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나비효과 (4)
“유인? 어떻게?”
잠이 덜 깬 유빈은 계속 얼굴을 비비며 물었다. 삼식이가 유빈의 등 뒤쪽을 가리킨다.
“저걸로.”
거기에는 박스에서 꺼내 막 조립을 마친 자전거와 조립 공구를 들고 하품을 하는 신입이 서 있다.
“어… 신입, 안 잤어? 이건 뭐야?”
“삼식이, 저 새끼가 이거 같이 조립하자고 하도 귀찮게 깨워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났잖아. 아우 졸려, 제기랄. 아하암~”
신입은 또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녀석은 자전거 위에 올라타고 제대로 조립이 된 건지 페달도 밟아보고 브레이크도 걸어보는 중이었다.
철컥, 철컥.
기어가 물리는 소리도 제대로다. 유빈은 삼식이를 돌아봤다.
“자전거로 어떻게 꼬신다는 거야? 설마 밖에 나가서?”
“응, 당연히 밖에 나가야지. 그 수밖에 없잖아. 저거면 좀비들이 아무리 빠르게 뛴다고 해도 충분히 따돌릴 수 있어.”
삼식이는 너무도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유빈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건. 너무 위험해. 자칫 삐끗해서 자빠지기라도 하면 그냥 죽는 거야.”
“하하하, 자빠질 리가 없잖아. 생각해 봐. 어렸을 때도 아니고 요즘에 자전거 타다가 자빠진 적 있어? 한 번도 없을 걸? 그런데 왜 하필 오늘 자빠진다고 생각해?”
뭐, 그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유빈은 섣불리 그렇게 해보자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위험하다. 앞쪽이 좀비들에게 둘러싸이기라도 하면 그걸로 끝이다.
아무 안전장치도 없이 또 한 명의 친구를 외부로 내보낸다는 건, 그의 성격상 허락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봐봐, 유빈아. 지금이 기회야. 지금은 좀비들이 저렇게 드문드문 서 있으니까 자전거로 헤치고 나가보겠다는 생각이라도 할 수 있는 거라고. 더 많이 모이기 시작하면 그나마도 못해봐.”
유빈이 망설이자 삼식이는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전을 밀어붙인다. 그 말 역시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름 계획도 있어. 저기로 들어가서 골목을 돌고, 저쪽으로 돌아가지고 결국은 그 앞의 모텔 골목 싹 한 바퀴 도는 거야. 기억나지? 우리가 저기에다가 밧줄 많이 쳐놨었잖아. 쫓아오는 좀비들, 아마 절반은 거기에 부딪쳐서 자빠질걸?”
삼식이는 골목의 코스를 가리키며 자신이 그동안 생각했던 것을 일러준다. 유빈은 그래도 안심이 안 됐다. 삼식이 녀석이 잠도 안 자고 나름 열심히 계획을 짰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앞뒤가 다 막히면 어떻게 하려고?”
“물론 그 경우도 다 대비가 되어 있지. 모텔 골목 안까지만 들어가면 별로 걱정할 것도 없어. 정 아슬아슬해지면 자전거 버리고 파라다이스 모텔 안으로 도망가도 되고… 방법은 무지하게 많아.”
삼식이가 열심히 설득을 할수록 유빈은 더 불안해진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불과 10분 뒤에 내가 후회하고 있으면 어쩌지? 미처 깨닫지 못한 끔찍한 실수 같은 건?
부정적인 이미지들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유빈아, 너무 무서워하지 마. 네가 걱정하는 일이 전부 다 실제로 일어나는 건 아니야.”
망설이는 유빈의 얼굴을 보며 삼식이가 씨익, 웃어준다. 여자들을 홀릴 때의 그 미소다. 유빈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녀석의 말이 맞다. 이미 이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을 잔뜩 해왔다.
“그래, 알았어. 일단 보안관부터 깨우자. 아직 차 안에 있을 것 같은데…….”
유빈의 말에 삼식이는 무전기를 들어 보인다.
“벌써 아까 깨웠어. 지금쯤 이 근처에 와 있을 거야. 아~ 여보세요? 여보세요? 내 말 들려, 보안관? 어디까지 왔어?”
― 치익, 나 지금 제니랑 주유소 있는… 치이익― 데에서 기다리고 있어. 야이씨! 좀비 없다더니, 아직 많잖아! 치이익―
“하하하, 그게 엄청 줄어든 거야. 그리고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그마저도 확 줄어들게 해줄게.”
― 치이익, 진짜? 네가 무슨 재주로?
“내가 끝내주는 거 생각해 봤지! 어쨌거나 거기에서 조금만 더 대기하고 있어! 알았지?”
삼식이는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유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래쪽 도로를 살펴봤다. 이왕 하기로 결정했으니까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는지 그 궁리를 해야 한다.
“다 좋다고 쳐도 어떻게 나가려고? 셔터는 다 잠가뒀고, 그 앞에다 카트로 막아놓기까지 했는데.”
어느새 깬 태권소녀가 눈곱을 떼어내며 물었다. 삼식이는 도로 반대쪽을 가리켰다.
“하하하, 일어났구나. 잘됐다. 내려가는 건 주차장 2층에서 자전거를 줄로 묶어서 먼저 내려놓고, 그다음에 나도 줄 타고 내려갔다가 뛰어내릴게. 애들도 그쪽으로 들어오라고 해. 물론 나도 이따가 그거 타고 올라올 거고.”
“그러면 네가 잡고 내려갈 줄은 올가미 형식으로 만들어야겠네. 그래야 끌어 올릴 때 편하지.”
유빈이 아이디어를 냈다. 본격적인 참전이다. 일행들이 세부적인 사항들을 점검하는 동안, 삼식이는 새 자전거를 타고 옥상의 자동차들 사이를 돌며 몸에 익혔다.
고급이라고 할 수는 없는 물건이었지만, 어차피 대단한 속도를 요하는 건 아니니까 괜찮다. 좀비들의 달리기보다 빠르기만 하면 된다.
“보안관, 나야. 너 지금 보이는 건물이 뭐야?”
준비를 마치고 모두 2층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유빈이 무전을 보냈다. 보안관은 곧바로 답을 한다.
― 치익, 코스트코랑 모텔 보여. 치이익, 바로 맞은편에 와 있어. 와, 근데 여기는 좀 높다. 뛰어내리기에는… 치익― 한 5미터는 되는 것 같은데…….
“조금 있다가 삼식이가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좀비들을 끌어들인 다음, 꼬리에 달고 동네를 한 바퀴 돌 거야. 그 틈에 너희는 빨리 이쪽으로 와야 돼.”
― 삼식이가? 치익, 그거 괜찮냐? 난 또 무슨 대단한 재주라도 부리는 줄 알았는데… 치익― 그냥 하지 말고 기다리면 안 되냐? 치치익―
“안 돼! 벌써 카운트다운 들어가서 이제 돌리는 건 힘들어! 그리고 기회도 언제 또 올지 몰라! 그러니까 유빈이 말 잘 듣고 따라 해, 알았지, 보안관!”
유빈이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삼식이가 끼어들어서 대신 대답을 해버렸다. 잠시 침묵이 흐르던 무전기 저쪽에서 보안관이 말했다.
― 치익, 뭐, 유빈이가 어련히 알아서 걱정했겠지. 알았어. 치이익― 신호 보내. 치익―
“응, 그럴게. 신경 쓰고 있어.”
무전을 마치고 유빈은 삼식이를 돌아봤다. 삼식이는 치킨 사러 나가는 사람처럼 지극히 평온한 표정이다.
“코스 기억하고 있지, 삼식아? 저 골목으로 들어가서 빨랫줄 걸어놓은 거 피하면서 달려. 오른쪽 먼저, 그다음엔 왼쪽. 순서 헷갈리지 말고. 그리고 무전기 울려도 대답할 생각 하지 마. 그냥 듣기만 해. 알았지?”
삼식이의 목에 세 번째 무전기를 걸어주면서 유빈은 신신당부를 했다.
“응. 오른쪽, 그다음에 왼쪽, 다시 오른쪽.”
삼식이는 쾌활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유빈의 말을 확인한다. 태권소녀와 유빈이 밧줄에 연결한 자전거를 아래쪽으로 조금씩 늘어뜨렸다.
자전거는 이내 바닥에 닿았다. 아직 근처의 좀비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자전거 묶은 매듭 두 줄 중에 끝에 까만색으로 칠해둔 줄을 잡아당기면 풀려. 너 진짜 조심해야 돼, 알았지?”
삼식이가 줄을 타고 내려가기 직전에 유빈이 거듭 다짐을 받았다. 삼식이는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인다.
“그만 까불고 내려갈 거면 서둘러. 저 새끼, 이쪽 쳐다봤어.”
길가를 살피고 있던 태권소녀가 재촉을 한다. 유빈, 태권소녀, 신입, 임수정까지 네 명이 밧줄을 잡고 조금씩 늘어뜨려 삼식이를 아래로 내렸다.
탁―
지상 2미터 정도까지 내려갔을 때, 삼식이는 훌쩍 뛰어 자전거 옆에 섰다. 그러고는 유빈이 일러준 대로 줄에서 자전거를 풀어냈다.
“갔다 올게! 너희도 잘해!”
삼식이는 2층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자전거에 올라 도로 쪽으로 내달렸다. 슬슬 관심을 보이는 좀비들이 늘어난다.
“얘들아, 안녕?”
인도의 중앙에 멈춰 선 삼식이는 좀비들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담배를 세 개비나 물고 한꺼번에 불을 붙였다.
후우우~
연기를 내뿜자 거의 신령님 등장 수준의 양이 모락모락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그롸아아―
갑작스레 등장한 먹잇감에 좀비들이 흥분하며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먼 곳에 있는 놈들은 아직 돌아봐 주지 않는다. 삼식이도, 보고 있던 유빈 일행도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야! 이것 좀 보라고! 왜 갑자기 모르는 척해!”
삼식이는 페달을 밟아 인도 위를 가로지르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만큼 커다란 목표물이 큰 소리를 내고 담배 연기까지 친절히 뿜어줬는데 반응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한 발짝 먼저 다가가는 수밖에…….
삼식이가 노력한 보람은 있었다. 금세 몇 십 마리나 되는 좀비들이 그의 기척을 알아채고 뛰어오기 시작했다.
삼식이는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접근했다가 자전거의 방향을 반대로 바꿨다. 이제 아까 봐뒀던 그 골목 쪽으로 도망가기만 하면…….
그때, 대여섯 마리의 좀비들이 인도 위를 가로막는다. 몇 놈은 그가 목표로 삼았던 골목 쪽에 서서 포효하고 있다.
아무래도 유혹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서 너무 깊이까지 들어와 버린 모양이다.
“어? 안 되는데! 야! 내가 그리로 갈 건데!”
앞을 막아서는 좀비들 때문에 당황한 삼식이가 큰 소리를 질렀다. 이층 주차장에서 보고 있던 유빈도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삼식아! 뒤에! 뒤에! 더 빨리 밟아!”
삼식이가 머뭇하는 사이, 그 뒤를 쫓아 달려오던 좀비들이 어느새 바짝 따라붙는다.
목 부근에서 울리는 무전기 소리를 듣고 삼식이는 자세를 낮추며 힘껏 페달을 밟았다. 그러고는 핸들을 틀어 자동차들 사이로 방향을 바꿨다.
그롸아아아아―
앞쪽에서 그를 노리고 달려오던 좀비가 몸을 날리며 팔을 휘두른다. 으앗! 삼식이는 목을 바짝 움츠렸다.
틱, 좀비의 갈퀴 같은 손이 삼식이의 목을 아슬아슬 스치고 무전기 줄을 움켜쥔다. 불과 10센티 정도밖에는 차이가 안 나는 일격이었다.
삼식이는 핸들을 더 왼쪽으로 틀어 재빨리 놈의 옆으로 피해 나갔다. 좀비의 손에 걸려 있던 무전기가 바닥에 떨어진다.
“으아아아!”
차량 사이로 막아서는 좀비들을 피해 삼식이는 몇 번이나 아찔한 곡예를 하며 겨우 인도 위로 올라섰다.
휴우우~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긴 직후였지만, 안전해지자마자 그는 잠시 속도를 늦춘 채 좀비들이 따라붙을 수 있는 시간을 줬다. 그의 임무는 좀비들을 이끌고 멀리까지 가주는 것이다. 그냥 따돌리는 것이 아니라.
“우와~ 가까이에서 보니까 좀 무서워지네.”
뒤돌아보고 있던 삼식이는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맹렬히 달려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긴장 때문에 몇 번이나 비틀거려야 했지만, 이내 자전거는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고, 좀비들이 뛰어서 그 뒤를 쫓는다.
“삼식아!”
무전기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걸 알면서도 유빈은 애타게 불렀다. 녀석은 지금 애초에 계획했던 도주 코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버렸다. 그건 삼식이도 잘 안다.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방법이 없다.
골목 안으로 들어간 놈들은 그가 꾈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 일단 걸려든 놈들이라도 끌고 가능한 한 멀리 달아나는 게 도와주는 거다.
씨이잉―
그롸아아아아아아―
인도를 따라 달리던 삼식이가 포효하는 좀비들과 함께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리자 유빈과 태권소녀는 멍해진 얼굴로 서로 마주 봤다.
이 계획, 시작부터 너무 틀어져 버렸다. 게다가… 삼식이를 쫓아가지 않은 좀비들이 아직도 도로 위에 여러 마리 남아 있다. 적어도 열 마리 이상이다.
“애들 오라고 해! 내가 마중 나갈게! 저 정도면 싸워볼 만해!”
태권소녀가 야구 배트를 집어 들면서 유빈에게 외쳤다. 유빈도 따라가려고 하자, 밧줄을 잡은 태권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넌 여기 있어! 끌어 올려 줄 사람도 있어야지! 이 둘만 가지고는 힘이 모자라서 안 돼!”
유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발을 동동 굴렀다.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은데, 임수정과 신입만 믿고 내려가기도 불안한 건 사실이다. 결국 그는 남기로 하고 태권소녀에게 간절히 외쳤다.
“부탁할게!”
“걱정 마! 애들 빨리 불러!”
태권소녀는 밧줄을 잡고 중간 정도까지 내려가기도 전에 부웅, 몸을 날려 땅에 내려섰다. 유빈은 보안관과 연결된 무전기를 잡고 외쳤다.
“보안관! 지금 몇 마리 안 남았어! 와야 돼!”
― 치익, 간다!
무전으로 한마디씩 주고받는 그 짧은 순간 동안에 태권소녀는 벌써 두 마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으얏!”
태권소녀가 배트를 크게 휘두르며 첫 번째 좀비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러고는 훌쩍 뛰어 앞으로 나서며 두 번째 좀비의 턱을 걷어찼다. 중심을 잃고 빙그르르 도는 두 번째 좀비의 정수리에 태권소녀의 야구 배트가 꽂힌다.
태앵―!
알루미늄 배트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다. 앞으로 고꾸라진 좀비의 뒤통수를 향해 태권소녀는 몇 번이나 연거푸 배트를 휘둘러 댔다. 살이 찢어져 으스러진 뼈가 비칠 때까지 태권소녀는 암팡지게 매질을 했다.
그와아아―
일격에 턱이 부서진 첫 번째 좀비가 목이 반쯤 돌아간 채 달려든다. 태권소녀는 자세를 낮추고 스텝을 밟으며 놈의 무릎을 배트로 갈겼다.
까앙―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무릎이 꺾인 좀비가 앞쪽으로 나뒹군다. 다시 일어서려는 놈의 뒤로 쫓아가 들려 있던 뒤통수에 풀스윙을 날리자, 놈은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제니야! 뛰어!”
보안관은 차에서 가져온 야구 배트를 먼저 던져 놓고, 차단벽에 매달렸다가 바닥으로 몸을 날렸다.
쿵― 100킬로그램에 가까운 몸무게가 3.5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내리자 엄청난 소리가 울린다. 반면에 제니는 보안관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가볍게 내려섰다.
“내 뒤로 따라와! 차 위로 올라가서 뛸 거야!”
자동차 위로 기어 올라와서 몸을 날린 좀비의 머리를 호되게 후려치며 보안관이 외쳤다. 관자놀이를 강타당한 놈은 앞차의 후면 창을 박살내며 나가떨어졌다.
6차선 도로, 불과 20여 미터. 하지만 사방에서 좀비들이 정신없이 달려드는 20미터다.
보안관은 자동차 보닛 위를 뛰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놈들에게 맥없이 물리기는 싫다.
“까불지 마, 이 새끼야!”
배트를 휘두르는 보안관의 눈은 복수심으로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앞을 가로막는 좀비의 머리통이 와작 소리를 내며 휙 돌아간다.
이 개새끼들… 내가 너희들 때문에 그 빨간 주사를 맞고 아주 저 세상으로 갈 뻔했다, 이 개새끼들아!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보안관은 이를 악물고 모질게 배트를 돌려 댔다. 눈에 보이는 좀비들을 모두 어제 그를 포위했던 놈들로 간주하기로 했다.
원수 같은 새끼들!
그롸아아아―
쉴 틈을 주지 않고 앞을 막아서는 또 다른 좀비. 보안관이 놈의 아가리에 300㎜ 안전화 킥을 박아 넣었다.
쇠판이 들어 있는 안전화 앞코가 훑고 지나자, 녀석의 이빨이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비틀대다가 겨우 다시 몸의 중심을 되찾은 좀비의 관자놀이에 풀 스윙한 배트가 꽂힌다.
따앙―!
알루미늄 배트가 확 찌그러질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 좀비의 두개골을 이상한 모양으로 찌그러뜨려 버렸다.
“빨리 와!”
세 마리째 좀비를 해치운 태권소녀가 차선 세 개 너머의 보안관과 제니를 향해 외쳤다.
어느새 골목에 숨어 있던 좀비들까지 슬슬 기어 나와 가세하고 있다. 서두르지 않으면 포위될지도 모른다.
“혜주야! 뒤에!”
유빈의 애타는 목소리. 태권소녀는 고개를 돌렸다. 골목 안쪽에서 튀어나온 좀비 다섯 마리가 그녀를 노리고 몸을 날린다.
“익!”
태권소녀는 배트를 휘둘러 가장 앞선 놈의 턱을 날렸다. 그런 후, 그 회전하는 에너지를 그대로 실어서 두 번째 놈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하지만 세 번째 놈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 덮쳐 온다. 그리고 뒤에 두 마리나 더 있다.
‘아, 안 돼……. 뒤로 물러나야…….’
태권소녀가 난감해하며 뒤쪽으로 점프를 하려던 순간, 눈가를 스치며 날아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안전 장갑을 낀 보안관의 왼손이다.
턱―
좀비의 아가리를 꽉 틀어잡은 보안관이 팔을 크게 휘둘러 놈을 뒤쪽으로 집어 던져 버렸다. 무지막지한 힘이다.
쿠당탕―
뒤따르던 두 마리가 거기에 얽혀 함께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잠시의 여유를 얻은 보안관이 휘청거리는 태권소녀를 부축해 받으며 씩 웃었다.
“아슬아슬했다, 응?”
보안관의 숨결이 닿자 태권소녀의 볼이 화끈 달아오른다.
젠장, 이 고릴라… 멋있다.