 뒤, 앞발을 계기판 위에 척 걸쳤다.

덕분에 진우는 녀석의 넓은 등판 밖에 안 보인다. 진우는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전방의 시야를 확보하려고 애를 썼다.

초보운전을 하는 입장에서 정말 불편한 자세였지만, 지은 죄가 있는 터라 꾹 참았다. 워낙 시원하게 트인 강 위를 달리는 거니까, 속도만 그리 내지 않으면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잘 잡은 거 맞아? 이거, 꽤 흔들린다.”

앞에 앉은 삼식이가 중심을 잘 잡고 있는지 몇 번이나 확인해 본 뒤에 진우는 액셀러레이터를 돌렸다.

부아아아앙―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제트스키가, 그리고 거기에 연결된 고무보트가 앞으로 나아간다. 진우는 가끔 한 번씩 고개를 돌려 고무보트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얼― 얼― 얼―

조금 시간이 지나자 삼식이도 기분이 좀 풀렸는지 신나게 짖어 댄다. 몸을 틀어가며 앞을 살피던 진우도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 속력을 내는 것도 아닌데, 둘을 태운 제트스키는 금방 몇 개의 교량 아래를 지나 커다란 호수에 도착했다. 시원한 바람이 물보라를 싣고 날아와 얼굴을 적신다.

“으아~ 아름답다.”

거울처럼 맑은 수면과 거기에 비친 녹색 섬들을 바라보며 진우는 탄성을 질렀다.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빼어난 경치였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길고, 길고, 길었던 여정의 종장은, 그렇게 그림 같은 풍경과 함께 시작되었다.

드디어 오늘, 몇 시간 내에 그는 잠실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 ☆ ☆

“천천히 와봐! 천천히!”

유빈이 앞에서 손짓으로 신호를 보낸다. 보안관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채 핸들을 꺾어 차를 최대한 경사진 잔디밭 쪽에 붙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가속페달을 밟았다.

철벅―

그래도 물을 완전히 피해 가지는 못한다. 비스듬하게 기운 채 달리던 코롤라의 왼쪽 앞바퀴가 절반 이상 물에 잠겼다.

포기하려면 지금 해야 한다. 만약 흡기구가 잠겨 버리면 자동차는 접지력을 잃고 그냥 물에 끌려들어가 버릴 테니까. 또 비탈길의 경사를 이기지 못해 넘어가 버린다고 해도 끝장이다.

“에이! 그냥 가볼래! 어차피 내 돈 주고 산 차도 아니고! 정 안 되면 새로 하나 구하지 뭐! 간다!‘

앞뒤 재기 귀찮아진 보안관은 액셀을 지그시 밟았다. 물이 튀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에 둔중한 저항이 느껴진다. 왼쪽 차체의 아랫부분이 물에 잠긴 것이다.

왈칵― 왈칵―

예전 좀비들을 들이받을 때 찌그러져 벌어진 문틈 사이로 물이 새어 들어온다. 그래도 보안관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아아앙―

기울어진 채 달리던 코롤라는 결국 물웅덩이를 통과했다.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친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짤깍짤깍 손뼉을 쳐준다. 기가 산 보안관은 차에서 내려 삼식이를 뒤돌아봤다.

“삼식아! 내가 지금 지나온 라인 보이지! 그리로 오면 돼! 안 넘어가!”

“하하하! 내가 더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건데?”

자신 있게 말한 삼식이는 오피러스를 몰고 비슷한 궤적을 통과했다. 그간 비가 오지 않아 웅덩이의 물이 줄어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잘했어. 이제 나눠 타보자.”

유빈이 앞쪽에 내려둔 카니발로 다가가며 말했다. 오늘 동부간선도로에서 골라 배터리를 갈고 내려놓은 미니밴이다.

“탄다고? 어디 가려고?”

새벽부터 펜스를 떼어내고 자동차를 미느라 진이 쪽 빠진 신입이 물었다. 유빈이 앞쪽으로 뻗어 있는 산책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길로 쭈욱.”

신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설마… 잠실까지 간다고? 지금? 이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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