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14화 (314/449)

2장 나비효과 (5)

보안관은 뒤따라온 제니에게 태권소녀를 맡기고 곧바로 좀비들에게로 달려들었다. 사선으로 휘두른 배트에 한 마리, 반대쪽 사선의 일격에 또 한 마리…….

칠이 벗겨진 알루미늄 배트가 새벽의 햇살을 받아 번뜩일 때마다 뼛조각이 튀고, 뇌수가 바닥을 적신다. 망설임도 없고, 인정사정 봐주는 것도 없다. 그저 맹렬하게 배트를 휘두르면서 좀비들의 뼈를 박살 내고 있을 뿐이다.

어제의 무기력한 포위와 패배가 정말 어지간히도 분했었나 보다.

“길 텄어! 가자!”

자빠져 있던 두 마리에게까지도 인정사정없는 몽둥이세례를 퍼부어주고 나서, 보안관이 뒤를 돌아보며 손짓을 한다. 제니와 태권소녀는 보안관이 지키고 있는 길목을 따라 뛰었다.

그롸아아아―

뒤쪽에서는 아직 남아 있는 좀비들이 울부짖으며 달려온다.

텅― 텅―

소리만 듣고도 대충 그림이 상상된다. 자동차 지붕이며 보닛을 밟고 내달려오는 것이다.

“잡아! 대충 걸치기만 해! 끌어 올릴게!”

올가미가 달린 줄을 충분히 내려두고 있던 유빈이 외쳤다. 제니와 태권소녀가 잠시 서로에게 양보하느라 머뭇거리자, 유빈이 다시 목청을 돋운다.

“둘 다 잡아! 그 정도는 한 번에 끌어 올릴 수 있어!”

“하지만 그러면 보안관은 혼자 남는…….”

태권소녀가 주저하자, 보안관이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번쩍 안아든다.

“먼저 가. 벌써 충분히 도와줬어.”

말을 마친 보안관은 태권소녀를 올가미에 걸쳤다. 그녀와 제니가 밧줄을 꽉 잡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유빈은 줄을 끌어 올렸다. 물론 뒤에서 신입과 임수정도 있는 힘껏 당겼다.

지이익― 지이익―

급한 마음과 달리 두 사람을 매단 밧줄은 너무도 천천히 위쪽으로 올라간다. 아무리 날씬한 여자 둘이라고 해도 합치면 100킬로그램 가까이 되니 당연한 일이다.

아래쪽에서는 보안관이 달려드는 좀비들을 물리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수가 확연히 줄어들어서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끄응차!”

유빈은 안간힘을 쓰면서 줄을 잡아당겼고, 이내 제니와 태권소녀는 2층 난간에 팔을 걸쳤다. 둘 다 워낙 운동신경이 좋아서 그 정도까지만 하고 나면 별문제가 없다.

“야, 이거 잡아!”

먼저 기어 올라와 제니를 끌어 올려준 태권소녀는 재빨리 밧줄을 다시 아래로 던졌다. 마침 보안관은 마지막으로 달려들던 좀비의 머리를 날리던 참이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미친 듯이 서두르지 않았어도 될 뻔했다. 일이 이 정도로 수월했던 것은 삼식이가 어지간히 끌고 도망가 준 덕이다.

더 이상 달려오는 좀비들이 없다는 걸 확인한 보안관은 풀쩍 뛰어 올가미를 꽉 움켜쥐었다.

“으아~ 진짜 어제 저 새끼들 때문에 놀란 거 생각하면…….”

2층 주차장으로 올라온 보안관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좀비들을 향한 원망을 늘어놓았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머리를 터뜨리고 뼈를 부숴놨는데도 아직 분이 다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하아~ 다녀왔습니다.”

모두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제니도 그동안 꾹 눌러왔던 불안감을 한숨에 담아 뿜어낸다. 어지간히도 놀라고, 무서웠던 하루였다.

태권소녀가 제니의 손과 다리에 생긴 상처를 측은하게 바라본다. 특히 손바닥의 상처가 눈길을 끈다. 유리에 베였던 상처가 조금 전 밧줄을 잡고 올라오느라 다시 찢어져 피가 흐른다.

“얘, 고생 많이 했네. 손 좀 봐. 너 약도 안 가지고 있었지?”

“아… 이건 그냥 별거 아니에요. 살짝 긁힌 정도… 보안관 오빠가 엄청 고생했어요.”

제니는 부끄러워하며 손을 가렸다. 계속 씩씩거리고 있던 보안관은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임수정에게 꾸벅 머리를 숙였다.

“맞다… 그 약이요, 누나가 주신 빨간 주사약. 그거 덕분에 살았어요. 고맙습니다.”

“아후~ 아니야. 나는 나 때문에 이런 사달이 난 것 같아서 오히려 미안해. 고맙기는.”

“사실 저는 그 이야기 들으면서도 반쯤은 안 믿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로 주사를 찌르자마자 여기가 빡― 하고!”

보안관은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다시 생각해도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거 어때? 심장이 멎을 때 어떤 기분이야? 아파?”

태권소녀가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아프냐고? 그녀의 말을 반문한 보안관이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잠시 말을 고른다.

“에… 그러니까… 이런 기분이야. 만약에 네가 원수진 놈이 있으면 일단 그거부터 한 방 놔주라고 하고 싶어. 그리고 10분 있다가 그놈 깨어난 뒤에 가만히 구경을 해봐. 이런 게 속이 후련한 복수구나 싶어질 테니까. 그렇게 하고 난 뒤에는 두드려 패는 게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걸?”

“그 정도야?”

“에… 완전 끝내줘. 깨고 나서도 숨이 턱까지 차서 헉, 헉, 이렇게 돼. 이렇게 가냘픈 얘한테 부축 받아서 겨우 걸었다니까. 가슴은 또 얼마나 아픈지… 나도 제니 덕분에 겨우 숨 쉬었어…….”

자신이 얼마나 아팠었는지 신나게 설명을 하던 보안관은 서둘러 대충 얼버무렸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결국은 제니가 인공호흡을 해줬다는 것까지 말하게 될 테니까, 이쯤에서 접는 게 낫다.

“그래, 어쨌든 다행이다. 이제 삼식이만 돌아오면 되는데…….”

유빈이 걱정스런 눈으로 도로 쪽을 내다본다. 보안관이 그 옆에 서서 물었다.

“아, 맞다. 걔 어디까지 간 거냐?”

“몰라… 저리 어디로 나가 버린 거까지만 봤어. 원래 계획은 이 동네 안에서 비잉― 크게 한 바퀴 도는 거였는데… 골목을 좀비들이 막는 바람에 다 틀어졌어.”

그렇게 두 사람이 삼식이의 행선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신입이 보안관의 옷을 가리키며 물었다.

“야, 근데 너희 옷이 왜 그래? 뭔가 바뀌었잖아.”

응? 그러고 보니…….

모두의 시선이 보안관과 제니의 웃옷으로 향한다. 제니는 보안관의 커다란 셔츠를 걸치고 있고, 보안관은 어디에서 주웠는지 몸에 맞지도 않는 작은 셔츠를 입고 있다. 가슴은 팽팽해서 터질 것 같고, 기장이 짧아 배꼽이 보인다.

그렇게 확연하게 이상한 점을 깨닫지 못할 만큼 다들 정신이 없었다.

“어휴~ 이거 사이즈 95야. 보안관, 너 숨은 쉴 수 있어?”

보안관의 옷 라벨을 들춰보고 사이즈를 확인한 유빈이 물었다. 커다란 몸을 억지로 쑤셔 넣은데다, 격한 싸움까지 한 통에 겨드랑이는 다 터져 있다.

태권소녀는 제니가 왜 보안관의 옷을 걸치고 있는 건지가 더 궁금했다.

“아… 이거요. 제가 보안관 오빠한테 몰려 있는 좀비들 꾀어내느라고 제 옷에다 담배를 집어넣고 불을 질렀었거든요. 그래서 오빠가 자기 옷을 벗어 준 거예요. 오빠는 택배 트럭에서 빼왔던 옷 아무거나 집어 입었고요.”

어느새 보안관의 옆으로 다가온 규영이가 귓속말로 물었다.

“…봤어요?”

“응? 뭐, 뭘? 인마!”

보안관은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이 꼬마 변태 녀석은 빨갛게 홍조를 띤 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낮게 속삭인다.

“알잖아요… 우리가 래시 가드 때문에 못 봤던…….”

“아냐. 난 등 돌리고 있었어.”

“거짓말… 말이 안 되잖아요. 이 배신자! 옷을 벗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벗어줬을 거 아니에… 아! 아야야!”

보안관은 규영이의 볼따구니를 꽉 쥐어서 녀석의 음란하고 요망한 입을 봉쇄해 버렸다. 어리다고 해서 오냐오냐 받아주다가는 큰일 날 놈이다.

보안관은 제니와 태권소녀의 사이에 끼어들어서 서둘러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야! 지금 우리의 소중한 친구가 아직 못 돌아오고 있는데! 그까짓 옷 바꿔 입은 게 무슨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너희들 정신이 있냐?”

말이 씨가 된 것일까? 그 후, 한 시간이 지나도록 삼식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림이 길어지고 아침 햇살이 따가워질수록 유빈과 보안관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좀비 세상 첫날, 일꾼들을 찾으러 나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던 작업반장의 기억이 자꾸 오버랩된다.

“몇 시야?”

보안관이 초조하게 물었다. 자신도 시계를 차고 있다는 걸 잊을 만큼 불안해진 모양이다. 유빈은 힘없이 대답했다.

“일곱 시 이십오 분.”

“젠장, 답답해서 못 있겠네. 얘는 연락할 수단도 안 가지고 나간 거야?”

“무전기를 차고 있기는 했는데, 바로 저기에서 좀비 때문에 떨어뜨렸어.”

유빈이 도로 한 지점을 가리킨다. 그 역시 슬슬 삼식이의 작전을 허락했던 것이 후회되는 중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내려가서 찾아보고 싶지만, 어디로 가버렸는지도 모르니 그저 막막하다.

그렇게 다들 지쳐갈 때쯤, 도로의 먼 위쪽에서 삼식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발견한 제니가 손바닥으로 난간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삼식이 오빠!”

녀석은 숨을 헐떡이며 비틀비틀 자전거를 몰고 있었다. 바로 몇 미터 뒤에서 좀비 두 마리가 꼬리처럼 달라붙어 뛰어오고 있다.

“삼식아! 삼식아! 뒤에!”

모두가 큰 소리로 불러 대자, 삼식이는 힘겹게 스퍼트를 했다. 그런데 워낙 지쳐 있는 상태라 그렇게 크게 속도는 나지 않는다.

반면에 좀비들은 죽어라 따라오고 있다. 저놈들은 지친다는 게 뭔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거 잡아! 뛰어! 아, 아니다! 내려간다!”

밧줄을 아래쪽으로 드리우던 보안관이 그걸 잡고 몸을 날렸다. 무기도 없이 뛰어내린 보안관은 아까 태권소녀가 떨어뜨려 놓은 야구 배트를 집어 들고 삼식이를 향해 달려갔다. 얼굴이 마주칠 때, 삼식이는 희미하게 웃었다.

“수고했어!”

땀으로 범벅이 된 삼식이를 지나치면서 보안관은 격려를 해줬다. 그러고는 곧바로 배트를 힘껏 돌려 뒤에 붙어 있던 좀비의 대갈통을 후려갈겼다.

까앙―!

경쾌한 타격음. 그리고 곧바로 또 한 방.

열심히 달려오던 좀비들은 순식간에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림없어, 이 새끼들아!”

곧바로 다시 일어나려던 좀비들의 머리에 세찬 일격이 쏟아졌다.

쩌적―!

단단한 두개골뼈가 조각나는 소리가 고요하던 거리를 뒤흔든다. 두 마리 좀비를 해치우는 데는 단 몇 초면 충분했다.

“하아아~ 하아아~ 나… 나 죽을 것 같아… 하아아~”

보안관의 부축을 받아 겨우 주차장으로 올라온 삼식이는 바닥에 큰대자로 뻗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나 열심히 페달을 밟았는지, 노동으로 단련된 허벅지가 계속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킨다.

“…왜? 도대체 어디까지 갔다 온 거야? 크게 한 바퀴만 돌고 왔어도 됐잖아. 뭐했어, 한 시간이 넘도록?”

유빈이 녀석의 다리를 들어 근육을 풀어주며 물었다. 삼식이는 떨리는 손으로 먼 사거리 쪽을 가리킨다.

“하아~ 하아~ 처음엔… 하아~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저 앞에서 또 좀비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지 뭐야… 그래서… 옆으로 틀었지. 그랬더니… 하아~ 거기도 또 있어… 한 시간 내내 계속 쫓겨 다녔어……. 뿌리치면 또 나오고, 뿌리쳤나 그러면 또 앞을 막아서고… 진짜, 말 그대로 전속력으로… 한 시간을… 하아~ 아이구, 내 다리…….”

유빈이 아무리 열심히 주물러도 신음 소리는 줄어들 줄을 모른다. 보다 못한 태권소녀가 유빈을 밀어내고 삼식이의 다리를 잡았다.

“그렇게 하니까 안 풀리지. 기다려 봐, 내가 해줄게. 스트레치부터.”

응?

삼식이의 얼굴에 두려움이 깃든다. 관절을 딱 움켜쥔 손아귀 힘부터가 다르다. 보안관이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걔가 막 상처를 후벼 팠다고! 치료해 준다고 하면서! 이거 봐! 딱지 다 떨어진 거!”

그때는 마냥 재미있게만 들었었는데, 이제 자신의 문제로 닥쳐왔다. 삼식이가 이제 다 나았다며 두 손을 내저으려고 할 때, 이미 태권소녀는 손아귀에 힘을 빡 주고 다리근육을 누르고 있었다.

“아, 아니! 나 이제 안 아파… 아! 아! 아파!”

“그래, 알아. 아프지? 쿨다운 하지 않고 운동을 멈춰서 그래. 생각해 보니까 너는 워밍업도 안 했잖아. 좀만 참아.”

태권소녀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힘을 더 준다. 다리를 찢기는 삼식이의 비명 소리도 그에 비례해서 커졌다.

“아! 아! 아니야! 그만! 그만! 혜주야! 누나! 누나! 으아아!”

☆ ☆ ☆

“으아아아! 끄으윽!”

비명 소리에 민구는 잠에서 깼다. 사방에서 울려오는 끙끙 앓는 소리 때문에 밤새도록 뜬눈으로 지새우다가 새벽녘에 겨우 눈을 붙였었는데, 10분도 채 못 잔 것 같다.

민구는 비명이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릎 바로 위쪽에서 다리를 절단한 병사가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 바로 옆에도, 그 한 칸 뒤에도 모두들 신체 중 어딘가를 잃은 병사들이다.

‘젠장…….’

민구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며칠 만에 누워본 침대였지만 하나도 편치가 않다. 비명 소리와 신음 소리, 그리고 뭔가를 자르는 섬뜩한 소리…….

지옥이다. 마음이 불편하고 또 귀가 불편해서 더 이상은 견디기가 힘들다. 차라리 딱딱한 돗자리 위가 몇 천 배는 더 편안할 것 같다.

“끄응~”

바닥에 내려서서 신발을 신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신음이 터져 나온다. 두 팔과 두 다리, 어디 한 군데 멍들지 않은 곳이 없다. 이렇게 아픈데 아무데도 부러지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자신의 침대 난간에 걸려 있던 약봉지를 챙겨 든 민구는 비틀거리며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어? 어디 가요?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낯선 의사가 다가와 민구를 잡아 세운다.

끅, 별로 세지도 않은 손아귀 힘이지만 그가 어깨를 움켜쥐는 순간, 민구는 또 눈살을 찌푸리며 이를 악물었다.

후우우~ 한숨으로 신음을 대신한 민구는 의사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나… 나는 여기에 있으면 안정은커녕 오히려 더 아파질 것 같습니다. 나가야겠소.”

“안 되는데… 여단장님이 특별 지시한 환자 아니오? 완치시키라고 했단 말입니다.”

민구는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나았습니다. 완치돼서 퇴원했다고 해요.”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어제 거의 반송장이 돼서 여기로 왔는데 어떻게 하루 만에… 혹시라도 여단장님이 찾았는데 없으면 난리 납니다. 그냥 누워 있어요. 그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상태가 아니니까.”

의사는 완강하게 만류했다. 하지만 민구의 생각은 그보다 더 단호하다. 민구는 의사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런 거 그냥 하는 말입니다. 생각해 봐요. 그 여단장인지 하는 사람이 여기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게 언제였는지… 정 곤란하면 그 사람 왔을 때, 산책을 내보냈다고 해요. 그런 다음에 부르면 다시 오겠소. 나는 3루 측 내야석 부근에 있으니까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남기고 민구는 의무실 문을 나섰다.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동안 차츰 정강이뼈가 시려온다. 녀석의 발길질을 필사적으로 막았던 다리도, 관절이 꺾일 뻔했던 어깨도 지독하게 아프다.

“젠장… 죽여야 할 놈이 또 늘었군. 애새끼들 군대 보낼 때 만났던 그 고릴라, 기동이, 그리고 이번에 이 얼굴 시꺼먼 새끼……. 후우~ 하여간 이 새끼들… 내가 좀 나았을 때 만나기만 해봐라…….”

긴 야구장 복도를 따라 절룩이며 걸어가는 동안 민구는 죽여 버리겠다고 마음먹은 놈들의 명단에 메이저를 추가했다. 광기에 사로잡혀서 무자비하게 킥을 해 대던 놈의 시꺼먼 얼굴이 아직도 선하게 기억난다.

“어머! 저 인간이다, 저 인간. 어휴~ 재수 없어. 어제 저 정신병자가 난리 피운 바람에 우리들도 못 갔잖아. 이송 계획도 완전 취소됐다는 것 같던데…….”

“그러게. 저런 사람들은 좀 어디 한 군데 가둬두든가 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은 무섭다고. 계속 피해만 입어야 되고…….”

민구를 알아본 여자들이 웅성거린다. 아마도 어제 민간 수용소로 옮겨가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인가 보다.

훗, 민구는 코웃음을 쳤다.

메이저가 그 난리를 치는 걸 보고 나서도 몇몇 사람들은 민간 수용소에 대한 기대를 접지 못한 모양이다. 이제 그는 이 쉘터 내에서 공식적인 상종하기 싫은 놈이 되었다.

‘마음대로 지껄여라.’

민구는 길고도 긴 야구장을 힘없이 걸어가며 생각했다. 자신 역시 그들과 별로 특별한 감정을 쌓고 싶지 않다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