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16화 (316/449)

3장 Jet (2)

한참을 걸어 작은 보 하나를 지나자 드디어 그곳에 양평 레저가 있었다. 그리 넓게 느껴지지 않던 한강의 폭이 갑자기 300미터 이상으로 대폭 확장되기 시작한 지점이다.

멀리 건물들이 보이자마자 진우는 일단 조준경으로 정찰부터 시작했다. 역시나 꼬물거리는 놈들이 있다.

“흐음, 꽤 모여 있네. 여섯, 일곱… 에, 열 마리인가? 아, 저기도 있구나.”

진우는 조준경을 통해 150여 미터 전방에 위치한 선착장을 보면서 배회하는 좀비들의 수를 헤아렸다.

모두 열두 마리. 그리 크지 않은 레저 센터의 규모나 위치를 볼 때에는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뭐한다고 이렇게 외진 곳에 놈들이 모여들어 있는 건지 의아했다.

선착장은 나무로 된 2층 덱과 기둥이 튀어나와 있고, 그 바로 옆에 평상들이 펼쳐진 구조로, 꽤 단출했다.

태풍 때문에 천막지붕이 꽤나 손상된 덱 주변에는 로프로 연결된 몇 가지 레저 용품들이 물에 둥둥 떠 있다. 저 연결 고리가 단단히 묶여 있는 덕분에 태풍이나 많은 비에도 떠내려가지 않은 모양이다.

진우가 여기까지 오는 내내 노래를 불렀던 제트스키도 세 대나 보인다. 땡큐!

“어쨌든 저놈들부터 잡고 가야지?”

진우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아무 때고 갑자기 뛰어다니는 좀비들이니까 시야가 확보될 때 후딱 잡아버리는 게 편하고 안전하다.

괜히 시간을 끌다가 몇 놈이라도 어두컴컴한 건물 내부로 쑥 들어가 버리면, 또 그걸 쫓느라 등골에서 식은땀을 흘려야 한다.

“선착장에 셋, 평상 있는 데 넷, 건물 앞에 셋, 정원에 하나, 그물침대 옆에 하나…….”

좀비들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훑은 진우는 방아쇠를 당기며 총구를 역방향으로 빠르게 돌렸다.

탕― 탕탕― 탕, 탕, 탕탕― 탕― 탕탕― 탕, 타앙―

거의 쉴 새 없이 발사된 열두 발의 총알이 열두 마리 좀비의 머리를 꿰뚫었다.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았다. 이 정도 거리라면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 총성이 긴 메아리와 함께 돌아올 때, 진우는 이미 총구를 내리며 카트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가자, 삼식아. 물놀이할 시간이야. 물놀이 좋아해?”

진우가 뒤를 돌아보며 묻자, 삼식이는 얼― 짧은 대답과 함께 일어나 뭉뚝한 꼬리를 흔든다.

“좋아, 그럼 시합이다! 누가 먼저 가나!”

말을 끝마치기 전에 진우는 카트를 밀고 뛰기 시작했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륵―

강가의 도로 위에 카트 바퀴 소리와 진우의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댄다. 삼식이도 신이 나서 모처럼 마음껏 내달렸다.

삼식이는 금방 진우를 앞질러 가서 선착장을 찍고, 다시 진우에게 돌아왔다가 또 앞서 뛴다.

“그래, 알았어. 무지하게 빠르네. 하아~ 하아~ 네가 이겼다.”

양평 레저 입구에 도착한 진우는 숨을 몰아쉬며 항복 선언을 했다. 그런 후,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선착장과 평상 위에 쓰러져 있는 좀비 시체들부터 뒤쪽의 주차장 쪽으로 끌어 옮겼다.

앞으로 여기에서 능숙해질 때까지 제트스키 타는 연습을 하게 될 텐데, 번번이 좀비 시체를 피해 다니고 싶지는 않다.

삼식이가 늠름하게 카트를 지키는 동안 낑낑거리며 일곱 구의 좀비 시체들을 모두 끌어내고 돌아온 진우는 덱의 끝에 서서 제트스키들을 내려다봤다.

“뭐지? 이거랑 이거는 다르네? 메이커 차이인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매우 폭이 좁은데, 나머지 두 개는 발판도 옆으로 나 있고 제법 널찍하다. 모두 다 꽁무니 쪽 체결 고리에 묶어둔 로프로 선착장 덱과 연결되어 있었다.

진우는 나무 계단을 밟고 내려가 제트스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아… 얘는 의자가 없네. 서서 타는 건가 보다. 그치, 삼식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차이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폭이 좁은 놈은 1인용이다. 핸들이 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는 꼬라지만 봐도 뭔가 타기가 지랄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건 온몸을 물에 흠뻑 적셔가며 타야 하는 건가 보다.

그런 건 사양이다. 총도 탄창도 다 젖으면 어떻게 하라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좁은 녀석의 크기로는 어떻게 묘기를 부린대도 삼식이를 함께 태울 수가 없다.

“그럼 이거는…….”

진우는 좌석과 발판이 있는 두 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이놈들이 더 덩치가 크다. 어쩌면 그만큼 느리고 민첩성이 떨어질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게 무슨 상관인가, 경주에 나가려는 것도 아닌데.

그건 괜찮은데 둘 중에 한 대는 뭐에 맞아서 그런지, 손잡이가 박살 나 있다. 저건 못 쓴다.

“읏차!”

진우는 수면 바로 근처까지 내려가서 멀쩡한 제트스키에 연결된 로프를 잡아당겼다. 시험 삼아 한 번 타볼까 싶어서였다.

일단 시동이라도 성공적으로 걸어보고 나면 마음이 한결 더 편안할 것 같다. 시동을 어떻게 거는 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퉁―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붙여둔 폐타이어에 부딪친 제트스키는 물살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방향을 돌린다. 진우는 로프를 더 바짝 당겨서 선착장과 제트스키가 나란히 서도록 만들었다.

“아, 아니다. 혹시라도 넘어져서 물에 빠지거나 하면 안 되지…….”

등산화를 물에 적시지 않고 제트스키에 올라타기 위해 다리를 쫙 벌린 채 묘기를 하던 진우가 문제점을 깨닫고 다시 계단 위로 올라섰다.

생명 같은 총을 가슴팍에 멘 채로 물장난을 하려 들었다니… 이건 용납하기 어려운 만용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복장과 장비로는 일단 물에 빠지면 무조건 고생을 하게 되어 있다.

소총에, 권총에, 예비 탄창, 방탄조끼, 대검과 하이바, 신발까지… 전부 다 무거운 것투성이다. 수영도 그리 잘하지 못하는데 꼬르륵 잠기는 상상만 해도 숨이 차오른다.

“그럼 이걸 벗어놓고 해야 되나…….”

K―2의 총 멜빵을 벗어서 덱의 기둥에 걸려던 진우가 멈칫한다.

총을 몸에서 떼어놓는다고? 그것도 바로 손에 닿을 위치가 아니라 나는 제트스키에 올라 있고 총은 여기에 걸어둔다고? 그래도 될까? 만약에 그럴 때 갑자기 좀비들이 뛰어오면 어떻게 하겠단 거지? 좀비 문제에 있어서는 삼식이도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데…….

“에… 그거 곤란한데…….”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진우는 다시 총을 메고 덱 위로 올라왔다.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어쨌든 총을 몸에서 떼놓는 건 별로다. 불가피하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해도 안전에 확신이 든 이후로 미루고 싶다.

이 선착장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 마리 이상의 좀비들이 돌아다니던 곳이다. 언제 또 다른 놈들이 불쑥 나타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주변 상황이 어떤지, 저 뒤에 서 있는 건물들에는 뭐가 있는지조차 아직 살펴보지 않았다.

“진정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진우는 한시라도 빨리 잠실까지 닿고 싶은 스스로를 달래며 선착장 위로 올라왔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서울 입성은 그리 머지않다. 괜히 초조해져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만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얼―

물가에 서서 기쁜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삼식이가 되돌아 나오는 진우를 향해 짖는다. ‘어이, 친구! 물놀이하자며? 한 번 시원하게 적시지?’라는 것 같다.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순서가 좀 바뀐 것 같아서……. 저기 펜션 건물들 보이지? 저거 먼저 싹 점검해 봐야 돼. 혹시 좀비들 숨어 있으면 그것도 잡고… 그리고 저 밖으로 나가면 거기 상황은 어떤지도 좀 알아둬야 하거든. 그러니까 물놀이는 좀 나중에… 너는 놀고 싶으면 좀 들어가서 놀아도 돼.”

진우는 삼식이의 머리를 한 번 쓸어주고 펜션 쪽으로 걸어갔다. 2층짜리 건물이 여러 개 늘어서 있는 형태. 앞마당에는 바비큐를 위한 그릴과 넓은 나무 탁자가 비치되어 있다.

진우는 한 발 뒤로 따라온 삼식이와 함께 수십 개의 방을 차근차근 뒤졌다. 좀비는 나오지 않았지만, 방문을 일일이 열고 좁은 데로 들어가는 게 은근히 고역이다.

“여기는 직원들 숙소였나 보네.”

물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펜션에는 살림의 흔적과 함께 먹을 게 좀 남아 있었다. 수색을 마친 진우는 창가에 걸려 있는 셔츠를 잠시 바라보다가 방을 나섰다.

위험 요소도 없지만, 반가운 소식도 나오지 않았다. 하긴… 좀비들이 그렇게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바로 몇 십 미터 떨어진 데서 생존자가 아직까지 숨어 지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어휴~ 더러워. 이건 뭐야… 누가 재떨이에 물을 이렇게 채워 놨어? 가뜩이나 냄새가 나는데…….”

시꺼먼 물이 채워진 양철통에 잔뜩 떠 있는 담배꽁초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진우는 이내 그 물이 빗물 때문에 채워진 것임을 깨달았다. 원래는 그냥 담뱃재와 꽁초만 가득한 재떨이였을 것이다.

“그럼 이제 이 위쪽에 뭐가 있나 좀 보자.”

진우는 주차장 진입로를 지나 오르막길을 올랐다. 몇 분 걷지 않아 4차선 도로와 만났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식당들이 드문드문 서 있다.

응? 길의 모양새가 어딘가 낯익어서 진우는 잠시 멍해졌다. 조금 걸어가다 보니 표지판이 등장해서 확실하게 일러준다. 이 길… 어제까지 그가 걷던 6번 국도다.

“아, 그런가……. 6번 국도가 이쯤에서 한강 쪽으로 내려오는 거구나.”

결과적으로는 좀비들의 행렬을 우회해서 다시 국도 부근으로 돌아온 셈이 되었다. 뜨겁게 달궈져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도로를 보며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전에 자신이 보았던 그 빙글빙글 도는 좀비들의 행렬이 이 부근으로도 지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안 왔으면 좋겠는데… 사실 여기에 뭐 볼 게 있다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진우는 직원 숙소로 내려가서 청테이프를 가지고 다시 국도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테이프를 잘라내서 접착 면이 바깥쪽으로 오는 고리를 만들었다.

진우는 그런 식으로 만든 고리 모양의 양면테이프 여러 개를 도로를 가로질러 촘촘히 붙여뒀다. 만약 나중에 돌아왔을 때 이 테이프 라인이 엉망으로 훼손되어 있다면, 그건 좀비들이 지나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킁킁킁―

진우가 길 건너 식당에 들어갔다 오는 동안 삼식이는 테이프 고리에 관심을 보이며 한쪽 발로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아냐, 아냐. 삼식아, 이런 거 말고 이 소리를 기억해.”

진우는 녀석의 발에 달라붙은 테이프를 떼어주고 작은 종을 흔들었다.

딸그랑― 딸그랑―

종은 그리 맑지 않은 소리를 내며 울린다. 지금 막 식당 문 안쪽에서 떼어온 것인데, 사람의 귀로 야외에서 들으면 조금만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놓치기 쉬울 만큼 작고 특징 없는 소리다.

하지만 삼식이는 개니까 다르다. 좀비 냄새는 못 맡아도 놈들 때문에 나는 소음은 감지할 수 있을 거다. 녀석은 귀를 움찔움찔하면서 진우가 흔드는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기억했어, 이거?”

진우는 다시 한 번 종을 흔들었다. 딸그랑 소리를 들으며 삼식이는 얼― 하고 짧게 짖었다. 확실히 영리한 녀석이다. 진우는 녀석의 머리를 쓸어 칭찬을 해주며 말했다.

“진입로에 이걸 걸어놓을 거야. 이 소리가 들리면 나한테 알려줘. 알았지? 어떻게 한다고?”

진우는 시험 삼아 다시 종을 세게 흔들었다. 딸랑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삼식이가 얼― 얼― 짖는다.

젠장! 이 새끼, 왜 이리 예쁜 거지? 진우는 삼식이의 등과 얼굴을 열정적으로 끌어안고 쓸었다.

청테이프를 쭉 뜯어낸 진우는 진입로 양쪽의 나무에 걸쳐 허벅지 높이의 라인을 치고, 그 중앙에 종의 고리를 붙였다.

종 자체도, 연결고리도 꽤나 묵직해서 웬만한 바람 정도로는 울려 댈 일이 없다. 이걸로 최소한의 알람은 마련됐다.

“좋아, 이제 좀 일을 해보자.”

뒤쪽을 든든히 해둔 진우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수색을 하면서 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는지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얻었다.

진우는 일단 직원 숙소 옆에 기대 세워져 있던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선착장으로 걸어갔다. 대여섯 명은 족히 탈 만큼 큰 레프팅용 보트여서 무게도 꽤 된다.

그가 낑낑거리며 안간힘을 쓰자 보다 못한 삼식이가 도와주려고 보트 옆면에 끼워진 로프를 문다.

“어… 어… 아니, 아니야. 삼식아, 안 도와줘도 되니까 물지 마. 네 이빨에 걸리면 이거 터질 것 같아.”

깜짝 놀란 진우는 기겁을 하고 삼식이를 만류했다. 보트의 재질도 제법 튼튼해 보이기는 하지만, 삼식이의 턱 힘이 그보다 훨씬 더 셀 게 분명하다. 밧줄을 놓은 삼식이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영차!”

선착장 덱에 고무보트를 내려놓은 진우는 줄을 잡은 채 보트를 밀어 수면으로 미끄러뜨렸다.

첨벙, 보트는 물을 좀 튕긴 뒤, 가볍게 둥둥 떠서 물길을 따라 서울 방향으로 움직인다. 진우는 보트에 연결된 줄을 제트스키의 후면 고리에 걸어 더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고정시켰다.

이제 선착장, 제트스키, 고무보트의 순서로 도로 쪽에서 멀어진다. 만약 도로로부터 좀비들이 몰려오는 비상사태가 벌어진다면, 고무보트 위로 옮겨 타고 거기에서 응사할 계획이다.

로프들이 모두 단단히 체결되어 있다는 걸 확인한 진우는 다시 직원 숙소에서 수영복과 쓰레기봉투 묶음을 가져왔다. 주둥이 부분에 조이는 끈이 달린 100리터짜리 업소용 비닐 봉투다.

“이제 진짜 물에 들어가는 거다.”

진우는 총과 장비, 옷을 벗어 두 개로 나눈 대형 비닐봉지에 차곡차곡 담았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진우는 K―2와 예비 탄창을 넣은 비닐 봉투의 입구 끈을 조이고, 비닐 자체로 매듭을 만들어 한 번 더 묶었다. 개인화기용 임시 방수 팩이다.

“너도 입을래, 삼식아? 안전을 위해서?”

진우가 선착장 한쪽에서 구명조끼를 꺼내 내밀자 삼식이는 헥헥거리며 잠시 웃는 것 같더니, 풍덩! 물속으로 다이빙을 했다.

촤악― 촤악― 녀석은 아주 자연스럽게 개헤엄을 치며 진우를 힐끔거린다. 녀석이 빠져 죽을까 봐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듯하다.

“그래, 놀고 있어. 나도 금방 갈게.”

삼식이에게 손을 흔들어준 진우는 구명조끼의 상부 고리에 대검집과 권총집을 연결하고, 개인화기 방수 팩의 줄을 대각선으로 비껴 멨다. 이제 물에 들어갈 시간이다.

찰방―

계단을 내려가 맨발을 물속에 담그자 맑은 물소리와 함께 특유의 청량감이 발목까지 서늘하게 만든다. 삼식이 녀석과 만났던 날, 웅덩이에서의 목욕 이후 처음 느껴보는 쾌감에 진우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진다.

“어디…….”

진우는 제트스키의 손잡이를 잡으며 좌석 위에 걸터앉았다. 체중의 이동에 따라 조금씩 기우뚱거리기는 하지만, 제트스키는 꽤나 안정적으로 떠 있다. 그는 별 어려움 없이 처음으로 제트스키를 타는 데 성공했다.

“하… 하하… 별거 아니네! 이렇게 한 방에 성공했다!”

정말로 별것도 아닌 성공이지만, 진우는 충분히 기뻤다. 삼식이도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함께 기뻐해 준다.

삼척 남단의 발전소에서 탈출할 때만 해도 자신이 양평의 남한강에 떠 있는 제트스키 좌석에 오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하하… 하…….

들떠서 손잡이를 좌우로 움직이는 시늉도 해보고, 오른쪽의 손잡이에 달린 액셀러레이터를 돌려도 보던 진우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근데, 이게 대체 어떻게 해야 시동이 걸리는 거지?

막연하다. 한 가지 바라는 바라면 너무 복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정도……. 진우는 매끈한 제트스키의 바디와 손잡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더듬거리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건 키가 없나?”

아무리 찾아봐도 열쇠 꽂는 구멍 같은 게 보이질 않는다. 왼쪽 손잡이 쪽에 초록색 스타트 버튼과 빨강색 스톱 버튼뿐이다. 경험이 없어도 그 두 개가 뭘 의미하는지는 알 것 같다.

초록색을 누르면 시동이 걸리는 거겠지…….

진우는 안 될 거라고 예상하면서도 초록색 버튼을 꽉 쥐어봤다.

“혹시 이거? 여긴가?”

몇 번을 세게 눌러봐도 별 반응이 없자 진우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 봤다. 왼쪽 손잡이 스톱 버튼에 연결된 팔목 고리를 잡고 키를 돌리는 것처럼 비틀어봤다.

이것도 아니다. 시동이 걸리기는커녕 힘을 주어 당기자 쑥 빠진다. 열쇠다운 개성적인 홈이 없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생겼으면 키 기능을 못한다고.”

진우는 연결 고리를 다시 스톱 버튼에 끼워 넣느라 애를 먹었다. 버튼 자체를 당겨서 그 사이에 고리를 채워야 한다는 간단한 요령조차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대단한 난관이 된다.

“우와… 이거, 하나도 모르겠는데.”

진우는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았다. 뜻대로 안 돼서 좀 열을 냈더니, 수영복과 구명조끼만 입고 있는데도 확확 찐다. 어느새 뒤쪽으로 올라온 삼식이가 진우의 허벅지에 얼굴을 기대며 헥헥거리고 있다.

“삼식아, 나 되게 열 받는 중이야. 이거 이상해.”

투덜대며 좌석과 손잡이가 연결된 부분을 쓸던 진우는 결국 당기는 손잡이를 찾아냈다. 그걸 여니 그 안에 주황색 플라스틱으로 덮인 키가 나타났다. 그리고 열쇠 구멍도 함께…….

“큭큭큭, 바로 코앞에 두고서 한참 고생했네…….”

진우는 기분 좋게 웃으며 키를 꽂았다.

띵띵―

가벼운 신호음이 들린다. 그린 라이트구나! 뚜껑을 덮은 진우는 야심차게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키리리리릭―

오오!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진우는 기대와 긴장 속에서 손잡이를 꽉 잡았다. 그런데…….

푸슈슈슈슉―

기운 없이 돌던 엔진이 다시 꺼진다. 아으, 젠장! 진우는 혀를 찼다. 그냥 좀 술술 풀려도 되잖아!

열쇠를 어디다 꽂는지 그걸 찾는 데 만도 이렇게 오래 걸렸는데, 이젠 난생처음 보는 제트스키를 고쳐서 타란다. 그것도 물 위에 떠 있는 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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