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20화 (320/449)

3장 Jet (6)

얼―! 얼―!

삼식이가 세 번째 짖을 때에야 진우도 깨어났다. 녀석이 워낙 낮게 짖었던 탓이다.

“응? 뭐야? 왜 그래, 삼식아? 좀비야?”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진우는 버릇처럼 빠르게 K―2를 집어 들며 물었다. 삼식이는 여전히 진입로 방향을 향해 서 있다.

“오는구나!”

진우는 하이바를 쓰고 가방과 배낭을 들며 도망칠 준비를 했다. 몇 마리나 오고 있는지 모르니 일단 거리를 벌려두고 살펴야 한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전술 조끼를 찾다가 침대 모서리에 부딪친 진우가 하이바의 플래시를 켜자, 삼식이가 앞발로 그의 손을 막는다. 끄라고 하는 것 같다.

불을 켜지 말라고? 왜? 진우는 놀라서 녀석의 표정을 보았다.

이 상황은… 예전에 산속에서 이 녀석이 덤불로 분장한 저격수들을 미리 감지했던 때와 비슷하다. 화약 냄새를 맡고 도망쳐 숨어 있게 했던 그때와…….

“군인이라고? 설마?”

진우는 플래시를 끄고 삼식이를 돌아봤다. 녀석은 그제야 만족했는지 문 쪽으로 걸어가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데까지 군인이 올 리가 없잖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도 진우는 녀석과 함께 펜션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군인이라니… 지겹다. 이젠 정말로 안 된다. 바로 오늘 제트 스키를 얻었는데 또 끌려가야 한다면…….

진우는 계속 도리질을 하며 뛰었다. 둘이 선착장 부근에 도착했을 때, 진입로 쪽에서 인위적인 불빛이 반짝였다.

‘안 돼, 너무 빨라. 조금만 좀 있다가 오라고!’

하지만 짐을 모두 챙겨 떠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진우는 분한 마음에 이를 악물고 나무숲 사이에 몸을 숨겼다.

불빛은 잠시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처럼 배회하다가, 주차장 안쪽으로 다가오며 커졌다. 플래시였다. 그리고 여러 개다.

찌르륵― 찌르륵―

풀벌레 우는 소리 사이로 사람의 웅얼거림이 섞여 들려온다. 진우는 불빛이 반짝이는 방향을 노려보며 간절히 빌었다. 가까이 오지 마… 제발 가까이 오지 말고 그쯤에서 돌아가…….

하지만 그의 바람은 언제나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웅얼거림 정도로만 인식되던 목소리가 어느새 대화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가까워졌다.

“…잖아, 이 등신 새끼야. 존나 멍청한 새끼.”

“지랄하네. 분명히 내가 아까 여기에서 불빛이 번쩍거리는 걸 봤다고.”

“까고 앉아 있네. 어디서 도깨비불을 봤나 보지. 큭큭큭.”

“닥쳐, 개새끼야! 그러면 우리 구역에 모르는 게 왔다 갔다 하는데도 그냥 가만히 있을래? 그러다가 뒤통수 까여야 그때 후회하려고?”

“야, 좀 조용히들 좀 해! 씨발, 불빛을 찾아 나온 거냐, 아니면 도망가라고 알려주러 온 거냐?”

“어… 근데 여기 전에 와봤을 때 좀비 있는 것 같던데…….”

여러 개의 목소리가 정신없이 울린다. 진우는 침을 꼴딱꼴딱 삼키면서 가까워져 오는 불빛들을 노려보았다.

대화 내용이… 너무 무질서하고 계급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혹시 민간인? 생존자가… 있다고?

‘윽!’

그 순간, 불빛이 그가 숨은 위치 쪽을 훑는다. 진우는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켜져 있는 플래시는 모두 다섯 개. 사람은 여섯 명이다. 다들 사복을 입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개인화기로 무장을 했다.

“없어! 없어! 이 새끼가 잘못 본 거야. 내가 말했잖아!”

땅딸한 녀석이 펜션 주변으로 플래시를 빙 돌려 비추며 떠든다. 그 옆의 놈은 좀 더 적극적으로 뭔가를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혹시 모르잖아. 저번처럼 계집애들이 한 무더기 쑥 튀어나와서 살려 달라고 할 수도 있어.”

“야! 그때가 언제야, 이 새끼야! 바랄 걸 바라라. 계집애들끼리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두 놈이 떠들어 대는 동안 나머지는 분산해서 수색을 계속한다. 다들 어설프지만, 그래도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니 어느 정도의 능력은 있는 놈들이 맞다.

‘어쩌지…….’

놈들이 점점 가까워져 오는 걸 보면서 진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 정도를 제압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리고 하려면 놈들이 한 시야에 들어오는 지금 해버리는 편이 낫다. 더 가까이 오도록 내버려 둬봐야 별로 좋을 게 없다.

하지만 아무 감정도 없는 놈들을 다짜고짜 죽인다는 건… 그리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물론 그는 이미 꽤 많은 사람을 죽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꺼려진다.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다.

게다가 이 녀석들 역시 그 자신처럼 힘겹게 생존해 왔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발버둥 치던 놈들의 생명을 여기에서 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이쯤에서 대충 포기하고 돌아가 주는 게 서로를 위해 가장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진우는 자신의 K―2 모드를 연사로 바꿔두고 있었다.

“야! 이것 좀 봐!”

선착장 주변에서 누군가 동료들을 부른다. 놈들이 모이고, 진우의 시선도 그쪽으로 쏠렸다. 녀석들은 진우가 끌고 온 카트를 에워싸고 있었다.

“뭘 보라는 거야? 기껏 불러서 왔더니 좆도 없구만. 뭐, 이 등신아. 이 카트? 너 이런 거 처음 보냐?”

땅딸한 놈이 카트를 발로 찬다. 처음 그들을 불러 모은 녀석이 고개를 젓는다.

“카트 안에 들어 있는 걸 좀 보라고, 이 새끼야!”

“들어 있는 게 뭐? 뭔데? 이거? 이거, 그냥 먹을 거네. 좆도 거지 메뉴. 어휴~ 궁상 쩌네. 건빵이랑 멸치가 뭐냐…….”

땅딸한 놈은 보따리들을 뒤적거리며 투덜거린다. 이번엔 다른 녀석이 끼어들었다.

“저 새끼 말은 그게 아니잖아, 이 등신아. 이 카트든 음식이든 간에 여기에 안 어울리는 물건이라는 얘기지. 그리고 이 보따리는 절대로 여기 한 달 이상 방치되어 있던 게 아니야. 먼지가 덮여 있지를 않잖아. 불빛 봤다는 말이 진짜인가 본데? 여기 누가 왔었나 봐. 야, 잘 찾아봐.”

후우~ 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조용히 넘어가기는 텄다. 그는 벌떡 일어나 놈들에게 총을 겨누며 외쳤다.

“움직이지 마!”

조용하던 밤하늘에 진우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놈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서며 총을 고쳐 쥐려 한다. 진우는 다급하게 왼 손을 흔들며 놈들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냐! 아냐! 멈춰! 움직이지 마! 총에서 손 떼! 나, 너희 안 죽이고 싶어! 그러니까 까불지 말고 그대로 서 있어! 그럼 해치지 않는다! 움직이지 말라고!”

여섯 명 모두 숨을 죽이고 서 있다. 갑자기 숲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남자를 무엇으로 간주해야 하는지 그 계산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수영복 반바지에 맨발 차림이지만, 방탄 전술 조끼에 하이바를 갖추고 요란한 광학 장비가 달린 K―2를 들고 서 있는 남자. 아마 진우가 그들의 입장이었어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진정해! 그리고 도발하지 마. 나는 벌써 조준 마쳤고, 너희는 아니야. 그러니까 행여 기회가 있을 거라는 생각 하지 말라고! 너희들만 이상한 짓 안 하면 나는 너희 안 해쳐! 이건 진심이야! 자… 다들 총 내려놔.”

진우는 최대한 진심을 담아서, 그리고 위엄 있게 말했다. 하지만 놈들에게는 그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다.

여섯 놈은 쭈뼛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총을 내리려 들지 않는다. 진우는 가장 우측에 서 있는 녀석의 행동이 거슬렸다. 놈은 자꾸 방아쇠울 안에 손가락을 넣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야! 너! 반바지! 까불지 말라고, 이 새끼야! 총 내려놔! 너부터! 순서대로 한 놈씩!”

날선 목소리로 경고를 받은 뒤에야 녀석은 슬그머니 손가락을 뺀다. 그러나 아직도 총을 내려놓지는 않고 있다.

하긴… 자신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섣불리 무장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현명한 방법도 아니고.

그런 마음을 알기에 진우의 입도 바짝바짝 말랐다. 죽이는 건 쉽다. 하지만 못할 짓이기도 하다. 그는 어떻게든 이 녀석들을 무장해제시켜 묶어두고 싶었다.

어차피 하룻밤만 그렇게 해두면 된다. 내일 자신이 제트스키를 타고 떠날 때 풀어주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일이 마무리될 수 있다.

“젠장, 저 아저씨 말 듣자… 총 내려놔…….”

놈들 중 리더로 보이는 녀석이 천천히 허리를 굽히며 총을 바닥에 댄다. 그때, 진우는 녀석의 표정과 시선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 새끼… 나를 보고 있지 않았어… 대체 내 등 뒤에 뭐가 있기에…….’

진우가 위치를 바꿔야겠다고 느낀 순간, 뒤쪽에서 사납게 으르렁 대는 소리와 커다란 총성이 거의 동시에 울렸다.

크와아앙! 으르르!

타앙―! 타앙―!

진우는 자기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그가 움찔하는 사이에 앞쪽의 여섯 놈이 잽싸게 총을 고쳐 쥐고 그를 향해 겨눈다. 그러지 말라고 말려볼 틈도 없었다. 진우는 머뭇거리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탕탕탕― 탕탕― 탕탕탕― 탕탕― 탕탕탕―

커다란 메아리와 함께 화약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뭔가 시도해 보려던 여섯 명의 무장한 남자들은 머리와 가슴에서 피를 쏟으며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삼식이!

진우는 곧바로 뒤돌아섰다. 등 뒤에서 울려온 총성. 분명 놈들 일행이 쏜 거다. 그가 전혀 모르고 있던 한패가.

자세를 낮춘 채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다가가자 어둠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린다. 삼식이다. 삼식이는 일곱 번째 남자의 목덜미를 꽉 문 채로 머리를 사납게 흔들어 대는 중이었다.

우드득, 꽈득―

살점과 핏줄이 끊겨 나가는 소리! 남자의 목과 삼식이의 주둥이는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남자는 어떻게든 벗어나 보기 위해서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팔다리를 버둥거린다.

으르르르! 삼식이가 잇몸을 드러내며 남자의 목을 더 깊이 깨물었다.

찌이익, 핏줄기가 높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허공에서 허우적대던 남자의 손이 힘없이 툭, 떨어진다. 경련을 일으키며 부들거리던 두 다리의 움직임도 결국 멈췄다.

“삼식아…….”

진우는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헤엑― 헤엑―

삼식이는 아직도 흥분이 다 가라앉지 않았는지 가슴을 벌떡거리며 진우를 뒤돌아본다. 혀를 널름거려 입가에 묻은 피를 핥던 녀석이 진우의 곁으로 다가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진우가 멀쩡하다는 걸 확인한 삼식이는 뭉뚝한 꼬리를 바쁘게 씰룩거리며 기쁨을 표시했다.

“하아~ 너는 괜찮아? 응? 총소리 났는데…….”

진우는 삼식이의 몸을 더듬어보고 나서 꼭 끌어안았다. 이 고마운 녀석에게 또 한 번 큰 빚을 졌다. 이 녀석이 알아채지 못했다면 뒤에서 쏜 총알에 맞아 맥없이 죽을 뻔했다.

진우는 삼식이의 머리를 쓸어주면서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고마워… 고마워…….”

삼식이도 열심히 진우의 얼굴을 핥아준다. 녀석의 혀에서 풍기는 비릿한 피 냄새를 맡으며 진우는 주변의 어둠을 빤히 노려보았다.

혹시라도 저놈들의 또 다른 일행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후우우~”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진우는 삼식이가 죽인 남자의 시체 앞에 서서 목이 반쯤 잘려 나간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나이는 이십 대 중후반. 고통 때문에 일그러져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평범한 인상의 남자였다. 딱히 악해 보이지도, 딱히 선해 보이지도 않는, 그런 얼굴. 피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지만, 그리 험악하지 않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사람이 심야 버스 옆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도, 진우는 별걱정 없이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채 잠을 청했을 것이다. 아마 이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거고.

그런데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했기 때문에 순식간에 일곱 명의 목숨이 사라져 버렸다. 그 자신 역시도 죽을 뻔했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이 1초만 늦었더라도 지금 바닥에 쓰러져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것은 저들이 아니라 그 자신이었을 것이다.

진우는 자신이 방아쇠를 당기던 그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순식간의 일이지만,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모든 장면이 느리게 느껴지기도 했다.

덕분에 가슴이 총탄에 뚫리는 순간에 사람의 표정이 어떻게 일그러지는지, 뒤통수가 터져 나갈 때 목이 어떻게 젖혀지고 피 안개는 얼마나 퍼지는지 따위를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봤다.

“세상에… 이게… 이게 뭐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 거지?”

진우는 얼굴을 감싸 쥐고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 사람 일곱 명을 그저 우연히 한 장소에서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죽여야 했다니… 이건 뭔가 불합리하다.

만일 자신이 내일 여기에 도착했더라면… 혹은 제트스키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오늘처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바로 출발했더라면… 아무도 죽을 필요 없었다.

“후우~ 정말이지, 이게 얼마나 허무한 거냐……. 이 사람들도 정말 죽어라 싸우고 서로 의지해 가면서 지금까지 사이좋게 살아남았을 텐데.”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너무 기분이 더럽다. 진우는 쓰디쓴 입맛을 지우고 싶어서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물론 삼식이는 그렇지 않았다. 녀석은 진우가 멀쩡하다는 것이 기뻐 계속 그의 주위에서 몸을 기댄다.

“M―16이네. 어디에서 이렇게 오래된 걸 구했지? 예비군은 아직도 이런 걸 쓰나? 아니면 경찰서를 턴 건가?”

진우는 남자의 옆에 떨어져 있던 총을 주워 들었다. 어지간히 낡아 있어서 과연 제대로 발사는 될까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어쨌든 여기에 이대로 남겨둬 봐야 별로 좋을 게 없다. 누가 쏘더라도 총알은 똑같은 위력으로 박힌다. 그러니까 위험 요소는 미리미리 제거해 두는 편이 낫다.

“방에 갖다 둬야겠다.”

일곱 번째 남자의 M―16을 어깨에 건 뒤, 진우는 나머지 시체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가 뚫어놓은 구멍에서 콸콸 흘러나온 피 때문에 시체들 주변 바닥은 흠뻑 젖어 있었다. 진우는 소총들을 집어 대충 피를 털고 카트 안에 담았다. 탄창도 다 챙기고 싶었지만 그건 내일 아침으로 미뤘다. 지금 플레시를 켠 채, 그 짓을 하고 있다가는 표적이 되기 딱 좋다.

“응? 이게 뭐야?”

리더 녀석의 시체에서 소총을 빼던 진우는, 녀석의 벌어진 옷깃 사이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목걸이인데, 어딘가 이상하다.

대체 뭐가 이렇게 주렁주렁 달려 있는 거지?

본능적으로 꺼림칙한 물건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진우는 녀석의 셔츠 단추를 잡아뜯었다.

“이놈… 봐라?”

진우는 이미 차갑게 식은 리더 놈의 얼굴을 빤히 노려보았다. 목걸이에 주렁주렁 꿰어져 있는 것은, 어이없게도 사람의 손가락이다.

모두 여덟 개. 어떤 가공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꽤나 생생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전부 엄지손가락이었다. 매니큐어가 칠해진 것도 두 개나 된다.

“이… 이런 미친 새끼가… 무슨 식인종도 아니고… 이런 지랄을 왜 하는 거지?”

혐오감이 밀려들어 진우는 이마를 찌푸렸다. 조금 전 무의미한 살인에 대해 괴로워하던 때 느낀 것과는 다른 종류의 혐오감이었다.

그 목걸이를 보고 나니 아까 이놈들이 떠들어 대던 말들이 훨씬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우리 구역, 저번에 구했던 여자들…….

“혹시 이놈들 일당이 더 있는 걸까?”

숲 속에서 꺼내 온 가방을 카트에 담으며 진우는 멀리 어둠에 덮여 있는 국도 방향을 바라봤다. 만약 일당이 또 있다면 이쪽으로 돌아오지 않는 녀석들을 찾아 나설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몇 명인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아예 없을 수도 있고, 수십 명일 수도 있다.

“젠장, 잠은 다 잤네.”

자신의 짐과 놈들의 총까지 모두 2층으로 올려둔 뒤, 진우는 창문에 기대앉았다. 그러고는 이따금씩 고개를 들어 창밖을 살폈다.

삼식이가 경고를 해준다고는 하지만, 대비를 해야 한다. 누군가의 목걸이에 장식되기 위해 손가락이 잘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까. 그의 발치에 엎드린 삼식이는 꾸벅꾸벅 졸고 있다.

몇 시간 뒤, 모두에게 아침이 찾아왔다.

가장 먼저 하루를 시작한 것은 상봉 코스트코의 보안관 일행이었다. 그들은 훤하게 동이 터오는 오전 네 시 반에 일어나 연장과 짐을 가지고 산책로를 향해 이동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인 오전 다섯 시 반에는 삼각지의 태양 그룹 본사에서 그날의 첫 헬기가 떠올랐다. 물론 인간 사냥을 위한 출격이었다.

그물 베슬을 길게 늘어뜨린 헬기는 기수를 북서쪽으로 잡고 경기 지역을 향해 날아갔다.

바로 그 시각, 양평에서는 밤을 꼬박 지새운 진우가 무거워진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잠에 빠져들었다.

드릉― 드릉―

진우의 코 고는 소리에 깨어난 삼식이가 다시 눈을 감는다.

강가에 자욱하게 피어오른 아침 안개가 유난히 무더울 하루를 예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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