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Jet (4)
“그러니까 테라를 잠실에서 데리고 나오겠다면 혜주는 찬성인 거지?”
유빈이 정리를 했다. 다리를 봤네, 안 봤네, 하는 문제로 신입과 티격거리고 있던 태권소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맞아. 걔 거기에 놔두면 결국은 피 다 뽑히고 죽어. 그러면 테라도 불쌍한 거지만… 제니, 쟤는 친구 죽는 거 두 번 봐야 하는 거라고.”
말을 하는 동안 규영이 형의 최후가 떠올랐는지, 태권소녀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그녀가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유빈이 얼른 다독거렸다.
“그래그래,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었어. 그러지 않도록 하자. 규영이는? 너는 잠실에 가는 거 찬성?”
“어, 저도 의견 말해도 돼요? 저는 아무 도움도 안 될 텐데…….”
규영이는 의외라는 듯 놀라 쭈뼛거린다.
“너도 계속 열심히 도왔고, 같이 싸웠어. 어젯밤에도 네가 제일 처음 보초를 섰잖아.”
“아… 그러면 말할게요. 후우~ 사실… 멀리 간다는 거 무서워요. 저는 다리도 불편하고, 짐이 될지도 몰라요. 논리적으로 보면 그런데요…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러 가는 거잖아요. 판타지 같은 이야기라고요. 그렇게 낭만적이고 큰 모험을 해볼 수 있을 거라고 한 번도 기대해 본 적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형아들이랑 그 현장에 같이 있고 싶어요.”
부끄러워하면서도 규영이는 또박또박 잘도 이야기한다. ‘성에 갇힌 공주’라는 표현이 하도 예뻐서 제니는 규영이의 볼을 쓰다듬어 줬다.
“응, 알았어. 그럼 이제 신입, 너는?”
유빈의 지목을 받은 신입이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지금 분위기가 다 가자는 거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나, 제니, 보안관, 삼식이, 혜주, 규영이는 간다는 거야. 너랑 수정이 누나가 남았고. 앉아 있는 순서대로 묻는 거니까 뭐…….”
“아니, 이 나쁜 개새끼야… 그런 상황에서 이딴 걸 물어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너희 다 가버리면 나 혼자 여기에 있으라고? 응? 이 넓은 데를 나 혼자서 지키고 있으라는 말이냐고! 복지 센터에서 하루씩 혼자 있던 거랑은 또 달라! 바깥에는 좀비들이 존나게 돌아다니는데… 무서워서 어떻게 혼자 있으라는 거야! 좀 생각을 해봐!”
신입이 핏대를 세운다. 혼자 있기 무섭다는 말을 저렇게 큰 소리로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녀석의 용기는 어떤 면에서 정말 대단하다. 체면 차리다 죽을 놈은 절대 아니다. 유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응, 혼자 있으면 무섭기야 하지. 그래서 어느 쪽이야?”
“그냥 너희 중에 반만 가면 안 돼? 반만 가! 그래, 너랑 보안관 둘이 가라. 저 새끼 싸움 잘하고, 너 잔대가리 잘 쓰니까 둘이 같이 있으면 무적이네. 나머지는 여기에서 나랑 같이 기다리고. 그러면 되잖아.”
신입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텨봤다. 물론 자신도 그게 말도 안 되는 억지라는 걸 잘 알고는 있다. 태릉에서 상봉까지 오는 데도 이렇게 힘이 들었는데, 여기에서 잠실까지라니…….
그쯤 되면 완전히 먼 우주로 가는 모험이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써도 부족하게 느껴질 거다. 그런 걸 다 아는데도 무서우니까 떼를 쓰게 된다.
“그래, 네 입장 알았어. 여건만 되면 남고 싶다는 거잖아. 누나는요?”
신입이 계속 징징거리자, 유빈은 임수정에게 물었다. 임수정은 태권소녀부터 돌아봤다.
“먼저 이 이야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혜주가 항체 이야기 했는데, 만약에 테라에게서 얻은 혈청을 주입해도 면역력이 생겨났는지는 항체 검사를 해봐야 확실히 알 수 있거든. 그런데… 지금 우리 능력이나 장비 가지고는 그런 실험 못해. 그러니까 테라를 구한다고 해서 100퍼센트 면역이 보장되는 게 아니고, 물리기 전까지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살아가게 될 거야.”
“아, 저는 그 정도면 충분해요. 아무 보험 없을 때에 비하면 50대 50의 확률은 엄청 높은 거예요.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면 그때는 어쩔 수 없죠.”
태권소녀는 쿨하게 이 수혈 계획의 한계를 인정했다. 임수정은 시선을 모두에게 돌리고 말을 이었다.
“테라가 제니와 만나는 것도 보고 싶고, 혜주의 항체 수혈 이야기도 솔직히 나 역시 솔깃해. 나도 좀비들한테 몇 번이나 물리기 직전까지 내몰렸었으니까…….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나는 건대 쉘터에서 일어났던 일을 잠실의 고위 장교에게 알리고 싶어. 정신 나간 장교랑 조폭이 붙어서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또 누명을 씌웠는지.”
“으음… 그렇게 되면 누나한테 증인을 서달라거나 하지 않을까요? 계속 군인들에게 붙잡혀 있고 그러면 곤란한데. 틈이 나자마자 몰래 재빨리 빠져나와야 할 테니까요.”
유빈의 걱정을 들은 임수정이 피식 웃었다. 제니의 말이 맞다. 어쩜 이렇게 걱정을 잘하는지.
“만약에 그렇게 되면 나를 기다리지 말고 그냥 빠져나와. 너희들이 정말 따뜻하게 받아주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여기에 아무 연고도 없는 타인이잖아. 지금까지 해준 것만으로도 더할 수 없이 고마워.”
유빈은 듣고만 있었다. 임수정이 피 흘린 동료를 위해 정의의 실현을 원하고 있다는 것도 알겠고, 그렇다고 그녀를 버려두고 올 생각은 없으니 뭔가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생각해 내야 하는 일은 아니다.
“누나가 여기를 불편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면 같이 돌아올 거예요. 같이 갔다가 아무도 다치지 않고 테라와 함께 여기로.”
유빈이 말했다. 대세가 확정된 것을 깨달은 신입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간다, 나도 간다고! 내가 가기는 하는데… 유빈이, 너 이 새끼야, 계획 잘 짜. 네 선택에 이 많은 사람들 목숨이 달려 있다는 거 똑똑히 기억하라고. 어휴~ 내 팔자야. 짜증난다, 진짜.”
회의가 끝날 때까지 잠자코 듣고 있던 삼식이가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흐아암, 그럼 이제 가는 일만 남았네. 유빈아, 우리 차 가지고 가?”
“응. 차는 한 대 더 필요해. 두 대면 더 좋고.”
“그래? 우리 다 합쳐도 여덟 명 뿐인데… 돌아올 때 테라를 태운대도 아홉 명. 두 대면 충분하지 않아?”
“여차하면 옮겨 탈 차가 있어야 하니까 빈자리가 있어야 돼. 또… 테라가 누군가 다른 사람을 꼭 데려가겠다고 고집을 피울지도 모르고. 그동안에 친해진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 우리처럼 말이야.”
유빈은 제니와 신입, 혜주, 규영이, 그리고 임수정을 가리켰다. 흐음, 다들 납득하는 표정이다. 지금이야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이지만,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반 이상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었다.
삼식이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차는 뭐… 동부간선도로에 잔뜩 서 있으니까 그중에서 열쇠 꽂혀 있는 것만 골라도 될 거고, 배터리는 여기에서 가지고 가면 되는데… 거기 있는 펜스 뜯어내는 게 일이겠네. 아우, 나 아직도 다리 아픈데…….”
“응,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오늘 준비할 물건 챙겨서 선로 위에 옮겨두고 당장 내일부터 작업해야지. 큰 문제 없으면 모레 오전에는 출발하고 싶어. 비 오면 또 귀찮아지니까.”
유빈은 테이블 위에 남아 있는 음식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렇게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위험한 모험 속으로… 물론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마음은 무겁다.
오늘 회의를 하는 동안 일행들 중 아무도 정말로 거기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묻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계획을 짜는 것도, 그 계획을 의심하는 것도 온전히 그의 몫이다. 그 믿음이 유빈을 더욱 불안하고 두렵게 한다.
☆ ☆ ☆
“왜 이렇게 안 와? 응? 무슨 일이지?”
건대 쉘터의 박 소위는 초조하게 중얼거리며 계속 하늘을 주시했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태양 그룹의 헬기. 분명히 오늘 14시까지는 실탄을 가져다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해가 다 저물어갈 때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젠장…….
박 소위는 마음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 등신 같은 이 원사가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서 이게 무슨 생고생이란 말인가. 그 너구리 같은 인간이 뭔가를 숨기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실탄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데……,
그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이미 죽고 없는 이 원사에게 모든 원망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하는 편이 마음 편하다.
지금 건대 쉘터가 겪고 있는 실탄 부족 문제가 실은 자신이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면서 발생한 문제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방벽을 쌓은 덕에 북쪽에서의 좀비 접근은 차단할 수 있었지만, 그 외 세 방향에서는 매일 변함없이 좀비 무리들이 다가와 한 번씩 소란을 피우고 다시 돌아간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며칠 못 가 그들 모두는 빈총을 들고 좀비들을 맞아야 할 형편이다. 그 생각만 하면 피가 마르는 것 같다.
근접해 오는 좀비들에게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하도록 명령하기 전에 재고 파악부터 해야 했다. 후회해 봐야 이미 늦은 일이지만…….
투투투투투―
그런 상황이었기에 멀리서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을 때, 박 소위는 엎드려 감사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다. 국군의 보급이 끊긴 지금, 태양 그룹의 지원은 그가 바랄 수 있는 유일한 활로이자 구원이었다.
“어이구,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저는 무슨 사고라도 당하신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넓은 주차장 중앙에 화물을 내려놓고 헬기가 착륙하자 박 소위는 다급하게 달려가 태양 그룹 직원들을 맞았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아… 저기… 그분은 안 오셨네요? 그… 말 조금 더듬으시는 분… 얼굴 까맣고 몸 다부지게 생긴…….”
“아, 예. 저희 팀장님이요. 그분은 오늘 다른 업무가 있으셔서 그쪽으로 파견 나가셨습니다. 저하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제가 대신 왔으니까요.”
쉐도우 실드 대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메이저에게 다른 업무가 있다는 말은 거짓은 아니었다. 당장 잠실 쉘터에서 민간인들을 빼 오지 못하게 된 덕에 그 할당량을 채우려고 미친 듯이 사람 사냥을 하러 다니는 중이니까.
오 박사는 총을 쏴서 부상을 입혀도 좋으니 무조건 잡아오라는 소리까지 했다. 어차피 좀비 실험을 할 때까지만 숨이 붙어 있으면 된다고 하면서.
실탄 지원 약속을 해줬던 당사자가 오지 않았다는 소식에 박 소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미 내려진 짐들을 돌아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저… 그러면 저희 지원해 주시기로 한 물품은 어떻게… 실탄을 가져다주시기로 했는데, 5.56밀리 나토탄 2만 발…….”
“아, 그거요.”
쉐도우 실드 대원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린다.
“그게… 좀 마찰이 있네요. 혹시 소문 들으셨는지 모르겠는데요, 어제 저희 팀장님이 잠실에서 아주 곤욕을 치르셨거든요. 여단장님께서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시는 바람에 저희 헬기도 한 대 압류 하셨어요. 민간인 이송도 안 되고… 그런 상황에서 실탄 지원은 좀 그렇다고 위에서 허가를 안 해주네요. 요새 실탄 귀한 거는 잘 아시죠? 저기 내려놓은 건 식량입니다. 인도적으로 저거라도 지원을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식량? 아니, 식량이 다 뭔 소리야? 물론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실탄이 없으면 다 죽으라는 건데…….
박 소위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얼굴로 쉐도우 실드 대원에게 간청했다.
“저기 보이는 저 박스, 헬기 안에 있는 거 말입니다. 저거, 실탄 아닙니까? 저희 지원해 주시기로 한 물건 같은데…….”
“어휴~ 정말 죄송해요. 근데 뭐, 저 같은 말단이 뭘 마음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 이거에 사인이나 해주세요. 저도 오늘 바빠서 오래 못 있습니다. 잠실에서 말썽 났다는 걸 더 위쪽 라인에서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면 아무 쉘터라도 다니면서 지원자 받아서 수용소 가기로 했던 인원 채워야 하거든요.”
쉐도우 실드 대원이 서류를 내민다. 물론 박 소위의 눈에는 한 글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 사람을 붙잡아서 어떻게든 저 헬기 안에 들어 있는 실탄 박스를 여기 놓고 가도록 해야 한다.
저건 비록 약속했던 양의 1/4도 안 되어 보이지만, 이 가뭄에 오천 발만 여유 실탄이 생겨도 발을 쭉 뻗고 잠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수용소 인원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저는… 그게 잘 이해가 안 가는데…….”
박 소위가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걸려들었구나! 쉐도우 실드 대원은 마음속으로 빙고를 외쳤다. 이 건대 쉘터의 박 소위라는 놈이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메이저가 말해주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쉬울 줄이야…….
쉐도우 실드 대원은 연습했던 대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뭐냐면… 이런 겁니다. 수용소를 대단위로 짓는다는 게 한두 푼이 드는 일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요즘 같은 비상시국에… 그런 규모의 사업을 벌일 정도면 회사에서도 엄청 위에서 결정을 하고 예산을 집행한 거거든요.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말이죠. 그런데 그게 예상했던 만큼 반응이 안 나오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돼요. 그러니까 이게 보고가 되기 전에 실적을 맞추려고 저희 같은 아랫놈들만 죽어나는 거죠. 에이, 다 아시잖아요.”
박 소위는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들어봐도 뭔 소리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어쩌면 그의 마음이 워낙 다급해서 제대로 돌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분명한 건, 이 까만 옷 입은 직원들이 수용소에 넣을 사람들을 똥 빠지게 찾고 있다는 것과 이놈들의 헬기 안에는 실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확실하다.
“저기…….”
주변을 둘러본 박 소위는 쉐도우 실드 대원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 수용소라는 데에 들어가는 무슨 자격이나 그런 게 있습니까? 그러니까… 전과가 없어야 한다거나 하는…….”
“아니오. 그런 거 있겠습니까? 인도적 차원에서 하는 사업인데, 그렇게 차별을 할 리가 없죠. 근데… 그건 왜 물어보세요?”
“그러면 뭔가 서로 도울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 저희한테 지금 위탁 수용되어 있는 죄수들이 한 서른… 서른 몇 명 됩니다.”
박 소위는 끝자리를 제대로 대지 못했다. 요 며칠 새 죽은 놈들이 좀 있어서 총 몇 명인지를 정확하게 모르겠다. 쉐도우 실드 대원은 미심쩍다는 눈초리로 박 소위를 보며 물었다.
“서른 몇 명이 있다고요? 그래서요?”
“걔들을 드리겠습니다. 데려가셔서 수용소에 보내세요. 나쁜 새끼들이지만, 그래도 머릿수 셀 때에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똑같습니다. 그 대신에 저 실탄… 여기 놓고 가세요. 서로 도웁시다.”
“예에? 아휴~ 그런 건…….”
“아뇨. 인도적인 차원이라면 쟤들은 정말 꼭 데려가셔야 합니다. 어차피 여기에서 죽을 때까지 노역만 해야 할 신세니까요. 민간 수용소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해준다면 좋아서 죽을걸요? 만약에 죄수복을 입은 게 걸리신다면 저희가 대충 사복으로 갈아입혀서 보내겠습니다.”
박 소위는 아무 소리나 지껄여 댔다. 어차피 먹을 것도 부족한 상황, 벽을 다 쌓았으니 저까짓 죄수 놈들 짐만 된다. 보낼 거면 김 중사가 외부로 징발을 나간 지금, 빨리 처리해 버려야 귀찮지 않다.
잠실로부터 태양 그룹에 절대로 민간인을 보내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왔지만, 자신이 생각할 때 저 죄수들은 민간인이 아니니까……. 그리고 사실 명령은 개뿔! 보급도 이뤄지지 않는 당나라 부대 주제에.
“음… 어쩌지? 이렇게 해도 되나? 실탄이 워낙 귀해서…….”
혼잣말로 고민하는 척하던 쉐도우 실드 대원이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에라, 모르겠다! 그렇게 합시다. 저 진짜 엄청 혼날지도 몰라요. 근데 실적 못 채워서 깨지나 실탄 주고 왔다고 깨지나 마찬가지니까, 박 소위님이라도 사셔야죠.”
“어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박 소위가 연거푸 감사를 표하자, 쉐도우 실드 대원은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한 가지 걸리는 게… 그 죄수들, 다 남자일 거 아닙니까?”
“예, 그렇죠.”
“아~ 그게 좀 그러네요. 여자가 몇 명이라도 끼어 있으면 좀 보기도 자연스럽고 좋을 텐데……. 남자들만 잔뜩 데리고 오면 이게 뭔가 급조했다는 인상을 줄까 봐, 그게 걱정이에요.”
메이저에게 선물하기 위해 여자를 요구하며 쉐도우 실드 대원은 슬쩍 박 소위의 눈치를 봤다. 엄청나게 고민하던 박 소위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여자는 다 민간인들이라서 곤란해요. 그냥 저 죄수들로 어떻게 좀 해보세요.”
“네에~ 쩝! 뭐, 그럽시다. 박 소위님도 명령 받는 분이신데.”
쉐도우 실드 대원은 별로 뻗대지 않고 물러섰다. 하지만 이 박 소위 놈이 곧 민간인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모두 갖다 바치게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은 실탄에 사람을 넘길 만큼 다급하다. 그리고 실탄 5천 발은 금방 바닥이 날 것이다. 그때쯤 다시 한 번 찾아오면…….
쉐도우 실드 대원은 코웃음을 쳤다. 민간인들로 만선을 이룬 헬리콥터를 몰고 돌아갈 날도 머지않았다. 이렇게 멍청한 놈들만 있으면 굳이 힘들게 하늘을 돌며 인간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