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Jet (5)
밤 10시가 막 지났을 때, 태양 그룹 본사 건물의 제3소회의실에서는 오 박사와 메이저가 마주 앉아 있었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돌아다닌 메이저의 행색은 형편없었다.
땀에 찌든 군복과 땟국이 흐르는 초췌한 얼굴, 거기에 어제 두드려 맞은 코와 눈두덩이 아직도 부어 있어서 꼴은 더 우습기만 하다.
지금의 메이저에게서 전투 기계처럼 날카로워 보이던 평소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고생 많이 했나 보네. 맥주 한잔하겠나?”
오 박사가 물 대신 캔 맥주를 권한다. 메이저는 서늘한 맥주 캔을 쥔 채 오 박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안경 밑 오 박사의 눈에도 다크 서클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그 역시 요즘 밤잠을 자지 못할 만큼 속을 끓이는 중이다.
사람이… 사람이 더 필요하다. 실험 대상으로도 쓰고, 파멸의 마녀에게 바치기도 해야 한다. 마녀 년이 주문한 할당량을 못 채우면 당장 보급이 끊길 것이고, 그러면 이렇게 시원한 사무실이나 차가운 맥주와도 이별이다.
건물 외부에 태양광 발전 패널을 잔뜩 늘어놓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필요한 최소 전력에도 미치지 못한다.
왜 이렇게 마녀 년이 함부로 설치고 다니지? 비록 좀비가 되었기는 하지만 여기에 작은 회장이 있는데…….
오 박사는 그게 불안했다. 어쩌면 황 회장마저 이제는 작은 회장을 포기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몇 명 데려왔어? 자네랑 2호기랑 합쳐서?”
맥주를 몇 모금 들이켠 후에 오 박사가 물었다. 메이저는 숫자가 기입된 종이를 오 박사 쪽으로 민다.
“자네가 열두 명, 2호기가 서른한 명… 총 마흔세 명이네? 마흔 셋……. 2호기가 데려온 서른한 명은 죄다 남자들뿐이고. 이 중에 더 먼저 써야 되는 것들 있어? 숨이 끊어져 간다거나 출혈이 심하다거나……. 어제 그년들처럼 너무 아슬아슬할 때까지 잡고 있지 말고 좀 일찍 꺼내놔. 걔들은 제세동기로 살려낸 다음에 밥으로 줬어. 몇 분만 늦었어도 송장 될 뻔했다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송장.”
오 박사가 그년들이라고 부르는 여자 둘은 메이저의 방에 갇혀 있던 피해자들이다.
어제 웬 거지 새끼 때문에 김 준장에게 개망신을 당하고 돌아온 메이저는 자신의 방에 있던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서 피를 토해갈 때쯤에야 오 박사 쪽으로 넘겨줬다.
지적을 받은 메이저는 인상을 찌푸리며 종이를 가리켰다.
“거, 거, 거기에 써놨는데… 무, 무, 무릎이 날아간 놈이 하나 있어. 지금 의, 의료팀이 데, 데리고 있고. 서, 서라고 하는데 뛰, 뛰어서 도, 도, 도망가더라고. 쏴버렸지.”
“그래, 그런 건 잘했어. 그럼 당장 이 새끼 먼저 써야겠네. 내일 아침까지는 살아 있으려나?”
오 박사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담배를 집어 들고 불을 붙였다.
위이이잉―
천장에 빌트인되어 있는 공기정화기가 담배 연기를 정화하기 위해 빠르게 돌아간다. 오 박사는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애썼다.
젠장…….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오 박사가 메이저를 보며 말했다.
“열심히 했다는 건 아는데,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해. 헬리콥터 연료조차도 아까운 게 요즘 우리 사정이야. 실탄 오천 발에 죄수 서른한 놈을 팔아먹는 군인 새끼들만 거지가 아니고, 우리도 거지 되기 직전이야.”
“대, 대, 대신에 이, 이제 자, 잡아 온 새끼들 자, 잘 먹이지 않아도 되, 되, 되니까 여, 연료는 거기서 빠, 빠지잖아.”
메이저가 항변했다. 처음에 민간인들을 데려왔을 때에는 최대한 그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속여가며 개별적으로 하나씩 끌고 가서 좀비 밥을 만들었었다. 그렇게 해야 실험 재료들이 더 양호한 신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방목해서 기른 소의 고기가 더 맛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였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잡아 온 사람들 때문에 자원을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좀비 아가리에 처넣을 놈들인데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자원이 부족해진 것이다.
“뭐… 그 새끼들 먹이고 재우는 데 들었던 돈은 확실히 절약되고 있기는 하지. 그건 자네 말이 맞아.”
오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충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속이 터지는 것 같아서 거의 종일 담배를 물고 있어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답답하다.
그놈의 항체… 면역자…….
오 박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딱 한 놈! 딱 한 놈만 더, 살아 있는 면역자를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아주 쉽게 백신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한 놈을 만나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어쨌든, 사람 더 구해 와줘. 부탁 좀 할게. 우리 이제 공동 운명체야. 며칠 내에 제대로 결과 못 내면, 우리 정말 골 아파져. 남부 지방 내려가서 마녀, 그 쌍년 뒤치다꺼리할 생각하면 벌써부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 아… 내일은 좀 더 일찍 나가고, 3호기도 마저 사용해 버려. 헬리콥터 여기에 세워두면 뭐하겠어. 한 놈이라도 더 잡아오는 게 우선이지.”
오 박사는 편두통이 이는 옆머리를 누르며 말했다. 한 대를 잠실 쉘터에 빼앗겼으니 이제는 세 대가 그들이 가진 전부다. 그 모든 기체의 베슬에 인간들을 가득 담아 오면 150명 이상이 될 텐데…….
“그, 그러지. 너, 너무 거, 거, 걱정하지 마. 아직 사, 살아 있는 놈 마, 많다고.”
메이저는 고개를 끄덕인 뒤 방을 나섰다.
으으으, 성질을 이기지 못한 메이저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짐승같은 신음 소리를 냈다. 성질이 나서 죽겠다. 어제 사람들을 다 데리고 오지 못한 것도 화가 나고, 그 칼자국 난 새끼를 죽이지 못한 것도 분하고, 김 준장이라는 새끼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던 것도 열 받고, 오늘 실적이 너무 저조한 것도 짜증스럽다.
“후우~ 스, 스트레스를 푸, 풀어야 돼.”
메이저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두 층 아래로 내려갔다. 오늘 아침에도 계집애들 없이 하루를 시작한 터라 그의 욕구는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남자들을 가둬둔 방을 지나친 메이저는 여자들을 가둬둔 방문 앞에 섰다.
띠리릭―
전자자물쇠가 풀리고 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여자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메이저는 3단봉을 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집기를 모두 치워둔 넓은 실험실 안에는 어제오늘 잡아 온 여자들이 덜덜 떨며 한구석으로 몰려서 있다.
요즘 잡아 온 인간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발가벗겨서 성별에 따라 각각 한 방씩에 몰아넣어둔다. 창문도 없고, 달아날 수도 없는 죽음의 방이다.
어차피 며칠 내로 다 소모될 것이기 때문에 숙식, 의복, 샤워 따위를 제공해 가며 목숨을 보전시키는 게 무의미해졌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자살을 택하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
혹시 그런 시도가 있다고 해도 CCTV로 다 보고 있으니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만.
“으으으~ 으으으~”
메이저가 3단봉을 빙글빙글 돌리며 들어서자 여자들은 모두 겁에 질려 신음을 내뱉으며 서로에게 더 바짝 붙어 선다. 눈에 띄기 싫어 어떻게든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거야말로 메이저가 아주 좋아하는 광경이다. 공포에 질려 울부짖지도 못하는 년들.
“후후후후, 더, 더러운 년들.”
흥분한 메이저의 눈에 핏발이 선다. 그 본인조차도 자신이 이 정도로 심한 변태인 줄은 몰랐다. 하지만 좀비 세상 이후 전혀 모르는 여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되자. 그의 가학성은 무서운 속도로 자라났다.
처음에는 뺨을 후려치는 정도로 만족스러웠지만, 이제는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야 비로소 좀 논 것 같다.
“너! 이, 이리 나와!”
잠시 여자들을 살펴보던 메이저가 3단봉으로 뒤쪽의 여자 한 명을 지목했다. 단발머리의 모양이 어제 잠실 쉘터에서 자신에게 대들던 그 죽일 년과 닮은 여자다.
“히이익~!”
지목당한 여자가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지를 때, 옆의 다른 여자들은 비켜서며 그녀가 나갈 길을 터준다. 메이저로서는 이게 또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잡혀 온 것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 자신이 지목당하기 전까지 지독히도 순종적이다. 지금도 이렇게 길을 내서 무언의 협조를 해주고 있지 않은가.
“나, 나, 나오라고 해, 했잖아.”
메이저는 무리 속으로 들어가 단발머리 여자의 머리카락을 그러쥐었다.
꺄아악! 여자가 비명을 지른다. 메이저는 인정사정없이 그녀의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바닥에 쓰러진 여자의 허벅지에 호된 발길질을 날렸다.
“까으으흐윽!”
단발머리가 고통과 공포에 질려 울부짖도록 내버려 두고 메이저는 두 번째 희생자를 골랐다. 이번에는 덩치가 좀 큰 여자를 하나 지목했다.
“이, 이, 일어나.”
모두 세 명의 여자를 고른 메이저는 흐느끼고 있는 여자들을 향해 명령했다. 그리고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첫 번째 여자의 얼굴을 모질게 후려쳤다.
쫘악!
여자의 볼에는 금세 피멍이 든다. 지난 이틀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맞는 여자들도, 그걸 지켜보는 여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도 돕기 위해 나서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이, 일어나라고!”
자신이 지목 받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한 여자들을 내버려 두고 메이저는 세 명의 여자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연구원이 둘 있었지만, 그들은 시선을 벽 쪽으로 돌리며 외면했다.
흑, 흑, 나체의 여자 셋이 흐느끼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메이저의 숙소가 있는 층에 도착했다.
“자, 자, 잘 왔다. 펴, 편히들 앉아.”
방음 처리가 된 자신의 방에 여자들을 밀어 넣고서 메이저는 세면대로 가 웃옷을 벗고 얼굴을 씻었다. 이렇게 즐거운 일을 더러운 먼지땀투성이인 채로 하고 싶지는 않다.
윽, 어제 그 칼자국 난 새끼한테 베인 겨드랑이에 물이 닿자 옅은 통증이 느껴졌다.
개새끼… 그것도 잡아 와서 죽였어야 했는데……. 메이저의 얼굴에 분노가 스쳐 간다.
“뭐, 뭐야? 펴, 편하게 있으라고 했는데.”
수건으로 겨드랑이의 물기를 닦으며 돌아선 메이저는 방구석에 모여 서서 부들거리는 여자들을 보며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여자들은 서로에게 바짝 달라붙어 치부를 가리며 계속 울고 있다. 물론 그래봐야 고통은 나눠질 수 없는 법이다.
쫙!
메이저가 휘두른 가죽 허리띠가 등짝을 휘갈기자, 덩치 큰 여자가 오열하며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나머지 둘은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물러난다.
메이저는 수갑을 꺼내 덩치 큰 여자의 한쪽 팔을 침대 기둥과 연결했다. 바닥의 카펫에도, 침대 위에도, 심지어 천장에까지도 점점이 붉은 핏자국이 튀어 있다. 수많은 희생자들이 죽어가며 남긴 흔적들이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렇게 빕니다. 선생님, 제발…….”
눈물범벅이 된 단발머리여자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빈다. 그 옆의 여자도 곧바로 같은 자세를 취하며 살려달라고 울부짖는다.
크아아~! 메이저는 만족한 표정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는 이런 식의 시작이 좋다. 절대자가 되었다는 우월감이 그의 중추를 자극해 도파민 분비를 활성화한다.
“나, 나, 나는 너희 안 죽여.”
세 번째 여자의 턱을 쥐고 고개를 들도록 한 메이저가 그녀의 눈을 보며 말했다. 안 죽이겠다는 말에서 뭔가 희망을 느낀 여자의 표정이 잠시 밝아진다. 메이저는 빙글거리며 뒤의 말을 이었다.
“그, 근데 이, 이, 이놈이 문제야. 이게 자, 자꾸 죽이더라고.”
메이저는 그녀의 눈앞에 불끈 쥔 주먹을 흔들어 보이고는 곧바로 따귀를 올려붙였다. 여자의 입술이 터지며 입안 가득 피가 고인다.
“자, 자, 잘 버텨봐. 이년처럼.”
비명 소리가 그치자 메이저는 벽에 붙여뒀던 폴라로이드 사진을 떼어 와 내보였다.
아래쪽 빈칸에 E9104596이라고 적혀 있는 사진에는 경순의 모습이 찍혀 있다. 그녀의 얼굴은 찢기고, 붓고, 피멍이 들어 처참하게 망가진 상태였다.
“이, 이게 이, 이, 일주일째 어, 얼굴이야. 대, 대단하지? 나중에는 지, 지, 진짜 전력으로 때, 때렸는데도 안 죽고 버, 버, 버티더라고. 마, 마지막으로 이 사진 찌, 찍고 시, 식당으로 보냈지.”
메이저는 그리운 추억이라도 회상하는 듯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진을 보고 난 뒤, 여자들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침과 피, 눈물콧물이 한데 뒤섞여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메이저는 경순의 사진을 다시 소중하게 벽에 붙였다.
“너, 너희도 하, 한 번 잘 버, 버, 버, 버텨봐. 일주일이 기, 기, 기록이니까… 그거 한 번 깨, 깨보라고.”
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메이저는 손바닥을 쫙 뻗어 두 여자의 얼굴을 후려쳤다. 어차피 죽을 년들, 아껴줄 이유가 없다.
쫘악― 쫙―
살과 살이 호되게 맞부딪치는 소리가 찢어지는 비명 소리와 함께 방 안 가득 채워졌다.
☆ ☆ ☆
“헉! 뭐지?”
진우는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하이바에 테이프로 고정시켜 둔 플래시가 검은 강물을 비춘다. 수면에는 조금 전 생겨난 것이 분명한 파문이 일고 있다.
“하아~ 하아~”
권총을 꺼낸 진우는 숨을 헐떡이며 그 주변을 주시했다. 그렇게 한동안 더 같은 지점을 노려보다가 좀비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진우는 권총을 다시 케이스에 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의 물고기들이 가끔씩 수면 위로 뛰어오르기라도 하면, 저렇게 첨벙하는 소리가 나서 사람의 간을 떨어뜨린다.
헥― 헥― 헥―
곁에 있는 삼식이는 진우의 이런 바보 같은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아마 무슨 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겁먹는 멍청이 놀이.
“그러게. 네 말이 맞다. 내일 밝을 때 마저 하면 되는 걸 왜 이 시간까지 붙잡고 앉아서 이 고생을 하는 건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진우는 삼식이의 머리를 쓸어주고 다시 제트스키 쪽으로 돌아앉았다. 몇 시간이나 진땀을 흘린 끝에 겨우 배터리 케이스 뜯는 법을 제대로 숙지해서 교체가 눈앞이다. 진우는 하이바의 플래시 불빛에 의존해 다시 드라이버를 잡았다.
사방은 완전한 어둠 속에 잠겨 있고, 풀벌레 우는 소리만 귓가를 울린다. 여름밤 물가의 축축하고 무거운 공기가 분위기를 한층 더 을씨년스럽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저 캄캄한 검은 물…….
으아, 그건 정말이지 오싹한 배경이다. 낮에 보았던 것 같은, 떠다니던 좀비가 암흑 속에서 그를 덮쳐 올까 봐 늘 뒤가 찜찜하다.
“와, 다 했다! 이제 배터리 바꿨고! 연료도 다 채웠어!”
잠시 더 좁은 틈 속에 손을 넣은 채 비지땀을 흘리던 진우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외쳤다.
이중으로 된 보관함 케이스를 닫고 조종 핸들 앞에 앉은 진우는 긴장된 표정으로 키를 집어넣었다.
띵― 띵―
아까와 똑같은 두 번의 알람 소리. 그리고 이내 계기판에 전원이 들어온다. 진우는 떨리는 마음으로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부르르르릉― 아주 부드러운 엔진 소리.
풍풍풍풍― 제트스키 후면, 물속에 잠겨 있던 배출구에서 물줄기가 기운차게 뿜어져 나온다.
“됐다! 됐어! 삼식아! 됐다고! 응? 봤냐? 봤어? 움직인다! 움직여! 와하하하!”
진우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미친 사람처럼 환호성을 질러 댔다. 세상에! 이제 이걸 몰고 저 뻥 뚫린 강 위로 내달리기만 하면, 잠실이든 한강이든 다 갈 수 있다!
오른쪽 손잡이에 달려 있는 액셀러레이터를 확 잡아 돌려보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눌렀다. 어떻게 작동시키는 건지도 모르는 기계를 이 깜깜한 물속으로 몰고 내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에 그는 좌석을 타고 엉덩이로 전해지는 엔진의 울림을 즐기며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으아… 이 진동. 이 느낌이 이렇게 기분 좋은 건지 몰랐어. 그렇지, 삼식아?”
진우는 손잡이를 잡고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강력한 이동수단이 내 것이 되었다니…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굵은 금목걸이라도 하나 구해 와서 군번줄 대신 걸치고 타야 될 것 같은 기분이다.
“근데, 여기는 이 정도 가지고 무슨 장사가 됐나? 달랑 제트스키 세 대에 고무보트밖에 없구만… 이걸로 얼마나 벌어? 그리고 웨이크보드나 바나나 보트 같은 건 뭘로 끌고? 모터보트 같은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닌… 아!”
멍하니 혼잣말을 하던 진우는 당시의 상황이 어땠을지를 깨달았다. 육지에서 좀비들이 몰려올 때, 모터보트나 제트스키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그걸 타고 곧바로 달아났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지옥의 첫날을 무사히 넘기고 생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구나. 돈이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도 더 높아지는 거구나.”
진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제트스키의 엔진을 껐다. 그런 후, 키를 뺐다. 훔쳐갈 사람이 주변에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큰 손해를 볼 일은 없으니까.
“이제 가서 자자, 삼식아.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곧바로 연습하는 거야!”
진우는 삼식이를 이끌고 펜션 2층의 구석방으로 올라갔다. 긴급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방이 강 쪽으로 도망가기에 가장 용이한 위치다.
“으아~! 침대다!”
탄창이 든 가방과 배낭, K―2를 침대 구석에 내려놓은 진우는 하이바와 구명조끼를 벗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밤공기는 조금 차가웠지만, 그 덕에 낮 동안 햇볕에 그을린 피부가 진정된다. 진우는 이불의 바스락거리는 감촉을 기분 좋게 느끼면서 수영 팬티만 입은 채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진우의 발치에서 잠들어 있던 삼식이의 귀가, 그리고 코가 씰룩거린다. 삼식이는 벌떡 일어나 진입로 방향을 보며 낮게 짖었다.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